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좋아하는 것 - dokkaebiga joh-ahaneun geos

도깨비는 장난질이 심하며, 심술도 부리고 변덕이 심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성격은 일본의 하동과 유사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도깨비의 행동으로는 사람들에게 모래를 뿌리거나 돌맹이를 던져 장독을 깨기도 하며, 또한 솥뚜껑을 솥안에 집어넣어 솥을 쓸모없게 만들기도 한다.

으트게 되었당간 이눔의 도깨비가 으트게 장난하는지 응, 그 대청에게 사람 죽음 왜 제청매잖아. 제청(祭廳)에 상옷을 걸어놨는데 사램이 고요하면 거 상옷이 그저 마루에 막 걸어댕기구 말이여. 또 도깨비 장난한테 나가 보믄, 고무락에 그저 돌멩이가 물바깥에 푸렁 푸렁 푸렁 막 날아 올라가구. 응, 날아 올라가구. 아 그 정(經) 읽는날 국시(국수)반죽해서 쳐서 국시 반북하다가, 여여. 반죽해서 국실 썰다가 에, 칼을 여기다 도마우에다 놨두믄 이 칼이 그냥 문구녕에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막 이 짓두 하구. 부엌에 소당(솥뚜껑) 아, 소당을 딱 닫아놨는데 이눔의 소당이 그저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돌면 그저 공중에 이려 까맣게 올라갔단, 그 청정에 올라갔다 툭 떨어지면 솥안에 쑥 들어가고.(《韓國口碑文學大系》江原道 橫城郡)

이러한 도깨비의 장난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최근에 경기도 가평에서 도깨비가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을 한다고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바 있다. 1999년 겨울에 서울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이를 ‘도깨비불'이라고 신문에서 쓰기도 했다. 이처럼 해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이를 도깨비의 장난으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 도깨비의 장난은 원초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즉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지만,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의 경우 마을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 집의 주변에서 도깨비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린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정월 보름에 집안에서 도깨비를 위해 메밀떡을 해서 고사를 드린다. 이렇게 해야만 도깨비의 장난질이 멈출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물과 관련하여 장난기를 발동하는 사건도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대개 저수지나 방죽 등에 살고 있는 물고기 들을 모두 산의 골짜기에 묻어버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난의 유형이 그러하다.

당골 방죽 있잖냐? 내가 조그만 했을 때, 1년에 한번씩 날이 가물면 물을 한번씩 뺐어. 물이 빠져서 가보면 고기 한 마리가 없다는 것이여. 평소에는 많은디. 그 후에 보름이나 지났는가, 그곳에 지나다 보니깨 냄새가 지독허드래. 골짝에 흙으로 고기를 흙으로 묻어 놨드랴. 그래서 도깨비방죽이라고 헌대.(金平垣의 《도깨비說話硏究》중에서)

도깨비가 골짜기에 물고기를 묻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방죽에 살고 있던 도깨비의 짓이라고 생각해서 그 방죽을 도깨비방죽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방죽은 도깨비의 생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공간에 있는 물을 퍼내는 행위는 도깨비의 삶을 깨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도깨비는 방죽 안에 살고 있던 고기를 다른 곳에 묻어버림으로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장난을 하거나 심술기가 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일정한 피해를 줄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자신의 령역이나 공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도깨비의 존재표현은 적극적인 대응방식이기보다는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이를 제어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남을 엿볼 수 있다.

밤중에 고개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도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씨름을 좋아하는 것은 도깨비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심성을 그대로 반영한 존재물임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친구 아버진데, 도깨비한테 세 번인지 네 번인지 뭐 홀렸어. 근대 한 번은 팬교에서 이 제사 지내는 팬교 있잖아? 거 가서 큰 집이 있어서 거가 큰 집에 갔다가 저녁 어둑어둑할 때 읍으로 들어오는데 뭐이 곧 나서며, “씨름하자!” 고 그러더래고 그래서 씨름할라고, “그럼, 씨름하자.” 구 두루매기를, 이 벗어 놓고는 씨름을 했는데 그 도깨비가 졌어, 졌는데, “또 하자.” 고 그래. 그래, 옛날 옛날 그전 노인네들은 우리 어려서 노인네들은 이 칼을 차고 다녔어, 호주머니칼. 요기 요기다가 칼을 빼갖고 콕 찌르고 그냥 두루매기도 못 갖고 도망을 왔어. 도망을 왓는데 나중에 아침에 허두분한 때 가 본께 이 빗자루에 칼이 꽂혀 있더래. 빗자루 몽댕이가. 그래 나 그 빗자루 몽댕이 그리 아무데나 여자가 깔고 앉고 아무데나 내버리는게 아닙니다.(《한국구비문학대계》양평군)

도깨비가 좋아하는 것 - dokkaebiga joh-ahaneun geos
도깨비와 씨름하는 곳은 대개 고개를 넘어오는 곳이다. 시간대는 밤중이며, 특이하게 경험자들은 술을 먹거나 고기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도깨비와 씨름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기 때문에 경험적인 속성을 지닌 특징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시간대에 그 장소를 지나는 사람과 도깨비가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것이다.
도깨비는 왜 씨름을 좋아하는 것일까. 씨름은 고구려의 각저총에 그려진 고분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연원이 오랜된 것이다. 각저총은 중국의 집안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의 고분으로 약 5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씨름하는 모습은 무덤 현실 동쪽 벽에 그려져 있다. 씨름하는 두 무사의 왼편에는 우주목이 그려져 있다. 우주목은 신이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하강로를 의미한다. 마을공동체신앙에서 대개 신체로 당목이 제시되는데, 이것은 신의 하강로이자 신이 거주하는 신성공간을 뜻한다. 따라서 씨름하는 공간은 신성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씨름도 신을 위한 제의과정에서 행해지는 신성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씨름은 고구려의 전통적인 민속놀이의 하나로 정착된 듯한데, 고려시대에는 중국에까지 전파되어 고려희로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충혜왕은 씨름을 좋아하여 자신이 소동들과 씨름을 하기도 하고, 무사들이 씨름하는 것을 종종 관람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씨름은 일반에서 매우 류행하였던 민속놀이로 정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종 힘자랑을 좋아하는 무인들이 씨름을 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의 세시풍속기인 홍석모의《동국세시기》 단오조에도 씨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젊은이들이 남산의 왜장이나 북악산의 신무문 뒤에 모여 씨름(각력지희 角力之戱)을 해서 승부를 겨룬다. 그 방법은 두 사람이 상대하며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 오른발을 잡아 일시에 일어나면서 상대를 번쩍 들어 팽개친다. 밑에 깔리는 자가 지게 되어는데, 안걸이(내구 內句)?발걸이(외구 外句)?둘러 메치기(윤기 輪起) 등 여러 자세가 있다. 그중 힘이 세고 손이 민첩하여 자주 내기하여 자주 이기는 사람을 도결국(都結局)이라고 부른다. 중국인이 이를 본받아 그것을 고려기(高麗技)라고 하며, 또 요교(??)라고도 한다. 단오날 씨름경기는 매우 성하여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도 많이 한다.(丁壯年少者 會於南山之倭場 北山之神武門後 爲角力之戱 以賭勝負 其法兩人對? 各用右手?對者之腰 又角用左手 ?對者之右股 一時起立 互擧而?之 倒臥者爲負 有內句外句輪起諸勢 就中力大手快 屢賭屢捷者 謂之都結局 中國人效之 號爲高麗技 又曰?? 端午日 此戱甚盛 京外多爲之)

씨름에 대한 인기가 요즘의 프로야구나 프로롱구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존재인 도깨비도 동등한 기호틀로 형성시켜야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성들의 민속놀이로 주목을 받아온 씨름을 도깨비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한 것은 도깨비를 남성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두가지 관점에서 도깨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도깨비가 우리 민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물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사고방식이나 놀이의 선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씨름은 일상적으로 어느 때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다. 그런 놀이적인 특징은 민중적인 선호에 의해서 광범위한 전승을 갖게 되었으며, 사대부층에서도 한량들은 씨름을 좋아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둘째로는 남성들의 놀이인 씨름을 좋아하고 만나는 사람과 씨름할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도깨비는 남성임을 알 수 있다.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하도록 만든 것은 우리 민족이다. 특히 하층민들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놀아졌다는 점에서 도깨비가 하층민들에게 매우 주목받아왔던 존재임을 엿볼 수 있다. 도깨비와 씨름은 연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듯이 보이지만, 도깨비를 믿고 도깨비를 자신의 이웃처럼 생각했던 하층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즉 하층민들이 선호하던 놀이를 도깨비에게 대입시켜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동등하게 만들어 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여성을 좋아한다는 점과 함께 남성들의 보편심리를 도깨비에게 반영하였음을 알게 한다

도깨비는 호색성을 갖고 있다. 즉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감놀이에서 심방이 구연하는 영감본풀이에서도 도채비를 만고의 오입장이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자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병에 걸리도록 만든다고 한다. 현용준교수가 쓴 <영감본풀이와 영감놀이>에서도 도깨비의 특징 중 하나로 호색성을 들고 있다.

本풀이에서 具體的으로 敍述된 것은 성판악(城板岳)에 물 맞으러 간 女人에게 “같이 살자. 마음씨 좋다.” 하며 따라붙어 病을 준다는 程度이나, ‘오소리 잡놈' 또는 ‘오입쟁이'라고 直接 表現하고 있다. ‘오소리잡놈'이니 ‘오입쟁이'라고 이 神을 놓고 일컫는 것은 그 好色性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개의 영감본풀이에서 도채비를 오입쟁이로 표현하고 있다는 지적은 도깨비를 만나 부자되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깨비의 특징 중 하나로 삼을 만하다. 도깨비 때문에 부자된 이야기 중에서 도깨비가 주로 찾는 여인은 과부이다. 과부는 성적인 충족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도깨비의 등장은 성적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부가 음이라면 도깨비는 남성으로 양을 뜻하기 때문에 음양의 결합을 말한다. 이러한 음양의 충족과정은 도깨비인 양이 강하기 때문에 음인 과부의 몸이 허약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부의 몸이 허약해진다는 것은 도깨비의 양기가 왕성하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도깨비 때문에 부자되기>의 이야기 중에서 여자를 상대로 택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도깨비의 호색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깨비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도깨비의 성이 남성임을 말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처녀도깨비 ? 아기도깨비 등으로 말하는데, 사실 이런 표현은 가능하지 않다. 처녀도깨비는 ‘처녀(여) + 도깨비(남)'가 합쳐진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남녀가 합쳐진 몸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인데, 신이나 사람이 남녀로 합쳐진 몸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도깨비는 남성이며, 그러한 남성적인 속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호색성이라고 하겠다. 만약 도깨비가 남성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호모, 즉 동성연애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깨비를 통해서 그런 면모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도깨비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남녀간의 결합을 통한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자연적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도깨비를 이해하여 왔다는 사실과도 무관할 수 없는 대목이다.

도깨비는 일상적인 삶에서 구해지는 음식 중에서도 메밀과 술을 좋아하며, 고기로는 개고기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도깨비를 위한 고사의 제물로 사용되는 음식이 메밀묵과 돼지머리, 그리고 술이라는 점에서 이들 음식의 선호도를 잘 알 수 있다. 도깨비와 씨름하는 이야기에서는 돼지고기가 싸움의 원인이 된다. 주인공이 장에 갔다가 돼지고기를 샀는데, 집에 오는 도중에 싸움을 벌이는 것도 돼지고기를 달라고 하는 도깨비의 제안 때문이다. 처음에 주인공은 돼지고기를 달라고 하는 도깨비의 부탁을 거절한다. 도깨비는 씨름을 해서 이기는 사람이 돼지고기를 차지하자고 제안을 하고, 이를 사람이 받아들여서 씨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씨름을 해서 지는 쪽은 도깨비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얻지 못한다. 도깨비 때문에 부자되기에서는 개고기를 도깨비에게 제공하면서 친구관계를 맺고 부자가 된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는데, 패랭이를 쓴 어떤 사람이 다리 밑에서 나오면서 개고기를 사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사람은 쾌히 승낙을 하여 개고기를 사다주게 되며, 이 결과 그는 도깨비와 친구관계를 맺고 부자가 된다. 메밀은 도깨비고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제물의 하나다. 도깨비와 관련한 뱃고사나 도깨비고사, 그리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도깨비제 등에서 메밀은 제사상에 꼭 오른다. 어촌지방에서 행해지는 풍어기원고사에서는 메밀로 묵이나 범벅을 만들어 올린다. 화재신으로의 도깨비제를 지내는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구암리에서는 메밀로 팥시루를 만들어 올린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메밀냉면이나 메밀국수 등을 먹음으로서 잘 알려진 메밀은 그러나 하층민들에게는 주식이었다는 점에서 냉면이나 국수로 해먹은 것은 아니다. 메밀을 가루로 빻아 냉면이나 국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것은 민중들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가진 자들, 즉 상류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메밀은 일상적인 주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작물은 구황식물로서 기근이나 흉년이 오래될 경우 많이 심는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메밀은 중국의 한나라 때 작물로 널리 재배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중후기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상적인 주식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도깨비에 대한 신앙이 민중들에 의해서 주도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메밀이 제물로 정착하게 된 시대를 본다면 도깨비신앙의 출발기는 대략 신라시대로 올라갈 수 있다.

-김종대의 "도깨비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