제 2 의 기계 시대 요약 - je 2 ui gigye sidae yoyag

작년 『다윗과 골리앗』, 『바른 마음』, 『신호와 소음』 등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미국 교양서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또 하나의 전형적인 미국 베스트셀러 교양서인 『제2의 기계 시대』를 읽게 되었다.

처음 1/3 가량은 좀 재미있는 듯 했지만 역시나였다. 때깔 곱고 반찬 많지만 먹고 나면 기억나는 게 없는 한정식 같은 느낌. 앞으로는 정말 웬만하면 미국 교양서들은 돈 주고 사지 말아야겠다.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은 지금이 바로 (‘제1의 기계 시대’인 산업 혁명기에 이어) ‘제2의 기계 시대’로 가는 변곡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나마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기계가 ‘모라벡의 역설’을 뛰어넘고 ‘패턴 인지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자율 운전, 자동 번역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게 보였던 기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스터(baxter)라는 이 로봇은 매우 놀라운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어 공장 노동자를 손쉽게 대체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제2의 기계 시대의 특징을 무어의 법칙으로 상징되는 지수적 성장, 재생산 한계 비용 제로를 가져오는 모든 것의 디지털화, 그리고 기존 기술의 재조합을 통한 혁신 세 가지로 요약한다.

특히, 재조합을 통한 혁신을 강조한 것은 ‘제2의 기계 시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반론인 로버트 고든의 신경제 회의론과 타일러 코엔의 ‘낮게 달린 과일(low hanging fruit)’론에 대한 재반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 내 입장은 이 책의 저자들보다는 로버트 고든과 타일러 코엔 쪽에 더 가깝다. 나는 ‘제2의 기계 시대’가 ‘제1의 기계 시대’, 즉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진 놀라운 기술 및 경제 발전과 맞먹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 부분은 재미없는 경제학 이야기이다. 우선 2000년을 즈음해서 나타난, IT 기술 덕분으로 추정되는 미국 경제의 생산성 향상이 등장한다. 지겹다. 현재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적 불황(secular stagnation)’이나 ‘뉴 노멀(new normal)’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이기도 하다.

기술 낙관론에서 항상 등장하는 GDP의 생산성 과소평가 주장도 나온다. GDP에 문제가 많다는 것 누가 모르나. 국민계정 통계에서 누락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여러 무형 자산들을 계산해 넣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일자리나 소득이 늘어나는가. 과거에 만원 주고 CD 사서 들어야 했던 음악을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로 아주 싸게 듣는다고 해서 최저임금 시급을 받는 편의점 알바의 삶이 더 행복해진 것인가.

드디어 이 책의 핵심, 기술 발전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가 등장할 차례다. 최근들어 미국, 그리고 세계 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제2의 기계 시대’가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기술 발전이 ‘풍요와 격차의 조합’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2000년 이후 생산성 증가의 가속화와 중위 소득의 정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바로 ‘풍요와 격차의 조합’인 것이다.

‘숙련 편향적 기술 변화’, ‘노동소득 분배율의 세계적 감소 추세’, ‘슈퍼스타 경제’, ‘승자독식 시장’ 등 이미 너무나 친숙한 개념들이 차례로 나온다. (그냥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격차보다 풍요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강한 풍요’의 논리도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CD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싸니까 모두가 행복해진 것’이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저자들은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불평등이 혁신을 지연시키는 ‘착취적 제도’로 이어지면서 결국 제2의 기계 혁명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 발전이 가격에 비탄력적인 수요(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음악 산업의 매출이 줄었다), 빠른 변화(노동자가 기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10년도 더 걸릴 수 있다), 불평등의 심화(임금은 일정 수준, 즉 생계비 이하로 낮아질 수 없다) 등의 요인에 의해 실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저자들은 동의한다.

기술 발전이 선진국에 남아 있는 고임금 일자리보다 신흥국으로 옮겨진 저임금 일자리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세계화가 신흥시장국의 경제 발전을 통해 전 세계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완화시켰다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와 정면으로 부딛치기도 한다.

세 번째 부분은 ‘제2의 기계 시대’의 어두운 면인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뻔하다. 교육이다. 그것도 창의적인 교육.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의사 소통’, ‘자기주도학습’, ‘몬테소리’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개념들이 총 출동한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조스가 다 어릴 때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저자들이 구태여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볼 때는 단지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것 뿐인데. 요즘 중산층 가정에서 애들 조기교육(몬테소리 교육 등) 안 시키는 집이 있나? 공허할 뿐이다. 하긴 불평등 해소 방법으로 교육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오히려 교육에 의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학 프리미엄에 대한 강조도 지극히 진부하며 미국적인 주장이다. ‘대학 졸업자가 2007년 대침체기 시작 이후 고용률이 증가한 유일한 집단이다’라는 연구 결과는 웃음밖에 안 나온다. (찾아보니 한국의 경우 대졸자와 고졸자의 최근 고용률 추이에는 예상대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요리사, 정원사, 수리공 등등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직업들이 기계로 대체된다고 하니 역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다. 저자들은 물론 학위 인플레이션과 학자금 대출액 증가에 대해 걱정하지만, 대안이 없다. 무크(MOOC)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성장과 번영을 위한 권고’ 역시 진부하다. 첫번째는 또 교육이다. 교육과 기술의 경주에서 교육이 이겨야 하니까. 무크를 통한 교육 디지털화, 그리고 교사 봉급 인상/수업시간 연장/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평가의 3종 세트. (미국이 볼 때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다.)

그리고는 스타트업(신생기업) 장려, 구직자와 기업의 연결 활성화, 과학자 지원, 인프라 개선(이민 유입 장려 포함), 조세 제도 개선(피구세,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등의 신선하지 않은 방안들이 제시된다.

저자들도 이런 제안이 진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좀 더 획기적으로 보이는, 하지만 비현실적인 방안들을 몇 개 더 제시한다. 우선 나온 것은 기초소득제(극좌와 극우가 모두 선호하는!). 그 다음으로 나온 것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역소득세.

결국은 미국의 현실 상황을 반영한 국세로서의 부가가치세 도입 제안으로 끝난다. 용두사미다. 공유 경제도 등장한다. 공유 경제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하지만, 에어비앤비나 우버가 기존의 호텔이나 택시업 종사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공유경제는 일자리 창출보다는 소비자 후생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부분은 사족이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singularity)’은 아직 먼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제1의 기계 시대가 화학 결합에 갇힌 에너지를 해방시켜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제2의 기계 시대는 진정으로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힘을 해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멋들어진 말로 끝을 맺는다.

기술, 불평등, 교육이라는 요즘 인기있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지만, 깊이도 부족하고 독특한 시각이나 통찰도 없었던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요즘의 기술 발전이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의 노동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이 신선하다고 할까.

마지막으로, 기술, 불평등,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과대포장된 ‘제2의 기계 시대’

현재 진행되고 있는 IT-디지털 기술 발전은 그 강도나 영향력이 19-20세기의 산업 혁명에 비해 훨씬 약하며, ‘제2의 기계 시대’는 과장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로버트 고든의 기술 발전에 대한 신중론에 동의한다. 19-20세기의 산업 혁명은 내연기관, 전기 에너지의 활용, 화학공업의 발전, 수도시설 등 여러 범용 기술의 발전이 종합된 엄청난 현상이었으며, 무엇보다 인구 변천 (사망률 하락에서 시작해서 출산율 하락으로 끝나는 인구의 증가 과정)을 수반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산업혁명은 기계, 화학, 의료의 발달 등 전사적으로 혁신을 이뤄냈기에 경이적인 생산력 증대가 가능했다.

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1인당 소득/생산 증가율이 가속화된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늘어나는 인구를 다 수용할 만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엄청난 수요 증가가 나타났다. 위에서 본 ‘비탄력적인 수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이 불평등의 해소를 가져온 것도 바로 이 산업 혁명의 특징이었다. 성장이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은 바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r<g’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제1의 기계 시대’에 비하면, 이 책에 나온 ‘제2의 기계 시대’는 인구가 늘지 않으니 수요 역시 크게 늘지 않고,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너무나 초라한 기술 발전일 뿐이다. 고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기술 발전이니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특히, 일자리를 늘리는 ‘제1의 기계 시대’가 아직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 가까이에 아직 완벽하게 전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줄이는 ‘제2의 기계 시대’가 퍼져나가는 것은 후발 신흥국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지난 30여 년간 제조업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린 중국은 ‘제1의 기계 시대’의 막차를 탄 셈이다. 이제 중국이 ‘제2의 기계 시대’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는 것은 기술을 통한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아직 제조업 발전을 이루지 못한 인도, 중동, 아프리카 사람들은 기계가 제조업 노동을 대체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가?

교육이 불평등 해소의 특효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작년부터 가졌던 생각이며, 요즘 크루그먼이 열심히 내세우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학 졸업자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기술이 빨리 발전해서 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이 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대졸자가 가지는 정치사회적인 권력이 더 커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작년 이주호 박사의 연구처럼 임금분위별 프리미엄을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런지도 궁금하다.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제대로 된 교육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이 엘리트 중심의 ‘착취적 제도’로 이어져 제대로 된 교육을 저해하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을 창조할 인물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결국 기술 발전과 경제 번영을 가로막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기술 발전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맞다면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이 실현될 경우 기술이 더 발전되어 불평등 역시 더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의 창업주는 다 잘사는 집 자식들이었다.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마이클 저커버그와 같은 재능을 가졌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나 아깝게 사라진 인재들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을 세웠다면 우리의 살림살이는 더 나아졌을까? 오히려 불평등이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

어쨌든 과도한 소득 격차는 막아야 한다. 노조 등을 통해 보통의 노동자들도 협상력을 높여야 하고 (CEO의 높은 급여는 그들의 협상력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연구를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국가의 조세 및 복지 제도를 통한 재분배 체제 확립도 중요하다. 그래도 ‘제1의 기계 시대’가 어느 정도 완료된 선진국이나 산업화된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해법이 알려져 있는 셈이다.

반면,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 즉 ‘제1의 기계 시대’의 이익을 채 누리지 못한 채 ‘제2의 기계 시대’로 넘어가야 하는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수십억 사람들의 빈곤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참으로 답답하다. 원조, 즉 ‘세계 정부(국제 기구)를 통한 재분배’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19세기 산업 혁명 시절에는 제도(보호무역)를 통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있었다면, 지금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더 교묘하고 피하기 힘든, 기술을 통한 사다리 걷어차기인 셈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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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태 선생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유학에 이어 시티은행, SC은행, 소시에테제너럴은행에서 꾸준히 세계 경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화려한 스펙(…)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로 현업에서 거시경제를 분석한 분은 드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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