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종교 는 어디 - s jong-gyo neun eodi

목회데이터연구소, 최근 3천명 대상 설문 조사
지금 자녀 수 불교 1위지만, 계획자녀 수는 가장 적어
자녀 수+계획자녀 수 합치면 1위는 개신교로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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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목회데이타연구소 제공

우리나라 주요 종교별 신자들의 출산율을 조사한 결과 현재 자녀 수가 가장 많은 종교는 불교가 1.49명으로 가장 많았고, 개신교가 1.4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28일 목회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시티에스기독교텔레비전이 (주)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전국 만 20세에서 49세 사이 남녀 3천명(종교인 2천명+무종교인 1천명)을 온라인 조사한 결과에서 이렇게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현재 자녀 수는 불교가 가장 많았지만 향후 계획하고 있는 자녀 수는 불교가 0.25명으로 3개 종교 가운데 가장 적었다. 반면 계획자녀 수는 가톨릭이 0.38명, 개신교가 0.37명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현재 자녀 수와 계획 자녀 수를 합하면 개신교인이 1.79명으로 가장 많고, 이상적인 자녀 수 역시 개신교가 2.03명으로 가장 많았다.

미혼자들에게 향후 몇 명의 자녀를 갖고 싶은지를 질문한 결과 개신교가 1.57명으로 가장 많았고, 불교 1.49명, 종교없음 1.43명, 가톨릭 1.38명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종교에서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개신교인이 65%로 가장 많았고, 가톨릭 41%, 불교 17% 순으로 조사됐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측은 “현 자녀 수와 계획자녀 수 모두 개신교 가장 많았다”며 “개신교인들이 자녀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는 이유는 개신교가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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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Dr. Zakir Abdul Karim Naik

번역: 후세인 크르데미리

교정:  카람 김은수

주요 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머리말

우리 문명의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무수히 많은 종교와 윤리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항상 창조의 이유와, 사물들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아놀드 토인비는 각 시대의 인류 역사를 연구하였고, 열 권으로 된 그의 명작을 통해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담았다. 그는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종교가 중심에 서 있다고 요약했다. 1954년 10월 24일의 ‘The Observer’지에 실린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종교가 존재의 신비에 대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다시 믿게 되었다; ”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종교는 “통제력을 지닌 초인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며, 구체적으로는 복종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의인화된 신 혹은 신들을 믿는 것”이다.

보편적인 신 또는 전지전능하고 신성한 최고 권위자에 대한 믿음은 모든 주요 종교의 공통 분모다. 주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믿음은, 그들이 숭배하는 신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신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 프로이트설과 그 외의 비종교적 믿음들은 조직화된 종교의 뿌리를 공격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믿음의 체계들로 발전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 보급되었을 때 그것은 –설교와 선전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가 그러하듯이 – 희망의 약속과 열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러므로 종교란 인간 존재의 필수 불가결한 구성 요소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오 성서의 사람들이여! 우리와 너희들 모두에게 공평한 다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 :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숭배하지 않고 그분께 대등한 존재를 두지 않으며 하나님이 아닌, 우리 중의 누군가를 주님으로 삼지 않겠노라.’ 그 후에도 그들이 돌아선다면 그대들(무슬림들)은 이렇게 말하라 : ‘너희들은 우리가 무슬림임을 증언하시오’

다양한 종교에 대한 연구는 필자에게 아주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든 영혼에게 그분의 존재에 대한 지식을 부여하셨다는 믿음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인간의 심리적 체질은 창조주의 존재를 받아들이도록 구성되어 있지만 특정 조건이 있을 때는 예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어떠한 조건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반드시 어떤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세계 주요 종교의 범주:

세계의 종교는 넓게 셈족 종교와 비셈족 종교로 분류될 수 있다. 비셈족 종교는 아리아족 종교와 비아리아족 종교로 나누어진다.

셈족 종교

셈족 종교는 셈족들로부터 유래한 종교다. 성경에 의하면 사도 노아에게 쉠(Shem)이라 불리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쉠의 자손들이 셈족이라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셈족 종교는 유대인들, 아랍인들, 시리아인들, 페니키아인들 등으로부터 유래한 종교다. 셈족의 대표 종교로는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등이 있다. 이 종교는 모두 하나님의 사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인도(引導)를 믿는 종교다.

비 셈족 종교

비 셈족 종교는 아리아족 종교와 비아리아족 종교로 구분된다:

아리아족 종교

아리아족 종교는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까지 이란과 인도 북부에 퍼져 있던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강력한 그룹인 아리아족으로부터 유래한 종교다.

아리아족 종교는 베다족 종교와 비 베다족 종교로 구분된다. 베다족 종교는 힌두교 또는 브라만교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 베다족 종교로는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이 있다. 거의 모든 아리아족 종교는 비 사도(使徒)의 종교다.

조로아스터교는 아리아족의 비 베다족 종교로 힌두교와는 관련이 없다. 이 종교는 자신이 사도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비 아리아족 종교

비 아리아족 종교는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이 기원이지만 신도는 일본이 그 기원이다. 이러한 많은 비아리아족 종교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다. 비 아리아족 종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오히려 윤리 체계로 불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종교적 정의

한 종교에 의해 신봉되는 하나님의 개념은 그 종교의 추종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판단될 수 없다. 많은 종교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경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개념을 모른다는 것은 대단히 흔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분석하고자 할 때는 그 종교의 경전을 참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제 우리는 세계 주요 종교의 성서를 통해, 그 종교가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힌두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아리아족 종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는 힌두교이다. ‘힌두’란 페르시아어로 인더스 계곡 너머에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보통 힌두라고 하면 종교적인 믿음을 분류하는 총괄적인 용어이며 힌두교의 믿음은 ‘베다’나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경전에 기초를 두고 있다.

힌두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힌두교는 흔히 다신교로 인식되고 있다. 실로 대부분의 힌두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에 동의하는데, 그들은 다수의 신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3신 체계를 믿는 힌두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힌두교인들은 사실상 3억 3천만의 신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러나, 힌두교 경전에 능통한 힌두교인들은 오직 하나의 신만을 믿고 숭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힌두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주요한 차이점은, 힌두교인들이 흔히 믿고 있는 범신론에 기인한다. 범신론은 산 것이건 죽은 것이건 모든 것이 성스럽고 신성하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힌두교인들은 나무, 태양, 달, 동물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들도 신의 화신(化身)이라고 간주한다. 보통의 힌두교인에게는 모든 것이 신인 것이다.

이슬람은 가르치는 바는 그와는 정반대로, 자신 및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신성한 창조자의 예증이며, 그것 자체로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무슬림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다. 나무, 태양, 달 그리고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힌두교인과 무슬림의 믿음간의 주요한 차이는 아포스트로피s (‘s)가 God에 붙느냐 안 붙느냐의 차이이다. 즉, 힌두교인들은 모든 것이 신(God)이라고 믿는 반면, 무슬림은 모든 것이 신의 것(God’s)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우리(무슬림)와 너희들 모두에게 공평한 다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공평한 말씀의 가장 첫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숭배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성서를 분석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공통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바가바드기타’(Bhagawad Geeta)

 힌두교의 경전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가바드 기타’이다. ‘기타’에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물질적인 욕구로 말미암아 지성을 도난당한 자들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인 것들에게 굴복하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숭배의 특별한 규칙들과 규제들을 따르니라.” (‘바가바드기타’ 제7장 20절)

‘기타’는 물질적인 사람들 그리하여 진정한 신 이외에 반신반인인 것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파니샤드(Upanishads)

우파니샤드 또한 힌두교의 경전이다. 우파니샤드의 다음 구절을 보자:

           i.         “Ekam evaditiyam”

 “그 분은 둘도 아닌 오직 한 분이시다.” (6:2:1)

          ii.         “Na casya kasuj janita na cadhipah”

“ 그분께는 부모도 주인도 없느니라.”(6:9)

        iii.         “Na tasya pratima asti”

“그분과 유사한 것은 존재하지 않노라.”(4: 19)

“Nainam urdhvam na tiryancam na madhye na parijagrabhat na tasy pratime astiyasya nama mahad yasah.”

“그 이름이 영광스러운 그분과 유사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노라.”

 위 구절들을 하나님의 성서 꾸란의 다음 구절들과 비교해 보라.

“그분과 비슷한 것은 단 하나도 없노라.” (꾸란 112:4)

“그분과 비슷한 것은 없노라.” (꾸란 42:11)

        iv.         “Na samdrse tisthati rupam asya, na caksusa pasyati kas canaiam. Hrda hrdistham manasa ya enam, evam vidur amrtas te bhavanti.”

“그분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눈으로 그분을 볼 수 없다. 마음과 정신을 통해 그분이 마음 속에 머물고 계심을 아는 자들은 불멸의 상태에 이르노라.”(4: 20)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떠한 시각도 그분을 인지할 수 없으나 그분께서는 모든 시각을 인지하시노라. 그리고 그분은 세밀히 알고 계신 분이며 모든 것에 밝으신 분이시라.”(꾸란 6:103)

베다(The Vedas)

베다는 힌두교의 경전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주요 베다로는 4권이 있는데, Rig Ved, Yajur Ved, Sam Ved, 그리고 Atharva ved이다.

           i.         Yajur Ved의 다음의 구절을 보자.

“Na tasya pratima asti”

“그분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32:3)

또 나아가 말하기를 “그 분은 태어나지 않으셨으니 우리의 숭배를 받으실 만하다.” “그 영광이 진실로 위대한 그분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은 태양처럼, 빛나는 모든 물체를 주관하신다. 그분께서 저를 해치지 않으시길. 이것이 나의 기도이다. 그 분은 태어나지 않으셨으니 우리의 숭배를 받으실 만하다.”

(Devi Chand의 Yajurveda p.377)

          ii.         “그 분은 몸이 없으시고 순수하시다.” (Yajurved의 40:8)

         iii.         “Andhatama pravishanti ye asambhuti mupaste”

“공기, 물, 불 등처럼 자연의 것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암흑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Sambhuti 즉 식탁, 의자, 우상 등처럼 창조된 것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더 깊은 암흑 속에 빠진다.”(40:9)

         iv.         “우리를 좋은 길을 인도해 주시고, 헤매고 방황하는 원인이 되는 죄를 없애주소서.”(40: 16)

 “Dev maha osi”

“신은 진실로 위대하시다.”

이와 비슷한 절이 꾸란에 언급되길:

 “그 분은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이라.” (꾸란 13:9)

           i.         베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Rig veda이다. 그것은 또한 힌두교인들에 의해 가장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Rig ved는 “성인들은 하나의 신을 많은 이름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Rigveda 1:164:46)

          ii.         Rig veda는 전지전능하신 신에게 33개나 되는 다른 속성들을 부여하고 있다. Rig veda에 언급된 다양한 속성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는 ‘Brahma’(브라마)인데 이는 ‘창조주’라는 뜻이다. 이것을 아랍어로 옮기면 ‘Khaliq’(칼리끄) 된다. 무슬림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칼리끄’ 또는 ‘창조주’ 또는 ‘브라마’라고 언급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브라마’가 네 개의 머리를 가진 전지전능하신 신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분명 동의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은 그것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람의 모습을 닮은 용어들로 묘사하는 것은 Yajur veda의 다음의 절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Na tasya pratima asti(그 분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Yajur ved 32:3)

Rig veda에 언급된 또 다른 아름다운 속성은 ‘Vishnu’(비슈누)인데 이는 ‘부양자(sustainer)’라는 뜻이다. 이를 아랍어로 번역하면 ‘Rabb’(랍브)가 된다. 무슬림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랍브’ 또는, ‘부양자’ 또는 ‘비슈누’라고 언급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비슈누’는 네 개의 팔을 가진 신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어떠한 형상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또한 앞서 언급된 Yajurveda의 40장 19절에 위배되기도 한다.

        iii.         “Ma chidanyadvi shansata”

“오 친구들이여, 신성하신 오직 한 분이신 그분 외의 어느 것도 숭배하지 말라.”(Rigveda 8:1:1)

         iv.         “현명한 요가 수행자들은 그들의 정신을 집중하며, 또한 어디에나 존재하시고 위대하시며 전지하신 최고의 실제자에 대해서도 그들의 생각을 집중한다.”(5:81)

“Ekam Brahm, dvitiya naste neh na neste kinchan.”

“오직 한 분이신 신만이 존재할 뿐 두 번째 신은 절대로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경전에 대한 냉정한 연구만이 힌두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시크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시크교는 비셈족, 아리아족, 비베다족 종교이다. 시크교가 세계 주요 종교는 아니지만 힌두교의 한 분파로서, 15세기 말에 Guru Nanak에 의해 창시되었다. 시크교는 파키스탄 지역과, 5개의 강의 땅이라는 의미의 Punjab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북서부에서 유래되었다. Guru Nanak는 Kshatriya의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이슬람과 무슬림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았다.

시크와 시크교의 정의

 ‘시크’란 말은 ‘Sisya’로부터 나왔는데 문하생 또는 추종자라는 뜻이다. 시크교는 시크교의 교도사인 10명의 Guru가 있는 종교인데, 최초의 Guru는 Guru Nanak 이고 열 번째의 마지막 Guru는 Gobind singh이다. 시크교의 경전은 Sri Guru Granth인데 Adi Granth Sahib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다섯 개의 K들

 모든 시크교도는 다섯개의 K들을 지녀야만 하는데 이는 시크교도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①     Kesh: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

②     Kangha: 빗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사용됨)

③     Kada: 금속이나 강철 팔찌 (힘과 자제를 위하여)

④     Kirpan: 자기 방어를 위한 단검

⑤     Kaccha: 민첩함을 위한 특별한 무릎 길이의 속옷

Mulmantra : 시크교의 기본 신조

시크교의 신의 개념은 “Mul Mantra”에 인용되어 있는데 이것은 시크교의 기본 신조로 Guru Granth Sahib의 시작 부분에 나타난다.

 그 첫 절은 “오로지 한 분이신 신만이 존재하며 그 분은 진정한 창조주라 불리며 두려움과 증오가 없으시고, 불멸이시며, 낳아지지도 않는 분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라.”이다.

시크교는 엄격한 일신론을 신봉한다. 시크교는 오직 한 분이신 최고의 신을 믿는데, 그 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인 ‘ek omkara’라 불린다. 명백한 형태로서의 그 분은 Omkara라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다.

◎ Kartar: 창조주

◎ Sahib: 주님

◎ Akal: 영원하신 분

◎ Sattanama: 성스러운 이름

◎ Parvardigar: 부양자

◎ Rahim: 자비로우신 분

◎ Karim: 은혜로우신 분

 그 분은 오직 한 분이신 진정한 신이라는 뜻으로 ‘Wahe Guru’라 불리우기도 한다.

시크교는 엄격한 일신론을 신봉할 뿐만 아니라, Avataravada(성육신의 이론)를 믿지 않는다. 전지전능하신 신은 Avataravada라고 알려져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신다. 시크교는 우상 숭배를 강하게 반대한다.

Kabir에 의해 영향을 받은 Guru Nanak

 Guru Nanak은 Sant kabir의 말에 너무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Shri Guru Nanak Sahib의 여러 장에는 Sant kabir의 시(詩)가 실려 있을 정도이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면

 “Dukh mein Sumirana Sabh karein Sukh mein karein na koya Jo such mein sumirana karein To dukh kaye hoye”

(곤경에 처해서는 누구나 신을 기억하지만 평화스러울 때와 행복한 때에는 누구도 신을 기억하지 않는다. 평화스러울 때와 행복한 때에 신을 기억하는 자가 곤경에 처할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성서 꾸란의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인간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는 그의 주님을 부르며 그분께 참회하더라. 그 후 하나님이 그에게 그분의 은총을 부여할 때면 그는 이전에 그분을 부르던 이유를 잊고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니 그와 다른 이들은 그분의 길로부터 방황하더라.”(39:8)

 조로아스터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조로아스터교는 고대의 아리아족 종교로 2,500년 이전에 페르시아에서 유래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전 세계에 걸쳐 삼십만이 조금 덜 되는 신봉자를 지닌 가장 오래된 종교 중의 하나이다. 이란 출신의 ‘조로아스터’라는 사람이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은 Dasatir 와 Avesta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은 ‘Ahura Mazda’로 알려져 있다. ‘Ahura’란 ‘주님’이라는 뜻이고 ‘ Mazda’는 ‘현명한 자’라는 뜻이므로, ‘Ahura Mazda’는 ‘현명한 주님’ 또는 ‘현명한 신’이라는 뜻이다. Ahura Mazda라는 명칭은 엄격한 일신론을 상징한다.

Dasatir에 의한 신의 속성:

Dasatir에 의하면, Ahura Mazda는 다음의 속성들을 갖는다.

①     그 분은 한 분이시다.

②     그 무엇도 그 분을 닮을 수 없다.

③     그 분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

④     그 분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내도 아들도 없다.

⑤     몸이나 어떤 형체를 갖지 않으신다.

⑥     눈으로 그 분을 볼 수 없고, 어떤 생각의 힘으로도 그 분을 품을 수 없다.

⑦     그 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위에 계시다.

⑧     그 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다.

Avesta에 의한 신의 속성

Avesta에 의하면, The Gathas와 The Yasna는 Ahura Mazda에게 다음과 같은 특징을 부여한다.

①     창조주

②     가장 위대하신 자

③     자비로우신 분

④     관대하신 분

 유대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유대교는 셈족의 주요 종교 중 하나이다. 유대교의 추종자들은 유대인이라고 알려져 있고 그들은 사도 모세의 사도직을 믿는다.

①     신명기의 다음의 절은 모세의 경고를 싣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다.”(성경 신명기장, 6:4)

②    “나, 내가 곧 주님이다. 나 아닌 다른 구세주는 없다. ”(성경 이사야장, 43: 11)

③    “내가 주님이다. 누가 또 있느냐?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성경 이사야장, 45:5)

④    “내가 신이다. 나 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이다. 나와 같은 자 또 어디 있느냐?”(성경 이사야장, 46:9)

⑤     유대교는 다음의 절들 속에서 우상 숭배를 경멸한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여 섬기지 못한다. 너희의 주님인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성경 출애굽기장, 20: 3-5)

⑥    “너희는 내 앞에서 감히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습을 본떠 새긴 우상을 모시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너희의 주님인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성경 신명기장 5: 7-9)

 기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기독교는 셈족의 종교로 전 세계에 걸쳐 거의 이십억의 신봉자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라는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예수는 또한 이슬람에서도 존경 받는 인물이다.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 대한 믿음을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비기독교 신앙이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논하기에 앞서 이슬람에서의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위치를 먼저 검토해보자:

①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를 믿는 것을 신앙의 한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비기독교 신앙이다.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사도직을 믿지 않는 자는 무슬림이 될 수 없다.

②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가장 출중한 하나님의 사도들 중의 하나였다고 믿는다.

③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아버지 없이 기적적으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반면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

④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하나님의 허락으로 죽은 자들을 살렸다고 믿는다.

⑤     이슬람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하나님의 허락으로 눈이 먼 자들과 나병 환자들을 고쳤다고 믿는다.

혹자는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이 모두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그들이 어디서부터 갈라서는지 물을 수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주요한 차이점은 기독교인들이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신성을 주장하는 데에 있다. 기독교의 성서들을 연구해보면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스스로 자신의 신성을 주장한 적이 결코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성경의 어디에서도 명백하게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나는 하나님이다” 또는 “나를 숭배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사실상 성경에는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오히려 정 반대의 내용을 설교한 언급들이 실려 있을 뿐이다. 성경의 다음 구절들을 보자:

“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더 위대하시다”(요한 14:28)

“나의 아버지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다”(요한 10: 29)

“…나는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마태오 12: 28)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누가 11: 20)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르다.”(요한 5:30)

예수 그리스도(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사명 - 율법을 완성하기 위함: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는 스스로 신성을 주장한 적이 결코 없다. 그는 자신의 사명의 성격을 분명히 밝혔다.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는 이전의 유대법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파견되셨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의 다음의 구절들 속에 분명히 나타난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5:17-20)

하나님께서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를 파견하셨다:

 성경은 다음의 구절들을 통해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사도직을 언급한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 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24)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는 자신의 신성을 한 번도 암시한 적이 없다. 성경에 언급된 다음의 사건을 살펴보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와서 “선하신 주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왜 너는 나를 선이라 부르는가?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대답하셨다.(마태 5:17-20)

위의 언급들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신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독단과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희생을 통한 구원론을 반박하고 있다.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는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첫번째 계명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성경은 삼위일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모든 것 중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그저 모세(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이미 말했던 것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마가 12: 20)

 이슬람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념:

이슬람은 셈족 종교로 전 세계에 걸쳐 12억 이상의 신자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을 사도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이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걸쳐 사도와 예언자를 보내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내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요한, 예수(그들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등의 초기 사도들과 다른 사도들에 대한 믿음을 신앙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간결한 정의:

이슬람에 있어서의 하나님에 대한 가장 간결한 정의는 하나님의 성서 꾸란 112장(이클라쓰)의 4절 속에 내려져 있다:

1.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단 한 분이시라.’

2. ‘모든 필요를 초월하시는(as-Samad) 하나님.’

3. ‘그분은 낳지도 않으시고 낳아지지도 않으셨으며’

4. ‘그분과 비슷한 것은 단 하나도 없노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112 :1-4)

 ‘as-Samad’라는 말은 번역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절대적 존재’라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에게만 통할 수 있는 말이며, 다른 모든 존재들은 유한하며 잠정적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하지 아니하시지만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은 그분께 의존한다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이클라쓰 장 - 신학의 시금석: 

 하나님의 성서 꾸란의 제 112장인 이클라쓰 장(Surah al-Iklas)은 신학(Theology)의 시금석이다. ‘Theo’는 그리스어로 ‘하나님’을 뜻하고 ‘logy’는 ‘연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Theology’는 ‘하나님에 대한 연구’라는 뜻이며 여기에 실린 4절의 정의는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연구의 시금석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신성을 주장하는 존재는 반드시 이 ‘시금석’을 통해 그 주장의 정당성을 시험 받아야 한다. 이 장에 실린 하나님의 속성은 독보적인 것이기에, 거짓 신들과 신성을 주장하는 모든 존재들은 이 절들을 사용하여 그들의 진실성 여부를 쉽게 판명할 수 있다.

이슬람은 ‘신인(神人)’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인도는 흔히 신인의 나라로 불린다. 이는 인도에는 소위 ‘정신적 스승’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 어떤 인간에 대한 신격화도 거부한다. 그러한 거짓 신들에 대한 이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Osho Rajneesh라는 신인을 분석해 보자. 그는 인도가 낳은 무수히 많은 ‘정신적 스승들’ 중의 하나였다. 1981년 5월 그는 미국으로 가 ‘Rajneesh puram’이라는 마을을 설립했다. 그는 후에 미국 서부 지역의 사람들과 소송이 붙어 마침내는 체포되어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인도로 돌아와 Pune에 공동 생활체를 설립했는데 이 곳은 오늘날 ‘Osho’ 공동 생활체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0년에 사망했다. Osho Rajneesh의 추종자들은 그가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믿고 있다. ‘Osho’ 공동 생활체를 찾는 방문객은 그의 무덤의 비명에 새겨진 다음의 구절을 볼 수 있다.

 “Osho-결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분이시며, 1931년 12월 11일부터 1990년 1월 19일까지 지구를 방문하셨을 따름이라.”

 그들은 그가 세계의 21개국에서 비자를 받지 못했음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Rajneesh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신이 지구를 방문하여 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비자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신학의 시금석인 이클라쓰 장을 사용하여 Rajneesh가 주장하는 신성을 시험해보자:

           i.         첫째 기준은 “말하라, 그 분은 하나님이시며, 한 분이시라.”라는 것이다. Rajneesh가 오직 한 분 뿐인가? 아니다! 신성을 주장하는 Rajneesh와 같은 사람들은 많다. Rajneesh의 일부 사도들은 아직도 Rajneesh가 오직 한 분 뿐이라고 믿고 있다.

          ii.         둘째 기준은, “모든 필요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이다. Rajneesh는 1990년에 사망했기에 분명히 절대자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는 그의 전기로부터 그가 당뇨병, 천식, 그리고 만성두통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미국 정부가 그에게 독약을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독살당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Rajneesh는 절대자이지도 않았고 영원하지도 않았다.

         iii.         셋째 기준은, “그 분은 낳지도 않으시고, 낳아지지도 않으셨다.”이다. 우리는 Rajneesh가 인도의 Jabalpur에서 태어났고, 후에 그의 제자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iv.         가장 엄격한 넷째 기준은 “ 그 분과 비슷한 것은 단 하나도 없노라.”이다. 신성을 주장하는 그를 통해 우리가 신을 볼 수 있거나 또는 신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주장하는 신성은 참된 것이 아니다.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Rajneesh가 밑으로 처진 하얀색 턱수염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는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하나의 코,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었다. Rajneesh의 사진들과 포스터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존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다.

무슬림은 어떤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는가?

무슬림은 영어의 낱말인 ‘God’(신) 대신 ‘Allah’(하나님)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영어의 낱말인 ‘God’은 갖고 놀 수 있는 반면, 아랍어의 낱말인 ‘Allah’는 순수하며 독특하다.

‘God’에다가 ‘s’를 덧붙이면 ‘God’의 복수인 ‘Gods’가 된다. ‘Allah’는 유일하신 한 분이기에 ‘Allah’의 복수형은 없다. 남성 Allah 라거나 여성 Allah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Allah는 성(性)을 가지지 않는다. ‘God’의 앞에다 접두사 ‘tin’을 붙이면 그것은 ‘tin-God’ 즉 거짓신이 된다. Allah는 독특한 낱말로 마음 속에 그려볼 수도 없고 그것을 가지고 놀 수도 없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Allah’라고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비무슬림들과 말할 때에는 ‘Allah’ 대신 어쩔 수 없이 부적절한 낱말인 ‘God’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데 왜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없냐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인간이 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특질과 인간의 특질은 많은 점에서 절대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의 글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생각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불멸이요, 인간은 필멸이다. 우리는 신인(神人), 즉 불멸의 인간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시나 인간은 시작이 있다. 하나님은 끝이 없으시나 인간은 끝이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먹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나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 그리고 그분은 양식을 제공하시며, 양식을 필요로 하시지 않노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6:14)

하나님은 휴식이나 수면이 필요 없으시나 인간은 휴식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살아계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졸음도 잠도 그분에게 다가가지 못하노라. 하늘들에 있는 모든 것과 대지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2: 255)

우리와 같은 다른 인간을 숭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또한, 또 다른 인간을 숭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면, 그 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며 인간의 모든 열등한 특징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만일 대단히 박식한 한 교수가 사고를 만나 돌이킬 수 없는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의 학생들은 더 이상 그 교수에게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

나아가,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면, 그 인간은 후에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로 혐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서 꾸란에서 모든 형태의 의인화된 신(神)을 부정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분과 비슷한 것은 없노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42:11)

하나님께서는 신(神)답지 않은 행동들을 하지 않으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그 어떤 악도 배제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의, 자비, 그리고 진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신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며, 부당하며, 실수를 범하며, 망각하며, 인간의 모든 과오를 범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부정을 범할 수 있으나, 부당하다는 것은 신답지 않은 행동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부정을 범하지 않으신다

“ 실로 하나님께서는 티끌의 무게라도 부당하지 다루지 않으시노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4: 40)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부당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당함을 범하는 순간 그 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망각하지도 않으시고 실수를 범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망각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망각은 신답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실수를 범하는 것은 신답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주님께서는 실수하지도 않으시며, 망각하지도 않으시노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20장 52절)

하나님은 신(神)의 지위에 걸맞은 행위를 하신다:

그분께서는 전능하시다 : 이슬람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그분께서는 모든 것에 능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여러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전능하신 분이시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2: 106, 2: 109, 2: 284, 3: 29, 16: 77, 35: 1)

또 하나님의 성서 꾸란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분.”(하나님의 성서 꾸란 85: 16)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신다운 행위만을 의도하시며 신에 걸맞지 않는 행동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많은 종교는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신(神)의 의인화 즉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믿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너무나 순수하며 성스럽기에 그 분은 인간의 고통, 결점, 그리고 감정을 모르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위한 규칙을 세우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이 기만적인 논리는 여러 시대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다. 우리는 이 주장을 분석해보고 과연 이 주장이 논리에 맞는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창조주께서는 설명서를 준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성과 지성을 부여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별한 용도의 물품을 발명하고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대량 생산되는 녹음기를 보자. 녹음기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제작자 자신이 녹음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단지, 물품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있는 제작자가 사용설명서를 출판하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즉 그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기계의 사용법 및 주의사항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해 볼 때, 인간이란 실로 하나님의 복잡한 창조물이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으시다. 그 분께서는 오직 인류에게 설명서를 계시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이 바로 인류를 위한 설명서인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날, 이 창조물(인간)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미리 가르쳐주신다는 사실은 논리에 맞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선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설명서를 위해 몸소 인간의 모습을 취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수 시대에 걸쳐 그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각 나라에서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렇게 선택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도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장님이자 귀머거리이다:

(神)의 의인화 논리가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의 추종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 우리에게 이 지성을 주신 창조주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그러한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에게서 받은 청각과 시각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 장님이며 귀머거리인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들은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이자 장님이니 그들은 (올바른 길로) 돌아오지 않더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2:18)

성경의 마태복음에도 이와 비슷한 메시지가 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 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 보지 못하리라.”(마태13:13)

힌두교의 Rigveda 에도 이와 비슷한 메시지가 있다.

“말들을 보면서도 진실로 그것들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진실로 그것들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Rigveda 10:71:4)

이 모든 구절들은, 모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리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이 있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하나님께 기도하라 혹은 가장 자비로우신 분께 기도하라. 그대들이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그분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이 있노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17:110)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에 관한 비슷한 언급은 하나님의 성서 꾸란 제 7장 180절, 20장 8절, 그리고 59장 23절과 24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꾸란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99가지 이름이 언급되어 있으며 그러한 이름을 부여한 자는 다름아닌 하나님이시다. 꾸란은 하나님을 Ar-Rahman(가장 자비로우신 분), Ar-Raheem(가장 자애로우신 분), Al-Hakeem(가장 현명하신 분)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중 원하는 어떠한 이름으로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나, 임의로 그 분의 형상을 상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속성 모두는 유일무이한 것이며 그러한 속성을 지닌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 :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속성을 지니실 뿐만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각각의 속성은 하나님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이 점에 관해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유명 인사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예로 들어 보자.

만일 누군가가 닐 암스트롱이 미국인이라고 말한다면 닐 암스트롱이 지니고 있는 미국인이라는 속성은 정확한 것이지만 그를 알아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닐 암스트롱은 우주비행사이지만 우주비행사라는 속성은 닐 암스트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특정한 속성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오직 하나, 즉 닐 암스트롱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독특해야만 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과 같이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건물의 창조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며 맞는 말이겠지만 그것이 유일무이하지는 않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건물을 만들 수 있기에 그 속성 하나만으로 어떤 이를 다른 이와 구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각각의 속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r-Raheem” (가장 자비로우신 분)

 “Ar-Rahman” (가장 자애로우신 분)

 “Al-Hakeem” (가장 현명하신 분)

 그러므로 누군가가 가장 자비로우신 분 즉 “Ar-Raheem”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오로지 하나의 대답만이 있을 수 있으니, 그 대답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특정한 속성은 다른 속성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

 만일 누군가가, 닐 암스트롱은 키가 1미터 밖에 안 되는 미국인 우주비행사라고 말한다면 미국인 우주비행사라는 속성은 정확하지만 키가 1미터라는 속성은 거짓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은 하나의 머리와, 두 개의 손과, 두 개의 발을 지닌 우주의 창조자라고 말한다면, 우주의 창조자라는 속성은 정확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분과 관련된 속성은 잘못된 것이고 거짓이다.

모든 속성은 하나님 그분 한 분만을 가리켜야 한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에 모든 속성들은 하나님 그분 한 분만을 가리켜야 한다. 예를 들어 창조주의 속성을 지니는 존재와 심판의 날의 주관자로서의 속성을 지니는 존재가 서로 다른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속성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유일성:

 일부 다신론자들이 하나님은 여러 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비논리적이다. 만일 한 분 이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일 것이다. 즉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른 하나님들은 각각의 의지를 굽히지 않기에 서로 충돌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다신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만일 한 신이 패배했거나 다른 신들에 의해 제압되었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속성인 ‘전능하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 신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다. 다신론 종교에 널리 퍼져 있는 믿음 중의 하나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여러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책임지는 신이 따로 있는데, 태양신과 하늘신, 바다신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어떤 신은 (자신이 영역이 아닌) 일정 행위에 대해서는 무능하며, 다른 신들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뜻한다. 무능하며 무지한 하나님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한 분 이상의 하나님이 있다면 우주에는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파괴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그들(하늘들과 대지) 안에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이 있다면 그들(하늘들과 대지)은 망가졌으리라. 그러니, 그들이 함부로 그분을 묘사함에 권좌의 주님이신 하나님 찬미 받으소서! ”(성꾸란 21:22)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과 함께 있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노라. 만일 그랬다면 실로 모든 신들은 제각각의 창조를 고집했을 것이며, 실로 어떤 신은 다른 신 위에 군림했을 것이라. 그들이 함부로 그분을 묘사함에 하나님 찬미 받으소서!”(성꾸란 23: 91)

그러므로 한 분이신 참된 절대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논리적 개념인 것이다.

불교나 유교는 불가지론적 종교이다. 이 부류의 종교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자이나교와 같은 다른 종교들은 무신론적 종교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일신론을 믿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모든 주요한 종교는,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 한 분이신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다. 실제 모든 종교의 경전은 (원래는) 일신론 즉 오직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서를 바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부분의 경전들을 왜곡하고 바꾸어 버렸다. 그리하여 많은 종교의 교리가 일신론에서 범신론 또는 다신론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후, 자신들의 손으로 책을 쓰고서는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오’ 라고 말하여, 그것으로 하찮은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있나니 그들에게 재앙이 있도다. 그들의 재앙은 그들의 손이 쓴 것에 대한 재앙이며 또한 그들이 얻은 것에 대한 재앙이노라.” (꾸란 2:79)

 타우히드(Tawheed):

정의와 범주:

이슬람은 ‘타우히드’(Tawheed)를 믿는다. 타우히드는 단순한 일신론 즉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이상이다. ‘타우히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하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을 뜻하며, ‘하나로 만들다’ 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Wahhada’로부터 유래되었다. ‘타우히드’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다.

① 타우히드 알-루부비야(Tawheed ar-Ruboobeeyah)

② 타우히드 알-아스마 왓-씨파트(Tawheed al-Asmaa-was-sifaat)

③ 타우히드 알-이바다(Tawheed al-Ibaadah)

1. 타우히드 알-루부비야

(Tawheed ar-Ruboobeeyah)

(주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

타우히드의 첫 번째 범주는 ‘타우히드 알-루부비야’이다. ‘루부비야’는 주님을 뜻하는 ‘랍브’(Rabb)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그러므로 ‘타우히드 알-루부비야’는 주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을 뜻한다. 이 범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분 한 분만이 진정한 창조주이시며, 그분은 전 우주를 유지하시고 부양하시는 분이시자 모든 필요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2. 타우히드 알-아스마 왓-씨파트(Tawheed al-Asmaa was-Sifaat)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은 그분만의 것이며, 다른 어떤 존재에도 부여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임을 믿는 것)

‘타우히드 알-아스마 왓-씨파트’는 타우히드의 두 번째 범주로,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을 그분만의 유일무이한 것으로 돌리는 것을 뜻한다. 이 범주는 다섯 가지 측면이 있다.

①하나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사도에 의해 묘사된 그대로 언급되어야 한다. (변질 금지)

하나님은 당신께서 직접 당신을 묘사한 방식대로, 또는 그분의 사도가 그분을 묘사한 그대로 언급되어야 한다. 그분을 설명함에 있어, 기존에 확증된 속성이나 이름을 변질시키는 설명은 허락되지 않는다.

②하나님은 그분께서 스스로 언급하신 이름 그대로 인용되어야 한다. (추가 금지)

하나님께 새로운 이름이나 속성이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이름에 ‘알-가딥’(al-Ghaadib, 화내시는 분)이라는 이름을 추가할 수 없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시지만, 하나님 당신께서 또는 그분의 사도께서 이러한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새로운 이름을 하나님께 부여할 수 없다.

③하나님을 언급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피조물의 속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쁜 생각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인간들이 그들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이러한 묘사는 타우히드(Tawheed)의 원칙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시며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언급할 때 지켜져야 할 주요 원칙은 그분의 성서 꾸란 ‘앗-슈라’ 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분과 비슷한 것은 없노라. 그분은 모든 것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시라.” (꾸란 42:11)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들으심과 보심은 그 완벽함에 있어서 인간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은 눈과 귀를 필요로 하고 그 범위 역시 한정되어 있다.

④인간에게 하나님의 속성이 주어져서도 안 된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타우히드(Tawheed)의 원칙에 위배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시작이나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자라고 묘사해서는 안 된다.

⑤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몇몇 이름 중 비한정 형용사의 형태일 경우, 예를 들어 ‘라우프’(Raoof, 너그러운), ‘라힘’(Raheem, 자애로운) 등은 사람 이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도를 묘사하실 때 사용하신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 형용사의 형태인) ‘알-라우프’(Ar-Raoof, 가장 너그러우신)이나 ‘알-라힘’(Ar-Raheem, 가장 자애로우신)은 그 혼자로는 사람 이름에 사용될 수 없으며, 대신 ‘압두’(Abd, 종)를 접미하여 ‘압둘 라우프’(Abd ar-Raoof, 가장 너그러우신 분의 종)나 ‘압둘 라힘(Abd ar-Raheem, 가장 자애로우신 분의 종) 등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3.타우히드 알-이바다(Tawheed al-Ibaadah)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숭배하는 것)

① ‘이바다’(Ibadaah)의 정의와 의미:

‘타우히드 알-이바다’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Ibaadah)하는 것을 뜻한다. ‘이바다’(Ibaadah)는, 즉 경배는 종 또는 하인을 뜻하는 아랍어 ‘압드’(Abd)에서 유래되었다. 예배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경배행위이며 ‘이바다’의 종류는 다양하다.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오직 의식적인 기도만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슬람에서의 경배의 개념은 완전한 복종과 예속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삼가는 이 모든 것이 ‘이비다’이며 이러한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

② 타우히드는 언급된 세 가지의 범주 모두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먼저 언급된 두 종류의 타우히드만을 믿으면서 세번째 타우히드인 타우히드 알-이바다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타우히드는 부질없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성서인 꾸란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너희들에게 하늘과 대지로부터의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청각과 시각을 소유하신 분은 또 누구인가? 죽은 자를 살게 하고 살아 있는 자를 죽게 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그리고 일을 결정짓는 분은 누구인가?’ 이에 그들은 ‘하나님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라. 이에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그런데도 너희들은 (그분을) 경외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나님의 성서 꾸란 10:31)

이와 비슷한 예가 하나님의 성서 꾸란의 Surah Zukhruf에 반복된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그들에게 그들을 창조한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분명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라. 이러한데도 그들은 어떤 연유로 돌아서는가? ”(하나님의 성서 꾸란 43: 87)

메카의 이교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자이며 부양자이자 주님이며 주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이외의 또 다른 신들을 숭배했기에 무슬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신자인 ‘쿳파르’(Kuffaar) 그리고 우상숭배자인 ‘무쉬리쿤’(Mushrikun)으로 분류하셨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나 동시에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더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12: 106)

그러므로 타우히드 알-이바다는 타우히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경배에 대한 보상을 주실 수 있다.

 쉬르크(Shirk):

a. 정의:

어떤 행위가 타우히드(Tawheed)의 어느 요소를 빠트리거나, 요소의 성격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행위는 쉬르크(Shirk)로 분류된다. ‘쉬르크’(Shirk)는 대등한 존재를 두거나 가정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쉬르크’는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를 말하며 우상숭배를 뜻한다.

b.      ‘쉬르크(Shirk)’는 하나님께서 용서치 아니하시는 가장 큰 죄이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안-니사’ 장에서 가장 큰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를 용서치 않으시노라. 그러나 그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당신께서 원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시노라. 그리고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실로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이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4: 48)

같은 메시지가 ‘안-니사’ 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를 용서치 않으시노라. 그러나 그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당신께서 원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시노라. 그리고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실로 크게 방황한 것이라.”(4:116)

c.  ‘쉬르크(Shirk)’를 범한 자는 불지옥의 거주자가 된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알-마이다’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하나님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라’ 라고 말한 자들은 실로 불신을 범한 것이라. 반면 메시아는 ‘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여! 나의 주님이시고 너희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라’ 라고 말하였도다. 실로,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을 금하셨으니 그의 거주지는 불(지옥)이라. 그리고 악한 자들에게는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노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5:72)

d.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경배와 복종: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알루 이므란’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오 성서의 사람들이여! 우리와 너희들 모두에게 공평한 다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 :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경배하지 않고 그분께 대등한 존재를 두지 않으며 하나님이 아닌, 우리 중의 누군가를 주님으로 삼지 않겠노라.’ 그 후에도 그들이 돌아선다면 그대들(무슬림들)은 이렇게 말하라 : ‘너희들은 우리가 무슬림임을 증언하시오’”(하나님의 성서 꾸란 3: 64)

 결론

하나님의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외에의 것을 숭배하는 그들을 욕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적의에 차 멋도 모르고 하나님을 욕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하나님의 성서 꾸란 6:108)

“그리고 만약 대지의 모든 나무가 연필이 되고 바다에 일곱 개의 바다를 더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 실로 하나님은 가장 존엄하시고 가장 현명하신 분이시라.” (하나님의 성서 꾸란 31: 27)

“오 인간들이여! 하나의 예시가 있으니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 이외의 것을 숭배하는 자들은 파리 한 마리조차 창조할 수 없으며 그들이 그것(파리 창조)을 위해 다 함께 모여든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 그리고 그 파리가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가더라도 그들은 파리의 행동을 막지 못하노라. (하나님 이외의 것에) 요청하는 자와 요청 받는 자(우상) 모두 허약하도다. ”(하나님의 성서 꾸란 22: 73)

주님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시는 하나님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