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여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박찬수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만 보더라도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이한동 고건 이해찬 정운찬 등 부지기수다. 그러나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이는 없다. 왜 총리 출신 인사들은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걸까.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2022년 대선을 향한 본격적 정치행보의 시작이다. 여론조사에선 야권 대선 주자 가운데 압도적 1위를 달린다. 여권에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지율 1위에 올라섰다. 여당에선 현직 총리, 야당에선 전직 총리가 떠오르는 흥미로운 양상이다. 총리 출신이 유력 대통령 후보로 각광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만 보더라도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이한동 고건 이해찬 정운찬 등 부지기수다. 그러나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이는 없다. 해방 이후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 오른 이는 최규하씨가 유일하다. 최씨는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뒤 8개월 남짓 그 자리를 승계했다. 정상적인 청와대 입성이라 보기 힘들다. 왜 총리 출신 인사들은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걸까. 지금은 달라졌지만, 과거엔 국무총리를 ‘방탄 총리’ ‘얼굴마담 총리’라 부르곤 했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하면 국무총리를 갈아치움으로써 국면 전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국회 청문회 통과를 걱정해야 하는 요즘엔 대통령이 총리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2014년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후임 총리 지명자가 잇따라 낙마하는 바람에 10개월 가까이 더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런 흐름이 총리 위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권위주의 시절엔 총리가 대통령의 ‘정치적 방패막이’ 구실을 했지만, 이젠 모든 정치적 책임이 대통령을 향하고 총리는 오히려 한발 비켜서는 정반대의 형국이 되어버렸다. 권력 2인자인데 정치 공방에선 자유로운 상황, 국무총리의 높은 지지율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위상이 달라졌어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대통령은 내각을 잘 관리하고 자신을 보완해줄 안정감 있는 인사를 대개 총리로 고른다. 대중적 카리스마와 정치력은 총리 발탁의 핵심 요소가 아니다. 물론, 총리를 지내면 장관이나 국회의원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 자리가 만들어준 것일 뿐이다. 총리의 영향력을 개인의 정치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착각이다. 전·현직 총리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력을 쌓은 정치인은 청와대로 가는 험로를 ‘자기 사람들’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지만, 총리라는 배경에 끌린 이들로 구성된 캠프는 고난을 견디는 데 취약하다. 지지율 등락에 쉽게 무너져버린다. 과거 국무총리 출신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대부분 중도 포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이끌 정치적 비전과 이상을 지녀야 하는데, 국무총리에겐 이걸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뽑은 총리는 현직 대통령의 지향과 정책기조를 그대로 따라갈 순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자신만의 비전을 내놓기란 매우 어렵다. 아마도 유일한 예외가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씨일 것이다. 이회창 전 총리는 계파 정치, 측근 비리와 단절한 ‘깨끗한 정치'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국민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들어와선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민주계(김영삼계)보다 훨씬 구태에 찌든 티케이(TK) 민정계와 손을 잡았기에 대통령 도전에 실패했다.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현직 대통령과 틀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국무총리 출신이 청와대에 다가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가기란 백척 절벽 끝에 달린 촉나라 잔도를 걷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황교안 전 총리는 입당 기자회견에서 국정을 결딴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에 뚜렷한 대선 후보가 눈에 띄지 않고 박근혜 지지세력이 작지만 단단한 현실이 황 전 총리에겐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현 정부의 안정적 2인자인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문재인 대통령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총리 출신 인사들은 ‘통합’ ‘안정’ ‘새로운 정치’와 같은 두루뭉술하고 무색무취한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 능력을 퇴임 뒤에 정치에 뛰어들어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실 환상에 가깝다. 우리 정치에 ‘총리 거품’이 너무 많이 낀 거 같다. 논설위원실장
국무총리(國務總理)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한민국의 행정을 통괄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헌법 제86조 제2항에 따라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통괄·관할)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 시 권한대행자로서의 지위,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의 지위,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로서는 각부장관보다 상위의 지위로서, 행정각부의 장을 지휘 감독하나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로서는 행정각부의 장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A] 등과 함께 아울러 5부요인이라 한다. 관련 헌법 조항[편집]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편집]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유고 및 사고시 대통령의 직무를 임시적으로 이어받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지휘할 수 있으며 국무위원을 통솔한다. 또한,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국무를 조정하고 통할한다. 만일 국무총리가 유고시에는 국가 정부조직 법률상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시적으로, 차기 국무총리가 정식으로 임명될때까지 총리직을 대행한다. 역대 국무총리[편집]제1공화국[편집]원래 제헌 헌법 초안에서는 정부를 내각책임제로 운영하고자 명목상의 대통령과 실권을 가진 총리직을 두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에 반대하여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고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여 부통령을 신설하였으나, 총리제는 그대로 두어 대통령, 부통령, 국무총리가 모두 존재하였다. 총리직은 이후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때 일시적으로 폐지되고 외무부 장관이 겸임하는 수석국무위원이라는 직책이 총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승만은 총리직이 궐위되었을 때 후임자를 바로 지명하는 대신 총리 서리를 임명하여 정식 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 그 직을 수행토록 했는데, 법에는 국무총리가 신병 등의 이유로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대통령이 국무위원 중 한 사람을 총리 직무 대리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있을 뿐, 총리 궐위 시 총리 서리를 임명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었으므로 총리 서리 임명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2][3]신성모는 이범석이 총선을 얼마 안 남기고 사임하자 차기 총리 취임 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기 위해 서리로 임명되었으며 허정과 백한성은 각각 장면과 변영태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총리직을 대리하기 위해 서리로 임명되었다.
제2공화국[편집]제3차 개헌을 통하여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전환한 후 부통령직을 폐지하고 국무총리직을 다시 부활시켰다. 장도영, 송요찬, 박정희, 김현철 등을 비롯한 이들은 장면 내각을 5·16 군사정변으로 붕괴시킨 뒤 군사 정부 시절 역대 내각수석 장관 등을 지낸 이들이었다. 허정은 장관(외무부)을 지냄과 동시에 내각수석 장관 직과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겸한 최초의 인사이다. 다만 장도영, 송요찬, 박정희, 김현철 등의 내각수반 직과 달리 허정의 내각수석 장관 직은 말 그대로 내각의 수석 장관이라는 뜻의 관습적인 표현이었을 뿐 법률상의 직함은 아니었고, 허정이 당시 갖고 있던 직함은 '수석국무위원 겸 외무부장관'이었다.
제3공화국[편집]제3공화국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중심제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 총리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의 방패막이 되어주어 방탄 총리, 대독 총리와 같은 오명을 받게 된다. 박정희 정부
제4공화국[편집]최규하 제12대 국무총리는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행사했으며 박충훈은 국무총리 서리로서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최규하는 헌정 사상 최초의 강원도 출신 국무총리이자 국무총리 출신의 대통령이다.
제5공화국[편집]김상협 제16대 국무총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호남 출신의 국무총리이며, 신병현 경제부총리는 진의종 제17대 국무총리가 재임 중 뇌일혈로 쓰러져 총리 대행을 맡은 최초의 부총리이다.
제6공화국[편집]노태우 정부[편집]
김영삼 정부[편집]
김대중 정부[편집]장상은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국무총리에 지명되었으나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서리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편집]고건 제35대 국무총리는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이 탄핵시도로 인해 대통령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2개월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였다. 한명숙 제37대 총리는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이다.
이명박 정부[편집]제41대 김황식 국무총리는 최초의 전라남도 출신 국무총리이다.
박근혜 정부[편집]제43대 이완구 총리는 허정 총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단 재임 총리(70일)에 올랐지만, 허정이 제6대 총리 취임 전 50여 일간 수석국무위원직을 수행한 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짧게 재임한 총리다. 제44대 황교안 국무총리는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편집]제45대 이낙연 총리(958일)는 1988년 6공화국 출범이후 이명박 정부에 재직했던 제41대 김황식 총리(880일)에 이어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가 됐다. 제46대 정세균 총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취임한 국무총리다.
윤석열 정부[편집]
역대 임명동의안 국회 표결 결과[편집]
기록[편집]두 번 재직했던 총리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내용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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