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그러나 이제 탈출이 끊어진 섬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ㅏㄲ - wonjangnim geuleona ije talchul-i kkeunh-eojin seom-eun eotteohge doeeogago issseubniakk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서 그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내일의 선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섬 위에 꾸미고 계신 원장님의 천국은 어떻습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의 천국이기 전에 우선 원장님의 천국인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오직 원장님 한 분만의 천국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천국이라면 전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선택이 행해져야 할 것이고, 적어도 어느 땐가는 보다 더 나은 자기 생의 실현을 위해 그 천국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천국이란 실상은 그것의 설계나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행위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더욱 큰 뜻이 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만 있었을 뿐 원생들의 진정한 선택이 있을 수 없었던 그 마지막 정착지로서의 천국, 필생의 천국, 그것은 원생들의 천국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그렇게 믿어 주기를 바라면서 거의 일방적으로 그것을 점지해 주고 싶어 하신 원장님이나 그 원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 섬 바깥에서 이 섬을 저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게 될 바로 그 사람들의 천국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 막히는 지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장님께서는 결국 그와 같은 천국으로 이 섬에 또 다른 철조망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도 더욱 높고 비정스런 철조망의 울타리를 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문둥이들만을 위한 천국, 여기에 또한 원장님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습의 철조망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불행한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도 온갖 인간적인 소망과 자기 생의 실현욕은 근본적으로 어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기구한 생의 역정을 걸어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기구해 온 천국이 여느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비록 그것을 망각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저들에게 그것을 다시 찾아 주어야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그러나 저들에게 그냥 인간의 천국을 지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이 세상 누구에게서도 너희의 병을 용서받아보지 못한 가엾은 문둥이들이므로, 너희의 과거는 너무도 쓰리고 아픈 상처의 자국뿐이므로, 울타리가 둘러쳐진 천국이 진짜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둥이를 위한 문둥이만의 천국을 꾸미시려는 원장님의 의지 바로 그것 속에 이미 그 보이지 않는 철조망은 마련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원장님께서 이 섬 위에 세우고 계신 천국이란 어떤 것입니까. 환자다운 환자들에게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환자로서의 불행을 스스로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라야 비로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오직 그런 뜻의 천국일 뿐이었습니다.

원장님의 천국이 섬사람들에게도 천국일 수 있는 것은 원장님의 천국이, 윤리에 섬사람들의 생각이나 욕망이 스스로 한정당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뿐이었습니다.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일이 짐승에게 씌워진 굴레처럼 다스림이 편해질 때 다스림을 받는 것도 편해지는 이치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하루빨리 섬사람들은 탈출을 잊고 원장님의 천국에 익숙해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원장님, 그러나 이제 탈출이 끊어진 섬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 섬은 이제 생명의 증거를 잃어버린 죽음의 섬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원장님께서 섬 위에 이룩하시고자 하신 천국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이 섬은 그 원장님의 단 하나의 명분에 일사불란하게 묶여버린 얼굴 없는 유령 집단의 섬이 되어 갈 뿐입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져나감은 그 자유나 사랑 속에 깃든 힘으로 해서일 겝니다. 사랑이나 자유의 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루해 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를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청준(1939~2008), 소설 『당신들의 천국』(문학과지성사 1976년) 중에서 발췌-

"제가 불안해 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사람들은 야권이 집권을 하면 권력을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예요. 정치권력만 잡은 거예요. 언론권력 그대로 있죠. 재벌, 경제권력 그대로 있죠.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광고시장을 통해서 언론과 유착되어 있는 재벌들,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프로젝트 받아먹는 지식인층 그대로 있죠. 그래서 개혁을 한다고 해서 순순히 협조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권력 층위 위에 오직 청와대 권력만 바뀐 거예요." -유시민(2017. 5.5 파파이스 144회)

"심리학적인 뜻으로는, 힘에 대한 욕망은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함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 자아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참다운 힘이 결여되어 있을 때 2차적인 힘을 얻고자 하는 절망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힘'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어떤 자에 대한 힘의 소유이고, 타인을 지배하는 능력을 뜻한다. 둘째로는, 그것은 어떤 일을 하는 힘을 소유하는 것, 능력이 있는 것, 잠재적 능력이 있는 것이다. 후자의 뜻은 지배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것은 능력이라는 뜻에 있어 숙달을 뜻한다. 무력이라 할 때도 우리는 이 뜻을 생각한다. 즉 타인을 지배할 수 없는 인간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힘이란 '지배'나 '능력'중 어느 하나를 뜻한다. 그것은 동일하기는커녕 서로 배타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개인적 자아를 포기해버린 자동인형이 되어 주위의 다른 자동인형과 동일하게 된 인간은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아의 상실이라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 -에리히 프롬('자유로부터의 도피')

"독일인들은 히틀러에 복종함으로써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유태인들을 학대하면서 사디스틱한 쾌감을 얻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이면에 자리잡은 것은 관료주의다. 윗사람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게 강한 것이 관료주의적 성격으로, 개성은 없지만 야심 많은 출세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다. 주체적 자아가 없는 그들은 오직 지위에 의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을 수 있는 존재들로,이들에게 출세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보스에 대한 절대 충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나라처럼 권위주의가 만연한 나라도 없다. 수구적 봉건윤리가 뿌리깊게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무리 사회의 명시적 가치로 부상해도, 권위주의는 쉽게 사라질 줄 모른다. 예전에는 '군사독재'라는 명백하고 가시적인 권위주의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수월했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외형이 사라진 지금, 권위주의 문화를 타개할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이란 눈에 띠지 않는다. 그저 '도덕성 회복'이니 '의식개혁'이니 하는 식의 막연한 처방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금욕주의적 봉건윤리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강력한 아버지'의 관념에 속박된 정신편향의 봉건윤리를 자아의 상실과 성적 억압에 따른 '화풀이 문화'를 가져오기 쉽다. 파시즘을 지배하는 것은 이러한 집단적 가학충동으로서의 '화풀이 문화'다." -마광수('나는 헤픈여자가 좋다')

광주 북구 일곡동 문은주국어학원

고1.2.3.n수생. 수능국어. 내신국어 특강

중2.3 국어 심화수업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줄거리]

나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새로 병원장으로 부임해 온다. 부임 첫날부터 원생의 탈출 사고가 일어나고, 조 원장은 외부 사람의 눈에는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섬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이 후 조 원장은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섬을 바꿔놓기 위해 군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를 가지고 많은 난관들과 부딪혀 나가기 시작한다. 조 원장의 간곡한 설득과 열정어린 의지에도 원생들(소록도 병원의 환자들)은 원장을 불신하며, 모든 사업 계획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지배자의 관점에서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역대의 원장들이 자신의 명예심과 과시욕 때문에 원생들을 혹사시키는 등 결국 그들을 배반했고 또한 그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같은 원생이 서로를 배신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원생들이 겪은 배반의 대표적인 예가 일제시대 때의 원장 주정수이다. 그는 행복한 낙원의 건설을 장담했고, 그의 의지에 감동 한 원생들도 열심히 따라서 마침내 섬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차츰 주원장과 원생들의 관계는 절대적인 지배자와 그에 복종해야 하는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질되게 된다. 원생들은 낙원의 건설을 위해 계속 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나가야 했고, 섬을 탈출해 나가는 사람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빠져나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들은 주원장의 동상까지 세우고, 매월 동상 참배까지 의무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결국 주원장은 겉으로는 나환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완벽하게 확충된 '낙원'을 건설해 놓고도, 바로 그 보은(報恩) 감사일날 나환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원장이 그 '주정수의 동상'을 되풀이 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조원장은 섬사람들에게 지난날의 악몽을 씻고 이젠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원생들은 조원장에게서 목숨까지 건 맹세를 받아내고서야 비로소 바다를 매립해 원생들의 농토를 만들자는 원장의 간척사업계획 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자연과 인간의 싸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몇 년에 걸쳐 힘겹게 치루어진다. 간척사업 동안 원생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또는 자연침하로 인해 바다 밑에서 솟아오르는 돌둑은 번번이 가라앉곤 했고, 조원장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불만과 불신을 묵묵히 인내하는 원생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어느 날 도 당국에서 파견한 작업조사반이 섬에 들어온다. 간척장을 당국에서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분노한 조원장은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의 전임발령을 받고 만다.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완성시켜놓고 떠나고 싶었던 조원장은 모든 사실들을 원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사업을 빨리 진척시켜줄 것을 독려한다.

한결같은 조원장의 헌신적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던 원생들은 조원장의 전임발령을 취소하라는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상욱은 원장을 찾아와 이것을 중단시킬 것과 사업의 완성 여부에 상관없이 이 섬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간척사업의 과정에서 원생들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그 사업의 완성을 보고 싶은 것은 혼자서 모든 일을 완성해내고픈 원장의 욕심일 뿐이라고. 상욱은, 비록 원장은 '동상'을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섬사람들이 스스로 지어바칠 그 '동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 원장은 그 간척 사업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섬을 떠나지만, 5년뒤 민간인의 신분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와 음성병력자와 건강인 처녀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는 등 섬사람들과 공동의 운명을 같이 하는 삶을 살며 믿음과 사랑이 바탕된 진정한 천국의 건설을 꿈꾼다.

[요점정리]

갈래 : 장편소설.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공간 - 소록도. 시간 - 5.16 이후

주제 : 인간의 진정한 삶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이상주의적 세계 추구.

특징 :

① 대화의 방식을 활용하여 상황에 대한 인물의 인식과 태도를 드러냄.

② 대화의 중간중간에 상대방을 추켜세우다 비판하기를 반복하는 억양법을 구사함.

성격 : 관념적

[등장인물]

조백헌 : 소록도 병원장으로서 나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인물이다.

이상욱 : 조백헌 원장과는 갈등 관계였으나 원장의 사랑 정신에 감동한다.

이정태 : 소록도를 취재하는 기자

[이해와 감상]

지금까지 장편 소설에 대한 재래의 독법은 우선 수많은 등장 인물, 엇갈리는 숱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최대의 특징으로 삼아 왔다.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나 사건은 독자와 더불어 성장한다. 말하자면,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암시가 미리 주어지지 않고 무심한 현실의 한 단면을 제시하듯 그대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물과 사건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서 차츰 변모와 발전, 소멸을 거듭하면서 이윽고 어떤 파국, 혹은 어떤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장편 소설들의 기본적 전개 방식은 귀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전개 방식에 있어 일종의 연역적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장편소설로서는 드물게도 몇 안 되는 등장 인물만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길이의 문제만을 제외하면 사건과 효과의 단일성 등 재래의 장편 소설 조건에 부응하지 않는 체계를 갖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선택한 어떤 보편적 원리의 추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작품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사이의 역학 관계와 대립 관계를 드러내 보인 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재, 주제,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과 깨끗하고 지적인 문체 등으로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은 관념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그는 우선 일상적 생활 양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관념화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행위의 세련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단순화 또는 축소화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뇌리 속에서 또는 사회 의식 속에서 서로 충돌 화합 타협 대립하는 관념들의 양상을 집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준은 이러한 관념의 의식을 파고드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능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청준이 쓴 장편소설로,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지도자와 그 원생들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현역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하여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 주겠다며 득량만 매립 공사에 착수하는 데서부터 그 공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21개월 동안 나환자들과의 대립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제2부는 매립 공사를 둘러싼 병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고 있다. 제3부는 소설의 대단원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조 원장이 섬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소록도에 돌아오게 되고, 2년 후에는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표면적으로는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한 인물의 무용담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조백헌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이상욱과 이정태, 황 장로를 등장시켜 이들을 통해 이 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역할과 권력에 대해서 묻고 있다.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했다.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육군장교 출신의 조백헌이 소록도병원장으로 취임, 한센인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며 득량만 매립 공사를 착수한 데서 시작하여 한센인들과 대립·갈등을 빚는다. 2부는 매립 공사 기간의 조 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3부는 조 원장이 소록도를 떠났다가 7년 후 일반 시민으로 돌아와 미감아 두 사람의 결혼을 주례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따라서 표면적 줄거리는 '당신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조백헌의 꿈이 한센인들과의 대립을 통해 실패하고 다시 그 실패가 화해를 가져온다는 것이지만, 그보다 진정한 작가의 의도는 “인간사회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점검해 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대답은 첫째, 권력은 사랑과 자유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되고, 둘째, 인간의 천국은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록도라는 한 섬을 통해, 자유 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 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할 뿐이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도출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1970~1980년대 한국 사회의 상징적 축도라고 볼 수 있다.

(두산백과)

1976년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이청준의 대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나병환자의 수용촌이었던 남해 소록도의 병원장인 조백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역 대령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조백헌은 외부에서 소록도로 들어와 그의 포부와 이상을 실현하고자 과감한 계획을 세운다. 그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 준다는 명분 하에 득량만 매립 공사에 착수한다. 그는 육지의 정상인들로부터 소외되어 섬에 고립되어 있는 나병 환자들에게 섬과 육지를 이어준다는 꿈을 심어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진심으로 나병 환자들의 천국을 만들어 주고자 했던 그의 의도도 시간이 점점 지체되고 마지막 물막이공사가 거친 파도에 힘들어지자 점점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만다. 그 자신이 그렇게나 거리를 두고자 했던 예전 원장 주정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공사에 동의하여 힘을 합했던 환자들도 점점 더 조백헌 원장에게 불만을 품고 결국은 그도 과거 자신들의 삶을 짓밟았던 주정수 원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결국 공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조백헌과 환자들의 대표인 황 장로 사이에 길고 긴 담판이 오고 간 뒤 중단되고 조백헌은 섬을 떠난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섬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후 더 이상 군인이나 병원장의 신분이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소록도에 돌아온 조백헌의 삶을 비춰준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매립 사업이 결국 환자들을 위한 진정한 천국이 아닌 ‘자신만의 천국’ 혹은 환자를 더욱 더 환자로 머물러 있게끔 만드는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진정 소록도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삶을 위한 천국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소록도의 나병환자와 정상인 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지고 이 작은 변화에서부터 새로운 천국의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제시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표면적 구조로 봤을 때 조백헌이라는 인물의 열정적인 매립 사업 과정과 그 실패담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조백헌의 영웅적 일대기를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의도하였건 하지 않았건 그가 시도하였던 사업이 어떻게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 통치의 모습으로 회귀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도와 좌절의 과정은 나병환자와 일반인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모두의 천국은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고민해 보게 만든다.

〈당신들의 천국〉은 형식이나 서술 방법 면에 있어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장편소설에는 중심인물들 이외에도 다양한 부수적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서로 엇갈리면서도 결국에는 종합되는 숱한 갈등을 일으키며 소설의 전개 과정 속에서 성장해 나아간다. 그러나 〈당신들의 천국〉은 몇 안 되는 주요 인물이 작품의 핵심사건, 갈등을 중심으로 집약되어 있다. 이들은 다양한 사건을 전개해 나가기보다는 압축된 중심 주제를 통해 인간에 관한 보편적 원리를 추적하는 모습을 보인다.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한림학사)

[줄거리 요약]

소록도 병원에 새 원장 조백헌이 부임해 온 날 밤, 두 원생이 섬을 탈출한다. 조백헌은 부임 인사도 하지 않고 탈출 사고의 경위를 조사한다. 병원의 보건과장 이상욱을 통해 일본인 주정수 원장의 역사와 피살이라는 과거사가 알려진다.

주정수는 소록도를 버림받은 나환자들의 낙토로 꾸미려고 대규모의 역사를 일으켰었다. 처음에 그 역사는 원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얻어 순조로이 진행되었으나, 차츰 낙토 건설이라는 명분의 배후에 주정수의 동상 욕심이 자리잡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원생들을 고통과 배반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마침내 주정수는 원생에게 피살되었다.

낙토 건설이란, 원장의 입장에서는 원생을 위한 것이며 치자의 피치자에 대한 사랑의 베풂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원생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동상욕을 위한 것이며 치자의 피치자에 대한 강요와 억압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과거사를 알게 된 조백헌은 털끝만큼의 회의도 없이 동상욕을 부정하고 사랑의 행위라는 확신 아래 낙토 건설 사업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미감아 출신으로 치자와 피치자 사이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보건과장 이상욱은 그런 조백헌에 대해 계속 회의한다. 낙토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환자의 낙토이지 인간의 낙토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는 괴로워한다.

드디어 낙토 건설 사업은 시작되는데, 조백헌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오마도 간척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육지 사람들의 방해, 행정 관청의 비협조, 자연의 횡포, 원생들의 배반, 그리고 마침내는 상부의 일방적인 전근 발령으로 조백헌은 거의 절망의 수렁에 빠져든다. 그러나 반드시 일을 완성시키겠다고 조백헌은 의지를 굳건히 하는데, 이는 무의식 중에 동상욕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따름이다. 이상욱은 그 점을 지적하지만 조백헌이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섬을 탈출한다. 황 장로와의 대화를 통해 그 점을 깨달은 조백헌은 화려하지 않게 조용히 섬을 떠난다.

그리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다. 이제 조백헌은 원장의 신분이 아닌 하나의 사인(私人)으로서 섬에 들어와 섬의 주민이 되어 있다. 그는 그 7년 동안 황 장로의 사랑의 계시를 자체적으로 소화해냈고, 그리하여 자기 각성에 도달해 있었다. 그 자기 각성의 내용은 신문 기자 이정태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다스리는 자의 사랑 속에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가 깃들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 속에 다스리는 자의 사랑이 깃들어서 결국은 양자가 한 길로 화해스런 조화를 이룩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획득되어야 한다. 또 믿음이 획득되기 위해서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각성과 함께 섬으로 돌아와 섬의 주민이 되어 공동 운명을 수락하고 믿음으로 매개된 진정한 사랑을 성취한 조백헌에게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자유와 사랑을 행함에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힘을 어떻게 자생적 운명의 일부분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조백헌은 눈에 띄지 않는 일에서부터 차례차례 확실한 것을 한 가지씩 행해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조백헌은, 뭍에서 온 여교사 서미연과 병력이 있고 뒤틀린 반생명적 자세를 보여 오던 윤해원의 결혼을 주선한다. 두 남녀의 상징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날,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 봄날 날씨처럼 맑고 너그러웠다.

[인물의 성격]

조백헌 → 소록도 병원장. 나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인물

이상욱 → 조백헌 원장과 갈등 관계였으나 원장의 사랑 정신에 감동하는 인물

이정태 → 기자. 소록도를 취재함.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전개 방식에 있어 일종의 연역적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장편소설로서는 드물게도 몇 안 되는 등장 인물만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길이의 문제만을 제외하면 사건과 효과의 단일성 등 재래의 장편소설 조건에 부응하지 않는 체계를 갖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선택한 어떤 보편적 원리의 추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작품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사이의 역학 관계와 대립 관계를 드러내 보인 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재, 주제,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과 깨끗하고 지적인 문체 등으로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치대의 수확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은 관념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그는 우선 일상적 생활 양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관념화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행위의 세련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단순화 또는 축소화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뇌리 속에서 또는 사회의식 속에서 서로 충돌 화합 타협 대립하는 관념들의 양상을 집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준은 이러한 관념의 의식을 파고드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능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1976년 처음 간행된 뒤 100쇄가 넘게 인쇄될 정도로 꾸준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다. 우리 문학 작품 가운데 100쇄를 넘긴 작품은 이 작품과 더불어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정도만 꼽히고 있으니,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읽혔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이렇듯 시대의 변화를 뛰어넘어서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권력과 대중의 관계, 나아가 참된 사랑의 실천 등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소록도 나환자촌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쓰여졌다. 일제 말기 10년 동안 소록도에 재임했던 수호 원장은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 등대와 종루, 납골탑, 선착장, 중앙공원 등을 만들고, 자신의 동상을 세워 환자들에게 참배하도록 하다가 끝내 그 동상 앞에서 환자의 칼에 살해됐다. 이 사건은 작품에서 주정수 원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육군장교 출신의 조백현도 70년대 후반까지 소록도에서 근무했던 조창원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지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사실적 보고 문학에 그쳤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소록도라는 공간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갈등을 사랑·자유 등의 주제와 연관해 재창조하고, 보편적인 문제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면서 이 작품의 소록도는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 대한 정치적 비유로도 해석되고, 나아가 일방적 의사소통만이 존재하는 권력과 대중의 왜곡된 관계와 기술적 유토피아의 전망이 강요되는 우리 현실 자체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이해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에는 육군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 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며 득량만 매몰 공사를 시작하면서 빚어지는 환자들과의 갈등과 대립,2부는 공사 기간에 나타나는 조 원장의 정신적 방황,3부는 섬을 떠난 지 5년 만에 조 원장이 소록도에 돌아와 미감아 두 사람 결혼식의 주례를 맡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처럼 겉에서 나타나는 작품의 줄거리는 조백현이라는 한 인물이 나환자들과 대립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상욱과 황 장로, 이정태라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갈등과 긴장을 통해 이야기를 한 인물이 아니라 한 사회의 자기 성찰 과정으로 확대시킨다. 그 성찰은 자유 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 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할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며, 책 속의 ‘동상’과 이 책의 제목인 ‘당신들의 천국’은 바로 이러한 단절된 의사 소통 구조를 집약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의 구절에 나타나듯이, 상호간의 단절과 대립, 우열의 관계에 기초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수평적인 이해와 교류, 사랑과 공존에 기초한 ‘우리들’의 관계 자체의 복원과 수립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의 길임을 보여준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서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게 된다.”

(2020.6 고2]

[35~3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한센병 환자(나환자)의 섬 소록도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병원장으로 부임한다. 소록도 출신으로 섬의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 원장의 부임 인사 이후 열린 술자리에서 조 원장과 대화를 나눈다.

상욱은 자기도 모르게 차츰 목소리가 흥분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오늘 30년 뒤에 또 그 사람의 약속을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거구려.”

원장은 이제 좀 맥이 빠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여유가 만만한 사내였다. 그는 바야흐로 열이 오르기 시작한 상욱을 방해하려 하진 않았다. 맥이 좀 빠진 듯하면서도 이젠 그 상욱을 향해 빙긋빙긋 장난기 어린 미소까지 지어 보이고 있었다.

상욱은 그런 원장의 표정이나 말은 아예 상관을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섬을 나환자의 복지로 꾸밀 것을 약속했습니다. 학대받고 쫓겨 다니며 서러운 유랑 생활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오순도순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하고 살아갈 그들의 고향을 만들자고 설득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긍지와 보람을 누리자고 격려했습니다. 병사와 의료 시설을 늘리고 생활 환경과 후생 시설을 다시 꾸미자고 했습니다. 그러자면 먼저 환자들 자신부터 절망과 비탄에서 벗어나 추악한 유랑 습벽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복지를 스스로 꾸며간다는 자부심과 자활 의욕이 솟아나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환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켰겠지.”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킨 대신 이곳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원장의 얼굴에서 비로소 웃음기가 사라졌다.

“당신 아무래도 좀 이상한 노이로제 증세가 있구만그래. 동상 이야긴 벌써 두 번째 듣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그 동상이라는 건 뭘 말하고 싶은 거요?”

원장은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했으나 상욱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결이 주위를 완전히 침묵시키고 있었다.

상욱의 어조에선 아직도 열기가 숙을 줄을 몰랐다.

“동상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원장님께서도 벌써 충분히 짐작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그보다도 제가 벌써 두 차례씩이나 동상이라는 말을 원장님 앞에서 입에 담게 된 것은 아까 그 원장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동안에 그러한 동상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주정수 이후에도 새 원장님만 갈려 오면 번번이 또 그 원장이 새 동상을, 아니 실인즉슨 또 하나의 주정수의 동상을 보곤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오늘 낮 원장님을 뵙기 전에 벌써 열 번 이상이나 그곳에 서서 새 원장이 숨겨 가지고 온 주 원장의 동상을 보곤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곳에만 오면 주 원장의 동상을 새로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더러는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도 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원장이 섬을 떠나고 나면 섬에 남는 것은 배반뿐이었습니다.”

(중략)

축구 경기를 보급시키고 시합의 승리를 맛보게 함으로써 섬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한 조백헌 원장은 마침내 그의 본격적인 사업 계획을 드러내고 나섰다.

그러나 ㉣섬사람들의 반응은 아직도 그의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조백헌 원장이 오랫동안 혼자 가슴속에 숨겨오면서 공을 들여오던 사업 계획을 실현해 내는 데는 아직도 뛰어넘어야 할 수많은 장벽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먼저 싸워 넘어서야 할 장벽은 5천여 소록도 주민 바로 그 사람들의 불신감이었다. 축구 시합 승리의 소식을 안겨다 줌으로써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은 듯싶던 섬사람들은 원장의 새 사업 계획이 드러나자 다시 또 냉랭하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이 섬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을 위한 고향을 꾸미기엔 이 섬은 너무도 비좁습니다……”

구름처럼 섬을 뒤덮고 있던 연분홍 꽃무리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고 난 어느 조용한 봄날 오후, 조백헌 원장은 각 마을 장로 일곱 명을 중앙리 공회당으로 불러 모아 놓고 모처럼 그의 사업 계획을 털어놓았다.

“물론 이 일은 지난날 이 섬에 있었던 어떤 다른 역사보다도 더 힘들고 긴 세월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과거의 다른 어떤 역사에서보다 그 혜택이 멀고 아득한 곳에 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지니고 기도해 온 약속이 내일 당장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아마 이 일을 여러분의 손으로 이룩해 내고 나서도 그 땅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배불리 먹게 될 수도 없을는지 모릅니다.”

원장은 5만분의 1 지도를 벽에 걸어놓고 그가 계획하고 있는 간척 사업의 개요를 설명한 다음 장로들을 간곡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장로들 쪽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바다를 막아야 한다는 원장의 말이 떨어지면서 차갑게 굳어지기 시작한 장로들의 얼굴 표정은 계속되는 원장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변화의 기미가 엿보이지 않았다.

원장은 맥이 풀렸다. 지난 1년 동안 그가 섬에서 이룩해 놓은 것들이 일시에 다시 허사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이 섬으로 부임해 왔을 때의 그 숨이 막힐 듯 깊고 거대한 침묵의 회중 앞에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었던 바로 그날의 그 회중 앞에 다시 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35. 윗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내적 독백을 나열하여 인물들의 심리 변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② 감각적인 묘사를 통하여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대화와 행동을 제시하여 인물 간의 갈등 양상을 실감 나게 보여 주고 있다.

④ 과거 회상 장면을 삽입하여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⑤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병치하여 서사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있다.

36.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 자신의 말을 비웃는 조 원장을 조롱하려는 상욱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② ㉡: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됨을 인지한 조 원장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③ ㉢: 상욱은 자신의 말을 막으려는 조 원장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④ ㉣: 섬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으나 조 원장의 기대가 비현실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⑤ ㉤: 섬사람들과 신뢰가 무너져 간척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조 원장의 좌절감이 드러나 있다.

37.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보기 >

이 작품은 극도의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소록도 나환자들을 새로운 삶의 길로 이끌어 내려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나환자들을 패배감에서 벗어나게 한 주인공은 그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오마도 간척 사업을 추진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의지는 긍정하지만,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뜻을 이루려는 주인공이 권력과 명예욕의 화신으로 돌변할지도 모를 타락 가능성을 의심하는 시선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① 동상은 이전 원장들의 명예욕과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소재라고 하겠군.

② 조 원장의 진의를 의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욱은 작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군.

③ 조 원장이 축구 경기를 보급한 것은 섬사람들을 패배감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겠군.

④ 장로들이 침묵하는 것은 그들의 천국을 이루려면 간척 사업보다 더 큰 사업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겠군.

⑤ 인물들 간의 역학 관계를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 조 원장은 지배자이고 섬사람들은 피지배자라고 볼 수 있겠군.

(2020.6 고2] [해설]

[개관]

이 작품은 나환자들의 거주지인 소록도를 배경으로, 나환자들을 새로운 삶의 길로 이끌어 내려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조 원장과 병원 관계자들, 나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진정한 삶을 위한 공간 건설의 문제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35. [정답] 3

[출제의도] 서술상의 특징 파악하기

상욱과 조 원장은 주정수 원장, 동상 이야기를 하며 갈등을 겪고 있으며, 장로들과 조 원장도 간척 사업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이 대화와 행동을 통해 실감 나게 제시되고 있다. / ① 인물들의 내적 독백은 나타나지 않았다. ②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제시한 묘사가 사용되지 않았다. ④ 과거 회상 장면이 삽입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았다. ⑤ 다른 공간의 사건이 나오지만 동시에 사건이 진행되었다고 보기 힘들며, 이를 통해 서사의 흐름도 지연되지 않았다.

36. [정답] 2

[출제의도] 구절의 의미 이해하기

㉡에서 조 원장은 상욱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고 당황해하고 있다. / ①㉠: 조 원장이 상욱의 말을 비웃지 않았고, 상욱도 조 원장을 조롱하지 않았다. ③㉢: 조 원장이 상욱의 말을 중단시키려고도 하지 않았다. ④㉣: 간척 사업에 대해 섬사람들은 조 원장의 기대만큼 적극적으로 호응했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조 원장의 기대가 비현실적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⑤㉤: ‘그는 이제 물러설 수가 없었다.’라는 이어진 부분을 통해 조 원장이 간척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좌절감을 드러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37. [정답] 4

[출제의도] 외적 준거에 따라 감상하기

장로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여전히 불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①동상은 주정수 원장을 비롯한 이전 원장들의 명예욕과 타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② 상욱은 이전 원장들과 마찬가지로 조 원장도 타락하지 않을까 의심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시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③ 조 원장은 축구 경기를 보급시켜 시합의 승리를 맛보게 하여 섬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함으로써 패배감에서 벗어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⑤조 원장은 실질적 권력자로서 지배자라고 볼 수 있으며 섬사람들은 피지배자라고 볼 수 있다.

<앞 부분 줄거리>

1960년대를 배경으로 소록도의 나환자촌에 전직 군의관 출신인 조백헌 대령이 병원장으로 부임해 온다. 그러나 부임 첫날부터 원생의 탈출 사고가 일어나면서 조 원장은 섬에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이후 조원장은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 있는 섬을 바꿔 놓기 위해 군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로 난관을 돌파하지만, 소록도 환자들은 냉담하다. 이제껏 역대 원장들이 자신들의 명예와 과시욕을 위해 원생들을 혹사시키며 배반했기 때문이다. 특히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 원장이 그의 ㉠ 동상(銅像)을 건립한 인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경계한다. 결국 조 원장에게 감화된 원생들은 자연과 인간의 싸움인 간척 사업에 동참한다. 그러나 간척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당국은 간척장을 인수하면서 조 원장을 다른 병원으로 전임 발령을 낸다. 조 원장의 전임 발령을 취소하라는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는 소록도 원생들. 하지만 이상욱은 원장을 찾아와 서명 운동을 중단시킬 것과 사업의 완성 여부에 상관없이 섬을 떠날 것을 충고한다. 조 원장은 간척 사업의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소록도를 떠난다. 그리고 5년 후, 민간인의 신분으로 섬에 돌아와 정착한 조 원장은 음성 병력자와 건강인의 결혼식을 취재하러 온 이정태 기자에게 예전에 이상욱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준다.

이 섬에 삶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환자로서의 남다른 처지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생존 조건들을 두 겹으로 동시에 살아 나가고 있는 셈이며, <환자>로서의 특수한 처지를 지나치게 강요당할 때, 이들은 오히려 그 환자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인간을 향한 지각과 모험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환자로서 두려운 섬을 쫓겨 나가는 추방의 길이 아니라, 섬의 지배자들이 저들에게 버릇 들여 온 공포를 박차고 자신의 선택과 용기에 의지한 희망찬 인간에의 모험을 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고 보면 그 동기야 어느 쪽에 있었든, 그리고 그 무모한 기도들이 성공을 거두었든 실패했든, 이 섬 사람들의 탈출극은 이를테면 섬에 못박힌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보려는 치열하고도 눈물겨운 몸부림의 표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지배자가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강요해 온 그 뜻없는 천국에의 통쾌한 배반이었습니다. 체념과 복종 속에서 무기력하게 <주님의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그 종신의 천국에서 한 번만이라도 자기 운명의 짐을 스스로 짊어져 보려는 갸륵한 모험이었습니다.

탈출은 생명을 받고 살아 있는 자의 마지막 자기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섬이 아직도 슬픈 유령들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섬일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탈출이 계속되는 한에서만 이 섬은 아직도 숨을 쉬는 인간들의 그것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탈출은 이 섬에 관한 한 그처럼 지고한 미덕이었습니다.

한데 원장님이 오신 후로, 이제 마침내 탈출극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탈출 사고가 자취를 감추어버린 후로 이 섬은 어떻게 되어 갔습니까.

원장님께선 물론 이 섬엔 뛰어넘어야 할 철조망조차 없는, 진짜 낙토가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오셨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이제 이 섬이 부질없는 탈출극의 악몽에서 깨어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해 일하고 있는 모범적인 요양소로 변해가는 증거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고 싶으시겠지요.

과연 그럴까요.

탈출자가 생겨나지 않은 이유가 정말로 뛰어넘을 철조망이 없기 때문이며, 탈출자가 자치를 감추게 되어 버린 뒤로 섬은 정말로 소망스런 낙토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장님의 신념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섬에선 아직도 철조망이 완전히 걷히질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 이전이 모든 분들이 그랬듯이 원장님께서도 이 섬을 오신 후로 변함없는 주문을 한 가지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이 섬 원생들 모두들 보다 더 환자다운 환자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는 원장님 이전의 누구보다도 원장님 자신의 소망을 완벽하게 이룩해 내셨습니다.

원생들은 참으로 환자다운 환자가 되어 갔습니다. 아무도 함부로 섬을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원장님께선 다른 분들처럼 덮어놓고 협박만 하신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적극적으로 원생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섬을 꾸미게 하고 그 곳에 남아 사는 데 불만이 없을 만큼 각별한 긍지를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환자다운 긍지를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조망을 둘러쳐 놓고 덮어놓고 겁만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생들 스스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높여 가게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원생들은 참으로 환자다운 환자가 되어 갈수록, 그리고 그들의 천국이 자랑스러워지면 자랑스러워질수록 아무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는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원장님께서 이 섬 위에 세우고 계신 천국이란 어떤 것입니까. 환자다운 환자들에게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환자로서의 불행을 스스로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라야 비로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오직 그런 뜻의 천국일 뿐이었습니다.

원장님의 천국이 섬사람들에게도 천국일 수 있는 것은 원장님의 천국의 윤리에 섬사람들의 생각이나 욕망이 스스로 한정당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뿐이었습니다.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일이 짐승에게 씌워진 굴레처럼 다스림이 편해질 때 다스림을 받는 것도 편해지는 이치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하루빨리 섬사람들은 탈출을 잊고 원장님의 천국에 익숙해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원장님, 그러나 이제 탈출이 끊어진 섬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 섬은 이제 생명의 증거를 잃어버린 죽음의 섬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원장님께서 섬 위에 이룩하시고자 하신 천국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이 섬은 그 원장님의 단 하나의 명분에 일사불란하게 묶여 버린 얼굴 있는 유령 집단의 섬이 되었을 뿐입니다. 하여 점점 더 다스리기가 쉬운, 그러나 개개인의 삶을 찾을 수 없는 생기 없는 유령들의 섬이 되어 갈 뿐입니다. 그리고 아마 원하기만 하신다면 원장님께서는 끝끝내 이 섬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원장님께서 지금까지 늘 그래 오셨듯이, 앞으로도 원장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섬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나가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닐 터이기 때문입니다.

(나) 전 결국 이 몇 년 동안 원장님과 원생들의 관계에서 한 선의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의 어떤 대등한 상호 지배 질서, 만인 공유의 화창한 지배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배자가 어떤 불변의 절대 상황 속에 갇힌 다수의 인간 집단을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저항 없는 조작을 행해 갈 수 있는가 하는 슬픈 지배술의 시범을 보아 왔던 셈입니다.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혀진 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 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 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 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울타리가 둘러처져 있는 한 원장님께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조작이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원장님께선 결국 이 섬 위에 ㉡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놓으실 수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마도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이 즐겨 누리게 될 천국이기에 앞서 그것을 이루어 내실 원장님 한 분의 획기적이고 생기 없는 천국이 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원생들은 자기 천국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들고 복종하는 그 천국의 종으로서 괴로운 봉사만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장님 - 그러므로 전 이제 원장님께 이 긴 글을 드리게 된 마지막 동기를 말씀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원장님, 원장님께선 굳이 이 섬 위에 일사불란한 그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완성해 내시고서야 섬을 떠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중략) 원장님의 천국은 이룩되어질 수도 없는 것이며, 이룩되어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원장님으로 인해 원생들의 그 오마도 농장을 이룩해 나간다 해도 그 역시 출소록의 길이 아니라 또 하나의 더욱더 완벽하고 안심스런 저들의 ㉢ 울타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떳떳하게 섬을 나가 주십시오. 원장님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이미 원장님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원장님께선 ㉣ 저들의 천국을 원하신다면,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이어야 할 저들에게도 그들 스스로 자기들을 시험해 볼 기회를 주십시오.

이 섬은 원장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원장님만이 이 섬을 위하고 원장님에게서만이 진실로 그 천국이 가능하며 원장님만이 오직 선이라는 그 오만스런 독선이야말로 오히려 이 섬을 사람의 천국이 아닌 추악한 문둥이들의 수용소로 만들어 갈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원장님은 결국 이 섬이나 섬의 환자들과는 운명을 서로 섞을 수가 없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다) “참으로 지독한 공박이군요.”

상욱의 글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청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이정태가 이윽고 조 원장을 건너다보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전 도대체 원장님이 이렇게까지 심한 공박을 당해야 할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군요. 그 상욱이란 사람 자신도 자기의 글 속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이 섬에선 모든 일이 무엇 때문에 꼭 이런 식으로만 행해지고 이런 식으로만 이해되어 와야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입니다.”

조백헌 원장은 이제 이정태를 기다리면서 혼자서 마신 술로 얼굴이 벌겋게 익어 올라 있었다. 그 조 원장이 이번에는 이정태에게도 비로소 술 한 잔 가득 채워 건네면서 의미있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중략) 그 허심탄회하고 끈질긴 미소 속에 조원장은 그러나 실패를 거듭한 사람답게 필사적인 자제력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각오를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야 물론 기다려야지요. 운명을 합하는 일이 실제로는 얼마나 어렵다하더라도 난 그것으로 일단 섬사람들의 ㉤믿음의 씨앗만은 구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이제 다시 섬을 떠남으로써 모처럼 움터오른 그 믿음의 싹을 짓밟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어요. 믿음의 씨앗과 싹만 있으면 그 믿음 속에서 기다릴 수는 있는 거지요. 그것이 처음에는 아무리 작고 더디고 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라서 그 공동 운명의 튼튼한 가교로 이어질 때를 기다리면서......더라도 말이야요. 믿음은 이 섬에 관한 한 모든 것의 시작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닙니까.”

“아, 그야 물론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지요. 그 믿음의 싹만 있으면 이 섬에선 지금부터라도 뭔가 할 일이 있지요. 믿음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우린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힘을 모아 무엇인가를 이루어 나가도록 해야지요. 그게 바로 믿음을 넓혀 나가는 일일뿐더러 이 섬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도 하구요. 그 눈에 뜨이지 않는 작은 일이란 이를테면 우선 한 건강인 여자와 병력자 사내의 결합 같은 거라고 할까요.”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 말씀입니까?”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합은 무엇보다도 한 건강인과 원생 사이의 첫 번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 섬이 있어 온 후로 그 건강인과 원생들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분명한 신뢰감의 확인이며, 그것의 첫 출발이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난 이번에 이 일에 발을 벗고 나섰던 겁니다. 섬에선 뭔가 다시 시작을 해야 하고 지금서부터라도 그것은 가능할 수가 있는 일이며,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소록도라는 특수한 상황에 빗대어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② (나)는 호흡이 긴 문장을 구사하여 작품에 관념적 성격을 더해 준다.

③ (다)는 대화의 방식을 활용하여 인물의 인식과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④ 조 원장은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태도와 성격이 발전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⑤ 편지글 형식의 액자 소설로서 서술 시점을 바꿔 대상을 보는 태도에 변화를 분다.

⇒ ⑤ (나)는 외화와 내화를 갖춘 액자식 구성이 아니라, 이상욱이 조원장에게 보낸 편지글을 삽입할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편지글의 발신인인 이상욱이 서술하고 있는 것이지 시점을 이동한 것은 아니다. <당신들의 천국>은 전체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2. 위 글의 등장 인물들이 대화를 나눈다고 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이상욱 : 원장님은 나병 환자도 아니고, 외부에서 파견된 관리자이므로 언젠가는 이 섬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원장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② 조 원장 : 천국을 명분 삼아 자신의 동상을 만드는 지배자에 대한 자네의 집요한 감시 덕분에 나도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깨달은 것이 많다네.

③ 이정태 : 하지만 원장님의 선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이상욱 과장의 태도는 문제가 있네요;. 원장님은 초지일관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으셨으니까요.

④ 조 원장 :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 나는 이 섬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다네. 특히 건강인과 원생의 결혼은 분명한 신뢰감의 확인이기에 그 일에 앞장섰던 것이지.

⑤ 이상욱 :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상에 대한 유혹을 지니고 있기에 저는 원장님을 감시했던 것입니다. 참된 천국은 지배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진정한 주인이 되어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요.

⇒ ③ 이정태는 조 원장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

3. <보기>는 ‘조 원장’의 실제 인물인 ‘조창원 원장’에게 보낸 작가의 편지글의 일부이다. 이를 참조하여 위 글의 주제를 파악할 때,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원장님께선 책 끝에 간절히 소망하신 바와는 반대로, 세상은 갈수록 정치 만능의 힘 겨루기 판으로 흘러가고, 사람들의 삶은 아직도 실천적 자유 실현 과정으로서 음지의 봉사보다 지배적 힘을 향한 선택을 일삼는 경향입니다. 게다가 오늘의 어려움이 그 개발 독재 체제기의 상당한 경제적 성취를 떠올리고 그에 대한 관용과 아량을 낳게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작금의 우리 현상은 그 시절에 대한 경계는커녕 새로운 향수와 긍정적 평가의 복고 분위기가 일고 있는 한편, 실제로도 새로운 힘의 질서를 구축해가는 현실 아닙니까.

허기야 역사는 늘 되풀이되는 것이라니까요. 하지만 되풀이되는 역사는 바람직스럽지 못했던 쪽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성과 경계의 쪽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그 60년대 제복 정치 시대의 전횡 또한 계속적인 반성과 경계가 필요하고, 그 알레고리로서의 섬의 현실과 원장님의 소설적 역할, ‘당신들의 천국’ 또한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실의 화두가 되어야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가 그 화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도 원장님께선 늘 우람한 거인으로 우리 앞에 오래도록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1998년 11월 25일 이청준 삼가

※ 알레고리(allegory) : 어떤 한 주제를 말하기 위하여 다른 주제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가 됨.

① 다혜 : 순교자적인 사랑과 봉사가 무엇보다 필요함을 말하려는 거야.

② 혜진 : 민중들의 단결과 투쟁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거야.

③ 소연 : 지도자들의 고결한 도덕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지.

④ 혜림 : 반성과 경계보다는 아량과 관용이 중요한 덕목임을 역설하려는 것이지.

⑤ 청민 : 정치적 힘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공동 운명체를 이룩해야 한다는 거야.

⇒ ⑤

4. (나)에 드러난 ‘이상욱’의 말하기 방식으로 적절한 것은?

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있다.

② 상대방의 의도를 확대 해석하여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있다.

③ 상대방을 추켜세우다가 깍아내리는 억양법을 사용하고 있다.

④ 상대방의 정서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을 완곡하게 전달하고 있다.

⑤ 상대방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직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⑤ (떳떳하게 섬을 나가 주십시오. 원장님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이미 원장님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5. ㉠~㉤의 문맥적 의미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통치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로서 권력의 상징물

② ㉡ : 통치자의 뜻에 순응하도록 인간 집단을 조작하여 길들이는 곳

③ ㉢ :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삶의 경계선

④ ㉣ : 주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⑤ ㉤ : 공동 운명체가 됨으로써 조 원장이 얻게 된 주민들의 신뢰감

⇒ ③ ‘울타리’ : 나병 환자들을 외부 세계와 구획하는 경계선으로서, 섬사람들의 생각과 욕망을 제한하면서 그들이 현실에 순응하도록 길들이는 구역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