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인턴기자] 우리나라 예능방송 자막이 위기다. 시청자들이 다수의 방송 자막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를 발견하고 있다. 예능방송을 보며 배꼽 잡고 웃다가도 맞춤법이 틀린 자막을 발견하면, 즐거움은 일순간에 막연한 실망감으로 변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조차 식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매년 방송언어 조사 자료집을 내, 프로그램별 방송언어 사용 실태를 되짚고 책임을 강구한다. 그러나 대체로 방송국은 자사 자막 오류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이미 저질렀던 맞춤법 표기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많은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용어는 ‘잘’ 쓰면 본전을 건지지만, ‘잘못’ 쓰면 부메랑이 돼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괴롭힘 당한다. 그러니 기본적인 맞춤법도 어긴 자막을 달고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실추될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계속되어온 문제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사람들은 이제 활자이탈의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이 발달했다고 해서 아날로그가 필연적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상생한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훨씬 많은 활자를 접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 자막을 읽는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한쪽 벽에 달린 광고 자막을 발견한다. 통근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지하철 광고를 접하며 몇 줄짜리 자막을 무의식적으로 읽어 낸다. 자기 전에는 침대에 누워 자막이 달린 유튜브 영상을 본다. 자막과 함께 살아 숨 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오늘날 자막의 영향력은 비대해졌다. 가는 곳마다 글자와 눈을 마주하는 우리가, 맞춤법에 어긋난 자막을 수시로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더구나 유튜브의 경우 수십, 수백만 명이 보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맞춤법에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틀린 맞춤법에 노출되고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국내 텔레비전 예능 방송 및 유튜브 방송에서 기본적인 맞춤법을 어긴 대표적인 사례들을 간추려 보았다.

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3대 천왕 방송 캡쳐본 (사진=SBS)

◆ 3대 천왕: 돼지껍데기라는 말은 없다. 돼지껍질이 바른 말이다. ‘껍데기’는 조개나 달걀 등의 겉을 싼 단단한 물질이다. 또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외피 혹은 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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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아이돌 방송 캡쳐본 (사진=MBC every1)

◆ 주간아이돌: ‘걸맞는’은 틀린 표현이다. ‘걸맞은’이 바른 표현이다. '걸맞다'는 형용사다. 형용사를 관형사형으로 만드는 어미는 '-은'이다. 그러므로 '걸맞은'이 맞다. ‘알맞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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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아이돌 방송 캡쳐본 (사진=MBC every1)

◆ 주간아이돌: ‘천상’은 틀린 말이다. 규범 표기는 ‘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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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방송 캡쳐본 (사진=tvn)

◆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일사분란’이라는 단어는 없다. ‘일사불란’이 맞는 표현이다. 참고로 ‘일사불란’은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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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 방송 캡쳐본 (사진=JTBC)​

◆ 한끼줍쇼: 장본인이란 ‘좋지 않은 일을 빚어낸 바로 그 사람’이란 뜻이다. 즉 부정적인 일을 도모한 사람에게만 쓰이는 단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장본인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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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자 방송 캡쳐본 (사진=JTBC)​

◆ 착하게 살자: ‘곰곰히’는 틀린 표현이다. ‘곰곰이’가 맞는 표현이다. ‘곰’이라는 글자가 두 번 연속되니 그 뒤에 ‘이’가 온다고 생각하면 외우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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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조작단 FBI 방송 캡쳐본 (사진=TRENDY)

◆ 시공조작단 FBI: ‘피로회복’은 틀린 말이다. 사실상 ‘피로해소’가 맞는 표현이다. ‘피로회복’을 표현 그대로 해석하면 ‘피곤한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피로는 회복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므로 회복이라는 단어를 피로 뒤에 쓰면 안 된다. 그러나 광고에서 이 표현을 굉장히 자주 써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일부러 이 단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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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쇼 방송 캡쳐본 (사진=채널A)

◆ 풍문으로 들었쇼: '양날의 검'이라는 표현은 이중표현이다. '검' 자체가 '양날로 되어 있는 직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날의 칼'이라고 써야 한다. 

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불후의 명곡 방송 캡쳐본 (사진=KBS)

◆ 불후의 명곡: '내밀다'의 명사형은 '내밂'이다. 

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팔로워 10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이환' 영상 캡쳐본 (=이환 유튜브)

◆ 이환 유튜브: '잘 안되요'는 틀린 표현이다. '잘 안 돼요'가 옳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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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10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이환' 영상 캡쳐본 (=이환 이튜브)

◆ 이환 유튜브: '와전되'가 아니라 '와전돼'다. '되다'에 어미 '-어'가 붙은 '되어'를 '돼'로 줄여 쓴 것이다. 

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팔로워 1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재넌' 영상 캡쳐본 (=재넌 유튜브)

◆ 재넌 유튜브: '부셔버릴거에요"는 잘못된 표기다. "부숴 버릴 거예요'가 맞는 표기다. 명사 뒤엔 '에요'가 아닌 '예요(이에요)'가 온다.

예능 맞춤법 오류 - yeneung majchumbeob olyu
팔로워 1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재넌' 영상 캡쳐본 (=재넌 유튜브)

◆ 재넌 유튜브: '걸르는'은 틀린 표현이다. '걸르다'라는 단어는 없다. '거르다'가 맞는 표현이기에, '소금 거르는 중'이라고 써야 한다.

사람들은 매일, ‘복잡한 하루’의 무게를 견딘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틈틈이 TV 예능 혹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다. 혹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영상을 즐긴다. 우리는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영상과 자막을 접한다. 결국 0자막이 국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결론에 닿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자막에 대한 담론은 전혀 활발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의 정기간행물 새국어생활 24권 3호에 따르면, 장진한 TV조선 보도본부 전문위원은 “방송사들이 공통으로 쓰는 자막문장에 대한 지침도 없다”면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2년여 동안 자막을 주제로 세미나를 여는 국어 단체나 언론 단체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어 “모두가 무관심인 것이다. 이로 인해 국어가 망가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이제 자막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밝혔다.

전용길 전 KBS 제작본부장 역시 자막에 대한 담론을 촉구했다. 그는 디지털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모바일기기가 소형화되면서 자막은 디지털 기기에 맞게 보다 짧아지고 작아졌다. 감정과 정서를 동세대간 쉽게 전하는 축약형태의 자막도 넘쳐난다”면서 “스마트한 진화 혹은 일종의 언어 문화적 현상이기에 임의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적어도 방송에 속하는 대중미디어영역이라면 나라의 국어를 지키고 순화하여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면서 “우리의 혼인 ‘말과 글’의 보호와 진화에 대한 꾸준한 담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맞춤법 오류 자막, 청소년와 외국인 등에 악영향 

맞춤법 오류를 범한 자막은 특히 청소년과 외국인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직 올바른 맞춤법 교양을 수립하지 못한 초심자가 ‘가짜 문장’들이 난무한 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국어를 습득하는 현상이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한국어 통번역(HUFS KTFL)을 전공하고 있는 츠사카 아츠에(일본) 학생은 “방대한 진도 때문에 어학원에서는 각각의 맞춤법을 한 번씩만 배우고 넘어간다. 그러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같은 자막도 계속, 여러 번 보게 된다”면서 “비록 우리가 배운 내용과 틀리더라도 유튜브 자막에 적힌 맞춤법을 따르게 된다. 원어민이 쓰는 표현을 내가 멋대로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한 번은 한국인 친구가 메신저에서 ‘어의없다’는 말을 쓰길래 배운 내용과 달라 어학원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며 “선생님은 ‘어이없다’가 맞지만 몇몇 한국인들은 헷갈려한다고 말씀하셨다. 외국인인 내가 일부 한국인보다 맞춤법을 더 잘 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또 그녀는 “책은 지루하니까 주로 재밌는 유튜브 영상이나 티비 예능으로 한국어 공부를 한다”면서도 “유튜브를 통해 배운 맞춤법을 실생활에서 쓰다가 지적 받은 적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녀는 유튜브 영상 등의 컨텐츠가 올바른 한글 맞춤법을 지킨다면 유학생들이 혼선을 겪을 일이 적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연 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은 맞춤법을 쉽게 어기는 세상을 개탄했다. 이 회장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정보를 빨리 전달해야 하는 특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글을 몇 번이고 읽어볼 경황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요즘 청소년들이 깊은 문장력을 갖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카톡이나 유튜브 자막 등에도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적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는 어린이들이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다분해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맞춤법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책임이다. 사회가 맞춤법 오류 현상을 쉽게 용인해주면 다른 위법한 행위도 관용의 여지가 생긴다. 이는 사회 통념상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개인과 개인이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맞춤법을 틀릴 수 있겠지만, 여러 사람이 보는 영상 컨텐츠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자막 작업에 임해야 한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보다 엄격히 텔레비전 방송, 유튜브 등의 유사방송의 맞춤법 실수를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미를 위해 맞춤법을 온전히 무시한 자막을 내거는 일부 유튜버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이른바 ‘맞춤법 파괴’를 원론적 차원에서 비판하기 보다는 자막 수준 향상의 필요성을 다 같이 인지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 전국 방방곡곡에 전달되는 텔레비전 예능 방송의 경우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막을 달도록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일부 방송인, 배우, 가수들은 방송사로부터 수십억 대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방송 뒤편에 자리 잡은 수많은 사람들은 임금 체불로 고통을 겪는다. 연예인의 수익구조를 개편하여 PD, 작가, 조연출 등에 배분하고 방송 제작 직군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했더라면 지난 5월 <전지적 참견 시점> 제작진이 범했던 치명적인 영상 및 자막 실수가 미연에 방지됐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