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풍기 바람을 쐬면 시원해 질까 - wae seonpung-gi balam-eul ssoemyeon siwonhae jilkka

지표와 대기의 뜨거운 열기에 밖에 나가기조차 두려워지는 요즘,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운 곳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통풍이 잘 안 되는 공간의 경우가 그렇다. 더군다나 도로 주변이라면 자동차 매연 때문에라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가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적인 바람보다 인공적으로 만든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선풍기다.

사실 사람들이 많은 직장이나 공공시설에서는 거의 쉴 새 없이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집에서는 그 무시못할 전기사용량에 쉽사리 에어컨을 켜기가 꺼려지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소비전력이 낮은 선풍기는 요즘들어 구식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만약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경우라면 주변에 얇은 종이 같은 물건으로 부채질이라도 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더워진 신체를 식혀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선풍기나 부채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높은 산이나 계곡에서 부는 시원한 자연바람은 그 어떤 냉방기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한 느낌까지 더해준다. 사람이 바람을 맞으면 시원해지는 이유는 뭘까.

바람 불면 시원한 이유, 증발과 기화열

더울 때는 땀이 나기 마련이다. 피부에 땀이 맺히면 이것들은 증발을 하며 기화하게 되는데, 물질의 상태가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할 때 주변의 열을 흡수해 가게된다. 기체는 액체에 비해 분자 운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 이를 주변에서 얻는 것이다. 이것을 기화열이라 하며 땀이 증발하면서 신체로부터 이 기화열을 흡수해 가기 때문에 열을 뺏긴 신체는 온도가 낮아져 시원해진다. 특별히 증발로 인한 기화열을 증발열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더위로부터 인체를 지키기 위해 땀이 나는 것이다. 이는 더운 날 온몸에 물을 뿌리면 시원하고, 목욕을 한 후 물이 묻은 채로 탈의실에 나왔을 때 추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꼭 인체뿐만이 아니라 더운 날, 도로나 마당에 물을 뿌리면 시원해지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바람이 불게 되면 액체의 증발이 더 잘 일어나게 된다. 증발은 상식적으로도 알고 있듯이 습도가 낮을 때 더 잘 일어난다. 증발은 액체의 표면에서 분자가 다른 분자들의 인력을 벗어나 공기 중으로 기화되는 현상인데, 물의 경우 공기 중에 이미 수분이 가득해 물 분자들이 많다면 기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즉, 더 이상 끼어들어갈 자리가 부족해 공기 중으로 뛰쳐나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있다면 증발로 인해 많아진 주변의 수분이 바람과 함께 멀리 날아가게 된다. 상대적으로 액체 표면 주위의 수분은 낮아지게 돼 바람이 없을 때보다 증발이 잘 일어난다.

바람이 불어 증발이 활발히 일어날수록 기화열을 활발히 흡수해 가게되고 더욱 시원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람은 인체 주변의 더운 공기를 시원한 공기로 교체해주는 역할도 한다.

인간의 체온은 약 36.5도를 유지하고 있어 신체는 열을 내고 있는 살아있는 난로라고 할 정도로 따뜻하다. 이로 인해 피부주변의 공기는 일반적인 공간의 공기에 비해 온도가 높아지게 되는데, 바람이 불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공기가 불어와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피부 주변의 온도보다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더 높다면 땀이나 물이 묻어있지 않는 한 시원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을 피부에 쐬면 시원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워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체온에 의해 데워진 피부주변의 공기보다 낮은 온도의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바람으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을 만드는 기계, 선풍기의 발전

이렇게 바람은 증발을 도와주거나 더운 공기를 시원한 공기로 교체해주는 역할을 해 시원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더울 때 바람이 부는 곳을 찾게되며 여의치 않은 경우 인위적으로 부채질을 통해 바람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부채질의 경우는 우리가 직접 운동을 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시원해지기보다 오히려 운동으로 인해 체온이 더 상승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부채에 추를 달아 천장에 매단 후, 시계추처럼 진자운동을 시켜 자동으로 바람을 불게 했다. 이것이 선풍기의 시초가 됐다. 그 이후 에디슨이 전기에너지로 작동하는 선풍기를 발명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풍향, 풍속 조절이 가능하며 정지시간을 예약하거나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선풍기가 나왔다. 컴퓨터가 많이 사용되는 요즘엔 USB를 이용한 미니선풍기가 쓰이기도 한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냉풍기도 선풍기처럼 모터와 날개를 이용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냉매를 사용해 시원한 바람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냉매가 기화 또는 액화하면서 열을 흡수하게 되고 열을 뺏겨 시원해진 공기를 날개회전을 통해 내보내는 원리다. 에어컨처럼 방 전체를 시원하게 하진 못하더라도 선풍기에 비해 확실히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다. 게다가 에어컨 소비전력의 약 1/20배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냉방기기로 사용되고 있다.

베르누이의 정리를 이용한 날개 없는 선풍기

또 최근엔 지금까지의 선풍기의 상식을 깨는 새로운 제품이 발명되기도 했다. 다이슨(Dyson) 사의 날개 없는 선풍기가 그것인데 날개가 없이 둥근 원통모양으로 생겨 얼핏 보기엔 선풍기라고 하기 힘들 정도의 외관을 가지고 있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기존 선풍기에 비해 그 외형뿐만이 아니라 원리부터 확연히 다르다. 기존 선풍기들이 모터에 날개를 달아 회전시켜 바람을 일으켰다면, 이 날개 없는 선풍기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이용해 공기의 압력 차이를 만들어 바람이 불어나가게 한 것이다.

베르누이의 정리는 유체의 속도가 빠르면 압력이 낮고 속도가 느리면 압력이 크다는 것이다. 제품의 아래쪽에서 공기를 고리 모양의 테두리로 보내게 되고 이 공기가 비행기의 날개 형태인 고리의 좁은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속도가 증가한다. 그러면 베르누이의 정리에서 설명하듯이 압력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이로써 주변에 있는 공기들이 고리를 통과하며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날개가 없기 때문에 얻어지는 이점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안정성이 최고의 장점이다.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에 자꾸만 선풍기 사이로 손을 넣다가 다치는 경우가 있고, 성인의 경우에도 선풍기를 고치다 손을 다쳤다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관리도 매우 편리하다. 일 년 내내 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선풍기를 꺼내면 덮개를 비롯해 날개에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아있다. 이를 닦으려면 선풍기를 다 분해해야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먼지를 닦을 때도 더러운 미세입자들 때문에 건강에 안 좋기도 해 불편한 점이 매우 많다.

하지만 날개가 없으니 덮개도 필요 없고 다칠 일도 없으며 그저 간단한 걸레질만으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인테리어에도 알맞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가격이 우리 돈으로 50만원 정도 돼 대중화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 바람을 따라잡는 날까지

선풍기가 발생시키는 바람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연 바람을 더 선호한다. 자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우선 선풍기에 비해 넓은 공간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우리 몸 전체를 감싸고 지나가는 것을 들 수 있다. 실내에서 쓰는 대부분의 선풍기들이 국소적인 부분에만 바람을 불게 하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자연 바람은 그 방향과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계속 같은 세기의 바람을 보내는 선풍기에 비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런 자연 바람을 흉내 내기 위해 일부 선풍기에는 ‘자연풍’이라는 기능이 있기도 하다. 풍속이 주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기능인데, 좁은 지역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불어나가는 바람임에는 변화가 없으며 전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자연바람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산이나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공기도 맑아 그 시원한 느낌이 배가 되기도 한다.

자연 바람은 셀 수 없이 많은 공기 입자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온도, 기압의 차이 등에 의해 매우 복합적이고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자세한 예상이 힘들뿐더러 흉내 내기도 힘들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들을 실현 가능케 해왔고 앞으로도 그 범위와 가능성은 무한하다. 냉풍기나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또 어떤 선풍기가 태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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