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초학도에게는 무리있어 보여” 지적도 있어 개원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전국 각 로스쿨이 개강준비로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 로스쿨은 지난 달 16일 ‘헌법교재개발 워크숍’에 이어 지난 16일엔 ‘민법교재개발 워크숍’을 개최했다.
김재형 교수는 “민법전 순서대로 만들기보다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기능적 편제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로스쿨 3년 동안 기초부터 실무까지 모든 내용을 가르치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며 “이론과 실무의 융합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기본적 입장을 밝히며 발제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법률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 1학년 가) 첫 수업 적응기 첫 수업은 공법1(헌법과 정치제도) 시간이었다. 학기 시작 전에 미리 사둔 헌법 책은 한 번도 펴보지도 못했는데, 이 수업을 위해서는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책을 2권이나 다시 사야했다(하나는 헌법 기본서, 하나는 헌법재판소 결정문 모음). ‘미리 수강편람을 살펴보고, 이 교수님께 수업듣기로 마음을 정한 다음에 맞춰서 교재를 사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나마 법대 출신 동기가 쌩비법인 나 같은 친구들에게는 이 교수님 수업이 제일 좋다고 말해주어서 위안이 되었다. 다만, 교수님 저서의 책을 목차부터 내용까지 달달 외워야한다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대망의 민법1 시간이 다가왔다. 선배가 강력하게 추천한 교수님의 수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수업을 알아듣기가 쉽지는 않았다. 교수님께서 수업과 관련된 판례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두시면, 학생들이 미리 판례를 읽고 수업시간에 들어와야 했다. 수업시간에 판례 관련한 질문을 하실 때도 있었고, 호명될 경우 앞에 나가 판례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교수님께서 호명하시려고 출석부를 펴실 때마다, 나의 간은 쪼그라들었다. ‘제발 제 이름만은 부르지 말아주세요. 제발.’ 그 순간만은 선배가 왜 이 수업을 추천해줬는지 원망스럽다. 쌩비법인 나에게 질문형의 강의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형법1 시간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교수님께서 우리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낮으셔서 그런지,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시며 꼼꼼하고 친절한 주입식 강의를 해주셨다. 게다가 미리 예습하기 보다는 복습이나 철저히 하라고 말씀해주시는데, 교수님의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 했다. 나는 진심으로 느꼈다. 이 교수님이야말로 나의 구세주이시구나. 나) 공부, 공부 또 공부 첫 학기의 반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매일 읽어야 할 분량이 너무 많았다. 오늘 배운 부분을 복습하고, 다음 시간에 배울 부분을 미리 읽어두고, 책 뿐 아니라 곁가지로 읽어야 할 판례들까지 한 다발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이해하기도 벅찬 판례는 1장 읽는데 30분은 소요되는 것 같았다. 나는 법대 15동 5층에 마련되어 있는 ‘법오’ 열람실을 주로 사용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칸막이 책상 대신 칸막이가 없는 평상에 자리를 잡고 공부했다. 솔직히 말하면, 칸막이 책상에서 공부하려면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하여 미리 자리를 잡아두어야 했는데, 올빼미형 인간인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불어 같은 열람실에 항상 자리 잡고 공부하고 있었던 잘생긴 남자 선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보너스! (아쉽게도 그 분에게는 캠퍼스 커플인 아리따운 여자 친구 분이 있었다) 매일 하루 일과는 항상 똑같았다. 법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점심을 먹고, 수업시간에 참석했다가, 다시 법오에 와서 공부하고, 또 다시 수업시간에 참석했다가,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그래도 항상 읽어야 할 것들은 한 가득이었고, 나는 매일 허덕이고 있었다. 다) 법학시험 적응기 어느새 시험기간이 다가왔다. 필기를 보고, 교재를 보고, 판례를 읽다가 밤을 꼴딱 지새웠다. 첫 중간고사인 공법 시험은 약술형이었다. 무려 6문항이 출제되었는데, 그 중 4개 정도는 이미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번 읽고 정리해 둔 쟁점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2개는 책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났다. 친구가 교재 목차는 기본적으로 다 외우라고 그렇게 당부했었는데, 그 말을 흘려듣고 ‘내용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며 내 나름의 공부 방법만 고집했었던 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내용조차도 완벽하게 머릿속에 넣어 둔 것도 아니었다니. 일단 생각나는 내용만으로 머리를 쥐어짜내 답안지를 채워갔다. 민법, 형법 시험은 다행히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중요하게 다루신 부분에서 출제되었다. 말로만 듣던 사례형 문제도 출제되었으나, 이미 읽어둔 판례를 변형한 문제여서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공법 시험문제만큼 나를 당황케 한 문제는 없었으니, 나름대로 선방했을 것이라 기대했다. 기말고사는 중간고사 때보다는 좀 더 법학에 익숙한 상태에서 치렀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중간고사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내부 커뮤니티에 과목별, 교수님별 역대 기출문제가 올라와있었다. 법학을 전공한 친구 몇 명과 다른 과목을 전공한 친구 몇 명이 모여 스터디 그룹을 짜고 기출문제 풀이를 했다.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해 모범답안을 작성해서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작성한 답안을 보면서 법학 답안지를 작성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학기가 지나갔다. 마지막 기말시험이 끝난 날, 자유를 만끽하며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 놀러나갔다. 이젠 신나는 방학이 시작됐구나! 라) 여름방학 방학이 시작됐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학기 성적이 하나 둘씩 공개되면서, 나는 비로소 선배가 ‘성적에 연연하여 좌절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중간고사 때 몇몇 문항에서 만족할만한 답을 쓰지 못했던 공법이야 다소 성적이 낮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 과목들의 경우, 나를 당황하게 한 문제는 그다지 없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너무 낮았다. 일부 과목은 교수님께서 시험강평과 모범답안을 인터넷에 올려주셨다. 나는 꼼꼼히 강평과 모범답안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내가 쓴 답안과는 차원이 달랐다. 깔끔한 목차, 쟁점별로 꼼꼼한 고찰, 유사 판례를 기재하는 방법까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웠다. 내 입장에서 수월하다고 생각한 문제는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익숙한 쟁점이라도, 꼼꼼하게 그 근거까지 학설을 정리하는 것, 판례의 구체적인 사안을 적시하며 중요한 판례 문구는 가급적 그대로 인용하는 것, 교수님께서 해당 쟁점에 대해 작성하신 논문이 있다면 그 논문에서 지적한 부분까지 답안에 기재하는 것에서 결과물에 많은 차이가 나왔다. 그저 책과 판례를 열심히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답안지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쟁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당연하고, 평소에 철저하게 분석하고 정리해 두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여름방학 때에는 2학기 때 다룰 주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미리 마쳐두기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혼자 책을 보며 예습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사법고시 준비용 기본강의 테이프를 듣는 방법을 택했다. 온라인 강의보다 가격 면에서 월등히 저렴하고 칠판 필기 노트를 따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평소 언어 영역에 취약했던 공대생이라 그런지, 혼자서 교재를 읽는 것보다 강의를 듣는 것이 그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 보다 나은 2학기, 겨울방학 1학년 2학기에는 전공필수 과목인 공법2(기본권론), 공법3(행정법), 민법2(권리변동과 구제), 형법2(형법각론), 민사소송법을 수강해야 했다. 여름방학 때 이 모든 과목을 미리 예습해두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민법2, 공법3(행정법)만 미리 살펴두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때문에 민사소송법은 겨울학기에 수강하기로 미루어두고, 2학기에는 나머지 4과목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한 학기를 겪으면서 과목별로 교수님 강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했기에 공부하는 방법에도 체계가 잡혀갔다. 교수님께서 주입식으로 꼼꼼하게 강의해주시는 스타일의 형법은, 노트 필기를 꼼꼼히 하고 복습에 치중하는 공부를 했다. 판례에 대해 질문형 수업을 진행하시시고 수업시간에 중요하게 다룬 주제 내에서 시험을 출제하시는 스타일의 민법은, 예습할 판례는 반드시 2번씩 읽어 샅샅이 그 근거를 분석해두었으며 주요 문구는 미리미리 외워두었다. 또한 수업시간에 교수님 강의를 녹음했다가 다시 반복해서 들으며 그 내용을 정리했다. 배운 주제에 대해 교수님께서 논문을 작성하신 것이 있다면,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해 두고 시험 때는 요약본만 읽을 수 있게 정리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법은 목차를 통째로 다 외워야 하는 교수님 수업 스타일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다른 교수님의 수업으로 들었다. 스터디를 결성하여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표로 정리해서 요약해두고, 나머지는 기본서와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을 위주로 공부했다. 이처럼 과목별로 공부하는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1학년 2학기에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겨울방학 때에는 민사소송법 한 과목만 수강하여 소송법 수업에 집중하였고, 나머지 시간에는 2학년 1학기에 배울 과목을 미리 예습해두었다. 바) 학회 및 동아리 활동 공부에 파묻혀 바빴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통상 2~3개의 학회나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한 학회 1~2군데와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동아리, 그 외 종교 동아리에 많이 가입하는 추세였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동아리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평소 관심이 많았던 분야인 과학기술과법학회와 국제법학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모두들 학업에 매진하느라 바쁜 처지였기에, 학회 활동은 주로 식사 시간에 짬을 내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세미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달의 발표자가 주제를 정해 준비한 발표를 마치면, 이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험을 마치고 방학이 시작되면 학회 친구들끼리 서울 근교에 나가 펜션에서 1박 2일로 MT를 가기도 했는데, 삭막한 로스쿨 생활 속에 오아시스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1학년을 보내는 내내 가장 부러운 친구들은 단연 법학을 전공한 친구들이었다. 법학 전공생들은 수강신청 전에 공법, 민법, 형법 3과목에 대해 학점인정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었는데, 시험에 pass하게 되면 학기 중에 해당 과목을 수강할 필요가 없었다. 상상해보라. 이 살 떨리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안 볼 수 있다니. 물론, 학점인정자격시험에 pass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함께 수업을 들을 때도 스터디를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인기 있는 친구들은 단연 법학을 전공한 친구들이었다. 비법학도 친구들이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헤맬 때 그들은 스터디 전체를 밝혀주는 등대와 같았다고 할까. 나는 스터디가 그다지 적성에 맞지는 않아서 기출문제 스터디만 했으나(그마저도 만나서 모이는 시간 없이, 각자 맡은 기출만 풀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공유하는 방식), 많은 친구들이 판례 스터디, 논문 스터디 등을 조직해서 함께 만나 공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세미나실은 각종 스터디 모임으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