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명이 말하는 대사 어떻게 쓰나요 - yeoleomyeong-i malhaneun daesa eotteohge sseun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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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이 야기 


1945년 8월 10일. 

북만땅 전역 이 온통 몸부림치며 떨고있었다. 대 일작전에 참가한 
쏘련원동군부대들의 격렬한 포성이 천지를 진감하고 일본군의 방어 
선 에 돌입한 쏘련땅크들은 포진지에 구겨 박힌 포신들과 바퀴 와 흙 
과 나무들은 물론 갈가리 찢겨진 시체들까지 철의 무한궤도로 짓이 
기고 씹어밸으며 거침없이 남으로 전진해갔다. 

남으로 뻗은 그 길에서는 일본군페잔병들이 악에 받쳐 부르짖고 
미 친듯 총을 란사하며 밀 려 가고있 었다. 숨막힐 듯 한 무더 위속에 서 
재빛먼지 구름이 뽀얗게 피 여오르군 했다. 어 느 한 언덕 의 오두막에 
서 는 가래끓는 소리 로 불러 대 는 일 본군가소리 가 터 져나왔다. 

얼마전까지 대륙을 짓뭉개며 행진해가던 《대일본제국》이 목 
터지게 불러대던 군가였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위엄찬 군가도, 씩 
씩한 행진곡도 아니 였다. 할복자살을 앞둔 왜놈장교들이 시퍼 런 칼 
을 뽑아들고 자기 들의 피 비 린 인생 을 하직하는 목갈린 고별가였다. 


8월 12일. 

그날 치치하얼부근에 징용으로 끌려가 방어공사를 벌리다가 가까스 
로 도망친 장정환은 7〜8명쯤 되는 조선인로동자들을 이끌고 천고의 
숲을 헤쳐가고있었다. 한시바삐 씀화강(송화강)을 건너 조국으로, 고 
향으로 가야 했다. 지옥같은 공사장에서 도망친것이 꿈만 같았다. 

이제 씀화강만 건느면 조국이 멀지 않다. 김일성장군님빨찌산도 
조국해방작전에 진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여 기를 쓰며 강을 
건늘 배를 찾아헤맸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그들의 일행에 난데없는 처녀까지 끼여들 
었다. 얼굴이 창백한 그 조선인처녀가 언제 어떻게 그들의 일행에 끼 



여들었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그때 열아홉살 
나던 그 처녀는 창춘(장춘)시의 어느 한 약국에서 일하다가 쏘련군 
의 진격이 시작되자 정신없이 고향으로 달려가던 길이라고 한다. 처 
음엔 기차로, 다음엔 마차로, 지금은 도보로 여기까지 이르렀었다. ) 
씀화강은 상류로 거슬러오를수록 조선과 가까운 창바이 (장백 ), 
통화(통화)지구로 들어서게 된다. 도처에서 일본군폐잔병들이 
살판치는 때였으므로 장정환의 일행은 선창이나 나루터를 피해 계 
속 상류로 거슬러오르며 죽기내기로 배를 찾아 헤했으나 배가 있을 
리 없었다. 일본군페잔병들이 상선이나 어선들은 물론 나루터의 매 
생이들까지 사정없이 총검을 휘두르며 빼앗아갔던것이다. 그런 
데… 천만다행으로 씀화강상류의 어느 한 물구비에 배가 있었다. 

날이 어두웠을 때였다. 어데선가 이상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듯 
하더니 멀지 않은 물구비쪽에서 불길이 황황 치솟는것이 보였다. 일 
행은 불길한 예감에 주춤거렸다. 그러나 장정환이 먼저 움씰거리며 
걸음을 떼자 다른 사람들도 일시에 그를 따라 달려갔다. 저 멀리 불 
빛 이 어롱거리는 강기슭으로 매생이가 미끄러져나오는것이 눈에 띄 
였던것이다. 피나게 찾던 희망과 구원의 배!… 

물구비를 향하여 숨차게 달려가니 차츰 거세여지는 불빛에 비추 
어진 검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대여섯쯤 되는 사람들이 헐금씨금하 
며 강기슭의 모래불로 작은 배를 끌어내고있었다. 

장정환일행이 나타나자 검은 그림자들이 흠칠하며 허리를 폈다. 
그들의 등뒤에서 타번지는 세찬 불길이 방금 거기에서 벌어진 끔찍 
한 일들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었으니… 불타는 초막앞에 중국인늙은 
이와 한 소녀의 시체가 란도질당해있고 앞 못 보는 로파가 땅바닥 
을 벌벌 기며 무어라고 울부짖고있었다. 그 로파앞에는 살기띤 두 
눈을 희번뜩이는 일본군오장놈이 시퍼 런 군도를 쳐들고있었다. 

사태는 명백했다. 일본군폐잔병들이 작은 초막과 숲속에 감추어 
둔 배를 요행 찾아내였고 그 배를 한사코 지키려는 중국인늙은이와 
손녀 그리고 앞 못 보는 로파까지 무참히 요정내는 참이였다. 

별 안간 어 둠속에 서 장정환일 행 이 나타나자 왜 놈들이 기 절초풍 
한것은 물론 이편도 역시 너무나 참혹한 정경앞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몸서리치는 침묵… 두폐는 한순간 서로 몸짝도 않고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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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했다. 눈알마저 제대로 굴리지 못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피 
비린 살륙에 이골이 난 왜놈오장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자가 중 
국말로 웨쳤다. 

〈〈누구야, 웬놈들이야?!》 

«-)) 

대답이 있을리 없었다. 이마전의 피줄들이 부풀어오르다못해 금 
시 터져 버 릴것 같은 한순간, 또 한순간이 더 디게 흘러갔다. 

《아하,〉〉마침내 오장놈이 이번엔 조선말로, 그것도 녀자들 
의 비명처 럼 아츠러운 소리로 울부짖듯 했다. 〈〈너들 저一기 비밀 
공사장에서 도망이나 쳤지? 근데 여긴 왜 왔어, 왜 왔어?一》 

왜놈오장이 두손으로 움켜쥔 군도가 푸들거리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장정환도 그놈을 알아보았다. 비밀공사장을 감독하던 왜놈헌 
병 대중에서 류달리 잔인하기 로 유명한 마쯔이 라는 오장놈이 였다. 
기이하게도 운명의 갈림길에서 또 맞다든것이다. 

그때 다른 왜놈들중에서 견장이 없는 군복을 넝마처럼 걸치고있 
던 말라팽이가 팔을 후들후들 떨며 당장 좌갈기자고 했다. 

그러나 마쯔이오장은 피방울이 점점이 튀여있는 낯짝을 실룩거리 
며 무엇 인가 재빨리 생각을 굴리 고있 었다. 무던히 강마른 편 이였지 
만 고양이처럼 날파람있는 놈이였다. 비밀공사장에서 도주자들을 잡 
으면 무조건 자기 가문의 자랑이라는 〈〈핫꼬이찌우〉〉(한자표기로는 
〈팔핑일우〉 一 즉 세계를 한집안으로 만든다는 국수주의적 구호) 
4글자가 새겨져있는 칼날을 비스듬히 내리쳐 단숨에 목을 썩둑 잘 
라버리 는것 으로 유명했 었 다. 그자는 중국말, 조선말도 잘했다. 

《아一냐!》하고 오장놈은 여전히 군도를 틀어쥔채 아츠럽게 고아 
댔다. 《니들, 마침 잘 왔다. 여기 와서 배나 끌어 내라, 알겠는가?》 
나머지 왜놈들은 일제히 총을 꼬나들었다. 하여 장정환일행은 왜 
놈폐잔병들의 총칼앞에서 배를 끌어내여 물에 띄우지 않으면 안되 
였다. 배가 물에 뜰 때까지 칼끝같은 눈길로 그들을 살피던 왜놈오 
장이 일이 끝나자 그들에게 군도를 휘둘러댔다. 

《조센진들, 인젠 갈데루 가라. 빨랑빨랑!… 못 들었는가?…》 
바로 그때 장정환의 기억에 한생 잊을수 없는 피로운 추억으로 남 
은 그 지긋지긋한 일이 벌어졌다. 왜놈들이 총칼을 휘두르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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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쫓아내다가 지금까지 뒤쪽에 숨어있던 조선인처녀를 발견했던것이다. 

한순간 장정환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 , 유도3단, 저 계 집 어째볼 생 각이 없 어?〉〉 

넝마같은 군복을 걸친 말라평이가 앞가슴에 수풀처럼 털이 돋아있 
는 거구의 왜놈병졸에게 한 말이였다. 그러자 하마같은 왜놈병졸은 무 
슨 생각이 났는지 손가락으로 앞가슴의 털을 북북 긁으며 마쯔이오장 
놈에게로 다가갔다. 그자들이 수군거리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옥 
고 유도3단이라고 불리운 놈이 자기 폐거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이 이마무라, 저 처녀를 이리 끌어와!》 

그러자 이마무라라고 불리운 말라팽이왜놈이 일행속의 유일한 처 
녀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아츠러운 비명… 언제 
어떻게 일행속에 끼여들었는지 알수 없던 녀자, 남달리 예쁘다고는 
할수 없으나 잘 다듬어진 조약돌마냥 단아한것이 왜서인지 어떤 불 
안감을 주던 처녀였다. 

이마무라가 발버둥치는 그 처녀를 마쯔이오장놈에게 질질 끌고갔 
다. 그러자 마쯔이는 이마무라가 자기앞에 바싹 내세운 처 녀를 재 
빨리 훑어보고는 이상야릇한 웃음소리를 킬一킬 흘리였다. 잔인하 
고도 관능적 인 신음소리같았다. 다음순간 그자는 날째 게 왼손을 내 
뻗쳐 처녀의 머리태를 움켜잠았다. 

〈〈이 년아! 一》 

어 느새 그자가 오른손으로 칼손잡이 를 바싹 틀어잡는것 이 눈에 띄 
였다. 장정환은 짜릿한 전률이 등골로 줄달음치는것을 느꼈다. 다 
음순간 마쯔이놈이 쳐든 시퍼 런 칼날이 허공에서 펀뜩하였다. 악!一 
하는 가느다란 비명… 숨막히는 한순간이 지나간 후 사람들이 눈을 
떠보니 벌써 처녀의 옷고름이 날아나고 속옷이 갈라지고있었다. 이 
어 서슬푸르게 날아간 칼자리를 따라 처녀의 앞가슴에 줄무늬처럼 
빨간 피방울들이 내 돋기 시 작했다. 아무런 방비 도 없 이 그대 로 헤 
쳐지던 처녀의 피젖은 가슴… 

〈〈안돼! 이러지 마!一》 

처녀가 두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조선말로 지 
껄이는 마쯔이오장놈의 악청은 더 높았다. 

《이년아, 비상씨국에 치마쪼고리가 모야? 이거나 홀랑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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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벗어! 홀랑 벗구 우리랑 같이 지옥에나 가자!〉〉 

한쪽에서 총을 꼬나든채 오장이 하는짓을 구경하고있던 왜놈들이 
감질이 나는것 을 참을수 없는지 책一책 떠 들어 대 기 시 작했다. 너털 
웃음을 터뜨리 는지 신음하는지 알수 없는 기괴한 울부짖음소리였 
다. 너 무도 스산한 정 경앞에 서 이 쪽의 사람들은 다들 처 마밑 의 고 
드름처 럼 얼 어불어버 렸다. 

바로 그때였다. 마쯔이오장놈이 벼락이라도 맞은듯 칼쥔 손을 내려 
뜨리고 바짝 여원 낯짝을 손바닥으로 더돔으며 기괴하게 울부짖었다. 
《고노야로!一》 

처녀가 그자의 낯짝에 침을 뱉았던것이다. 침을 밸으며 《이 더 
러 운 왜 놈아, 이 짐 승같은 놈아 !一〉〉하고 부르짖 었다. 

왜놈오장이 다시 시퍼런 칼날을 움켜쥔것은 그 다음순간의 일이 
였다. 처녀가 허척지척 뒤걸음쳤다. 그럴수록 마쯔이는 한걸음 또 
한걸음 바투 따라섰다. 칼자루를 움켜쥔 그자의 낯짝에 잔뜩 일그 
러진 잔인한 미소가 불의 그림자처럼 얼씬거렸다. 

처녀가 뒤를 돌아보며 흐느끼듯 신음했다. 구원을 바라는 절망적 
인 눈길… 그의 눈길이 장정환에게 와서 멎었다. 남달리 기골이 장 
대한 장정환이였다. 허나 왜놈들의 총구앞에 서있는 그로서는 어쩌 
는 수가 없 었다. 그저 손으로 모질게 가슴만 쥐 여뜯고있 을뿐… 
마쯔이오장놈이 칼날을 쳐들고 뒤걸음치는 처녀의 코앞에까지 육 
박해왔다. 처녀는 더이상 뒤걸음칠데도 없어 장정환의 눈앞에서 굳 
어 졌다. 한순간 피끗 장정환을 스쳐보고는 급기 야 왜놈오장의 칼날 
앞으로 획 돌아섰다.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서슬푸른 왜놈의 칼 
날에 목을 내대려고 각오한것 같았다. 

장정환은 자기의 이마빡이 땀에 젖는것을 느꼈다. 이제 한순간만 
지 나면 마쯔이오장놈의 칼날에 처녀의 목이 잘리거 나 홀랑 벌거벗 
기운채로 치욕의 구렁텅이로 끌려갈것이다. 그런데 억대우 장정환, 
너는 지금 무얼 하고있느냐? 과연 네가 이런 못난이였단 말이냐? 
조선인처녀가 쪽발이왜놈들한테 모욕을 받는데도 몸짝 못하는 그런 
버 러지같은 존재 였단 말이 냐?… 

《그래, 그래 ! _ 난 등신이다. 버 러지다. 미 물같은 놈이 다! _》 
이렇게 울부짖은것은 장정환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눈뜨고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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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나이의 자존심이 였다. 드디 여 마쯔이오장놈이 칼을 쳐드는 순 
간 그는 헉 ! 一 하고 단숨을 내뿜으며 한걸음 앞으로 쑥 나섰다. 마 
침내 눈뜬 리성 이 자존심의 심지 에 불을 단것 이다. 

급기야 마쯔이오장놈의 칼쥔 팔목이 뚝 부러지는듯 했다. 우드득!… 
뼈 가 으스러지는듯 한 소리 에 이 어 차마 사람의 소리 라고는 믿기 어 
려 운 기괴한 비명 소리 가 터져나왔다. 장정환이 어 느새 그놈의 칼쥔 
팔목을 으스러지 게 틀어잡고 비 틀어대 였던것 이 다. 

《이 쪽一발一이 새끼야!一》 

장정환이 목터 지게, 무섭 게 울부짖 는 소리 였다. 

왜놈오장이 피거품을 물고 허우적거리며 뒤쪽의 자기 폐거리를 향 
해 숨넘어 가는 악청 을 내질 렀다. 

《야 이 것 들아, 왜 가만 보구만 있어 ?…》 

그제서야 뒤쪽에서 얼혼이 빠져있던 왜놈들은 한덩어리가 된 두사 
탐에게 함부로 총질은 하지 못하고 욱_ 달려들었다. 그러나 산골에 
서 부대기농사로 뼈 대가 굵은데다가 미칠것처 럼 격 노한 장정환이 
였 다. 그가 두팔을 도리 깨 처 럼 휘 둘러대 자 어 느새 두세 놈의 이 마 
빡이 깨지고 허리가 부러진듯 했다. 하마같은 왜놈도 땅바닥에 나딩 
굴며 태질을 했다. 그러자 지금껏 장승처럼 우두커니 몰켜서서 숨소 
리도 못 내고있던 뒤쪽의 로동자들이 일시에 왁 달려들어 나머지 놈 
들을 닥치 는대 로 때 려눕히 기 시 작했다. 골로 받고 주먹 을 내지르 
고 배허 벅이며 사타구니 할것 없이 죽어 라 걷 어차며 끈죽이 되 도록 짓 
조겨 대였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그처럼 살기를 뻗치던 왜놈들이 피를 토 
하며 쓰러지자 왁_왁 기세를 올리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말뚝처럼 
박혀버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으시시 몸을 떨었다. 오탠 세 
월 짓밟히 던 인생들이여서 방금 자기들이 저지른 일에 본능적 인 불 
안과 공포를 느낀것이다. 

마침 장정환이 사람들을 향해 거 칠게 소리쳤다. 

《월하구있소, 빨리 배에 타지 않구?…》 

그것이 얼어붙어있던 사람들에게 구령이 되고 힘이 되였다. 사람 
들이 우一 밀 려 가더 니 매 생 이에 올라랐다. 그러 나 장정 환은 한쪽에 
서 파들파들 떨고있는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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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시꺼먼 어둠이 사위에서 바싹 좁혀들었다. 피비린내와 끄스 
름내만 지독했다. 장정환은 피칠갑이 되여있는 자기의 웃도리를 벗 
어 처녀에게 내밀었다. 

《일없소. 이자 거기선 정말… 장했소. 그러니 뭐 부끄러울게 있 
소? 이거라두 걸치 구 빨리 배에 오르우.》 

어둠속에서 떨고있던 처녀는 두손을 앞가슴에 모두어쥔채 비로소 
눈길을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고마와요. )) 

〈〈원, 무슨 말을! …〉〉 

장정환은 또 한번 흐느끼듯 숨을 내그었다. 

그때였다. 배에 타고있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다급히 소리치기 시 
작했 다. 

《이보게 , 정 환이 ! 게 서 월 하구있 어 ?》 

《빨리 타우. 저기 왜놈들의 배가 오구있소.》 

벌써 발동기소리가 요란했다. 강상류로 물결을 헤가르며 오르는 
시커먼 배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배에서 내쏘는 눈부신 탐조등의 
불빛이 수면우로 미끄러겨왔다. 가슴이 섬찍했다. 끝내 여기서 무 
리죽음을 당해 야 한단 말인가?… 

모두 얼어불고말았다. 탐조등의 눈부신 불광이 배에 탄 사람들의 
눈을 때렸다. 거세고 강렬한 빛의 폭풍이였다. 그 불빛은 숲가 
의 꺼져가는 재더미와 람루를 걸친 로동자들을 살살이 훑더 니 급작 
스럽게 반대편기슭으로 옮겨갔다. 

정녕 믿을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잠시후 더더욱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으니… 탐조등의 강렬한 불빛이 날아오던 그 배에서 웅글 
은 노래 소리 가 울려오기 시 작했던것 이 다.사람들은 여 전히 굳어 
진채로 눈만 데룩거렸다. 자세히 보니 배에 가득 타고있는 이국의 
병사들이 바얀(그때엔 물론 그 악기이름도 몰랐다. )을 타며 노 
래를 부르고있었다. 

해는 서산에 저물고 
저 녁안개 강기 슭에 스며 들 때 
쏘련병사 아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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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지나서 고향으로 가네 


방금전까지 죽기내기로 혈투를 벌리던 사람들이 그만 멍해지고말 
았다. 목을 빼들고 물결을 헤가르는 상륙정과 거기에 탄 낯설은 이 
국의 병사들을 얼나간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라사군대 다! 一》 

누군가 이상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냐, 쏘련군대야!》 

그러자 누군가 좀 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래, 쏘련군대다!一》 

떨 리 는 목소리 였다. 그제 서 야 장정 환은 속에 가득 들어찬 숨을 활 
내뿜었다. 마주서있던 처 녀 역시 가늘게 숨을 내긋고있었다. 

노래소리는 계속되 였다. 

쏘련병사 아득한 

초원을 지나서 고향으로 가네 

후날 장정환은 해방된 조국에서 인차 이 노래의 곡조며 가사도 알 
게 되 였다. 이 노래뿐만아니 라 사교춤이라고 일컫는 왈쯔와 쏘련공 
산당략사도 배우게 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이국정서가 이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머리속에 한뜸두뜸 사대와 교조의 얄궂은 알락무늬 
를 수놓게 되 리 라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뚝처럼 박혀선채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야릇 
한 불안과 어정찡한 호기심 에 끌려 점도록 그 노래소리 에 귀를 기 
울이고있었다. 

내려쬐는 불볕 아래 

군복어깨 땀에 절고 얼 룩졌 네 

드디여 웅글은 노래소리도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나 씀화강의 수 
면은 여 전히 쏘련상륙정 이 뒤번져놓은 밀물파 같은 파도를 그들이 
몰켜서 있는 기슭으로 끊임없이 떠밀어보내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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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년 10월 15일. 

그날 김 일성동지 께서는 다른 나라에 가있는 우리 나라 대사들을 
만나 오후 한것동안이나 금후의 대외활동방향에 대한 가르침을 주 
시였다. 저녁엔 우리 나라를 방문한 라오스애국전선당 예술단배우 
들을 접견하고 그들의 공연도 보아주시였다. 공연이 끝났을 때는 밤 
이 깊 었다. 몇해전 에 준공한 대 극장은 대 동강에서 흘러오는 눅눅한 
밤안개에 고요히 잠겨들고있었다. 대극장 앞도로의 가로등과 장식 
등의 현란하던 불빛들도 어둠속에 금니는 안개발속에서 숨차게 낌 
벅 이 였다. 

김일성동지 께서는 차에 오르시 자 곧장 내각으로 가자고 이 르 
시였다. 내각에 돌아가 하셔야 할 일들이 많고도 많았다. 

동란의 60년 대 이다. 특히 올해 1964년 은 이 태 전 까리브해 의 위 
기가 터진이래 제일 곡절많은 해로 력사에 기록될것 같다. 알제리 
에서 시위자들에 대한 프랑스군의 류혈적총격사건으로 시작하여 빠 
나마운하에서의 미군과의 무력충돌, 인디아의 칼커타시와 꽁고 
(레오쁠드빌 )에서 일어난 폭동, 이 어 미국 뉴욕에서의 대규모적 인 
흑인들의 폭동… 8월 2일에는 또 미제가 북부월남의 순찰정들이 미 
군구축함을 공격했다고 떠들면서 북부월남에 대한 대대적인 공중폭 
격을 감행하였다. 력사에 바크보만사건(일명 통킹만사건)으로 
기록된 미제의 이 강도적도발사건은 아시아에 또 한차례의 대규모 
적인 전쟁을 몰아왔다. 

그러한 특종보도가 그칠새없는 60년대 이 다. 전파의 세계 역 시 매 



일 말벌떼처럼 윙윙거리며 세상사람들의 호기심 많은 귀구멍에 온 
갖 불길한 소식들을 쉼없이 쏟아붓군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좌석에 앉은 부관에게 라지오를 틀라고 이 
르시였다. 라지오에서는 종합보도가 이미 끝나고 다음날의 일기예 
보가 울려 나오고있었다. 

《…북동풍이 8내 지 12메 터 로 불고 파도는 2내 지 2. 5메 터 로 일 
겠습니다. 그러므로 조선동해 북부와 중부해상에서 작은 배들은 주 
의 해 야 하겠습니 다. )) 

그이께서는 일기예보 하나도 무심히 듣지 않으신다. 한동안 풍랑 
속에서 고생할 어로공들을 생각하시며 이윽토록 창밖에 눈길을 주시 
였다. 차창밖에서는 벌써 북동풍이 맹렬히 돌진해오는듯 길 좌우에 
줄지어 선 가로수의 우듬지 들이 세 차게 몸부림 치 기 시 작했다. 하건만 
라지오에서는 서정적인 음악이 물결쳐나오고있었다. 요즘 사람들 
속에서 인기 가 대 단한 예 술영 화 〈〈갈매기 호청 년들〉〉의 주제 가이 다. 

잔잔한 물결우에 별빛 은 반짝이고 
돌아가는 배길에 꽃보라 뿌리네 
달리는 배전에 출렁이 는 물결은 
자랑찬 하루일 을 이 야기하네 

흥그러운 그 음악도 오늘은 이전처럼 마음속에 물결쳐들지 않는 
다. 그이께서는 의자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시였다. 오 
만무례한 미제가 동아시아에로 몰아오고있는 전쟁의 불길을 막기 위 
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도 시급히!… 

그이께서 는 얼마후 차가 내각청사에 멎어서서야 눈을 뜨시 였다. 

집무실에 들어가시자 언제나 주도세밀한 서기가 따라들어와 몇가 
지 서 류를 탁우에 놓아드렸다. 그이 께서 는 그중 중공업부문의 공장, 
기업 소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부터 재빨리 훌어 보시였다. 

《이거 야 쎄브와 계 약되 여있는 설비명세들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수령님.》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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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브에서 계속 날자를 드리고있습니다.》 

〈〈그렇다?…》 

그이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남일부수상은 언제 떠난다고 했소?〉〉 

《예, 래일 아침 첫 모스크바행 비행기편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합 
니 다.〉〉 

《갈 필요가 있을가?…》 

그이께서는 서류들을 한데 모아 밀어놓으며 혼자말씀처 럼 뇌 이시 였다. 

《쎄브에서 하는 일이 점점 심상치 않거던. 그런데도 또 거길 찾 
아간다?! …》 

서기는 아무말없이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아마 쎄브에 대 
하여 생각하는듯 했다. 

쎄브 (경제호상원조리사회)는 1949년 1월 모스크바에서 쏘련 
과 체스 꼬 슬로벤 스꼬, 쁠스까, 마자르,로므니아, 벌가리 아대표들 
의 경제회의결정에 의하여 성립되였다. (후에 몽골이 가입. ) 

그런데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하면서 쎄브를 주도하게 된 그들은 자 
본 주의 시 장에 대 처 하기 위하여 발족된 초기 의 리 념과는 심 히 어 긋 
나게 국제분업의 간판밑에 성원국들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기구 
로 쎄브를 악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는 흐루쏘브가 쎄 브에 가입할것 을 집 요하게 강요하는 속에 서 
도 아직 거기에 들지 않고있다. 하여 갖가지 기계설비들파 금속제 
품들을 제때에 받지 못하거나 때없이 계약이 파기되는 등 부당한 경 
제적제재와 압력을 받고있다. 

서기가 나가려 할 때 그이께서 다시 그를 부르시였다. 

〈〈서 기 동무, 중앙통신사에선 아직 아무 소식 도 없소?〉〉 

서기는 그이께서 지금 무엇을 관심하시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다. 
하여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그으며 말씀드렸다. 

〈〈수령님,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음 …》 

김 일성 동지 께서는 다시 문건 에 로 눈길을 옮기 시 였다. 그러 나 웬 
일 인지 글줄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아무 소식 
11 



도 없다는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시였다. 얼마전 중국공산당 중앙 
위원회 대외련락부 부부장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명의로 된 전 
문을 그이께 보내왔었다. 거기에서 그는 어떤 중대사변이 꼭 1주일 
후에 있을것이라고 미리 날자까지 찍어서 알리지 않았던가?!… 


2 


10월 16일 새벽 4시.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불이시였건만 한시간만 
엔 또 자리 에서 일어나 새벽산책을 위해 정원으로 나가시 였다. 늦 
가을의 새벽… 한줄기 바람이 정원을 스치고 지나가자 나무잎들이 
우수수 설레였다. 뒤쪽에서 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 
럽게 울리던 발자국소리가 멎었다. 부관들이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따라나선것이다. 아침산보때만은 따라다니지 말라고 그만큼 일 
렀건만… 벽창호들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대기 
는 그토록 맑고 시 서 늘하였지 만 마음은 웬일 인지 지난밤처 럼 여 전 
히 무거우시 였 다. 역 시 쎄 브때 문이 다. 쎄 브에 서 우리 에 게 절실 
히 필요한 중요제품들에 대하여 터무니없이 많은 량의 금과 연, 동 
을 비롯한 유색금속들을 요구하면서 납입기일을 질질 끌고있기때문 
이다. 이것이 우리의 계획경제에 예상치 않았던 많은 피해를 가져 
올수도 있기때문이다. 

자연히 발걸음이 떠지고있었으나 그이께서는 그것을 느끼시지 못 
하였다. 손을 들어 황이 들어가는 개암나무잎사귀 하나를 뜯어 뱅 
뱅 돌리며 생각하시 였다. 진정한 동지 적우애는 겉 발린 웃음이 나 야 
지 러지 는 애교가 아니 라 진지한 노력 이 고 의지 여 야 한다. 그런데 사 
회주의대가정, 친형제들이라고 서로서로 어깨를 껴안고 시처럼, 노 
래처럼 웨쳐대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민족리기주의의 독버섯을 마음 
속에 자래우기 시 작했는가?… 


12 



수령님의 추억 (1) 


1956년 6월. 

우리가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국가들을 공식친선방문하던 때의 
일이다. 마자르를 방문한데 이어 체스꼬슬로벤스꼬의 수도에 이르 
자바람으로 우리는 정부간회담탁에 마주앉아야 했다. 체스꼬슬 
로벤스꼬 내각수상이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쎄브회의에 가야 할 시 
간이 림 박했기 때 문에 무리한 요구라는것 을 잘 알면서 도 회 담을 청 
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존경 하는 김 일성 동지, 부디 량해 하시 기 를 바랍니 다. )) 

〈〈아니 , 난 피끈하지 않습니 다. 일 없습니 다. 그럼 먼저 의 논 
할 의제를 귀 측에서 제 기하십시 오.〉〉 

그런데 그의 첫 발언이 뜻밖이였다. 

《방금 쎄브문제가 나왔지만… 조선에서도 쎄브성원국이 되여 사 
회주의 나라들의 분업 에 참가하는것 이 어 떻 겠습니 까?》 

《그건 귀측에서 미리 준비한 토의의 정입 니까, 아니면 그 누군가 
의 주문을 받은것입니까?》 

그 나라의 수상은 대번에 얼굴이 구운 가재빛으로 되였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모스크바에서 바로 그것을 요구했습니 
다.〉〉 

《요구하다니 ?)) 

《예 , 우리 더 러 조선 대 표단과 회 담하면 쎄 브가입문제 부터 먼저 
타진해보라면서 …》 

《그렇다?!… 그 문제라면 더 론의하지 맙시다. 우리는 아직 거 
기 에 들 생각이 없습니다. 이제 쎄브회의 에 가면 모스크바의 그 사 
탐들에 게 우리 가 말한 그대 로 말해 주어 도 됩 니 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 마주보기만 했다. 나는 그때 얼굴을 붉 
히며 저도 모르게 손가락마디를 딱딱 꺾고있던 그 나라 정부수상을 
보면서 흐루쏘브수정주의 추종자들의 난감한 처지 에 심심한 동정을 
금할수 없었다. 


13 



그들은 더이상 할말이 없는듯 했다. 흐루쏘브의 수정주의워드까 
를 몇잔 받아마시고 요란스럽게 《개인미신》반대를 불어대고있던 
그들이였으므로 주체를 확고히 고수하고있는 우리와는 언어가 통하 
지 않았던것이다. 그럴 때 자칫 잘못하여 악보에도 없는 딴소리를 
냈다가는 흐루쏘브의 길다란 지휘봉막대기에 골통을 호되게 얻어맞 
을수도 있기때문이다. 

이어 민주도이췰란드 방문. …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쉐네펠 
드비행장에서 진행된 성대한 환영행사와 도이췰란드사회통일당 
제1비서 발레르 울브리히트와 내각수상 오토 그로레블파 가진 따 
뜻하고 우애에 넘친 회담들이다. 그러나 그 회담탁에도 쎄브가 그 
림자를 드리우고있었다. 우리의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디젤기 
관생산을 원조하는 문제가 론의되자 당제1비서 울브리히트가 침울 
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쎄브성원국이니만큼 다른 나라와 경제관계를 맺는데 
서 일부 제한성 이 있다는것을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부디 리해 
해주셨으면 합니다.》 

놀라운 일이였다. 과연 쎄브라는것이 성원국들을 어떻게 통제하 
기에 이렇듯 제 나라 경제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것인가?… 

다음날 정부초대소에 묵고있는데 도이췰란드 당제1비서와 내 
각수상이 찾아와 다시 그 문제를 꺼들며 설명을 가했다. 

내각수상 ;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어제 토론하던 문제인데 … 저희 
들의 딱한 처지를 잘 리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 
리 나라에서 금속제품 같은것은 쎄브와 사전협의를 가 
지지 않고는 조선에 납입하기 매우 어렵게 되여있 
습니다. 

당제1비서 :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최종합의를 보자면 
모스크바와 토의 해 야 하기때문에 시 간이 좀 많이 걸 
립니다. 

내각수상: 그래서 우리는 김일성동지께서 돌아가시는 길에 쎄 
브와 직접 협의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14 



쏘련방문이 마지막일정 으로 예정되 여 있다고 하기 에 
그때 쏘련지도부와 직접 론의하시는것이 더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 

당제1비서 : 예, 우린 귀측에서 그렇게 하는것이 제일 좋은 안 
이라고 볼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는 그들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어쩌겠습니까. 쎄브의 주인이 창고열쇠를 허리춤에 차고 내주 
지 않는데 당신들이 제멋대로 쇠를 까고 물건을 꺼낼수야 없지 않 
습니까. 일없습니다. 우린 당신들의 립장을 충분히 리해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조금 게면쩍 어 하면서도 마음이 놓이는듯 두팔을 쩍 
벌려 보였다. 

그다음 모스크바… 이미 짜여진 일정대로 쏘련공산당 제1비서 겸 
내각수상인 흐루쏘브,내각 제 1부수상 미꼬얀과 당내 제2인자로 된 
브레쥬네브 등과의 회담이 먼저 진행되였다. 

그날 흐루쏘브는 말을 많이 하였다. 쎄브에 들기를 권하며 능갈 
친 웃음을 지 독한 려송연 연기 와 한데 버물어 후一후 끊임 없 이 내 불 
었다. 쎄 브에 로 유혹하는 얄궂은 미 소와 독한 려송연의 일 대 집 중 
포화였다. 

그는 조선 에서 전쟁 의 후파를 가시 기 위한 복구건설 이 한창인 어 
려운 형편에서도 공업화를 다그치고 절실히 필요한 기계설비들파 자 
동차, 뜨락또르까지 자체로 해결해보겠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겠는 
가, 쏘련이 주는 기계를 가져다가 공업화하는것이 더 빠르지 않겠 
는가, 자체로 기계들을 생산하려면 원가도 높고 수지도 맞지 않는 
다고 력설하였다. 

그는 열정적인 웅변가였다. 말마디마다 거기에 그 무슨 장단을 먹 
이듯 두름한 손가락으로 탁자를 토닥토닥 두드리군 했다. 그의 연 
설이 끝나자 내각 제1부수상인 미꼬얀이 열심히 뒤를 달았다. 

《옳습니 다. 기 계 공장을 건설할것 이 아니 라 쎄 브에 가입하여 
국제분업 에 참가하는것 이 귀 국으로서 는 더 유익할것 입 니 다. 
존경 하는 김 일성동지 , 미 국의 포드자동차회 사도 지 금 년간에 수십 , 
15 



수백만대씩 생산하고있고 또 그쯤 되여야 수지가 맞는다는것을 고 
려하십시오. 지금 우리 쏘련에서 생산하는것도 수지가 안 맞는데 
작은 나라 조선에서 1년에 자동차 몇대정도 만들어가지고서야 어 
떻게 수지를 맞추겠습니까. 단언하건대 그렇게 해서는 아무 리득 
도 얻을게 없습니다. 오히려 빚더미만 자꾸자꾸 높아갈수 있습니 
다.》 

그는 말끝을 맺자 소리없이, 입이 째지도록 옷었다. 흐루쏘브가 
선창한 쎄브주제곡에 멋진 후렴을 달아주었던것이다. 흐루쏘브 
도 매우 만족해했다. 탁자우에 올려놓은 손으로 또다시 우크라이나 
식의 무곡장단을 흥겹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객관적실정은 바로 이렇습니다. 김일성동지, 그러므로 우린 
진정 선의의 감정을 가지고 지금 어려운 길을 걷고있는 조선동지들 
이 쎄브에 들기를 재삼 권고하는바입니다. 좀 늦은감이 없진 않지 
만 이제라도 쎄브에 들면 그에 해당한 혜택을 받게 될것입니다. 그 
러니 더이상 주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결심하는것이 좋습니 
다. )) 

그것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였다. 점잖은 부탁도 아니요, 친절한 
조언도 아니였다. 웃음으로 반죽된 끈질긴 유혹이였고 모종의 압력 
이 였다. 지 금 결심하는것 이 좋다?! … 어제 도 오늘도 지 휘 봉을 
휘 두르는데 습관되 여있는 흐루쏘브. 웃음이 사물거리 는 그의 두눈 
이 회색 인것처 럼 입고있는 양복도 회색이 였다. 

《아닙니다.〉〉하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흐루쏘브동지, 우린 
쎄브에 들 생각이 없습니다.〉〉 

순간 지금까지 노상 웃음이 버물어지던 흐루쏘브의 얼굴에 경련 
이 일기 시작했다. 회색의 두눈도 빛을 잃었다. 쎄브주제곡의 흥 
취를 돋구어주던 재빠른 손가락장단도 몇었다. 돌변하는 그를 눈여 
겨보며 미꼬얀은 놀란듯 입을 오무리고 길게, 가늘게 한숨을 내그 
었다. 매우 유감스럽다는 의미로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는듯 했다. 

나는 천천히 계속했다. 

《그렇 다고 우리 가 사회 주의 나라들의 분업 을 반대하는것 은 결 
코 아닙 니 다.》 


16 



흐루쏘브의 두눈에서 불빛이 어롱거렸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거기에 들지 않겠습니까. 사실 지 
금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의 공업은 우리에 비하여 대단히 높은 수준 
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는 아직 중학생수준도 못됩니다. 
그러므로 우린 유럽나라들파 수준이 비슷해질 때, 즉 우리 나라의 
공업도 대학생수준에 올라섰을 때 국제분업문제를 론의해보자는 
것 입니 다.» 

흐루쏘브가 또 입을 열려고 했으나 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실 우리 나라에 기계공업이 없는 조건에서 국제분업에 참가 
하게 되면 우리는 쎄브성원국들에 원료나 대주어야 할것입니다. 그 
러면 후날 우리 에게 뭐가 남겠습니까. 다 파먹은 빈 동굴들만 남게 
될것인즉 그러면 우린 밤낮으로 동냥바가지를 차고 다른 나라들에 
구걸하러 다녀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그 지경에 이르면 쏘련에는 또 
얼마나 무거운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흐루쏘브는 아무말없이 입귀만 흠칫거렸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 
이 흘렀다. 그대신 창밖의 나무가지우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오구 
구 모여앉아 한숨 돌리던 뭇새들이 무슨 의견불일치가 생겼는지 남 
의 소리는 듣지도 않고 저마끔 일제히 승벽 이 나서 분주살스럽게 떠 
들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것들한테도 쎄브와 같이 먹이를 놓고 론 
쟁하지 않을수 없는 심각한 협동시장문제가 있는 모양이였다. 

밖에 서 는 7월 의 무더 운 날씨 가 한창이였으나 방안은 아직 지 
난 겨울의 랭기를 다 밀어내지 못한듯 했다. 흐루쏘브가 추위를 타 
는것 처 럼 몸을 옹송그렀 다. 잠시후엔 그가 또 굵은 손가락으로 탁 
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좀전의 경쾌한 무곡장단과는 너 무나도 대 
조적인, 무겁고도 느린 박자였다. 대신 날카로운 눈빛을 자기 사 
탐들에게 던지고있었다. 누구든 빨리 입을 열라는 신호였다. 그러 
나 원래 표정이 메마론 브레쥬네브는 물론이고 달변의 능수로 알려 
진 미꼬얀조차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에一 그럼》하고 마침 내 흐루쏘브는 무겁 게 한숨을 내 긋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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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쯤합시다. 김일성동지, 그 문젠 일단 
뒤로 미루고 다음문제로 넘 어가는것이 어떻습니까?》 

그는 우리를 면바로 마주보기를 저어하고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소리없는 미소에서 이런 대답을 들었을것이다. 

《쎄브에 대한 우리의 답은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같을것이 
다. 우린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 
신들은 알아야 한다. 흐루쏘브동지, 당신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만큼 대단하지도 않거니와 우리 또한 그런데 순종할만큼 못나지 않 
다는것을!…〉〉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조국으로 돌아오며 열네살때 압록강을 건느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던것처럼 강 
력한 자립적민족경제를 일떠세울 때까지는 그 나라들을 다시 방문 
하지 않기 로 굳게 속다짐하였 다. 

어렵던 그 나날로부터 10년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자 
주성을 견지하면서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하였다. 
하여 우리의 주체공업은 드디여 남들이 경탄과 부러움에 찬 눈길로 
바라볼 정 도로 크게 자라고 강력 해졌다. 그럴수록 쎄 브는 우리 가 거 
기에 들지 않는다고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나날이 더 높이고있다. … 


동녘이 터오고있었다. 어디선가 새날의 방송시작을 알리는 《애 
국가〉〉의 선 를이 울려오기 시 작했 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토록 마음속에 친숙한 그 선률을 속으로 따 
라부르시였다. 저 먼 하늘가에로 은은히 울려가는 선률… 그 하늘 
에서는 시뻘건 빛의 창살이 비껴가더니 차츰 주위의 크고작은 구름 
장들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이께서는 몸을 돌려 멀찌기 뒤따르는 부관들에게 가까이 오라 
고 손짓하시였다. 떨기나무뒤쪽에 반쯤 몸을 숨기고있던 부관들이 
서 로 마주보며 쭈밋 거 렸다. 수령 님 께서 아침산보예 까지 따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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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것을 질색하시므로 무슨 추궁이 있을가봐 저 어하는듯 했다. 

〈〈어서 오라는데.》그이께서 다시 손짓하시였다. 《동무들과 뭘 
좀 의논할게 있소.》 

《예, 그렇습니까?》 

부관들이 밝게 옷으며 쟁싸게 달려왔다. 커다란 기대가 어린 밝 
은 표정들이였다. 

《이자 내 좋은 생각을 하나 했는데 말이요.〉〉그이께서 말씀하 
시였다. 《동무들파 좀 의논해보자는거요.》 

《예, 그렇습니까?〉〉하고 김윤필이 먼저 챙챙 울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다른 두 부관도 싱글거리며 청을 높이였다. 

《예,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무언고 하니…〉〉수령님께서는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별안간 엄 
숙한 기색으로 말씀을 이으시 였다. 〈〈동무네 세집살림을 하나로 합 
치면 어떻겠는가 하는 그거요.》 

《예?!…》 

부관들에 게 는 너 무도 뜻밖의 물으심이 였다. 그들은 어 안이 벙 벙 
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볼뿐이 였다. 

수령님께서 재촉하시였다. 

《왜 말을 못하는가? 동무네 살림살이를 합쳐서 공동으로 살림을 
하자는거요. 세집살림을 하나로 합쳐가지고 최동무네 집에선 밥만 
하고 현동무네 집에서는 국만 끓이고 윤필동무넨 김치를 잘한다니 
그것만 담그고… 이렇게 서로 한가지씩 전문화하면 더 잘살수 있 
지 않겠소? 어 서 말해보라구. 그렇 게 하는게 좋겠는가, 나쁘겠 
는가?…〉〉 

부관들은 그제야 말씀의 뜻을 알게 되였지만 여전히 대답을 주저 
하는 눈치 였다. 

김윤필 이 다시 조심스럽 게 말씀드렸다. 

《그렇지만 수령님, 우린 저마끔 식성이 다른데 어떻게?…》 

현주형부관이 그뒤를 이었다. 

《수령 님 ! 또 집 집 마다 요구수준도 다릅니 다.》 


19 



최가 성을 가진 부관도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보랬다. 

《그리구 먹는것만 아니라 입고 쓰구 사는데서도 자기식 취미와 
기호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단 말이지?…》 

수령님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자 부관들이 그이의 좌우에 바싹 
불으며 따라섰다.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보라구. 자그마한 가정을 합치는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나라 
의 큰 경제를 통합하여 운영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동 
무들도 알고있겠지만 지금 쏘련과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우리에 
게 쎄브에 들라고 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그들은 우리가 쎄브 
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폐쇄경제이니, 뭐니 하면서 비방중상을 일 
삼다 못해 인젠 국가들간의 무역계약까지 파기하겠다면서 위협하고 
있소.〉〉 

부관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있었다. 

《그런데 동무들은〉〉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 였다. 〈〈내 말 한마 
디 에 쎄브의 불합리성을 즉시 파악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말이요.》 
그이께서는 지금껏 손에 들고계시던 나무잎을 흘 던져버리시였다. 

《지금 우리 내부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쎄브에 들어 야 먹을알이 있 
고 잘살수 있다고 내놓고 떠들어댄단 말이요.》 

《예?…》 

그이곁에 불어서있던 부관들이 부르르 몸을 떠는것이 알렸다. 숨 
소리도 거칠어졌다. 

《수령님 ! 그게 도대체 어떤 놈들입니까?》 

〈〈아니, 그따위 놈들을 그냥 둘수가 있습니까?…》 

수령님께서는 한순간 민족보위상 김창봉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김 창봉은 쏘련류학시절부터 사대주의적경향이 우심했었다는 평 
판이 돌고있는데다가 요즘에는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쎄브문제 
예까지 끼 여들면서 말이 많다고 한다. 

그다음… 당안에서는 국제부문사업을 하는 박용국이 그 대표적인 
물이다. 얼마전엔 그가 무역성에 있는 박유진이라는 젊은 부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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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국제관계부문 일군들의 특강예까지 출연시켰다고 한다. 그 
가 그렇게 한 속심인즉 강의를 통해 우리 나라가 쎄브에 들지 않으 
면 아무리 자립적민족경제라 할지라도 인차 마비되고 질식되여 망 
할수 있다는것을 증명해보이려 했다는것이다. 

박용국과 박유진, 그들 두사람은 신통히 외국류학을 한 사람들로 
서 그때 벌써 수정주의의 악성돌림감기에 단단히 걸려있었다. 지금 
은 그것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고있고… 

하다면 남일은?… 남일도 역시 쏘련과의 인연을 떼여놓고 자기의 
운명을 생각할수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남일은 쏘련 따슈젠트사범 대 학 수학부졸업 생 으로서 수학교원도 
했고 방학세, 김학인 등과 같이 조국에 나올 때에는 쏘련군대위였 
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오탠 세월을 살아온 그였지만 어제도 오늘 
도 남의 집 울바자안을 넘보느라고 눈이 비뜰어져본 일이 없다. 

하지만 박유진, 그 젊은이는 단 몇 년간의 류학생활파정 에 벌써 수 
정주의의 홍역에 걸려 눈이 흐려져버렸다. 결국 자기의 눈대신에 사 
대와 교조의 광학렌즈를 끼워맞춘 금테안경을 코에 걸고 그것으로 
세상을 내다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대조적인 두사람인가?!… 

그이께서는 지금도 해방직후 남일이 교육국 부국장으로 일하던 때 
의 일을 잊지 않고계신다. 그때 남일은 자기가 직접 새 나라의 어 
린이들을 위한 교파서를 쓰는 한편 모든 학교들에서 김일성장군의 
초상화만 모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었다. 그러자 쏘련의 어느 
가맹공화국의 마구간 구유통에서 삶은 콩쪼각이나 주어먹던 얼마우 
재들이 들고일어나 쏘련군사령부에 그를 반쏘분자라고 꽂아바치 
며 그를 체포께 할 음모까지 꾸미였다. 

그이께서 직접 쏘련군사령부에 전화를 거시여 남일에게 닥친 신 
변의 위험을 막아주시였다. 그리고 그를 댁에 부르시여 밤이 새도 
록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날 남일은 자기가 아버지를 따라 홍범도독립군에 들어가던 일 
이며 류혈적인 흑하사변의 체험 그리고 쏘련 우쑤리강기슭에 거주 
하고있던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간첩으로 몰리여 멀리 깝까즈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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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스삐해의 한끝에서 우즈베끼스딴의 험준한 산골짜기예까지 강 
제이주되던 일이며 그곳에서 황무지를 일구어 가까스로 생계를 유 
지 하던 일 등을 죄 다 말씀드리 였다. 

결국 남일은 희망의 별이던 쏘련에서까지 조국이 없는 아픔을 뼈 
에 사무치게 맛본 사람이였고 박유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 
대 이다. 물론 그의 몸에 아직 배 여있을지 모를 홀스타인종 젖소의 
비린 젖내를 빼는것쯤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이의 생각은 끊어졌다. 현주형부관이 그이의 곁에 불어 
서 며 조심스럽 게 말씀드렸 던것 이 다. 

〈〈수령님 ! 이쪽입니다. 거긴…〉〉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 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 여 그만 늘 다 
니 시 던 오솔길 에 서 벗 어나고있 었 다. 

《수령님.》하고 김윤필이 두손을 마주잡고 우드득 소리를 내며 
말씀드렸다. 〈〈아직도 그런것들때문에 이렇게 마음쓰셔야 하니… 
정 말 분합니 다. 그것 들을 절대 로 용서 하지 말아야 합니 다.》 

그는 지금 수령님께서 나쁜 놈들때문에 너무 마음이 무거우시여 
정해진 산보길에서까지 벗 어난것 이 라고 판단한것 이 다. 다른 부 
관들도 숨소리 를 거 칠게 내뿜으며 말씀드렸다. 

《옳습니다, 쳐갈겨야 합니다.》 

《예, 한몽둥이 로 때 려 부서 야 합니 다. ))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며 또 걸음을 옮기시였다. 싸늘한 
바람이 휘一익 불어치자 정원의 여기저기에서 황이 든 나무잎들이 
떨어져 흘날렸다. 이해의 겨울은 여느때보다 더 일찌기 몹시 서두 
르며 닥쳐오는것 같다. 

〈〈동무들이 생각하는것처럼》하고 그이께서 천천히 말씀을 이 
으시였다. 〈〈우리가 사람들을 쩍하면 떼버리구 차던질내기를 하면 
누가 우리랑 같이 혁명을 하겠다구 하겠소? 비근한 실례로 우리가 
한 축구림을 뭇고있다구 생각해보기요. 그런데 동무들이랑 한림에 
속해있는 사람들중에 몇사람이 밉게 논다구 해서 그들을 솎아내면 
그 자리에 빈 구멍이 숭숭 나지 않겠는가? 그런 림이 어떻게 경기 
에 나가 집 단주의 정신을 발휘할수 있겠는가? 아니, 그래선 안돼. 

22 



우린 그들이 외국에서 묻혀가지고와서 퍼뜨리고있는 사대주의, 수 
정주의의 돌림감기비루스부터 깨끗이 제거해야 하는거요. 다른 
데로 더 퍼지지 않게, 응?…》 

부관들은 눈길을 떨구었다. 깊은 자책에 잠긴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새날의 아침산책은 이렇게 끝났다. 얼마후 집무실로 들어 
가시던 그이께서는 한순간 걸음을 멈추고 서기에게 묻는듯 한 눈길 
을 주시였다. 

서기가 서둘러 말씀드렸다. 

《아직 소식이 온게 없습니다, 수령님.》 

《음… 그럼 최재우 내각 제 1사무국장을 찾소.》 

〈〈알았습니다.》 


3 


수령 님께서는 신문을 펴 드시 였으나 웬일인지 글줄들이 눈에 잘 들 
어오지 않아 담배갑을 여시였다. 흔히 로동자, 농민들과 담화하실 
때를 제외 하고는 그닥 즐기시지 않는 담배 였다. 

웬일인지 쎄브에서 압력의 도수를 높이는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 
지시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남일부수상을 보내야만 하는가? 나날 
이 더 오만무례하게 구는 쎄브에?… 

수령님의 추억 (2) 


1951년 7월. 

판문점에서 바야흐로 조미간의 력사적인 정전담판이 시작될 무렵 
이였다. 그때 우리는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이였던 남일을 정전담판 
우리측(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측) 수석대표로 파견하기 
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남일을 판문점 정전담판장으로 떠나보내려니 
그가 타고갈 승용차가 준비되 여있지 않았다. 누구도 그에 대 해서 는 
23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하여 운수국장에게 새 차를 준비할데 대한 특 
별파업을 주었다. 며칠후 운수국장이 어데서 무슨 수를 씨서 구했 
는지 용케도 금시 에나멜칠을 한것같은 새 승용차를 최고사령부에 
끌어다놓고 목소리 도 찡찡 하게 보고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당신의 명령대로 개성 판문점 군사 
정전담판장에 나가는 우리측 수석대표동지가 타고갈 승용차를…》 
나는 길다란 보고를 채 듣지 않고 남일에게 눈길을 옮기였다. 
《남일동무, 차가 어떻소? 뭐니뭐니 해도 주인의 마음에 들어야 
지. 그래 마음에 드오?》 

〈〈예. 마음에 돕니다, 최고사령관동지 !〉〉 

〈〈무엇이 마음에 드오?〉〉 

《옛, 우선 차가 새것이구 대형인데다가 불수강으로 띠를 요란하 
게 두른것도 대 단히 위 엄 있어보이 는게 … 아주 제격 입 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니, 내 보기엔 별로 시원치 않은것 같소. 
이런 차를 타고 갈바에야 전투용차를 택하는게 낫지.》 

남일은 물론 가까이에 있던 운수국장과 다른 장령들도 어마지두 
놀란 기색이였다. 사실 그 차는 어느 한구석도 흠잠을데가 없는것 
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차를 두고 앞으로 있게 될 전승열병식을 
위해 특별히 주문해오지 않았을가 하고 생 각할 정 도였다. 전쟁 이 한 
창인 때 그보다 더 좋은 차를 구한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였다. 하지만… 문득 기억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래, 이런 일 
에 제격인 차가 한대 있었지. 보기에도 멋있고 중량감까지 나는 그 
런 승용차가!… 

《그럼… 남일동무가 타고갈 차는 내가 준비해보겠소.》 

남일은 무던히도 놀란듯 했다. 그로서는 대바람에 눈이 커질만도 
했다. 무엇 인가를 찾는듯 재 빨리 사위 를 둘러보기 까지 했다. 
《아니, 그런 차가 어디에?…》 

〈〈이제 두고보라니까.》 

드디 여 남일 이 판문점 으로 떠나야 할 그날이 왔다. 

맑은 아침이 였다. 불타는 해 가 알봉우에 서 금빛 을 휘 뿌리 는데 소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그 봉우리밑 외통길로 대형승용차 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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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소리도 없이 미끄러겨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그 차에 
로 쏠리였다. 

〈〈이 차가 어떻게?…》 

남일은 몇번이고 차를 돌아보고 손으로 쓸어보기까지 했다. 어느 
새 최고사령부의 전체 군관, 장령들까지 무슨 비상소집구령이라도 
받은것처럼 일시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떠들어댔다. 

〈〈야, 멋있구나!》 

《총참모장동지, 헌데 이런 차가 어데서 났습니까?》 

남일은 대답을 못하고 나만 쳐다보고있었다. 

《오늘부터 남일동문 이 승용차를 타고 정전담판장으로 다녀야겠 
소. 사실 이 차는 전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가 타던것이요. 그것 
을 우리 105땅크사단동무들이 지난 서울해방전투때 로획하였지.》 
그러자 〈〈야!一》하는 경탄의 속삭임이 마론 잔디밭에 달린 불 
길처 럼 뜨락을 휩쓸어갔다. 남일도 벅찬 격 정을 이기지 못하는듯 입 
을 하一 벌린채 다물지 못하고있 었 다. 

〈〈남일동무, 우리한테 뭐 차가 없어서 이 차를 타고가라는게 아 
니요. 이제 동무가 이 차를 타고 정전담판장에 척 나타나기만 해보 
오. 아마 적들은 깜짝 놀랄거란 말이요.》 

남일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모았다. 

〈〈사실 이 승용차는 미국국내에서도 몇사람밖에 타지 못한다고 하 
오. 그래서 한때 서울바닥에선 유일하게 무초대사만이 타고다녔지. 
그런 차를 이제 조선인민군장령인 남일동무가 척 타고 나타나면 놈 
들이 어쩔것 같소? 가뜩이나 흰기를 들고나온 폐배자의 수치감때문 
에 눈건사도 제대로 못할 놈들이 아니요. 그런데 이 차까지 나타나 
면 아마 대 바람에 홍찌 를 좌갈길거 란 말이 요.》 

폭소가 터졌다. 장령들과 군관들 그리고 어느새 소식을 듣고 뜨 
탁에 슴새여들어온 통신병들까지 핫하하!… 하고 맘껏 소리쳐웃어 
대 였다. 남일도 소리없이 웃고있었다. 

《자, 남일동무. 그럼 … 한마디만 더 하겠소. 우리는 세계 〈최 
강〉을 자랑하는 미제침 략자들의 거만한 코대를 꺾 어버 린 조선사람 
들이 요. 그러니 영웅조선의 그 영예와 자부심을 안고 배심든든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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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시 오.》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배심든든히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이 렇게 남일은 떠나갔었다. 적들에게서 로획 한 고급승용차를 타 
고 전투장으로, 정전담판장으로 배심든든히 호기를 부리며 갔었다. 
그러던 남일이 구차스러운 길을 또 간다고 한다. … 


4 


승용차는 바람같이 달리고있었다. 최고속이였다. 속도계의 바 
늘이 마지막눈금에서 파르르 떨고있었다. 차창유리에 번득이는 해 
빛도, 길 좌우에서 일제히 마주달려오던 가로수들도 어느새 뒤로 획 
획 날아지나가군 했다. 

《좀 더 속도를 높이오, 좀 더 ! …》 

이렇게 불같이 운전사를 독촉하고있는것은 내각 제1사무국장 최 
재우였다. 그는 줄곧 시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마침내 차가 비행 
장으로, 항공역사의 앞마당으로 날아들어갔다. 승용차가 삐一익 ! 一 하 
는 아츠러운 소리와 함께 고무바퀴로 돌바닥을 허비며 멎어서기 바 
쁘게 문을 열고 내린 최 재우는 승용차의 문짝을 뒤 로 광! 후려닫았 
다. 이 어 계 단을 두개 씩 뛰여 오르고 항공역 사의 유리 문까지 그대 로 
들부실듯 성급히 밀고들어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최재우는 한쪽벽면을 가득채운 창유리로 비행기가 리륙을 위해 활 
주로우를 미 끄러 져 가는것 을 보자 그만 뚝 멎 어 서 버 렸 다. 다리 가 후 
들거렸다. 리륙하는 비행기의 뒤꽁무니에서 뿜어나온 화염이, 
불의 아지랑이가 그의 두눈을 사정없이 지져대는듯싶었다. 그자신 
이 불의 아지 랑이를 들여마신듯 목구멍 이 타들며 칼칼해났다. 처녀 
안내원이 친절하게 옷으며 다가왔으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 … 내 각 제 1사무국장동지 이 십 니 까?》 

처 녀안내원이 묻는 말이 였다. 


26 



〈〈그렇소.》 

다음순간 그는 처녀에게로 피끗 눈길을 던졌다. 

〈〈그걸 어떻게 아오?》 

〈〈저기서… 기다리시는분이…》 

몸을 획 돌려보니 내각부수상 남일이 동행자와 같이 대기실에서 
가방을 들고 나오고있는것이 보였다. 남일은 옷고있었다. 

〈〈최재우동무, 우린 여기 있습니다.〉〉 

최재우는 그들에게로 마주갔다. 이번엔 뜀박질을 하지 않았다. 
《난 또 하늘로 날아올랐는가 했군요. 덜컥 했습니다. 헌데 어떻 
게 알고 비행기에서 내렸습니까?》 

남일은 여전히 옷는 얼굴이였다. 

《글쎄 비행기에 오르는데 확성기에서 우릴 찾지 않겠소. 아무 설 
명도 없이 당장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말이요.》 

《예一 수령님께서 친히 부수상동지의 출장을 취소하고 되돌려세 
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자, 빨리 갑시다. 수령님께서 지금 기 
다리고계십니다. )) 

남일은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수령님께서 무슨 일로 급 
히 부르셨을가?… 다음순간 머리속에 펀뜩하는 생각이 있었다. … 


5 


1959년 7월. 

그때 외무상으로서 모스크바에 가있던 남일은 당시 쏘련내각 제 
1부수상이였던 미꼬얀과의 회담을 취소하고 즉시 귀국하라는 지시 
를 받았었다. 오늘처럼 수령님께서 직접 그렇게 명령하신것이였다. 

그때 남일은 수령님께서 왜 당장 회담을 취소하고 돌아오라고 하 
셨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회담이 비뜰어졌던것이다. 실로 뜻 
밖의 문제가 론의된 회담이였다. 우리의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원조 
를 준다고 법석 떠들어대던 쏘련이 돌연 미꼬얀의 작은 입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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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무기와 탄약 등으로 진 빚을 물라고 을러댄 
것 이였다. 

《조선의 경제장성률이 높은데 인젠 전쟁때 진 빚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미꼬얀이 한쪽눈을 째긋하고 남일을 응시하며 오금 
을 박았었다. 《조선동지들이 피홀려 싸울 때 진 빚이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빚이란 인정사정 모르는 아주 고약한 저울눈금과 같 
은거라구 할가. … 에一 제때에 물지 않으면 점점 리자만 늘어나고 
늘어난 수자만큼 저울추는 더 무거운걸 올려놓게 되지요.》 

실로 랭랭하고 오만한 말투였다. 피가 끓어올랐다. 미꼬얀이 아 
무 주저도 없이 상대를 업수이 여기며 그 말들을 내뱉았던것이다. 

격동한 남일은 무어라고 웅얼거렸지만 자기도 알아듣지 못할 혀 
를 깨무는 소리일뿐이였다. 우리에게 원조를 주겠다던 쏘련이 약속 
한 그 원조액파 맞먹는 엄청난 액수를 당장 물라고 하니 숨이 막히 
고 잔등까지 아프게 죄여들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미꼬얀을 반박 
하는 정정당당한 론거를 한마디도 찾지 못했었다. 

그날로 그는 비행기를 타고 조국에 날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즉 
시 귀국할데 대한 명령을 주신 수령님께서는 그가 돌아온 후에도 여 
러날동안 계속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를 현지에 
부르시지도 않았다. 

하여 그는 스스로 결심하고 차를 달렸다. 수령님의 현지지도로정 
을 따라 최고속으로 차를 몰아갔었다. 아직 그의 한생에 그때처럼 
미친듯이 차를 몰아댄적은 있은것 같지 않았다. 수령님을 아프게 해 
드린 죄책감때문에 마치 불이 달린 도화선이 가슴 한복판을 곽一팍 
지지고 태우며 속으로 파고드는것만 같아 견딜수 없었다. 한시라도 
수령님을 만나뵙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마음… 사등뼈가 부러질 
지 언정 죄 를 지 은만큼 매 를 맞지 않고서 는 견디 여 낼것 같지 못했다. 
드디여 땅거미가 지고 캄캄한 어둠이 사위를 뒤덮기 시작했지만 여 
전히 속도를 죽이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시각 수령님께서는 렬차를 따라 끈두박 
질하듯 달려오는 남일의 차를 이옥토록 바라보고계시 였다고 한다. 

《저一기 우릴 따라오는게 누구의 차인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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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령님께서 기를 쓰고 쫓아오는 승용차를 보고 수행원들에 
게 물으시였다. 허나 누구도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남일동무요.〉〉하고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신듯 무겁게 말씀 
하시였다. 《지금 나를 만나겠다고 저렇게 따라오고있소.》 

렬차는 어느 한 중심역에 가서야 멎었다. 때마침 남일은 대문이 
열린 화물역쪽으로 질풍같이 차를 들이몰았다. 차바퀴밑에서 연기 
가 나고 삐一익 ! 하는 아츠러 운 소리 가 귀 아프게 울리 고… 마침 내 
차에서 내린 그는 철길을 뛰여넘어 수령님께서 타고계신 렬차앞에 
까지 달려갔으나 그 이상은 더 움직이지 못하였다. 비로소 자신이 
어데로 달려왔는가를, 무슨 당치 않은 일을 저지르고있는가를 느꼈 
던것이다. 땀에 젖던 몸이 얼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수령님께서 친히 렬차에서 내리시는것이 아 
닌가?!… 순간 남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망결에도 깊이 머리숙 
여 목메인 인사를 드리 였 다. 

《수령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가… 이 미거한 남일이 꼭 말씀 
드릴 일이 생겨서…》 

더 말씀드릴수 없었다. 수령님께서 이윽토록 아무말씀없이 자기 
의 상기 된 얼 굴을 지켜보시 기 때 문이 였 다. 아니 , 그때문만이 아 
니였다. 어릴 때부터 이국땅을 헤매이며 곡절도 많은 길을 걸어온 
자기 에 게 믿 음을 주시 고 사랑을 주시 여 어 엿 한 교육자로, 군사가로, 
외무상으로까지 키워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 죄를 짓고 찾아뵙 
기 때 문이 였다. 

《남일동무.》마침내 수령님께서는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인 
젠 동무가 당과 국가앞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겠소?》 

《예, 수령님…〉〉 

기 여 들어 가는 목소리 였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나는 미꼬얀이란 사람이 우리가 전쟁때 진 빚을 물라고 했을 때 
동무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 실망했소. 아 
니,너무 가슴이 쓰려서 그날 밤은 종시 잠을 이루지 못했소.》몹 
시 갈린 음성이 였다. 《왜 그렇 게 도 할말이 없던가? 그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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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피흘러며 미제와 싸워 사회주의진영의 안전과 아시아의 평화를 
지 켜주지 않았는가. 그럼 에도 불구하고 무기와 장비를 좀 대준걸 가 
지구 그런 엄청난 빚값을 불러대고있으니 이것이 과연 옳은 처사인 
가? 그래 한 나라의 외무상이란 사람이 이렇게 사리를 따져볼 엄두 
도 못냈단 말인가?!…》 

격한 어조로 이 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잠시 무엇 인가를 생각 
하시는듯 했다. 이윽고 조용히, 안타까우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 
을 이으시였다. 

《남일동무, 좀 생각해보오. 동무야 전쟁때 총참모장으로서 전전 
선을 한눈에 굽어보며 호령하던 사람이 아닌가. 정전담판장에선 미 
국놈들을 되게 다불러대여 온 세상에 조선의 본때를 보여준 남일대 
장이구, 영?… 그런데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소? 그네들이 
말하는것처 럼 친형 제간이 여 서 할말도 못한다는거 요? 왜서 그 사 
탐들앞에서 는 주눅이 들어 입 이 얼 어붙는가 말이 요, 엉?…》 

이 어 그이께서는 1949년 3월 우리 나라와 쏘련사이 에 경 제적 및 
문화적협 조에 관한 협정 이 조인된 다음 쓰딸린이 만찬회 를 차리 고 
축배를 교환하면서 자기 네 간부들에게 한 말을 상기시키시 였다. 

《동방에 민주조선 이 탄생한것 으로 하여 쏘련의 동쪽변 강의 안전 
이 믿음직하게 담보되였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쏘련이 조 
선에 제공하는 원조는 사실상 엄밀한 의미에서 원조라기보다는 자 
신을 위한 지 출이 라는것 을 우리 일군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 다.》 
그 일 을 상기시키시면 서 그이께 서 는 이 렇게 계속하시 였 다. 

《그래 전쟁때에 쓰딸린이 준것을 가지고 오늘 흐루쏘브대에 와 
서 옛날 빚을 물라고? 지금 우리의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원조하겠 
다고 하는 그들이 그때의 빚을 물라고 하는 속심이 원가? 세상에 원 
조를 준다고 소리 쳐놓고는 한푼도 내 지 않겠다는 소리 가 아닌 가. 어 
떻게 그럴수 있는가?… 전쟁때엔 그들이 얼마나 가슴조이며 우릴 지 
켜보았는가? 우리 가 미 국놈들한테 먹히 울가봐 얼마나 안절부절 
했었는가 말이요. 남일동무, 리성적으로 생각해보오. 그래 전쟁때 
우리가 흘린 그 많은 피와 참혹한 희생의 값을 그런 너절한 돈냥으 
로 감히 계산할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리기주의손때가 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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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판알로 감히 우리의 피값을 계산할수 있는가 말이요?…〉〉 

우퇴치는 음성… 눈앞에서는 연송 마론 번개가 시퍼런 불살을 날 
리고있었다. 남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머리를 푹 떨구 
고 피가 나게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동무의 머리속엔》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아직도 대 
국을 섬기는 사대와 굴종의 낡은 사상이 남아있는것 같소.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대국주의는 큰 나라의 민족리기주의이고 사대주 
의는 작은 나라의 민족허무주의의 표현이요. 그래 아직도 이 말의 
뜻을 다 모르겠소?》 

남일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그이께서도 그것을 바라 
시지 않았다. 분노의 감정을 담아 그이께서는 계속 엄하게 말씀을 
이으시 였 다. 

《남일이, 우린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해. 작은 나라라 해서 민 
족적인 존엄까지 작아질수가 있겠는가? 아니, 그럴수 없소. 세 
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싸워이긴 조선사람들인데 무엇이 모 
자라 큰 나라라구 해서 머리를 조아리겠는가. 뭣때문에 공동의 위 
업을 위해 피를 흘러며 싸우고도 빚진 놈이 되 여 남의 눈치나 살피 
면서 노상 허리를 굽히고 살아야 하겠는가?…》 

남일은 가슴이 터지는것만 같았다. 

수령님께서도 마냥 답답하신듯 목깃을 헤쳐놓으시였다. 

《동무가 그럴줄은 정말… 몰랐소. 솔직히 말해서 동무같은 사 
탐한테 외무상직을 그냥 맡겼다가는 나라가 허리를 펴지 못하겠 
소.》 

돌이켜보면 그때 수령님의 음성은 준엄하고 서리차기만 한것 이 아 
니였다. 무엇인가 뜨거움에 젖어있었다. 그것은 분노이기 전에 련 
민이였고 련민이기 전에 죄지은 자식에 대한 저미는듯 한 아픔이였 
다. 그리고… 눈물이였다. 그렇다, 남일은 오랜 세월 수령님을 모 
시고 살면서 그이의 눈물의 세계를 자주 체험하군 했었다. 그러나 
그때처 럼 가슴이 젖어들기는 처음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그를 보지 않고계시였다. 먼 밤하늘가로 눈길 
을 옮기시는데 그것은 근엄하면서도 쓰라린 아픔이 실린 피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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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였다. 사대와 굴종이라면 치를 떠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였던것 
이 다. … 

그후 수령님께서는 모스크바에 가신 기회에 흐루쏘브를 만나 직 
접 그 문제를 들이대시였다. 그러자 흐루쏘브는 천만뜻밖이라는듯 
두눈을 번득이며 흥분하여 떠들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피홀려 싸워온 조선동지들한테 감 
히 전쟁때 진 빚을 물라고 강박하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꼬 
얀이야말로 나쁜 놈이라고밖에 달리는 말할수 없습니다. 예, 천하 
에 나쁜 놈!…》 

그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수 없는듯 부르쥔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 
리기 까지 했다. 

사실 그때 흐루 쏘브는 그런 서투른 연기 라도 놀지 않을수 없는 처 
지였었다. 세계의 정치무대에서 가장 자주적인 립장을 견지하고있 
는 조선로동당과 그의 령도자 김일성동지의 지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있었던것이다. 전적인 지지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하다 
못해 김일성동지께서 중립 이라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 
던 그였다. 그만큼 쏘중관계를 비롯하여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세계 
적 인 문제들에서 갖가지 풀기 어려운 정치, 군사,외 교의 바오 
래기들이 그의 목을 사정없이 졸라매고있었던것이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과 남일이 방에 들어서자 자신의 가까 
이로 부르시였다. 먼저 남일에게 물으시였다. 

〈〈남일동문 비행장에서 오는 길이요?》 

《예, 그렇습니다.〉〉 

《무엇때 문에 돌아서라 했는지 짐 작되 겠지 ?》 

《저 …》 

남일은 쭈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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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께서는 김일에게 눈길을 옮기시였다. 

《왜 1부수상동무가 얘길 안해준 모양이구만?〉〉 

《예.》 김일은 시쁘둥한 표정이였다. 《저도 잘못한것이 많 
은것만큼 제 생각만 하다보니 …》 

수령님께서는 웃으시였다. 

《아, 그게 무슨 누구의 잘못이겠소. 그건 그렇구… 참, 남일동 
무, 본론에 앞서 한가지 물어보기요. 혹시 박유진이라는 젊은이가 
기억나오?》 

그이의 물으심에 남일은 재빨리 기억을 더돔으며 반가운 미소를 
떠올리였다. 

《예 , 수령 님 ! 기 억납니 다. 제 가 그를 왜 잊 겠습니 까.》 
그이께서는 두름한 서류더미에서 어느 하나를 뽑으며 말씀을 이 
으시였다. 

《그건 남일동무가 외무상을 할 때였지. 그때 국가과학기술위원 
회에서 내놓지 않겠다는 그를 남일동무가 억지로 외무성에, 그다음 
엔 또 무역성으로 끌고갔던것 같은데?…》 

《예 , 그렇 습니 다. 외 무성 이 나 무역성 에 꼭 필 요한 일 군이 여 
서 제 가 수 령 님 께 까지 말씀드리 던 일 이 …》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꼈던지 입 
에다 주먹을 가져다대며 조심스럽게 기침소리를 내면서 김일을 쳐 
다보았다. 그러나 김일은 박유진이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으므로 
덤덤 한 표정이 였다. 

《남일동문 그때…〉〉하고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그에게서 
제일 큰 장점을 무엇이라고 보았소?》 

《예, 저는…》남일은 또 재빨리 기억을 더돔으며 이번엔 저으 
기 조심 스럽 게 말씀드렸다. 〈〈그가 쏘련 하리 꼬브공대 를 졸업 할 때 
그 나라에 서 그를 몹시 욕심내 는것 을 보고 좀 놀랐습니 다. 우리 나 
라 류학생들을 탐내면서 자기 나라에 떨구려 한 일들이 여러건 있 
긴 했지만 그에 대해서만은 정말 집요했습니다.》 

《그러니 수재였다 그 말이겠소?》 

《예, 수령님. 뛰여난 수재였습니다. 게다가 인물체격도 미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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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교성 도 좋고해서 …》 

남일은 다시 말끝을 잇지 못했다. 박유진으로 말하면 별로 이름 
도 없는 한 젊은 무역일군에 불파하다. 그런데 왜 수령님께서 직접 
그에 대하여 료해 하시는것인지?!… 질은 의혹의 그림자가 잘다 
란 물결마냥 남일의 얼굴에 파문짓고있었다. 

《그다음… 그에 대해서 또 알고있는것이 무엇이요?》 

그이의 물으심에 남일은 다시금 재빨리 기억의 갈피들을 뒤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저 … 그가 장정환동무의 처 남이 라는것밖엔 …〉〉 

〈〈그렇소?!》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는 표정이였다. 장정환이라면 얼마전까 
지 군사정전위원회 우리측 수석위원으로서 한때 남일이 그러했던것 
처럼 미국놈들파 격렬한 담판전을 벌려 세상에 소문을 냈던 사람이 
다. 얼마나 대조적 인 두사람인가? 한사람은 무쇠 주먹형 의 군사 
정 치 일군이 고 다른 한사람은 지헤톱고 사교적 인 무역일군이 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그래 그를 무역성에서 어떤 일을 시켰소?》 

《예, 주로 쎄브와의 사업을 말아보게 했습니다. 하리꼬브공대출 
신인데다가 여러 나라 말들에 능해서 그런 일엔 적임자였습니다.》 
〈〈음一 그렇댔군.》 

남일 이 조심스럽 게 입 을 열 었 다. 

〈〈저 … 그가 무슨 일을 쳤습니까?〉〉 

《그럼 남일동문 아직 모르고있소?》 

〈〈전 아직…〉〉 

《그가 요즘 박용국이의 꼭두각시가 되 여 우리가 쎄브에 들지 않 
으면 굶어죽기라도 할것처럼 떠든다기에 내 좀 알아보는중이요.》 
《예?! •••)) 

남일은 물론 김일까지 무등 놀라며 눈섭 을 치 떴다. 

《박용국이가 벌써부터 그런짓을 벌린단 말입니까?〉〉 김일이 대 
뜸 흥분하여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덜돼먹은 녀석! 내 어찐지 
그녀석이 요즈음 별루 눈꼴사납게 논다 했더니… 그녀석두 외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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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을 갔다오지 않았소?》 

이것은 남일에게 향해진 질문이였다. 남일이 면구스러워했다. 

〈〈예, 우리 나라에서 해방직후 처음 외국에 류학생들을 보낼 때 
쏘련에 갔던 사람입니다.〉〉 

김일은 참지 못했다. 

《아니, 당에서 외국류학을 보내주었으면 기술이나 착실히 배워 
올것이지 뭐, 뭐가 어쨌다구? 그래, 그따위 냄새두 고약한 수정주 
의노린내만 잔뜩 묻혀가지구 와?…》 

김일은 마치 남일에게 그 모든 죄과의 책임이 있는듯 그를 쏘아 
보며 후들후들 몸을 떨기까지 했다. 

김 일성 동지께서 손을 들어 그를 제지 하시 였다. 

〈〈김일동무, 그렇게 지내 흥분할건 없소. 우리가 제때에 교양을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게 옳지 않겠소?… 자, 그 
럼 본론에 들어갑시다.》 

그이께서는 탁우에 놓인 서류들을 펼쳐드시였다. 

《보시오. 쎄브에서 못 주겠다는 설비명세들이요. 우리 나라 
가 쎄브에 들지 않는다고 나날이 더 압력의 도수를 높이고있소.》 
그이께서는 남일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주시였다. 

《그런데도 동냥바가지를 차고 가야 하겠는가?… 남일동무, 어디 
솔직히 말해보시오.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것이 옳을것 같소?》 

《수령님.》남일은 힘주어 대답올렸다. 《제 수령님의 부르심 
을 받고 비행장에서 여기 오는 동안 내내 이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했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일?》 

《제가 쏘련에 가서 전쟁때의 빚문제로 수모당하던 일을 말입니 
다. 그때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댔습니다.》 

《음… 그러니 내가 여기서 쎄브의 속심을 더 설명할 필요는 없 
겠구만. 그래 1부수상동무 생각엔 어떻소?》 

갖가지 설비명세들이 적힌 종이장에 눈길을 박고있던 김일이 번 
쩍 머리를 들었다. 두름한 입술을 놀리며 그가 힘겹게 대답올렸다. 

《수령님, 실은 제가 잘못한게 많습니다. 저도 별루 그네들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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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외교사업경험으로 보나, 쏘련사람들과 
의 인연으로 보나 남일부수상이 가면 혹시나 해서 …〉〉 

《사람이 궁해빠지면 그렇게 되는 법 이요. 동냥바가지를 차고 돌 
아다니는 수밖에…》그이께서 옷으며 하시는 말씀이였다. 〈〈김일 
동무, 남일동무, 인젠 우리의 자립적민족경제도 커지구 주머니 
도 불룩해졌은즉 구차스럽게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구 언제든 잊지 말것은… 적들앞에서든 가까운 벗들앞에서 
든 절대 민족적존엄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것이요. 무슨 일이건 떳 
떳하고 배심있게 밀고나가야 하오. 배심이자 곧 자존심이고 존엄이 
고 자주성 이요 !》 

김일과 남일은 마치 구령이라도 받은것처럼 거의 동시에 허리를 쭉 
폈다. 두사람 다 오랜 세월 군복을 입고 싸우던 사람들이였던것이다. 
〈〈알겠습니다, 수령님!》 

《수령 님 ! 꼭 명 심 하겠습니 다.》 

그이께서 그들을 손짓으로 자리에 앉도록 하시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김일동무, 오늘 당장 관계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열고 대상설비들을 우리 자체의 힘으로 제작할데 대한 문 
제 를 토의 합시 다. )) 

《예. 그게 좋겠습니다, 수령님 !〉〉 

《협 의 회 엔》하고 그 이 께 서 강조하시 였 다. 〈〈리 종옥, 리 주연, 정 
준택부수상들파 금속공업,기계공업, 채취공업, 화학공업상들도 참 
가시 키 는것 이 좋겠 습니 다.》 

《예, 알겠습니다.〉〉 

박유진은 더 이상 론의되지 않았다. 그러 나 그이께서 는 한시 도 박 
유진이 일을 잊지 않으시였다. 물론 박유진이라는 한 젊은이는 별 
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 이지만 그들, 새 세대들의 머 리 속에 뿌리내 
린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아직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왕성해지면 우리 식으로 
갈아엎고 새 종자를 골라 씨뿌린 우리의 사상정신적토양을 산성화 
할수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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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정환이 삐스에 오르자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저저마끔 수 
군거렸다. 왕별을 단 인민군장령이 아침 첫 시내태스에 올랐으므로 
놀랄만도 했다. 

〈〈쉿 一 장령이 다야.〉〉 

〈〈장령동지라구 해야 돼.〉〉 

〈〈갈구 같지 뭐.》 

〈〈야, 새살떨지 말구 빨리 자리나 양보헤드려.〉〉 

그러나 장정환은 앞에서 나부시 인사하며 자리를 권하는 처녀에 
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종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령동지!》눈앞의 처녀가 생글거리며 슬그머니 그를 끄당기 
였다. 〈〈어서 여기 앉으십…〉〉 

다음순간 처녀는 손을 들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는데… 가는 신 
음소리 같은것 이 새 여나왔다. 장정환의 두눈이 무섭 게 이글거 리 
고있었던것이다. 

처녀가 뒤걸음쳤다. 그러나 장정환은 그것도 알지 못했다. 어제 
남일부수상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가? 처남 박유진이 일때문 
에 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마음을 쓰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 
웬일인지 처남뿐만아니라 사랑하는 안해에 대한 노여움까지 치밀 
어올랐다. 뿔나는 염소처럼 제멋대로 굴기 좋아하는 자기의 남동생 
유진이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안해였다.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운가 
하면 자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악착스러운 왜놈의 칼날앞 
에도 서슴없이 목을 내대던 녀자! …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장정환은 가슴이 졸아들군 한다. 한순 
간에 비굴하고 용렬한 비겁쟁이가 되는가 아니면 조선남아의 존엄 
과 기개를 지키는가 하는 일이 판가름되던 그 순간에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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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유도3단! 저 처녀 어째볼 생각이 없어?〉〉 

《어이, 이마무라. 그 처녀 이리루끌어와!》 

씀화강기 슭에 서 일 본군폐잔병무리 와 맞다들렸 을 때 조선녀성 으로 
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서슬푸른 왜놈오장의 칼날앞에 목을 내 
대는 편을 택했던 그 안해가 오늘은 어찌된 일인가? 자기의 친동생 
인 유진이가 지금 이렇듯 쓸개빠진 녀석이 되여버리도록 무얼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자기 안해와 다시 만나던 일을 또 생각했다. 구사일생으로 
쑹화강을 건느고 얼마후엔 압록강에 이르렀던 그들… 국경을 넘어 
설 때까지 그들일행은 한덩어리였으나 간난신고하며 조국땅에 들어 
서자 저저마끔 자기 고향으로 쁠뿔이 흘어져갔다. 

장정환은 그때 처녀의 고향이 함북도 성진(오늘의 김책시)이 
라는것만 알았다. 그리고는 인차 잊고말았다. 해방후 청진시에 
서 시보안대원이 되여 정신없이 돌아쳤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돌 
연 귀신같은 소개자가 나서서 바로 그 처녀를, 피에 젖던 씀화강기 
슭에서 알게 된 그 처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데리고와서는 장정환 
자기 에 게 선을 보라는것이 였다. 그때 의 놀라움은 쑹화강기 슭에 
서 당하던 일 보다 결코 못지 않은것이 였다. 

그래서 인연이라고 하는건가?… 하지만 처녀의 집에서는 죽어도 
장정 환이 한테 딸을 주지 못한다고 야단법 석이 였다. 장정 환의 집 안 
이 째지게 가난하다는것, 게 다가 장정환이 11명 이 나 되 는 식 솔 
의 맏아들이 라는것, 시 어머 니 될 사람이 귀머거 리라는것(왜놈들 
이 귀 앓이 를 치 료해 준다면서 뜨거 운 기 름을 부어 넣 었다고 한다. ) 
등이 결사적 인 반대 의 리유였다. 

그런데 당시 청진시에 옮겨와 녀맹선전부에서 일하던 처녀 박수 
옥은 또 저대로 막무가내였다. 후에 박수옥이 고백한데 의하면 목 
숨걸고 자기를 구원해준 장정환을 찾기 위해 온 청진바닥을 다 뒤 
졌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서는 아주 우연한 일인것처럼 몰래 소개 
자를 골라 장정환에 게 로 보냈던것 이 다. 그러한 박수옥이였으므 
로 완고한 부모님들앞에서 자기가 장정환이라는 억대우청년을 알게 
된것은 하늘이 준 연분이라고, 이제 그것을 어기는 날엔 천벌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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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된다고 으름장을 놓을만도 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자신을 다 바치는 안해 였다. 하지만 그의 동 
생인 유진에게는 그러한 절대적믿음과 희생정신이 없다. 그녀석의 
마음속에 국자를 넣고 그가 바라는 욕구나 희망을 떠내여 본다면 틀 
림없이 빠다를 잔뜩 바른 그 무엇이 나오리라는것을 장정환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이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령동지, 어데까지 가십니까?〉〉 

장정환은 이 말을 꿈속에서처럼 듣고있었다. 

〈〈아이 참, 장령동지 ! 제 말을 들으십 니 까?〉〉 

비로소 장정환은 지금 삐스차장이 그에게 무언가 묻고있다는것을 
깨 달았다. 눈을 떠보니 매 스가 멎어 있었다. 더는 오르내리는 사람 
도 없고… 운전사가 막 문을 닫고있었다. 

《가만, 여기가 어디요?》 

〈〈교구동입니다.》 

《아, 그렇소?〉〉하고 그는 급해하였다. 《난 여기서 내려야 하 
는데… 여기서!》 

후사경으로 뒤쪽을 보고있던 운전사가 제때에 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내리자 삐스에 남은 사람들이 또 서로 마주보면서 수군거리 
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제법 큰소리로 군대에서 무슨 비상사건 
이 생긴게 분명하다고 떠들었다. 어제 보도를 못 들었는가, 미 
국놈들이 월남전쟁에서처럼 우리 나라 군사분계선 일대에도 악마의 
무기로 세상에 소문난 독해물인 고엽제를 수만리터나 뿌렸다고 하 
지 않았는가, 그 미친 놈들이 끝내 전쟁을 도발했을수 있는것이다, 
오죽했으면 저 장령동지가 자기 차를 기다릴새도 없어 삐스를 타고 
급히 달려가겠 는가?… 

자기 를 두고 뒤 에서 얼마나 끔찍한 말들이 오가고있는지 짐작조 
차 못하고 장정환은 삐스정류소에서 멀지 않은 고층아빠트에로 바 
삐 걸 어가고있 었 다. 

아빠트에서는 처남 박유진의 애젊은 안해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 
니 반가운 웃음을 날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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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 큰아버 지 ! …〉〉다음순간 그는 장정환의 무섭 게 달라 
진 기색에 기가 질린듯 했다. 《저… 어떻게 아침일찌기 오셨습…》 

아직 도 잠내 가 가셔지 지 않은 목소리 였 다. 중앙사진 보도사에 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리혜 영 … 내각건축설계실장을 하는 건축가 리웅 
산의 딸이다. 버들잎같은 몸매를 가진 이쁘장한 녀자인데 앙증스럽 
게 우로 말아올린 트레머리에서 코를 찌르는 머리기름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장정환에게는 그것도 유진이 녀석이 지구의 저쪽 유럽땅 
에서 묻혀온 냄새처럼 여겨졌다. 사실은 자기 안해도 늘 사용하는 
국산제머 리기 름냄새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유진이는… 아니, 처남은 아직… 자구있소?》 

〈〈아一니, 어제 밤… 안 들어왔습니다.》 

《왜?》 

《잘 모르겠…》 

《젠장! 들어오면 곧 나한테 알리오. 아니, 그럴게 없이 직접 찾 
아오라구 하오. ))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돌따섰다. 현관문을 나설 때에야 자 
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리혜영에게 
아버지의 안부라도 물었어야 했었다. 그의 아버지 리웅산이 요즘 온 
나라가 관심하는 인민영웅탑의 총설계가로서 집을 떠 나 벌써 몇해 
째 대기념비가 일떠서고있는 헤산에 나가 살고있는것이다. 

아빠트의 현관앞에는 장정환의 운전사가 벌써 차를 들이대고있었 
다. 정해진 출근시 간에 집 에 들렸다가 여 기 주소를 알아가지 고 급 
히 달려온 모양이 였다. 

타고싶지 않았다. 처남이 집 에 들어오지 않았다는것은 지금 그녀 
석의 일이 크게 번져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덜돼먹은 녀 
석 ! 수령님덕 에 외국류학까지 하고 나왔으면 본분을 잃지 말아야 
지. … 근본도 잊고 그렇게 변질되다니?… 이럴줄 알았더라면 처음 
부터 주리를 틀어놓는건데… 수재라고 으시대더니 지금 어떤 꼬락 
서니가 되였는가?… 가슴이 쓰라렸다. 어버이수령님께 지금 자 
기자신이 죄를 짓고있는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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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전후 고향인 청진에서 당일군으로 발탁되여 일하 
던 그가 당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소환되고 그로부터 얼마후엔 무 
역성 국장이 되여 사업하던 때였다. 무르녹는 어느 봄날, 천만 
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를 부르시였다. 

정신없이 달려갔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고 수령님 계시는 방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던 일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아,장정환동무요?〉〉 

어버이수령님의 그 류다른, 쇠소리나는 음성이 울리자 그는 그쪽 
을 향해 깊숙이 머리숙여 인사드리였다. 그런데 뭐라고 인사의 말 
씀을 올렸던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몇가지 
물으시던것만은 기억에 뚜렷이 새겨졌다. 얼마후에야 수령님의 
모습이 보다 가까이 선명하게 안겨왔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그와 담화하시다가 부지중 그의 두름한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시였다. 그 손을 통하여 전해오던 따스한 정의 흐 
틈… 그이께서 밝게 옷으며 말씀하시였다. 

《됐어. 동무가 바로 적임자야. 내가 찾던 판문점 수석대표감이 
란 말이요!》 

《예?! •••)) 

후에야 장정환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의 문건을 죄다 료해하시고 
도 자신을 불러 직접 담화하시 였다는것을 알게 되 였다. 그만큼 
수령님께서는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사업을 중시하시였던 
것이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정환동무, 이제부터 미제와 코를 맞대고 싸우게 되는데 언제 
든 배심이 든든해야 돼. 동무의 배심이자 곧 우리 인민군대의 존엄 
이란 말이요. 알겠소?》 

순간 그는 총신처럼 허리를 곧추 펴며 찡찡하게 대답올렸다.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우리 인민군대의 존엄을 걸고 배 
심 든든히 싸우겠습니 다.》 

그때부터 총포성이 없는 치렬한 싸움터에서 단 한순간도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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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이 있어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오늘 그 알량한 처남녀석 
이 일을 저질렀으니… 이제 수령님앞에 무슨 면목으로 어떻게 나선 
단 말인가?… 

운전사가 그에게로 차를 가까이 들이대며 연방 경적소리를 빵一 
빵 울렸다. 그러나 그는 운전사에게 손을 홱 내것고말았다. 


Z 


박유진은 자기 사무실 쏘파에 구겨박혀 자고있었다. 창밖의 나무 
가지에서 새들이 분주살스럽게 떠들고있었지만 그는 깨여나지 못했 
다. 지난밤을 꼬바기 세웠던것이다. 

성당위원회에서 그가 한 발언의 엄중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론의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치 사대주의의 술독에 빠진 주정뱅 
이처럼 취급하려 했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수 없었 
다. 그자신의 결심으로 국제부문 일군들의 회의에 나간것이 아니였 
다. 다름아닌 박용국국제부장이 적극 내세워주었던것이다. 그렇 
다고 그가 남의 말을 되받아 외우는 앵무새라는것은 아니다. 그는 
순수 자기의 생각을, 쎄브에 들어야 할 시대적절박성을 말했을뿐이 
다. 공업의 규모가 커지고 분업이 활발해진 현시대에 와서 고립되 
고 폐쇄된 경제는 망하기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리도 유 
럽사람들처럼 잘살자면 쎄브에 들어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 
을뿐이다. 

지난밤 그는 맑스一레닌주의고전들을 뒤지며 장시간 쏘파에서 궁 
싯거렸다. 자기를 정당화할 새 명제를, 구원의 론거를 거기에서 하 
나라도 더 찾고실었다. 새벽녘에야 그만 책을 내던지고 모포를 뒤 
집어쓰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돌연 요란스러운 전화 
종소리가 그를 깨웠다. 시끄러웠다. 모든게 귀찮았다. 바닥에 
흘러내린 모포를 끄당겨 머리우에까지 덮고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웠 
다. 그러나 검질긴 전화종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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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다. 으시시 몸을 떨며 송수화기를 드니 안해 리혜영의 목소리 
가 귀전을 때렸다. 

《이보세요. 왜 인차 받지 않아요? 잠은 어데서 자구?… 음… 다 
른게 아니구 민족보위성에 있는 큰아버지가 왔댔어요. 방금전에!… 
뭣때문인지 잔뜩 뿔이 돋아나있었어요. 헌데 무슨 일 있었어요? 경 
애 아버지 들어 오면 당장 자기 한테 보내라구 명 령 했어 요.》 

《뭐 명령?〉〉박유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허세를 부렸 
다. 《무역 성 에서 근무하는 나를… 민족보위 성 청 사에 호출한다구?》 

사실 그는 〈〈제 가 뭐 라구 한 나라의 무역일 군을 오라가라 한다는 
거 야?》하고 소리치 고실 었 었 다. 

〈〈경애 아버지.》 안해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혹시 무 
슨 일 이 생 긴게 아니예 요? 난 막 무서 워 요. 보위 성 의 큰아버 지 그 
렇 게 성난거 난 처 음 봤어 요.》 

《됐소, 됐소.〉〉하고 유진은 급히 송수화기를 왼손에 바꾸어쥐 
였 다. 〈〈아무 일 없으니 뭐 근심 할건 없소.》 

〈〈그래 두…〉〉 

〈〈일없다니까.》 

그는 송수화기를 놓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그 소식 
이 민 족보위 성예 까지 날아간것 인 가?… 자리 에 서 벌 떡 일 어났다. 당 
장 매부한테 달려가 누가 뭐 라고 했는가고 따지고실었다. 그러 나 움 
직 일수 없었다. 창밖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저 건물, 민족보위 
성청사의 어느 한 방에서 지 금 도끼날같은 성미 인 매부 장정환이 분 
노를 삭이지 못해 부르쥔 주먹 을 떨 고있을지 도 모른다. 

그는 매부인 장정환을 끝없이 존경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두 
려 워 했다. 그러한 모순된 감정 은 그를 처 음 만나던 평 양역두에서 부 
터 시작되였다. 쏘련 우크라이나의 하리꼬브대학 류학을 마치고 귀 
국했을 때에 있은 일이다. 트렁크를 들고 렬차에서 내리니 역명판 
이 있는 홈 가운데서 그새 나이보다 더 젊어지고 고와진 누이 박수 
옥이 씨 름군같은 체격 에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눈이 부리 부리한 사 
탐을 막 잠아끌며 부르짖었다. 

《여보, 저 기 있어요. 아, 저 一기. 우리 유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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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어조였다. 눈에서 웃음이 샘솟듯 하는 누이의 모습이 
확대되여 안겨왔다. 그러나 장정환이 누이를 앞서 성큼성큼 걸어오 
더니 뭉툭하고 두름한 손을 쑥 내밀었다. 

《장정환이 다. 네 누이 의 남편 ! …》 

보기 드문 인사말이 였다. 유진은 소리내 여 옷었다. 

《안녕하십니까, 매부! 그런데 사진에서 보던것보다 더멋있 
습니다. 아, 아一 정말입니다.》 

유진은 언제든 밝고 명 랑함을 잃지 않는 성격이 였다. 그런데 장 
정 환은 웬일 인지 미 간을 찜기 고있 었다. 

〈〈유진인 빠다랑 많이 먹어서 그런가? 남아장부라면 좀 투둘투둘 
한데두 있어 야지 지내 말갛구만.》 

바빠맞은 누이가 그의 팔소매를 잠아당겼다. 

《아유, 당신두 참! 무슨 인사말이 그래요?》 

그러 나 유진은 다시 소리내 여 옷었다. 

《참, 재미나는 성격이군요. 대장부답구… 정말 맘에 듭니다.》 
그러나 장정환은 옷지 않았다. 재빨리 유진이의 뒤쪽을 둘러보면 
서 그가 한 다음말은 더 놀라운것이 였 다. 

《그건 그렇구… 그 유태인이라는 강굴머리체넨 어떻게 된건가? 
여기 평양에까지 달구오진 않았겠지, 응? 참, 그 녀자 이름이… 무 
슨 아다 뭐라구 했던가?》 

갑자기 유진의 얼굴은 지지벌개지고 누이는 기겁하여 《아이구, 
원!〉〉하고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질렀다. 하건만 시꺼먼 눈섭이 이 
마빡으로 올라불은 장정환은 막무가내 였다. 

《난 그것부터 알아야겠소. 그 유태인이라는 강굴머리체네를 달 
구왔는가 떼놓구 왔는가?》 

〈〈아 매부, 우린 그런 사이는 아니구…〉〉유진이가 황급히 변명 
했다. 《정말입니다, 우린 그저 친한… 아니, 그저 대학에서 서로 
실력경쟁을 했을뿐인데…〉〉 

그는 우크라이나의 제1류급대학인 하리꼬브공대에서 그 유태 
인 처 녀 아다 미 헬 쓴 ( 로씨 야의 름스크출신이 였 다. ) 과 자기 가 제 
일 학업성적 이 높았으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둘이 나란히 주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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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앉기도 하고 영예게시판에도 매번 둘의 사진이 나불군 했을뿐아 
니라 두사람 다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 무대에까지 나란히 서군 했 
으므로 마치 련인들이기나 한것처럼 소문이 났었다는것, 그외에는 
아무런 특별한것도 없었노라고 구구히 변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정환은 언제든 말을 길게 빨래줄같이 늘어놓는것을 질 
색하는 성미였다. 그는 재판장같은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굵고 단 
단한 팔을 들어 장검처 럼 획 허공을 갈랐다. 마치 하늘의 판결이라 
도 내리는듯 했다. 

《좋아, 아니면 됐어.》 

그다음 일은 아주 간단히 끝나버렸다. 그가 안해에게로 한손을 내 
던지듯 했던것이다. 

《자, 그 트렁크는 인주오.》 

결곡하고 괄괄하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소탈하고 유모아에도 능 
한 사나이, 바로 장정환은 그러했다. 그러나 일단 분노하면 한 
주먹 으로 부셔 버 리거 나 으깨 여놓고야마는 기질이 여서 박유진은 
늘 그를 두렵게 대하는것이다. 

아다 미헬쓴을 상기하자 유진은 불현듯 그 녀자의 행방을 전혀 모 
르고있다는 생각이 났다. 지금 어데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기계공 
학을 배운 자기가 우연히 무역일군으로 방향전환을 한것처럼 그 녀 
자도 유태인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무슨 은행업이나 무역을 전문 
하고있지는 않는지?… 

수학적재능은 물론 문학적, 철학적사고로도 유명짜하던 아다 미 
헬쓴이 였다. 그가 지금 박유진이 조국에서 쎄브를 동경한다고 하여 
사대주의술독에 빠진 사람으로 지탄받고있다는것을 알면 무어라 
고 시까스를것 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쎄브를 동경한다구요?… 아니, 따와리쉬 박, 대학에 처음 
왔을 땐 민족자주정신이 아주 강한 사람처럼 보이던데 어느새 여섯 
시 5분전이 됐어요?》 

그것 은 아다 미헬 쓴이 즐겨하는 표현이 였 다. 

《늘 5분이 늦는 사람… 지금은 그 5분이 작아보여도 그것 
이 모이면 남보다 인생길 천리가 뒤떨어지는 법이지요. 언제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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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잊지 마세요.〉〉 

그렇다. 아다는 늘 그렇게 말한다. 언젠가 그 녀자와 같이 모교 
인 하리꼬브대 학창립 50돐기 념 일을 앞두고 진행 된 학부별 노래 
경연에 나섰을 때에도 아다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날 유진은 피아노반주를 맡은 아다가 한사코 반대했음에도 불 
구하고 학부장인 웨. 까르따예브선생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 
다. 사실 까르따예브선생은 무서운 독선주의자,옹고집쟁이였다. 
그리 고 놀랍게 도 자기 가 자랑하는 제자 박유진의 두뇌값을 수학적 
으로 완벽하게 산출해내고 그 값어치만큼 그를 무섭게, 피를 이은 
친자식이상으로 사랑했다. 지어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박유진이 공 
학실 력 은 물론이 고 외 국어 와 예 술적소양에 서도 천부의 재 능을 가지 
고있다는것 을 시 위 하고싶 어 안달아했다. 

이 런 사정 으로 박유진 은 어벌뚝지도 크게 챠이 꼽스끼 의 가극 
《예 브게 니 오네긴》에 나오는 유명한 렌스끼 의 아리 아(전 문가 
들도 그 폭넓 은 음역과 옥타브의 조약때문에 애를 먹군 한다. ) 
를 선택했고 그것을 능숙한 외국어발음으로 부르게 되였다. 한번은 
로어로 그다음은 영어로… 

태일도 아침노을이 비끼고 
해빛은 찬란하련만 
신 비 로운 그늘 무덤속에 
내 잠들어있을지 뉘 알리 

유진으로서는 있는 힘껏, 재간껏 그리고 목청껏 렌스끼의 아리아 
를 불렀건만 청중은 웬일인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덕거리고 키 
득키득 웃어대기만 했다. 나중엔 객석의 한구석에서 누군가 째지는 
듯 한 휘 파람을 길게 불어대 기 까지 하였다. 그의 무분별 한 용기 와 
끝까지 페배를 인정 하지 않는 무모한 옹고집 에 비 수같이 날린 비 난 
과 조소의 휘파람이였다. 

이 로써 하리꼬브대 학의 전체 류학생 들의 첫번째 선망의 대상이였 
던 박유진의 이름은 사랑때문에 결투를 하다가 죽은 귀족청년 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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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의 〈〈신비로운 그늘 무덤속에》에 같이 묻히고말았다. 그리고 그 
무덤우에는 매일같이, 달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까지 서리가 내 
렸다. 그를 손가락질하며 뒤소리하는 대학생들의 로골적인 경멸파 
비 양의 입 김 이 찬서 리가 되여 내리 는것 이 였 다. 

그때 아다는 분하여 이렇게 부르짖었었다. 

《내 가 말하는 여 섯시 5분전 이 바로 그런것 이 예 요. 처 음 왔을 때 
엔 누구보다 대바르구 의것 했었는데 왜 그렇 게 늘 한걸음 모자란다 
는거예요? 그래 까르따예브선생이 뭐 우리 새 세대 인생주로의 교 
통안전원쯤 되는가 했어요? 그럼 그 선생이 지시봉을 들어 가리키 
면 동쪽이든 서 쪽이든 가림없 이 따라가겠 어 요?》 

그때 아다는 오늘의 박유진이 겪게 될 일까지 미리 예견하고 말 
한것이나 아닌지? 무슨 점쟁이처럼?!… 

별안간 그는 출입문쪽으로 피끗 눈길을 던졌다. 누군가 밀대로 복 
도를 밀다가 문짝을 다쳐놓은듯 했다. 그는 벌떡 자리 에서 일어났 
다. 서둘러야 했다. 출근시간이여서 복도에서는 웅성거리는 인 
사말들파 구두발소리 들이 잦아지 고있 다. 

그는 침구를 정돈하고 바께쯔에 머리를 숙이고 푸_푸 세면을 했 
다. 거울앞에 마주서서야 비로소 자기가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았 
다는것을 깨달았다. 뿌옇게 정기를 잃은 낯모를 사람의 두눈이 크 
지 않은 거울속에서 침울하게 그를 내다보고있었다. 그는 길게 한 
숨을 내쉬였다. 원, 이렇게 궁상맞은 꼴이 되다니?!… 

서 둘러 면도를 시 작했다. 

잠시후 전화종소리가 또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검질기게도 
계속된다. 유진은 한동안 망설이였다. 틀림없이 매부 장정환일 
것이다. 그런데 황소발통같은 그한테는 아무런 설명도 통하지 않는 
다. 박유진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을 생각이였다. 그러나 계속 
그치지 않고 울어대는 전화종소리에 더는 참을수 없었다. 속이 캠 
기 고 손끝이 떨 리 더 니 그만에야 칼을 잘못 놀려 입 술을 베 였다. 

아뿔싸! … 새빨간 피가 입술우에 방울짓는것을 거울을 통해 바라 
보니 속이 언짢았다. 그는 손으로 입 술의 피방울을 씻 어 냈다. 그 
것을 들여다보느라니 피자욱같이 진하게 끓어오르는 증오를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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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차츰 관자노리의 피줄들까지 푸들쩍거리기 시작했다. 도대 
체 성칼스러운 그 군복입은 매부가 내게 뭐란 말인가? 내가 뭐 자 
기 친동생이나 친아들이란 말인가?… 

한쪽에서는 전화종소리가 계속 신경질을 부렸다. 그는 결김에 달 
려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시오!…》 

거친 소리 였다. 저쪽에서는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하는듯 했다. 

〈〈여보시오!》 

다시 소리쳐 불렀 다. 

《왜 큰소린가?〉〉 

수화구에서 울려오는 웅글은 목소리에 유진은 그만 어벙벙해서 굳 
어 지 고말았다. 그 다음순간엔 목이 콱 메 이는것 을 느꼈다. 

〈〈아, 부장동지이십니까?〉〉치미는 감격에 혀가 잘 돌아가지 않 
았다. 《예, 저一접니다. 박유진, 저一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미 
처 알아뵙지 못하구…》 

《뭐 요즘 무대에 나가 재판을 받고있다면서?〉〉저쪽에서는 여 
전히 웅글고 고압적인 목소리였다. 〈〈그래서 풀자루가 되여있 
다?〉〉 

〈〈아一아님니다. 사실 전…》 

〈〈안돼.〉〉저쪽에서 엄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우악스럽게 울리 
는 불신과 경멸의 갈린듯 한 목소리였다. 〈〈그러면 못써. 내가 그 
만큼 밀어주는데 뭐가 모자라서 그러는가? 사실 동무야 나라의 경 
제발전이 잘못될가봐 념려가 되 여 한 말이 아닌가? 그리구 우리 인 
민이 아직두 넉넉히 살지 못하는건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쎄브의 
혜택을 좀 받자구 했기로서니 뭐가 잘못됐다는건가? 왜 주접이 들 
어 그러 는가 말이 야, 영?!》 

《잘못했습니 다. 제가 그만…》 

《가만, 내 말을 마저 듣소.〉〉하고 저쪽은 몰풍스럽게 그의 말 
허리를 잘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문 자기 주장을 굽히지 말아 
야 해. 내 동무네 성 당위 원회 에 도 말해 주겠소.》 

〈〈고맙습니다, 부장동지. 제 앞으로 부장동지의 그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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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송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멍하니 그것 
을 들여 다보았다. 삐_삐 _ 하는 소리 뿐… 저 쪽에서 는 벌써 전화 
를 끊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에 들어서는 서기의 흥분된 기색을 통 
하여 기 다리 던 소식 이 온것 이 리 라고 짐 작하시 였다. 

《그 소식이요?》 

서기가 당황해했다. 

《아닙니다, 수령님. 이것은…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쏘련 
내각의 공동명의로 된 전문입니다. 방금 보내온것입니다.》 

《그렇소?》 

그이께서는 의아해하며 전문을 받으시였다. 기다리던 중국의 소 
식대신 쏘련에서 보내온 무슨 공동전문이라니?… 그러나 전문의 내 
용을 읽어내려갈수록 그이께서는 차츰 놀라는 빛을 감추지 못하 
시였다. 

전문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 평양 

조선로 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 김일성동지 께 

1964년 10월 14일,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비상 
회의를 열고 니끼따 쎄르게예비치 흐루쏘브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 
하고 나이가 많은것을 고려하고 또 본인의 요구에 따라 그를 모든 
직 무에 서 해 임하는 동시 에 레 오니드 브레 쥬네 브를 쏘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 제1비서로 선거하였습니다. 그리고 15일에는 쏘련최고쏘베 
트 상임위원회에서 회의를 열고 흐루쏘브를 내각수상직에서 해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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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동시에 꼬씌긴을 내각수상으로 임명하였음을 통고합니다.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쏘련최 고쏘베 트 상임 위 원회 

모스크바 1964년 10월 16일 

그이께서는 탁우에 전문을 놓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후에야 알려진바이지만 흐루쏘브는 해임되기 며칠전에 생일 70돐을 
쇠였다. 크레믈리의 어느 한 홀에서 진행된 성대한 연회였다. 홀에 가 
득찬 사람들이 저마끔 금빛, 은빛의 술잔들을 들고 그를 축하하였다. 

먼저 많은 나라들에서 보내온 축전들이 소개되 였다. 이 어 당과 정 
부의 고위급인물들이 차례로 나와 흐루쏘브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 
하는 흘륭한 연설들을 하였다. 그다음 때를 기다리고있던 1류 
급의 국제콩클수상자들이 경쟁적으로 무대에 뛰여올라가 테너와 바 
리 론, 앨트와 쏘프라노로 다채톱게 료리해 낸 감미톱고 풍성한 음악 
의 진수성찬을 아낌없이 그에게 차려주었다. 

어서 오라 나는 기다리오 
벗이여 어서 오라 
사랑이여 어드메로 
그대는 사라졌나 

정 열의 과다증에 걸린 남녀 가수들이 여서 목에 피대가 부풀도록 불 
러댄 노래들이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드메로》사랑이 《사라 
졌나》하고 궁상맞게 떠들었던지?… 

다음날로 흐루쏘브는 휴양지인 쏘치에 날아갔다. 한가하고 즐거 
운 휴식 을 즐기 려 는것 이 였 다. 쾌 속정 을 타고 파도를 헤 가르기 도 하 
고 맨발바람으로 따스한 바다가모래불을 거닐기도 했었다. 그때 그 
는 머 리우에서 극적 인 재 난이 닥쳐오고있음을 알지 못했다. 크레 믈 
리에서 그의 〈〈동지〉〉들이 파견한 전용기가 그를 모스크바에 실어 
가기 위하여 소문없이 날아왔던것 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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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는 그가 도착하는 즉시 비상회의를 열었다. 오탠 시 
간에 걸쳐 진행된 흐루쏘브타도주제의 성토대회였다. 흐루쏘브는 여 
기서 극단한 모험파 정치적독단, 전횡, 조폭성 등 무려 15가지 측면 
에서 떡반죽이 되도록 모두매를 맞았다. 흐루쏘브는 그 모든것을 한 
사코 부정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했으나 누구도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온통 수군덕거리는 소음파 야지러진 휘파람소리가 
정치무대에서 강제로 퇴장당하는 그의 가련한 운명을 배웅해주었다. 

하다면 이제 쏘련이라는 초대형선박은 어느 항로로 어떻게 갈것 
인가?! … 온 세계가 모스크바에 눈길을 모으고있었다. … 

이날 10월 16일 오전 9시 20분, 모스크바에서 날린 전문과 거 
의 동시에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또 중대소식이 전파를 타고 날면서 
세인을 놀래웠다. 이번에도 서기가 조용히 들어와 조선중앙통신사 
에서 올린 신화통신사의 보도를 그이께 올리였다. 

《수령님, 이번엔 그 소식입니다.》 

〈〈그렇소?》 

그이 께서는 전문을 받아들고 주의깊게 훑어보시 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였다. 

…오늘 1964년 10월 16일 새벽 3시 우리 나라 서북지역의 한 
사막에서 첫 원자탄폭발시험이 진행되였다. 다년간에 걸친 중국의 
파학자, 기 술자, 로동자들의 헌신 적 인 로력투쟁 으로 이 루어 진 
이번의 시험은 모든 공정이 완전무결하게 진행되였으며 폭발력파 인 
류의 생태환경을 위한 기술공학적측면에서도 그 위력파 안정성이 확 
고히 담보되였다. 

우리 중국인민이 자체의 필요한, 제한된 핵시험을 진행하여 핵무 
기를 발전시키는것은 전적으로 방위를 위한것이며 그의 최종목적은 
핵무기를 소멸하는데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고 전문을 집무탁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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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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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의 사색 (1) 

마치 쏘련에서 벌어진 정치적사변에 대한 반응처럼 뒤따라 날아 
온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 이것이야말로 지난 까리브해의 위기때 
흐루쏘브가 미국의 군사적공갈에 굴복한 이후 더욱더 오만해진 미 
제가 사회주의나라들을 말살하기 위해 발악적인 공세를 벌리고있을 
때 그리고 중쏘관계가 벼랑끝으로 치닫던 때에 터뜨린 중국의 분노 
한 웨침이다. 

사실 몇해전 미국, 쏘련, 영국 세 렬강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황 
급히 비핵화라는 간판을 건 전략적야장간을 차려놓고 거기에서 핵 
무장을 노리는 중국의 발목에 채워줄 부분적핵시험금지조약이라 
는 족쇄를 단조해놓았었다. 

그런데… 운명의 희롱인듯 오늘 흐루쑈브는 실각되고 중국은 핵 
시험에서 성공하였다. 쏘련과 중국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이 사 
변들로 하여 이제 세계는 어떤 회오리에 휘말려들것인가? 사회주의 
진영에는 또 얼마나 큰 정치해일이 밀려올것인가?… 

격동하는 시대이다. 세계도처에서 전쟁의 검은구름장들이 계속 
피여나고있다. 이러한 대결전에서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대국들 
에 예속되고 노예가 되고마는 법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우리는 이태전인 1962년 12월에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진행했었다. 

바로 세계를 아연실색께 한 꾸바의 까리브해의 위기가 절정에로 
치닫고 마침내 흐루쏘브가 미국의 위협공갈에 굴복하여 꾸바에 전 
개했던 미싸일과 중폭격기들을 전부 철수해간 직후에 있은 일이다. 

전원회의 첫날이였다. 나는 먼저 참가자들에게 새로 제작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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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게 하였다. 지금도 조용히 기억을 더돔으면 기록영화의 장 
면들과 하나하나의 작은 세부들까지 생생히 떠오른다. 

…기록영화는 먼저 화면을 가득 채우며 돌아가는 지구의로부터 시 
작된다. 빙그르 돌아가던 지구의가 서반구의 까리브해에서 멎자 파 
도 설레이는 해구로 밀려드는 미국함선들, 해풍에 휘날리는 성조기 
들이 눈앞으로 확대되여 안겨온다. … 

미국 워싱톤. … 미국국회에서는 대통령 케네디가 입에 거품을 물 
고 연설하고있다. 그가 부르쥔 주먹으로 연탁을 두드린다. 

《…우리는 자기를 위협하는 적들을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 
다. 미국은 자기의 총력을 동원하여 도발자들에게 즉각 무자비 한 보 
복을 안길것을 결심하였다.〉〉 

이어 케네디는 꾸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명령한다. 

화면은 이 어 꾸바의 수도 아바나에로 초점을 맞춘다. 

아바나의 혁명광장. 여기서는 수십만의 군중들앞에서 피델 까스 
뜨로수상이 연설하고있다. 한손을 높이 들어 총검처럼 하늘을 찌르 
는 피델.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수십만 군중이 받아웨친다.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이어 꾸바혁명군파 민병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혁명광장을 행 
진해간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광장을 뒤흔든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혁명의 산아들 
조국위해 죽는것은 영 예론 삶이다 

한편 지구의의 반대쪽 쏘련에서는 흐루쏘브가 꾸바에 전개했던 미 
싸일과 중폭격 기 들의 철수를 명 령한다. 

모스크바. … 크레믈리에서 연설하는 흐루쏘브의 열띤 얼굴이 땅 
크를 들어 용광로에 처넣는 사나이 (선전화)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 사나이 (흐루 쏘브) 가 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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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크를 녹여 보습을 만들자!〉〉 

그 웨침 소리 가 차츰 미친듯 한 자즈음악으로 바뀐다. 자지 러지 는 
소고소리 , 색 스폰과 화고트의 목메인 흐느낌소리 … 

〈〈대포가 아니라 빵파 빠다를!》 

목갈린 자즈곡에 맞추어 미친듯 춤을 추며 돌아가는 처녀총각들 
의 무리 가 눈을 어지럽 게 한다. 회 오리치 는 진바지 들, 무릎우 
예까지 올라간 짧은 치마가 휘돌아가고 홀랑 드러낸 허벅지들파 가 
슴띠들 역시 경쟁적으로 희끗거 린다. 흐루쏘브의 수정주의바람 
이 그들을 벌거벗기 좋아하는 로출증에 걸리게 한듯… 그 처녀총각 
들이 정신나간것처럼 서로 껴안고 휘돌아가며 목쉬게 불러대는 노 
래 역시 색 다르고 관능적 인것이 였다. 

계속 돌아가는 지구의. 

아시 아가 확대된다. 남부월남에서 미군이 화염방사기로 민가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생매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노이에서 백발을 날리며 연설하는 호지명주석 … 남부월남민 
족해 방군 전사들이 적 진으로 돌격한다. 

다음은 중국… 베이징의 리엔안먼(천안문)에서 연설하는 마오 
쩌 둥(모택동). 

리엔안먼광장을 누비는 시위대렬… 북소리, 쿵챙거리는 징소리와 
노래소리도 계속된다. 

계속 돌아가는 지구의. 

조선동해 로 기 여드는 미항공모함 〈〈엔터 프라이 즈》호가 물결 을 
헤 가론다. 

다음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담판장에서 적측을 호되게 답새기 
는 우리측 수석위원 장정환의 엄엄한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레시바를 낀 미군측 수석위원은 뒤쪽의 보좌관들한테서 쪽지가 넘 
어오기를 기다리며 손바닥으로 눈두덩만 문지르고있을뿐… 대신 적 
들은 담판장밖에서 더 힘껏, 목청껏 떠들고 울부짖는다. 총파 대 
포의 론리 밖에 모르는 미제 이다. 

조선동해로 기 여드는 미항공모함전단, 항공모함갑판의 활주로 
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함재기들, 지상에서 는 각종 땅크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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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이 포연을 날리며 무한궤도로 이 땅을 물어뜯는다. 전쟁의 바 
퀴, 전쟁의 무한궤도가 우리의 턱밑예까지 굴러오고있다. 

진지를 차지하는 인민군군인들, 광장을 행진하는 열병대오… 동 
시에 우리 혁명군대의 노래, 조선의 노래가 터전다. 

혁명의 붉은 대오 우리는 인민군 
로동당 품속에서 자란 투사다 
불구름 뚫고가는 싸움의 나날에 
전우들 붉은 피를 당에 바쳤다 
동무들아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우리의 심장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열병광장에는 각 군종, 병종의 종대들이 끝없이 이 어지고 하늘땅 
을 진감하는 만세의 환호성과 더불어 총검의 숲이 해빛에 번뜩인다. 

기록영화가 끝나자 이어 그 자리에서 전원회의가 시작되였다. 나 
는 먼저 회의참가자들을 쭉 둘러보고나서 심각하게 말했다. 

〈〈당중앙위원회 위원동무들, 방금 우리가 기록영화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는 지금 세계도처에서 전쟁의 
불을 지르고있습니다. 그 불길이 우리 가까이에서도 타번지고있다 
는것을 동무들도 잘 알고있습니다. 이렇듯 긴박한 정세는 우리에게 
속히 국방에 힘을 집중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누구도 우릴 지켜 
줄수 없습니다. 까리브해의 위기때만이라도 돌이켜보시오. 남의 
것이 아무리 위력한 로케트라 해도 제 손에 쥐여져있는 보총보다는 
못합니다. 이것은 지나온 력사가 우리에게 새겨준 심각한 교훈입니 
다. 그래서 오늘 전원회의에서 경제국방건설을 병진할데 대한 문제 
를 토의하자고 하는데… 동무들, 기탄없이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회의참가자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서며 대답했었다. 

《수령님, 여기에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옳습니다. 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됩니다.〉〉 

《우린 수령 님 의 결심 을 전적 으로 지 지합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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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준절한 어조로 그들을 타일렀다. 

《동무들, 이건 결코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님니다. 병진이란 말을 
문자그대로 경제, 국방에 다같이 힘을 넣는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선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 경제건설보다 국방건설에 더 큰 힘을 넣는 
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쉽게만 생각지 말고 
다들 더 연구합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 다음 토의해봅시다.》 

그날 밤 나는 밤이 깊도록 정원을 거닐었다. 동지추위가 바늘끝 
처 럼 살을 록록 찌 르군 했다. 

그밤 멀찌감치에서 뒤를 따르던 부관들이 된경을 치르었었다. 무 
슨 일로 내가 동지추위가 터지기 시작한 그밤에 정원을 거닐며 깊 
은 고뇌에 잠기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이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하는것 이 보기 에도 민망스러 울 지 경 이 였다. 

회의는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날에도 계속되였으나 끝을 보지 
못하였다. 드디여 닷새째 되던 날 나는 이렇게 회의를 시작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위원동무들, 우린 벌써 여러 날째 같은 문제를 가 
지고 토의하는데 왜 이러는지 동무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사실 경 
제국방병진로선이라는것을 말로 하기는 그닥 힘들지 않습니다. 만 
장일치로 손을 들어 찬성하는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가 그것을 결심하면 우리 인민은 또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들게 살 
아야 합니다. 지난날 지지리 못살던 우리 인민이 이제 겨우 남부럽 
지 않게 살게 되는가 했는데… 또 고생을 시키게 됐으니… 그래서 
결심하기가 이렇게 힘이 들고 피로운것입니다. 그래도 해야 되겠습 
니까,동무들?…》 

한동안 얼음장같은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숨결도 눈빛마저도 
얼어붙는듯 했다. 피로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그때 갑자기 의자를 
끄는 소리가 울렸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김일이 무거운 의자를 밀 
어 놓으며 자리 에서 일어 났던것 이다. 그는 두주먹을 꽉 부르쥐고 두 
름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힘들게 말을 떴다. 

《수령님 ! 우린 그냥 앉아 죽을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 
린 국방건설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것만 같았다. 그렇다,그냥 앉아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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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입 
에 가져가며 기침을 했다. 

〈〈그럼 다른 동무들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여러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리 고는 모두 한목소리 로 〈〈수령 님 !》하고 부르짖 던 
것이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다. 그다음 나머지 사람들까지 다 자리 
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합쳤다. 

〈〈수령님, 해야 합니다!〉〉 

《해야 합니다!〉〉 

《해야 합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숨결로 장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것을 느꼈 
다. 두터운 얼음장도 녹일 뜨거운 숨결… 천근만근 무겁던 마음속 
중압도 그 숨결로 녹아버린듯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모두 자리에 앉도록 한 다음 이옥토록 당중앙위 
원회 위원들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웬일인지 다시 말을 이으 
려 니 화약내 를 삼킨것 처 럼 더 심하게 목이 갈리 는것 을 느꼈다. 

《옳습니다, 동무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자주권을 지 
킬수 있습니다. 자주권을!…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부르던 혁 
명가요에도 있는것처럼 자유가 없으면 살아도 죽은것이나 같습니 
다. 그러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자주성이고 자주성은 곧 나 
라와 민족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기어이 병진을 해야 합 
니다. 경제와 국방을 병 진하여 그 어 떤 원쑤도 감히 우리 를 넘 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져야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니 이제 우리 인민은 또 허리띠를 를 
라매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 

나는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더 할말도 없었다. 가슴은 저리 
다못해 칼로 에이는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 
는것을 느꼈다.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것 이다. 

나는 그 눈물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천천히 손수건을 꺼 
내 여 몇번이 고 눈굽을 찍고 또 찍 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눈굽 
을 적시였다. 그들 역시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것을 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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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있었던것이다. 소리없는 흐느낌 … 그것이 우리의 격조높은 연설 
을 대신해주었고 쓰라린 그 눈물방울이 전원회의 결정서의 종지부 
로 되였다. 

그후에도 그날의 회의장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저려드는 
것을 어쩔수 없다. 그러면 다시금 마음을 굳게 가다돔는다. 

우리 당의 경제국방병진로선!… 오늘 우리 시대, 격변하는 동란 
의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있다. 전쟁과 살륙이 란무하고 수많은 나 
라와 민족의 자주권이 엄중히 침해당하고있는 준엄한 현실이 바로 
그러한 결 단을 요구하고있 다. 

오늘 중국의 당과 정부도 나날이 엄중해지고있는 정세하에서 나 
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자탄폭발시험을 서둘러 진행하지 않 
을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이미 핵을 가지고있는 렬강들은 무섭게 
반발할것이다. 그들은 자기들파 힘내기를 할수 있는 새 적수가 나 
타나는것을 절대 바라지 않기때문이다. 력사의 교훈이 그것을 말해 
주고있지 않는가. 모든 제왕들, 권력을 탐한 왕세자들이 바로 그 
러한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친혈육간에도 칼을 뽑아들고 피 
가 탕자하도록 싸우지 않았던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철의 주먹으로 지켜야 한다. 머리를 조 
아리고 눈물로 애걸하거나 맨주먹을 내흔들며 울분을 터치는것으로 
는 결코 지켜낼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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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은 오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정환이 몇번씩이나 방에 
전화를 걸었어 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 어 디 엔가 숨어 버 린것 같 
았다. 장정환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있었지만 어쩌는수가 없 
었다. 자기가 그를 찾아갈 시간은 없었다. 그는 총정치국의 주 
간사업계획에 따라 어느 한 비행장으로 차를 달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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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오에서는 오늘 두번째인가 쏘련에서의 지도부교체와 중국 
의 핵시험소식을 알리고있었다. 충격적인 사변들이였으므로 장 
정환은 그 문구들을 전부 뜬금으로 외울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시금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처남 박유진의 일은 
어느새 벌써 멀리 뒤전으로 밀려나고말았다. 

그때 운전사가 연방 경적을 울렸다. 

〈〈아니, 저런?…》 

운전사가 조향륜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획一 획 잠아돌렸다. 
그때마다 넓은 들 한가운데로 난 좁은 길에서 앞바퀴가 길설의 도 
랑채기 에 빠질듯 미끄러지다가 겨우 용을 쓰며 올라서군 했다. 

앞을 보니 웬 녀자가 비틀거리며 걷고있었다. 꼭 술취한 사람의 
걸음새였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어깨엔 커다란 배낭을 메고있는데 
연신 손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고있었다. 울고있는것 같다. 운 
전사가 뒤늦게야 길설에 비켜선 녀자옆을 스칠듯 차를 몰아가며 신 
경 질적으로 빠_앙!一하고 길게 경 적소리를 울리 였다. 순간 겁 
에 질린듯 한 녀자의 얼굴이 이쪽으로 피끗 돌려졌다. 눈물에 젖은 
약간 가무스레한 얼굴… 

〈〈차를 세 우오. )) 

차가 멎자 장정환은 문짝을 열고 뒤에서 주춤거리는 처녀에게 소 
리쳐 물었다. 

〈〈동무, 어데 까지 가오?》 

대답이 없었다. 놀란듯 아릿다운 동작으로 한손을 가슴에 가져다 
눌러대는것이 보였다. 왕별을 단 장령이 차에서 내다보며 물으니 그 
만 얼 어붙고만것 인지 도 모른다. 

〈〈동무, 어데 까지 가오?〉〉 

〈〈저一기 통산리까지… 멀지 않습니다.》 

그가 눈짓으로 가리킨 곳은 분명 장정환이 가고있는쪽이 였다. 석 
비 례를 깐 좁은 길이 맹기 오리 같이 우불구불 뻗 어올라간 저 고개를 
넘으면 비행장이 나진다. 허나 눈짓으로 가리킬 때에는 지척인듯 보 
여도 실은 시오리도 넘는 먼길이다. 

《혹시 공군부대를 찾아가는게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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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는 군인들처럼 매번 단마디 대답이 였다. 

〈〈거기 누가 있소?〉〉 

〈〈오빠가…〉〉 

그런즉 처녀인 모양이라고 장정환은 단정하였다. 

〈〈오빠가 뭘하는데?〉〉 

〈〈비행사입니다.》 

〈〈이름은?》 

〈〈최一봉一호…》 

처녀는 그 이름이 마치 중대한 군사비밀에라도 속하는듯 혀가 굳 
어 진 소리 로 마디마디 힘들게 발음했다. 

〈〈그럼 와서 타오.〉〉 

그 녀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 다.〉〉 

이슬비같이 여리고 애수에 젖어든 목소리였다. 그 어떤 눈물의 사 
연이 그런 목소리를 만들었을상실었다. 

《보매 그 배낭이 아주 무거운것 같은데?…》 

〈〈아닙니 다.》 

벌써 두번째로 그는 《아님니다.》라는 말을 이상한 어조로 반복 
했다. 젖어든 그 목소리에는 그 어떤 비통한 억양이 숨어있었다. 
녀자가 또 손등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애원하듯 말했다. 

《장령동지, 고맙습니다만… 전 걸어가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어서 가보십시오.〉〉 

여리고도 고집스럽게 느껴지는 억양이였다. 

〈〈동문…》하고 장정환은 약간 망설이며 물었다. 〈〈이름을 어떻 
게 부르오?》 

이렇게 묻는것이 아니였다. 그 물음이 처녀를 저으기 당황하게 한 
듯 했다. 초점잃은 흐릿한 눈길을 아래로 떨구며 처녀는 신발끝으 
로 땅바닥을 허비였다. 

〈〈한一수희 입니다.〉〉 

처녀는 아까처럼 또 힘들게 발음했다. 장정환은 조금 미안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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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이 들었다. 꼭 알아야 할 리유가 있어서 물은것은 아니다. 녀자 
가 비행사인 오빠에게 눈물을 안고가는것이 마음에 걸렀었다. 비행 
사들이란 항상 마음속에 한점의 그늘도 없이 늘 개여있어야 하는것 
이다. 한순간에 수백수천메터를 날아가는 그들에게는 사소한 마음 
의 불안도 치명적인 후과를 초래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럼 할수 없지.》 

그가 문짝을 닫는것과 동시에 조바심치며 기다리고있던 운전사가 
어 느새 차를 출발시 켰다. 잠시 후 장정 환은 저 도 모르게 후사경 에 눈 
길을 주었다. 그런데 한수희라는 그 이상한 녀자는 여전히 그 자리 
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장정환은 공군부대에 가자 비행사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 
특히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 상기학습정 형 을 료해 하고 진지한 
토론을 벌렸다. 제일 문제로 된것은 부대에 회상기부수가 매우 적 
은것 이 였다. 회상기 를 싣 는 〈〈조선 인 민 군〉〉신문도 기 층단위 에 까 
지 차례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이 문제토의 에 오랜 시간을 바쳤 
다.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얼마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 
하신 김정 일동지 께서 최 근 인민군대 에서 혁 명 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던것이다. 

날이 어두워서 야 일이 끝났다. 부대지휘관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 
에 오르려던 때 불쑥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눈물속에 
비행부대를 찾아오던 한수희라는 녀자…그 녀자는 오빠를 만나 무 
슨 가슴아픈 소식을 전했을가?… 

《참, 이 부대에 최봉호라는 비행사가 있소?》 

〈〈예,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것은 정치부장이였다. 그가 웃 
으며 계속했다.〈〈아까 부국장동지가 그를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지 
금 뒤에 서있습니다.》 

《뭐?》 

장정환이 자기를 둘러싼 부대의 지휘성원들인 상좌, 대좌들을 둘 
러보는데 맨뒤쪽에 서있던 제일 젊고 몸이 갱핏한 상위가 앞으로 쑥 
나섰다. 

〈〈옛, 상위 최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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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아까 만나본 기억이 났다. 구분대의 회상기학습정형 
을 료해 하기 위하여 정 치 부장이 도중에 불러 온 2대 대 3중대 의 새 
파랗게 젊은 비행사였다. 

《음… 동무요?》하고 장정환은 실눈을 지으며 직방 이렇게 물 
었다. 《오늘 녀동생 이 찾아왔겠는데 … 만나봤소?》 

상위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남달리 눈을 디룩거리며 자기의 상관 
들을 둘러보았다. 

〈〈소장동지 , 저 한텐 … 녀동생 이 없습니 다.〉〉 

《뭐?》 이 번엔 장정환이 뜨아해 하며 저 도 모르게 목소리 를 높 
였다. 〈〈아까 내가 여기루올때 부대를 찾아온다는 녀동생을 길가 
에 서 만나봤는데두? …》 

부대의 지휘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부국장동지.〉〉정치부장이 나섰다. 《우리 봉호동무한텐 부 
모형제가 없습니다. 전쟁때 모두 희생되였습니다. 고아입니다.》 
《고아?!…》 

장정환의 두눈이 희미한 빛을 내 였다. 

《그러니 오늘 동무한텐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겠소?》 
〈〈그렇습니다.》 

장정환은 도저히 갈피를 잠을수 없었다. 그가 로상에서 이상한 녀 
자를 만나던 그때부터 벌써 여 러 시 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아직 부 
대에 오지 않았다면 그 녀자가 거짓말로 그를 속였단 말인가? 

그가 놀라와하는것 을 보고 참모장이 부대 직 일 관을 소리쳐 불렀 
다. 그러 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부대 직 일 관은 오늘 누구도 최 봉호 
상위를 찾아온 일이 없다고 했다. 그때 불현듯 최봉호가 두눈을 번 
뜩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부국장동지, 혹시 그녀자 이름을 물어보셨습니까?》 

〈〈음… 한수희라구 했던것 같애.》 

〈〈그러니 제 안해가?… 부국장동지, 미안합니다.》 

《안해?》 장정환이 언짢아하며 따져물었다. 〈〈안해 가 왜 아 
직두 오빠라구 해 ?》 

《예,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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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장정환은 아까 만났던 그 녀자의 이슬비같이 여리고 눈물에 
젖어있던 목소리며 고개를 외로 틀고 그 무엇엔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상한 거 동을 상기 했다. 

〈〈남편을 찾아오던 안해가 왜 부대엔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상하 
군. 무슨 일이 있는것 같은데 좀 알아보오.〉〉그것은 최봉호와 지 
휘관들모두에게 한 권고이기도 했다. 《그럼 난… 가겠소.》 

승용차에 오르는데 부대지휘성원들이 구령이라도 내린듯 일시 
에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소장동지.》 

가을날의 밤은 빨리도 시작되였다. 승용차가 부대정문을 나섰을 
때였다. 장정환은 가랑잎이 어수선하게 날리는 길가에 서있는 한 녀 
자의 모습을 얼핏 스쳐보았다. 한수희가 분명했다. 그 녀자는 아 
름드리가로수밑둥에 착 불어서서 부대정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 
고있었다. 갑자기 승용차의 전조등빛이 눈을 때리자 얼결에 손을 들 
어 앞을 가리웠다. 순간의 일이였다. 차는 어느새 그를 멀리 뒤에 
남기고 달렸지만 장정환은 줄곧 뒤를 돌아보고있었다. 

운전사가 말했다. 

〈〈아까 만났던 그 녀자가 옳습니다.》 

〈〈음…〉〉 

이상한 일이다. 녀자가 시오리길을 반나절이나 걸어왔을수는 없 
다. 오탠 시간을 저 부대정문앞에서 망설이고있었을것이다. 분 
명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것이 틀림 없다. 

운전사가 라지오를 틀었다. 라지오에서는 근래에 새로 나온 노래 
《종다리》가 한창이 였다. 

뜨락또르 우릉우릉 넓은 들에 달리구요 
소리고운 종달새는 하늘높이 지저귀네 
종다리 야 노래부르자 
우리의 봄노래 풍년의 노래 

흥취나는 노래였다. 시대에 따라 노래의 상도 달라진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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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흥하는 때여서인지 새로 나오는 노래들모두가 벅차고 랑 
만적이고 건드러지는 악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아헤 _ 에헤여 _ 

수령님 다녀가신 농장벌에 새봄 왔네 
씨뿌리는 이 가슴에도 
벨리리리 뻘리리리 새봄이 왔네 

노래 한곡이 끝나자 갑자기 방송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취자여러분! 방금 들어온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 소리 에 귀 를 기 울이던 장정환은 두눈을 흡뜨며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 와같이 남조선괴 뢰 들은 미 제의 총알받이 로 〈이 동외파병 
원〉이 라는 선 발대 를 먼저 월 남에 파병 하고 이 어 피 뢰국회 에 서 
〈파병동의안〉을 얻으러고 획책하고있습니다. 어제 남조선의 
〈동아일보〉에 의하면 이미 괴뢰국방부는 동의안을 얻는 즉시 월 
남에 파병할 〈비 둘기부대〉 2천명 을 만단의 출동태 세 에 두고 
있다고 합니 다. •••)) 

장정환은 흥분을 참을수 없 어 두손의 관절 마디 를 딱딱 소리 나게 
꺾고있었다. 실로 격 동적 인 60년대 이 다. 오늘 하루새 벌써 세 번째 
로 전해 진 충격 적 인 소식 이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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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 땡, 맹 … 종소리가 울렸다. 오후수업을 끝내는 종소리 … 력 
사교원을 겸하는 곡우중학교의 교장 한초는 교무실로 들어가다가 마 
침 문을 열고 나서던 우편통신원과 마주쳤다. 우편통신원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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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 인사했다. 

〈〈교장선생님, 오늘 또 편지가 왔수다. 책상우에다 놨습니다.》 

〈〈아,그렇습니까.〉〉 

《교장선생님은 제자들이 많으니 편지도 그칠새 없습니다그려.》 
한초는 소리없이 옷으며 말했다. 

《아마 군대에 나간 제자들중 누군가 또 편지를 보냈겠지요.》 

〈〈아무튼 기쁘겠습니다.〉〉 

한초는 탁우의 편지봉투를 집어들면서 물러가는 우편통신원에 
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마침 그때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줄줄이 
들어서던 교원들이 서로 눈짓했다. 그중 제일 나이가 많은 수학교 
원이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직방 물었다. 

《교장선생님! 그 편진 누구한테서 왔습니까?》 

한초는 돋보기 안경 을 끼 며 봉투를 눈여겨보았다. 

《이건 처음 보는 주소인데?…》겉봉에 쓴 글을 읽던 그는 별 
안간 반가움에 목이 잠기는듯 했다. 〈〈우리 봉호의 우편함대호 
요!》 

교원들이 모두 반가와했다. 

〈〈야, 그렇습니까?》 

〈〈정말 반갑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여기 곡우중학교에서 최봉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군대에 
나간 후에 온 신입처 녀 교원들도 최 봉호의 지난 생 활파 갖가지 일화 
들을 잘 알고있다. 어찌 그뿐이랴. 그가 한초교장선생님의 수양딸 
한수희와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 은밀히 적 어온 수집은 사랑가도 그 
곡조와 가사까지 자자구구 뜬금으로 외 우고있는것 이다. 

〈〈어 서 읽 어보십 시 오.》 

《옳아요, 최 봉호비 행 사 편진 공개 해 야 합니 다.》 

《옳습니다. 교장선생님, 공개독보합시다!》 

처 녀교원들까지 합세하여 떠 들어 댔다. 

《아, 조용, 조용!… 물론 공개독보해야지.》 

한초는 흥분으로 하여 입귀를 떨며 봉투를 뜯었다. 겉봉에 씌여 
있는 글씨가 눈에 설다는데 대해선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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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어린 침묵속에 한순간이 흘렀다. 갑자기 한초는 안경을 벗 
어들고 두눈을 문질렀다. 그의 얼굴이 놀라움에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교장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예?》 

교무실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눈길을 모았다. 한초는 후둘 
거리는 손으로 다시 안경을 끼였다. 편지의 글줄들이 눈앞에서 아 
물거렸다. 마침 그때 눈치빠른 소년단지도원선생이 한초의 표정에 
서 이 상한것 을 느꼈는지 자리 에서 일 어났다. 

《아이참, 나 왜 이러니? 과외소조시간이 다됐는데 여기서 그냥 
우물거 리 구있 으니 …》 

그는 과외예술소조담당이 였다. 그를 따라 수학과 물리소조를 맡 
은 교원들도 한초를 흘껏 흘껏 훔쳐보며 밖으로 나갔다. 

한초는 여전히 편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것은 최봉호 
가 아니라 수양딸 수희가 보낸 편지였다. 그것도 겉봉의 주소는 최 
봉호의 상관인 2대 대 장의 안해 가 쓴것이 였다. 남의 주소로 편지 를 
써야 할만큼 급한 사정이라도 있단 말인가?… 

수희는 먼저 자기가 오빠를 찾아가던 때의 암담하고 쓰라리던 마 
음에 대하여 썼다. (놀랍게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오늘까지도 수 
회는 어릴 때처럼 봉호를 오빠라고 부르고있는것이다. ) 군데군 
데 눈물로 얼룩진 편지였다. 모진 마음을 먹고 오빠를 찾아가던 그 
때 걸음걸음 혀를 깨물며 망설이지 않을수 없던 사연을 루루이 적 
고나서 수희는 이렇게 계속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저도 인젠 철부지가 아닙 
니다. 하기 에 제가 이 렇게 결심한것 이 결코 일시적 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요. 전 모질게 마음을 먹고 오빠와 단호히 결별하기로 결심 
했어요. 세상에 태여나 처음 오랍누이로 지내며 친혈육의 정을 느 
꼈고 가장 진실한 사랑을 알게 해준 귀중한 오빠이지만… 인젠 헤 
여져야 한다고, 다신 절 찾지 말아달라고 편지에 썼어요. … 그 
럴수밖에 없는 이 몸이 아님니까. 제스스로 물러서지 않으면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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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 몸이 여서 지금 제 마음 얼마나 아프고 쓰린지 


창밖의 느티나무우듬지에서 바람이 윙윙거리자 무수한 잎사귀 
들이 눈보라처 럼 홀날렸다. 좌! 一하는 설레 임소리가 커 졌다. 

한초는 이옥토록 창가에 불어서서 웃옷앞섶에 매달린 까만 단추 
를 정신없이 잡아비틀고있었다. 지금 그의 귀전에는 창밖의 소란스 
러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수희가 써보낸 편지의 글줄들 
이 바람소리처 럼 계속 윙윙거 리는것이 였다. 

아버지, 어머니! 인젠 마음이 개운합니다. 오빠와 인연을 끊 
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그리도 괴롭고 아프던 마음도 인젠 죄다 눈 
물에 씻기 여버 린듯 합니 다. 인제 는 그 어 떤 무서 운 일 이 닥친다 해 
도 견디 여 낼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따라 제가 어릴 때 배운 동요가 자꾸 기 억 
에 떠오톱니다. 〈〈네 오려무나 네 오려무나 아빠엄마 그립거던 네 
오려무나〉〉하는 그 노래 를 말입 니 다. 

가고싶습니다. 언제든 저를 따뜻이 품에 안아주던 아버지, 어머 
니에게 당장 달려가고실습니 다. 달려가서 맘껏 울고싶습니 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이처럼 마음이 약해진 저를 부디 용서 
하세요. 저를 키워주신 그 사랑에 머리채를 잘라 보답은 못할망정 
가슴에 아픈 못을 박고있는 이 못난것을 부디 용서해주세요. … 

한초는 다시 창밖으로 눈물어린 시선을 옮기 였다. 그 순간 바람 
에 날리던 잎사귀 하나가 용케도 창유리에 달라불는것이 보였다. 휘 
익 ! 찬바람이 세게 붙었으나 떨어지지 않고 파들거리는것이 마치도 
창가에 서있는 한초에게 눈물로 떨며 애원하는듯 했다. 

별안간 오래전의 일이, 어언 13년전에 있었던 일이 뜻밖에도 기 
억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1950년 가을이 였다. 모든것 이 북으로, 북으로 흘러가던 동구 
밖의 길, 달구지가 굴러가고 보짐을 이고 진 사람들이 허둥거리며 
걸 어갔다. 북으로 향한 그 행 렬 속에 최 봉호의 일 가족도 있 었다. 

67 



최봉호의 아버지 최승렬은 군인민위원회 교육부의 시학이였다. 
당시 곡우중학교 교원이였던 한초와 자별한 사이였지만 그는 군소 
재지에 살았으므로 한초의 가족들과는 별로 련계가 없었다. 그 최 
승렬이 전선에서 희생되였다는 통지가 왔으므로 13살난 봉호가 앓 
고계신 어머니와 어 린 녀동생을 태운 소달구지를 끌고갔다. 개천군 
의 어느 리에선가 산다는 어머니의 먼 친척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그때 먼 하늘가에서 우르릉거리는 발동기소리가 파도치듯 밀려왔 
다. 몸서리치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조밭으로, 산등성 
이에로 허우적거리며 밀려갔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의 머리우로 적 
기 들이 내뿜는 불의 소나기가 쏟아져내 리기 시작했다. 폭탄이 떨어 
지 며 대기 를 써는 아츠러 운 소리 에 이 어 마침 내 무시 무시한 핑 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딛고선 땅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부신 섬광이 번 
쩍이고 시뻘건 화염이 도로우를 휩쓸었다. 그뒤를 따라 앙칼진 기 
관총의 급사격이 죽음의 휘파람소리를 내질렀다. 

괴멸적인 공습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드디여 적기들 
이 사라져갔을 때 도로엔 수많은 시체들이 마구 널려있었다. 산지 
사방으로 홑어졌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려와 서로 찾고부르며 아 
우성 쳤 다. 

봉호가 끌고가던 달구지 는 어 데론가 바퀴 를 날려 버리고 길섶에 구 
겨박혀 끄물끄물 연기 를 피 워 올리 고있 었다. 파편 에 앞다리 가 뭉청 
잘려 나가고 창자가 쏟아져나온 누렁소가 매캐 한 폭약내 와 피 비 린내 
가 코를 찌르는 도랑채기에서 혀를 가로물고 마지막숨을 릎고있었 
다. 그때 폭풍에 날려 도로의 반대 쪽 산기 슭에 구겨박혔 던 봉호가 
달러왔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정경에 그만 억이 막혀 몸 
부림쳤다. 피자욱이 널린 그 주위를 미친듯 돌아치며 그는 울부짖 
었 다. 

달구지에 타고있던 어머니와 어린 녀동생은 직탄을 맞고 형체도 
찾아볼수 없었다. 마침 내 봉호는 녀동생 이 신고있던 작은 고무신 한 
짝만을 겨우 찾아들었다. 아직도 시꺼먼 피가 고여있는 신짝… 
〈〈봉숙아!-〉〉 

그가 울부짖었다. 무서운 고함소리였다. 거칠고 호흡이 막혀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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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는 거쉰 통곡이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뛰여다니며 누군가를 찾고 부르는 길 한쪽에서 〈〈오빠야!一〉〉하고 
부르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던것이다. 봉호는 소리나는 그쪽으 
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봉숙아!-》 

《오빠야! —)) 

서 로 숨차게 달려 가 불안으려 고 했다. 어푸러 질 듯 마주가 팔을 벌 
리고… 그만에야 봉호는 비칠했다. 마주오던 소녀도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 에 굳어져 버 렸다. 봉호는 그냥 떨리는 손으로 눈을 비 비 
며 다시 보았다. 아까 손에 들고있던 봉숙이의 고무신때문에 얼굴 
이 온통 피칠갑이 되 는것 도 알지 못했다. 

소녀가 겁먹은듯 뒤걸음쳐갔다. 그리고는 얼른 손으로 눈을 씻더 
니 엉엉 울면서 돌따섰다. 

《오빠야! —)) 

울음섞인 그 가날픈 목소리에 봉호는 또 한번 비칠했다. 그는 입 
을 벌리고 길가에 뽀얗게 떠도는 먼지며 화약내며 피비린내까지 정 
신없이 들이켰다. 별안간 명치끝이 쑤시고 눈이 바로서지 않았다. 

《봉숙 아!〉〉 

그는 소녀 를 따라가 붙잠았다. 그러 자 어린 소녀 는 화들짝 놀라 
며 그를 뿌리쳤다. 

《아냐, 아니야!》 

그렇다. 봉호도 그가 아니라는것을 잘 안다. 그러나 봉숙이나이 
와 비슷한 어린 소녀가 홀로 길바닥에서 울고있는것을 그냥 내버려 
둘수 없었다. 그는 소녀를 다시 쫓아가 붙잡았다. 

〈〈가자. 나랑… 같이 가자.〉〉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소녀도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 
며 미심쩍게 살펴보긴 했어도 그냥 잡아끄는대로 따라왔다. 그러나 
갈곳이 없는 그들이였다. 찬바람이 길가를 휩쓸고있었다. 희뿌 
연 먼지가 회오리치며 끄물거리던 불길과 알싸한 내내를 휩쓸어갔 
다. 얼마후엔 땅거미가 지더니 추위가 옥죄이기 시작했다. 

어린 수희 가 목놓아울었다. 추위 와 배 고픔 그리 고 미 국놈들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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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에 어머니와 오빠를 잃은 몸서리치는 일을 상기해서인지 목이 쉬 
도록 울어대였다. 도무지 그 애를 달렐수가 없었다. 봉호는 가 
던 길을 멈추고 망연히 서있었다. 그의 두볼에서도 말라버린 피자 
욱을 적시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바로 그 애들을 한초가 찾아내였다. 아침에 떨나무를 찾아 헛간 
에 들렸다가 북데기를 잔뜩 뒤집어쓰고 잠들어있는것을 발견했던것 
이다. 그러나 그 애들은 잠들어있는것이 아니였다. 열에 들뜨고있 
었는데 특히 봉호가 더했다. 한초는 안해와 함께 앓고있는 애들을 
집으로 안아들였다. 마침 한초부부는 자식도 없이 외톱게 살고있었 
다. 자식 하나를 성홍열로 잃었던것 이다. 

지금도 한초는 그때 봉호가 여러날 앓고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던 
때의 일을 잊을수 없다. 눈을 떴으나 입을 벌린채 말을 못했다. 

《아이, 이제야 눈을 떴구나, 옹?… )) 한초의 안해가 진심으로 
반가와했다. 〈〈우리 수희는 이틀만에 깨끗이 털고 일어났는데…》 

어린 수희가 봉호의 손을 꼭 잠아주었다. 봉호는 놀란 눈빛으로 
그 애를 지켜보았다. 

《봉숙아…》 

〈〈아냐, 난 수희야.〉〉 

«•••» 

봉호는 말을 못했다. 꿈이 아닌가싶어 두눈을 몇번이고 슴벅이였 
다. 이윽고 움푹 꺼져들어간 그의 눈확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눈물 
이 샘솟더니 귀언저리로 쭈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얼마 
전에 겪은 끔찍한 일들이 상기된 모양이였다. 어머니와 어린 녀동 
생을 다시 는 보지 못하리 라는것도 비로소 깨달은듯실었다. 

그러나 그 애들의 마음속에 더 큰 상처를 입힌 일이 또 벌어졌으 
니… 그것은 미국놈들이 군을 점령하고 살륙만행을 일삼기 시작하 
던 어느날에 있은 일이였다. 

동네애들중에서 오가성을 가진 제일 나이가 많고 힘꼴이나 쓰는 
불망종녀석이 어린 수희의 코피를 터쳐놓았다. 한초선생이 없는 틈 
에(그 녀석도 물론 한초가 배워주었다. ) 집에 들어와 동네에서 보 
지 못하던 애들이 언제 무엇때문에 여기 와있는가고 트집을 걸며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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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끄맹 이 를 잡아끌다가 담벽 에 짓 쪼았던것 이 다. 

〈〈오빠야!一〉〉 

수희 가 울부짖 었 다. 그러 자 오가성 을 가진 녀 석 은 더 기 승을 부 
리 였 다. 

《오빠를 찾아? 어디 나오기만 해봐라. 뼈다귀두 추리지 못하게 
해놀테다.》 

〈〈오빠야!-》 

이 번에는 거의나 숨넘어가는 소리 였다. 

앓아누워있던 봉호가 벌떡 자리 에서 뛰쳐일어났다. 다음순간 어 
느새 문을 열어 젖히 고 토방을 뛰 여내리 더 니 자기 보다 곱절이 나 체 
통이 큰 그녀석을 머리 로 지 끈 들이받았다. 아츠러운 비명 이 터 졌 
다. 허 나 봉호는 조금도 사정보지 않고 땅바닥에 나딩 구는 그녀 석 
의 머리를 련속 발로 짓뭉개였다. 

《야, 이새끼 … 내 동생은 왜 때려? 고 쬐꼬만거 … 불쌍한 그 앨 
왜 때리는가 말야? 응?!… 야, 이 개같은 새끼, 어디 죽어봐라, 죽 
어봐! 一》 

얼마후 얼굴이 팅 팅 부은 그녀석 이 《치 안대》완장을 낀 제 아버 
지 오기택을 끌고왔다. 그다음 벌어진 무서운 매질 … 뒤늦게 야 집 
에 들어선 한초의 안해가 기겁하여 막아나섰지만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것 은 성 이 독같이 난 오기택 이 이 따금 제 아들 
한테 도 매 질 을 하더 라는것 이 였 다. 

《야, 이 멍 텅구리같은 놈아, 너보다 죄꼬만 놈한테 매를 맞구 울 
구불구 해?… 이 쓸개빠진 놈아, 미물같은거야?!》 

그러나 봉호는 모진 매질에도, 피가 랑자해지면서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중엔 오기택이란 놈이 봉호에게 사정사정을 했다 
고 한다. 

〈〈야 이놈, 너 잘못했다구 빌어, 응?! 한마디라두 빌기만 하 
면 놔주겠다. 한마디라두… 알겠니?》 

그러나 봉호는 증오에 사무친 눈으로 그를 쏘아볼뿐 끝까지 입 
을 열지 않았다. 

《야 이놈아, 빌어라, 빌어 ! …》오기택 이 입 에 거품을 물고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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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했다. 〈〈한번만이라두 잘못했다구 빌어라. 딱 한번만… 응?!一》 
진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아픔에 울부짖고있는것은 봉호 
가 아니 라 《치 안대》인 오기택 인 듯 했다. 

날이 어 두웠다. 그만에야 맥 이 진해 버 린 오기택은 쓰러진 봉호를 
죽어라 하고 발길로 걷어차며 침을 밸았다. 

« 야 이 놈 아 , 이 독 한 빨 갱 이 새 끼 야 ! 一 )) 

그날 한밤중에야 집에 들어선 한초는 너무도 억이 막혀 말이 나 
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봉호 역시 한마디도 말이 없 
는것이였다. 말라터진 입술을 혀로 추기며 멀거니 바라보는가 하면 
가끔 의혹이 실린 눈빛으로 그들부부를 매몰스럽게 살펴보기도 했 
다. 마치 도 뭇매 를 맞게 한것 이 한초량주의탓이 기 라도 한듯… 

이 렇게 봉호는 한초량주와 어린 수희의 천진한 마음까지 의혹파 
불신의 압박감으로 잔뜩 괴롭히더니 어느날 홀연 사라져버 렸다. 

수희의 말에 의하면 한초부부가 없는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 
회를 부르더라고 했다. 

《수희 야. )> 

그 순간 어린 수희는 지금껏 입을 꾹 다물고있던 봉호가 자기를 
부르는 바람에 너무 기삐서 〈〈오빠!》하고 휘파람소리같이 부르짖 
으며 달려 갔다고 한다. 그러 나 봉호는 어린 수희 가 반갑게 매 달리 
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나직이 이렇게 말했을뿐… 

《수희 야, 난… 오늘 가겠다.》 

《아이 오빠, 어델 가니?…》 

《우리 어머니켠 친척이 개천이라는데서 산다구 했다. 거기 가보 
겠다. 가보구… 널 데리러 올게.》 

《아니, 싫 어. 오빠야,가지 마.》 

봉호는 머리를 세게 저었다. 

《수희야, 이 집 아버지, 어머니한텐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구 말 
해다구. 절대 은혜를 잊지 않겠다구… 응?!》 

이것은 그가 한초의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그것도 제일 길게 한 
말이 였다. 그길로 그는 어데론가 사라져버 렸다. 

그가 다시 나타난것은 전쟁이 끝난 후의 어느날이 였다. 그것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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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한 간이역 기다림칸에서 병들어 쓰러져있는것을 한초와 한마을 
에 사는 학부형 한사람이 발견하고 알려주었던것이다. 

어머니견 친척은 봉호가 찾아간 그곳에 없었다. 알고보니 전략적 
인 일시적후퇴때 마을에 조직된 《치안대》놈들이 리농맹위원장 
을 하던 그 집을 도륙내였던것이다. 

봉호는 온 겨우내 혹독한 추위와 전쟁의 란리속을 누비며 방랑생 
활을 했다. 때로는 피난민들속에 끼워 밤길을 가고 때로는 후퇴하 
는 인민군대렬을 따라 산속길도 걸었다. 언젠가는 미군용렬차에 숨 
어들었다가 덜미를 잡혀 얼어붙기 시작한 강바닥에 내던져지기도 했 
다. 다행히도 류랑아들에게서 구원을 받고 그들과 같이 밀려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다시 봄이 시작될무렵 어쩔수없이 한 
초량주의 따뚯한 인정이 그리워 한발, 두발 이쪽으로 발길을 돌렸 
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14살 어린 나이에 이 땅을 북으로, 남으로 회오 
리같이 휩쓸어간 가혹한 전쟁의 화약내 질은 싸움길, 피의 진창길 
을 정처없이 헤매이던 끝에 여기에 다시금 나타난것이다. 

병 든 봉호를 구완하려 고 안해 와 어린 수희 가 보름이 넘 게 그의 머 
리맡에 붙어있었다. 열이 내리고 다시 눈을 뜨게 되자 수희가 손벽 
을 치며 부르짖었다. 

《아이 엄마, 오빠가 눈 떴어 !》그새 어린 수희 는 스스럼 없이 엄 
마라고 부르는데 습관되 여있었다. 〈〈이거 내 손 보이지, 응?!》 

어린 수희 가 가늘고 작은 손가락들을 쫙 펴 고 그것 을 봉호의 눈 
앞에 대고 흔들었다. 그것을 보던 봉호의 두눈에 물기가 어리기 시 
작했다. 이윽고 그는 눈앞에서 나비춤을 추는 수희의 작고도 예쁜 
손가락들을 꼭 잡아주었다. 

《봉숙아!-》 

이것은 그의 마음속 부르짖음이 였다. 그때 어 린 수희는 자기의 손 
을 꼭 잡아쥔 봉호의 두눈에 그득 고이는 눈물의 의미 를 알지 못했 
다. 알수도 없는 나이였다. 

봉호가 또 집을 나갔다. 

이태가 지나서야 한초는 개천에 있는 초등학원(전쟁고아들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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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립된 학교)에서 봉호를 찾아냈다. 그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술 
한 품을 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에게 붙잡혀왔으나 웬일인지 봉호는 한초부부에게만은 끝까 
지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인정많은 한초량주라 해 
도 그의 마음속 족보에만은 친아버지, 친어머니로 올릴수 없는 모 
양이였다. 대신 어린 수희만은 친오빠로서 대해주었다. 결폐있 
고 감때사나운 소년답게 미국놈폭격에 잃은 어린 녀동생을 대신하 
여 그 나이또래의 수희를 살틀하고 깊이 그리고 속절없이 사랑하는 
것으로써 마음속 아픈 상처를 달래고있는듯싶었다. 

그는 이 렇게 3년동안만 집 에 불어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군 
대 에 나갔던것 이 다. 그리 고 공군대 학에 입 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집에 들리지 않았다. 

남달리 뚝심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봉호였다. 한초부부의 헌신적 
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수희 와는 달리 단 한번도 그들부부를 두고 아 
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고마운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 
도 서슴없이 바칠수 있는 그였건만 자기에게 생을 주고 피를 준 친 
부모에 대한 기억만은 끝까지 버릴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는 공군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수희 에게만 편지를 썼지만 한초 
량주의 사심 없는 사랑과 보살핌 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것 을 한시 도 잊 
지 않았다. 수희에게 그들을 친부모처럼 여기고 절대로 근심을 끼치 
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어른스럽게 강조하군 했었다. 

그 과정에 그들 오누이의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피의 흐름이 시작 
되고있었다. 그것을 그들 두사람은 느끼지 못했지만 한초만은 아버 
지다운 감각으로 그 류다른 피의 흐름을, 그 뜨거움을, 그 격렬함 
을 느끼고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금 수희가 써보낸 편지의 
구절들이 귀전을 허비였다. 

그래요. 전 모질게 마음을 먹고 단호히 결심했어요. 제스스로 물 
러서지 않으면 안되 는 이 마음 지 금 얼마나 쓰리 고 아픈지 … 

한초는 봉호와 영 영 결별하려는 수희의 마음을 그 누구도 돌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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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 못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인생길은 먼길이다. 꿈을 꾸 
면서는 갈수 있어도 믿음을 잃고서는 가지 못한다. 믿음이란 곧 인 
생길의 지팽이이다. 마음속 안내자이다. … 

어느새 창밖의 하늘에서는 찢겨진 구름장들이 서로 뭉치며 서켠 
으로, 밤을 향하여 가고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 어데선가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울려오 
는듯 했다. 한초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한적한 이 산골마을에 승 
용차라니?… 과외예술소조원들이 하루일파를 끝낸듯 떠들썩하며 밀 
려나오는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수습하였다. 무엇인가 하는척 해야만 했다. 먼저 딸 
의 편지를 책상서랍에 쓸어넣었다. 바로 그때 교무실문이 벌컥 열 
리 며 소년단지 도원선생 이 뛰 여 들어 왔다.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아니, 왜?》 

《교장선생 님 , 지 금 아버 지원수님 께서 ! …》 

《뭐?…》 

그는 얼결에 책상을 짚고 일어섰으나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 빨리 요. 아버지원수님 께서 오셨단 말이예 요!》 

한순간 숨이 끽 막히는것을 느낀다. 가슴이 후두둑… 모든 기쁨 
과 행복은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오늘따라 딸의 편지 
로 마음이 피로왔는데 이렇듯 아름이 벌게 기쁨이 찾아오다니 !… 그 
는 정신없이 복도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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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3시간이 넘게 곡우리협동농장을 현지지도 
하시 였다. 알곡 정당수확고를 높일데 대한 문제로부터 파종계획 
을 바로 세우고 2모작을 하는 문제 등을 의논하시며 논두렁길과 그 
루조밭의 등성이에로 난 최뚝길예까지 끝없이 걸음을 이어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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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무렵에야 농장벌을 떠나시였다. 그러나 평양에로 가는 큰길 
이 아니라 곡우중학교에로 난 달구지길로 차를 돌리시 였다. 

사실 곡우중학교는 그이께서 전후의 제 일 어려울 때 다녀가신 곳 
이다. 그때 그이께서 돌아보신 그 학교의 건물은 파편이 박혀있거 
나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진 기둥감들과 시꺼멓게 불에 그을은 서까 
태들을 겨우 모아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얹은것이였다. 교파서도 별 
로 없고 낡은 도서들을 재물에 삶아 인쇄잉크를 지워낸것이 대부분 
학생들이 쓰고있는 학습장이였다. 그날 더더욱 그이의 가슴을 아프 
게 저민것은 학생들의 람루한 옷차림 이 였다. 군데군데 기운 옷을 입 
고있는것이 부끄러워 그이 앞에서 자꾸만 작은 손바닥으로 그것을 가 
리려고 애쓰던 학생소년들… 허나 오늘은 많은것이 달라졌다. 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새 교복을 입고있는것이였다. 

《아버 지 원수님 ! -》 

아이들은 목멘 소리로 웨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다. 바로 그 
때 귀밑머 리가 희 숙희 숙한 한초가 황황히 달려나왔다. 전후의 그날 
에 오셨을 때 그이께서 몸소 수업까지 참관하신바 있는 그 력사교 
원이였다. 

〈〈아버지원수님!》하고 그는 아이들과 꼭같이 울먹이며 인사올렸다. 
《안녕 하십 니 까. 전 … 이 학교의 교장 한초입 니 다.》 

《아, 한초선생! 인제는 교장선생님이 되였구만?!》 그이께서는 
무등 반가와하시 였다. 

《그럼 그때 맡아하던 력사과목은 지금 누가 맡고있습니까?…》 
《력사과목은 지금도 제가 맡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재빨리 새톱게 일신된 건물내부를 둘러보며 중앙현 
관으로 걸 음을 옮기 시 였다.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소. 그새 학교가 번듯해졌구만!》 
《아버지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건설물자를 싣고온 인민군대동무들 
이 학교를 이렇게 개축하였습니다.》 

《음…》 

그때 누구인가 수령님곁에 바싹 붙어있는 학생들을 손짓으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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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키고 어데론가 쫓아보내였다.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애들은 왜 쫓아보냄니까?》 

한 녀교원이 급해하며 말씀드렸다. 

《저 학생들은 과외 예술소조원들입니다. 빨리 가서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과외 예술소조?〉〉 

《예, 아버지원수님께 우리 학생들이 준비한 예술소조공연을 꼭 
보여 드리 고실습니 다.〉〉 

여간내기가 아닌것 같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음악교원 입니까?》 

〈〈아, 아닙니다. 전 소년단지도원입니다.〉〉 

한초교장이 보충하여 말씀드렸다. 

《음악교원이 산전산후휴가여서 이 선생이 대신하고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중앙현관에 걸린 한장의 사진이 
그이의 눈길을 끄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사진앞으로 다 
가가시였다. 어둑시그레한 저녁이여서 잘 보이지 않는지 웃주머니 
에서 안경을 꺼내시였다. 

《여기 중앙현관에 따로 걸어놓은걸 보니 무슨 중요한 사진인것 
같은데?…》 

이번에도 한초가 흥분된 어조로 말씀드렸다. 

《예, 이 사진은 전후 우리 학교에 오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기 념 사진 입 니 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교장인 한초는 물론 교원들모두가 학생소년들 
이 늘 그러는것처 럼 〈〈아버지원수님》이라고 호칭하는것을 탓하 
지 않으시였다. 여전히 환히 옷으며 말씀하시였다. 

《음… 그때일이 생각나오. 생각나. 그럼 어디 좀 자세히 봅시 
다. 불을 좀 비치시오.》 

마침 기다리고있은것처럼 기록영화촬영가가 재빨리 조명등을 환 
히 켜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안경을 끼고 사진속에 박힌 아이들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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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한명한명 자세히 뜯어보시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험한 옷차림 
들이였다. 민망할 정도로 다닥다닥 기운 옷도 있고… 하지만 그 애 
들은 너무 행복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다. 싱글거 리고 벌쭉거리 
는가 하면 입을 쩍 벌리고 가슴삐근한 기쁨파 행복을 누를길 없어 
《아! 一〉〉하고 소리없는 감탄사를 내 뿜는 학생 도 있 었다. 그런 
데 그들중의 어느 한 아이만은 입을 크게 벌리고 옷으면 자기의 터 
질것 같은 기쁨이 그리로 모조리 새여나갈가봐 겁내는듯 입을 꼭 다 
문채 두눈만 올통하게 뜨고 곧추 앞을 내다보고있다. 

참으로 인 상깊 은 사진이 였 다. 

한초가 마른침을 꿀끽 삼키더 니 이상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이 사진을 찍 은지 벌써 10여년세 월 이 흘렀습니 다. 그새 이 사 
진속의 아이들이 대학에도 가고 군대에도 나갔는데 륙해공군 어디 
에나 다 있습니다.〉〉 

《벌써 10여년세월이 흘러갔단 말이지.》 

그이께서 깊은 감회에 잠겨 하시는 말씀이였다. 

《그러니 이 애들이 인젠 몰라보게 달라졌겠구만. 참, 저 키가 크 
고 이마가 도드라진 학생… 옳소, 그애요. 아주 인상깊은 애였 
는데… 이름이 뭐랬드라?…》 

《예, 아버지원수님께 꼭 비행사가 되겠다고 맹세드리던 최봉호 
입 니 다 . )) 

〈〈아, 최봉호. 기 억납니다. 어머니와 어린 녀동생을 미국놈들의 
폭격에 다 잃었다고 했었지.》 

《예, 그날 아버지원수님께 맹세드린대로 지금 공군부대 비행사 
가 되였습니다.》 

〈〈비 행 사? 음 … 대단합니 다.〉〉 

그이께서는 문득 한초가 전쟁때 부모잃은 두 아이를 데려다키웠 
다는것도 상기하시였다. 여기 사진속의 봉호와 또 어린 처녀애가 있 
었다고 했었는데?… 그이께서는 안경을 바로잡고나서 보다 주의깊 
게 또 한명한명 여겨 보시 였다. 그러 나 그 처 녀애는 여기 에 없다. 
사진을 찍을 당시 그 애는 겨우 소학생이 였었다. 

《그때일이 늘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이께서 는 감회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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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하시였다. 

〈〈제일 어렵던 때여서 우리 애들을 잘 입히지 못한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그랬는지… 그런데 오늘 여기서 그때의 사진을 보게 되는구만.》 
무엇인가 아픔이 담긴 어조로 하신 말씀이였다. 한초는 그 의미 
를 가늠할수 없어 두눈을 쪼프리며 죄송스러운듯 말씀드렸다. 

《정말 뚯깊은 사연이 있는 사진이지만… 우리 학생들의 옷차림 
이 너무 초라해서 사진이 잘되지 못했습니다.》 

소년단지도원이 마치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제쩍 끼 여들었다. 
《아버지원수님, 그래서 저희들은 오늘 우리 학생들이 새 교복을 
입고 노래부를 때… 그때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다시 사진을 찍었 
으면 합니다.〉〉 

《다시 찍는다?…》 

《예 , 아버 지원수님 !》 

《음…》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잠시 아무말씀없이 계속 
사진만 여 겨 보시 였다. 휘 황한 조명 등의 불빛 속에 들어있는 학생 소 
년들… 사진속의 아이들은 비록 초라한 차림새이긴 했지만 무엇이 
그리도 기쁘고 행복한지 여전히 벌쭉거리고있다. 

〈〈동무들은〉〉하고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저 사진에 
찍 힌 아이 들의 옷차림 이 한심 해 서 부끄러 운 모양이구만. 그래 서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으로 바꾸어 달자는것 같은데…》 

〈〈예, 그렇습니다!〉〉 

《아니, 그래선 안되오. 난 반대요.》 

〈〈예?!…〉〉 

뜻밖에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숨소리도 없었다. 조명등에 날 
아들던 하루살이 들의 가느다란 앵一 엠 소리 마저 잦아버린듯 했다. 

〈〈저기엔 우리의 력사가 있습니다. 고난을 헤쳐온 준엄하고도 자 
랑찬 력사가 말이요! …》하고 말씀하시 는 그이의 음성은 낮고도 준 
절하였다.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됩니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 
고 승리 해 온 력 사인데 무얼 부끄러 워한단 말이 요? 그렇 게 생 각하지 
마시오. 대신 가슴을 쭉 펴고 더 떳떳하게 자랑할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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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보다 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긴 했어도 세계〈최강〉 
을 자랑하던 미제를 때려부시지 않았습니까. 또 오늘은 재더미만 남 
았던 이 땅에 보란듯이 사회주의나라를 세우고있고… 바로 이걸 내 
놓고 자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초선생, 우린 늘 학생들에게 민 
족적자존심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존심마저 잃으면 짓 
밟히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다시 노예가 되고맙니다!…》 

소년단지도원은 물론 한초도 죄스러움에 눈길을 들수 없었다. 심 
장이 졸아드는듯 했다. 전후의 어렵던 그날에도 그의 력사수업을 참 
관하신 수령님께서 민족적존엄과 자존심을 키워줄데 대하여 얼마나 
간곡히 가르쳐주셨던가! … 

전후의 그날 한초는 병자호란 (1636 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됨. )때에 벌어진 광주 남한산성싸움에 대하여 수업을 진행 
했었다. 남한산성에서만도 애 국적군인들파 인민들이 40여 일간 
굴함없이 싸워 적군사 7천여명과 지휘관 300여명을 죽이는 전 
파를 올렸으나 비겁한 통치배들의 투항변절로 하여 통분하게도 나 
라가 유린당한 력사의 교훈에 대한 내용이였다. 

수업마감에 그는 이 병자호란 이후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녀성들 
이 이국에 끌려가 매매되면서 갖은 굴욕을 당하던 일과 그렇게 매 
매되던 녀성들중 일부를 돈을 모아 도로 사서 데려오기도 했는데 이 
들을《환향녀》, 즉 고향에 돌아온 녀자라는 의미로 부르던것이 차 
츰 녀 인들을 홀대하고 천시하는 말 〈〈화냥년》이 되 였다고 그 유래 
까지 덧 붙여 설 명하였 다. 

수업을 끝내면서 그는 속에 가득 들어차있던 긴장과 불안의 한숨 
을 조용히 내그었다. 자기 로서 도 중학생들을 위한 력사교수로서 는 
나무랄데없 이 잘된 것 같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력사교수를 실감있게 잘한다고 치하 
하시고나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선생은 왜 〈화냥년〉이란 말의 유래를 아무런 교양적의의도 없 
이 말해줌니까? 무엇때문에 그저 하나의 일반상식이나 알려주듯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해주는가 말입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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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는 다시금 속이 한줌만 해졌다. 수령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 
으실 때까지 숨을 죽이고있었다. 

〈〈그래 〈환향녀〉라는 말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모 
욕적으로 부론것이 어떤 놈들이였습니까.〉〉하고 수령님께서는 
근엄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바로 비굴한 량반통치배들이 아닙 
니까. 저네들은 외래침략자들에게 투항하고 그들의 발밑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자기들이 지켜주지 못한 불쌍한 조선녀인들에 
게는 침을 뱉았단 말입니다. 이러한 사대굴종사상이 골수에 배인 량 
반들때문에 수수천년 우리 민족이 외세에 짓눌러고 억압받고 천대 
받았다는것을 왜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합니까.〉〉 

가슴아프신 어조였다. 뜨거운 숨결이 가슴을 황황 달구는 말씀이 
였다. 한초는 수령 님 의 말씀을 마디마디 인두로 지지 듯이 가슴에 새 
기고있었 다. 

《한초선생,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무엇때문에 력사교육을 한다 
고 생각합니까. 력사상의 하나의 일화나 하나의 유래를 통해서도 새 
세대들의 마음속에 민족적존엄파 강한 자주의식을 심 어주어 야 하지 않 
겠습니까.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진정한 력사교육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한초는 눈앞에서 번개불이 번쩍인것만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 로소 오늘을 위해 과거 가 필 요하고 나라와 민 족의 
장래 를 위해 과거 가 필 요하다는것 을 새 삼스럽 게 깨 닫게 되 였다. 

《알겠습니다. 제 그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 다. 언제든 잊지 않 
겠습니 다!》 

이렇게 맹세드리고도 10여년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또 
어 버 이수령 님앞에 죄스럽게 되 였으니 … 그는 저도 모르게 혀를 깨 
물었다. 불시로 탄내를 마신듯 숨이 쩍쩍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나 
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 죄스러움은 학생예술소조원들이 
아버지원수님께 자기들의 노래와 춤을 보여드릴 때까지 그의 가슴 
속에 옹이처럼 박혀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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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고운 목청으로 노래를 부르고있 
다. 수령님께서는 밝게 옷으며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우리 힘 꺾을자 그 어데 있으랴 
풍랑도 무섭지 않네 
백두의 넋을 이어 빛나는 
내 조국 두렴몰라라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그런데 이제 우리는 또 경제국방병진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한다. 가혹하고 피어린 3년간의 전쟁을 겪고 재더미를 털고 일 
어서기까지 고생도 많았던 우리 인민이 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 
면 안되는것이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아이들이 밝게 옷으며 노래부 
르는 모습을 보시 면서 도 마음은 줄곧 무거우시 였다. … 

수령님께서는 가까이 앉아있는 한초에게 몸을 돌리시였다. 한초 
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그이께서 손짓으로 앉도록 하시였다. 

《교장선생, 이제 공연이 끝나면 우리 저 애들파 같이 기념사진 
을 찍읍시다.〉〉 

《예?!》 

한초는 너무도 뜻밖의 그리고 너무도 아름찬 기쁨에 그만 숨이 막 
힌듯 헉 一 하고 흐느끼 였다. 

〈〈내 생각엔》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이제 새로 찍게 될 
사진은 아까 우리가 보던 그 옛날사진과 나란히 걸어놓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후대들이 그 사진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헤 
쳐온 고난과 승리의 력사에 대하여 더 잘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초가 목메여 대답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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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 다. 아버지 원수님말씀대로 하겠습니 다.》 

소년단지도원도 크나큰 감동을 이길수 없어 연신 손등으로 눈굽 
을 문지르며 속삭이듯 했다. 

〈〈고맙습니다. 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14 - 


날이 갈수록 날씨는 차졌다. 벌써 11월이다. 비행장활주로를 휩 
쓰는 돌개바람에 어디선가 굴러온 가랑잎들이 새떼처럼 우一우 흩 
날렸다. 비행기의 발동소리가 점점 커지며 가까와왔다. 정비원 
들이 손채양을 하고 검은구름이 뜬 하늘가를 눈이 빠지게 바라보고 
있었 다. 

《나타났다!一〉〉하고 정 비 원들중 누군가 뒤 집 히 는 소리 로 부르 
짖었다. 《한대, 두대, 석대, 넉대!… 제3중대 추격기편대 오늘도 
이상없음!一》 

날씨가 나랐으나 추격기편대는 오늘도 임무를 마치고 정해진 시 
간에 정확히 나타난것이다. 비행장 저끝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아 
츠럽게 대기를 찢더니 착륙등들이 낌벅거렸다. 이어 비행장의 콩크 
리 트바닥을 쓸치며 비 행기들이 착륙하기 시작했다. 비 행기바퀴 
들이 둔중하게 콩크리트바닥을 쓸치 며 픽一픽 연기 를 내 룸었다. 

최 봉호는 맨 마지막으로 내 렸다. 담당정 비원인 초기근무사관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달러왔다. 

〈〈상위동지 , 수고했습니 다 !》 

그는 어느새 거수경례를 붙이고 비행기의 천개를 열고나오는 최 
봉호를 거들었다. 봉호보다 7년이나 나이가 많은 맏형파도 같은 사 
람이다. 류달리 곰살궂고 좀 덩둘해보이는편이지만 그처럼 깐지고 
정확하고 책임적인 정비원은 다시 찾지 못할것이다. 그가 또 소리 
없이 옷으며 무슨 비밀이라도 대주듯 봉호의 귀가에 손을 대고 낮 
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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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동지, 정치부장동지가 찾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최봉호의 강파로운 이마우의 짧고 시꺼먼 눈섭이 미간으로 쪼프 
러졌다. 그는 비행모를 벗어 옆구리 에 끼자 정비원은 돌아보지도 않 
고 스적스적 걸어갔다. 속이 언짢았다. 정치부장은 이제 수희의 문 
제를 꺼낼것이다. 한생을 언약하고서 갑자기 결별한다 하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따질것이다. 사실 봉호로서는 제일 말하기 
딱한, 더이상 생각하는것조차 힘든 문제이다. 

지휘부건물에 들어서니 오고가는 사람들모두가 그에 대하여 알고 
있는듯 했다. 여느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은체를 했다. 지 
나치고 다시 뒤돌아보는 사람, 무슨 말인가 하려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봉호는 쟁싸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지나가 
는것으로써 귀찮은 물음을 피하군 했다. 

정치부장은 대좌 전규환이다. 그가 반갑게 옷으며 마주나왔다. 
〈〈봉호동무, 자 어서 …》 

놀랍게도 전규환정치부장의 방에는 총정치국 부국장 장정환 
소장이 앉아있었다. 한달전에 만나본 일이 있는 사람, 바로 그때 
그가 뜻밖에 봉호의 녀동생이 부대에 찾아오지 않았는가고 물 
었었 다. 

《소장동지!…》 

봉호가 규정대로 보고를 시작하자 장정환소장은 그의 손목을 잡 
아내 리 고 자리 에 로 이 끌었 다. 

《반갑소. 상위동무. 어 서 여 기 와앉소.》 

놀랍게도 거기에는 이미 대대장파 대대정치지도원도 와있었다. 
마치 도 상위 최 봉호의 가정 문제 , 도덕 륜리문제 를 따지 기 위해 무슨 
특별군사재판이라도 열려는듯 했다. 

장정환소장은 봉호가 자리에 앉자 그의 맞은편으로 갔다. 별스레 
엄 숙해 진 표정이 였 다. 봉호는 무릎우에 올려 놓은 두손을 불이 일 게 
비비며 바재이였다. 장정환소장이 탁우에 놓인 종이를 가까이 끄당 
길 때에는 숨을 죽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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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 오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제203군부대 비 
행사인 상위 최봉호동무에 대해 뚯깊은 말씀을 하시 였습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구령이라도 받은듯 자리에서 일어섰 
다. 봉호도 벌떡 일어섰다. 

장정환소장이 굵은 목청 으로 계 속했다. 

《최 고사령 관동지 께서 는 얼마전 곡우중학교를 현지 지 도하시 면 
서 10여년전에 찍은 사진을 보았다고, 그 사진을 찍을 때 어머니와 
녀동생 의 원 쑤를 갚는 하늘의 복수자가 되 기 위해 꼭 비 행 사가 되 
겠다고 맹세하던 소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최 봉호라고, 자기 가 맹 
세한대로 지 금 공군제203군부대 에서 추격기비 행사를 한다는데 
정 말 대 단하다고, 자신께서 최 봉호동무가 군무생 활파 전투정 치 훈련 
에서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는것을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고요가 깃들었다. 뜻밖이였다. 모두가 조각상들처럼 굳 
어져버렸다. 장정환소장이 탁우에 내려놓는 종이장의 미세한 쓸림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 였다. 

봉호는 숨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불길같은 경련이 그의 광대뼈 
어름까지 파문을 그리며 번져갔다. 눈시울은 떨리다못해 아프게 죄 
여들었 다. 무슨 말인 가 해 야겠으나 입 이 얼 어붙어버 렸다. 

돌연 박수가 터졌다. 그의 상관들인 부대정치부장파 대대장, 대 
대정치 지 도원이 손바닥이 터질 지 경 으로 박수를 치 고있는것 이 다. 

〈〈최봉호동무!》 

장정환소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순간 최 봉호는 
《헉 !一》하고 흐느끼 며 그의 품에 안기 였다. 말로써 는 이 루 다 
표현할길 없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가슴을 찌르는 경건한 아픔이 눈 
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질무렵 최봉호는 전규환정치부장과 함께 비행장활주로의 변 
두리를 따라 걷고있었다. 정치부장에게 인제는 자기의 안해 수희에 
대하여 털어놓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수 없었다. 

《우리 처 한수희는 본래 윤씨성이 였습니 다. 윤수희 …》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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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 한초선생 
님의 성을 달고있지만…》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려는 수희와의 복잡한 문제의 밑뿌리라고 
할수 있다. 

전규환대좌는 시종 아무말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봉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지난날의 일들을 재빨리 돌이켜보 
고있었다. 그게 언제였던가?… 


《사람들이 우리보구 진짜오누이가 아니래.》 

수희가 잔뜩 볼이 부어 한 말이였다. 

《어떤 시러베아들놈이 그따위 허튼소릴 해?》 

봉호는 늙은이들이 대통을 탁탁 털며 내뱉군 하던 옛날말투를 본 
따며 씨근벌떡거렸다. 

《오누이가 아니문 대관절 무어라는거야? 그럼 내가 네 오빠가 
아니 란 말야?》 

생억지였다. 

수희가 흐느껴울며 말했다. 

《아니야, 오빠. 그 애들 욕하지 마. 개들은 〈네 오빠 성은 최 
가이니까 최봉호구 년 한가이니까 한수희 … 보라, 진짜오누이가 아 
니잖아?!〉 하는거야.》 

«?-)) 

봉호는 그때 낚시에 물려 강기슭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 
거리고있었다. 이럴 때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봉호도 자기를 키 
워준 한초부부의 사랑과 정성이 눈물겹도록 고마왔지만 성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수희와는 달리 친아버지,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진하게, 생생하게 새겨져있었으므로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 
해본 일이 없었다. 

또 언제였던가?!… 대학을 다니던 수희가,인제는 다 큰 처녀 
로 자란 수희 가 자기 학급에 서 제 일 가는 미 남자이고 학과실 력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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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도 1 등을 양보하지 않는 한 멋쟁 이 남학생 에게 물벼 락을 들씌 
워 소동을 일으킨적이 있었다. 

그날 공군대학을 졸업하고 오래간만에 집에 들렸던 봉호는 어머 
니가 하는 말을 듣고 한바탕 소리내여 옷었다. 전후사연이야 어쨌 
든 자기의 동생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마침 수희도 방학이 되여 집 
에 와있다 하니 한시바삐 보고싶었다. 

수희도 오빠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바람같이 집 으로 달려 왔다. 문 
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만 봉싯한 입술의 귀재비를 바르르 떨며 부 
르짖었 다. 

〈〈오빠!-〉〉 

거의나 속삭임같은 소리였다. 다음순간 두손을 모두어쥐고 그새 
눈에 띄 게 봉긋해 진 앞가슴을 꼭 누르더 니 급기 야 〈〈오빠!一〉〉하며 
새처럼 날아들었다. 했으나… 별안간 흠칫거리며 멎어서버렸다. 금 
시 자기를 안고 돌아갈것처 럼 벌떡 뛰쳐일어서던 봉호의 입 에서 뜻 
밖에 도 이 런 말이 튀 여나왔던것 이 다. 

《수희야! 너 무슨 처녀가 그래?〉〉봉호는 벌써 웃음을 거두고있 
었 다. 《너 대 학생 이 라는게 남학생 과 쌈질 을 해 서 소동을 피 웠 다면 
서?… 아니, 너 누굴 닮아서 그런 말괄량이가 됐니, 영?!…》 

실은 너무 기쁘고 반가와 막 얼싸안고 돌아가려던 봉호였었다. 그 
런데 알수 없는 그 어떤 충동이 먼저 군복입은 오빠로서 한번 을러 
메 게 한것이 였 다. 

《네-에?!》 

수희의 낯색이 순간에 달라졌다. 급기야 새파란 빛이 돌만큼 해 
족해지고 치미는 분노로 하여 눈시울이 파들거리기 시작했다. 

《말_괄_량이?〉〉하고 수희는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번득이는 
두눈을 손등으로 벅 씻으며 부르짖 었다. 〈〈그래요, 난 말괄량이 야. 
그것두 오빠를 닮았지 누굴 닮았겠어요? 그래, 그런게 싫다문… 좋 
아요, 다신 눈앞에 얼씬 안할게 !》 

수희는 말그대로 치마바람을 일구며 힘하니 문을 차고나갔다. 그 
새 몹시도 변했다. 어제날 귀엽고 재롱스럽기만 하던 수희가 아니 
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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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닭을 튀기고있던 어머니가 기겁하여 《수희야!〉〉 하고 
소리쳐불렀으나 열려진 문짝만 덜커덕거릴뿐… 수희가 사라지자 돌 
연 불꺼진 방안처 럼 썰렁한 랭기가 엄습해왔다. 

봉호가 게 면쩍 어하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배고프문 돌아오겠지요.》 

〈〈아냐. 그 애 성미두 자네만 못지 않네.〉〉 

어머니가 허둥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사방 돌아가며 소리쳐부르 
는 소리 가 들려왔다. 

수희 는 날이 어둡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새 중학교 교장이 된 한초가 늦게 들어와 사연을 듣더니 봉호 
를 나무랐다. 

〈〈수희 가 그 남학생 파 왜 다뤘는지 먼저 알아봤어 야지 , 응? 그 엔 
모욕받는 자기 녀동무를 지켜주느라구 그랬다는거야. 남학생이 제 
일 마음 약한 처녀 한테 무례한 행동을 했거 던. 청 소를 하면서 자기 
신발에 어지러운 물을 좀 흘렀다구 해서 도수가 넘게 모욕을 가했 
다지 않나. 늘 야질 거 리길 잘하는 학생 이 라더 군. 그 꼴을 보다 
못해 수희가 나서서 당장 사파하라고 들이댔다는걸세. 그러니 우줄 
대기 잘하던 그 학생이 가만있자구 했겠나? 뭐라고 또 이죽거리기 
시작했지. 그러자 수흰 정 참지 못하구 물을 들부었다는걸세. 그 
때문에 학생총회에 나서서 호되게 비판도 받았지.》 

봉호는 놀랍고 한편 기쁘기도 했다. 

《아, 그랬군요. 헌데 선생님은 그 일을 두고 수희한테 뭐라구 했 
습니 까?》 

《뭐라건!… 자존심이 강한 사람만이 자기도 지키고 남도 지켜줄 
수 있어.》 

(("•)) 

봉호는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봉호도 잊지 않겠지만》하고 한초는 깊은 생각에 잠겨 말을 이 
었다. 〈〈난 우리 학교에 찾아오신 아버 지원수님 께서 하신 말씀을 자 
나깨나 가슴에 새기군 하지. 바로 우리 학생들에게 학문을 하나 배 
워줘도 민족적존엄과 자존심을 먼저 심어주라구 하시던 그 간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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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심을 말일세. 존엄이 기본이야. 그걸 잃으면 소나 말이나 다 
를바가 원가. 봉호도 우리 민족의 피 눈물나는 력사를 잘 알지 않나? 
그래서 난… 우리 수희가 좀 지나쳤다 생각하긴 하면서두 아무 말 
안했어. 자기를 지킬줄 아는거야 좋은 일이지. 그래서 다행스러웠 
네. 마음을 놓았다구 할가. …》 

«•••)) 

봉호는 무엇인가 껄껏한것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것을 느 
꼈다. 수희가 장했다. 모욕받는 자기 동무를 지켜준 그 애가 더없 
이 미덤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는 흥분으로 하여 검붉어진 두 
볼을 실룩거리며 두손을 힘껏 맞부비였다. 그러는 그를 눈여겨보던 
한초가 빙긋이 옷으며 말하였다. 

《봉호, 어서 가서 그 앨 찾아오라구.〉〉 

수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봉호는 밤이 깊어갈수록 조바심치지 
않을수 없었다. 마을의 뒤산기슭에까지 정신없이 돌아쳤다. 이 
전처 럼 〈〈수희 야!一》하고 소리쳐 부르지 도 못했다. 목이 메 이 고 혀 
가 굳어졌다. 그 어떤 알수 없는 불안과 거북함이 그의 가슴을 짓 
누르고있었다. 

그는 정신없이 사방을 쏘다니였다.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골안의 싸늘한 개울가에서 무엇인가 희뜩거리는것 
이 눈에 띄 였다. 봉호가 돌부리를 걷 어차며 달려가니 어둠속으로 날 
태게 피해갔다. 틀림없는 수희였다. 기를 쓰고 봉호에게서 달아나 
려 하고있다. 봉호는 자기의 이마에서 피줄들이 부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숨이 차고 속이 끓어 참을수 없었다. 암상스럽게 구는 그 
애 가 밉 살스럽기 까지 했다. 

〈〈수희 야, 잠간 ! … 너 정 그러겠 어 ?〉〉 

봉호는 고양이처럼 쟁싸게 빠지려는 수희의 팔소매를 우악스럽게 
움켜 잠 았다. 

〈〈너 왜 자꾸 못나게 굴어, 응?》 

수희는 울고있었다. 그 눈물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싫어요, 싫어!》 

〈〈수희 야, 나 좀 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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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가 그의 어깨를 힘껏 잡아돌렸다. 그러나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싫어 , 정 말이 야. 보기 싫어 !〉〉 하고 수희 는 발버 둥치 며 울 
분에 찬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내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 나 해 요? 그런 데두 뭐 만나자바람 … 뭐 라구 했 어 요? 뭐 말 
괄량이라구?! 정말 내가… 그렇게두 미워요?》 

수희는 종주먹으로 봉호의 가슴팍을 내지르며 흐느꼈다. 그러는 
것 을 봉호가 그의 손을 붙잡고 자기 가슴앞으로 끌어당겼다. 수희 
는 더 항거하지 못하고 힘 이 진 한듯 그의 가슴에 무너 겨 왔다. 

《난 싫어. 정말 보기 싫어. 그런줄도 모르구 내가 얼마나 오빠 
를 기다렸다구, 얼마나! …》 

목메이는 흐느낌소리… 어느덧 수희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 
지고있었다. 퍼릿한 달빛아래 부르르 떨고있는 그 애의 어깨를 다 
그어안으며 봉호는 단숨을 활 내 뿜었다. 이 상한 일 이 다. 아직 이 
처 럼 사랑하는 동생 수희 가 오빠인 그의 가슴을 아프게 허빈 일 은 
없었다. 아직 이렇듯 수희가 그의 마음을 뒤죽박죽 산란케 한 일도 
없었고 이렇듯 예리한 기쁨파 무서운 불안에 몸을 떨게 한적도 없 
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사랑하는 동생 수희를 힘껏 끌 
어안았다. 

〈〈수희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그만…》 

《오빠! 一 》 

웬일인지 숨이 막혔다. 불시로 호흡이 멎어 버린듯 했다. 다음순 
간 힘껏 껴안고있던 두사람은 마치 전류에 라도 감전된듯 화닥닥 놀 
랐으니… 별안간 그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힘껏 떠박질렀다. 무 
엇인가 뭉클하고 화끈했었다. 불길같이 뜨겁게 달구고 무섭게 그리 
고 사무치게 지져대는것이 있었다. 그 격렬한 뜨거움과 아찔한 충 
격 이 그들 두사람을 헐떡거 리게 했다. 

한발자국 떨 어져 가쁘게 숨을 몰아쉬 며 봉호는 비 로소 자기앞에 
이전의 그 애,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동생 수희가 아니라 한 처녀 
가, 몸도 마음도 무르익고 성숙한 한 처녀가 서있다는것을 문득 깨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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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그들은 말이 없었다. 입을 다물고 시꺼먼 고민에 휩싸 
여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기만 해도 마치 전기에 감전된듯 펄쩍 뛰 
군 했다. … 

물론 봉호는 정치부장에게 이러한 사연까지 다 털어놓을수는 없 
었다. 다만 수희와 처음 만나던 일, 한초부부의 극진한 사랑파 헌 
신… 마침내는 정이 깊어져 수희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배치 
된 다음 결혼식 을 했다는것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였다. 여전히 전규환대좌는 묵묵히 다음이 
야기를 기다리고있었지만 봉호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오래 계속되 니 몸도 마음도 썰렁 했다. 주위 의 모든것 이 닥 
쳐오는 추위에 으시시 떨고있는듯 했다. 한산한 풍경이였다. 새들 
이 날아들지 않도록 남새만 심던 밭들파 공지, 마지막락조가 가까 
스로 불그레한 빛을 던지는 긴 활주로가 전부였다. 

그러나 최봉호의 한생과 곧추 이어져있는 활주로였다. 지금껏 걸 
어온 그의 전반생도 외줄기 저 활주로와 잇대여져있고 이제 가야할 
먼 인생길도 저 넓고 탄탄한 활주로를 따라 아득히 뻗어있다. 한생 
저 활주로를 박차며 창공에 날아오르고 저 활주로에 인생의 바퀴자 
국을 진하게 새기며 미끄러져내릴것이다. 줄기찬 삶의 활주로一유독 
수희만이 지금 거기에 한줄기 그림자를 던지고있을뿐… 

끝내 참지 못하고 전규환대좌가 물었다. 

《그럼 말해보오. 왜 그가 갑자기 동무와 갈라지려고 하는지?…》 
봉호는 잠시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이윽고 무엇인가를 결심한듯 
웃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였다. 

〈〈대좌동지, 이 편지에 다 씌여있습니다.》 

《?! …》 

그것은 수희가 봉호의 대대장댁에 써놓고간 편지였다. 

《이건 뭐요. 주소도 없는 편지?》 

전 규환대좌가 눈꼬리를 치떴 다. 

《그래도 필요한 얘긴 다 있습니다.》 

《그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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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환대좌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여 조심 
스럽게 펴들었다. 천천히 그리고 주의깊게 희미하게 보이는 편지의 
글줄들을 읽기 시작했다. 

숨막힐듯 피로운 순간들이 흘렀다. 봉호는 성급히 주머니에서 담 
배를 꺼내들었으나 곧 두손을 바지무릎에 가져다불였다. 

〈〈대좌동지, 담배를 피워도 되겠습니까?》 

《말시키지 마오.》 

전규환이 한손을 획 내저었다. 

벌써 어둡기 시작하여 편지를 읽기가 헐치 않았다. 그는 종이장 
을 눈앞에 더 바싹 가져다대고 그닥 길지 않은 수희의 편지를 눈으 
로 빨듯이 읽고있었다. 

〈〈그러니 안해의 친아버지가…》 마침내 편지를 다 읽은 전규환 
이 힘들게 속삭이였다. 《치一치안대였다구?…》 

봉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가 나올 지경으로 아프게 입술을 깨 
물고있을뿐이 였다. 

《이게 사실인가 말이요?》 대좌가 다시금 숨가쁜 소리를 내질 
렀다.〈〈이 모든게 왜 오늘날에 와서야 밝혀졌다는건가, 영?!…》 
여전히 봉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목에 경련이 이는듯 얼굴을 외 
로 틀며 어깨만 떨고있었다. 


15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의 방에는 여러명의 상, 부상들이 고개를 수 
그리고 앉아있었다. 죄스러워하는 낯색들이였다. 김일이 엄하게 따 
지고들었다. 

《수령님께선 농촌상점들에 아직 신발과 천이 부족하다고 걱정 
하고계시오. 방직공업성 부상, 무엇이 걸렸소?》 

얼굴이 둥실한 녀 성 부상이 힘 들게 자리 에 서 일 어났다. 

《저… 최근 월남에 보내줄 군복천생산에 력량을 총집중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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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김 일의 두름한 입 귀가 실룩거 렸다. 

《구실이요, 구실!… 나도 얼마전 평양방직공장에 나가봤는데 우 
리 로동자들의 기세는 아주 대단하더 란 말이요!》 

《예, 옳습니 다. 제1부수상동지.》 하고 녀성 부상은 마음을 
다잡는듯 허리를 곧추 폈다. 〈〈그렇 지 만 천생산을 배로 늘이 자면 방 
직기계대수를 결정적으로 늘여야 합니다. 로동자들의 기세가 아무 
리 높아도…》 

〈〈알만 해 . 》 김 일 이 수첩 에 무엇 인가 써 넣 었다. 《그렇 게 직 방 
말할게지 무슨 월남에 보내줄 군복천이요 뭐요 하면서 구실을 불이 
는거요?》 

그는 소요되는 방직기의 대수를 묻고 그것도 손가락굵기의 큰 글 
씨로 수첩에 써넣었다. 

《수령님께선 양복천으로부터 신발, 녀자양말에 이르기까지 필요 
한 모든것을 농촌상점들에 정상적으로 대주라고 교시하셨소. 부상 
동무, 계획분에서 하나도 미달해선 안돼. 제기된 방직기계문젠 이 
달중으로 해결 해주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때 요란스러운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김일이 전화를 들었다. 

〈〈나 김일이요.》 

내각교환수처 녀 의 가는 목소리 가 진동판을 울리 더 니 웬 남자의 굵 
은 목소리 가 새 여 나왔다. 김 일 이 그쪽의 소리 를 여 겨 듣더 니 송수화 
기 를 오른손에 바꾸어쥐 였 다. 그의 얼 굴이 험 악해 졌다. 

《동무,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요? 리웅산이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직접 인민 영웅탑총설계 가루 임명 하셨단 말이요!》 
그의 어성이 높아지고있었다. 《그는 또 내각의 건축설계실을 책임 
지고있는 실장이요. 뭐?… 그렇게 사람들의 허물만 자꾸 들출내기 
를 하면 되겠소?… 구멍은 깎을수록 커지는 법이야!》 

김일은 저쪽의 말은 들을념도 하지 않고 송수화기를 절컥 내려놓 
았다. 그리고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수 없는듯 손으로 턱을 힘껏 문 
질렀다.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눈길을 모으며 생각하고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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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여기서 리웅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지금 보천보전 
투승리 30돐에 즈음하여 헤산시 에 건립 되 는 인민영 웅탑건설을 
맡은 건 축가라는것 도 잘 알고있 다. 그러한 그를 누가 헐 뜯는단 말 
인가?…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 였다. 누군가 참다못해 약한 기침소리를 내 
였다. 회의가 중단되였음을 암시하는 조심스러운 신호같았다. 
그제서야 김일은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탁우의 문건을 뒤적이 
기 시작했다. 

《다음 뜨락또르문제 !》 

김일의 눈빛은 여전히 엄하였다. 그가 이렇듯 어성을 높이지 않 
고 조용히 따지기 시작할수록 고압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이럴 때 
엔 누구도 에누리를 못한다. 

《누가 말해보겠소? 그래 기 양뜨락또르공장은 왜 요새 허릴 펴지 
못하는가?…》 

구석 쪽에 앉아있던 등이 구부정한 공장지배 인이 엉 거 주춤 일 어섰 
다. 그러나 그가 손에 들고있던 수첩을 번지기 시작하자 김일이 먼 
저 오금을 박았다. 

〈〈그래 기양에서 허 릴 못 펴는 리유가 그 수첩 에 씌 여져있다는거 
요? 동무도 혹시 올해 우리가 꾸바에 보내준 뜨락또르수자를 거기 
에 써가지 고 온게 아니 요? 그렇 다면 그건 구실 이 안돼.》 

《저 사실은…》 

협의회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였다. 

마지막으로 황해제철소의 랭간압연기와 강선제강소에 놓을 중 
압연기문제가 론의되였다. 일부 일군들이 쏘련지도부가 바뀐 오늘 
쎄브에서 사들여올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기대를 표시하였다. 

〈〈이보.》 하고 김 일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수령 님께선 벌 
써 몇달전에 룡성기계공장에 파업을 주셨소. 황해제철소에 보낼 랭 
간압연기와 강선제강소에 놓을 중압연기를 만들데 대해서 말이요.》 

그때 서기가 들어와 김일의 귀전에 무어라 속삭이였다. 

《좀 크게 말하오. )) 

서 기 가 반복하자 김 일 은 자리 에 서 벌 떡 일 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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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 

그는 옷매무시를 바로하더니 서기와 함께 급히 출입문쪽으로 향 
했다. 걸 어가면서 사람들에 게 량해 를 구했다. 

〈〈동무들, 미 안하지 만 좀 기 다려 주시 오.〉〉 

그가 나가자 방안엔 숙연한 정적이 깃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가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간다는것을 감각으로 느끼고있었다. 차 
츰 탁상시계의 초침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채칵채칵, 채칵채 
칵…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의 시간을 재고있는 우주의 박 
동소리였다. 침묵속에 흘러가는 분과 초들… 

오래 기다렸다. 

김일이 다시 방안에 들어왔을 때에야 모두 긴숨을 내그었다. 김 
일은 엄숙한 기색으로 좌중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동무들, 수령님께선 오늘 협의회에서 토론된 문제들에 대해 보 
고받으시면서… 우리 일군들은 쏘련에서 벌어진 지도부교체와 관련 
하여 아무런 기 대도 환상도 가져서 는 안된다고 하시 였소.》 

사람들의 얼굴에 심각한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럼 우린 어떤 립장파 관점으로 쎄브를 대해야 하겠는가?… 
수령님께선 먼저 모든 일군들이 쎄브를 주도하는 그 수정주의자들 
의 본심 에 대 해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였소. 그럼 그자들의 속내 가 
무언지 누가 말해보겠소?》 

김 일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기 양뜨락또르공장 지 배 인을 불렀다. 

《동무가 어디 좀 말해보오, 한마디루 딱 찍어서.》 

〈〈한마디로 말입 니까?〉〉 

뜨락또르공장 지배인이 난색을 짓는것을 보자 김일은 화가 난듯 
손을 획 내저었다. 

《됐소. 앉소. 그러니까 남의 고간만을 넘보지 않는가, 영?!》 

이어 그는 좌중을 휘둘러보며 더더욱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 똑똑히 새겨듣소. 수정주의자들의 본색은 한마디로 말 
해서… 콩죽은 제가 먹고 배앓이는 우리더러 하라는거요.》 

사람들이 일시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김일이 수정주의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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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심 을 너 무도 생 동하고 통속적 으로 규정 하였기때 문이 였다. 

〈〈거기선 뭘 수군거리구있소?〉〉하고 김일이 웅글게 소리쳤다. 
《똑바로 듣소.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우리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 
이 란 말이요.》 

사람들이 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협의회는 이만합시다. 대신 동무들은 회의를 다시 준비해 
야겠소. 제기된 문제를 어떻게 자체로 풀겠는가?… 래일까지 모두 
이 에 대 한 답을 가지 고 오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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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1월 5일. 

마오쩌둥은 베 이징 중남해의 의년당에서 정 치국회 의를 열었다. 
쏘련지도부의 교체와 관련한 문제를 토의 하기 위 해서 였다. 지 금 마 
오쩌둥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조성 된 정세 를 심 중히 분석하면서 엄 
중한 단계 에 이르고있 는 중쏘관계 를 회 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 하 
고있었다. 심각한 회의였다. 류사오치(류소기 ), 천이(진의 ), 
덩사오핑(등소평 )이 먼저 발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 금정 세 
하에서는 쏘련의 새 지도부와 먼저 접촉할 기회를 마련하는것이 좋 
을것 같다고 했다. 

마오쩌 둥은 이옥토록 입 을 열지 않았다. 가슴속에 흐르는 감정 은 
그것 을 용납하기 가 어 려웠다. 격 하게 사품치 는 물결처 럼 수정 주의 
자들에 대한 반감이 마음속에서 길길이 뛰여 오르는것을 어쩔수 없 
었다. 그는 먼저 쓰딸린의 서 거 이 후 흐루쏘브가 실권을 틀어쥐 면서 
부터 의견상이가 심해지고 상처가 깊어지게 된 중쏘관계의 력사를 
더 듬어 보았다. 

흐루쏘브가 처음 중국에 날아온것은 1954년이였다. 희멀건 
얼굴에 교만과 위선을 감춘 얄궂은 웃음을 가득 담고 반갑게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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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며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였다. 그는 아직 쏘련고위지도부내에 
서 발을 든든히 붙이지 못했기때문에 중국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 
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선물들까지 비행 
기로 실어왔었다. 지어 회담에 들어가 국제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 
누기 시작하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한테 무슨 요구되는것이 없습니까? 기탄없이 말 
해주시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겠는지?…》 

시종 웃고있던 흐루쏘브의 두눈… 

마오쩌둥은 신중한 안색으로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뜻밖의 말 
을 하였다. 

《우리는 원자력, 핵무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이 측면에서 
우리가 도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 먼저 의논했으면 합니다.》 

흐루쏘브의 안색이 돌변했다. 바람이 초불을 꺼버리듯 그의 얼굴 
에 떠돌던 웃음을 지워버렸다. 하여 그의 입에서는 피로운 한숨이 
초불뒤의 가는 연기처럼 피여나고있었다. 

〈〈그걸 만들자면…〉〉그는 무엇인가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말하 
였다. 〈〈돈이 탁없이 많이 드는것은 물론 시끄러운 일도 많이 생 
길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사회주의대가정 에 핵우산이 하나만 있 
어 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회주의 나라들이 다 그걸 가질 필 
요는 없다고 봅니다. )) 

마오쩌둥은 아무말없이 잠자코 담배만 피웠다. 그러자 줄곧 그의 
표정을 살피던 흐루쏘브가 다시 눈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계속했 다. 

〈〈다시 말하지만 그걸 만들자면 우선 돈이 많이 들거니와 전기도 
핑장히 들고 인력도 아주 많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만들어놓은 물 
건은 쓰지도 먹지도 못하고 저장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얼마후엔 인 
차 로후해져서 다시 제조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에 랑비가 대단합 
니다. 그래서 우리 쏘련측의 의견은 당신들이 핵무기를 만드는 대 
신 평화건설을 다그쳐 경제와 인민생활개선에 노력하는것이 낫지 않 
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게 더 훌륭한 과업입니다. 가령 당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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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하면 중국의 모든 잠재력을 총동원해도 모자 
랄겁니다. 그러면 귀국의 인민경제와 인민생활은 파탄을 면치 못하 
지 않겠습니까.》 

〈〈그럴가요?…》 

마오쩌둥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흐루쏘브에게 도와줄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다는것, 그가 지금 허세를 부리고있지만 속으로는 중 
국을 얕잡아보는 한편 두려워하기도 한다는것을 간파했던것이다. 

며칠후 중국의 남방참관을 마치고 돌아온 흐루쏘브는 마오쩌둥과 
단독회담을 할 때 뜻밖에도 전혀 다른 문제를 화제로 꺼들었다. 

《마오쩌둥동지, 우리는 중국이 쎄브에 가입하기를 바랍니다. 그 
러면 사회주의진영내에서의 경제합작을 더 힘있게 촉진할수 있고 중 
국의 경제발전에도 대단히 유리할것입 니다.》 

그는 여러가지 실례를 들어가며 쎄브의 유익성과 자기의 원대한 
구상을 열이 나서 력설하였다. 

마오쩌둥은 참을성있게 듣고나서 조용히 말하였다. 

《중국은 거기에 참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이 크 
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무진장하기때문에 모든것을 자체로 발전시 
킬수 있습니다.》 

흐루쏘브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흥심을 잃어버린것이다. 대 
신 점차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와 적의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모질게 
입 술을 깨물며 참고있었다. 

이렇듯 날이 갈수록 중국과 쏘련이라는 쌍두마차는 서로 딴 방향 
을 향해 달렸으므로 점점 더 소란스럽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분 
렬파 충돌의 비탈길로 굴러내릴 그날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후… 1956년 2월 25일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의 마지막날에 
있은 흐루쏘브의 총화보고는 쏘련뿐아니라 전세계를 놀래웠다. 세 
인 들이 예 견치 못한 돌발적 인 정 치 지 진 이 일 어 났던 것 이 다. 그때 흐 
루쏘브가 한 보고는 바로 국제공산주의운동사에 하나의 지울수 없 
는 치 욕으로 기 록된 유명한 반쓰딸린 비 밀 보고였 었다. 그 보고에 서 
흐루쏘브는 쓰딸린의 전반생 의 혁 명 활동에 대 해서 는 일 정하게 긍정 
하는척 하고 기본은 쓰딸린이 범 한 과오들에 대하여 온갖 죄명을 다 
98 



만들어내였다. 

그때 세상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쓰딸린을 〈〈천재적수령》,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칭송한 사람이 흐루쏘브이라는것을 잘 알 
고있었다. 수천수만군중이 참가한 집회의 연단에 올라 〈〈바로 당신 
입니다, 쓰딸린동지! 전세계에서 맑스_레닌주의의 위대한 기치 
를 높이 추켜들고 앞으로 전진해가신분이 바로 이오씨프 위싸리오 
노비치 쓰딸린 당신입 니 다!一〉〉라고 목메 인 소리 로 감동깊이 웨친 
사람이 바로 흐루쏘브라는것도 낱낱이 기억하고있었다. 

마오쩌둥은 1957년 쏘련을 방문했을 때의 일도 상기해보았다. 
어느날 식사도중 흐루쏘브가 쓰딸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였었다. 

《쏘도 전쟁영화들을 보셨겠지요? 그건 모두 거짓입니다. 쓰딸 
린은 전혀 싸움을 지휘할줄 모르는 위인이였습니다. 조국전쟁의 승 
리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간섭함으로써 아 
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군 하였 습니 다.》 

마오쩌둥은 아무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하는체 했다. 반면에 흐루 
쏘브는 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쓰딸린에 대한 험담 
을 계속 늘어놓았다. 자기가 쏘도전쟁때 서남전선에서 하리꼬브지 
역 에 대 한 작전행 동을 당장 중지할데 대 하여 정 확히 판단하고 결정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쓰딸린이 그것을 뒤집어엎었다는것, 쓰딸 
린은 지도를 보지 않고 지구의를 굴리며 작전계획을 작성하기때문 
에 추상적인것이 많다는것, 그래서 총참모장에게 부탁하여 쓰딸린 
에 게 정 황을 잘 분석해 달라고 부탁했건만 쥬꼬브대 장은 쓰딸린 이 두 
려워서 말 한마디 못했다는것을 장황하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별수 있습니까. 내가 직접 쓰딸린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 
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랬건만 쓰딸린은 끝까지 자기의 고집을 굽 
히지 않더군요. 결파 서남전선은 무너지고말았지요. 정말 무례하 
고 조폭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였습니다.》 

마오쩌둥은 식사만 할뿐 끝까지 반응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당시 
중장밖에 안되던 흐루쏘브가, 수많은 상장, 대장, 원수들속엔 감 
히 끼울념도 못하던 그가 쏘련붉은군대의 최고사령관인 쓰딸린이나 
쏘도전쟁 의 명 장 쥬꼬브보다 자기 가 더 군사적으로 뛰 여났다고 자 
99 



랑하는것이 역스럽기 그지없었다. 더우기 수많은 대규모적인 전역 
들을 지휘해본 마오쩌둥 자기앞에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신의 군 
사적재능을 뽐내는것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마오쩌둥은 나프낀으로 입술을 닦고나서 이렇게 유모아적 
으로 말했다. 

《흐루쏘브동지, 나의 식사전역은 이미 끝났는데도 당신의 서남 
전역은 아직 승부를 가리지 못했구만요.》 

실로 교만방자한 흐루쏘브였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그에 대하여 
참을수 없 었다. 하여 그는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 가 있은 직 후 
에 〈〈프로레타리 아독재의 력사적경 험》이 라는 글을 씨서 중국공 
산당기관지 에 발표하였 다. 즉시 서 방의 신 문들이 그 내 용을 꺼들며 
《중쏘사이 에 론전 이 시 작되 였다.》고 떠 들기 시 작했다. 

마오쩌둥은 이 에 그치 지 않고 1958년 흐루쏘브가 중국에 왔을 때 
직방 이렇게 말하였다. 

《흐 루쏘브 동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 우점과 결 
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쓰딸린은 세인이 주목하는 국제적인 인물이 
고 영 향력 이 있는 인물이 므로 전면적 으로 부정해버 릴순 없습니 다. 
당신 이 쓰딸린을 전면부정해버리는것은 제 국주의자들에게 우리 
사회 주의 진영 을 공격 하는 포탄을 섬 겨 주는 격 일뿐입 니 다.》 

그때 충동적인 흐루쏘브가 열화같은 언변으로 끝까지 자기의 생 
각을 고집한것 은 물론이 다. 그의 청 각기관은 이 미 남의 말을 듣는 
구멍은 멤질해 버린듯실었다. 

그것이 바로 6년전의 일이다. 그러면 지금은?… 사실 쏘련의 새 
지도부성원들은 바로 흐루쏘브와 같이 정책을 론하던 사람들이다, 
그러 던 그들이 과연 흐루쏘브를 전면부정 하고 새 로선을 내올수 있 
겠는가?… 

마음이 번거 로와진 마오쩌둥은 이 어 쁠스까, 마자르사태 가 일 어 
났을 때 의 일도 더 듬어보았다. 그 사변 이 일 어 났을 때 저우언라이 
(주은래 )가 모스크바에 가서 흐루쏘브에게 말했었다. 

《흐루쏘브동지, 쁠스까, 마자르사건의 주되는 원인을 우리는 쏘 
련측의 대 국배 타주의 에서 찾아보았습니 다.》 


100 



그것은 즉시 화약통같은 흐루쏘브를 폭발시켰다. 그는 저우언라 
이가 말하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부 형제국가수반들과 지어 
그들의 부인들 이름까지 꼽아가면서 저돌적으로 욕설을 퍼붓기 시 
작했다. 그의 말속에 숨은 뜻을 번역해보면 마치 동유럽의 일부 나 
라 지도자들파 부인들때문에 사회주의진영의 공동부엌칸에서 쁠 
스까와 마쟈르의 국가마가 깨여지는 바람에 이웃들까지 뜨거운 국 
물을 뒤집 어쓴듯 했다. 

흐루쏘브는 이렇게 동유럽의 오랜 전우들파 형제들의 영상을 사 
나운 이발로 마구 짓씹어놓고 잔뜩 침까지 게발라놓고서야 직성이 
풀린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될 주공전선을 위 
한 포병준비사격에 불파한것이 였다. 

한순간 숨을 돌리고… 드디여 그는 저우언라이의 눈앞에까지 바 
투 다가섰다. 주타격방향에로의 공격진출이였다. 때가 된것이다. 

《알아두시오, 저우언라이동지.〉〉 흐루쏘브의 입에서는 벌써 
침방울들이 튀여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 
할 권리가 없습니다. 여하튼지간에 난 로동계급출신이고 당신은 부 
르죠아출신이란 말이요! 알겠습니까?》 

저우언라이는 시종 랭철하였다. 조금도 서둘지 않고 그는 준렬한 
어조로 흐루쏘브가 평생 잊을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될 의미깊은 말 
을 하였다. 

《옳습니 다. 흐루쏘브동지 . 당신 은 로동계 급출신이 고 나는 부 
르죠아출신입니다. 허나 당신과 나에겐 한가지 공통점 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과 내가 모두 자기 계급을 배반했다는 그것입니다. 알 
겠 습니까?》 

마지막 그 말《알겠습니까?〉〉라고 한것은 흐루쏘브의 말투를 본 
딴것이 였다. 당황한 흐루쏘브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입 술만 바르 
르 떨고있을뿐… 번득이던 두눈의 동공도 얼어불고말았다. 

이 후 1958년 에 중쏘관계 는 더 욱 심 각해 졌다. 마오쩌둥의 눈 
으로 볼 때 당시 쏘련은 미국파 손을 잡고 함께 세계를 좌우지하려 
고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조선, 월남 등 나라들은 
시 종일관 반미 구호를 높이 웨쳤다. 특히 쏘련은 대만해 협정세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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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도정세를 우려했다. 대만에서는 미군함선들이 제멋대로 날 
치는데 대한 경고로 중국이 금문도에 포사격을 가하였고 조선에서 
는 38도선에서 무력충돌의 불씨가 날이 갈수록 거세게 타오르고있 
었는데 이 모든 초긴장상태의 요인들이 당시 미국방문을 앞두고있 
던 흐루쏘브를 심히 괴롭히고있었다. 

미국을 방문하기 전 흐루쏘브는 중쏘쌍방이 체결했던 새 국방기 
술에 관한 협정을 폐기해버리고 중국에 원자탄생산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대한 소식을 받은 마오쩌둥은 격 
노하였다. 그가 그토록 격분에 몸을 떤 일은 지금껏 있은것 같지 않 
았다. 그래도 끝까지 동지로, 형제로 믿고싶었던 쏘련으로부터 호 
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얼마후 미국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에 날아온 흐루쏘브에게 일체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 
지 않으려고 무진 애 를 썼 다. 

흐루쏘브는 미 국과의 관계 에서〈〈평 화공존》의 총로선을 취 할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특기인 열화같은 웅변을 토하는것으로 
써 중국의 지도부를 설득시키려 했다. 허나 회담과정에 차츰 론쟁 
이 심 화되 자 그는 돌변하여 중국一 인디 아간의 국경 분쟁 을 꺼 들며 중 
국을 공격해나섰다. 인디아와 무력충돌을 하면 인디아를 미국편으 
로 몰아붙이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그까짓 풀도 자라지 않는 황 
폐화된 땅 몇돼기때문에 무력충돌까지 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그 
런 황당한 일을 벌려놓았으니 사회주의진영의 체면이 어떻게 됐는 
가?! 하고 비발치듯 비 난의 몰사격 을 퍼 부었다. 

마오쩌둥은 그의 독설을 인내성있게 들어주었다. 상대가 열을 올 
릴수록 그는 더 침착해지는 특기가 있다. 마침내 흐루쏘브가 입을 
다물자 그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이 건 땅 몇 돼 기 에 대 한 문제 가 아니 라 원칙 문제 요.》 

흐루쏘브가 또 뭐라고 말하려는데 격동된 천이가 참다못해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인디아군이 우리 국경을 넘어 침략했는 
데 그래도 멍청하니 앉아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런데 같은 사회 
주의국가인 쏘련은 왜 그때 우리를 반대하고 인디아의 부르죠아편 
에 섰는가? 하고 격한 어조로 들이대였다. 천이의 반격에 성이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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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난 흐루쏘브는 잔뜩 뒤틀린 얼굴로 독살스럽게 웨쳤다. 

《당신 왜 큰소리요? 군사직급을 따지면 당신은 원수이고 나는 중 
장이지만 당내에서는 제1비서, 그것도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 1비서 란 말이 요!》 

그들은 노상 형제당들에 대고 이렇게 말하군 한다. 여느 나라 당 
도 아니 고 〈〈그것도 쏘련공산당》인데 감히 〈〈형 님당》에 대고 삿 
대질인가? 하고… 

이후 쏘련은 중국과 체결하였던 계약들을 모조리 취소하고 중국 
에 나와있던 전문가들까지 전부 철수해갔다. 이것은 새로 일떠서고 
있던 중국에 심대한 타격으로 되였다. 쏘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중 
국과 완전히 결별하고 서 방파 화해하는 최종적 인 결정을 내렸다. 미 
국과 영국대표들을 모스크바에 청하여 〈〈대기, 우주공간 및 수중에 
서의 핵무기시험금지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였던것이다. 이로 하 
여 중국은 핵시험을 할 명분도 그 출로도 다 잃게 되였다. 

그때 마오쩌둥은 저우 언 라이 에 게 말하였 다.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쩍하면 엄포를 놓고있소. 우리에겐 원 
자탄이 없지 만 저 들에겐 있 다는거 지 ! … 보시 오. 불행 하게 도 지 
금 우리에게 핵무기가 없으니 남들한테 때없이 억울하게 얻어맞는 
신세가 되고있단 말이요!》 

저우언라이 가 의 미심 장하게 말했다. 

《지금이 관건적인 시기입니다.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에게 난관은 많지만 극복 못할 정 도는 아 
니 지 요.》 

그것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그 핵문제를 결단코 본격적으로 밀 
고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옳소. 문제를 바로 그렇게 봐야 하오.》마오쩌둥은 머리를 끄 
덕이 였다. 《당중앙은 즉시 이 에 대해 토의 결정하고 힘자라는껏 내 
입시다. 백년이 걸린다 해도 우린 기어이 만들어내야만 하오!》 

하여 중국은 오늘 원자탄을 만들고 그 시험 에서도 성공하였다. 인 
제는 더 배심있게 나갈수 있다. 그렇다고 허세를 부려서 는 안된다. 
허세란 속이 빈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헛기침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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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에 잠긴 마오쩌둥은 언제부터였는지 토론자들의 말을 듣 
지 않고있었다. 토론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그는 알지 못 
하고있었다. 정치국위원들모두가 마오쩌둥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므로 입을 다물고있었다. 

〈〈주석 동지.》 

마침내 저우언라이가 조용히 불렀다. 

《응?!》비로소 자기 생각에서 돌아온 마오쩌둥은 천천히 저우 
언라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이럴 때 저우언라이동무 생각 
엔 어떻게 하는게 좋을것 같소?》 

저우언라이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여있었다. 

〈〈저도 류사오치, 천이, 덩샤오핑동지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주 
석동지. 먼저 기회를 보아가며 쏘련당의 새 지도부와 접촉해보는것 
이 필요하다고 볼니다. 그러되 꼭 중쏘간의 의견상이를 풀고 관계 
를 회복하는것을 전제로 삼고 대화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음…》 

마오쩌둥은 탁우의 담배갑을 끄당겨 담배를 한대 꺼내들었으나 잠 
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손안에 꼭 움켜쥐였 
다. 담배가치가 부스러지며 짓이겨진 가루가 손가락짱으로 푸실푸 
실 떨 어지는것 도 그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치국위원들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에 
게 눈길을 주고있었다. 마침내 마오쩌둥이 머리를 쳐들었다. 사람들 
을 둘러보며 천천히 그리 고 마디마디 에 힘 을 주며 그는 말했다. 

《좋소.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한번 더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마련해봅시다.〉〉 


마오쩌둥은 이날 11월 5일, 자신과 류사오치,주더(주덕), 저 
우언라이의 련명으로 된 축전을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냈다. 

그 회의가 있은후 11월 7일 10월혁명기념일에는 중국공산당 중 
앙위원회 부주석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인 류사오치와 중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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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국무원부총리인 덩사오핑이 참가한 연 
회에서 부총리 평전(팽진)이 로씨야에서의 10월혁명의 력사적의의 
에 대한 감동깊은 연설을 하였다. 쏘련의 새로운 지도부에 보내는 
화해의 메쎄지였다. 

그보다 앞서 11월 5일 저우언라이 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공산 
당 및 정부대표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몇차례 진지 한 회 담이 있었으나 쏘련측은 흐루쏘브를 벼 락같이 철 
직시킨 리 유와 근거 에 대 하여 좀처 럼 말하려 고 하지 않았다. 저우 
언라이가 기지를 발휘하여 화제를 이끌어내여서야 더는 회피할수 없 
음을 알게 된 쏘련측은 미꼬얀을 내세워 이렇게 말하게 했다. 

《에一 솔직 히 말하여 중국공산당파의 의 견상이문제 에서 우리 
는 흐루쏘브와 관점 이 일 치 합니 다.》 

중국대표단은 실망하고 격분하였다. 하지만 저우언라이는 끝까지 
관계회복을 목적하여 인내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다음날 크레믈리궁전에서 성대한 연회가 진행되였다. 이전의 연 
회 와는 판다른것이 였다. 그때 에 는 연설파 담화가 위 주였었다. 
오죽했으면 마오쩌둥이 어느 한 연회가 있은 후 우린 앞으로 이렇 
게 하지 말자, 별로 차린것도 없이 박수만 치다보니 손이 다 아플 
지경이라고 했겠는가. 

허나 이번의 연회는 화려하고 풍성했다. 저우언라이는 연회에서 
쏘련의 최 고지 도자들과 진지하게 이 야기 를 나눈 후 쏘련원수들과도 
만났다. 담화가 끝나고 저우언라이 가 자리 를 뜰 때 쏘련측에 서 말 
리놀스끼원수가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나서더니 뜻밖에도 마오쩌둥 
을 모독하는 말을 지독한 술내와 함께 포연처 럼 내뿜었다. 

저우언라이는 아연실색했다. 저우언라이는 한평생 변심없이 마오 
쩌둥을 받들어왔었다. 진심으로 마오쩌둥을 내세우면서 한때 엠겔 
스가 그랬듯이 자기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제2바이올리니스트 
이 라고 겸 허 하게 말하군 했 었 다. 그러한 저우언 라이 였 으므로 걸 음 
을 멈추고 불이 이 는 눈으로 말리놀스끼 를 쏘아보며 한손을 창끝처 
럼 그의 가슴팍으로 내질렀다. 

바로 그때 저우언라이의 그림자처럼 뒤에서 붙어오던 허릉(하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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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그들사이에 맹수처럼 뛰여들며 노성을 터쳤다. 

《뭐, 뭐가 어쨌다구? 어디 다시한번 말해보오, 영?! …》 

흔히 말하는 사회주의대가정에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던 일이였 
다. 그 즉시 저우언라이의 뒤를 따라 전체 중국대표단성원들이 연 
회장에서 퇴장하였다. 

다음날 저우언라이는 말리놀스끼의 도발적발언에 대하여 쏘련 
측에 강력 히 항의하였다. 바빠난 브레 쥬네 브가 급히 변명하였다. 

《저 우언라이 동지, 그건 말리 놀스끼 가 그만 취 중에 한 소리 입 니 다. )) 

〈〈아니, 그건 취중취담이 아니라 취중진담이 였습니다.〉〉하고 저 
우언라이는 엄하게 못박았다. 〈〈이것은 결코 말리놀스끼 한 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님니다. 나는 이것이 바로 현쏘련지도부의 속 
생각이기도 하다는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전에 중국을 
통제하고 수정주의, 대국주의를 하며 헛배가 불러있던 흐루쏘브식 
의 오만이 토해 낸 일종의 게 트림 이 라고 말입 니 다.》 

신 랄하고 무자비한 평 가였고 준엄한 분석이 였다. 브레 쥬네 브의 
얼굴은 점점 더 벌거우리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거듭 변명했으나 저 
우언라이는 머리를 가로저 었다. 여기 엔 꼬물만큼한 리해도 아량도 
필요없다. 이제 여기서 쏘련사람들이 말하는 그 무슨 〈〈순간의 실 
수》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은 그 무슨 용서와 타협 
의 술잔을 찜게 될것인즉 그것이야말로 중국의 국가적 및 민족적존 
엄마저 술에 타먹는 치욕의 잔, 굴종의 잔, 더러운 배신의 잔으로 
될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저우언라이는 담판일정을 서둘러 끝낸 다음 평전 
만 남겨놓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가 베 이징비 행장에 내 렸을 때 
수만군중의 환호소리, 북소리 가 요란한 속에서 어린 소녀 가 달려나 
와 꽃다발을 드렸다. 마오쩌둥이 직 접 류사오치 , 주더 , 덩사오 
핑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이끌고나와 친히 그를 영접하였다. 
저우언라이는 얼굴에 함툭 웃음을 담고 마오쩌둥파 함께 환영군중 
들속을 한바퀴 돌고난 후 수도의 민병 들파 함께 뚯깊은 기 념사진을 
찍었다. 

이 것은 저우언라이 의 마지막쏘련방문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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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년 2월 5일. 

이해의 2월은 례년에 없던 강추위로 시작되였다. 일기예보는 앞 
으로도 여러날 계속 중부산악지방과 동해안의 기온이 령하 20도이 
하로 내려갈 것이라고 했었 다. 보기 드문 강추위였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2월 3일부터 벌써 1주일간이나 함흥시와 흥 
남일대 를 현지 지 도하고계 시 였다. 

어 느날 아침 그이 께서 새 날의 현지 지 도를 위해 숙소를 나서 실 때 
서기가 조용히 말씀드렸다. 

《외무성에서 벌써 두번째로 수령님께서 언제 수도에 돌아오시는 
가고 문의해 오고있 습니 다.》 

〈〈그건 왜?〉〉 

《아마 쏘련내각수상의 우리 나라 방문날자가 박두하였기때문 
인것 같습…》 

서기는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그이께서 언짢아하는 표정을 지으 
시 였기 때 문이 였다. 

《찾아오는 손님이야 례의대로 맞아주면 될게 아니요?》 

<L …)) 

〈〈여기서 일을 다 본 다음 가서 만나주어도 돼.》그이께서 말씀 
을 이으시였다. 〈〈꼬씌긴이 왜 급히 날아오는지 아오? 사죄하러 오 
는거 요, 사죄 하러 ! … 그러 니 급해 할건 없소.》 

그이께서는 외 투를 입 고 칼바람 세찬 밖으로 나가시 였다. 

긴장 한 현지지도일정은 계속되였다. 함흥모 방직공장건설 장, 



2. 8 비날론공장, 흥남비료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지도, 무연탄가 
스화건설장, 과학원함흥분원 등… 

2월 7일 오후 6시. 

김일성동지께서는 현지지도의 마지막일정으로 흥남항을 향해 차 
를 달리시 였다. 아직 도 맵짠 추위 가 대기 를 옥죄 이고있었다. 하늘 
에서는 하얀 구름쪼각들이 차디찬 질풍에 솜털처럼 찢기여 사방 흐 
트러 지고있 었 다. 바다엔 파도가 세 왔다. 

항에 도착하신 김 일성동지 께서는 세 찬 해 풍이 불어치 며 외 투 
깃을 날리는것도 아랑곳 않으시고 환히 웃으시 였다. 

《〈백 두산〉이 바다에 떴 단 말이 지 . 아주 멋있소. 세 찬 파도에 
도 끄떡없는 〈백두산〉이 정말 장관이요, 응?!…》 

그이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허연 입김이 날리군 했다. 

《2만톤급이란 말이지. 인젠 먼바다물고기잡이를 배로 늘일수 있 
게 됐소. 내가 언제인가 동해에서 수산물 만톤고지를 처음 점령한 
청진수산사업소의 영웅선장들인 김학순이랑 김태규랑 만나 물어 
본 일이 있소. 먼바다에 나가 제일 안타까운것이 무언가고 말이요. 
했더니 그들이 하는 말이 랭동가공모선이 적은것이라고 했소. 당 
에서는 수산물 80만톤고지를 점령할 목표를 내세웠는데 처음엔 랭 
동모선 〈평 화〉호밖에 없 어 물고기대 가리 를 전부 잘라서 실 어 보냈 
다는게 아니 겠소. 그것도 명 태 같은건 다 버리면서 말이요. 그 
후 랭동모선들인 〈칠보산〉호와 〈금강산〉호를 더 띄웠는데도 그 
동무들은 성차하지 않더구만. 물고기를 가득 잡아서 랭동가공모선 
에 가져가면 제발 인젠 더 잡지 말아달라, 실을 자리가 없소! 하는 
일 이 많다는거 요. 그러 면 기 껏 잡은 물고기 몇백 톤을 그냥 바다에 
처넣 는다고 하오. 그냥 배 에 실은채 로 두면 물고기 선도가 나빠지 거 
던.〉〉 

그이 께서는 걸음을 옮기며 수산상에게 물으시 였다. 

《지금 〈칠보산〉호와 〈금강산〉호는 어디에 있소?》 

《예, 청진수산사업소에서 원양어로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이 
제 3월말에 가서 얼음이 좀 풀리면 먼바다어로선대가 오호쯔크 
108 



해로 출항하게 됩니다.〉〉 

《음… 좋소, 아주 좋아. 인젠 〈백두산〉호까지 띄워놓았으 
니 우리 나라의 명산들은 다 바다에 뜬셈이요, 옹?!》 

《예, 그렇습니다.》 

《수산상은 그저 〈그렇습니다.〉라는 말밖에 모르는구만. 아니, 
아직 묘향산이 더 있소, 묘향산 말이요!… 어디 그뿐인가? 구월산, 
통악산, 월비산도 있지. 이렇게 우리 나라의 명산들을 다 바다 
에 띄우자는게 나의 구상이고 결심이요. 그러면 먼바다에 나가있는 
우리 원양어로선대 어로공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어 이제 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면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 
물고기 100그람이상 공급하자고 한 당의 결정도 더 앞당겨 관철할 
수 있단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수산상은 이미 수령님께서 지적하신것도 잊고 또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넘실거리는 물결우에 떠 
있는 랭동가공모선 〈〈백두산〉〉호를 바라보고계시였다. 

《앞으로 수산업을 더 발전시키자면 천톤급, 3천톤급, 6천톤 
급배들을 많이 무어 야 하오. 우리가 처음 철배로 만든 뜨랄선을 보 
아줄 때에도 말한것 같은데… 참, 그게 언제더라?》 

《예, 수령님께서 1961년 5월 청진수산사업소를 현지지도하 
실 때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감회깊이 머리를 끄덕 이시 였다. 

《음… 그래. 그때에도 말했지만 인젠 우리 나라 수산업의 규모 
가 커진것만큼 큰 배들을 많이 만들어야겠소. 그래서 더 통이 크게 
원양으로 나가야 하오, 세계의 어장으로 말이요. 이제 우리가 세 
계의 어장까지 정복하면 인민생활이 더욱 높아지는것은 물론 그만 
큼 우리 사람들의 가슴도 더 넓어질거 란 말이 요. 세계를 보는 시 야 
도 넓 어지구 통도 더 커지구 배심도 더 자랄게 아니겠소. 그만큼 나 
라와 민족의 존엄과 권위도 높아질테니 얼마나 좋은 일이요, 웅?… 
그러느라면 김학순이나 김태규 같은 천리마시대 영웅들도 더 많이 
배출될게고… 어떻소?》 


109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여전히 꼭같은 《그렇습니다.〉〉였다. 

수령님께서는 다시 걸음을 옮겨 《백두산》호의 다른쪽 선체를 돌 
아보시였다. 보실수록 마음에 들고 가슴이 뿌듯해지는것을 느끼시 
였 다. 

《이제 있게 될 동해지구 수산부문일군협의회에 말이요.》하고 
그이께서는 수산상을 돌아보며 말씀하시 였다. 〈〈청 진수산사업 소 
의 영웅선장들도 참가하겠지?》 

《예, 수령님. 김학순, 김태규동무들을 비롯하여 청진수산사 
업 소에 서 만도 10명 이 참가합니 다.》 

〈〈음… 여기 동해기슭에 나오니 그 동무들 생각이 자꾸 나던데 마 
침 잘됐소. 수산상동무,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인민생활을 한단 
계 더 높이자면 수산물 80만톤고지를 꼭 점령해야 하오. 먼바다에 
서도 잡고 가까운바다에서도 잡고 큰 배로도 잡고 작은 배로도 잡 
고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는 식으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한단 
말이요.》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더 높아졌다. 땅거미가 깃들면서 칼 
바람이 더 사나와지 고있는것 이 다. 그러 나 그이 께서는 바다에 뜬 
《백두산》호의 웅건한 모습이 너 무도 장하고 대견스러워 점 도록 자 
리를 뜨시지 못하였다. 


2 


1965년 2월 12일.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첫 일정으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쏘련 
내각수상 꼬씌긴을 만나주시였다. 외교적인, 의례적인 인사말들 
이 오간 다음 꼬씌긴 이 먼저 쏘련당에서 조선로동당과 
김 일성동지 께 여 러 모로 사죄한다는 말을 시 작하였 다. 


110 



김일성동지께서는 직방 본론에 들어가시였다. 

《원래 조선인민파 쏘련인민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진실하고 동 
지적이였고 별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사이엔 서로 감정을 살 
리유도 없었습니 다. 하지 만 쏘련공산당 제 20차대 회 이 후부터 우리 
당은 당신들에 대하여 의견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연신 두손을 맞부비고있던 꼬씌긴이 괴롭게 웃음을 떠올리였다. 
그러자 그의 눈시울에 깊이 파고들어간 주름살이 가늘게 떨리기 시 
작했 다. 

〈〈그렇습니까?》 

《우린 흐루쏘브가 쓰딸린을 전면부정하고 비렬하게 욕질하는 
것을 보고 그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 였습니다.》 

계 속하여 그이 께서는 쓰딸린에 대 한 가장 공정한 평 가를 내리 시 
였다. 쓰딸린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사실 그는 세기적인 빈궁과 몽매의 문폐만을 달고있던 농업국가 로 
씨 야의 대 문에 강위 력한 공업 국가의 문폐 를 바꾸어달아준 사람이 
다, 그리고 일찌기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참혹한 쏘도전쟁을 승 
리에로 령도하였고 후대들에게 핵을 가진 군사강국을 물려준 사람 
이 다, 그럼 에 도 흐루쏘브가 쓰딸린의 이 름에 먹 칠을 하고 력사의 폐 
지에서 영영 지워버리려 하는것을 보고 우리는 분격하지 않을수 없 
었다고 말씀하시 였다. 

《어디 그뿐인가?〉〉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쏘련당 
이 형 제당, 형 제 나라들에 공개 적 으로 싸움을 거 는것 을 보고 우리 
는 참기 어 려웠 습니 다. 하지 만 당신들과 단결하기 위하여 그 어 
떤 참기 어 려 운 문제 가 제 기 되 여 도 내 적 으로 투쟁 하면서 쏘련을 욕 
하는 글도 내지 않았습니다. 글을 내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는 
가?… 당신들도 기 억나겠지 만 그건 당신들이 우리 당대 표단을 도 
이췰 란드사회통일 당대 회 에 불러 다놓고 마지 막날까지 발언권 도 주 
지 않고 우리가 써 낸 서면토론문까지 덮어버린 그때부터였습니 
다.》 

꼬씌긴의 불그레한 얼굴에서 특히 인상적인 새파란 두눈이 깜박 
도 하지 않고 맞은편담벽의 어딘가를 바라보고있었다. 잠시 침묵이 
111 



흐른 끝에 일직선으로 다물려있던 그의 입술이 힘들게 열렸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사실 우리는 당신께서 비판을 많이 하 
시리라는것을 각오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으시였다. 그것이 꼬 
씌긴이라는 어느 한 정치가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때문이였다. 

《형 제 당들가운데서》하고 그이 께 서 계 속하시 였다. 〈〈어느 당은 
이편이고 어느 당은 저편이라는 식으로 갈라놓아서는 안됩니다. 그 
가 누구든 형제당들을 이편저편으로 갈라놓는것은 다른 나라 당들 
의 자주성에 대한 모욕입니다.》 

꼬씌긴은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말한것처럼 비판을 받기 
위해 왔던것만큼 변명은 필요없었던것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진 
땀만 뽑고있었다. 

《우리 나라는》 하고 그이께서는 점점 더 준렬한 어조로 말씀 
을 이으시였다.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들에서 쏘련파도 련 
결되여있고 중국파도 련결되여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하여 혹시 
우리가 맹종맹동하면서 그 누구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면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 그러다가는 사회주의진영이 둘로 혹은 셋으로 쪼 
개질수도 있는데… 과연 우리가 이런것을 허용할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래선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 사회주의진영은 끝까지 자주 
적립장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린 오늘은 이랬다, 태일은 저 
랬다 하는 흐루쏘브의 지휘봉에 따라갈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어 군비철폐를 목터지게 부르짖으며 땅크를 
용광로에 녹여 보습을 만들겠다고 떠들던 흐루쏘브가 나중엔 자기 
사위 아쥬베이를 시켜 민주도이췰란드를 서부도이췰란드에 팔아 
넘기자고 했던 사실을 례들며 엄하게 지적하시 였다. 

《흐루쏘브의 수정주의가 사회주의진영과 우리 조선혁명에 얼 
마나 큰 해독을 가겨왔는지 당신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쏘련당의 새 지도부가 흐루쏘브의 수정주의적로선에서 결정적 
으로 떨어져나올것을 바라고있습니다. 그렇게 할수 있다고 믿어도 
되겠습니까?》 

꼬씌긴의 얼굴엔 어느덧 새벽 창유리에 이슬이 맺히듯 땀방울들 
112 



이 돋고있었다. 북방의 혹한에서 단련된 그여서 그런지 따뚯하게 덥 
혀진 방안온도를 뜨겁게 느끼는듯 했다. 

그가 힘들게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이제는 우릴… 믿어주십시오, 전적으로 
믿 어 주십 시 오. )) 

《믿어달라… 그것도 전적으로?…〉〉하고 그이께서는 소리없는 
미소를 그리시였다. 〈〈당신들이 지금껏 그리도 완강하게 고집을 부 
려왔는데… 과연 그 로선이 그렇게 쉽사리 고쳐질수 있겠는지 모르 
겠습니다.》 

꼬씌긴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바지주머니에서 손수 
건을 꺼내였다. 

《믿어주십시오. 이제부터는 모든것이 달라질것입니다. 예, 
그건 틀림없습니다. 바로 얼마전 우리 당의 제1비서인 브레쥬네브 
동지가 직접 저한테 존경하는 김일성동지를 찾아가 우리 당의 립 
장을 설명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것만으로도 우리 당 
새 지도부의 립장이 아주 명백히 밝혀졌다고 보고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시 단 말씀입 니까?〉〉 

《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믿고싶으시였다. 하지만 자신도 모 
르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이제 더이상 화제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 
고 생각하시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웬일인지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느끼시 였 다. 

오늘 사회주의진영이 왜 이런 진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오늘까지 
도 계속 삐걱거리고있는 형제나라, 형제당들사이의 심한 마찰음… 
그래, 믿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바로 얼마전 모 
스크바에서 저우언라이를 단장으로 한 중국당대표단과의 회담탁 
에서 바로 당신들은 쏘중관계에서 이전에 흐루쏘브가 취한 로선을 
그대로 밀고나간다는것을 내놓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 
린 당신들을 지켜볼것이다. 지켜보면서 평가할것이다. 조급히 
결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우리 당은 언제나》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깊은 생 
113 



각에 잠겨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회주의진영의 통일단결을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결이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모든 형제당들이 누구에게도 맹종맹동하지 말고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원칙을 지키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니다. 그래야만 통 
일단결이 이룩되고 통일단결이 이룩 되여야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도, 
세계의 자주화도 앞당길수 있습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제 이제 김일성동지의 그 말씀 
을 우리 당중앙위원회 에 꼭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꼬씌긴은 비로소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3 


1965년 3월. 

중쏘관계는 나날이 한난계로도 절수 없을 정도의 극저온상태로까 
지 되였다. 월남전쟁이 확대되고 지원물자의 규모도 커지면서 그를 
둘러싼 쌍방의 의견상이가 나날이 더 심각해졌던것이다. 

3월초의 어느날 마오쩌둥주석의 특사자격을 가지고 중국공산 
당 중앙위 원회 총서 기 덩사오핑 이 비 공개 로 평 양에 날아왔다. 

김 일성 동지 께서는 그가 가져 온 문건부터 먼저 읽 어보시 였다. 그 
것은 얼마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각국 공산당 및 로동당들의 협의 
회 와 그 결정 을 반대 배 격하는 중국공산당의 립 장을 밝힌 론설로서 
시종 심각한 분석과 엄한 론조로 일관된 글이였다. 그이께서는 밤 
에 받으신 그 론설을 새벽산책이 끝나기 바쁘게 다시 읽으시였다. 

시간이 흘렀다. 아침해살이 집무실창가를 소리없이 불태우고있었 
다. 서기가 조용히 들어왔다. 그의 손엔 오늘의 사업일정이 적 
혀진 서류가 쥐여져있었다. 

《손님은 지금 월하고있소?》 

그이의 물으심에 서기가 대답올렸다. 

《덩사오핑동진 벌써 두번씩이나 오늘 수령님을 접견할수 있는가 
114 



고 문의 해왔습니다.》 

〈〈음…〉〉 

김일성동지께서는 서기에게서 오늘일정이 적혀진 서류를 받아드 
시였다. 그에 의하면 오전엔 평양화력발전소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건설부문 일군들파의 협의회가 예견되여있었다. 이어 교육부문 일 
군들파의 협의회,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도…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사업일정이였다. 

《오늘 예견했던 협 의회들은 뒤 로 미룹시 다. 》그이 께 서 말씀하 
시였다. 《중대사를 안고온 손님인데 먼저 만나주는게 도리이지.》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서기가 나간 후에도 그이께서는 점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 
다. 몇해전 중국에 가셨을 때 의 일 이 자꾸만 눈앞에 생생히 떠 오르 
시 였다. 그때 에 도 지 금과 꼭같은 일 이 그곳에서 벌 어졌었다. 

수령님의 추억 (3) 

그때 수도 베이징에서는 우리의 중국방문을 환영하여 성대한 국 
가연회 가 준비 되 고있 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우언라이 총리 가 급 
히 숙소로 달려왔다. 일정 에 도 밝혀 있지 않던 방문이 였다. 

〈〈존경하는 김 일성동지 , 미 안하지 만 오늘일 정 을 다시 토론해 
야 할것 같습니다.〉〉 

저우언라이 가 한 말이 였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방금 무한에서 평전동지가 마오쩌둥주석이 김일성동지께 보내 
는 친서를 가지고 날아왔습니다.〉〉 

〈〈그렇습니까?〉〉 

평전이 가져온 마오쩌둥의 친서는 길지 않았다. 그는 편지에서 국 
제공산주의운동과 수정주의 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론의하고싶은 
것 이 있는데 자신은 건강상리유때문에 움직 일수 없는 형편이므로 
김 일성동지 께 서 시 간을 내 여 무한을 방문해 주시 면 대 단히 고맙 
겠다고 썼다. 


115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즉시 류사오치, 덩사오핑파 같이 
(저우언라이는 집을 지키느라고 베이징에 남아있었다. ) 비행기 
를 타고 마오쩌둥이 거처하고있는 무한에로 날아갔다. 그때 무한에 
는 중국공산당 국제담당부주석을 하는 강성 (강생)이 먼저 와서 대 
기하고있었 다. 

강성은 상하이(상해)시의 한 이름없던 극단출신으로서 미지의 오 
솔길을 걸어 엔안(연안)에 들어선 사람이다. 후날 그가 간난신 
고하며 걸어온 투쟁로정이 노래의 후렴처럼 자꾸 반복되여 불리워 
지면서 차츰 이름난 혁명가로 되였다. 그는 자기의 뛰여난 기억력 
과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결단으로 당과 군대의 비밀을 다투는 사업 
예까지 몸을 잠그고 마침내 중국공산당의 제1세대혁명가들과 어깨 
를 나란히 하게 되였던것이다. 

바로 그러한 강성이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마오쩌둥을 대신하여 
말을 많이 하였다. 그는 먼저 나와 톤의하자고 하는 두가지 문제를 
내놓았다. 첫째는 중국당에서 흐루쏘브수정주의의 진면모를 폭 
로하는 21개조항으로 된 중요론설을 발표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읽 
고 고견을 주시기 바란다는것, 둘째로는 지금 중국에 와있는 챠우 
쉐스꾸를 단장으로 하는 로므니아당 및 정부대표단을 어떻게 대하 
고 평가하겠는가 하는 문제 였다. 

저 녁무렵이 였다. 담화는 마오쩌둥의 서 재 에서 진행되 였다. 수 
많은 책들로 가득찬 방이였다. 한쪽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물 
론 책상과 앞차대우에까지 많은 책들이 더미로 쌓여있었다. 둥근 갓 
을 씌운 탁상등이 가운데차탁우에서 등황색의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 다. 

나는 먼저 그들이 바라는대로 론설을 주의깊게 읽고 몇가지 의견 
을 내놓았다. 류사오치와 덩사오핑은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즉시 공 
감을 표시하였으나 강성 은 이 상야릇한 미 소를 그리 며 조심스럽 게 말 
하였다. 

《옳습니 다. 아주 좋은 의 견입 니 다. 존경하는 김 일성동지,하지 
만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가 좀 의견을 달리하는것도 없지 않 
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제를 가지고 서로 기탄없이 론쟁을 해 
116 



보자는것을 제의 합니다.〉〉 

《? …》 

나는 의아해했다. 론쟁이라니, 무슨 당치않은 말인가?… 

나의 표정을 살피 던 강성 이 재빨리 뒤를 달았다. 

《아, 달리 생각하실것은 없습니다. 혹시 제 생각이 조금 모자라 
서 김일성동지의 고견을 미처 따르지 못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경우 허심탄회하게 생각되는바를 내놓고 론의하고싶었을뿐 
입니다. 예, 그밖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일찌기 공자도 말 
하지 않았습니까. 〈모르는것은 모른다고 하여라.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론쟁을 하자고 공자의 말까지 빌려올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다 
만 내가 준 의견을 당신들이 참고나 했으면 할뿐입니다.》 

《아, 그렇지만…》 

캉성이 계속 달변을 토하려 했지만 나는 그를 밀막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론쟁을 하자고 온게 아닙니다. 강성동지, 
내가 준 의견이 마음에 들면 문건에 넣는것이요 마음에 들지 않으 
면 그대로 덮어두면 될게 아님니까. 나는 시간이 많지 못합니다. 
빨리 떠나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줄곧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로환이 그의 몸과 마음을 
파고들며 몹시 피 롭히 고있 는듯실 었 다. 

강성 이 서 둘러 다음문제를 꺼 냈다. 

《그럼 두번째로 조언을 받자고 하는 문제를 말씀드리자고 합니 
다. 지금 차우쉐스꾸를 단장으로 하는 로므니 아의 당 및 정부대표 
단의 중국방문파 관련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여론이 분분하다고 
들 합니다. 사실 김일성동지께서도 잘 아시는 문제이지만 챠우쉐 
스꾸로 말하면 지금까지 수정주의자들의 합창대 에서 흐루쏘브의 
지휘봉에 따라 반중국깐따따를 목이 쉬도록 불러온 사람이 아닙니 
까.〉〉 

《그래서요?…》 

《예, 그래서 지금 쏘련은 물론이고 동유럽의 많은 나라 사람들 
이 예언하기를… 에 一 우리가 챠우쉐스꾸를 리 엔안먼주석단에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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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놓고 목에 바줄을 건다는것입니다.》한순간 그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미묘한 웃음을 띄웠다. 〈〈일부 그와는 정 반대로 우리가 그 
에게 화려한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제스추어를 보일수도 있다고 하 
는 사람들도 없진 않습니다. 어쨌든 이 문제로 꽤나 소란스러운데 
나는…(예 , 이건 순수 저의 개인적의견입니다. ) 이번 기회에 
세상이 보는 앞에서 챠우쉐스꾸의 바지를 벗기자는것입니다.》 
그의 창백하던 얼굴이 벌거우리하게 물들고있었다. 그런데 두눈 
만은 여전히 소리없이 옷고있었다. 이상한 사람이였다. 남보다 정 
신적으로 약하고 불안정한 사람일수록 더 모질고 잔인한 법 이다. 그 
래서인지 강성에게서는 무엇인가 숨겨진, 비밀의 정신적곰팡내 
같은것이 풍기고있었다. 

마오쩌둥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 
고있는것 이였다. 

《그럼 제 생각을 말해봅시다. 나는 먼저 그들, 로므니아사람들 
이 흐루쏘브에게 사전통보도 하지 않고 합의도 없이 중국을 방문하 
고있는 이 사실을 중시하는것이 옳다고 봅니다. 차우쉐스꾸의 바지 
나 벗겨선 뭘하겠습니까. 거기에 뭐 볼만 한게 있겠다구…》 

〈〈하지만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강성의 웃고있던 두눈이 가늘 
게 쪼프러졌다. 〈〈바로 그 로므니아사람들이 중쏘간에 의견상이가 
심해질 때마다 흐루쏘브의 저울에 올라섰댔다는것을 잊지 마시기 바 
랍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은 중국에 와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지금 
은 중국의 저울에 한발을 올려놓았는데 이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 
까. 흐루쏘브의 수정주의저울에서 로므니아 하나만 내려놓아도 중 
량차이가 훨씬 달라질것입니다. 나는 아직 챠우쉐스꾸에 대해선 별 
로 파악이 없지만 게오르기우 데스는 잘 압니다. 그는 자주성을 견 
지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던 사람이였습니다.〉〉 

강성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손끝으로 입 언저리를 긁으며 류사오 
치와 덩사오핑을 곁눈질했으나 그들은 변함없이 고집스럽게 침묵을 
지 키고있었다. 

이윽고 지금껏 입을 꾹 다물고있던 마오쩌둥이 처음으로 소리내 
118 



여 옷었다. 

《허 … 별스레 배가 고프다 했더니 어느새 밥먹을 시간이 퍽 지 
났구만. 이런걸 두고 인사불성이라고 하는거지. 자, 인젠 식당 
으로나 가십시다.》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는 두눈 
에 웃음을 가득 담고 말하였다. 

《김일성동지, 내 요즘 여러가지 잡병에다가 소화장애까지 겹쳐 
서 얼마나 고생이 컸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 배고픈감 
을 느끼게 되니 별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가운 일이였다. 

《그렇다면 그 하나만 가지고도 내가 여기 무한에 오기를 아주 잘 
한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정말 제때에 잘 오셨습니다.》 

마오쩌둥은 식사때에도 기분이 좋았다. 제비둥지료리며 상어지느 
러미회 등 갖가지 료리들파 류달리 도수높은 머타이주(모태주) 
를 자신이 직접 권하군 했다. 

《먼길을 오셨는데 많이 드시구 오늘 밤은 푹 쉬십시오.》 

나는 도수높은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이 권하는것을 다 
받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만은 잊지 않고있었다. 

〈〈지금 챠우쉐스꾸가 자기들이 축에 끼우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알 
면 대단히 섭섭해할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론의될 때면 
늘 직선적인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대신 대방의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듣군 하였다. 

《그렇게 보십니까?…》 

《예, 분명 그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싶어서 찾아왔을것 
입니다. 얼마전 우리 나라에 와있는 로므니 아대사가 나를 찾아와 고 
백 한데 의하면 지금 로므니 아는 유고슬라비 아와 함께 두나이강수력 
발전소건설을 계획하고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알게 된 흐 
루쏘브가 그들이 자기 몰래 꿍꿍이를 한다고 골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므니아도 우리와 같은 쎄브성원국인데 혼자 애쓸게 
119 



있는가, 쎄브성 원국들모두가 달라불어 두나이 강발전소를 건설하 
는게 더 좋지 않는가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것입니다.》 
〈〈아,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예, 하지만 로므니아는 흐루쏘브의 제의에 동의하지 않았습니 
다. 그래서 흐루쏘브를 대노하게 했고 요즘은 쎄브안에서도 따돌리 
우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이런 처지에 중국에 와서까지 괄세를 받 
으면 로므니아가 이제 어데로 가겠습니까. 또 중국도 그렇게 하면 
대국으로서의 체면이 깎이게 될것이고… 지금상태에서는 그 무엇보 
다 의견상이는 뒤로 미투고 단결하는것이 초미의 문제가 아니겠습 
니까. 그래서 나는 중국측에서 인제는 팔을 벌려 그들을 포옹해 줄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음…》 

마오쩌둥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습니다, 김일성동지. 좋은 말씀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한동안 손에 들고있던 잔만 뱅뱅 돌려보 
았다. 그의 얼굴엔 다시 누르끼레한 병색이 내배고있었다. 

〈〈그런데…》마오쩌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좀 무리한 제기이 
긴 합니다만 김일성동지께서 먼저 그들을 만나주실수 없겠는지?…》 
〈〈아, 그렇습니까! 우리 나라 속담에 어려울 때 사귄 벗이 진짜벗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당장 가서 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윽고 로므니아대표단에 련락하고 차를 달릴 때는 밤 12시가 넘 
었었다. 베이징에서 무한까지 비행기로 날고 오탠 시간 중국의 최 
고위 간부들파 회 담을 하였으므로 몹시 피끈하였지 만 사회 주의진 
영의 통일단결을 위함이라면 천리길도 가야만 했다. 

로므니아대표단은 호수가의 어느 한 별장에 묵고있었다. 모든 방 
들에 불이 환했다. 챠우쉐스꾸는 로므니아국가쏘베트위원장인 
끼부 스또이 까와 내 각수상 이 온 게 오르게 마우레 르와 이 마를 맞대 
고 무엇 인가 의 논하다가 반갑게 달려나왔다. 

《오셨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만 이렇듯 깊은 한밤중에 저 
희들까지 찾아주실줄은 … 정 말 고맙습니 다.》 

국가쏘베 트위 원장 끼부 스또이까와 내 각수상 이 온 마우레르는 이 
120 



미 전부터 나와 잘 아는 터 였으므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나서 어줍 
게 옷으며 말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오신다기에 무엇을 대접할가하고 토 
론하던 중이 였 습니 다.》 

《예, 그런데 이것밖에 없어서…》 

이온 마우레르는 손으로 탁우에 놓인 밤색의 목이 긴 술병을 가 
리켰다. 병보다도 화려한 상표와 병모가지 에 돌려감은 넥타이가 별 
스레 번쩍거리는것이 남달랐다. 

그가 계속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쑤이까〉라는 술입니다. 먼저 이 
것부터 드시는것이 어떻겠습니까?》 

《하!一 하루밤에 2회전 중경기라… 내가 과연 견디여내겠는 
지 모르겠습니다.〉〉 

담화는 새 벽 2시 반까지 계 속되 였 다. 

다음날 아침 류사오치와 덩사오핑, 강성 이 서둘러 숙소를 방문해 
왔는데 그 리유를 강성 이 옷으며 말했다. 

《마오주석께서 는 지 난밤 좀 무리한 탓에 몸이 불편하여 아직 일 
어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미안해 한다는 말을 꼭 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오 주석 동지는 존경 하는 
김 일성 동지 께 서 밤새 로므니아로 통하는 길 에 두럽 게 쌓여 있 던 얼 
음을 녹여주셨으니 우리더러 지체말고 챠우쉐스꾸를 찾아가 회담할 
것 을 지 시 하였 습니 다. )) 

반가운 일이 였다. 모든 피 로가 졸지 에 연기 처 럼 사라져가는것 을 
느꼈다. 애쓴 보람이 있는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얼음이 녹았을 때 빨리 가보는것이 좋지 않겠 
습니 까. 시 간을 지 체하면 다시 얼 수도 있 습니 다.〉〉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 

류사오치 가 한 말이 였다. 

덩 샤오핑 은 보다 더 진지했다.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가 김일성동지께 너무 폐를 끼치여 미 
안하기 그지없습니다.》 


121 



그들 뒤쪽에 있던 강성은 적당한 인사말을 찾지 못한듯 면구스러 
워하며 그저 눈인사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가자 몸이 불편하여 누워있다던 마오쩌둥이 직 
접 숙소에 찾아왔다. 그가 옷으며 말했다. 

《난 누구도 없는 자리에서 김일성동지와 단둘이 만나고싶어 우 
정 늦게 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것은 드문 일이였다. 사실 그는 세상에 류달 
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언젠가 처음 쏘련을 
방문하여 쓰딸린과 만나 회 담을 할 때 극히 사소한 의견불일치로 기 
분이 상한 일이 있었다. 그때 마오쩌둥은 그처럼 세상사람들앞에서 
위엄을 떨치던 쓰딸린이였지만 그가 먼저 마오쩌둥의 마음을 눙쳐 
주려고 중국대사관에 정한 마오쩌둥의 숙소를 방문하겠다고 말하자 
결연히 자기의 통역에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를 우리 숙소에 모시겠다고 하지 마오!》 

그는 또 솔직 하고 대 범하였다. 

우리는 오렌 시간 담화를 하였다. 꾸바와 월남의 사변들, 모스크 
바와 베이징간에 나날이 첨예해지는 의견상이와 알륵, 그 대처방안 
에 대 하여 기 탄없이 내 놓고 론의하였다. 

담화를 끝낼 때에야 마오쩌둥은 차대우에 놓인 잔을 들며 놀란 소 
리를 질렀다. 

《아, 이런! 내가 그만 차를 권하는것도 잊구…》 

《아님니다, 마오쩌둥동진 벌써 세번씩이나 차를 권했습니다.》 
《하… 그렇습니까?… 아무튼 귀중한 시간을 내주어서 정말 고맙 
습니 다. 우리 가 굳이 바쁘신 김 일성동지 를 여 기 까지 청하여 회 
담한것 은 이 기회 를 통하여 조선당의 의 견도 들어보고 특히 
김 일성동지 와 직 접 만나 이 야기 를 나누고싶 어 서 였습니 다.〉〉 

〈〈고맙습니다, 마오쩌둥동지.〉〉 

우리는 서로 손을 꼭 맞잡고 진심으로 건강을 바라는 뜨거운 인 
사말들을 나누었다. 

…탁우에는 덩사오핑 이 가지고온 론설이 아까부터 계속 펼쳐 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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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있었다. 


4- 


아침 9시 였다. 김 일성 동지 께서는 내 각청 사의 응접 실 에서 당중앙 
위원회 부장과 통역만을 대동하고 덩샤오핑과 마주앉으시였다. 

따스한 해빛이 열은 창가림을 통해 고요히 흘러들고있었으나 덩 
사오핑의 얼굴은 수면부족으로 피끈에 몰린듯 했다. 그는 특징적인 
젠걸음으로 마주오더니 그이께서 내미신 손을 부여잡고 흥분된 어 
조로 인사말을 올렸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을 또 뵈오니 정 
말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저도 이렇게 다시 만나 매우 반갑습니다, 덩사오핑동지.》 

덩샤오핑은 웃고있었으나 가벼운 경 련 비슷한것이 입가를 스쳐가 
군 했다. 바늘 들어갈 틈도 없는 사람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담차고 
야무지고 고집스러운 그였다. 

그렇듯 강직하고 대바론 덩사오핑 이 지금은 류달리 피끈해하는것 
이 알렸다. 

《제가 이번에 급히 귀국을 방문하게 된것은》하고 그는 정중하 
게 그리고 애써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 었다. 〈〈다름이 아니라 마 
오쩌둥주석의 지시를 받고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의 고견을 받기 위 
해 서 입 니 다. )) 

김일성 동지께서 는 가볍게 웃으시 였다. 

《덩사오핑동지, 우린 오탠 구면친구인데 너무 요란스러운 인사 
말은 피하는게 어떻습니까?!》 

《예, 좋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했으나 덩샤오핑은 여전 
히 엄 숙한 표정 을 지 우지 못했다. 〈〈사실 우리 당은 존경하는 
김 일성 동지 께 서 제 일 어 려 울 때 마다 우리 당과 정 부를 적 극 지 
지하고 고무해주신데 대하여 잊지 않고있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처 
123 



음 핵시험을 하여 세계의 렬강들이 금시 우릴 잡아먹을것처럼 달려 
들 때에도 제일먼저 정부성명을 발표하여 지지해준것 역시 귀국의 
당과 정부가 아니였습니까.》 

《우린 프로레 타리 아국제 주의 에 충실 할뿐입 니 다.》 

《고맙습니다.》덩 사오핑은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조심 스럽게 말 
을 이 었다. 《미안하지만 제가 어제 밤 올린 글을 보셨는지요?… )) 
〈〈예, 보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덩샤오 핑은 무척 반가와 했 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그건 우리 당이 얼마전 모스크 
바에서 진행되였던 각국 공산당 및 로동당대표들의 협의회가 추구 
한 진목적을 까밝히는 한편 그들의 그릇된 수정주의적주장을 반박 
하기 위해 마오쩌 둥동지 가 친히 쓴 글입 니 다. 그것 을 세상에 공개 
하려 했는데 마오쩌둥동지는 신문에 내기 전에 먼저 김일성동지의 
의견을 받고 발표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정 
온것이니…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 리를 끄덕이며 덩샤오핑 이 가지고온 론설을 
탁우에 놓고 첫장을 번지시였다. 이미 보신것이여서 한눈에 안겨오 
는 글줄들이였다. 

론설의 예리한 론조가 마치 격하게 호흡하며 소리쳐 웨치는듯 했 
다. 고압적인가 하면 설득력있고 통속적인가 하면 의미심장하기도 
하였다. 글줄들에도 호흡이 있고 리듬이 있고 마음의 금선을 울리 
는 선를이 있는 법 이다. 마오쩌둥특유의 문체와 철학적주장이 살아 
숨쉬는 글이였다. 

《론설 을 잘 보았습니 다.〉〉마침 내 그이 께 서 말씀하시 였 다. 《쏘 
련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반박할 름을 찾을수 없을 정도로 수준있고 
론리와 주장이 강한 글이였습니다.》 

창유리로 홍수처럼 밀려든 눈부신 해살이 덩사오핑의 얼굴에서 물 
결쳤 다. 

〈〈계 속 말씀하십 시 오, 김 일성 동지 . 〉〉 

그는 기쁨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순간 마오쩌둥의 특사로 파견되여온 그 
124 



의 심정이,자신의 지지를 받고싶어하는 그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 
되시였다. 하여 엄숙한 어조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이 글을 지지합니다. 특히 현시대에 대한 평 
가와 주장이 명백한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우린 공산주의자들이 
고 혁명가들입니다. 그래서 혁명적원칙성의 견지로 보나 국제로동운 
동의 리익의 견지로 보나 몇가지 의견을 내놓지 않을수 없습니다.》 

덩사오핑이 재빨리 받았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린 당신의 의견을 
받으러 왔습니다.〉〉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세가지 의견을 말씀하시였다. 첫째는 쏘련을 미제와 
다름없는 제국주의로 평가하는데 대하여 찬성할수 없다는것, 둘째 
로 월남에 주는 쏘련의 원조가 가짜라는 말에 찬성할수 없다는것, 
셋째로 꾸바공산당대표단이 모스크바회의에 참가했다고 하여 쏘 
련당에 추종하는 다른 나라 당들파 같이 한몽둥이로 때려서는 안된 
다는것 이였다. 

덩사오핑은 잠자코 듣기만 하면서 그이의 말씀을 세세히 적고있 
었다. 성긴 눈섭이 연신 꿈틀거리고있었다.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이께서는 잘 알고계시였다. 

〈〈사실 그 회의는〉〉하고 그이 께서 는 말씀을 이 으시 였다. 〈〈국제 
당회의의 성격을 가지였으나 우리 당은 그 회의가 중국공산당을 공 
격하는 마당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거기에 참가하지 않았 
습 니 다. )) 

덩샤오핑은 감동어린 표정이였다. 

〈〈알고있습니다. 우린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와 존엄높은 조선 
로동당의 결단에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하고 그이께서 웃으시였다. 〈〈사실 그 회의에 
참가한 당들은 대체로 흐루쏘브때부터 그들에게 맹종맹동하던 당들 
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가운데엔 무언가 좀 얻어먹을 생각으로 찾 
아갔거 나 압력 에 못이겨 마지못해 참가한 당들도 있습니 다.》 

덩샤오핑 이 또 머 리를 끄덕이 였다. 


125 



《그러니 지금 신생꾸바까지 다 한몽둥이로 조겨댈 필요가 있겠 
습니까?〉〉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열고 담배를 꺼내시였다. 《왜 
냐하면… 꾸바는 까리브해의 위기때 벌써 수정주의자들의 투항주의 
와 비겁성을 직접 제 눈으로 보고 그에 격분하여 침을 밸았습니다. 
하지만 꾸바는 서반구에서 홀로 혁명을 하고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이러한 꾸바가 지금까지 미제의 악랄한 봉쇄속에 시달리다보니 사 
회주의나라들, 형제당들의 정치적 및 물질기술적지원을 떠나서 
는 한시도 견디기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 
득불 모스크바회의에 참가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입니다. 우리는 그 
들의 딱한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볼니다. 그래서 우리 당은 까리 
브해위기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사소한 차별도 두지 않 
고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 꾸바를 지원하고있습니다.》 

덩사오핑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국에서 지금 경제사정이 그리 넉넉치 못하지만 꾸바와 월남 
에 막대한 량의 원조물자를 제공하고있는데 대하여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어 수정주의자들까지도 김일성 동지와 조선로동당의 헌 
신적모범과 열렬한 호소를 모르는척 할수가 없어 월남에 그 무슨 지 
원을 주고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는 조용히 웃으시 였다. 

《꾸바와 월남이야 형제나라, 형제당들이니 지원이야 응당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꾸바도 월남도 한전호속에서 공동의 적을 반대 
하여 싸우는 전우들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덩사오핑도 따라옷었다. 

〈〈우리도 같은 생각입니다, 김일성동지.〉〉 

〈〈예,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의 적을 반대하여 싸우는 전 
우들로서뿐만아니라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위해 지금 무엇보다 중요 
한것은 단결이라고 봄니다. 차이점은 뒤로 미투고 단결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주장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는 얼 
마전에 당보 〈로동신문〉을 통하여 〈사회주의진영의 통일을 수호 
하며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단결을 강화하자〉라는 론설을 이미 발표 
하였고 또 지난해엔 〈사회주의진영을 옹호하자〉라는 론설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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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것입니다.〉〉 

《예, 저도 그 론설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론설을 읽으며 복잡다 
단한 국제정세와 사회주의진영의 전략을 명쾌한 론리로 분석, 전개 
한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였다. 덩샤오핑은 저으기 흥분한 어조로 손세까지 
써가며 말씀드리고있었다. 

《참, 마오주석께서도 그 글들을 읽어보고 김일성동지이시야 
말로 옛사람들이 말한것처럼 〈인중직사형〉이라 하면서 감탄을 금 
치 못했습니다.〉〉 

《인중직사형이라…》 하고 그이께서는 한순간 머리속에 번쩍 
인 기억의 한토막을 더돔으며 미소를 그리시였다. 《아, 알만 합 
니다. 그건 중국의 고대성구에 나오는 말이지요?…》 

《예, 옳습니다.》 

《그런즉 바르기가 저울파 같은 인물이라는 말인데… 아, 아닙니 
다. 지금까지 말한건 나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우리 당의 원칙적립 
장입니다. 우리 당은 시종일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단결의 전략 
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도발파 정치군사적공세를 짓부셔버리고 전 
세 계 피 압박인민들의 자주성 도 옹호하자는것 입 니 다.》 

《옳은 말씀입 니 다, 김 일성 동지 . 》 

마침내 덩사오핑은 가슴을 쭉 펴고 몰아쉬던 숨을 활 내뿜었다. 

《오늘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 이제 돌아가면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마오쩌 둥주석동지와 우리 당 
중앙위원회에 꼭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믿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밝게 웃으시였다. 


5 


장정환은 전연부대에 나가있던중 급히 총정치국에 돌아오라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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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을 받았다. 사실은 한주일후에나 돌아갈 예정이였었는데… 놀라 
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한밤중에야 평양역에 내렸다. 운전사가 그를 태우고 외성동으로 
차를 몰았다. 

《이 건 뭐요?〉〉하고 그는 놀라며 소리쳤다. 〈〈여기 야 집 으로 가 
는 길이 아닌가?》 

《부국장동지.〉〉 운전사가 재빨리 말했다. 《전 부국장동질 
집으로 모셔가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뭐?…》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설사 그 
렇다 해도 총정치국 부국장인 그를 집사정때문에 급히 소환할 까닭 
이 야 없지 않는가?! 

집에 들어서니 그를 맞아주는 안해의 거동이 이상했다. 출장갔다가 
갑자기 집에 들어섰는데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웬일인지 남편파 눈 
이 마주치는것을 꺼리는듯 한 눈치였다. 남편이 벗어주는 장령모며 군 
복을 받아 말코지에 걸면서도 머리를 약간 외로 돌리고있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니요. … 참, 시장하시겠군요.》 

안해는 말이 이어질가봐 겁내는듯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갔 
다. 그것을 보자 그는 이 발이라도 쏘는듯 미 간을 찜기 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말…》 

저도 모르게 어성이 높아지자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어떤 경 
우이든 집안에서 안해에게 큰소리를 치는것을 그는 삼가했었다. 자 
식 들앞에서 그 애들의 신성한 어머 니 를 호되 게 꾸짖고 하찮게 깔보 
거나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그는 극도로 경멸하였다. 흔히 밖에 나 
가서는 대바른 소리 한마디 못하고 죽어지내는 바지저고리들이 집 
에 들어가서는 안해나 자식들에게 때없이 큰소리를 치고 주먹까지 
휘두르군 하는것 이 다. 그렇 게 해 서 라도 사내 다운 본때 를 보이 고 가 
장으로서 의 권위 를 내 세 우면서 한 가정 을 지 배하려 는것 이 다. 

미 닫이문을 열어보니 애들은 모두 자고있었다. 순 남자애들만 넷 이 
나 된다. 그 애들이 서로 발을 엇가로 지르고 담요까지 차던진채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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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잠들어있다. 결국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것 같지는 않다. 하다면 상 
부에선 왜 이 장정환을 급히 소환해놓고는 집으로 가게 한것인가?… 

그는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아 
무말없이 눈에 띄게 파리 해진 안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늦어진 저녁식사를 차리던 안해가 그의 눈길을 견딜수 없는듯 머 
리를 들고 마주보았다. 

〈〈여보…》 

그가 입을 열자 안해는 두손을 꼭 맞잡고 입술을 떨었다. 불시로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참을수 없는듯 했다. 금시 억눌린 흐느낌소리 
가 새 여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안해는 속삭이 였다. 

〈〈여보, 우리 유진이가 글쎄 …》 

〈〈유진이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무슨 반동소릴 해서 되게 비판을 받았다나봐요.》 

〈〈그래서?》 

《그러다가 끝내 지방에 내려갔어요, 청진으투…》 

《청진? 청 진 어데?》 

〈〈청진수산사업소라던지…〉〉 

《엄?! …》그는 어벙벙 한 표정이 였다. 《아니, 외국에 가서 공 
업대학을 나온 녀석을 수산사업소엔 왜 보낸다는거요? 룡성기계공 
장같은 곳이 더 맞춤할텐데?…》 

《우에서 도 다 생 각이 있 어 그랬겠지 요.》 

《응?…》 

《됐 어 요, 괜히 그러 다 싸우겠 어 요. 그런데 말이예 요, 요즘 사 
탐들이 수군거리는 말이 …〉〉 

안해는 혀를 깨무는듯 했다. 별안간 장정환이 두눈을 부릅떴던 
것 이 다. 

〈〈사람들이 뭐라 한다구?〉〉 

《유진이가 저지른 일이 글쎄… 우리 수령님께까지 보고됐다지 않 
나요. >) 

《뭐 ?! …〉〉 장정환은 불시 로 가슴이 벌 에 쏘인것처 럼 뜨끔해 
나는것 을 느꼈다. 〈〈그게 정 말이요? 영?! …》 


129 



《글쎄 우리 집안에 반동분자가 생기다니 …〉〉하고 안해는 목갈 
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런 어망처망한 일이 생길줄이야 정말 어 
떻게 알았겠어요, 예?!…》 

그는 끝내 숟갈을 놓고말았다. 분통이 터져 견딜수 없었다. 더더 
욱 그를 달아오르게 한것은 안해의 넉두리였다. 마음에 상처를 입 
고 눈물이나 짜고있는 안해를 보기가 언짢았다. 

《그깐 녀석, 콱 뒈지기나 할게지!》 

순간 장정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금시 자기가 뱉아놓은 말을 도 
로 입 에 쓸어 넣 을수만 있 다면 돌멩 이 라도 짓 씹 을것 같았다. 그러 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니 , 당신 이 어 쩌 문?! …》 

안해가 입을 딱 벌렸다. 그는 한순간 안해의 새까만 눈동자가 커 
지고 그속에서 고통파 비애의 그림자가 얼씬거리는것을 보았다. 안 
해가 이처럼 불신에 찬 눈길로 차겁게, 못마땅하게 그리고 의심쩍 
게 자기를 바라본적이 여적 있어본것 같지 않았다. 

목구멍이 타는듯 했다. 마치 불이 불는 숯덩이를 삼킨듯 한 느낌이 
였 다. 

《됐 소.》그는 타협조로 말했다. 〈〈괜 히 화가 난김 에 그만 … 당 
신도 내 성미를 잘 알지 않소.》 

(("•)) 

안해는 이옥토록 입을 열지 않았다. 오랜 침묵을 견딜수 없어 다 
시 장정환이 물었다. 

《헌데 여보, 총정치국에선 무슨 다른 련락이 없었소?》 

그제서 야 안해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까 저녁때… 전화로 알리기를 당신이 도착하면 그대로 푹 쉬 
고… 래일 아침 일찌기 출근하면 된다더군요. 그런데 꼭 례복차림 
을 하라구…》 

《례복?…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하오?》 

본의 아니게 또 골살을 찌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는 머 리를 들 
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오늘처럼 때없이 증을 내는 남편을 보 
지 못했으므로 무척 놀라는 표정이 였다. 


130 



《례복은 다려놨어요.〉〉 

안해의 떨리는 목소리에 장정환은 다시금 속이 언짢아지는것을 어 
쩔수 없었다. 

《여보, 너무 속썩이지 말라구 하는 소리요. 사실은 나한테 잘 
못이 더 많소.》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엽초를 꺼내여 말았다. 지나친 흥분때문 
에 성냥개비를 세번씩이나 부러뜨리고서야 겨우 불을 달았다. 

《녀석이 서양향수내에 잔뜩 물젖어있었어. 그런걸 내가 제때에 
홍달구지 못했거던.》 

《아니,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선 무슨 소용있어요?》 

안해는 극심한 정신적불안때문인지 병자같이 창백했다. 

〈〈난 이 일이 당신한테까지 그늘을 지우게 될가봐 걱정이예요.》 
《쓸데없는 소리!〉〉장정환은 겨우 한두모금 빨다 만 담배를 재 
털이에 비벼꼈다. 《어쨌든 나나 당신이 나 유진이 일루 책 임을 져 
야 하는건 당연한거지. 헌데 유진이 그녀석이 언제 내려갔다구?》 
〈〈사흘전에요.》 

〈〈혼자?》 

《예, 혜영인 오늘 아침차로 갔구요. 혜영인 내가 보냈어요, 집 
에 앉아 울지 만 말고 따라가서 남편 이 자리 잡는걸 봐주라고요.》 
〈〈잘했소.〉〉 

장정환은 닁 큼 자리 에서 일 어 섰다. 그의 얼굴은 퍼 르죽죽했다. 
번거로운 마음때문에 이마언저리를 파고 지나간 굵은 주름살들이 
꿈틀거 리군 했 다. 


깊은 밤이였다. 혜영은 렬차칸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머리를 기대 
고 앉아 억지로 졸음을 청하고있었다. 가끔 증기기관차의 거센 기 
적 소리 가 여 름밤의 대 기 를 찢 으며 사납게 울리 군 했다. 헤 영 이 에 게 
131 



는 그 기적 소리 조차 누군가의 성 난 웨침소리처 럼 들려 왔다. 

렬차방송에 서 는 아까부터 경 쾌 한 음악이 계 속되 고있 었다. 

《이번엔 백인준 작사, 김린욱 작곡의 영화주제가 〈해빛밝은 내 
나라〉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어 물결치는듯 한 반주음악이 울리더니 맑고 탕랑한 녀성고음 
독창이 시작되였다. 

찬란한 해빛이 이 강산에 넘치니 
사람들 한없이 행복하여라 
창조로 꽃피는 사회주의 내 조국 
땅우에는 백파 무르익었네 

예술영화 〈〈끝없어라 나의 희망》의 주제가이다. 끝없이 밝고 랑 
만과 희열에 넘친 노래… 허나 그것도 헤영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 
았다. 남편일때문에 온통 마음이 구깃구깃 구겨져있었던것이다. 

렬차원이 들어서더니 챙챙한 목소리로 노래부르듯 했다. 

〈〈차안에 계신 손님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다음 도착할 역 
은 고원역입 니 다. 고원역 에서 는 20분간 섭 니다. 내 리실 손님 들 
은 미리 준비해주십시오.》 

우리 나라는 살기 좋아라 
우리 태양은 밝고밝아라 
우리 앞길은 넓 고넓어 라 
언제나 한마음 수령님 모시고 
충성을 다하여 천년만년 살리라 

렬차방송의 녀성고음독창이 고조되는 속에 많은 사람들이 당반우 
의 크고작은 보짐들을 끌어내리고 커다란 배낭을 찾아메면서 법석 
떠 들어대 기 시 작했다. 함경 도사람들의 악센트가 센 사투리 의 회오 
리가 렬차칸을 휩쓸어가고 또 휩쓸어왔다. 


132 



혜영은 얼핏 눈을 떴으나 곧 도로 감고말았다. 혜영이의 맞은편 
에는 하얀 저고리를 단정하게 입고있는 교육자나 예술가풍의 한 녀 
인과 공군령장을 단 한 군관(상위 )이 앉아있었다. 처음엔 딸의 잔 
치 에 간다는 로인내외가 앉아있었는데 그들이 거 차역 에서 내 리 자마 
자 그 녀인과 공군상위가 자리를 메웠던것이다. 

처음엔 그들이 부부간인가 했었다. 그런데 녀인보다도 젊어보이 
는 공군상위가 전투가방에서 무슨 편지인가를 꺼내들고 읽기 시작 
했는데 그의 눈치가 이상했다. 손에 펴든 편지는 보는둥마는둥 반 
쯤 눈을 감고있었다. 그가 편지를 한두번만 읽어본것이 아니라는것 
을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그와는 달리 예술가풍의 녀인은 처음부터 헤영이 에게만 남다른 관 
심을 보이고있었다. 그가 먼저 상긋 옷으며 알은체를 했었다. 헤 
영은 당황하여 건성 눈인사를 했다. 아무리 기억을 더돔어도 낯모 
를 녀인이였다. 그 녀인이 무슨 말인가 꺼내려는 눈치여서 혜영은 
눈을 감고말았다. 졸음에 못 견디겠다는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하 
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지금껏 자는척 했다. 그러나 그 녀인 
의 주의깊은 시선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것을 인정하지 않 
을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속이 언짢았다. 혜영은 눈을 뜨고 도 
전적으로 녀인을 마주보았다. 순간 가늘게 쪼프린 녀인의 눈에서 밝 
은 미소가 불을 켰다. 

《몹시 고단한가보지요?》 

〈〈예, 그저 좀…》 

얼떠름한 대답이였다. 사실은 귀찮게 구는 녀인에게 한마디 통이 
라도 놓고실었는데… 저도 모르게 녀인의 두눈에서 흘러나오는 정 
찬 미소에 부쩍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혹시〉〉하고 녀인이 또 물었다. 〈〈리헤영이라고 하지 않는지? 
사진보도사에서 일하는…》 

〈〈아니, 그걸 어떻게?…》 

혜영의 놀라는 표정을 보며 녀인은 상긋 옷었다. 

《그러니 내가 바로 봤군요. 아버진 건축가 리웅산선생… 내각건 
축설계실 실장으로 일하시지요?》 


133 



혜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 문?! …》 

〈〈난 라정아라구 해요.》녀인은 여전히 옷는 눈이였다. 약간 흐 
릿한 색갈의 목소리였지만 남달리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미술가 
동맹 에 있는 조각가이구요. 얼마전부터 인민영 웅탑조각군상제 작 
에 동원되였어요. 그래서 인민영웅탑 총설계가인 리웅산선생을 아 
니, 혜영이 아버질 알게 됐어요.》 

〈〈우리 아버지를요?》 

《예, 그래서 혜영이네 가족사진도 여러번 볼수 있었어요.》 

《예-》 

그래서 우연히 나를 보자마자 우정 가까이 옮겨온것인가?!… 헤 
영은 얼결에 녀인이 권하는 사과를 받아들었다. 렬차판매원이 밀차 
를 밀고 수시로 오고갔지만 여적 한번도 눈길을 돌리지 않던 헤영 
이 였 다. 

라정아라는 녀인은 곁에 앉은 공군상위에게도 친절히 사과를 권 
하였다. 그러자 보풀이 인 편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공군상 
위가 그것을 팔소매로 쪽족 문지르며 분명치 않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 다. 제 가 사야 하는걸 …〉〉 

〈〈아이, 무슨 그런 말씀…〉〉 

공군상위는 사과를 받아쥐고 당장 입에 가져가기가 무엇한 모양 
이였다. 그는 게면쩍어하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별안간 놀렌 소리를 
질렀다. 

《가만, 지금 기차가 어디에 와있습니까?》 

〈〈고원 역 이 예 요.》 

라정 아가 대답하였다. 

〈〈아니, 이 런 변이라구야? 난 여기서 내려야 합니다.〉〉공군상 
위는 손에 쥐고있던 사과를 녀인의 손에 꾹 박아넣었다. 《정말 미 
안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가 덤렸다치며 인사를 하고 승강구로 달려나가는것을 지켜보던 
라정아가 헤영이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정 말 재 미 나는 군관동무이지 요?》 


134 



《? …》 

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말도 없었다. 자기에게는 그 공 
군상위가 재미나는 사람은커녕 무엇때문인지 몹시 피로와하는 사람 
으로밖엔 달리 보이지 않았다. 

《참, 헤영인 어데까지 가세요. 혹시 아버지한테?…》 

〈〈아니 예요.〉〉 

혜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더이상 설명도 달지 않았다. 다소곳 
이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였다. 정찬 목소리를 가진 이 녀인, 창백 
한 얼굴에 류달리 깊고 따스한 눈동자를 가진 이 녀인이 나에게 이 
처럼 바투 다가온것은 무슨 까닭일가?… 그리고 이 녀인이 아버지 
가 품고다니는 가족사진까지 자주 들여다보는 정도라면, 하여 사진 
에서 본 나의 얼굴모습까지 생생히 기억해둘 정도라면 두사람은 과 
연 어떤 사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벌써 몇해전에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후 헤 
영이까지 출가하여 집에는 지금 늙으신 할머니 한분밖에 없다. 그 
리고 아버지는 밤낮 일이 바쁘다는 리유로 현장에 나가서 살고있고… 
몇해사이에 눈에 띄게 퍼그나 늙어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곁에 이 
렇듯 예쁘장한 녀인이 나타난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좋은 일 
일가,나쁜 일일가?…… 

헤영은 라정아라는 녀인이 또 무엇인가 물었지만 알아듣지 못했 
다. 한순간 전류처 럼 가슴속을 스쳐간 짜릿한 아픔때문에 가쁜숨만 
내긋고있었다. … 


7 


렬차에서 내린 최봉호는 고원역에서 두시간남짓이 걸어서야 바다 
가마을 구통리 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가는 삐스는 오전에만 있다 
고 하므로 날이 어둡기 전에 도착하려고 강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 
되였었다. 


135 



해질무렵 이 였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로 길게 뻗 어 나간 호도반 
도가 시뻘건 노을속에 잠겨들고있는것이 바라보였다. 높고낮은 산 
봉우리들까지 점점 더 그 용암속에 서서히 녹아들고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소년들이 저앞에서 왁작 떠 
들며 밀려오는것이 보였다. 남자애들은 네댓명씩 무리지어 최뚝에 
서 무엇을 잡느라고 핍박질을 하거나 개울가의 징검돌우에서 물싸 
움을 벌리느라고 야단이였다. 하건만 처녀애들만은 한덩어리로 줄 
지어 오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있다. 역시 처녀애들은 장난세찬 남 
자애들보다 더 빨리 인생의 봄을 꿈꾸는것 같다. 

노을비낀 철길우에 젊은 기관사 
기적소리 울리며 기차를 몰았네 
포연을 헤쳐온 용감한 그 젊은이 
준엄한 그날에도 굴하지 않았네 

예술영화 《철길우에서〉〉의 주제가이다. 세상에 나오자바람으 
로 최봉호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예술영화였고 뚯깊 
은 영화주제가였다. 비록 영화의 주인공들은 장내에 불이 켜지는것 
과 동시에 영사막에서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 
어준 정서적여운까지 죄다 걷어안고 가버린것은 아니다. 영화의 저 
노래와 더불어 그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싸우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있 는것 이 다. 

봉호는 마치 자기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듯 했다. 변함 
없는 마음을 안고가는 공군상위… 노래하며 걸어오던 처녀애들은 길 
설에 조금 비켜서는 공군상위에게 깍듯이 소년단경례를 했다. 
〈〈안녕 하십 니 까!〉〉 

〈〈안녕하십 니 까, 군관아저 씨 !》 

〈〈비행사구나.〉〉 

《공군상위야. 참 멋있지?》 

《그래, 미남자다야, 임?!》 

사춘기에 이른 처녀애들이여서 바다가마을에 오래간만에 나타 
136 



난 공군상위를 할끔할끔 치떠 보며 저마끔 젠 말씨 로 소끈거 리고 입 
을 싸쥐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노래는 계속된다. 

봉호는 그 애들에게 묻고싶은것이 있었으나 그들의 노래를 끊고 
싶지 않았다. 하여 손을 들어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고는 그냥 지켜 
보기만 했다. 처녀애들은 계속 웃음어린 눈빛을 그에게서 떼지 않 
으며 옆으로 지 나갔다. 

다행히 개울가에서 물싸움을 하던 남자애들이 그를 띄여보자 일 
시에 허리를 펴고 경례를 했다. 

〈〈안녕하십 니 까, 군관동지 !〉〉 

마침 이 였 다. 

《참 얘들아, 저기가 구통중학교니?》 

《예!》 장난꾸러기소년들이 일시에 입을 모아 합창을 했다. 

《우리 학교예요, 우리 학교!》 

《근데 누굴 찾아오셨나요, 아저씨?》 

봉호가 되물었다. 

《거기 한수희라는 녀선생이 새로 왔지?》 

대 번에 환성 이 일 어났다. 

《예, 왔습니다!〉〉 

《곱게 생긴 선생님 말이지요?》 

저저 마끔 한마디 씩 은 다했다. 

《우리 학급담임 선생 님 이 예 요. 》 

《야! 그러니까 우리 선생님 찾아오셨네?》 

《그럼 제 가 안내 해드릴게요. 나만 따라오세요.》 

봉호는 손을 홱 내것 고말았다. 

〈〈아니, 필요없다. 얘들아, 나 혼자 가도 된다.〉〉 

《체 ! 도와주겠다는데 두.》 

소년들은 그만 흥심을 잃었는지 입이 뚜해졌다. 

《별 난 군관동지구나야.〉〉 

《그러게 말이야. 괜히 골을 내면서…》 

봉호는 그 애 들의 뿔난 소리엔 아랑곳하지 않고 걸 어 갔다. 시 간 
이 급했다. 마음도 급했다. 


137 



방금 한 녀자와 행복의 꿈을 그리기 시 작하자마자 그들 사이를 갈 
라놓으며 가정성분이라는 이름의 감탕물이 세차게 굽이쳐갔다. 다 
행히 거기엔 징검돌들이 놓여있었다. 그는 뒤뚝거리는 징검돌들을 
하나하나 발을 구르듯 힘 있게 짚어가며 저편기슭으로 껑충거 리며 뛰 
여갔다. 


Z 


그 시각 수희는 교무실에서 교수안을 정리하고있었다. 하루수업 
이 끝난 뒤여서 시간은 넉넉했다. 집에서 기다려줄 사람도 없으므 
로 서두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뜻하지 않던 괴로움때문에 그는 이 
를 앙다물고있었다. 이마에 진땀이 송골송골 내돋을 정도였다. 아 
까부터 심한 구토감이 때없이 올리밀고 밑배에서부터 뼈근한 아픔 
이 가슴노리까지 허비고있었다. 빨리 리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잊그제도 그러다 무난히 지나갔었는데 오늘은 별스레 더 
참기 어려워 은연중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오늘도 병원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는 한손으로 구 
토감이 나는 목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교수안을 썼다. 그 종이장 
우에 불그레한 노을빛이 얼씬하더니 곧 사라지고말았다. 날이 어둡 
기 시작하는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가 쓰는 종이장을 손으로 덮어놓았다. 하얗고 자 
그마한, 분필가루가 묻어있는 앙증스러운 손이였다. 머리를 들 
어 보니 몸매작은 음악교원이 였다. 풍금을 탈 때마다 갓난아기의 그 
것처럼 작고 깜찍한 손이 옥타브를 채 짚지 못해 핍뛰듯 훌쩍훌쩍 
건반을 뛰여건느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매 걸음 
걸음을 착실히 짚어가는 성실하고 알뜰한 처 녀 교원이 다. 

《수희선생, 자요. 사랑의 쪽지편지!…》 

수희는 옷어넘기 려 했다. 

〈〈아니, 뭐 나한테?》 


138 



《아이, 수희선생. 언제까지 숨박곡질을 할 작정이세요, 예?!》 

《채선생, 그건 또 무슨 소리 예요?》 

《어서 읽 어 보라니까요.》음악교원은 해들해들 옷으며 한손을 머 
리우로 높이 쳐들었다. 〈〈저 푸른 하늘에서 울려오는 사랑의 도레 
미 화쏠 ! …》 

하늘에서 울려오는 도레미화쏠?… 가슴이 후두둑했다. 이상한 예 
감에 눈귀가 떨리고 입술이 타들었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쪽지를 펴 
들었다. 아니, 이건?!… 그리도 눈에 익은 글씨, 만년필로 막 휘 
갈겨쓴 굵다란 글자들이 배로 커지고 두드러지며 소리치는듯 했다. 

당장 바다가 도래굽이 로 나올것 ! 

최봉호 

수희는 목언저리를 누르고있던 손을 금시 터질것만 같은 가슴에 
대고 꼭 눌렀다. 언젠가는 오고야말 그것이 끝내 찾아온것이다. 

《수희선생!》부지중 음악교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새되게 부르 
짖었다. 《아니, 갑자기 어디가 아프세요. 예?!》 

글쪽지를 구겨쥐고있는 수희의 얼굴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해족 
해 졌던것 이 다. 

〈〈아니, 괜찮아요.》수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이 예 요, 일 없어 … 걱 정 말아요.》 

수희는 마치 채머리를 떠는 늙은이처럼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 
다. 이어 어마지두 놀라서 쳐다보는 음악교원의 옆을 지나 출입문 
께로 걸어갔다. 그러나 문앞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고 방안을 휘둘 
러보았다. 무엇 인가 잊 은것 이 있는것 같은데 그것 이 무엇 인지 도무 
지 생각나지 않았다. 마침 벽에 걸린 낡은 거울이 눈에 띄였다. 수 
회는 그앞으로 다가갔다. 군데군데 수은칠이 벗겨져있는 곳들이 적 
지 않았으나 지금 시커먼 고민에 휩싸여있는 수희의 수심에 찬 모 
습을 비 쳐 주기엔 충분했다. 

채 가성 을 가진 처 녀 음악교원은 어리 둥절하여 굳어 져 있 었다. 생 활 
의 모든것을 음악적으로, 화성적으로 분석하는데 습관된 처녀… 아 
139 



마 여느때 같으면 〈〈사랑의 도레미화쏠》도 화성 학적으로 분석하면 
서 쉴새없이 웃고 떠들있으련만 지금은 눈이 올통하여 가만히 지켜 
보기만 한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처녀가 머리빗을 꺼내였다. 

《수희선생, 머리부터 빗으세요. 오늘따라 참,그게 뭐예요?…》 
수희는 묻는듯 한 눈빛으로 처녀를 바라보고는 아무말없이 빗을 
받아 정성껏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하건만 거울안에서는 여전히 낯 
선 녀인의 생기잃은 두눈이 미심쩍게 그를 내다보고있었다. 

《어디 말해봐, 정 가고실어? 그를 꼭 만나고싶어?》 

수희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가고싶다, 가고실어!…》 

웬일인지 마음껏 소리쳐 울음을 터뜨리고싶은 마음이였다. 그래도 
참아야만 했다. 아무튼 올것이 왔으니 그것을 맞받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것을 피해 숨을 곳은 없는것이다. 


…수많은 발자국들이 모래불에 찍혀있었다. 그 발자국들은 누군 
가의 비틀거리는 인생길처럼 비뜰비뜰 좌로 우로 어긋나게 찍혀졌 
는가 하면 때로는 이미 찍은 발자국을 되는대로 짓밟으며 곧추 멀 
리 까지 뻗어 간것 도 있 었 다. 

그 한끝에 최봉호가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고 서 있었다. 사랑하는 
남녀청춘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도래굽이, 대자연이 마련해준 사연 
많은 바다가도래굽이에 그가 있는것이다. 

모래불을 밟는 수희의 미약한 발걸음소리에 바싹 귀를 강구고있 
은듯 그가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숨찬 소리로 불렀다. 

〈〈수희!〉〉 

수희는 몸을 떨었다. 그가 달려올 때까지, 가쁜숨소리가 귀전에 
퍼 부어질 때까지 몸짝도 하지 않고있 었다. 

봉호가 씨 근벌떡거 리며 따져물었다. 

《수희, 난 정말 이렇게까지 나올줄은 몰랐어. 인생이 뭐 놀음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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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가? 어쩌자구 이런다는거야, 옹? 나하군 한마디 의논두 없이 이 
렇게 도망치면… 어데루 간다는거 야? 그래 그까짓 친아버지가 무슨 
상관이야. 〈치안대〉를 했으면 어떻구 월남했으면 어떻다는거야? 
수희를 키워준 고마운 당과 한초 아버지, 어머니가 있잖아? 그런데 
두 한생의 언약까지 깨 구 여 기 와 숨어있으면 어찐다는거 야?! …》 
«-)) 

수희는 여전히 입을 옥물고있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그토록 무 
섭게 생각되던 그 일이 인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것이 이상했 
다. 봉호가 분노로 몸을 떨며 소리치면 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가 
라앉기 시작했다. 불현듯 이제 자기가 어떻게 처신하며 무슨 말을 
어 떻게 해 야 할는지 명 백해졌다. 그토록 모지 름쓰던 끝에 번개불이 
평끗! 머 리속에 번쩍인것처 럼 방도가 찾아진것 이 다. 

《수희, 왜 말이 없어?》결이 난 봉호가 또 어성을 높이기 시작 
했다. 《그래 이런데 와서 숨으면 내가 찾아내지 못할줄 알구?… 
그래 이 최봉호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찾아오리라는걸 정말 몰 
랐 어?》 

〈〈알았어요.〉〉 

낮고도 침착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랭담하게 울리는것 같은 그 억 
양에 봉호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그건?…》 

《알았어 요.〉〉 수희 가 조용히 다시 반복했다. 〈〈그리구 이 렇 
게 찾아오길 … 기 다리 구있 었 어 요.》 

파도소리가 세차졌다. 두사람은 비로소 기슭을 씻는 그 파도소리 
를 처음으로 듣는듯 했다. 

〈〈오빠. )) 

마침내 수희가 그를 불렀다. 그러자 이번엔 봉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슨 소리요?》갑자기 봉호는 지금까지 써오던 해라조의 말투 
를 바꾸며 숨차게 계속했다. 〈〈그 오빠란 소리 인젠 딱 질색이요. 
한수희 ! … 나도 이제부런 그냥 동생을 대하는것처 럼 하대하지 않기 
로 했소. 그러니 제발 그 오빠라는 소린 싹 집어치우란 말이요. 그 
141 



렇게 하지?》 

〈〈아니예요.》 여전히 랭담한 목소리로 수희는 계속했다. 〈〈오 
빤 그냥 오빠로 남아있어야 해요. 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안돼!〉〉 

봉호는 마치 수희가 달아날가봐 겁내듯이 그를 붙잡으러고 했다. 
그러나 수희는 훌쩍 뒤로 물러섰다. 하여 기슭으로 밀려든 파도가 
그의 발뒤꿈치의 모래를 파헤치며 제대로 서있지 못하게 했다. 

〈〈한수희!》 

봉호가 또 잠으려 했으나 수희는 그냥 파도속으로 뒤걸음쳐갔다. 

《아니예요. 오빤… 늘 하늘의 복수자가 된다구 했지요? 또 지 
금은 하늘의 결사대라 자랑하고있구…》 

수희 는 비 로소 애써 견지해 오던 랭 담의 가면을 벗 어던지 고 떨 리 
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런데 〈치 안대〉완장을 끼구 만행 을 한데 다가 월 남도주한 아 
버지를 둔 내가, 이 수희가 오빠곁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런걸 한번이 나 생각을 해봤어요? 아니, 아니 예요, 그래선 안돼요.》 

《한수희 ! 난 이미 이 문젤 부대정치부에 다 내놓고 토론을 했더 
랬소. 수흰 지금 아주 협애하게 생각하고있단 말이요. 부대정치부 
에 선 …》 

《아니, 됐어요. 더 말하지 마세요. 오빠두 여직껏 잊지 않구있 
겠지요? 전쟁때 〈치안대〉완장을 끼고 와서 오빠를 죽도록 폐주던 
그 오기택이란 놈을… 난 잊지 않아요.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나란 
말이 예 요.》 

〈〈아니, 그놈하구야 무슨…》 

봉호는 소리치려 했으나 말끝을 맺지 못했다. 대신 수희가 처절 
하게 부르짖었다. 

〈〈그런 〈치안대〉에 월남을 한 아버지라니… 아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 〈치안대〉월남자가 오빠한 
테 그림 자처 럼 붙어 있게 할순 없 어 요. 아니 , 안돼 . 죽어두 그 
것만은, 그것만은 안돼요!》 

〈〈수희!》 


142 



마침 내 봉호는 성깔사나운 자기의 성미그대로 수희 에게 달려들더 
니 세광게 끌어당겼다. 

《난 결심하면 기어이 해내는 사람이요. 그런줄 알지? 절대 놔주 
지 않아!〉〉 

《아니, 안돼요!》 

이 번 에도 수희 는 악을 쓰며 한사코 그에게서 빠져나왔다. 봉호가 
한발자국 앞으로 내짚으면 두걸음, 세걸음 더 뒤로 물러서군 하였 
다. 어느덧 파도속에 무릎이 잠기고 허리까지 물결이 휘감기 시작 
했 다. 

《다가오지 마세요. 정 그러면 난… 바다물에 빠져죽구말겠어. 
정 말이 예 요. I 

《아니 뭐, 뭐라구?!…》 

진한 어둠속에서 파도의 물갈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사나와지기 
시 작했다. 기 슭으로 좌!一 소리 치며 밀려 들던 파도가 그들의 온몸 
에 들씌 워 졌다. 한순간 수희 는 어 쩔새없 이 파도에 휘 감겨 저 만치 로 
허궁 떠실려갔다. 다급해난 봉호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다가왔 
지만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수희가 푸一푸 짠물을 내뿜으며 새되게 
부르짖었 다. 

《오지 마세요, 제발 빌어요!…》 

비장한 부르짖음… 그것은 자신의 모든것을 다 아낌없이 내던지 
려 는 차디 찬 의지와 결단의 웨침이 였다. 

봉호가 헐썩거리며 멎어섰다. 퍼릿한 별빛에 비쳐진 그의 모습은 
처절 했다. 

《수희, 왜 그래? 왜 그렇게 갑자기 변했소?》 

수희 도 헐떡이 였다. 손바닥으로 짠물이 흐르는 얼굴을 벅 벅 문지 
르며 숨찬 소리 로 말했다. 

《그래요. 변했어요. 아一니, 본래부터 난 나쁜 녀자였어요.》 

〈〈수희 !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제 발 내 말을 꺾지 마세요, 제 발! … 빌 어 요.》 언제부터 였 
는지 수희의 목소리는 아픔에 갈리고있었다. 〈〈그래요. 난 정말 나 
쁜 녀 자예 요. 솔직 히 말해서 아버 진 아버 지구… 그것 두 그런데 다가 
143 



난 인제야 비로소 나를 알구 오빠와 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는것두 
알게됐어요. 그래서 … 고민했어요. 그래요. 정말이지 이 말만은 안 
하려구 했지만… 어찌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난 싫어졌어요, 오 
빠가!…〉〉 

《듣기 싫 소. 무슨 오그랑수를 또 쓰려구?》 

《제발 마저 들어주세요. 그래요, 싫어졌어요. 점점 기다려지는 
마음두 적어지구 따르던 정도 식어지구… 이전엔 다 좋게 보이던 드 
센 성미 랑 옹고집이 랑 인젠 다 진저 리 가 나면서 … 싫어지는걸 어떻 
게 해 요? 첨 엔 눈이 멀 었댔나봐요. 사랑이 원지두 모르구 시 작 
했다가 그만…》 

시꺼먼 어둠속에서 거센 파도가 처절썩이였다. 저 멀리 바위츠렁 
에 밀려가 사납게 부딪치고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가 린광 
같은것 을 휘뿌리 였 다. 

갑자기 봉호가 벼 락치 듯 무섭 게 소리쳤다. 

《허튼소린 그만해 ! 안돼. 내가 그따위 거짓말에 넘어갈것 같애 
서?… 한수희, 똑똑히 들으라구. 수흰 절대 나한테서 벗 어나지 못 
해 ! 죽어도 놔주지 않아! 알겠소?…》 

수희는 아무 대답없이 다시금 밀려드는 파도에 떠밀리듯 기슭으 
로 움직 여갔다. 봉호가 또 다급한 소리 를 내 질 렀다. 

《한수희 ! 어데로 가는거야? 영?!…》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수희는 몸을 홱 돌렸다. 다음 
순간 바다물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질해넘기고 천천히 입을 
열 었다. 자기 로서도 뜻밖의 아주 차겁 고 또렷 한 목소리 였다. 

《좋도록 생각하세요, 아무렇게나… 하지만 한가지만 꼭 알아주 
세요. 내 솔직히 말하는데 오늘 나의 한생에 다시 없을 그런 무서 
운 말을 했 어 요, 제 일 힘 들고 무서 운 말을 ! … 용서하세 요.》 

말을 마치자 힘들게 물결을 헤가르며 기슭으로 나갔다. 

바람이 세왔다. 파도가 더 사나와졌다. 봉호는 물가에 말뚝처럼 
박혀선채 온몸을 부르르 떨고있을뿐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수희는 오래도록 밤을 헤매였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쑤시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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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비트는듯 한 모진 아픔에 꺽쩍 숨이 막혀 신음하고 비틀거리군 
했다. 새벽녘엔 짜디짠 바다물을 삼킨탓인지 심한 구토까지 겹치여 
가물가물 의식이 흐려지기까지 했었다. 마침내 그는 더이상 몸을 가 
누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지고말았다. 하숙집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등성 이 우의 너 럭 바위 기 슭이 였 다. 

이상하게도 밤새껏 주절대며 흐르던 시 내물소리조차 더 는 들려오 
지 않는듯 했다. 모든것이 끝나버리고말았는가?… 그의 엣되고 순 
진한 마음속에 한뜸한뜸 수놓아오던 사랑파 행복의 꽃송이는 제 모 
양새도 갖추기 전에 지고말았다. 짜디짠 눈물과 한숨에 수놓이바늘 
에 녹이 쓸고 가느다란 수실마저 끊어져버린것이다. 

눈물만이 하염없이 솟구쳤다. 억지로 참고견디여보려 했으나 허 
사였다. 그는 자주 힘없이 띠염띠염 흐느껴울었다. 가슴을 에이는 
듯 한 모진 아픔에 울고 자기의 신상에 닥친 불행파 슬픔에 울고 또 
울었다. 


봄빛이 무르녹는 한낮이였다. 쨋쨋한 해볕이 창유리에서 눈부신 
빛으로 반사되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푸르게 단 
장한 논벌을 끼 고 달리 고있었다. 

뒤에서는 장정환의 군용차가 바투 따르고있었다. 주인도 없는 빈 
차… 그이께서는 자신의 옆에 앉아 옹송그리고있는 장정환을 소리 
없는 웃음속에 스쳐보시였다. 

떠나실 때 그와 나눈 담화가 상기되시였다. 급기야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장정환, 그는 너무도 벅찬 흥분을 감출수가 
없어서 검붉어진 두볼을 움씰움씰 떨고있었다. 

《장정환동무, 내가 오늘 동물 왜 부론것 같소?》 

그이께서 물으시자 장정환은 급기야 몸을 움씰했다. 군대식으로 
허리를 쭉 펴며 두두룩한 가슴을 풀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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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럴레지… 실은 내 동무와 좀 품을 놓고 얘길 나누고실었는데 
통 그럴 시간을 낼수가 없더구만. 그래서 나랑 같이 어데 좀 가보 
자는거요. 꾸바에 보내주기로 한 농기계설비들도 봐줄겸 …》 

《예?! …》 

농기계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서 복무하 
고있는 장정 환에 게 는 실로 수수께 끼같은 일 이 아닐수 없었다. 

그이 께 서 장정환의 팔소매 를 잡으시 였다. 

〈〈자, 나랑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얘기하기요.〉〉 

그이 께서는 장정환을 자신의 차에 로 이 끄시 였다. 

〈〈참, 동무의 처남되는 사람이 무역성에서 일을 본다구 했던것 같 
던데? 이 름을… 박유진 이라구 하던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장정환이 대바람 씨근거리며 대답 
올렸다. 《통이 썩구 속에 헛바람이 차있는 놈입니다. 제가 잘 교 
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그이께서 또 웃으시였다. 《그래, 우리모두가 책 
임을 느껴야지. 새 세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데 따라 조국의 
미 래가 결정되거 던.》 

잠시 침 묵이 흘렀다. 해 빛 이 차창에서 어롱거 리 며 재 롱을 부리 듯 
이 들뛰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신중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 처남의 일은 나도 관심하겠소. 당에서 제일 어려운 때 외 
국에 류학까지 보내서 키웠는데 비 뜰어지지 않게 잘 바로잡아줘야 
지. 그건 나한테 맡기고… 장정환동문 이제부터 새로운 임무를 하 
나 맡아줘 야겠 소.》 

《예, 수령님! 명령만 주십시오.〉〉 

《명령?…》그이께서는 처음으로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명 
령 을 달란 말이지? 음一 동문 이제 부터 꾸바대사로 사업해 야겠소. 
어제 토의가 있었소.》 

《예?! "•分 

실로 뜻밖이 였다. 검스레한 그의 얼굴근육이 사뭇 실룩거리기 시 
작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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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건 없소.〉〉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동무도 소 
식 을 들어 잘 알겠지 만 지난 5월초 꾸바의 관따나모기지 에 있는 미 
제침 략군놈들이 꾸바국경 초소들에 도발적 인 사격 을 가하여 꾸바 
병 사들을 살해하는 범 죄 행위 를 감행하였소. 그래서 지금 꾸바는 계 
엄상태 에 들어 갔소. 지난 까리브해 의 위 기때 와 같이 당장 전쟁 이 터 
질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란 말이요. 그런데도 수정주의자들은 계 
속 미제와 타협하면서 투항주의로 나가고있으니… 반제반미투쟁 
의 제1선 에 우리 가 나서지 않을수 없게 되 였 소.》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승용차는 
강기 슭을 달리 고있 었다. 해 볕 이 강물우에 서 자글자글 흥떡 이고 푸 
른 전 야에 서 는 아지 랑이 가 눈이 시 리 도록 아물거 렸 다. 하지 만 
그이께서 보시는것은 그런것이 아니였다. 

《까리브해의 위기때부터》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 였다. 〈〈꾸바 
에 주재하고있던 많은 다른 나라 대사관들은 문을 닫아매고 배와 비 
행기를 타고 저마끔 제집으로 피난갔지만 우리 조선대사관만은 홍 
동철대 사이하 전체 외 교관들파 가족들까지 그대 로 남아있 었소. 뿐 
만아니라 꾸바사람들과 한전호에서 싸우려고 모두 총을 잡고 결사 
전 을 준비하였소. 그때 부터 꾸바사람들이 우릴 얼마나 고맙게 생 각 
하는지 모르오. 진심으로 꾸바와 어깨를 겯고 싸울 진짜전우는 조 
선사람들이라고 말이요. 그런데… 갑자기 홍동철대사의 건강이 나 
빠져서… 소환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소. 그래서 동무를 파견하기로 
했지. 생각해보오, 이제 우리가 판문점에서 미국놈들파 코를 맞대 
고 싸우던 장령 까지 대사로 보내주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그들의 투쟁 에 큰 고무가 될거 란 말이요.》 

그이께서는 자신의 손을 장정환의 손우에 얹으시였다. 

《인젠 왜 동무를 꾸바대사로 파견하기로 했는지 알만 하오?》 

《예, 수령님. 말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장정환의 두두룩한 앞가슴이 줄곧 오르내리고있었다. 금시 전투 
장으로 달려나가는듯 벅찬 흥분에 못이겨 두름한 입 술새 로 뜨거 운 
숨결을 내불고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리해 할수 없는것은…〉〉하고 수령 님 께서 말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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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였다. 《꾸바에서 체 게바라가 갑자기 종적없이 사라진것이요.》 

《예?! …》 

《자본주의세계의 통신들이 요즘 벅작 떠들어대고있소. 피델 까 
스뜨로형제가 그를 암살했다고 말이요.》 

장정환으로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도 올릴것이 없었다. 처음 듣는 
소식이여서 그이의 다음말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승용차는 큰길에서 벗어나 논벌가운데로 난 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수령님께서는 차창밖을 묵묵히 내다보시며 다시 
금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아니, 그럴수 없어. 난 믿지 않아…》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체 게바라의 실종때문에 마음을 쓰시는것이 
였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였다. 돌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 운전사에게 이르시였다. 

〈〈가만, 차를 좀더 천천히 몰라구.》 

그이께서는 몸소 차창유리를 내리시였다. 장정환은 그이께서 차 
창너머의 벼포기들을 주의깊게 살피시는것을 보고 뜨아해했다. 그 
의 눈에는 그 벼포기들이 다른 논벌파 꼭같아보였던것이다. 

그렇게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차를 세우오.》 

차가 몇었다.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더니 논두렁에로 가시 
여 허리를 굽히고 논판의 벼포기 들을 좀더 유심히 살펴보시 였다. 차 
츰 그이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때 저앞에서 이쪽을 여겨보던 한 처 녀가 별안간 머 리수건을 벗 
어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것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신 수령님을 알 
아뵙고 어데론가 정신없이 달려가는것이였다. 그 처녀가 무어라고 
소리치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지금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신지 알지 
도 못하고 파란 수건을 날리며 부르짖는 탕랑한 웨침소리 … 그러자 
처녀가 달려가는 저쪽벌 한가운데서 하얀 수건을 쓴 중년의 녀인이 
황황히 달려나오는것 이 보였다. 

장정환은 가슴을 조이며 수령님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승 
용차도 수령 님 께서 가시 는 논두렁쪽으로 조금씩 움직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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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께서 또 걸음을 멈추시 였다. 잠시 아프신 눈길로 논판을 둘 
러보시더니 천천히 허리를 굽혀 논물에 손을 잠그시였다. 

《물은 차지 않구만. 헌데 벼포기들이 왜 이렇게 누렇게 떠있 
을가?…〉〉 

《수령님!》 

등뒤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울러왔다. 그이께서 머리를 돌려보 
시 니 낯익 은 청 산리 녀 성 관리 위 원장이 였다. 

《수령님, 봄바람이 아직 찬데 그만 들어가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예? 수령님?!》 

수령 님 께서 는 잠자코 두손으로 벼포기 들을 하나하나 헤쳐보시 
였다. 마침내 녀성관리위원장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관리위원장, 왜 벼포기들이 다 이렇게 누렇게 떠있나, 
영?》 

녀성관리 위 원장은 그만 고개 를 떨 구었다. 

《수령님, 우리 청산리는 대동강물을 퍼올려 관수하는데 이따금 
바다물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수령님께서 천천히 허리를 펴시였다. 

《음, 그러니 만조때 대동강물을 퍼올려서 그 염기때문에 이렇게 
벼가 못쓰게 된다는거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음 …》 

수령 님 께 서 잠시 깊은 생 각에 잠기 시 였다. 그이 의 안색 을 살피 던 
녀성관리 위 원장이 조심히 말씀드렸다. 

《수령님, 이제 비만 많이 오면 일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 
지 마 십 시 오. )) 

수령 님께서 피끗 그에게로 눈길을 돌리시 였다. 

〈〈비만 많이 오면 일없다구?…》근엄하신 어조였다. 《그래 수 
리 화를 끝낸게 언젠데 60년대 중반기인 오늘까지 두 하늘을 쳐 다보 
며 살아야겠나?…》 

관리위원장이 또 머리를 떨구었다.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장정 
환도 그 어떤 죄스러운 마음때문에 숨이 막히고 답답해나는것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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쩔수 없었다. 그때 무엇인가 결심하신듯 수령님께서 논뚝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 였다. 

〈〈자 관리위원장, 나와 같이 가자구.》 

〈〈예?!〉〉 

《한군데 가볼데가 있어.》 

수령님께서 가시는 논뚝길로 녀성관리위원장과 부관은 물론 장정 
환이까지 급히 따라나섰다. 

수령님께서는 이옥토록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속에 차가 달렸다. 이윽고 태성호에 이르러서야 차가 멎었다. 
수령님께서는 해빛에 어릉이는 푸른 호수를 굽어보며 나직이 말씀 
하시였다. 

《관리위원장, 이 태성호물에 염기만 없으면 청산리는 물론 강서 
지구 논벌은 다 살릴수 있어 !)) 

〈〈수령님!…〉〉 

관리위원장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내려가보자구.》수령님께서 먼저 뚝아래로 걸음을 옮기시였 
다. 〈〈이 태성호물을 떠보내서 당장 수질검사를 하게 하자구. 부 
관은 물통을 가져오라구.》 

《예.》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가과로왔다. 멀리 전망대쪽에 계단이 있었 
건만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급하시였다. 

저수지관리공들이 수령님을 알아뵘자 기쁨에 넘쳐 달려왔으나 근 
엄 하신 그이의 표정 에 그만 걸음을 멈추고말았다. 서 로서 로 눈치 를 
살피 며 조심스럽 게 깊 이 머 리숙여 인사를 올리였을뿐이 였다. 

수령 님 께서 는 무릎을 꿇고 저 수지기 슭에 앉으시 였다. 이옥토록 
출렁 이 는 물결을 둘러 보시 던 그이 께서 는 두손을 물에 잠그시 더 니 손 
을 모아 호수의 물을 뜨시였다. 순간 수령님을 우러르던 사람들이 
그만 깜짝 놀라 얼굴이 사색이 되 였다. 

《아니, 수령님?!一》 

〈〈아, 수령님! 어쩌시려구?!》 

《수령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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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령님께서 손에 담아 떠올리신 호수의 물을 몸소 맛보고계 
시는것이 아닌가!… 장정환은 그만 숨이 멎는듯 했다. 녀성관리위 
원장이 허둥거 리 며 그이 께로 어푸러 지듯 다가섰다. 

《수령님, 왜 이러십니까. 이게… 이게 어떤 물이기에 이런것까 
지 맛보십니까?…》 

녀성관리위원장은 어느새 수령님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치고있었 
다. 하지 만 수령 님 께서 는 여 전히 환한 미 소를 담고계시 였다. 

《무슨 물이긴? 단물이요, 단물!… 이 물엔 염기가 없어. 관 
리위원장, 이 물을 청산벌에 끌어갈 방법을 찾아보자구, 응?…〉〉 

《수령님!-》 

뜨거운 격정을 이길수 없어 관리위원장은 수령님앞에 무너지듯 하 
며 울음을 터뜨리 였다. 

《수령 님 ! 꼭 그렇 게 하셔야만 합니 까, 예?》 

수령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관리위원장을 잡아일으키시였다. 

《월 그러나. 이제 양수기로 물을 퍼올릴 대책만 세우면 되겠는 
데 울긴 왜?… 기태해 야지,응?》 

그이 께 서 는 시 종 밝게 옷고계 시 였 다. 

…꾸바에 보내줄 농기 계설비문제때 문에 떠 나시 였던 걸음이 도 
중에 많이 지체되였다. 승용차는 처음부터 고속으로 내달리지 않으 
면 안되 였다. 오래 계속된 침 묵끝에 드디 여 수령 님 께서 장정환을 돌 
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제때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어쩔번 했소. 장정환동무, 우리 
가 경제국방병진로선을 처음 내놓을 때 제일 마음에 걸렸던것이 무 
엇인지 아오? 바로 인민생활문제였소. 오랜 세월 지지리 도 못살던 
우리 인민을 겨우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할만 하니까 또 미국놈들때 
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정말 힘이 들었소.》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나직이 뇌이시였다. 

《그런데 이제 농사까지 잘 짓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정환은 아무 말씀도 올릴수 없었다. 시종 가슴을 울리는 뜨거 
운 충격을 이길수 없어 저도 모르게 군복저고리의 단추만 정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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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비 틀고있 었다. 


10 


저녁노을이 피빛으로 진하게 불타고있었다.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은 창문유리를 통해 내다보이는 그 먼 하늘 
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뒤쪽 길다란 량수책상에는 
급히 불리워온 농업상 김만금을 비롯하여 현무광, 정 일통 둥 금속, 
화학, 전기, 석탄공업부문의 여러 상들과 부상들이 둘러앉아 청산 
리 녀성관리위원장의 울음섞인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마침내 관리위원장의 말이 끝났다. 

오래 계속된 침묵… 녀성관리위원장의 흐느낌소리만이 간간이 방 
안의 정적을 깨치고있었다. 점도록 창밖을 내다보며 모두숨을 릎고 
있던 김일이 마침내 일군들을 향해 돌아섰다. 로환으로 검버섯들이 
드문드문 돋아있는 그의 얼굴은 벌거우리하게 물들여지고있었다. 

《우리 인민들이 이 일을 알면…〉〉하고 그는 숨찬 소리로 힘들 
게 입을 열었다. 〈〈용서치 않을거요, 이 김일이나 동무들모두를 말 
이요. 그래 세계 어느 나라 수령 이 농사일때문에 저수지물맛까지 맛 
본적이 있소, 저수지물을!… 인민들은 수령님의 안녕을 그토록 간 
절히 바라는데 이 김일이나 이 자리에 앉아있는 동무들이 제구실을 
못하다보니 우리 수령님의 고생이 얼마나 큰가 말이요! 수령님께서 
오죽하면 저수지물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억눌린 숨소리뿐… 모든 일군들이 자 
책에 싸여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리 종옥부수상은 왜 아직 안 보이오?》 

김일의 물음에 구석쪽에 앉아있던 키가 적두룩한 사람이 자리에 
서 일 어났다. 

〈〈저 … 제가 대신 왔습니다.〉〉 

일순 김일의 더부룩한 눈섭이 우로 치켜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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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이 뭐요, 대신이? 당장 저수지물을 풀 대형양수기생산 
문제를 토의해야겠는데…》 

리종옥은 내각부수상 겸 금속화학공업상이므로 토의할 대형양 
수기문제의 주인공이기도 한것이다. 

김일의 불같은 목소리에 키 큰 부상이 어깨를 옴츠리며 조심스럽 
게 대답했다. 

《상동진 좀전에… 2월5일기계공장에 나갔습니다.》 

《거긴 왜?〉〉 

《그 공장에 친 애 하는 지 도자동지 께 서 나가셨다면서 …》 

〈〈뭐,김정일동지께서?…〉〉 

《예 , 그이 께 서 태 성호저수지 의 물을 퍼올리 는 문제때 문에 2월 
5일기계공장으로 떠 나셨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 …》 

김일은 불현듯 낯색이 질렀다. 금시 심장이 멎는듯 한손으로 가 
슴을 움켜잡기 까지 하였 다. 

《그러 니 우리 가 협 의회 를 준비하는새 … 김정 일동진 벌써 기 
계 공장으로?! …》 

그는 곧장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탁우에 놓인 여러개의 전화기 
중에서 송수화기 하나를 성 급히 들었으나 도로 내 려놓고말았다. 이 
어 손에 잡히는대로 탁우의 서류철을 하나 집어들었으나 아무 의미 
없이 들여다보다가 별안간 그것으로 탁자를 탁 쳤다. 

《그 말을 왜 인제야 하는거요, 영?!》 

협의회는 필요없게 되였다. 

얼마후 김일은 2월5일기계공장으로 차를 달렸다. 땅거미가 지 
고있었다. 운전사가 전조등을 켰다. 그러나 대동강너머 재빛으 
로 보이 는 푸른 숲너머 에서 는 아직 도 락조의 빛 이 희미했다. 

김일은 무겁게 입을 꾹 다물고 재빨리 마주오는 가로수들에서 눈 
을 떼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오래전 전쟁이 끝난 후의 어느해 
12월의 일을 더돔고있었다. 

그때가 아마 1956년이 였던가?… 그래, 그해 12월의 어느날이였 
었다. 그날 수도의 거리들에는 눈이 내렸었다. 그때 김일은 강 
153 



선에서 돌아오고있었다. 도처에 전쟁의 흔적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으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활기에 넘쳐있었다. 멀리 
보통강에서는 아이들이 스케트와 썰매를 타며 떠들고있었다. 

한순간 김일은 길 저앞에서 한 소녀가 손달구지를 끌고가는것을 
보았다. 흔히 보는 일이여서 무심히 지나치려고 했었다. 허나 다 
음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어 뒤를 돌아보고는 급히 소리쳤다. 

〈〈가만, 차를 세우오.》 

차가 멎기 바쁘게 김일은 문짝을 열어젖히며 내렸다. 저 뒤쪽에 
힘겹게 손달구지를 끌고가는 단발머리 어린 소녀가 있었다. 김일이 
그를 소리쳐불렀다. 

《얘, 너 경희 아니냐?… 경희야!》 

눈이 녹아 질척해진 길에서 자꾸 미끄러지며 안깐힘을 쓰던 소녀의 
발이 몇었다. 머리를 쳐들고 돌아보는 소녀… 김일을 알아보자 꾸 
벅 인사를 했다. 

〈〈안녕 하십 니 까! …》 

김일은 그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말없이 바지주머 
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그 애어린 얼굴에 흐르는 눈녹은 물을 닦 
아주었다. 

〈〈이 건 뭐 냐, 누가 이 러라던? 누가 어린 너 희 들까지 파철 을 줏게 
하더냐, 응?…》 

((-)) 

대답이 없었다. 할딱거리는 숨소리뿐… 김일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 차를 타구 가자.》 

《아니 , 안돼 요. 저 기 강가에 서 오빠가 기 다리 고있 어 요.》 

《오빠가?…》 

《예, 오빤 저一기 보통강에서 파철을 줏는데 수매소에서 만나자 
구 했어요. 우린 매일 아버님께 수매증을 바치구 그담에야 숙제를 
해 요 . )) 

《아니, 누가 그렇게 하라구 하던? 영?!》 

《이 건 우리 오빠가 정 해 준 집 안의 법 이 예 요, 법 !》 

〈〈뭐,법?…》 


154 



그만에야 김일은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꿀끽 삼키지 않 
을수 없었다. 느닷없이 빨갛게 얼어든 작은 손을 꼭 잠았다. 차디 
찬 그 손에 입김을 불어 녹여주며 속으로는 김정숙동지를 뜨겁게 불 
러 보았다. 

《김정숙동무, 이 일을 어쩌문 좋소? 이 머리 크다란 김일이 일 
을 쓰게 못하다보니 어 린 경 회까지 이 런 고생을 시 키 고있구려. •••)) 

그때 추위 에 언 자그마한 손이 살그머니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였다. 그러자 불현듯 마음이 허전해졌다. 자기의 진정을 몰라 
주는가 했었는데… 어인 일인가. 작고 따스한 그 손이 김일의 젖어 
든 눈굽을 닦아주는것이 아닌가! … 

〈〈아저씨도 우시나요? 내각 제1부수상인데?…》 

김일은 웬일인지 목구멍이 콱 메여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머리 
만 세게 흔들었을뿐… 

《우리 오빠가 그러는데 아버님께서 강선제강소에 가시여 강재 
1만톤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편다구 하셨대요. 그래서 오빤 
우리도 매일 파철을 모아 나라가 허리를 펴는데 조금이라두 보탬을 
주자구 했던거예요.》 

《그래? 오빠가 그랬단 말이지?!…》김일은 다시금 그 자그 
마한 손을 잠아 자기 의 얼굴에 대 고 비벼 주었다. 〈〈손이 다 얼 었구 
나, 꽁꽁… 내 녹여줄게.》 

《아니예요. 됐어 요, 아저씨.》 

저 멀리 보통강에서 스케트며 썰매를 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 
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그 모습… 김일은 그 여린 손을 놓아주지 않 
았다. 

《아저 씨, 난 가야 해요, 저 기서 오빠가 기다려서 …》 

《응? ! "•)) 

이번에도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김일은 그 손을 놓 
아주었다. 

운전사가 차를 후진하여 가까이 다가와 문짝을 열어주는것도 그 
는 알지 못했다. 눈발이 굵어졌다. 눈앞이 흐릿했다. 그는 이옥토 
록 한자리 에 굳어진채 힘 들게 손달구지 를 밀고가는 나어린 소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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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모습을 뜨거워진 그리고 뿌옇게 흐려진 눈길로 이옥토록 바래주 
고있었다. … 


그때 일을 상기하자 김일은 다시금 가슴이 후더워지는것을 느꼈 
다. 전후의 제일 어렵던 그때는 물론 지금도 오직 수령님께서 바라 
시는 일이라면 몸파 마음 다 바쳐가시는 우리 당의 젊으신 지도자 
김정일동지 !… 그이께서 지난해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 
하시면서부터 이 한해동안 우리 당안에서는 벌써 얼마나 많은 벅찬 
일들이 벌어졌던가!… 

김일은 김정일동지께서 가셨다는 2월5일기계공장에 이를 때 
까지 승용차 뒤좌석 에 바위 처 럼 꾹 박힌 채 깊 은 생 각에 잠겨 있 
었 다. 


1 1 


1965년 5월 3일. 

전날 김일성동지께서는 본국에 소환되여가게 된 쏘련대사의 접 
견요청 을 받았다. 박성 철외 무상이 이 에 대 해 보고드리 면서 조심스 
럽게 자기 의견도 첨부하였다. 

《저 는 수령 님 께서 그를 만나주셔 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뭣때문이요?》 

《사실 쏘련의 당 및 국가지도자들은 우리 나라 대사를 잘 만나 
주지 않습니 다. 우리 의 강경한 반제 반미립 장때 문인것 같습니 다.〉〉 

김일성동지 께서는 근엄해 진 눈길로 박성 철을 마주보시 였다. 

《그렇 다고 우리 까지 속통이 좁게 놀면 되 겠소? 서 로 그럴내 
길 하면 점 점 더 일을 버 르집 어놓는단 말이 요.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우린 어떻게 하든 사회주의진영의 통일단결을 이룩해 
야 하오. )) 

박성철은 눈길을 떨구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한 자책으로 하여 눈 
156 



귀에서 가는 주름살들이 퍼져갔다. 

《제가 그만…》 

《만나주겠소.》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중요하게는 
그를 통해 쏘련당의 새 지도부에 내 의견을 직접 말해주자는거요.》 
하여 그이 께서는 5월 3일 소환되 여가는 쏘련대사 모스꼽스끼 
를 친히 만나주시였다. 의례적인 인사말들이 있은 후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내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예 , 말씀하십 시 오. 무슨 부탁이신지 ?》 

〈〈이제 본국에 돌아가면 당신네 당중앙위원회에 나의 의견을 말 
해줄수 있 겠 소?》 

《예,예.〉〉 

그이께서는 어지간히 당황하여 복잡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를 똑 
바로 여겨보며 천천히 말씀을 이 으시 였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지금 당신들은 왜 미제를 두려워하는가 
하는 그것이요. 미제가 월남에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당신네는 무엇 
이 두려워 우물쭈물하는가, 이 열손가락가운데서 한손가락만 다쳐 
도 온몸이 아픈것처럼 한 사회주의나라가 적들로부터 공격을 당하 
고있는 오늘 전체 사회주의진영이 다 아파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 
런데 당신들은 왜 가만있는가, 왜 미국놈들과는 할말도 못하고 주 
접 이 들어 그러 는가, 왜 미 국을 무서 워하는가?…》 

쏘련대사는 그이의 말씀을 적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하여 
그이 께서는 조금 여 유를 두며 말씀을 이 으시 였다. 

《둘째는… 쏘련당이 다른 나라 당들의 내정에 간섭하는가 하는 
거 요. 그것 이 사회 주의 진 영 의 통일 단결 에 얼마나 큰 저 애 를 주는지 
당신들이 과연 모른단 말인가?… 모든 차이점은 뒤로 미루고 단결 
할 때에만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수호할수 있다는것, 이것이 바로 우 
리 당의 변함없는 립장이고 주장이요. 이 에 대해 당신이 직접 당중 
앙위원회에 말해주시오.》 

《예, 방금 하신 말씀을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그에 대한 답을 기다려봅시다.〉〉 


157 



그로부터 얼마후 쏘련당에서 대답이 왔다. 우리 나라에 새로 파 
견되여오는 자기네 대사를 통하여 김일성동지께 보낸 브레쥬네 
브의 친서였다. 


존경하는 김 일성동지 끼1! 

나는 당신께서 나와 우리 당지도부에 보내주신 의견을 전달받고 
먼저 1956년 봄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때 축하단 단장의 자격으로 
내 가 귀 국에 가서 존경하는 김 일성동지 당신과 담화하던 일 그 
리고 그해 6월 모스크바에 들리신 당신을 다시 만나 흐루쏘브와 같 
이 회 담하던 일을 상기해 보았습니 다. 그때 에 도 당신은 오늘처 럼 모 
든것 을 자주성 의 견지 에 서 고찰하고 분석하였 습니 다. 

나는 당신께서 우리 사회 주의진영 의 통일 단결을 위하여 차이 점 은 
뒤로 미루고 굳게 단결하며 견고한 반제통일전선으로 세계의 자주 
화위업을 실현해나가는데 이바지하자는 의견에 전적인 지지와 동감 
을 표합니다. 

끝으로 나와 우리 당지 도부는 언제 나 김 일성동지 당신과 당신을 
통하여 존엄높은 조선로동당의 지 지성 원을 언제 나 절실히 필요로 하 
고있 다는것 을 재 삼 강조하는바 입 니 다. 

경의를 표합니다. 

모스크바. 크레믈리 
엘. 이 . 브레쥬네 브 

김일성동지께서는 브레쥬네브의 친서를 받고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서기를 통해 김일을 비롯한 내각부수상들과 금속 
과 기계, 화학공업 등 쎄브와 련관되 여있는 여 러 상들에게도 보여 
주라고 이르시였다. 


158 



12 


바다에는 질은 안개가 하얀 비단실의 장막처럼 드리워있었다. 그 
안개발속으로 뜨랄선 다섯척이 먼바다어장을 향해 산같이 밀려 드는 
파도를 헤 가르고있 었 다. 청 진 수산사업 소에 서 떠 난 원 양어 로선 대 
로서 세계의 3대어장중의 하나인 오호쯔크해로 가고있는것이다. 날 
씨만 좋으면 한주일동안에 가댈수 있는 거리이건만 련 이틀째 새바 
람이 끝없이 불어치면서 큰 멀기를 몰아오군 했으므로 예정보다 늦 
어지고있었다. 끝없이 밀려 드는 멀기로 하여 선대의 배들은 쉴새없 
이 물결우를 오르내리며 모지름을 썼다. 

나흘동안이나 심한 멀미에 지칠대로 지쳐 선실침대에 쓰러져있던 
박유진은 배 가 무엇 엔가 부딪쳐 쿵!一하는 충격 과 함께 무섭 게 요 
동치는 바람에 하마트면 바닥으로 굴러떨어질번 하였다. 가까스로 
가름대를 잡고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윙윙거리는것이 한방망이 호 
되게 얻어맞은듯 했다. 며칠새 너무도 심하게 멀미를 했던것이다. 

《열물까지 싹 토해야 배사람이 된다우.》배에서 제일 나이많은 
항해부선장이 한 말이였다. 바다바람에 망가진 성대때문인지 그의 
책책하는 소리 는 알아듣기 가 힘 들었다. 〈〈견더내 야 하우. 제 아 
무리 힘들구 싫다고 해두 다른 뾰족한 수는 없수다. 바다에선 어디 
도망칠데두 없으니까.〉〉 

배 의 막내 이 며 유명한 장난꾸러 기인 강창길은 《형 님 , 아예 그런 
건 걱 정마오. 그런 노랑물( 열물)따윈 몽땅 토해두 하나 아까울 
게 없소. 내 이제 희귀한걸 구해주니까 그걸 날것대루 소금에 찍어 
잡숴 보시 오. 당장 기 가 뻗 치 면서 이 만큼… 커 진단 말이 요.》하 
고 익살을 부리며 말했었다. 

그새 유진이 입술은 꺼멓게 말라트고 얼굴은 누렇게 떠있었다. 단 
며칠새에 녹초가 되 여버려 인제는 무엇을 생각하는것조차 힘들었 
다. 하다면 그는 왜 배를 타는 모험을 했단 말인가?… 


159 



처음 유진은 녀인들 름에서 고기밸을 따는 일부터 시작했다. 쑥 
스럽고 면피스럽고 한없이 고달픈 일이였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 
썼다. 드살세기로 유명한 함경도녀인들이 아무 꺼리낌없이 그를 두 
고 떠들썩 웃어댈 때에조차 한마디 대꾸도 없이 씩씩거리며 고기밸 
만 땄다. 하지만 그 솜씨야말로 실로 어처구니없는것이였다. 밸을 
딴다는것이 예리한 칼날로 물고기의 속내장은 물론 대가리며 뒤잔 
등까지 쭉一쭉 찢어놓군 했던것이다. 

아낙네들이 혀를 내둘렀다. 

《아이구, 기차라. 저 아재 물고기백정 아냐?》 

《일복이 엄만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릴?!…》 

《아유, 저거 좀 보오. 물고기와 무슨 원쑤를 졌다구 저렇게 막 
란도질을 하오?》 

《아마 제 피로운 속마음을 칼질하겠지 뭐.》 

여기서 박유진은 웃음가마리였다. 녀인들이 종일 심심치 않게 짓 
씹다가 뱉아버려도 아까울게 하나 없는 낌파도 같은 존재였다. 그 
는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유진은 누가 뭐라고 입방아를 찧 
든 아무 대꾸도 없이 거의나 머리도 한번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여전히 머리를 짓숙인채 아무렇게나 고기 
밸을 따고있던 그는 돌연 칼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눈앞에 누군가 
와있는것이였다. 이 고장에선 보기드문 녀자구두 앞코숭이가 먼저 
눈에 띄더니 이어 긴양말을 신은 녀인의 미출한 다리와 거기에 휘 
감기는 코트자락이 그의 눈길을 잠아끌었다. 그는 천천히 눈앞의 녀 
자구두로부터 코트우에까지 눈길을 들고 쳐다보았다. 다음순간 부 
지중 바람새는 소리처 럼 가늘게 부르짖었다. 

〈〈아니, 누님이 어떻게?…》 

칼을 놓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그는 그만 물 
고기모양으로 입 만 벙 긋거 리 고있 었 다. 허 나 그것 도 한순간, 그 
는 별안간 가슴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자기의 더 럽고 꾀죄죄해 
진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민망스럽게 느껴졌던것이다. 하여 그는 
손에 잔뜩 게 발린 진득진득한 살점 들과 기 름에 버 물린 고기비 늘들 
을 벅벅 문지르며 흐느끼듯이 숨을 들이그었다. 


160 



그와 마주선 누이 박수옥의 두눈에서도 눈물이 끓고있었다. 가까 
스로 흐느낌소리를 참으며 누이는 아무말없이 그의 팔소매를 잡아 
끌었다. 한손으로는 입을 싸쥐고 고기밸따는 아낙네들이 놀라서 지 
켜보는 그 한복판으로 정신없이 그를 끌고갔다. 

《너 이게 무슨 꼴이냐, 응?!〉〉하고 마침내 선창가의 콩크리트 
담벽밑에 이르자 누이는 입으로 쓸어드는 쓰라린 눈물을 씹어삼키 
며 부르짖 었 다. 《나는 내 동생 이 이 렇 게 까지 너 절 해 진 줄은 정 말 몰 
랐구나, 응?… 조직에서 왜 여기 수산사업소로 내려보냈는지 아직 
까지두 모르구있으니… 이걸 어쩌문 좋아? 의것한 동생을 두었다구 
얼마나 자랑했다구. 글쎄… 그런데 이 꼴을 보게 되다니. 너 이러 
다간 정말 제일 가까운 사람들한테서까지 버림을 받게 돼. 그렇게 
버림을 받는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기나 해?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게 원지 알기나 하는가 말야?〉〉 

<(-))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쓰라린 아픔이, 수치감과 모멸감, 사무 
친 고통이 그를 옥죄 이고있 었다. 


다음날 사업소당위원장이 그를 찾았다. 

《유진동무, 동무 누이가 간절히 부탁하던데… 꼭 배를 타게 해 
달라더구만.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소. 바다는 세차거던. 
파도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겐 더 모질구 심술사납게 굴지. 포악하다 
할 정도루 …》 

〈〈타겠습니다.》하고 유진은 결연히 말했다. 《한번 죽음을 각 
오하구 타보겠습니다.》 

《아주 비장한 각오를 했구만.》당위원장이 미간을 찡기며 내뱉 
듯 말했다. 〈〈누가 동무더러 죽을데루 가라구 했소? 정말 어처구니 
가 없군. 유진동무, 잘 새겨들으시오. 우린 동무가 이 기회에 자기 
의 조국파 우리 나라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랄뿐이요.》 

«-)) 


161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유진은 눈길을 떨구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로는 누구도 그를 받자 하지 않는것이였다. 당 
위원장에게서 과업을 받고 문화회관 관장이 그를 끌고다니며 배사 
탐으로 만들어보자고 설득했으나 선장들은 마지못해 그를 대충 치 
떠보고는 머리를 가로젓군 했었다. 그 리유가 어쨌든지간에 문화회 
관 관장은 절대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엔 어데서 귀동냥해 
들었는지 박유진이 손풍금, 피아노에 대단한 소질을 가지고있고 로 
어, 영어를 비롯하여 다섯개 나라 말에 펄쩍 난다고 떠들어대기 시 
작했다. 이제 곧 먼바다어장인 오호쯔크해에 가게 되면 거의 매일 
같이 쏘련 어 부들이 며 어 로단속원들, 쏘련 해상경 비 대 원들 그리 고 일 
본인, 미국인어부들과도 자주 입씨름을 하게 될 뜨랄선의 선장들이 
였으므로 호기심이 부쩍 동하리라고 내다보았던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망망대해에서 볕파 바람에 시꺼멓게 타고 거칠 
게 트고 투박해진 그들은 마치 화장을 진하게 한 남자를 보는것처 
럼 눈이 찌글사해있었다. 

《필요없수다. 풍금은 없어두 한뉘 물고기를 잡구있수다. 그 
래 오호쯔크해 에 가서 물고긴 잡지 않구 딴따라춤만 추라오?》 
문화회관 관장도 차츰 진이 빠지는듯싶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구 
레나룻이 시꺼먼 이 배, 56호뜨랄선의 선장 김태규에게로 그를 데 
리고가면서 걸음마다 꺼지게 한숨을 내긋군 했다. 김태규야말로 수 
산사업소의 으뜸가는 선장들중의 한사람이며 사업소에서 두번째 로 
력영 웅이 라고 먼저 설명했다. 

《세 상에 유명한 김 학순로력영 웅은 알겠지 ?… 아, 거 신 문파 방 
송에랑 자주 나오는 우리 영웅선장 얘길 못 들어봤소?… 챠,이렇 
다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전국수산부문열성자대회때 얼마나 높 
이 치하해주셨다구 아직 그런것두 모르다니?…》 

박유진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몹시 피로했다. 사람들 
이 그를 찌글서 볼 때마다 몸이 졸아드는듯 했었다. 인제는 누구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소문 
난 영 웅선 장이라 해 도 그에 겐 흥미 가 없 었 다. 

문화회관 관장이 그의 기분따위엔 관계없이 계속했다. 


162 



《헌데 김학순영웅선장은 어데 출장을 가구… 대신 그에 못지 않 
게 유명한 태규영웅선장은 있단 말이요. 시꺼먼 수염이 여기까지 
(그는 한손으로 귀언저리를 가리켰다. ) 난데다가 성미가 얼마나 드 
센지… 아, 작년엔 사업소적으로 수산물 1만톤고지를 맨처음 점령 
해서 소문이 났지. 아까두 말했지만 김태규선장이라문 모르는 사람 
이 없소. 태규선장은 우리 사업소의 두번째 로력영웅이거던. 아, 
이봅세, 지금 내 말을 듣소, 먹소?》 

별안간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왜 풀이 죽어서 그러오? 그런 꼴을 보문 이제 그 수염쟁이 태 
규선장이 또 뭐라구 하겠소? 이 문화회관 관장이 떨떨하다구 하지 
않겠는가 말이요? 김태규자기를 어떻게 보구 이런 얼뜬한 서생을 데 
려왔나 하구 야단할게 아니요?…》 

아닐세라 귀밑에까지 시꺼먼 구레나룻이 한벌 덮여있는 김태 
규선장은 써레기담배를 말며 박유진은 보지도 않고 몰풍스럽게 물 
었 다. 

《여긴 어째 왔소?》 목소리도 배고동소리같이 웅장했다. 《뭐 
라구? 아니, 거기선 지금 무슨 혀아래소릴 하구있는거요? 넨장, 좀 
크게 말하오. 바다에 선 그런 모기소리 가 귀 에 들리 지 도 않소 !》 
그런데 박유진은 아직 입도 벌리지 않고있었다. 그저 될대로 되 
라! 하고 고개를 외로 틀고있었을뿐… 이것이 김태규선장의 분기를 
터쳐놓은것 같았다. 그가 눈꼬리를 치뜨더니 급기야 우뢰소리같이 
고함을 질렀다. 

〈〈창길이 ! 냉큼 이리 와!》 

박유진은 흠칠했다. 당장 무슨 변이 날것 같았다. 그러자 저쪽선 
수포대에서 열심히 손짓을 해가며 무어라고 떠들고있던 몸이 갱핏 
한 청 년이 수평 로라우에 뛰 여오르더 니 미 끄러 지 듯이 달러 왔다. 

〈〈선장동지!》 

그가 군인들처럼 거수경례를 붙이며 멋들어지게 보고를 하려 했 
으나 태규선장은 성가신듯 손을 홱 내저었다. 

《빨리 기술부선장을 찾아서 우리 배사람들 몽땅 다 모이게 하라 
구, 갑판우에!…〉〉 


163 



〈〈알았습니다,선장동지!》 

배 에서 제 일 나어린 강창길은 알고보니 태 규선장의 련락병 격 이였 
다. 그는 고양이 처 럼 날렵 하게 권 양기 와 쇠바줄통구리 들을 피 해 미 
끄러지듯 달려갔다. 그가 선미의 조타실로 뛰여드는것을 보며 박유 
진은 으시시 몸을 떨었다. 이제 태규선장이 무슨 복잡소동을 피우 
려는지 전혀 짐 작할수 없기때문이 였다. 

그런데 30명 전체 선원이 정 렬해선 앞에 나서던 선장이 한바탕 줄 
기침을 터치였다. 한번 시작하자 끝없이 이어지는 요란스러운 발작 
이 였 다. 어 로공들은 눈을 내 려뜨고 이 마살만 찌 프리 고있 었 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기침이 멎자 선장이 말을 
시 작했는데 박유진으로서 는 상상도 못한 뜻밖의것이 였다. 

《오늘부터 우리 배에 한 식구 더 늘었소. 자, 다들 보오. 외국 
류학도 했구 무역성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보던분이요. 이름은… 뭐 
랬드라? 아, 박유진이라구 했지. …》 

놀라운 일이 였다. 박유진은 선장에게 아직 자기 이름을 대주지 않 
았던것이다. 선장도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었다. 

〈〈다들 친동기처 럼 잘 대해 줘 야겠소, 에?! …〉〉그가 계 속하는 말 
이 였다. 《이걸 그저 이 김태규선장의 말이라고만 생각해선 안되오. 
사업소당위원회에서 주는 특별분공이란 말이요,이 평양어르신 
을 몇달사이 에 우리 랑 꼭같은 배사람으루 만들라는 특별분공! … 물 
고기비린내가 물씬물씬 나는 배사람으루다 말이요. 무슨 말인지 알 
겠소오?》 

《예, 알겠습니다.》 

시들한 대답… 

박유진은 놀랐다. 그러니 태규선장은 모든것을 다 알고있었던것 
이다. 아마 사업소당위원장으로부터 따로 과업을 받았는지도 모른 
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남들이 다 마다하는 박유진을 받아들였을것 
이 고 그때문에 잔뜩 화가 났을것 이 다. 

박유진은 자기의 짐작이 틀림없다는것을 곧 확신하게 되였으니 바 
로 그가, 〈〈평양에서 온 어르신》을 잘 돌보라던 김태규선장이 처 
음부터 박유진을 무섭게 다궂기 시작한것이다. 갑판청소부터 시켰 
164 



다. 며칠후 원양어로선대가 무어지고 항해가 시작되여 박유진이 당 
장 배멀미로 쓰러질 지경이였으나 사정보지 않았다. 

강창길이만이 나이를 초월하여 그의 친구가 되 였다. 처음부터 깍 
듯이 형님으로 모시며 자주 돌보군 하는데 어쩐지 좀 깔보는 투도 
없지 않았다. 

《형님두 참, 그렇게 약골인줄 알았으면 고토리검사부터 할걸 그 
랬소. 뭐이오? 아니, 형님은 아직두 그런 말 못 들어봤소? 핫하!… 
그건 말이오, 옛적부터 처음 배를 타는 사람은 무조건 고토리검사 
를 하게 돼있단 말이 오. 그걸 검 사해 봐야 바다사람이 되 겠는지 아 
니문 마른 낙지가 되겠는지 다 안다구 하오. 하지만 형님은 저 一기 
높은데서 내러왔다구 해서 그걸 검사하는것은 그만두기로 했소. 선 
장이 알았다간 눈알이 쑥 튀여나오게 줄욕을 퍼부을게 뻔하니까… 에一 
그래두 그것부터 검사해봐야 할걸 그랬어.》 

그의 험하고 지꿎은 통질도 박유진에겐 아무런 자극도 도움도 되 
지 않았다. 그저 멀미때문에 피를 토하다가 죽을것만 같은 생각이 
들군 하였다. 그렇게 모진 고통속에서 닷새가 지나갔다. 모든 고 
통을 다 초월한 마지막모지름… 몽유병에 걸린것처럼 자다가는 일 
어나고 일어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어떤 뜻모를 말을 정신없이 중 
얼 거 리군 했었다. 얼마후엔 또 죽은듯이 잠들어버리 고…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오늘은 드디여 극한점을 넘긴것 같 
다. 지옥에서 그를 데리러 왔던 사자도 너무 기다리기에 지친 나머 
지 슬그머 니 꽁무니 를 사렸 는지도 모른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을 뜨고 그 무 
엇엔가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 
에 떠오르고 그들의 엄 한 꾸중파 절절한 부탁, 눈물어린 애 원의 목 
소리들이 아득히 먼곳에서 은은한 종소리처럼, 때로는 목메는 통곡 
처럼 울려오고있었다. 안해와 딸의 눈물젖은 목소리로부터 시작하 
여 수옥누님 과 매 부 장정환의 몰풍스러 운 욕설과 지 탄… 

다음순간엔 아다 미헬쓴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다는 대 학때 에 그 
러했듯이 유진 이 귀 가에 대 고 가극의 아리 아를 불러주고있다. 가만 
들어보니 챠이꼽스끼의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오네 
165 



긴에게 보내는 따찌야나의 편지》의 한구절이다. 

딴 사람?… 아니예요 이 세상의 다른 

아무에게도 이 마음 바칠수는 없어요! 

그러 던 아다 미헬쓴도 인제 는 자기 의 사랑을 찾았을것 이 다. 인제 
는 눈물로써가 아니라 행복의 미소를 머금고 그 따찌 야나의 아리 아 
를 부르고있을는지도 모른다. 

아다에 이어 다음에는 하리꼬브공대의 여러 나라 동창생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오, 조선의 렌스끼! 뭐, 인젠 태평양에서 차이꼽스끼의 아리 
아를 부른다면서?…》 

떠들썩한 비난과 경멸의 웃음소리 … 허나 그것도 한순간, 야지러 
진 그 웃음소리 들이 홀연 바람에 불린 연기처 럼 날아가버린다. 벼 
락치는듯 한 소리가 터진것이다. 그것은 치미는 분노로 몸을 떨던 
남일부수상의 웨침소리이다. 그 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아프게 후려 
같긴다. 

〈〈동무가 뭐길래 감히 나라가 망하니 뭐니 한다는건가. 도대체 누 
가 그따위 허튼 나발을 불라구 충동질을 했어, 엉? 누가, 누가 그 
렇게 하라구 했는가?》 

그때 유진은 남일부수상이 그렇듯 무섭게 변모된것을 처음 보았 
다. 판문점에서 정전담판을 할 때 그처럼 위엄차게 미국놈들을 다 
불러댔다고 소문이 짜하게 났던것이 결코 우연치 않았다. 

그것 은 남일부수상의 방에서 있은 일이 였다. 그는 한바탕 유진 이 
를 체조시키 고나서 유진이따위 는 말할 대상도 안된다는듯 앞탁에 있 
는 전화기 들중의 하나를 와락 끌어갔다. 

〈〈동무, 이 전화를… 거 있지?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에 련결해주 
오.〉〉 

유진은 숨을 죽였다. 남일부수상이 박용국부장에게 무어라 말할 
것 인지 상상해보느라니 가슴이 후두둑했다. 박용국부장도 도고 
하기 이를데없는 사람이다. 또 그의 등뒤에는 박금철이 있다는것을 
166 



유진은 잘 알고있다. 아닐세라 남일이 쎄브문제와 관련하여 당신 뭣 
때문에 무역성의 젊은 사람들을 자꾸 꼬드기고 내세우고있는가, 그 
러는 본심이 무엇인가고 따지고들자 그쪽의 어성도 차츰 더 높아지 
는것이 알렸다. 

남일이 벼락치듯 했다. 

〈〈동무, 누가 동물 키워줬구 누가 품들여 공부시켜줬기 에 감히 그 
따위 허 튼소리 를 줴 치구있는거 요, 영 ?! … 뭐 , 뭐 라구?… 아니 , 
내 가 동물 키 워줬다구 말하는가?… 물론 동무가 제3차, 5차 세 
계청년학생축전에 대표단단장으루 갈 때 내가 추천하구 적극 지지 
했던건 사실이요. 하지만… 누가 그따위걸 가지구 재세하는줄 아는 
가? 난 오히려 그걸 두고 후회하구있소. 내가 사람을 바로 보지 못 
했거던. 그렇게 골통이 비뜰구 썩어버릴줄이야!… 우리 수령님께서 
외국류학도 시키구 당의 요직에도 앉혀주셨는데 인젠 그 하늘같은 
은덕두 다 망각해버렸으니… 뭐, 쎄브에 들지 않으면 우리 나라 경 
제 가 다 망한다구? 뭐 , 우리 인민 이 다 굶어죽는다구?… 도대 
체 누구한테서 뭘 얻 어먹구 그따위 잡소리 야? 수령 님 께서 고생고생 
다 하시며 애써 키워오신 우리 나라 자립적민족경제라는걸 정말 동 
무가 모르는가? 그래 쎄브가 우리 나라 민족경제를 일으켜세워주었 
는가? 쎄브가 우리 인민의 밥상에 비린 물고기 한마리라도 올려놔 
준적이 있는가 말이요, 영?!…》 

저쪽에서 뭐라고 한 모양이였다. 그것도 당국제부장이라는 권위 
를 가지고 을러멨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성급히 송수화기를 바꾸어 
쥐는 남일의 두손이 후들거렸다. 그는 주먹을 휘둘러 눈앞의 대방 
을 후려갈길 듯 몰풍스럽 게 웨 쳤다. 

《뭐 , 뭐 라구?… 언제부터 대감님행세를 하면서 거 들먹거 린다 했 
더니, 덜돼먹게!… 자길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수령님의 은덕두 모 
르구 인제 와선 당의 로선까지 감히 시비질을 해? 똑똑히 들으라구, 
은혜를 모르는 그런 놈은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해! 이건 우리 당력 
사의 교훈이야. 도대체 누굴 하내 비처 럼 섬기면서 그따위 개 나발이 
야?!…》 

그것은 박용국이뿐아니라 박유진이 가슴에도 대못을 박는 질타였 
167 



었 다. 

그날 남일부수상이 격노하여 터치던 노성이 지금도 여전히 우뢰 
소리처럼 그의 귀전을 계속 두들겨대고있다. 유진은 귀구멍을 틀어 
막지 않을수 없었다. 

한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적막, 시꺼먼 
어둠… 아니, 날이 어두워서가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유진은 눈 
을 꽉 감고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울려오는 이상한 소음에 그는 저도 모르게 귀구멍 
을 막고있던 손을 내렸다. 갑판우에서 술한 사람들이 왁자하니 떠 
들어대고있었다. 갑판이 쿵공거렸다. 어데론가 뛰여가고 뛰여오 
는 발자국소리들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고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기여내려 끙끙거리며 무릎우에까지 올라오는 
무거운 로씨야제고무장화를 신기 시작했다. 이것만은 송곳보다 날 
카로운 망챙이가시도 뚫지 못한다면서 태규선장이 그에게 직접 골 
라준것 이였다. 

이윽고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장화때문에 곱절이나 더 무거 
워진 다리를 질질 끌다싶이 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안 
개에 싸인 해가 열은 검누른 구름의 갓을 쓴채 수평선상공에서 흐 
릿하니 아물거리는것이 보였다. 멀고먼 바다길을 헤여오느라 너무 
지쳐 졸고있는듯 했다. 

선실지붕우에서는 록음기가 저 혼자 돌아가며 건드러진 노래를 뽑 
고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엔 아랑곳하지 않고 배전에 몰 
켜 악一악 고아대고있었다. 살펴보니 배가 커다란 얼음장틈에 끼워 
있었다. 봄철부터 북쪽의 베링그해에서 많은 얼음장들이 밀려내려 
오기 때문이다. 

〈〈창길이, 자, 이것두 받으라!》 배전에 몰켜있던 사람들속에서 
권영 길이라는 제 대군인포수가 학가대(배들끼 리 서 로 불지 않도 
록 밀어줄 때 쓰는 장대기. 끝에 갈구리가 있다. )를 던지며 책 
책하는 소리로 웨쳤다. 〈〈자, 다같이 힘껏 밀자구. 하나, 둘… 영 
싸! 一》 


168 



배전에서는 얼음장을, 얼음장우에 내린 청년들은 배를 학가대로 
밀기 시작했다. 록음기의 흥그러운 배노래소리도 더 높아졌다. 


어이여 차 어이여 차 어이여 차 어이여 차 
당겨라 후리여라 

고기떼 몰려온다 명태떼가 몰려온다 
한번만 후려도 한배가 찬다네 
어이여차 당겨라 당겨라 후리여라 


사람들은 여전히 배와 얼음장을 갈라놓으러고 젖먹던 힘까지 다 
내고있었다. 그런데 구령에 따라 용을 쓰던 사람들이 갑자기 맥을 
놓고말았다. 

《창길이, 왜 밀지 않아?》 

권영길이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러 어로공들이 옷으며 저 
마끔 떠들기 시 작했다. 

《너무 힘을 쓰다가 줄방귀가 터진것 같네.》 

〈〈그게 아니요. 물개한테 홀리웠어.〉〉 

〈〈정 말?… 여, 창길이 ! 헛눈 팔지 말라!》 

《야, 그러다 물에 빠질락그래?》 

박유진은 겨우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배전예까지 다가갔다. 아무 
도 그에 게 주의 를 돌리 지 않는것 이 다행이 였다. 모든 사람들이 한 
얼 음장에서 다른 얼 음장에 로 뛰 여건너 가는 창길 이 만 지켜보고있 
었다. 창길이가 건너뛰여간 그 얼음장우에서는 물개 두마리가 한가 
스레 서로 비비적거리며 자기들에게로 육박해오는 창길이를 향해 눈 
을 꺼벅거리고있었다. 

드디여 창길이가 어느 한 물개의 대가리를 겨누고 학가대를 힘껏 
내리 쳤다. 정一 하는 이상한 재채기 소리 … 유진은 저 도 모르게 눈 
을 딱 감고말았다. 끔찍한 일 이 였다. 언젠가 창길 이 가 으시 대며 하 
던 말이 또 생각났다. 

《형 님一 물개 는 말이 요, 수것 이 암것 보다 아주 수가 적 은데 다가 
그냥 봐선 암수를 분간하기가 영 힘이 드오. 손으로 슬슬 만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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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내 이제 물개를 잡아다가 형님 
한테 직접 보여주겠소. 아아一 뭐 신비한건 아니요. 거 수것의 거 
시기를 있잖소? 이렇게 슬슬 만져보다가 거 호비칼같은걸루 족싹! 
하고 도려내문 되오. 그런 다음 그놈한텐 〈야 이것아, 인제는 그 
지독스러운 암것들 단련두 더 안 받게 됐으니 내게 고맙다구 인사 
나 해 라!〉 하구선 물에 슬쩍 차넣 는단 말이 요.》 

유진은 창길이가 하던 그 말을 상기하자 차마 눈을 뜨고 볼수가 
없었다. 옆의 사람들이 야단스레 옷고떠드는것으로 미투어 창길이 
가 지 금 그 스산한짓 을 하고있 는것 이 분명했다. 

불현듯 속이 메숙메숙해나기 시작했다. 한손을 들어 입을 막으며 
몸을 떨었다. 그러는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선실지붕우의 록음기 
에서는 건드러진 타령조의 노래가 더 높아지고있다. 

한배 가득 고기잡아 기 쁨속에 돌아가세 
어이여 차 당겨 라 어이여 차 후리 여 라 


갑자기 유진은 와뜰 놀라며 눈을 떴다. 김태규선장이 바로 그의 
귀전에서 우뢰 같은 고동소리 를 내 질렀던것 이 다. 

〈〈야, 너 죽지 못해 몸살이 났어? 당장 돌아오지 못할가?!〉〉 
왁자하니 떠들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얼음장우의 창 
길이도 몸을 떨었다. 감히 누구의 엄명이라고 그가 언감 불복하겠 
는가. 

《예, 예. 선장동지, 알았습니다.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며 얼음장을 건너뛰여 배에로 오는것 
이 어렴풋이 바라보였다. 

《넨장!… 내 저놈의 버르쟁이를 어떻게 떼준다?…》 김태규 
선장의 얼굴은 여전히 험악했다. 《헌데 님자네들은 여기서 뭐가 그 
리 좋아서 웃고떠 들며 야단인가?! … 그래 저 창길이녀석 이 사고를 
쳐서 물귀신이 되는걸 제 눈으루 봐야 정신을 차릴셈이요?!…》 
모두가 눈길을 내리깔고 비실비실 뒤걸음쳐갔다. 그러나 더는 추 
궁이 뒤따르지 않았다. 태규선장이 야단스럽게 기침을 짖기 시작했 
170 



던것이다. 그렇듯 모진 기관지염에도 불구하고 배고동소리같은 목 
청이 쉬지 않는것이 놀라왔다. 

그의 기침은 분명히 약 1분간의 주기가 있는듯 했다. 숨넘어 
가는것 같던 기침이 돌연 멎었다. 김태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있 
는 사람들을 감때사나운 눈길로 둘러보다가 비로소 자기 눈앞에 서 
있는 유진이를 알아본듯 했다. 처음엔 약간 놀라는듯 하더니 별안 
간 눈살을 잔뜩 찌프렸다. 

《언제 일어났소?》 

《예?》 

〈〈언제 일어났나 묻지 않소?》 

《예.》 

〈〈차,이런?》 

《예, 이자, 아니, 아까 일어났…》 

박유진은 자기가 허둥거리는 꼴이 한없이 창피스러웠다. 그런데 
도 태규선장은 여전히 도끼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그러니 인젠 젖떼기가 끝났다는거겠소?》 

〈〈예?!》 

《월 얼뜬한체 하면서 그러오?〉〉하고 그가 또 배고동소리같이 내 
질렀다. 〈〈내가 무슨 외국말을 했소? 배멀미가 끝났으면 일을 시 
작해야 할게 아니요? 그러길래 내 첨부터 말하지 않았소. 물고 
기 비린내가 물씬물씬 나는 배사람이 되여야 한다구 말이요. 당장 들 
어가서 고무옷부터 갈아입소. 그리구 갑판청소두 해야지, 에?!》 

상?!…》 

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웬일인지 목이 끽 메이는것을 어쩔수 없 
었다. 대신 록음기에서는 남성민요가수가 여전히 건드러지게 소리 
를 뽑고있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은 달이 밝아 좋구요 
심해의 깊은 밤은 고기 많아 좋다네 

그를 눈여겨보던 태 규선장이 신경 질을 부렸다. 


171 



《참, 책상물림들이란… 왜 갑자기 울상이 돼서 그러오? 내가 뭐 
못할 말을 했소?》 

«•••» 

여전히 박유진은 입을 열지 못했다. 불현듯 가슴속에 치밀어오르 
는 야릇한 반발심과 까닭모를 수치감 그리고 쓰라린 외로움에 속이 
아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13 


박유진은 선장의 지시대로 고무옷을 갈아입었다. 머리엔 물개모 
자도 썼다. 사업소로보창고에 제일 흔한게 물개모자라고 한다. 겉 
은 팟팟하고 아이들의 뜨개실모자처럼 볼모양없이 그저 둥그스름했 
지만 안속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렇게 차리고 나선 그를 보고 강 
창길은 감탄을 련발했다. 

《아,영화 〈갈매기호청년들〉의 주인공이 우리한테 찾아온게 
아니요? 정말 신통하지? 저렇게 그냥 찌뿌둥해있지만 말구 좀 벌 
쭉벌쭉 웃기 만 해두 얼마나 멋있겠소,에? 정말 기막힌 배 우감 
이 아니요?!…》 

그런데 누구도 그의 말에 공감을 표하지 않았다. 예술영화의 주 
인공이 아니라 마치 난데없는 로씨야사람이 배에 오르기라도 한것 
처 럼 두눈이 째긋해서 바라볼뿐이 였다. 그 리유를 태규선장은 이 렇 
게 표현했다. 

〈〈창길이, 너무 오지랖넓게 나서지 말아. 우리한텐 배우감이 아 
니라 어부감이 필요한거야!〉〉 

그 말을 풀이해보면 박유진이 앞으로도 영영 배사람이 못된다고 
단정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유명한 영웅선장이 정말 너무하지 않 
는가?!… 그때에도 박유진은 그 어떤 모욕감에 오금이 저려나는것 
을 억지로 참고있었다. 

이렇듯 피로운 날과 날들이 흘러가던중 마침내 유진이 자기의 금 
172 



새를 보여줄 그날이 왔다. 그것은 뜨랄선 다섯척으로 무어진 청진 
수산사업소의 원양어로선대가 일본의 쯔가루해협(일본본토와 혹 
까이도사이의 해협)을 빠져 태평양쪽으로 나갈 때였다. 

밤이였다. 

박유진은 저 멀리에서 아물거리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눈 
두덩을 아프게 문지르고있었다. 무엇때문에 청진에서 곧장 우로, 
싸할린섬 동북쪽으로, 세계의 3대어장의 하나인 오호쯔크해로 
북상하지 않고 동쪽으로, 조선동해를 가로질러 일본의 쯔가루해협 
을 통과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태평양으로 빠져 쏘련의 깜차뜨까반 
도쪽으로 올라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실은 우리의 원양어로선 
대가 대양에로의 새로운 항로도 개척하는겸 고급어족이 많은 깜챠 
뜨까의 동부 즉 빠라무쉬르섬과 숨슈섬근처의 태평 양어장으로 직행 
하기 위 한것 이 라는것 을 후에 야 알게 되 였다. ) 

멀리서 개짖는 소리 가 났다. 쯔가루해협기슭의 일본항구들이나 
어촌들에서 등대의 불빛은 물론 갖가지 색갈의 네온등빛과 움직이 
는 자동차의 전 조등까지 다 구별 해볼수 있 었다. 

그밖에 바다의 수면을 할으며 급히 마주오는 불빛도 있었다. 일 
본해상보안청 의 경 비정인듯실었다. 그러 나 경 비정보다 앞서 쾌 
속으로 달려오는 배가 있었다. 해상순찰정인듯 했다. 거기에서 내 
쏘는 탐조등의 불광이 갑판우에 나와선 사람들의 눈을 때렸다. 

알고보니 그것 은 일본해 상보안청 의 배 가 아니 라 미해 군순찰정 
이 였다. 순찰정 의 확성기 에서 미국식영 어 발음으로 웨치는 소리 
가 거칠게 울려나왔다. 거듭 반복되는 웨침 … 허 나 배 에는 거기 에 
대답을 줄 사람이 없었다. 

강창길이 달러왔다. 

《형님,선장동지가 빨리 오라오.〉〉 

그러리라고 생각했었다. 박유진은 비로소 자기가 할 일이 생겼다 
는것을 깨달았다. 강창길을 따라 달려가니 선장은 항해부선장파 같 
이 조타실에 서있었다. 

선장이 전령관(배안에서 통신실, 기관실 등 여러곳에 지시를 주 
는 기구)에 대고 말하고있었다. 


173 



〈〈무선수, 선대에선 답이 왔는가?》 

《예, 놈들이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알아보랍니다.》 

다섯척의 뜨랄선중 선대를 지휘하는 사업소 부기사장은 김학순 
선장의 51호에 타고있다. 그 배는 다섯척 뜨랄선의 맨 중간위치 
에 있고 제일 앞장에는 지금 김태규선장의 56호가 나아가고있는 
것 이 다. 

《그럼 선 대장에 게 알리 라,이 제부런 내 결심 대 로 한다고.》 
《알았다. )) 

전령관에서 머리를 든 태규선장은 방금 들어선 박유진에게로 몸 
을 홱 돌렸다. 

《저것들이 지금 뭐라고 하오?》 

《예, 국적을 밝히라고 합니다.〉〉 

《국적 을 밝히 라?〉〉선장이 씨근거 리 며 소리쳤다. 《그래 저 
것들 눈은 죽은 생선의 눈깔들인가? 우리 배가 달고가는 기발두 못 
보는가 말이야, 우리 공화국기를?!… 이건 저놈들이 우리한테 
도발을 걸구있는거요, 도발을!… 그러니 유진동무, 저것들한테 
내가 한 말을 그냥 그대루 전해주오. 〈네놈들 눈깔이 멀었는가. 
우리 배우에 단 기발을 보라!〉 하구 말이요.》 

《예.》 

유진은 선장이 전령관옆에 있는 확성기마이크를 내밀어주는것 
을 자기 에게로 가까이 끌어갔다. 그리 고는 숨을 활 내긋고 그새 생 
활에서, 기억에서 어지간히 멀어져가던 영어단어들을 재빨리 속으 
로 더듬었다. 다음순간 히쭉 웃고나서 자신만만하게 웨쳤다.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뜨랄선 제56호 
의 선장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뭐 라구 했소? 내 가 말한 고대루 했소?》 

웬일 인지 태 규선장은 그를 못마땅해하는 눈빛 으로 보고있 었다. 
《예, 선장동지. 제가 좀 설명을 달아주었습니다, 잘 알아들 
을수 있게.》 

〈〈뭐一설명?》 

하지만 선장은 더 따져묻지 못했다. 저쪽에서 더 높은 악청이 날 
174 



아왔던 것이다. 

선장이 또 물었다. 

〈〈뭐라구 해?〉〉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가고 묻습니다.》 

《뭐?!》그새 구레나룻이 시꺼매진 선장의 얼굴은 차츰 더 사납 
게 푸들거 리 기 시 작했다. 〈〈국제적 으로 공인되 여있는 해상통로 
를 가는데 뭐가 어쩌구 어째? 제깐놈들이 감히 우리한테 그따위 말 
투로 따지 구들어?… 오라질 놈들!》 

그러나 그때 박유진은 그의 격앙된 심리와는 관계없는,그 어떤 
국제적인, 외교적인 관례만을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오늘 두 
번째로 히쭉 옷었다. 이어 확성기에 대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소리 
쳤 다. 

《다시 말한다. 우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원 양어 로선대 이 다. 
뜨랄선들이 가면 어데로 가겠는가. 고기 잡으러 간다.》 

다음순간 그는 숨을 활 내그으며 한결 청을 높여 미국식 영 어로 시 
처럼, 노래처럼 자랑스레 웨쳤다. 

〈〈위 어 고우잉 투 더 폐씨픽 ! …》 

마음속에서 불시 로 터져 나온 장쾌한 선언이 였다. 

《태평 양으로 나간다! …》 

박유진은 가슴이 태근해지는것을 느꼈다. 방금 자기가 조국의 명 
예 를 걸고 소리 높이 , 자랑스럽 게 웨쳤다는 자부심 으로 하여 그의 얼 
굴은 불그레하게 달아오르고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별안간 김 
태 규선 장이 확성 기마이 크를 획 잡아채 가는것이 였 다. 

〈〈이자 뭐라구 했소?〉〉 

숨소리도 거칠게 따져묻는 소리였다. 아마도 박유진이 좀전에 자 
기가 한 말을 좀더 부드럽고 정중하게 다돔어 전달했음을 느낀것 같 
았다. 박유진은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전률을 느끼며 자기가 영어 
로 한 그 말을 다시 우리 말로 바꾸지 않을수 없었다. 

《뭐? 뭐가 어쨌어?》 태규선장은 거의나 고함지르듯 했다. 

《동문 어 一 어째서 내가 하는 말만 고대루 외 우라는데 제멋대루 하 
는건가,에?》 


175 



그들은 지금 모든 배사람들이 다 전령기에서 울려나오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있다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무지막지한 김태규선장은 자기의 우렁찬 그 배고동소리를 멈추지 않 
았을것이다. 

《사실 전…》하고 박유진은 떠듬거리며 변명했다. 《저것들이 
더잘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느라구…》 

《설명을?! )) 태규선장이 그의 말허리를 자르며 급기야 노성을 
터뜨렸다. 〈〈누가 그렇게 하라구 했어, 누가? 동무가 뭐길래 저것 
들한테, 저 쳐죽일 양코배기들, 철천지원쑤놈들한테 그따위 설 
명을 해준다는거야. 저것들이 언제 우리의 설명을 듣기나 했는가. 
우리한테 뭘 물어보기라두 했는가 말야, 영?!…》 

〈〈선장동지, 난…》 

선장은 그에게 입을 벌릴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문 놈들한테 우리가 빌붙는것처 럼 보일게 아닌가? 그 
래 그만큼 오탠 세월 외국에 가서 배워왔다는게 그런것두 몰라? 민 
족적자존심두 없어? 야, 이 쓸개빠진 놈아?!一》 

그것은 박유진이 여태 받아본적이 없는 가장 모멸적인 그리고 가 
장 치욕적인 욕설이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난 돌맹이처럼 날아 
와 그의 마음을, 그의 심장을 때렸다. 박유진은 저도 모르게 뒤걸 
음쳐 갔다. 그러 다가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해 비칠거 렸다. 

《선장동무, 그건 정말 너一너무합…》 

《뭐가 너무해? 그래두 뭐 할소리가 있다는거요?》 

《난… 그래두 자一잘하느라구 했는데 … 서一선장동문 왜 그다지 
두 사람을…》 

그는 말을 떠 듬거 렸 다. 머 리 칼까지 저 려 나는듯 했다. 금시 자기 
의 마음속에서 끓고있는 분노를 다 쏟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선 장동무, 그래두 나는 한때 무역성 의 일 군이 였 습니 다. 그 
런데두 선장동진 … 너무 사람을 허一허깨비처 럼 보면서 모욕적으 
투…》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랍게도 태규선장은 이미 그의 말을 
듣고있지 않았다. 머리를 획 돌려 전령기에 대고 소리치고있었다. 

176 



〈〈무선수, 선대장에게 알리라. 지금 놈들의 직승기에서도 불 
빛신호를 보내고있다. 우리가 멎지 않으면 사격하겠노라구 위협하 
고있다. 하지만 우린 그냥 전진한다. 수신 !》 

〈〈알았다. )) 

그때 에 야 박유진 은 머 리우에 서 사납게 회 오리 바람을 일 으키 고 
있는 직승기의 발동소리며 탐조등의 거센 불광이 낌벅거리는것을 보 
았다. 미 군직승기인 것 같다. 점 령 군인 미 군이 일 본해 협까지 통 
제하고있는것이다. 앞에서는 여전히 미군순찰정이 팽이처럼 물 
결을 차고 돌아치면서 기관총을 겨누고 사격태세를 취하고있다. 

또다시 머리우에서 낌벅거리는 강렬한 불빛 … 방금 선장이 말하 
던 위협적인 불빛신호이다. 하건만 외국어에 능통한 박유진도 그 불 
빛언어만은 알지 못한다. 

《정 지 하라, 불응하면 쏘겠다.》 

미해군순찰정의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웨침이였다. 우에서는 불 
빛신호로, 앞에서는 확성기로 위협하고있다. 

선장앞의 전령기 에서 도 무선수의 목소리 가 울려나왔다. 

〈〈선장동지!》 

〈〈무슨 일인가?〉〉 

《선대장동지 가 절대 로 멎 어서 지 말구 계 속 앞으로만 나가라고 합 
니 다.〉〉 

《좋다, 알겠다.》 

선장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을 폈다. 불시로 그의 키가 쑥 커 
지는듯 했다. 

《포수, 내 말을 들으라. 사격 준비됐는가?》 

그쪽에서 권영길이 손짓하는것이 보였다. 

〈〈줌다, 순간도 놈들한테서 눈을 떼지 말라. 정황을 봐가다가 놈 
들이 여차직하면 기관총부러 박살을 내라. 때를 놓치면 안된다. 알 
겠 는가?!》 

대답소리는 없었다. 다시 선수쪽에서 권영길이 손짓하는것이 보 
였다. 《알았습니다!〉〉라는 대답이다. 이어 권영길이 적순찰정 
의 기 관총을 겨누고 76미 리고래포신을 빙 빙 돌리 는것 이 바라보 
177 



였다. 그옆에서는 몇사람이(거기엔 배의 막내인 강창길이도 끼 
워있었다.) 주먹질을 하며 뭐라고 소리치고있었다. 적들도 그것을 
환히 보고있을것이다. 

머리우에서는 직승기가, 앞에서는 가랑잎처럼 파도를 타고 넘는 
미해군순찰정이 계속 탐조등을 비쳐대고있다. 강렬한 그 불빛으로 
하여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김태규선장이 전령관에 대고 또 소리쳤다. 

《기관실, 기관속도 얼마인가?》 

《400이 다. » 

《500으로 높이라. 최고속으로!》 

〈〈알았다. )) 

배가 요동쳤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속도를 높였던것이다. 어 
데선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철판으로 된 뜨랄선이 적순찰 
정을 맞받아 무섭게 돌진해갔다. 단숨에 들이받아 짓부셔 버리려는 
시도였다. 

다음순간 박유진 은 적 순찰정 의 확성 기 에 서 기 괴 한 비 명 소리 가 터 
져나오는것을 들었다. 

〈〈오우,갓맨!一》(오, 하느님!一) 

급기 야 적순찰정도 배머리를 번쩍 들며 요동을 쳤다. 그리고는 뜨 
랄선의 철갑이 코앞에까지 들이닥치 는것 을 요행 피 해 옆으로 빠 
져나갔다. 탕탕탕탕… 적순찰정에서 퍼르끄레한 배기가스가 재채기 
소리 를 터 뜨리 고 배밑 에서 는 싯허 연 물갈기 가 세차게 뒤번져 졌다. 

뒤쪽의 다른 뜨랄선들도 속도높이 따라오고있었다. 모든 사람들 
이 말 한마디없이 제 할일들을 했다. 사실은 무슨 할일도 별로 없 
었지만 부지런히 뛰여다니고있었다. 머리우에서 소란을 피우며 돌 
아치는 적직승기와 거기에서 내쏘는 탐조등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 
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뜨랄선56호는 여전히 쯔 
가루해협의 거센 물결을 헤가르고있었다. 검은 물결이 사정없이 뒤 
번져 지 며 좌우로 밀 려갔다. 

별안간 눈앞이 새까매졌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한순간 섬찍 
한 생 각도 없지 않았다. 알고보니 머 리 우의 적직 승기 가 내 리쏘던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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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등이 불시 에 꺼져 버 린것 이 였다. 미국놈들이 하는수없이 물러 
가버 리 는것 이 다. 

김태규선장은 후一 하고 한숨을 내뿜더니 전령기에 입을 가져다 
대였다. 

《무선수,선대장에게 전할것. 적들이 물러간다. 우린 계속 
전진한다.》 

《알았다. )) 

김태규는 주머니에서 써레기와 담배종이를 꺼내였다. 라침기와 
전파탐지기, 방향탐지기의 작고도 파아란 불빛을 리용하여 투박한 
손으로 재빨리 담배를 말기 시 작했다. 

《부선장, 불이 있소?》 

《예, 여기 있수다.〉〉 

조타를 잡고있던 항해부선장이 한손으로 라이타를 꺼내주었다. 
선장은 몇번이고 라이타를 절컥거려서야 담배에 불을 달았다. 한모 
금 폐장깊이 삼키고 천천히 후一 하고 내불더니 별안간 머리를 들 
고 앞에 서있는 박유진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것이였다. 

《동一무요?… 헌데 거기서 지금 뭘하구있소?〉〉하고 그는 마치 
유진이를 처음 보는 사람처 럼 뜨아해하며 물었다. 〈〈거기서 뭘하구 
있나 말이요?》 

《? …》 

박유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가슴은 마냥 아프게 죄여들 
고 화끈 달아오른 머리속에서는 붕_붕_ 하고 마치 문풍지 우는것 
같은 소리 가 계속 울리 고있었다. 

《오-》 

마침내 태규선장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비로소 좀전의 일들이 생 
각난것인가?!…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호흡기관이 망가져서인 
지 가통가릉하는 소리를 몇번 피톱게 통더 니 이후부터는 말 한마디 
없이 담배만 삐금삐금 빨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몹시 지 
치고 힘겨워하는것이 알렸다. 그는 바짝 마르고 터갈린 시꺼먼 입 
술을 우물거리며 싯누런 담배연기만 굴뚝같이 내뿜고있었다. 

박유진은 이제 더 이상 그 자리 에 멍 청 하니 서있을수 없었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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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것도 피로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거의나 소 
리없이,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자기 
를 질시하는 이 사람들, 태규선장과 배사람들을 피해 어데론가 가 
고싶었다. 허나 바다에서, 그것도 태평양파 이어져있는 여기 망망 
대해에서 어떻게 몸을 숨긴단 말인가?… 

《가만 !〉〉갑자기 태 규선 장의 웅글고 묵직한 목소리 가 그의 뒤덜 
미로 덮치듯 날아왔다. 〈〈왜 그냥 가는거요? 누굴 피해 어디루 가 
나 말이요?》 

어찌된 일인지 바다의 귀신이라는 김태규선장은 마치도 유진이 마 
음속 생각까지 다 바다속을 들여 다보듯 휑하니 읽 고있는듯 했다. 그 
가 계속했다. 

〈〈내 말을 듣소. 유진동무, 우리 배사람들은 사실 제일 럽럽한 사 
탐들이요. 유식한 말도 할줄 모르구… 외국말은 더욱 그렇지. 하 
지 만 해 방후 당의 은덕으루 다 중학교이 상의 교육을 받았소. 게 다 
가 요새 배치되여오는 젊은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수산전문을 나온 
사람들이요, 청진수산전문학교를!… 그래서 웬간한 외국말은 대 
체로 알아듣소. 뜯개말도 더러는 할줄 알구…》 

《? …》 

박유진은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그래서 무얼 말하는것인가?… 아 
직은 그가 무슨 의미로 그 말을 꺼냈는지 짐작할수 없었다. 

《그런데 동문》하고 태규선장은 차츰 숨소리도 거칠게 말을 이 
었다. 〈〈우리 사람들을 우습게 보구… 지어는 좀 깥보구있소. 외국 
말은 저 혼자 다 아는것처럼… 그렇다구 칩시다.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요? 우린 그런 외국말을 잘 번지지 못하오. 그런 혀꼬부라진 말 
은 잘 못해두 우리 조선말은 아마 동무보다 더잘 알게요. 그래 동 
무가 여 기 우리 배 사람들보다 조선말을 더잘 알것 같소?》 

상?… )) 

여전히 박유진은 굳어진 그대로였다. 

김태규선장은 손끝까지 타들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마 
구 비벼 대 였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동문 우릴 크게 노엽 혔소. 정말 그럴줄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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랐소, 뜻밖이요. 동문 오늘 조선사람의 존엄을 크게 상하게 했 
단 말이요.》 

《아니?! …》 

《내 말을 마저 듣소. 우리 조선사람들은 저놈들과, 저 쳐죽일 일 
본놈들이나 미국놈들파 동무가 한것처 럼 그렇게 말하지 않소. 그래 
저놈들이 언제 우리한테 월 물어본적이나 있소? 우리한테 한마디라 
도 물어보구 나라를 침략했냐 말이요. 그런데두 오늘 동문 뭐 어찐 
다구? 저 미국놈들한테 친절하게 설명을 해춘다구?… 똑똑히 듣소, 
저 짐승같은 원쑤놈들과는 말이 필요없소. 설사 있다구 해도 그따 
위 빌붙구 리해를 시키는 말이란 없소, 없단 말이요!》 

〈〈그럼 내가…》 

《됐소, 그만하기요. 다시 부를 때까지 돌아가서 혼자 잘 생각해 
보오, 자기가 월 잘못했는지…》 

그는 한손을 홱 내저 었다. 인젠 보기도 싫다고, 제발 눈앞에서 썩 
사라지라고 하는 의미와도 같았다. 

유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노엽고 눈물겹고 한없이 억울하게 생 
각되였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바다에서의 선장은 해당 나라의 
전권대표이기도 하다. 선장이자 곧 정권이고 법이다. 일단 선장이 
결심하고 지시한것이면 그것이 설사 죽음에로 통하는 길이라 할지 
언정 무조건 그대로만 밀고나가야 한다. 그것이 곧 바다의 법이고 
바다의 인륜이고 배사람들의 준법 정신이 다. 


14 - 


박유진은 선장이 한시바삐 자기를 불러주기를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것이 죽을 지경으로 피로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 
든 결판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몸이 
떨릴 지경으로 그것이 두렵기도 했다. 턱수염이 시꺼먼 태규선장을 
피해 숨을수만 있다면 술이 가득차있는 도람통에라도 머리를 틀어 
181 



박고싶은 심정이였다. 

허나 다음날에도 선장은 조타실에만 붙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바 
다날씨가 험해지면서 세찬 새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한것이다. 

먼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왔다. 미친듯 한 바람결에 털을 
잔뜩 일으켜세운채 갑판우에 무리로 날아내렸다. 아니, 돌맹이 
들처럼 떨어져내렸다고 할가… 어떤것들은 빈 도람통속에 무리로 쓸 
어들기도 했다. 배의 선원들이 그것들을 위하여 도람통뚜껑을 열어 
주기도 했다. 배사람들에게 있어서 갈매기들은 언제나 제일 정답고 
친근한 바다의 길동무들인것이다. 

《누가 아직 갑판에서 돌아치는거요?〉〉하고 태규선장이 조타실 
문짝을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다들 선실로 들어가오, 빨리!》 
그래도 안심치 않아서 인지 선장은 장태 렬기술부선장을 보내 여 그 
들을 선실에 몰아넣게 하였다. 

장태 렬 이 석 쉼한 목소리 로 소리쳤다. 

《다들 선실로 들어가시오. 권영길! 동문 거기서 뭘해? 규석 
동무, 류운환!… 동무들은 왜 여기 나와있는거요, 영?!》 

그는 류운환이라는, 군대때 특무상사였다는 씨름군같이 몸이 다 
부지고 단단한 사람의 엉맹이부터 걷 어찼다. 사실 그 류운환은 세 
찬 바람에 한쪽으로 풀려진 그물이 확대판에 걸려 찢어지지 않게 단 
단히 바줄로 묶어놓던중이였었다. 

《넨장, 이 렇게 바람이 심한데 왜 우물거 리 는거요? 그래, 저 바 
다에 날아들어가봐야 정신을 차리겠소?》 

모두 선실에 몰아넣 고서 야 장래렬은 철판으로 된 문짝을 탕! 소 
리나게 닫았다. 

《에一 이제부터 학습담화를 하겠소.〉〉장태렬이 가쁘게 숨을 내 
뿜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지금 저 바람속도가 얼마인지 누가 말 
해보겠소?》 

《옛,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강창길이 제일먼저 
나섰다.《지금 바람속도는 초속 25메터!》 

《틀렸어.〉〉포수인 권영길이 손끝으로 그의 이마를 꾹 내리찍었 
다.《초속 30 내지 35메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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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렬기 술부선장이 소리 쳤다. 

《옳소, 군대때 포병으로 복무한 사람이 달라. 우리 배사람들도 
포수들 못지 않게 바람속도를 잘 가늠할줄 알아야 해. 창길이, 희 
떠 운 소리 만 하지 말구 제대군인 형 님한테서 잘 배 우라구.》 

《알겠습니다, 부선장동지!〉〉 

장태렬이 계속했다. 

《그럼 파도높이는?… 누가 대답해보겠소?》 

선원들이 저저마끔 소리쳐 대답했다. 

〈〈6메 터.》 

〈〈아니 , 7메터 야.》 

〈〈아니야, 6 메터야. 이건 틀림없어.〉〉 

《7메 터라는데!…》 

장태렬이 손을 획 내저었다. 

《다 맞소. 방금 조타실에서 내가 계기판을 볼 때엔 6메터 였 
는데 지금은 더 높아지구있소. 6 내지 7메터…》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다에 검은 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 
다. 온통 새하얗게 변하였다. 거센 돌풍이 일으킨 물안개와 물 
보라의 회 오리 - 이 어 멀 리 서 큰 멀 기 가 덮 치 듯 몰려 오기 시 작했다. 
배가 세차게 요동을 쳤다. 

장래렬은 가까스로 선실 벽 을 짚으며 투덜 거 렸다. 

《인젠 학습담화도 다 했군. 넨장, 인젠 월한다?…》 

웬일인지 그의 눈길이 박유진에게로 견주어지고있었다. 유진이만 
을 바라보면서 그는 목청을 돋구었다. 

《무서 워할건 없소. 지 금 선장동무와 같이 경 험 많은 우리 항해 부 
선장이 조타를 잡고있으니 다 제대로 될거요. 뭐, 이런 파도가 처 
음 이라구? … 맘 푹 놓소.》 

그는 이 배의 기술부선장이면서 세포위원장이기도 하다. 박유진 
이 배멀미로 신고할 때 몇번이 나 선실 에 들려 이마를 짚어 주던 사 
람이다. 그러나 따로 해설담화사업을 한적은 없다. 배사람들은 입 
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몇해후 박유진은 이 
수더분한 부선장 장태 렬이 뜨랄선 제53호 선장으로 임명되 여 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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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김태규영웅선장들과 더불어 신문파 방송들에서 널리 소개되는 
것을 커다란 기쁨과 감격속에서 보고 듣게 된다. ) 

그가 유진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유진은 뜨아해하면서도 일견 반 
가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 쯔가루해협에서 있은 일때문에 배사람 
들에게서 버림받는것 같아 몹시 피로와하던 참이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장태렬이 소리쳤다. 소리치지 않고서 
는 말이 통하지 않기때문이였다. 

《유진동무, 저 파도를 좀 보오. 이건 정말… 아주 센 파도요. 조 
금만 더 세지면 이 철문짝도 쭈그렁바가지로 만들어버리오. 하지 
만… 잘 보오. 저것도 리용할탓이요. 법칙을 알고 잘 리용하면 하 
나도 무섭지 않소. 보라는데?… 저一기 보이지?… 멀기에도 주 
기가 있단 말이요. 저_기 하나, 두_울, 셋_ 네엣_ 다섯!… 보 
시오, 다섯번째만에 큰 멀기가 한번씩 오고있지 않소. 저런 큰 멀 
기가 밀려올 때 계속 맞받아나가면 배가 그만 왕청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소. 그래서 지금 선장동문 지그자그로 반보차기를 하고있소. 
반보항행이라고도 하는데… 지그자그… 왔다갔다 반보씩 파도를 차 
면서 … 무슨 말인지 리해되 오?〉〉 

《예.》유진에게는 그의 항해설명보다도 자기에게 돌려주는 관심 
이 더 귀 하고 반가운것 이 였 다. 《잘 알겠습니 다. )) 

《우리 태규선장은 참 좋은 사람이요.》장래렬이 계속 하는 말이 
였다. 《바다에선 선장이 아버지나 같소. 그러니만치 꼭 아버지가 
하라는대로만 해야 돼. 그러면 등탈이 없소. 이걸 잊지 마오.》 
《예.》박유진은 웬일인지 자기 목소리가 잦아드는듯 한감을 느 
꼈다. 《잘 알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잘 알겠다고 한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있었 
다. 사실 그런것은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때 〈〈뚜!一》하고 맨 앞에 서 나가는 그들의 배 56호가 길게 고 
동소리를 울리였다. 이어 선대의 다른 배들이 차례로 모두 그 소리 
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바다날씨가 나쁠 때의 항해규정 이 라고 장태 
렬 이 설명했다. 소리 로 거 리 감을 느끼 면서 호상간 간격 을 유지해 간 
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꼭같은 뜨랄선들이지만 배들마다 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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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기적소리라고도 한다. )는 각이하다. 크고 웅글게 울리는가하 
면 높은 소리로 우렁차게, 혹은 앙칼지게 울리는 소리도 있다. 배 
들마다 자기 선장의 성격을 그대로 닮는것만 같다. 

유진은 차츰 무시무시하게 변모되는 바다를 보면서도 별로 놀라 
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인제는 공포도 사라져간다. 모든것 
이 꿈만하다. 허탈감파 공허… 한순간 흐릿해진 머리속에 매부 장 
정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나의 이 런 몰골을 본다면 뭐라 
고 할가? 이 박유진이 마치 민족의 배신자이기라도 한듯 모질게 단 
죄하던 태규선장의 고함소리를 들었다면 그 성칼사나운 매부가 어 
떻게 나왔을가? 혹시 도끼를 쥐고 달려들지나 않았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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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은 꾸바의 수도 아바나의 말레꽁해안거리에 위치한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 2층 사무실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쓰 
고있었다. 지독히도 습하고 무더웠다. 천정에 매단 선풍기가 종 
일 윙윙거려도 팔파 목에 끈적거리는 땀은 가셔주지 못했다. 하 
루에도 몇차례나 이곳 아바나시의 상공을 지 나가는 까리브해의 열 
대성비구름이 도시에 비좁게 들어앉은 낡은 건물의 벽체들파 지 
붕들, 그리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미처 마를새없이 주기 
적으로 소낙비를 퍼붓군 했다. 따라서 도시의 대기습도는 건조한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로서는 도저 히 참고견디기 어려 울 정도로 높 
았다. 

그는 웃도리를 벗어 말코지에 걸었다. 다시 책상에 마주앉자 조 
국에서 보내오는 수십대의 자동차, 뜨락또르며 수많은 농기계들과 
꾸바의 농업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여오는 우리 나라 청년들 
을 맞기 위한 갖가지 사업일정을 짜는데 달라불었다. 

수령님께서 혁명적꾸바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였으므로 할 
일이 많은 그였다. 그만큼 피델 까스뜨로를 비롯한 꾸바의 당과 정 
185 



부지도자들은 우리 수령님께서 보내시는 진정어린 뜨거운 지지와 성 
원, 고무와 련대성의 표시에 몹시 감동되여있었다. 

지 난 까리브해의 위기때 에도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다 황급히 비 
행기를 타고 제 나라로 피신해갔지만 우리 대사관 성원들만은 꾸바 
군복차림 에 그들파 같이 총을 메고 결사전에 나섰다. 

새로 부임해온 장정환도 자주 꾸바의 전통적 인 올리브색군복차림 
을 할 때가 많았다. 대사관성원들파 같이 매일 군사훈련도 하고 거 
의나 군복을 벗지 않는 피델 까스뜨로가 지방참관이나 부대들에 나 
갈 때마다 조선대사를 부르군 하기때문에 그도 같은 군복을 입는데 
습관되 였 던것 이 다. 

밖에 서 는 장정환의 네 아들중 이 제 겨 우 5살난 막내 아들 현 일 
(어머니가 제일 어린 그 애만 꾸바에 데리고 왔던것이다. )이가 누 
군가와 큰소리 로 에스빠냐어 로 말하는 소리 가 들려왔다. 

장정환은 아직 에스빠냐어를 잘 모른다. 그러나 꾸바어린이들의 
유치원에 다니는 현일이는 벌써 반년사이에 누구하고나 자유로이 의 
사소통을 할수 있게 되 였다. 

그때 현일은 자전거를 타고 울안을 돌고있었다. 어머니가 세발자 
전거를 사주었지만 아버지가 야단을 쳐서 당장 두바퀴자전거로 바 
꿔온것이였다. 몇번이고 무릎이 깨여졌지만 현일은 기를 쓰고 다시 
금 자전거에 오르군 했다. 오늘 벌써 다섯번째로 담장안을 빙빙 돌 
고있는데 누구인가 기척도 없이 들어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알지 못 
할 사람이였다. 권총을 찬 꾸바사람들이 보초를 서고있는 외국대사 
관에 감히?… 

현일 이는 자전거를 멈추고 경계하는 눈길로 그쪽을 사납게 쏘아 
보았다. 

〈〈넌 누구야?〉〉 

권총을 찬 혁띠가 아래배예까지 축 늘어 진 꾸바군복차림의 사나 
이 가 거침 없이 그 애앞으로 다가왔다. 

《하! 이녀석 괜찮은데 …〉〉키 가 큰 꾸바군인은 당돌한 조선소년 
에 게 옷으며 대 충 거 수경 례 를 했다. 《난 피 델 의 부관이 다.》 

현일 이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피 델이 누구인지 잘 안다. 유치 원 
186 



에서 배우는 노래의 한구절이 먼저 생각났다. 

아침을 사랑하고 오늘을 사랑해요 
래일을 사랑하고 피델을 사랑해요 

《피델의 부관이라구?…〉〉하고 그 애는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따 
져물었다. 《부관이란게 뭐야?》 

〈〈너 그것두 모르니?〉〉 

〈〈알아. 그런데… 피델의 부관이 옳은지 어떻게 알아?》 

《이걸 보구두 모르겠니?》 

키큰 사나이가 손으로 배허벅에 차고있는 권총집을 툭툭 두드렸 
다. 하지만 현일은 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피델은 어디 가구 혼자서 왔어?》 

그때 대문쪽에서 부관보다 키도 몸집도 더 큰 사람이 나타나며 소 
리내여 옷었다. 

〈〈피델은 여기 있다.〉〉 

〈〈응?…》 

한순간 현일은 그가 틀림없는 피델 까스뜨로임을 알아보았다. 신 
문과 거리의 선전화들에서 늘 보아오던 군복입은 꾸바 내각수상, 유 
명짜한 럽석부리!… 현일은 급기야 대사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단 
숨에 2층의 아버 지방에 까지 달려 간 그는 숨을 헐 떡이 며 소리 쳤다. 
《아버지 , 피 델이 왔어 요, 피델 !》 

장정환은 철 없는것 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 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 
려 고 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쿵쿵거리며 계 단을 올라오는 군화발소 
리 를 듣자 벌 떡 자리 에 서 일 어났다. 

〈〈정 말이 냐?》 

한손으로는 말코지에 걸어놓은 웃옷을 벗기고 급히 팔에 끼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문앞에까지 이론 장대한 체구의 피델파 부 
관을 보자 급히 그리고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 하십 니 까, 피 델 까스뜨로동지 !》 

《반갑습니 다. 대 사선생 , 안녕 하십 니 까.》 

187 



《예, 그런데 수상동지, 이렇게 아무 련락도 없이 갑자기 오시면 
우린 어떻게…》 

《예?! )) 

피델은 그와 반갑게 악수하면서도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자 구원 
을 바라는듯 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인사말만을 거듭했다. 

《대사선생,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그새 꾸바날씨에 좀 익숙 
되 였습니까? 지금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수상동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셨을적엔 무슨 급한 용무 
가 있겠는데 …》 

〈〈대 사선 생, 날씨 에 익 숙되 였 는가 말입 니 다.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때마침 어린 현일이가 가운 
데에서 머리를 뒤로 잔뜩 젖히고 두사람을 올려다보더니 떠듬떠듬 
통역을 했다. 

〈〈아버지, 날씨가 더운데 앓지 말라구 해.》 

장정환은 꿈쩍 놀랐다. 이 애가 무슨 소릴?… 허나 다음순간 저 
도 모르게 숨을 활 내룸었다. 

《아, 그래? 참, 너 인사말도 할줄 알지? 그럼 피델수상에게 좋 
은 인사말씀 한마디 올려라, 응?〉〉 

〈〈응.》현일은 머리를 끄떡하더니 피델에게 머리를 돌리며 조잘 
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피델에게 아주 좋은거, 음… 맛있게 올 
리라구 했어요.》 

그러자 피델은 에스빠냐어를 제멋대로 마구 번지면서도 자신만만 
해하는 어린 현일이가 하도 기특했던지 그 애를 덥석 안아올렸다. 
〈〈용무나. 이름이 뭐지?〉〉 

〈〈장현일… 우리 유치원에선 내가 제일 째요.〉〉 

〈〈정 말이 냐?》 

《예, 키는 제일 작아두 쌈은 제일 잘해요.》 

〈〈허! 장령의 아들이 확실히 다르구나.〉〉 

피델은 장정환이 권하는 응접실로 가면서도 현일이를 내려놓지 않 
았다. 응접실 에 들어가 쏘파에 앉자마자 그 애를 무릎우에 올려 놓 
았다. 


188 



《대사선생, 난 대사선생과 따로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 누구에 
게도 알리지 않고 왔습니다.》 

《?! …》 

장정환은 또 묻는듯 한 눈길로 어 린 현일이 를 쳐 다보지 않을수 없 
었다. 그러자 현일은 열심히 두눈을 굴리며 피델의 말뜻을 되새겨 
보더 니 단마디 로 이 렇게 통역했다. 

〈〈혼자 왔대, 몰래 ! …〉〉 

〈〈아,그래?》 

비로소 그는 자기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해냈다. 

〈〈수상동지, 잠간만!…〉〉 

그는 즉시 전화기를 끄당겨 번호를 돌렸다. 

《나 장정환이요. 문화참사 어데 있소? 당장 찾아서 내 방에 보 
내오. 그리구 라울 까스뜨로동지에게 련락해서 피델수상이 여기 와 
있다는걸 알리오.》 

피델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왔지만 한 나라의 국가수반이 다 
른 나라의 대사관에 온 이상 장정환은 그냥 주재국에 알리지 않고 
지날수 없었던것이다. 

피 델이 어린 현일에게 아버지 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현 
일이 말했다. 

《까스뜨로동지 에게 알려주래요, 피 델이 여 기 있다구.》 

적갈색의 굵다란 아바나려송연에 불을 불이던 피델은 갑자기 쏘 
파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까스뜨로와 피델이 서로 다른 사람이던가? 한사람이 아 
니 구? …》 

현일이 뾰로통해서 고집했다. 

《아니예 요, 라울도 있구 피 델도 있는데 …》 

《하一 그렇지. 정말 네 말이 그럴듯하구나.》 

피델은 웃음을 가무리지 못하며 또 어린것의 머리를 쓸어주고 볼 
을 다독여 주었다. 이 렇게 그는 에스빠냐어통역 을 겸 하는 대사관 문 
화참사가 올 때까지 어린 현일이와 잡담을 해 야 했다. 어 린것은 피 
델이 진짜로 자기를 고와하는것을 알자 그가 줄곧 내뿜는 독한 려 
189 



송연연기를 입김으로 불어가며 무엄하게도 그의 시꺼먼 구레나룻을 
손으로 쓸어보고 슬그머니 당겨보기까지 했다. 

《아버지, 염소할아버지야, 잉?…》 

〈〈야, 현일아!》 

장정환은 너무도 당황하여 어린것에게 무섭게 눈을 흘겼으나 피 
델이 손짓으로 일없다고 가만 놔두라고 했다. 

한편 뒤늦게야 련락을 받은 대사관일군들은 비상소집하여 식사준 
비를 한다, 차와 커피를 끓인다 하며 법석을 떨었다. 통역을 맡은 
문화참사도 5분후에 야 차와 커피 를 든 대사관 녀성 일군을 앞세 
우고 응접실에 들어섰다. 눈치빠른 현일이 피델의 무릎우에서 미끄 
러져내렸다. 별수없이 그 애는 혁명적인 꾸바의 수령과 담화하는 력 
사적인 외교무대에서 퇴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통역이 오자 피델은 활기를 띄였다. 

《대사선생, 내가 뭣때문에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는지 한 
번 알아맞춰 보십 시 오.》 

장정환은 판문점 군사정 전위 원회때 부터 불의 적 인 질문에 반응 
하는데 습관되 여있 었으므로 옷으며 말했다. 

《우리 대 사관 료리솜씨 가 어 떤지 시 험 쳐보려 고 오셨지 요?》 
피델은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늘 하는 습관대로 손바닥 
이 앞으로 보이 게 손을 들어 주의 를 환기시키며 말하였다. 

《비 슷하게 맞췄다고 할수도 있습니 다. 어 쨌든 조선을 더잘 알자 
고 온건 사실이니까요.》 

《예?》 

《아, 그럼 언제 조선 의 유명한 료리 솜씨 를 맛볼수 있 습니 까?》 
장정환이 알아보니 벌써 차려 오고있다고 했다. 그러 나 피 델은 응 
접실에 차리 는것을 반대했다. 

〈〈정원에 나갑시다. 이럴 땐 밖이 좋습니다.〉〉 

그때 에 야 비로소 꾸바정 부의 일군들과 호위성원들이 급히 차를 타 
고 달러 왔다. 모두 사색 이 되 여있었다. 피 델은 또 피멜대 로 언 
짢아했 다. 

《내가 뭐 에스빠냐 황제요? 로씨야 짜리요? 뭣때문에 한자동차 
190 



씩이나 타고 날 쫓아다니는거요?》 

한자동차래야 사실 미국제반트럭에 타고온 일여덟명이 전부였 
었다. 장정환이 서둘러 새로 온 사람들까지 정원으로 안내하려 했 
으나 호위성원들은 어느새 모퉁이마다에 몸을 숨기고 칼끝같은 시 
선을 사방에 던지기 시작했다. 

아바나의 밤은 불시로 찾아든다. 불타는 해가 먼 수평선에 시뻘 
건 불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서서히 잠겨들면 돌연 해안선도로를 
따라 건물들이 가득 들어찬 도시의 골목들은 어둠의 장막속에 잠겨 
버 린다. 

대사관 전공(꾸바사람)이 뒤정원의 풀밭 한가운데 촉수높은 
전등을 켜자 대사관가족들이 거기에 커다란 원탁을 가져다놓았다. 
이윽고 흰 보를 씌운 원탁에는 갖가지 통졸임파 바나나, 파이내플 
을 비롯한 열대과일들은 물론 조선사과와 화채, 인삼술, 통성맥주 
등이 올랐다. 피델은 통성맥주의 맛이 좋다고 극구 칭찬했다. 

장정환이 말했다. 

《이제 연회마감엔 유명한 조선국수가 나읍니다. 그때 가서 우리 
대사관 료리 솜씨를 평가해주십시오.》 

《꼬리어 꾸쑤우?…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헌데… 내가 
온 진짜목적은》하고 피델은 또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쳐들었다. 

〈〈조선기록영화입니다. 존경 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현지지도하시 
는 기록영화들이 귀 대사관에 많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서 …》 
〈〈아, 그렇습니까!》 

장정 환은 당장 자리 를 차고 일 어났다. 그리 고 자신 이 직 접 나서 
서 응접실에 있던 영사막을 정원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어 피델이 
앉아있는 원탁에서부터 발걸음으로 맞춤한 거리를 재 여보고 영사막 
을 장대에 세우는것까지 지휘하였다. 꾸바사람인 대사관전공은 영 
사기 를 설 치하였다. 

피델은 자기네 사람들이 더잘 보아야 한다고 친히 그들 각자의 자 
리 를 정 해 주었다. 장정환파 통역 은 자기옆 에 바싹 불어앉도록 하 
였 다.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록한 기록영화가 시작되였 
191 



다. 이따금 해설록음에 없는, 외국인들로서는 리해할수 없는 장면 
들은 장정환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피델은 흥분하고있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려송연을 빨았다. 한부가 끝 
나면 또 한부… 대사관에 있는 필림전부를 다 볼 때까지 절대 자리 
에서 일어 나지 않겠노라고 선포했다. 

새 벽 3시 에 야 영 화가 끝났다. 그때 까지 연회탁은 초저 녁 에 차려 
놓았던 그대로였다. 피델은 거기에 곁눈조차 팔지 않았다. 그는 크 
나큰 감동을 이기지 못해 큰 숨을 내불더니 이렇게 말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대사선생, 감사합니 다. 오늘 정말 많은걸 배 
웠습니다.〉〉 

이어 그는 뒤늦게 달려왔던 자기 사람들, 당과 정부의 일군들에 
게로 몸을 돌렸다. 

《동무들, 오늘 우리는 아주 귀중한 진리를 배웠소. 동무들도 언 
젠가 체 게바라가 조선을 방문하고 와서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에 대하여 감동깊이 말하던것을 생생히 기 
억하고있을거요. 그래서 난 언제면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올수 있을 
가 했는데 오늘 여기서 기록영화를 통해 만나뵙게 되는구만. 영화 
를 보니 정말 생각되는것이 많소. 그래 동무들은 어떻소?》 

그는 수행원들의 대답을 기다린것이 아니였다. 끄트머리만 남은 
려송연을 힘껏 빨고 재털이에 비벼끄고는 힘주어 계속했다. 

《우린 모두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분처럼 인민 
을 위 해 자기를 다 바쳐 야 하오. 그래서 내 오늘 우정 시간을 냈던 
거 요.》 

그는 또 다른 려송연 에 불을 불였 다. 수십 만 군중앞에 서 5시 
간 내지 6시 간, 최 고 13시 간까지 휴식없이, 원고없이 연설한것으로 
유명한 피델이였으므로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밤새껏 터놓을수도 있 
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몸을 돌려 대문쪽으로 걸어갔다. 주인 
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것도 까맣게 잊고있는듯 했다. 부관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뭐라고 귀팀했다. 그제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 

《아, 대사선생.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자주 오겠 
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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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가 있겠습니까. 피델 까스뜨로동지, 우린 언제 어느때 
든 제일 귀 한 벗으로 당신을 반겨 맞을것 입 니 다. ))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는 장정환파 문화참사 그리고 대사관의 보통일군들, 가족들과 
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했으나 웬일인지 인차 걸음을 떼지 못 
하였다. 마치 그 누군가를 찾는듯 했다. 

《참,어디 갔을가?…〉〉 

《아니, 누굴… 찾으십니까?》 

〈〈우리 헤니일 !》 

그제서 야 비 로소 영 문을 알아차린 장정환이 옷으며 말하였다. 

《우리 현일이는 초저녁에 벌써 끓아떨어졌습니다. 아직 철부지 
이 니 까요. …》 

피 델은 그만 두손을 마주치 며 크게 소리내 여 옷었다. 

《아, 내가 인젠 새벽이라는걸 그만 잊고있었습니다. 우리 헤니 
일 이 잠을 잔다?… 그럼 사랑스러운 헤니일이 깨 여나면 꼭 내 인사 
를 전해주시오.》 

그는 다시금 손을 들어 모두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대 
문을 나서려던 그가 또 무슨 생각에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 
아보는것이 였다. 다음순간 부관에 게 눈짓 하고는 활달한 걸음으 
로 되돌아왔다. 장정환이 서둘러 마주가자 그는 뜨거운 입김부터 
내불었다. 

《대사선생, 아까부터 나한테 무엇인가 물으려고 했지요? 난 그 
걸 눈치채고있었는데 왜 끝까지 묻지 않고 그냥 지 나갑니까?》 

역 시 피 델다운 통찰력이 였다. 장정환은 빙 긋이 옷었다. 

《수상동지 에게 생각이 있으면 제가 묻지 않아도 말씀하리 라고 믿 
고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까?》피델은 잠시 그의 두눈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또 
물었다. 《묻고싶었던것이 체 게바라에 대한것이 아님니까?》 

《예, 옳습니다.》장정환은 다시 놀라와했다. 

《그럼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대사선생, 지금 귀국에선 체 게바 
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193 



상…〉〉 

장정환은 입을 열지 못했다. 피델이 그렇게 질문하리라고는 생각 
지 못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할수 없는 질문이였다. 

사실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지금 체에 대하여 벌떼처럼 떠들어대 
고있다. 온 세상을 주름잠으며 조선과 중국, 쏘련과 동유럽의 사 
회주의나라들은 물론 일본과 에스빠냐, 빼투, 메히꼬, 아르헨띠 나, 
에짚트를 비롯한 라린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수많은 크고작은 나라 
들을 방문하였고 유엔무대에서도 꾸바를 대표하군 하던 신생꾸바의 
제3인자였던 체 게바라! 그가 돌연 력사무대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그 어느 국가적인 기념행사에도 외국인들의 꾸바방문기에 
도 그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고 신문과 텔레비튼 등 갖가지 출판물 
들에서도 그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수 없었다. 

이 에 대 하여 세 론은 끔찍 한 소문으로 끓어번지 고있 었다. 체 가 피 
델파 그의 동생 라울 등과 함께 바띠스따독재정권을 뒤집어엎은 혁 
명 군의 한 사령 관이였으며 그들 피 델형 제 의 벗 인 동시 에 또 무시할 
수 없는 군사가, 정치실력가,박식가로서 나날이 그들의 정치적경 
쟁 자로, 적 수로 되 기 시 작하였으므로 하늘높이예 까지 명 망이 높아 
가는 그를 두려 워한 피 델과 그의 심 복들이 조용히 처치해 버 렸다는 
소문이였다. 지어 그를 무참히 살해한 날자와 장소는 물론 목격자 
들의 증언과 무덤위치까지 밝혀내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꾸바는 남들이 아무리 험담을 퍼붓고 떠들어도 여러달째 
줄곧 침묵만 지킬뿐 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있다. 따라서 나날 
이 의혹은 무서운 추측을 낳고 추측은 또 부정할수 없는 명백한 사 
실로 와전되 여 세상사람들을 소스라치게 하군 했다. 

물론 조국에서도 세상에 떠도는 각이한 요언들을 잘 알고있다. 장 
정환은 벌써 몇달전 수령님께서 체에 대하여 하시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꾸바의 당과 정부의 요인들조차 체의 행 
방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람이 거의나 없다는데서 장정환은 그만 당 
혹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내각수상 피델에게 물을수도 
없었는데 그자신이 지금 체에 대하여 말을 꺼낸것이다. 

《체에 대해선》 하고 장정 환은 천천히 말했 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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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께서 특별히 관심하고계십니다. 수령님께선 체 게바라가 조 
선을 방문했을 때 아주 좋은 인상을 받으셨다고,참으로 열혈의 투 
사다운 기 질을 가진 혁명 가, 애 국자였다고 자주 회 고하십 니 다.》 

〈〈음…〉〉피델은 통역이 옮기는 말을 주의깊게 듣더니 흥분하여 
말하였다. 《체도 김일성동지에 대하여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품 
고있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자신의 앞으로의 삶과 투쟁 
의 지침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며 떠나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 
다. )) 

《아니,떠나一갔단… 말입니까?…》 

장정환은 불시로 목이 갈리는것을 느꼈다. 

피델이 계속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만은 사실대로 죄다 말씀드릴수 있습니 
다. 이제 얼마후엔 세상이 다 알게 되겠지만… 지금 체는 라린아메 
리카의 어느 한 나라에 가있습니다.》 

《예?!…》 

《체 는 미 국의 고요한 뒤 동산이 라고 불리우는 여 기 라린 아메 리 카 
에 제2의 월남을 만들어 꾸바혁명을 보위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꾸 
바혁명을 보위하고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을 짓부시며 라린아메리 
카나라들을 해방하는것! 이것이 바로 체의 결심입니다. 그래서 지 
금 그 나라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있습니다. 언젠가 조선을 방문 
하였을 때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그분께서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 
여 미제 에 주되는 창끝을 돌려야 한다는것, 다시말하여 세계도처 에 
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받고 그때부터 깊이 생각 
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까리브해의 위기때 흐루쏘브가 미국에 굴복 
하여 미싸일과 비행기들을 다 철수해가자 그는 자주성이 없이 큰 나 
라만 하늘처 럼 쳐다보다가는 제 나라, 제 민족을 영 영 망하게 한다 
는 말을 자주 하군 했습니다. 그때에 벌써 그는 무엇인가 마음속깊 
이 결심하고있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를 막을수도 붙들어둘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피끗 밤하늘 저 멀리에로 눈길을 돌렸다. 아마도 체가 가있 
을 피어린 전장을 생생히 그려보는듯 했다. 


195 



《체가 한번 결심하면 누구도 그를 막아나서거나 돌려세우지 못 
합니다. 바로 이것이 체의 불같은 성격이고 의지입니다.》 

열화같은 언변으로 불을 토하던 피델은 군복 안주머니에서 무슨 
봉투같은것을 꺼내였다. 

《체가 떠나면서 내게 남긴 편지의 사본입니다. 귀국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우리의 존경하는 벗인 김일성동지께 보여드 
리고싶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체를 직접 만나주시고 혁명가의 한 
생에 대한 참으로 귀중한 말씀을 많이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김 일성 동지 이 시 야말로 체 가 제 일 존경 하던분이 시 니 … 그분께 이 편 
지를 보여드리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체도 이것 
을 알면 전적 으로 찬성 할것 입 니 다.》 

그는 장정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습관된 동작으로 손바닥이 앞으 
로 보이게 거수경례를 했다. 

《자, 그럼 …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 

부관이 피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초조히 기다 
리고있던 수행원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나갔다. 

장정환은 피델이 탄 차가 어둠속 멀리로 사라져갈 때까지 그 자 
리에 서있었다. 승용차의 발동소리가 멀어져갔다. 한차례의 폭 
풍이 휘몰아친듯 했다. 장정환은 잠시 숨을 돌리고 문화참사에게 방 
금 피델이 한 말을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피델은 통역이 미처 따 
라번질새도 없이 열변을 토했던것이다. 


16 


1966년 5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따뚯한 해볕이 집무실 창유리로 
밀물처럼 쓸어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 
에 가있는 우리 대사들의 사업정형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계시였다. 
특히 꾸바대 사 장정환의 보고자료가 류달리 눈길 을 끄시 였 다. 


196 



거기에는 피델 까스뜨로수상의 불의적인 우리 나라 대사관방문과 
수령님의 현지지도기록영화관람, 꾸바의 지방도시인 싼띠아고 데 
꾸바에서 진행된 우리 나라 체육기술고문단(축구, 권투, 배구)과 
사탕수수생산지원 농업기술협조단에 대한 환영행사, 어느 한 포 
병부대에서 진행된 행사와 체 게바라에 대한 자료들도 들어있 
었 다. 


(인물자료)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① 간단한 경 력 

一1928년 6월 4일 아르헨띠 나 로싸리오시 의 한 건 축가의 가정 
에서 출생. 14살때 혁명적청 년단체 에 참가하여 활동. 25살때 
아르헨띠 나 부에노스 아이레 스종합대 학 의 학부 졸업 . 

-1954- 1956년까지 라린아메 리 카 여 러 나라들에 서 인민대 
중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투쟁에 나설것을 결심. 

_1955년 메히꼬에서 피델 까스뜨로와 만나 7월26일운동에 
참가. 이듬해 12월 피델을 비롯한 꾸바혁명가들과 함께 〈〈그란마》 
호로 꾸바에 상륙. 처음엔 군의,후엔 유격대지휘관으로 활약. 

一1958년 12월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여 1966년 3월까지 꾸바 
국립은행 총재, 꾸바혁명정부 공업상, 중앙계획위원회 위원장, 
꾸바사회주의혁명통일당 비서국 성원으로 활동. 이 기간 정부 및 경 
제대 표단을 이 끌고 에짚 트, 수단, 파키 스탄, 인 디 아, 만마, 인 
도네시 아, 스리 랑카, 일 본, 마로끄, 유고슬라비 아, 에 스빠냐, 
쏘련, 체스꼬슬로벤스꼬, 동도이췰란드, 알제리, 중국, 조선 그리 
고 수많은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방문. 

一1966년 4월 꾸바를 떠 나 새로운 곳으로 투쟁무대를 옮김. 

② 유엔총회에서 한 체 게바라의 연설중에서 (1964. 11. 12.) 

《… 나 에르네 스또 체 게 바라는 아르헨띠 나에서 태 여났습니 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님니다. 나는 꾸바사람인 동시에 아르 
헨띠 나사람입 니 다. … 


197 



라린아메리카의 저명하신분들인 당신들께 제가 하는 말이 모욕으 
로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을 라린아메리카의 열렬한 애국자로 
간주하고싶습니다. 그 어느 라린아메리카나라라 해도 무방합니 
다. 평범한 한 애국자로서 나는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라린아메리 
카의 그 어느 나라에 가서든 그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목숨바칠 준 
비가 되여있습니다. 그 누구에게 빌지도 않고 그 무엇도 요구하지 
도 않으며 그 어떤 강박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 

③ 피델 까스뜨로와 가족들에게 보낸 체 게바라의 작별의 편지 


피델 까스뜨로에게 


농업의 해 
아 바나 


피델. 

거창한 사업을 앞에 둔 이 순간 나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리아 안또니아의 집에서 당신을 알게 되던 일, 당신이 나더러 꾸 
바로 가지 않겠는가고 묻던 일, 또 긴장하게 준비사업을 벌리던 그 
때의 일들을. 

…언젠가 우리는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경우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 
가를 론한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우리모두에게 다 있는 
것이였습니다. 후에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왜 
냐하면 혁명에서는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마련이니까요. (그것 
이 진짜혁명 이 라면. ) 

나는 당신의 땅에서 꾸바혁명과 나를 맺어주고있는 내 의무의 일 
부를 원만히 수행했다고 보면서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당신의 인민 
이자 나의 인민이기도 한 그들과 작별하려고 합니다. 

나는 당지도부에서의 나의 직책들파 상의 직책, 사령관의 직책 그 
리고 꾸바공민으로서의 나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포기합니다. 이외 
198 



의 다른 문제들로 하여 나를 꾸바에 붙들어둘 그 어떤 법적근거도 
없습니다. 


나는 훌륭한 나날들을 보냈으며 까리브해의 위기때 위험하고도 보 
람있던 나날들에 당신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 있었다는데 대하여 
긍지를 느끼고있습니다. 

…이 세계의 다른 곳들에서 소박한 내 능력파 도움을 청하고있습 
니다. 꾸바앞에 걸머진 책임으로 하여 당신이 할수 없는 일을 내가 
해 야 하므로 드디 여 우리가 헤 여져 야 할 시 각이 온것 같습니다. 

내가 이 리별을 기쁨파 아픔이 뒤엉킨 속에서 감수하고있다는것 
을 알아주십시오. 나는 여기에 창조자로서 내가 품고있던 꿈들중에 
서 가장 깨끗하고 소중한것들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속에 남겨두 
고 갑니다. 

나를 아들로 받아준 인민을 두고 떠나간다는 이것이 나의 심장을 
막 허비고있습니다. 새 전장들에 당신이 나에게 심어준 신념파 나 
의 인민의 혁명정신 그리고 투쟁에 대한 자각을 가슴에 지니고 가 
렵니 다. 

…이역의 하늘아래에서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나의 마지막생각은 
꾸바인민, 특히 당신에 대한 생각뿐일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가르 
쳐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내가 살아 숨쉬는 마지막 끝까지 당 
신이 보여준 모범에 충실하도록 힘쓰겠다는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혁명의 대외정책들에 언제나 충실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럴것 
입니다. 내가 그 어디에 가있든 나는 꾸바혁명가로서의 책임감을 간 
직할것이며 또 그 책임을 다할것입니다. 

…당신과 우리 인민에게 할말이 많지만 인젠 그만두려고 합니다. 

영 원한 승리 를 이 룩할 때까지 ! 

조국이냐, 죽음이냐! 

최 대의 혁명적열정을 다해 당신을 포옹하면서. 


199 


체로부터 
1966. 斗. 9.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일다와 알레 이 디 따, 까밀 리 오, 쩔리 아, 에 르네 스또… 이 
제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때면 그때 나는 너희들속에 없게 될 
것 이 다. … 

너희들의 아버지는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였고 자기의 신 
념 에 충실한 사람이였다. 부디 흘륭한 혁명가들로 자라나거라. 

공부를 많이 해서 기술에 정통하여 자연을 정복하도록 하거라. 혁 
명 이 중요한것이며 우리 매 사람들은 누구나 저 혼자만으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것을 잊지 말어 라. … 

아버지가 너희들을 굳게 포옹하고 입맞춘다. 

아버지로부터 


17 


체 게바라가 꾸바공화국혁명정부 경제대표단 단장으로서 우리 나 
라를 처음으로 공식친선방문한것은 1960년 12월초의 어느날이 
였 다. 

김 일성동지 께서 몸소 꾸바공화국혁명 정 부 경 제대표단을 환영 
하는 연회를 베풀고 친히 연설도 하시였다. 그리고 체의 간절한 요 
청을 받아들여 그를 따로 만나 장시간 담화도 하시였다. 그이께서 
체 게바라와 가지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된 담화였다. 

수령님의 추억 (4) 

귀밑에까지 구레나룻이 수북이 덮여있는 열정의 사나이 체 게바 
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한 인사말도 남들파는 판다른것이였다. 

200 



그날 체는 사복을 입고있었지만 오탠 세월 군복을 입고 싸워온 사 
람답게 허리를 곳못이 펴면서 거수경례를 하는것이였다. 

〈〈안녕하십니까, 경애하는 김일성 원수동지! 당신께서 이렇듯 귀 
중한 시간을 내시여 꾸바혁명군의 한 소좌에 불파한 저를 만나주시 
니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 야 할지 정 말 모르겠습니 다.》 
《나는 당신을 소좌로서만 아니라 꾸바혁명군의 제2부대의 사 
령 관 그리 고 꾸바공화국혁 명 정 부의 공업 상으로 알고있 습니 다. 그리 
고 지금은 꾸바공화국혁명정부대표단 단장인 당신을 만나고있고…》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동지 !》 

그는 진심으로 감동되여 수북하게 자란 구레나룻을 흠칫거렸다. 
눈매는 날카로왔으나 거기엔 따뚯한 웃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그를 자리 에 앉도록 권하며 말했다. 

〈〈체 게바라동지, 우린 공동의 적을 반대하여 싸우는 혁명동지들 
인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격식을 차려 군사칭호를 부르겠습니까. 서 
로 친근하게 동지라고만 합시다.》 

《예 , 고맙습니 다. 하지 만… 강대한 일제 와 미제 국주의 를 때 
려부신 전설적영웅이시고 위대한 혁명가, 조선인민의 수령 이신 
데 제가 감히 어떻게 그렇게야…》 

그는 열정적이면서도 한편 고박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대범하면서도 솔직하고 진실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차례진 접견시 
간을 매우 유용하게, 효과적으로 리용하려고 애쓰는듯 했다. 장황 
하고 화려한 서 두의 말은 될 수록 피 하고 직 방 본론으로 들어 갔으며 
담화과정 에 대 표단의 기 본목적인 경 제 문제, 원조문제와는 별개 
의 아주 엉뚱한 질문도 하였다. 

《원수동지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로동자극문 
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 것은 체 게 바라가 한 첫번째 질문이 다. 

《로동자극문제 라 … 혹시 물질 적 자극을 념 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 
님니까?》 

《예, 옳습니다. 그걸 말씀드린다는것이 그만…〉〉하고 그는 어 
줍게 옷었다. 〈〈원수동지 , 사실 저 는 얼마전 빼 뜨렘이 라는 쏘련 학 
201 



자와 그 문제로 론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쏘련학자와 말입니까?…〉〉 

《예, 빼뜨렘이라는 그 학자는 꾸바와 같은 발전도상나라들은 생 
산력이 낮아서 직접 사회주의사회에로 이행할수 없으므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다음에도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지 않 
겠습니까. 즉 국영기업을 독립채산제로 하기도 하고 민간공업을 남 
겨 놓기도 해 야 한다면서 … 그래서 저는 그의 리론을 내놓고 반대했 
습니다.》 

〈〈어떤 근거로 말입니까?》 

《예, 그것은…》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꾸바는 
미 국의 경제봉쇄 에 얽 매 여 있고 자금까지 매 우 부족하므로 시 장경 제 
원리를 도입하면 개인의 리기심에서 생겨나는 자본주의적의식형 
태가 만연될수 있습니다. 따라서 꾸바의 사회주의건설에 화를 미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쏘련학자의 론거를 정면으로 반 
대해나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를 지지해주었다. 

《정당한 주장입니다.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는것은 사회주의 
경제에 아편주사를 놓는것과도 같습니다.》 

〈〈참,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단 한마디로 명쾌하게 분석하 
시고 저를 지지해주시니 정말 반갑습니다.》 

《지지자가 왜 나 한사람뿐이겠습니까. 피델 까스뜨로수상도 게 
바라동지의 그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을게 아님니까.》 

《그는 저 …》그는 난감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대 
로 말씀드리면… 그러한 론쟁때마다 우리 피델 까스뜨로동지는 계 
속 침묵만 지켰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존경 하는 원수동지 께 문의 하는것 입 니 다.〉〉 

《그렇습니까?… 나는 피델 까스뜨로도 마음속으로는 체 게바라 
동지의 그 주장에 전적인 동감을 표시하리라고 믿습니다. 대학시절 
부터 사회학파 력사 및 경제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보다 중요하게 
는 현시기 꾸바가 처한 특수한 환경에 대하여 누구보다 더잘 알고 
있는 피델수상이 아니겠습니까. 두고보시오, 그는 지금 빼뜨렘 
202 



이라는 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그를 내세우는 쏘련지도부와의 론쟁 
에 말려들지 않으려 고 그럴것입니다.》 

체의 두눈에서 다시금 광채가 펀뜩이였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정 
말 기쁨니다.》 

(사실 이 문제는 체가 꾸바땅을 떠나간 오늘에 와서 야 비로소 밝 
혀지고있다. 지금 피델은 정신적자극을 중시하는 로션으로 확고히 
돌입했으며 가까운 앞날에 천만톤의 사탕을 생산할데 대한 큰 목표 
를 내걸고 전체 인민이 게바라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혁명을 위하여 
일요일도 바쳐가며 투쟁할것을 호소하고있는것이다. ) 

그날 체는 흥분된 어조로 정신적자극을 중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고, 조선에서는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물었다. 

《예, 우리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구호를 내걸고있 습니다.》 

《〈하나는 전체 를 위 하여, 전체 는 하나를 위하여 !〉 ?!••• 참으 
로 통속적이면서도 아주 뜻이 깊은, 아주 멋있는 아니, 그야말 
로 기 막히 게 좋은 구호입 니 다. 참 마음에 듭니다.〉〉 

그는 이어 우리 나라에서 벌리는 대중운동, 즉 천리마운동에 대 
하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계속 되뇌이며 정신없이 받아쓰더니 돌 
연 기 본의제 인 경 제 문제 와는 다른 화제 를 끄집 어 냈다. 

《우리 꾸바는 신생국가입니다. 원수동지께서는 갓 시작된 우리 
꾸바혁명을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보위하자면 어떤 전략전술이 필요 
하다고 보십니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내 생각을 말하면… 신생꾸 
바혁명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미제에 공 
격 의 창끝을 집 중하는것 이 중요하다고 봅니 다.》 

〈〈세 계 적규모에서 말입 니 까?》 

《그렇 습니 다, 세계적규모에서 반제 반미 투쟁을 벌려야 합니 다. 
그리하여 미제가 제멋대로 꾸바혁명을 교살할수 없게 만들어야 합 
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구한 기간 강도 일제와 싸우며 얻은 피의 교 
훈입니다. 통일전선전략, 단결이 중요합니다. 서반구의 유일한 
203 



사회주의나라인 꾸바가 외로워지면 안됩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들,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도처에서 미제에 타격을 주고 그들의 
력량을 최대한 분산약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조선식으로 말하면 미 
제의 각을 뜬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현시기 가장 중대한 반제반 
미 투쟁 전 략입 니 다.〉〉 

별안간 체가 자리 에서 벌떡 일어섰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의 얼 
굴에 경련이 일고있었다. 

《옳습니다. 원수동지, 정말 명철하신 말씀이십니다. 〈절대 꾸 
바가 외로워지면 안된다.〉, 〈외토리로 싸워선 안된다.〉, 〈작 
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 . 정 
말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바란것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 
너무도 큰 충격에 체는 몇번이고 그 말들을 되뇌이였다. 그리고 
는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외교상의 례의도 다 잊고있는 
듯 했다. 엄정하게 정해진 접견시간이 거의나 가고있는것도 알지 못 
하는듯 했 었다. … 

담화도중 그는 이런 질문도 했었다. 

문:〈〈원수동지께서는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직접 전투를 
지휘하군 하셨다는데 어떻게 한번도 부상당하지 않으셨는지… 정말 
원쑤들의 탄알도 민족적영 웅만은 피 해 간것 이 아님 니까?》 

답:〈〈아님니다. 난 사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죽을번 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원쑤의 총탄이 사령관이라고 피해가겠습니까. 그 
건 후날 우리 인민들속에 전설처럼 전해진 얘기이고… 실은 몇번이 
나 적의 총에 맞을번 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배낭을 벗어서 털어 
보면 대 여섯발의 총탄이 굴러떨어 질 때도 있었으니까요.》 

문:《그러니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답:《아님니다, 기적이 아니라 동지들 덕분입니다. 우리 유격대 
의 모든 대원들이 사령관을 목숨바쳐 사수하자고 희생을 무릅쓰며 
나를 위험에서 막아나섰습니다. 동지들의 사랑과 헌신이 총알도 막 
아주었습니다. 그걸 굳이 기적이라고 볼수야 없지요.》 

문:〈〈한가지만 더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 피델수상동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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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든 꼭 조선을 방문하고저 하는데 지금은 시간을 낼수 없어 안타 
깝다고 하면서 대신 저더러 존경하는 김일성원수동지께 꼭 시간을 
내여 꾸바를 방문하도록 청을 올리라고 했는데… 그렇게 약속해주 
실수 있겠습니까?〉〉 

답:〈〈진심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앞으로 꼭 시간을 내보겠습니 
다. 하지만… 지금은 내외의 정세가 그걸 허용치 않습니다. 나 
는 피델 까스뜨로수상도 지금은 자리를 뜨는게 아니라고 볼니다. 신 
생꾸바의 혁명진지를 더 굳건히 다진 다음 시간을 내도 됩니다. 오 
늘은 일단 그렇게 약속하는게 어떻습니까?》 

문:《좋습니다. 원수동지, 돌아가서 피델 까스뜨로수상에게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원수동지께서는 아까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꾸바혁명을 보위하려 
면 세계도처에서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여러 나 
라들에서 동시에 무장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하신 의미인지 혹은 의 
회투쟁까지도 포함하여 하신 말씀이신지?…》 

답:〈〈우리 는 일부 우경기회 주의자들이 말하는 의회 투쟁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 혁명의 경험은 오직 무장투쟁만이 제국주의, 식민 
주의자들의 지배와 예속으로부터 자기 나라와 민족을 해방할수 있 
다는것 을 보여 주고있습니 다.》 

이렇듯 담화는 계속 이어져갔다. 돌이켜보면 그때 벌써 그는 미 
국의 〈〈고요 한 뒤동산〉〉으로 불리우는 저 라린아메리카에서 무장투 
쟁의 쾌불을 지필 생각을 한것 같다. 그렇게 믿을수 있는 근거는 많 
다. 그가 귀국할 때 영어와 에스빠냐어로 된 연설문단행본들파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수십권을 가지고갔다는 사실 
도 의미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 


205 



1g 


그것 은 지 난해 인 1965년 4월 까리브해 에 서 있 은 일 이 다. 갓 조 
직된 꾸바해군의 경비함 한척이 구름같은 안개속을 헤치며 물결을 
헤 가르는데 아돌프 메 나 콘쌀레 스라는 우루과이국적 의 려권을 가지 
고있는 체 게바라가 거기에 타고있었다. 그는 배의 조타실밖에서 전 
지불로 지도를 들여다보군 하였다. 

전지불이 안개발을 헤치며 지도의 한 점을 더돔었다. 이제 그의 
일행이 올라야 할 바다기슭이다. 그때 체의 일행(모두 17명 )을 무 
사히 안내할 임 무를 맡은 대위 가, 꾸바의 전형 적 인 올리 브색군복을 
입 은 키 다리사나이 가 조타실 에 서 나왔다. 

《아돌프선생.〉〉대위가 말했다. 《선생은 왜 여기 어두운데 나 
와계십니까? 무슨 비밀때문이라면…》 

체 는 자기 처 럼 키 가 크고 구레 나룻까지 수북한 그에 게 피끗 날카 
로운 시선을 던졌다. 물론 비밀의 항해 이 라는것을 안내원인 그가 모 
를리 없다. 그러나 지금 아메리카국가기구 ( OEA ) 의 특파원으로 변 
장하고있는 이 선생 이 바로 유명한 에 르네 스또 체 게 바라 데 라 쎄 
르나라는 빨래 줄같이 긴 이 름을 가진 꾸바혁 명 군의 한 사령 관이였 
다는것은 짐작도 못할것 이다. 그에 대하여 알고있는것은 지금 꾸바 
혁명지도부내에도 단 몇사람뿐인것이다. 

《비밀은 묻지 않는 법이지.》 

《좋습니다. 아돌프선생, 어쨌든 제가 선생의 일행을 무사히 가 
닿도록 하겠으니 너 무 걱 정 하지 마십 시 오.》 

《결파를 보구서 표창을 하든지 처벌을 내리든지 하겠소.》 

《아,아돌프선생! 혁명전에 난 배군이였답니다. 바로 이 해 
구에서 고기를 잡군 했지요.》 

《대 위 는 그 말을 벌써 세번째 하고있 소.》 

《한마디만 더 하게 해주십시오, 아돌프선생 !》 


206 



《뭐 요?》 

《선생의 시중군들이 짐건사를 잘 못하고있습니다. 폭약상자에 
터진 봉지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오?》 

〈〈냄새를 맡았습니다, 아돌프선생!》 

체는 버릇처럼 코를 흥흥 울렸다. 어데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은 
사람… 체는 이 대위가 왜 지꿎게 말을 거는지 의심스러 웠다. 

《좋소, 내 가보겠소.》 

대위의 말대로 폭약상자안에 가득 들어찬 봉지들중 하나가 찢어 
져있었다. 체는 대오책임자를 추궁하고 당장 시정하게 하였다. 그 
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안내를 맡은 대위는 조타실에 들어가있었다. 
체 가 나타나자 호기 심많은 그가 또 물었 다. 

《선생 은 무기 장사군입 니 까? 헌데 물에 오르면 그 많은 무기 와 탄 
약을 어떻게 실어나톱니까?〉〉 

체는 골을 내지 않을수 없었다. 

《대위, 너무 호기심 이 많구만. 동문 우릴 약속한 장소까지 안내 
해주면 되오.》 

《예 , 옳습니 다. 그렇 지 만 한마디 만 더 들어주십 시 오.》 

《뭐 요?〉〉 

《저 책상자는 왜 따로 건사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비밀이 아 
닐 텐데…〉〉 

놀라운 일이였다. 그가 책상자까지 냄새로 알아낼수는 없는것이 
다. 거기엔 유격활동에 필요한 갖가지 참고서들파 여러 나라의 혁 
명 투쟁력 사며 특히 조선 에 서 가져 온 김 일성 동지 의 로작들과 《항 
일 빨찌 산참가자들의 회 상기》들이 들어 있 었 다. 

체가 어성을 높였다. 

《대 위, 동문 명 령받은대로만 움직 이 는 군인 이 아닌가. 헌데 동 
무의 귀 속엔 호기 심 구멍 들이 벌 둥지 보다 더 많단 말이 요.》 

〈〈알겠습니다, 선생!》 

《월 알겠다는거요?》 

《몰라야 할 땐 절대 몰라야 한다는걸 인젠 잘 알겠단 말입니다. 

207 



에르네 스또 데 라 쎄 르나동지 !》 

체는 그만 굳어지고말았다. 에르네스또 데 라 쎄르나는 그가 씨 
에라 마에스뜨라산에서 혁명군의 사령관으로 활동할 때 널리 사용 
하던 이름이다.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데 라 쎄르나라는 긴 이름에 
서 체 게바라를 빼고 사용했었다. 

한순간 그가 손에 쥐고있던 라린 아메 리 카지 도가 파르르 떨 리 더니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체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눈을 부 
릅뜨고 여전히 히물거리고있는 대위에게 눈총을 쏘았다. 계기판의 
파아란 불빛들로 하여 그의 두눈도 파랗게 번득이였다. 

《동문 누구요?》 

속삭이 는듯 한 물음이 였다. 몇발자국을 사이 에 두고 함장파 조타 
수가 있기때문이였다. 

《옛, 저는 한때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데 라 쎄르나사령관동지 
휘하에서 싸운 일이 있습니다. 제4지대의 돌격대장이였던 대위 싼 
체스 로돌포!…》 

〈〈뭐?!…》 

다음순간 체의 입귀가 천천히 버그러 졌다. 입을 벌리고 소리없는 
웃음을 한껏 내 불고는 억 센 두팔로 싼체 스를 끌어안았다. 저 쪽에서 
함장과 조타수가 놀라서 쳐다보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싼체스!》 

충동적인 체의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번뜩이고있었다. 

얼마만인가? 거 의 10년전 인 1957년 에 있은 일이 였다. 그때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속에서는 새해를 맞으며 수도 아바나의 한 감 
옥에 갇혀 마지막나날을 보내고있던 혁명동지 프랑크 빠이스에게 보 
내 는 신년축하와 감사의 편지 를 써 보내 기 로 하였다. 편지원문은 사 
령관인 피 델 까스뜨로가 쓰고 마지 막으로 수표를 할줄 아는 유격 대 
의 모든 군관, 지휘성원들이 자기 이름파 직무를 거기에 써넣었다. 

체가 자기 이름을 쓰고 직무란으로 펜을 옮기는데 옆에서 지켜보 
고있던 피델이 말했다. 

《사령관이라고 적으시오.》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씨 에라 마에스뜨라에 웅거한 유 
208 



격대에는 피델만이 유일한 사령관이였었다. 

체가 영문을 알수 없어 머뭇하는데 피델이 손수 자기의 군복저고 
리 웃주머 니 에 서 만년 필 을 꺼 내 더 니 〈〈제 2부대 사령 관 소좌》라고 
써 넣 는것 이 였 다. 

그리하여 체는 비공식적으로, 거의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로 조 
직된 제2부대의 사령관, 소좌로 되였다. 그 임명의 상징으로 자그 
마한 별 하나와 금빛 이 나는 고급손목시 계 가 수여되 였 다. 

피 델 의 명 령 으로 그 손목시 계 를 만싸닐 료의 호텔상점 에 까지 가서 
사온 사람이 바로 싼체스라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내대 
고 사온 시계였다. 도시에서 산으로 돌아올 때 적들과 조우하여 한 
쪽귀바퀴 가 뭉청 잘려나간 그였다. 하여 머 리 한쪽을 붕대 로 두럽 
게 감고있던 그가 직접 체에게 그 시계를 채워주었다. 이후 그는 한 
때 체가 지휘하는 제4지대의 돌격대장으로 싸운 일도 있다. 

잊 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잊고있 었다. 

《싼체스, 그간 어떻게 지냈소? 몸은 성하오? 동문 몸에 파편이 
세개씩 이 나 박혀있다고 들었는데 … 그걸 꺼냈소? 그런데 왜 한번도 
나를 찾지 않았소? 응? 편진 왜 안하구? 수염은 언제 이렇게 길렀 
소? 그전엔 이런게 없지 않았소, 응?…》 

질문의 련발사격, 싼체스는 웃기만 했다. 

〈〈왜 말을 안하오, 응?〉〉 

《어디 말할 짬이나 주었습니까?》 

《아, 그럼 말해보우. 왜 그새 한번두 소식을 보내지 않았소?》 
《당신 이 야 당중앙정 치 국위 원, 내 각의 상동지 그리구 꾸바혁 명 군 
의 한 사령관동지가 아님니까. 게다가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는데 
저같은게 감히 무슨 소식을 어디에다 전한단 말입니까?》 

〈〈내가 잘못한게 많소.〉〉하고 체는 한껏 숨을 내불며 크게 웃었 
다. 《어 느새 관료주의자가 되 였거 던, 나리 님 행세를 하면서. -)) 
싼체스도 눈이 보이지 않게 웃고있었다. 

《그럼 이 제 라두 씨 에 라 마에 스뜨라산에서 처 럼 제 게 명 령 을 주십 
시오. 〈어제날 제4지대의 돌격대장 싼체스 로돌포를 오늘부터 나 
의 국제 주의 적 유격 대 제 1지 대 장으로 임 명 한다 !〉 하고 말입 니 다.》 
209 



체는 대번에 낯색이 질렀다. 

《그걸 어떻게 아오? 동무야 우리가 무사히 가닿도록 안내할 임 
무만 받았겠는데?…》 

《뭐 간단하지요. 사령관동지, 저기 완전무장한 선생님의 부 
하들을 좀 구슬렸지요. 어쨌든 난 꾸바혁명군 대위이니까요.》 
심각한 일이였다. 체는 손으로 량볼에 가득 돋아난 수염을 아프 
게 잡아비틀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쉽사리 비밀이 새리라고는 상상 
도 못했었다. 무엇인가 피어린 투쟁을 위한 준비가 치밀하지 못했 
다는것이 명백해졌다. (이때문에 체는 앞으로 유격투쟁의 전기간 계 
속 가슴을 쥐여뜯으며 후회하게 된다. ) 하여 그는 피가 나게 입술 
을 깨물었다. 

《뭘 그러십니까?》싼체스가 대수톱지 않게 말했다. 《비밀 
이 새나갔으면 빨리 대책을 세워야지요.》 

〈〈어떻게?〉〉 

《나를 체포하십시오. 그다음 총살해버리든지 아니면 대오에 받 
아들이든지 둘중의 하나를 택하십시오.》 

그가 요구하는것이 무엇인지, 왜 화제를 여기까지 끌고왔는지 인 
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그걸 바라오? 진심으로?!…》 

《예.》 

〈〈가족이 있겠지?…》 

《사령관동지도 가족을 두고오지 않았습니까.》 

체는 잠시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사령관동지? 제가… 이 싼체스가 아직도 미덥 
지 못해 그러십니까?〉〉 

체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것고나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싼체스, 동무같은 돌격대장이 내겐 하느님보다도 더 귀하오.》 

《아,이러지 마십시오. 전 신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모 
독하는 사람을… 설사 그가 피델수상동지라 해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순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요?》 


210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너 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어 웃음을 거두자 체는 한팔을 그 
의 앞으로 쑥 내던지듯 했다. 

《고맙소, 싼체스.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 는 승리할것 이 다!〉 )) 

마지막 그 말은 둘이 같이 목소리를 합쳤다. 이 어 그들은 손을 맞 
잠은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빛찬란한 오월 
넓 고넓은 창공아래 
나팔소리 울리며 
우리 기 발 휘날리 네 
광장우에 높이 서서 
손흔드는 까스뜨로 

체가 인솔해가는 성원들모두가 노래소리를 듣고 달려오더니 체와 
싼체스의 노래 에 자기들의 열띤 목소리를 합쳤다. 


꾸바씨 꾸바씨 꾸바씨 양키노 
꾸바씨 꾸바씨 꾸바씨 양키노 


그것은 온 세상에 알려진 혁명 적꾸바를 상징하는 노래 였다. 

…이것은 체가 조직지휘하게 될 국제유격대 제1지대의 대륙에로 
의 첫 진출이였다. 목적지인 까리나스갑에 이르자 그곳에서는 체가 
사전 에 조직한 비 밀 조직성 원들이 찌 프차 3대 와 소형 화물자동차 
를 가지 고 그들을 맞이하였 다. 

며칠후 체는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로 날아가 먼 
저 지 하조직성 원들과 광산로조지 도자, 볼리 비 아공산당 총비 서 
등과 만났다. 광범위한 련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싼체스대위가 지휘할 제1지대성원들은 찌프차와 화물자 
동차를 타고 멀 고먼 볼리 비 아를 향해 내 륙깊 이 들어갔다. 


211 



w 


도이췰 란드의 프랑크푸르트비 행 장에서 떠 난 아일 러 오르항공회 사 
의 려객기가 라린아메리카의 중부 안데스산줄기의 내륙국가 볼리비 
아의 수도 라빠스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였다. 
고원지대의 시뻘건 태양이 구름장들을 불태우고 비행기사다리로 내 
리는 려객들의 얼굴과 머리까지 온통 붉은색으로 지져놓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려객들속에는 류달리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미 
모의 한 녀성도 있었다. 20살전후의 밝고 정차고 유혹적인 미소 
를 날리 는 처 녀 였다. 굽실굽실한 금발머 리 에 발레무용수처 럼 몸 
매 도 날씬했다. 게 다가 몸에 좀 끼우는감이 있는 노란 런닝 샤쯔 
를 입고있어 춤추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황금빛으로 물든 앞가슴 
이 률동적 으로 오르내 리 며 흥떡이 였다. 점 잖지 못한 사람들, 특 
히 젊은이들이 그 부위에 로골적인 굶주린 눈길을 박고있었다. 그 
러나 미모의 젊은 녀성은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 걸어 
갔다. 

비행장출입구에 이르자 그곳에 서있던 경찰들은 비수같이 예리한 
눈길로 그 녀자의 얼굴파 려권의 사진을 거듭 대조해보았다. 

이름 : 따마라 분께 비떼르 

성별: 녀자 

민족별:도이췰란드인 

생년월일 : 1949년 5월 12일 

출생 지 : 아르헨띠 나 

국적:서부도이췰란드 

비행장출입구밖에서는 신사풍의 사나이가 그를 마중했 다. 

《안녕 하십 니 까, 따냐양. (그는 로씨 야식 으로 따냐라고 발음했 
다. ) 난 아돌프선생의 부탁을 받고 마중나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212 



따니 아는 벌써 그가 손짓하는 고급승용차에로 춤추듯 걸어 가고있었다. 

…바로 이 녀성이 20세기 60년대에 세상을 진감한 전설적인 체 
게바라국제유격부대의 유일한 백합꽃 따니아(따마라 분께 비떼 
르)이 다. 따니 아의 라빠스도착으로 체 게 바라의 국제 주의 적유격 
대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서게 된다. 그 녀자야말로 체 게바라의 
가장 믿음직한 정보원천, 보급물자와 재정의 깊은 샘터였다. 

후날 체 게바라에 대하여 두름한 책을 써낸 한 전기작가는 따니 
아의 라빠스도착과 이후의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아르헨띠나에서 살던 도이췰란드인 아버지와 로씨야인인 어 
머니사이에서 태여난 따니아는 뛰여난 재기와 아름다운 용모로 사 
탐들의 이 목을 집 중시 키 군 했 었 다. 그러한 따니 아가 라린 아메 리 카 
에서 제일 락후한 독재국가인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에 인류학을 
전 공하는 도이췰 란드인 녀성 학자로 나타나자 수많은 정 부고관들 
과 장령들, 외교관들파 기자들, 예술계의 명사들이 그 녀자에게로 
벌떼처 럼 모여 들었다. 지 어 대 통령 바리엔또스와 군부의 실권자 오 
반도장령까지 그 녀자의 쌀통에 모습을 나타낼 정도였다. 

따니아는 갖가지 민속예술과 토착민들의 노래를 발굴하는 한편 제 
1차 볼리비아민속옷전시회를 여는것으로써 자기의 활동을 시작 
하였다. 얼마후엔 라빠스종합대학 전기공학부 학생이며 광산기 
사장의 아들 마리오 마르띠네 스와 결혼하였다. 

결국 따니아는 볼리비아공민권과 려권을 획득하고 이웃나라 아르 
헨띠나와 우루과이, 꼴롬비아에도 자유자재로 오갈수 있게 되였다. 
이 모든 사업을 따니아는 오직 체 게바라의 지시에 따라, 그와의 합 
의에 의해서만 진행하였다. 그는 좌익계의 인사들이나 로조지도자 
들과는 일체 상종하지 않았다. 

차츰 따니아는 라빠스의 모든 명사들이 한시도 선망의 눈길을 떼 
지 못하는 볼리비 아상류사회의 매혹적 인 비너스, 눈부신 사랑의 별 
이 되였다. 감히 태양과 빛을 다투려 하는 전등알이 있을수 없듯이 
그 녀자와 매력을 다투려는 녀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그러나 이 모든것은 따니아가 영웅적으로 전사한 후, 그것도 오 
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213 



밤이였다.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은 자기가 한주간동안이나 머 
무르고있던 룡성기계공장을 떠나 수도로 돌아가기 위하여 함흥철도 
국 지선에 서있는 차칸에 올랐다. 도수높은 안경을 낀 담당의사 신 
성우박사와 위생가방을 멘 간호원 흥이순이 그의 뒤를 따르고있었 
다. 그들 역시 지난 한주일동안 김일과 같이 통성기계공장에서 침 
식을 했었다. 

그새 김 일 제1부수상이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자지 않았으므로 담 
당의사와 간호원도 현장에서 거의나 잠을 설친탓에 두눈이 충혈되 
고 부어있었다. 검질긴 그들을 쫓아버리지 못해 김일이 수단과 방 
법을 다했지만 허사였었다. 그들은 한사코 김일을 그림자처럼 묻어 
다녔다.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서 내각 제1부수상의 건강이 념 
려되시여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돌보라고 친히 이르시였던것이다. 

키가 늘씬한 렬차원처녀가 김일이 렬차에 오르자 맵시나게 거수 
경례를 했다. 

김일은 손을 들어 답례하다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 
았다. 금시 승강대로 오르는 통성기계공장의 지배인파 책임비서가 
눈에 띄였던것이다. 

〈〈동무들은 뭐요?》 하고 김일이 언짢아했다. 〈〈부지깸이도 
뛰는 세월에 뭣때문에 역예까지 따라나오는거요?》 

그새 내각 제1부수상과 퍼그나 친숙해진 지배인이 허물없이 웃 
으며 말했다. 

《저 … 1부수상동지, 손님을 바래주는거 야 조상전래의 례법 이 아 



님니까? 그런 법도야 잘 지켜야지요.》 

《내가 무슨 손님인가? 그건 그렇구… 우리가 무엇보다 잘 지켜 
야 할 법도가 원지 아직 모르고있는게 아니요?》 

〈〈아님니다, 알고있습니다.〉〉 

여전히 비위살좋게 느물거리고있는 지배인을 마주보며 김일은 
《헛참…》하고 혀를 차고말았다. 이어 그는 피끈이 가득실린 눈두 
덩을 손으로 힘껏 문지르고나서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들도 우리 수령님께서 쎄브가 못되게 노는것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큰지 잘 알고있지 않소. 그러니 당앞에 맹세다진대로 황 
철의 랭간압연기와 강선의 중압연기를 꼭 제기일내에 만들어보내야 
해. 그러면 수령님께서 얼마나 기삐하시겠소. 언제든 이걸 잊지 마 

오.〉〉 

혈기방장한 지배인이 기세좋게 대답했다. 

《제1부수상동지, 꼭 제기한내에 그것도 쎄브것보다 못하지 
않게 잘 만들겠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책임비서가 정중하게 말했다. 

《대신 우리가 부탁하고싶은건 1부수상동지의 건강때문에 우 
리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몹시 걱정하신다는데 부 
디 건강에 류의 …〉〉 

김일은 손을 홱 내저었다. 

《잘있소. )) 

렬차는 5월의 밤을 헤가르며 끝없이 질주해갔다. 창백한 달이 찢 
어진 구름장사이로 잠간 얼굴을 내밀고 차안을 들여다보더니 어느 
결엔가 또 숨어버 렸다. 

김 일은 사업수첩 을 정 리 하다가 급기 야 배 를 그러쥐 였다. 말썽 많 
은 복통이 또 시 작된것이 였다. 무엇 인가 내 장을 잠아비 틀고 힘껏 매 
달리는듯 했다. 

힘들게 창문을 열었다. 모진 아픔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머리를 식 
히고싶었으나 오쓸한 밤공기와 함께 어느 강기슭의 물크러진 감탕 
내만 진하게 쓸어들었다. 그는 다시 창문을 닫았다. 침대로 돌 
아오는데 또다시 심한 동통이 복부에서 몸부림쳤다. 밸이 꼬이고 칼 
215 



날로 창자를 도려내는듯 했다. 그는 한손으로 배를 그러안고 다른 
손으로는 배허벅에 매고있던 군관용가죽혁띠를 풀었다. 아픔이 심 
할 때마다 그것을 더 힘껏 조이군 했었다. 비록 물리적인, 아주 무 
지막지한 강제적방법 이긴 했지만 그렇게 하면 마음에도 좀 위안이 
되는것 이였다.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답할수가 없 
었다. 이마우엔 어느새 진한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내돋고있었다. 
마침 담당의사인 신성우박사와 간호원 홍이순이 안에서 아무 대답 
소리도 없자 급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니?! …》 

비명과도 같은 간호원처녀의 부르짖음… 김일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이어 의사와 간호원이 바삐 서둘며 그를 침대에 눕히고 주 
사바늘을 련이어 찌르는 동안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신음소리를 삼 
키였다. 주사를 놓으며 그의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훔쳐주던 간호 
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신음소리 를 내십시 오. 1부수상동지,정 아플 땐 막 소리치 
는것도 약이 된답니다.〉〉 

그래 서 인지 악문 이 새 로 신음소리 가 새 여 나왔다. 

《예, 좋습니다. 1부수상동지, 아주 좋습니다. 헌데 좀 더 크게 
소릴 치십시오, 예? 그래야 아픔이 무서워 달아난답니다.》 

모진 아픔속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라기보다 아픔을 토하 
는 발작적 인 기 침 소리 같은것이 였 다. 

《보세요, 아픔이 달아나지요?》 

대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응… 처녀가 아주 요一용해.〉〉 

《간호원입니다. 그저 처녀가 아니구…》 

〈〈음一 그一그렇지.〉〉 

아픔이 조금씩 덜어지는듯 했다. 진통제주사가 온몸에 퍼지는것 
이 감각되 였다. 옥죄 이던 몸이 차츰 풀리 기 시 작하고 약냄새를 머 
금은 후더 운 김 이 입 으로 흘러나왔다. 

〈〈이건 뭡니까?〉〉 


216 



간호원이 눈을 흡뜨며 물었다. 배를 꽉 동여맨 군관용혁띠를 그 
제야 발견한듯 했다. 

〈〈치 료기 구. )) 

《예?! …》 

《아픔을 묶어놓는 가죽띠요. 정 아플 땐 이렇게 과一악 묶어놓 
으면 그놈의 아픔이 꼬_몸짝을 못하거던.》 

《아니, 1부수상동지.〉〉하고 심각한 안색으로 맥을 짚고있던 신성 
우박사가 안경알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키더니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야만적〉인 병치료법을 도대체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뭐, 〈야만적〉이라구?!〉〉하고 김일은 진땀을 뽑으면서도 힘 
들게 말을 이었다. 〈〈우린 산에서 싸울 때 … 약 한봉지 없구 주사 
기 같은건 생각두 못할 때 …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만 했던거요, 박 
사선생 ! …》 

신성우는 더 말을 못했다. 대신 김일의 배와 허리를 묶은 가죽혁 
띠를 풀려고 안깐힘을 썼으나 혼자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간호원 
까지 합세해서야 겨우 혁띠고리를 구멍에서 뽑아내였다. 아픔을 묶 
던 가죽띠, 그야말로 〈〈야만적〉〉인 치료기구였다! … 

그때부터 담당의사와 간호원은 렬차가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김 
일 의 차칸을 한시 도 떠나지 않았다. 

평양역두에는 김일의 차가 나와 대기하고있었다. 차에 오르자 앞 
좌석에 앉은 신성우박사가 운전사에게 귀속말처럼 일렀다. 

《먼저 병원으로 갑시다.》 

김일이 펄쩍 뛰였다. 그가 하는 말을 귀동냥했던것이다. 아니면 
입놀림 으로 짐 작했는지 도 모른다. 

《무슨 소리요? 난 먼저 내각에 가서 할일이 많소.》 

신성우박사는 망설이였다. 그러나 김일의 옆에 자리잠은 담당간 
호원의 립장은 예상외 로 그보다 더 견결하였다. 

〈〈제1부수상동지, 지금 여기서는 그가 누구이든 박사선생님의 지 
시 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네가 월 안다구 그래?〉〉김일이 혀를 찼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 체네가 정말?…》 


217 



〈〈그저 체네가 아니라 담당간호원입니다, 내각 제1부수상동지.〉〉 
여간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처녀가 야무지게 계속했다. 

《그럼 우리도 당중앙위원회 에 가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그대 
로 보고드릴수밖에 없군요.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까?》 

김일은 말이 막혔다. 놀랍게도 어린 처녀가 요진통을 찌른것이다. 
사실 바위같은 성미로 널리 알려진 그였지만 지금 죄꼬만 처녀앞에 
서 입이 얼어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김정일동지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지금 간호원처녀가 맵짜게 
을러메고있는것처럼 김정일동지께 이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극 
히 파장하여 아주 험악한 상태에 이론것처럼 보고드리는 날이면 큰 
변이 난다. 김정일동지이시야말로 혁명동지, 특히 혁명선배들의 건 
강문제와 관련된 일이라면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며 무엇이든 일단 
결심만 하면 하늘이 무너진대도 끝까지 내미시는것이다. 

《운전사동지 !〉〉처 녀가 급히 말했다. 《월하세요, 빨리 떠나지 
않 구?》 

기다렸던듯 차가 떠났다. 갖가지 불빛들이 반사되는 대통로를 미 
끄러지듯 달려나갔다. 그러면서도 운전사는 자주 묻는듯 한 눈길로 
뒤를 돌아보군 했다. 〈〈아니,그럼 저 체네가 하자는대루 해야 합 
니까?》 하는 눈빛 이였으나 김 일은 못 본척 했다. 잠시후엔 간 
호원처 녀 를 흘겨보며 무뚝뚝하게 물었 다. 

《체네도 당원인가?》 

〈〈아니, 내각 제1부수상동지.》처녀가 샐쭉하여 대답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내각 제1부수상동지의 담당간호원입니 
다 . )) 

김일은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좋아. 그럼 … 정 식 으로 묻는데 간호원동무도 당원 이요?》 

〈〈아님니다. 전… 사로청원입니다.〉〉 

《뭐?》 김일은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두 뭐 
나한테 … 아니, 당중앙위 원회 부위 원장이 구 내 각 제호부수상인 나한 
테 막 삿대질을 해? 그것두 감히 당중앙위원회까지 꺼들면서?…》 
실은 처 녀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서 우정 엄포를 놓아본것이였 
218 



다. 하지만 처녀는 대바람 쑥 움츠러들고말았다. 몸을 잔뜩 옹 
송그리는데 그 눈망울엔 벌써 핑一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어느새 처녀의 목소리도 눈 
물에 젖어들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얼마나 당부하셨는지 
아십니까. 내각 제1부수상동지의 건강에 대해선 전적으로 우리가 책 
임져야 한다구 말입니다. 그 누가 뭐라구 하던 제1부수상동지의 건 
강문제를 놓고는 한치도 양보하지 말라구 하셨는데…》 

《뭐?…》 

김일은 눈굽이 저릿저릿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평소에 눈물을 모르는 사람이다. 수많은 전우들을 땅에 묻 
으며 걸어온 혁명의 먼길에서 어느덧 눈물마저 다 말라버린듯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남보다 더 많이, 더 아프게 울군 하는 그였다. 

승용차는 어느새 내각청사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운전사가 다시 
금 뒤쪽을 피끗 돌아보았다. 

김일이 말했다. 

《이건 질서야. 난 먼저 수령님께 사업보고를 드려야 해.》 

승용차가 속도를 높였다. 광장을 꿰지르며 어느새 내각청사정문 
앞으로 돌입 하더 니 삐一익 ! 하는 소리 와 함께 급정 거했다. 그러 나 
김일은 인차 차에서 내릴념을 안했다.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채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 
나서야 마침내 허리를 펴더니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 김일은… 내각 제1부수상이기 전에 먼저 수령님의 전사 
란 말이요. 난 박사선생이나 간호원동무가 언제든 이걸 잊지 않기 
를 바라오.》 

신성우와 홍이순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의 어조가 너무 
도 엄숙하게 들렸던것이다. 

김일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근래에 와서… 정말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이요. 글쎄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해서 수령님의 사업부담을 덜어드려야 할 내 
가 계속 앓다보니… 수령님파 김정일동지께 근심만 드리구있으 
니 … 정말 못 견디겠소.》 


219 



그의 더부룩한 검은 눈섭 이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심중의 아픔때 
문인지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러니 박사선생 그리구 간호원동무, 이 김일을 많이 도와주 
오. 내가 너무 애만 멕인다구 생각지 말구 필요한 땐 단단히 신칙 
해주오. 그래서 내가 자리에 눕지만 않게 해주면 정말 고맙겠소. 
이제 두구보시오. 내 꼭 당앞에 단단히 총화를 짓겠소. 그새 내가 
김정일동지의 뜻을 받드는 동무들의 그 마음을 너무 몰라줬다구 말 
이요. 간호원, 어드래? 그렇게 하면 되겠지?…》 

눈물젖은 처녀의 얼굴에 청사에서 내비친 불빛들이 어통거리고있 
었다. 마치도 빛의 물결이 그 얼굴에서 춤추고있는듯… 

《좋습니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고마워, 간호원.》 

김일은 무엇이 고맙다는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더 … 고맙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 

처녀는 밝게, 정차게 옷고있었다. 

김 일도 소리내 여 옷었다. 

…다음날 김일은 헤산의 인민영웅탑건설사업소 지배인으로부터 
뜻밖의 보고를 받았다. 알수 없는 원인으로 인민영웅탑건설이 중지 
되 였다는 놀라운 소식이 였 다. 


2 


백두산이 지척이고 압록강을 끼고있는 북방의 도시 헤산은 아직 
도 새벽이면 오싹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군 했다. 간혹 씨비리의 
찬바람이 때없이 밀려내려올 때도 있었다. 

라정아는 바람에 날리듯 종종걸음을 옮기다가 자기들의 작업장인 
천막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멀리서 우편통신원처녀가 자전거 
를 타고 달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통신원처녀의 머리가 바 
탐에 홀날리고있었다. 류달리 바람질이 심한 날이 였다. 


220 



라정아는 처녀가 패궁정을 끼고있는 언덕을 올라 〈〈인민영웅탑건 
설전투장》이라고 크게 쓴 표말뚝을 지날 때까지, 그리고 집채같은 
화강석들이 가득 무져있는 건설장 한가운데로 달려올 때까지 한자 
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 
했다. 부모도 친척도 없는 그에게 날아올 새소식도 별로 없었건만 
그래도 무엇인가 은근히 기다려지는 마음이였다. 

건설장 여기저기에서 많은 남녀청년들이 처녀통신원을 보자 자석 
에 끌리듯이 우르르 몰려갔다. 이어 떠들썩한 인사말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통신원처녀가 그들모두에게 소리쳐 묻는 말이 바 
람결에 실려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현장이 이렇게 조용해요?》 

처녀의 물음에 다들 시무룩해진것 같았다. 누군가 길게 탄식조로 
내뿜었 다. 

《지도검 열 소조가 내려왔소.》 

《지도검열? 아이참, 그게 공사와 무슨 상관이예요?》 

《챠, 이런! 지도검열이 시작됐다는건 바로 기념비공사도 사 
탐들도 다 얼 어 붙게 만든다는 소리 란 말이 요.》 

《예?》 

그 다음말은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세지면서 건설장 여기저기에 
서 먼지의 회오리가 일었다. 라정아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그 
러나 여전히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동신원처녀를 기다렸다. 처녀 
가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며 신문을 비롯한 갖가지 출판물들을 나누 
어 주고 곁을 지 나쳐갈 때까지 까딱않고있었다. 

통신원처녀는 반갑게 여기 인민영웅탑건설장의 유일한 녀성조 
각가인 라정 아에게 정찬 눈인사를 보내며 자전거를 밀고 그의 앞을 
그냥 지나갔다. 오늘도 라정아에게 오는 편지는 없는것이다. 편지 
를 쓸 사람도 없다. 영원히 잊지 못할 그이, 림근우선생도 인제는 
이 세상에 없는것만 같다. 과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것 
인 가? ! … 

라정 아는 몸을 돌렸다. 이윽고 천막으로 들어갔으나 오래도록 일 
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가 조각한 항일유격대의 녀대원파 부녀회원, 
221 



소년들이 두손을 모두어잡고 천막안에 망연히 서있는 그를 묵묵히 
지 켜 보고있었 다. 

얼 마전까지 조각가들은 동평 양체 육관에 서 200여 상에 달하는 
항일유격대원들과 유격근거지인민들의 각이 한 군상을 조각했었 
다. 여 러달동안 그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해 당한 인물을 골라 모델 
을 세워놓고 스케치를 하고 흙으로 빚어 전반적인 기념비형성안에 
조화되는가를 검토한 다음 매 조각품마다 부분들로 갈라서 동으로 
주물을 하고 그것들을 렬차에 싣고 여기 현지에까지 날라왔었다. 이 
제 그 조각품들을 대기념비의 단우에 조립(용접 )하고 연마하는 작 
업만이 남아있었는데 돌연 무슨 지도검열소조가 내려오면서 조립작 
업이 중단되고말았다. 아까 남녀청년들이 우편통신원처녀를 둘 
러싸고 떠들어댄것처럼 지도검열소조가 내려오면서 공사도 사람 
들도 얼 어불게 했던것 이 다. 

갑자기 천막문이 활 열리더니 조각창작단에서 제일 젊은 로경호 
가 들어왔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하고 배치된 새파란 젊은이이지만 
비상한 재능으로 하여 창작단에서는 전도가 가장 촉망되는 젊은 조 
각가로 인정되고있다. 하여 대기념비의 주인공도 그가 맡고있다. 

〈〈에 익 ! 날씨 도 더 럽 군. )) 하고 로경 호가 투덜 거 렸다. 《이 거 무슨 
놈의 바람질이 이렇게 심해?》 

라정 아가 말했다. 

《지도검열소조가 몰아온 바람이니까 셀수밖에.》 

《예?…》 

라정아는 쓰겁게 옷었다. 

《조심하세요, 로경호동무. 이 라정아란 녀자도 저 바람질 못지 
않게 치마바람을 챙챙 일군다구 시비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 

로경호는 비로소 라정아가 왜 비틀린 소리를 하는지 알겠다는듯 
핫하!… 하고 크게 웃어대였다. 지도검열소조로 내려온 사람들 
이 홀로 사는 녀성조각가 라정아가 내각설계실장이며 지금 대기념 
비 의 총설계 가인 리 웅산과 어쩌 구저쩌 구 한다며 색다르게 볼뿐만 아 
니라 은근히 시비질을 하고있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던것이다. 

《아, 그러면》로경호가 옷으며 말했다. 〈〈바람질과 시비질 
222 



중에서 어느쪽이 더 센가 그 사람들더러 한번 갈라보라고 합시다.》 
〈〈그럼 아마 시비질이 더 세다는게 증명될거야.〉〉 

라정아의 말에 로경호가 반대했다. 

〈〈아니, 바람질이 더 세요. 자연이 만든거니까!〉〉 

《아냐, 시 비 질이 더 세 ! 사람이 만든거 니까.》 

《아니예 요, 바람질 !》 

《아냐, 시비질!〉〉 

《아니, 바람질!》 

《아니, 시비질!》 

라정아가 먼저 손을 내저었다. 

〈〈아이참, 우리가 왜 이런담? 애들처럼 …》 

두사람은 그만 소리내 여 옷고말았다. 옷고보니 어 처 구니 없는 일 
이 였다. 잠시 침 묵이 흘렀다. 천막이 웅웅거렸다. 밖에서 바람 
질 이 더 세 지고있 었던것 이 다. 

그때 전 화종소리 가 울렸 다. 로경 호가 흠칫했다. 

《아, 참…》 

그가 바빠하며 라정아에게 눈짓했다. 빨리 전화를 받으라는 신 
호였다. 라정아는 무심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조각창작단입니다.》 

〈〈동무 !〉〉저 쪽에 서 대 뜸 석쉼 하게 으름장을 놓는 소리 가 울려 왔 
다. 지도검열책임자 방만길이였다. 《동무 라정아지? 헌데 총화모 
임 엔 왜 참가하지 않는거요, 에?》 

〈〈총화모임 이 라뇨?…》 

《지도검열중간총화 말이요. 뭐?… 못 들었다구? 넨장, 온통 이 
모양이라니까. 동무, 인민영웅탑건설에서 야 조각가들이 기본이 
아닌가?… 잔말말구 당장 총화에 참가하오.》 

라정아는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로경호쪽을 돌아보았다. 동문 알 
고있 었는가? 하는 눈빛이 였다. 로경 호가 입 을 비 쭉거 렸다. 

《그래서 왔는걸요. 당장 가서 정아동질 데려오라구 했는데 그만 
통질을 하다보니 …》 

라정 아는 쓰겁게 옷고말았다. 귀 전에서는 방만길의 성난 목소리 
223 



가 계속 웅웅거 렸다. 방만길은 키가 훤칠하고 두눈이 부리부리한 미 
남형이나 성미는 장작개비처럼 메마론 사람이다. 그가 처음부터 자 
기를 올곧지 않게 바람쟁이녀자처 럼 보고있었으므로 라정 아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찬물을 들쓴듯 으시시 몸을 떨군 했다. 

로경호가 뜨아해하며 물었다. 

〈〈정아동지, 왜 그럽니까, 빨리 가지 않고?〉〉 

《응?!…》 

라정아는 이상하게 옷으며 로경호를 돌아보는데 그의 얼굴은 피 
기까지 가셔진듯 해족하니 질려있었다. 


3 


건설장지 휘 부천막안에 서 는 자그마한 화로우에 놓인 구리 주전자가 
뚜껑을 들썩거리며 뜨거운 증기를 씩一씩 내뿜고있었다. 어떤 사람 
의 취미에 맞추어 차나 커피를 끓이는 모양인데 그 누구도 거기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정도로 방안의 분위기는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지도검열소조책임자인 방만길 역시 자기 눈앞에서 야단스레 몸부림 
치는 주전자엔 아랑곳하지 않고 뒤늦게 들어서는 라정아와 로경호 
만 마뜩지않게 흘겨보았다. 

《동무네 참… 빨리 자리에 앉소.》그는 벽에 걸린 대기념비형 
성 안을 가리키며 하던 이 야기를 계속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같이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요란스러운 기념비를 세우면 큰 나라 사 
탐들이 뭐라구 하겠소, 에? 쏘련이나 중국과 같이 혁명을 오래 한 
나라들도 이렇게 큰 기념비는 아직 없소. 오죽했으면 박부위원장동 
지가 이걸 보구 웃부분은 잘라버리라고 했겠소. 이만큼 잘라 키를 
낮추라고 말이요!》 

그가 지금 말하는 박부위원장이 바로 당의 요직 에 있는 박금철이 
라는것을 라정아는 잘 알고있다. 그 박금철이 얼마전 여기 대기념 
비건설장을 직접 돌아보았는데 그가 돌아가자 지도검열소조가 내려 
224 



왔던 것이다. 

〈〈그런데 박부위원장동지가〉〉하고 방만길은 손에 들고있는 지시 
봉으로 벽에 걸어놓은 형성안을 쿡쿡 찍어가며 열을 올리였다. 

《이걸 보면서 일일이 지적해춘게 언제요? 그런데도 아직 아무런 대 
책도 없이 그냥 속수무책이니… 대체 어쩌자는거요? 그래 실장동무, 
말 좀 해보오. 동문 당의 지시에 무슨 의견이 있소?》 

<(•••)) 

대답이 있을수 없다. 당의 지시라는데 감히?… 라정아는 물이 끓 
는 주전자곁에서 조각창작단의 리한윤단장파 재능있는 조각가 오대 
형과 나란히앉아 땀을 뽑고있는 리웅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 
었다. 몇달전 렬차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음 여리고 눈물많던 혜영 
이의 아버지인 내각건축설계실장 리웅산, 바위같은 고집에 소힘줄 
같이 질기기로 유명한 사람, 씨름선수같이 어깨가 버그러지고 얼굴 
도 그의 불그레하고 큼직한 주먹코처럼 누군가 되는대로 막 빚어놓 
은것 같은 사람, 저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나비같이 여리고 예쁘 
장한 헤영이라는 딸이 생길수 있었을가?… 

〈〈실장동무!〉〉 방만길이 몰풍스럽게 어성을 높였다. 〈〈무슨 
의견이 있으면 내놓고 말하란 말이요.》 

리웅산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그럼 좋소.》하고 방만길 이 다시 지 시봉을 손에 잠으며 계 속했 
다. 〈〈오늘은 중간총화이니만큼 당장 고쳐야 할것부터 토론합시다. 
박부위원장동지가 지적한대로 우선 탑의 규모를 가능한껏 작게 고 
쳐야겠소. 탑신의 높이도 이쯤까지 자르고 단의 크기도 한절반 줄 
입 시 다.》 

땀을 뽑고있던 리웅산이 돌연 오한이라도 나는듯 몸을 떨더니 신 
음소리 처 럼 내밸 았다. 

《아니, 공사가 다 진척된 이제 와서… 콩크리트로 친 탑신을 자 
르다니 요? 그게 뭐 톱질을 하는 나무라구…》 

방만길의 눈빛 이 매서 워졌다. 

《실장동무! 동문 그래 이게 당의 지시라는걸 모른단 말이요?》 
리웅산이라고 왜 그걸 모르겠는가?… 라정아는 불안하여 몸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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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했다. 하지만 저 형성안이야 내각에서 이미 비준했던것이 아닌가?… 
리웅산실장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있는지 모른다. 그가 어벙벙해져 
서 대답을 못하는것을 보며 라정아는 속이 한줌만해 있었다. 

〈〈동무들.》하고 방만길이 격해진 자기의 감정을 눅잦히며 말 
했다. 〈〈동무들도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베이징의 인민영웅기 
념비엔 191명의 희생된 영웅들이 부각되여있다구 하오. 그런데 우 
린 그저 동판에 부각을 하는 정 도가 아니구 산사람보다 더 큰 조각 
품들을 세우고있소. 하나하나를 다 동으로 주조해서 말이요. 그것 
두 이 백스무명 이 넘 으니 … 너 무 요란하지 않는가?…》 

그의 실팍진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눈앞의 주전자에서 뿜어대는 
뜨거 운 증기발을 피 하려 는듯 했 다. 증기발이 세 왔다. 하지 만 방만 
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여전히 거기에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박부위원장동진〉〉하고 방만길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 
마를 문지르며 계 속했다. 〈〈탑의 규모가 작아지 는데 맞게 조각상들 
의 수자도 줄이 라는거 요. 그리구… 저 형 성안에 그려져 있는것처 럼 
항일유격대원들만 가뜩 내세우지 말구 국내인민들의 투쟁모습도 형 
상해야겠다고 특별히 강조하셨소. 원산로조투쟁이나 단천농조 
같은것도 배합하자는거요. 그래야 인민영웅탑이라는 기념비의 
이름파도 더 잘 어울릴게 아닌가. 될수록 우리 인민의 애국투쟁사 
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하자는게 박부위원장동지의…》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때 리웅산이 또 〈〈음一〉〉하고 듣기 
에도 거북한 가래끓는 소리를 내였던것이다. 방만길이 그에게 날카 
로운 눈빛을 던졌다. 

《실장동문 왜 당의 조치에 무슨 의견이 있소?》 

리웅산은 천천히 타는듯 한 입술을 혀로 감빨았다. 

《우린 이 탑을 보천보전투승리 30돐을 맞으며 세우는걸로 알고 
있는데 원산로조요, 단천농조요 하는건 왜 더 넣어야 하는지… 도 
무지 모르겠군요.》 

《아니, 실장동무도 전날 박부위원장동지가 하는 말을 같이 듣지 
않았소.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구 말이요.》 

《뭐가 원지 참… 어쨌든 이건 내각에서 비준해준 형성안인데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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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 올라간 오늘날에 와서 갑자기 규모가 크다, 인물이 너무 많 
다 어쩌다 하니…〉〉 

〈〈이 동무가 정말?!…》 방만길이 노기에 차서 부르짖었다. 

〈〈그럼 말해보一 동문 우리의 애국선렬들의 피어린 투쟁을 조국력 
사에서 지워버리자는거요?》 

《력사야 지워집니까.》 

리웅산이 코웃음쳤다. 방안의 공기가 대뜸 험악해졌다. 라정 
아는 속이 졸아드는것을 느꼈다. 방만길을 쳐다보니 그는 숨소리도 
거칠고 손에 든 지시봉을 움켜쥐고있는것이 마치도 그것을 금시 꺾 
어버 릴듯 했다. 주전자안에서도 물이 끓는 소리 가 격 렬해졌다. 

〈〈실장동무!〉〉 방만길은 입귀를 바르르 떨었다. 《동무가 지 
금 누구를 믿구 그렇게 교만방자하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좋 
지 않소. 내놓구 말하는데 박부위원장동진 이 형성안이 잘못됐다고 
했소. 그래서 다시 만들라는거요!》 

《아니, 뭐라구요?!…》 

《똑똑히 알아두시 오. 부위 원장동지뜻은 혁 명 전통교양을 공산 
주의교양과 용해시켜 한가마에 삶아먹어야 한다는거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동무가 알기나 하는가?〉〉 

(("•)) 

리 웅산은 말이 막힌듯 했다. 손끝으로 목덜미 를 긁고있을뿐이였 
다. 다혈질이고 배짱이 드센 리웅산이건만 너무도 높은 직위에 있 
는 사람의 지시였던만큼 더 는 자기 를 주장하지 못하고 몰리 고있는 
것 같다. 그를 지 켜 보면서 라정 아는 속이 떨 려나는것 을 어 쩔수 없 
었다. 끈경에 빠진 리웅산을 도와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에 입 
술이 달달 말리는듯 했다. 하여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 
어섰다.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 
만 우선 리 웅산을 폭파해 버리 려 고 타들어가는 도화선 의 심 지부터 잘 
라버려 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도검열소조책임자동지.〉〉라정아는 말라든 입술을 혀로 추 
기며 말했다. 《전 전쟁때 서울서 의용군에 입대해서 락동강까지 갔 
다 왔습니다.〉〉 


227 



《용무만. )) 

라정아는 방만길의 비꼬는듯 한 말투엔 개의치 않았다. 가볍게 미 
소를 지었다. 정작 말을 시작하니 어수선하던 마음이 개운해지는것 
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녀전사들이 전쟁판에서 꽃나이청춘을 바쳐 싸웠겠 
습니까. 그래서 전… 우리 녀전사들의 투쟁모습도 저 인민영웅탑에 
세우는게 어떨가 하고 생각합니다.》 

방만길의 부리부리 큰 눈에 조소의 불빛이 번득이였다. 

《허 … 조각가가 제 모습까지 인민영웅탑에 쪼아박고싶다?》 

〈〈뭐, 그러면 안됩니까?》 라정아는 여전히 천진스러운 미소 
를 그리고있었다. 〈〈한가마에 삶아먹을바엔 단천농조랑 서울의 
용군이랑 다같이 삶아서 …〉〉 

그가 말을 맺기도 전에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며 키 
득거렸다. 방만길의 희멀건 얼굴이 사뭇 구겨지기 시작했다. 비로 
소 라정아가 무엄하게도 지도검열소조책임자인 자기를 조소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듯 했다. 

〈〈동무! 뭘 말하자는거야. 누구한테 야질거리는가 말야. 동무한 
텐 뭐 문제가 없는줄 아는가, 영?…》 

방만길은 조각창작단 단장인 리한윤과 조각가 오대 형 을 바라보았 
으나 말은 꺼내지 못했다. 한순간 그들도 지금 박부위원장의 조치 
에 불만이 가득하다는것 을 상기했던것 같다. 하여 그는 옆 에 앉아 
있는 건설사업소지배 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보우 지 배 인동무, 저 녀 성조각가가 여 기 오자부터 좀 못나게 
굴었다면서? 죄꼬마한 아이조각대신 단천농조책 임 자를 조각하라 
는 상부의 지시를 놓고… 뭐 어떻게 비꼬는 소릴 했는지… 지배인 
동무도 좀 말해보우. 도대 체 저 동무 어 떻 소?》 

건설사업소지배인은 목이 앙바름하고 웃을 때면 거의나 눈이 보 
이지 않는 사람이다. 언제 어느때나 통질을 잘하고 욕설대신 우스 
개소리 로 사람들을 휘 여잠는 능구랭이 로 소문이 났었다. 그가 라정 
아를 돌아보며 씩 옷었다. 

《예, 아주 정 열적 이 구 담찬 녀성입 니다. 오죽하면 녀자가 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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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조각칼을 쥐구 사람얼굴을 막 깎구 불이구 하겠습니까.》 
지배인의 말에 사람들이 또 키득거렸다. 그러자 심한 불쾌감을 느 
낀 방만길은 그를 외면하고 라정 아를 견주며 싸늘하게 말했다. 

〈〈난 아오, 저 의용군출신 녀성조각가가 지금 리웅산실장동물 편 
들지 못해 속이 타한다는걸 말이요. 참, 조각창작단 단장동무…》 

《예.》 

리 한윤단장이 기 다리 고있은듯 즉시 자리 를 차고일 어 났다. 

〈〈아니, 아니요.》 

방만길은 한순간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깨달은듯 했다. 리한윤 
단장에게 말을 시켜서는 안되는것이다. 그가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럼 조각창작단 단장동무와 건설사업소지배인 그리구 리웅 
산실장동무만 남구 다른 동무들은 나가보시오.》 

라정아는 천막밖으로 나왔지만 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로경호가 
그에게 다가서며 수군거렸다. 

《정아동지, 정말 대단한데요? 단천농조랑 서울의용군이랑 다 한 
가마에 삶아먹자구 할 땐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 

라정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온 지휘부천막에서 불안스 
러운 눈길을 떨수 없었던것이다. 로경호가 이상해했다. 

〈〈아니, 정아동지, 바람도 센데 여기 그냥 있겠습니까?〉〉 

라정아는 여전히 아무말없이 머리만 가로저었다. 저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알지 않고는 그냥 돌아갈수 없었다. 

이윽고 천막안에는 몇사람만이 남았다. 지도검열소조성원들파 방 
만길이 남으라고 한 세사람… 그들을 둘러보며 방만길이 엄숙하게 
말했 다. 

《길게 말할게 없소. 우린 당에서 지시하는대로 무조건 해야 하 
오. 조각창작단 단장동무, 박부위원장동지가 탑의 중심주인공을 유 
격대의 보통지휘관으로 형상하라고 했다는걸 잊지 마시오.》 

〈〈저 그건…》 

리한윤단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 도검 열 책 임 자동무, 한가지 만은 명 백 히 해 둡시 다. 이 탑의 주 
인공을 유격대의 보통지휘관으로 한다면 누구를 원형으로 한다는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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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까?》 

이것은 정통을 찌른 질문이였다. 지금까지 노리고있은것이 분명 
했다. 방만길이 당황해했다. 

《그건 무슨 의미로 하는 소리요?》 

《혹시 박부위원장동질 념두에 둔건 아닌지?…》 

리웅산이 제끽 뒤를 달았다. 

《그럴수가 있소? 박부위원장동지야 항일유격투쟁에 참가한 일이 
없지 않소?〉〉 

〈〈그러게 물어보는 말입니다.〉〉 

리한윤단장이 두눈을 희끗거렸다. 마치 싸움이라도 걸려는듯 한 
표정이였다. 방만길의 얼굴이 사납게 이지러졌다. 두사람을 둘 
러보는 그의 두볼이 검붉은 빛으로 움씰거리고 목에서는 피대가 부 
풀어 오르고있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당의 조치에 의견을 부 
리던 나머지 인젠 박부위원장동지까지 걸구드는가?》 

〈〈아닙니다.〉〉리한윤이 소리쳤다. 《우린 걸구드는게 아니라…〉〉 
방만길이 손을 내저었다. 

《됐소, 동문 앉소. 난 저 리웅산동무한테 묻는거요.〉〉 

리웅산도 자리 에서 일어났다. 

《나도 원칙적인 문제를 말할뿐이요.》 

《동무, 리웅산!》방만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내 말 
을 명심해듣소. 지 금 당에서 동물 색 다르게 보구있다는걸 알기 나 하 
는가? 동문 제 사생 활이 나 깨 끗이 걸 레 질 해 두란 말이 요.》 

《뭐요?〉〉 이번엔 리웅산의 두볼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건 무 
슨 소리요?》 

〈〈저 의용군출신 라정아하구 말이요.》방만길이 분별을 잃고 고 
아댔다. 〈〈실장동무와 그 녀자가 어쩌니저쩌니 뒤소리가 많은데 좋 
지 않소, 응? 좋지 않단 말이요!》 

극도로 흥분한 그들은 천막밖에서 신음소리가 터지는것도 알지 못 
하고있었다. 문앞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라정아가 비틀거리며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동시에 벌려진 입에서는 피로운 신음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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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새빨간 선지피가 흘러 내 렸다. 

저앞에서 뒤를 돌아보던 로경호가 정신없이 달러왔다. 그를 따라 
또 몇사람이… 그러나 벌써 라정아는 의식을 잃고있었다. 그러나 천 
막안에서는 그런줄도 모르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모욕적인 발 
언과 그에 대한 앙갚음과도 같은 분별잃은 말다름이 계속되고있 었다. 

리웅산이 입술을 악물고 방만길에게로 한걸음 쑥 다가갔다. 방만 
길이 뒤걸음쳐갔다. 또 한걸음… 인제는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길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순간 건설사업소지배인과 조각창작단 리한윤 
단장이 리 웅산을 막아나섰다. 

〈〈실장동무, 어쩌자는거요?〉〉 

〈〈아,이러지 마시오.》 

두사람에게 붙들린 리웅산은 미친듯 한 흥분을 누를길 없어 눈앞 
의 방만길에게로 뜨거운 입김을 퍼부었다. 

《이… 비렬한!》 

《뭐 , 뭐 라구?〉〉하고 방만길은 목을 졸라매 운듯 허덕 이 면서 
도 계속 고아대였다. 《리웅산!… 내 동무한테 명백히 말해두는데 
박부위원장동진 벌써 동무에 대해 결론했소. 한번 더 당에 도전하 
면 단단히 문제를 세우라고 말이요, 알겠소? 동무같은 코대는 우 
리한테 필요없단 말이요!》 

리웅산은 숨이 멎는듯 허덕이고있었다. 두사람에게 붙들린채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아직 이렇듯 로골적인 인신공격을 
받고 모욕감에 치를 떨어본적은 없었다. 그는 이를 갈며 신음하다 
가 돌연 두사람을 활 뿌리쳤다. 그리고는 몸을 획 돌려 천막의 한 
쪽벽 을 가득 채 운 형성안을 잠아뜯기 시 작했다. 

〈〈필요없다?!…〉〉 

극도로 흥분한 리 웅산은 비칠거 리 며 형 성안을 뜯어 내 리 다가 그만 
커다란 못에 팔굽이 찢기기까지 했다. 팔굽에서 피가 흘렀다. 그 
러 나 끝까지 형 성안을 뜯어 내 려 둘둘 말아서 는 옆구리 에 끼 였다. 

《필요없단 말이지?》 

성 이 독같이 난 방만길 이 손가락을 내 지르며 소리쳤다. 

《필요없어, 당신같은건! 여기서 썩 사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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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겠소. 가라면 못 갈줄 알구?!… 하지만 당신이, 당신이 책 
임질줄 아시오!》 

리웅산은 걸상을 걷어차며 천막밖으로 나갔다. 뒤쪽에서 건설사 
업 소지배 인과 조각창작단 단장 리한윤이 뭐 라고 소리 쳤지 만 들은척 
도 하지 않았다. 


4 - 


헤산시인민병원의 구급파에서는 혼수상태에 있는 라정아에게 점 
적 을 달고있 었 다. 그를 둘러싸고 리 웅산이 며 리한윤단장, 오대 
형이며 로경호 등 여러 조각가들이 구급의사가 설명해주는 말에 귀 
를 기 울이고있 었다. 

《이 환자는 참 이상한 병을 앓고있 어요.〉〉구급파의 녀의 사가 하 
는 말이 였다. 《보통사람들에 게서 는 거의나 찾아볼수 없는 그런 병 
인데… 의학적으로는 용혈성사슬알균에 의한 전신폐혈증으로 짐 
작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전의 병력서를 찾아봐야만 정 
확한 진단을…》 

리웅산이 참다못해 통을 놓았다. 

《의사선생, 그것도 말이라구 합니까? 그럼 이전의 병력서가 없 
인 진단을 할수 없다는겁 니 까?》 

녀의사가 그에게로 피끗 눈길을 돌렸다. 얼음침처럼 서리찬 눈길 
이 였 다.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는 모르겠지만… 알아두세요, 동진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트집을 잡 
으며 따질 권리가 없어요!》 

일순 리웅산의 얼굴에서 피기까지 가셔지고있었다. 그것을 알아 
차린 로경호가 제때에 그들가운데 끼여들었다. 

《아 의사선생님, 우리 이 환자는… 녀성조각가입니다. 저기 인 
민영웅탑에 세울 부녀회원을 조각하던중이였는데 그만 이렇게 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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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녀의사는 로경호에게 눈길을 옮겼다. 

《나도 물론 동지들이 여기 와서 소리치는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예 
요. 그래서 가능한껏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헤드리는게 아님니까.》 
《예, 그래서 우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번엔 리한윤단장이 진정을 담아 말했다. 녀의사는 한순간 리웅 
산에게 깔끔한 눈길을 던지더니 이렇게 계속했다. 

《사실 이 환자는 병이 아주 심합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지금 
껏 견디여왔는지 정말 놀랄 정도예요. 아마 이렇게 갑자기 쓰러진 
일이 처음이 아닐겁니다. 그래서 전에 어느 병원에서 어떤 진단을 
받고 어떻게 치 료받았는지 알아보는것 이 중요하다는거 예요.》 
《예一 그렇군요.》 

로경호가 열심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것은 리웅산으로 하여 잠 
시나마 마음을 상한 녀의사를 위해주려는 헌신적인 봉사이기도 했 
다. 대신 리웅산은 입을 꾹 다문채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 
었다. 눈귀로부터 허연 서리가 불린 귀밑머리에까지 깊이 폐인 주 
름살이 연신 꿈틀거렸다. 보통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상 
한 병이라니, 그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것인가?… 

그는 라정아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입대 
하여 전쟁 전기간 간호원으로 싸웠으며 전후엔 미술대학을 졸업하 
고 조각창작단에 배치된 녀성조각가라는것이상 더 아는것이 없었 
다. 그러니 지도검 열소조책임자인 방만길이 그들 두사람을 두고 마 
치 정분이 난것처럼, 그 어떤 불륜의 관계인것처럼 내놓고 빈정댄 
것은 너무도 비렬한 처사였다. 사실 그는 라정아와 별로 정을 나눌 
기회를 가져본 일이 없다. 놀랍게도 30대 후반에 이른 미모의 녀 
성 이 아직 미혼이라는데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가 혼신의 힘 
을 다 쏟으며 조각창작에 전념할 때마다, 하여 남달리 창백한 그의 
얼굴에 새벽풀잎에 맺히는 이슬처 럼 식은땀이 송골송골 내돋는것을 
볼 때마다 이름할길 없는 깊은 감동과 함께 그 어떤 애달픈 련민의 
정 에 가슴이 저 려나는것 을 느꼈을뿐이 였다. 

라정 아는 여 러 시 간이 흘러 서 야 혼수상태 에 서 깨 여났다. 눈을 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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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이옥토록 마치 꿈이라도 꾸는것처럼 깜박도 하지 않고 옆에서 
끄덕끄덕 졸고있는 리웅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그 녀자의 작은 손이 리웅산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리웅산은 무 
거운듯이 눈을 떴다. 비로소 자기가 깜박 졸고있었다는것을 깨닫고 
조금 무안해했다. 

〈〈아, 내가 그만…〉〉 

《여기… 오래 앉아계셨어 요?》 

어린애의 목소리처럼 가늘고도 맥이 진한 음성이였다. 

리웅산은 어정찡하게 대꾸했다. 

〈〈아니, 그저 좀…》 

《고마워 요. )) 라정 아가 알릴 듯말듯 미 소를 그리 였다. 〈〈처 음 눈 
을 떴을 땐… 잘 믿어지지 않더군요. 어떻게 총설계가인 내각실장 
동지 가 여 기 계 실가 하는 생각에 …》 

《창작단조각가들은 다 돌아가서 쉬라고 했소. 난 태일 아침 기 
차로 떠나갈 사람이여서 작별인사를 하자구…》 

《떠나시 다니요?〉〉 

《정아동무도 듣지 않았소. 필요없다, 썩 사라져라! 하고 고 
아대던거 말이요.〉〉 

불현듯 라정 아는 슬픔에 목이 잠기 는듯 했다. 밝게 이삐지던 두 
눈이 다시금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미 안해요. 제가 처신을 잘하지 못해 실장동지까지 시시한 소릴 
듣게 했으니…》 

《그게 왜 정 아동무탓이요?〉〉하고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아니, 그들은 이미전부터 저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 
는 나를 뱀새눈을 하고 찌글서 보아왔던거요. 그래서 어제두 괜히 
트집 을 잡고 허 물을 들씌우지 못해 안달아했던 거 요.〉〉 

〈〈가지 마세요.〉〉 라정아가 속삭이였다. 《이대로 그냥 떠나 
가시 면 그들이 또 무슨 감투를 씌울지 모르지 않아요?》 

《감투? 무섭지 않소. 난 신념대루 하겠소. 뭐가 무서워 여기 눌 
러앉아 모욕받으며 구걸하겠소?》 

라정아는 피톱게 숨쉬고있었다. 마치도 내내라도 들이킨듯…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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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금시 터져나오려는 모진 기침을 가까스로 참고있었다. 

그때 간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 깨여났군요.》 

라정아가 그쪽으로 가날픈 미소를 보냈다. 

《미안해요, 간호원동무. 밤늦게까지 고생시켜서.》 

《아이참, 우리야 제 일을 하고있는데요. …〉〉하고 간호원은 손 
에 익은 날탠 솜씨로 체온파 맥박을 재여보더니 어마지두 놀란 표 
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위급하던 환자가 언제 다 정상으 
로 돌아왔을가?…》 

《내 병은 원래 그래요.〉〉라정아가 이번에도 소리없이 옷으며 말 
하였다. 〈〈좀 보기 드문 특이한 병이예요. 금시 혼절했다가도 한 
순간만 넘기면 씻은듯 낫군 해요.》 

간호원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쨌든 의사선생한테 가서 알려드려야겠어요.》 

《아니, 그러지 마세요. 의사선생도 무척 끈하실텐데 좀 쉬게 하 
세요. 일없어요. 내 병은 내가 잘 알아요. 그리구 나도 한땐 간호 
원이였어요.》 

간호원은 잘 믿어지지 않는듯 작고도 새까만 눈으로 먼저 라정아 
를, 다음은 리웅산을 미심쩍게 살펴보더니 고개를 짓숙이고 괜히 약 
병들만 주무르는데 저 혼자 몰래 옷는것 같았다. 잠시후 간호원은 
탁우의 주사기며 약병들을 재빨리 거두었다. 끝까지 두사람쪽은 보 
지 않고 나가더니 문을 꼭 닫아주기까지 했다. 

복도쪽에서 시계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두점을 쳤다. 이 
옥고 사위는 다시 깊은 적막속에 잠겨버렸다. 

〈〈미안하지만》하고 리웅산이 한숨을 내그으며 물었다.〈〈무슨 
특이한 병이라는데 그게 어떤건지 우리가 알면 안되오? 혹시 무슨 
도움이라도 주게 될지 …》 

〈〈아니 예요.》라정 아는 질겁한듯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런건 알 필요 없어요. 그러니 그에 대해선 더 묻지 마세요. 제 
발 부탁이 예요.》 

피기까지 가셔진 라정아의 창백한 얼굴에서 생기를 잃지 않고 숨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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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것은 연신 깜박이는 두눈뿐인듯 했다. 그 눈망울에도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리웅산은 금시 눈물을 쏟을듯 애처톱게 입술을 떨고있는 그 녀 
자를 벅찬 련민의 정으로 바라보다가 그만 눈길을 돌리고말았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윙윙거리 
고있었 다. 마침 내 리 웅산은 자리 에 서 일어 섰다. 

《인젠 가야겠소. 환자한테 부담만 주면서 … 인젠 좀 쉬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새 라정아의 손이 그의 두름 
한 손을 꼭 잡아쥐였던것이다. 작고 하얗고 얄팍한 손이였다. 그 
런데 놀랍게도 무척 깔깔하게 느껴졌다. 조각가라는 직업이 몸과 마 
음에 앞서 손부터 늙게 한것인지도 모른다. 

〈〈가지 마세요.》그 녀자가 불같이 속삭이였다. 《난 이런 밤엔 
혼자 있기가 참 힘들어요. 무섭기도 하구요. 그러니 조금만 더 같 
이 있어주세요. 그럼 제가 옛말 하나 해줄게요, 예?…》 

《허 - 참!…》 

리웅산은 다시 그 자리 에 주저 앉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번엔 몹 
시 거 북스러 운 느낌이 였다. 하여 그는 라정 아의 까칠한 손바닥에서 
자기 손을 뽑고 주머니에서 〈〈제비》담배갑을 꺼냈으나 인차 자기 
가 시인민병 원의 구급파에 앉아있다는것 을 상기 했다. 그는 담배 갑 
을 다시 주머 니속에 구겨 넣 었다. 

이번엔 오래 계속된 침묵속에서 후둑후둑 창유리를 때리는 비소 
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더니 비구름을 몰아온듯 했다. 
오싹하리만큼 썰렁한 비소리가 차츰 더 맹렬해졌다. 그러나 라정아 
는 그 소리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촉수낮은 전등이 켜 있는 하얀 
천정만 하염 없이 올려 다보고있었다. 그 천정너머 아득한 공간을 뚫 
고 흘러간 세월의 추억을 더돔는듯싶었다. 

〈〈전쟁때였어요.》 마침내 라정아가 입을 열었다.《전선중부 
의 어느 한 무명고지에 우리 52사의 전방붕대소가 있었는데… 난 
거기서 진짜전투를 겪었어요, 난생처음으로. …》 

웬일인지 그는 처음부터 숨이 차서 허덕 이고있었다. 

《정아동무.》리웅산이 말했다. 《됐소. 옛말은 안해줘두 되오. 
그냥 쉬기만 하라니까. 내 날이 밝을 때까지 여기 얌전히 앉아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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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 

라정아는 귀가 메여버린듯 했다. 아니, 그의 눈빛은 꿈을 꾸고있 
는듯 했다. 꿈속에서처럼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첫 전투가 어떻게 벌어졌고 얼마나 치렬했던지는… 잘 모르겠 
어요. 하나두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한데 … 그것은 그날 적구에 나갔던 한 정찰병 이 우리 전방붕대 
소에 나타났을 때의 일이예요.》 

…피칠갑을 하고 모진 피로와 고통으로 하여 볼품없이 얼굴이 이 
지 러진 정찰병 이 무명고지 에 불쑥 나타났다. 그때 사단군의소에 있 
다가 전방붕대소로 갓 나온 라정 아는 그 정찰병 이 자기나 다름없이 
얼굴이 시꺼멓고 피가 내밴 붕대까지 이마에 감고있는 보병중대장 
을 따라다니며 웨치는 소리를 들었다. 

《…뭐 내가 치료나 받자구 여기루 온줄 압니까?… 저기 적구에 
우리 중대장동지가 혼자 있단 말입니다. 부상당한 몸으루 홀로… 
저一기에 말입니다.〉〉 

보병중대장이 머리를 홱 돌리더니 눈빛을 번뜩이며 우악스럽게 울 
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무! 그래 중상당한 자기네 중대장을 뭐, 뭐라구? 적구에 내 
깔리구 혼자 왔다구? 영?!》 

《예, 혼자 왔습니다. 혼자! … 왜 그랬는지 압니까? 우린 미군장 
교놈을 꽁졌는데 우리 중대장동지가 영어를 잘한단 말입니다.》 

〈〈동무! 영어가 여기 무슨 상관이요?〉〉 

《왜 상관없습니 까?〉〉 정 찰병 도 맞받아 소리쳤다. 《영 어 를 
잘하니까 미군장교놈도 심문하구 그놈이 갖고있던 문건두 보구나서 
중대장동진 저에게 명령을 했단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정 
보인지 아는가? 난 상관치 말구 빨리 전선을 넘어가라! 하구 말입 
니다. 그다음 〈이건 명령이요!〉라고 하는데…》 

《그럼 거기엔 동무네 둘밖에 없었소? 다른 사람들은?…》 

《우린 모두 다섯명이 들어갔지만… 우리 둘만 남았단 말입니다. 
그러 니 어 떻게 합니까? 중상당한 중대장동지 를 혼자 남겨두구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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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니… 정말 어쨌는지 압니까? 나만 살아오자니…》 

정찰병은 목이 쩍쩍 메여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꺼먼 손바닥 
으로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럼 그렇다구 차근차근 말할게지 첨부터 냄다 소래기만 지르 
면서…〉〉보병중대장은 여전히 성난 얼굴로 정찰병을 흘겨보고나서 
자기 사람들에게로 돌따섰다. 〈〈그럼 누가 이 정찰병을 따라 적구 
로 들어가겠소? 이건 우리 중대가 받은 전투임무외의 일이니 자원 
성의 원칙에 맡기겠소.》 

숨막힐듯 무거운 침묵속에 얼마간 동안을 두고 한사람 또 한사 
람… 이렇게 세명이 자원해나섰다. 

중대장이 정찰병에게 물었다. 

〈〈이 동무들이면 되겠소?〉〉 

《그럼 중상당한 우리 중대장동진… 누가 치료합니까?》 

중대장이 간호원들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전방붕대소에는 간호원 
들뿐이 였으므로 군의대신 에 간호원이 라도 가야만 했던것 이다. 

《누가 갈수 있겠소?》 

보병중대장이 이렇게 물었을 때였다. 뜻밖의 일로 라정아가 맨먼 
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사실 적구로 들어간다는건 죽음을 맞받아가는 길이나 같았어 
요. 그런 위험한 길에 선뜻 나설 결심을 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 
이 아니지요. 시간이 필요했구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아직 전 
투경험도 없는 내가 다른 간호원들이 미처 생각도 해보기 전에 먼 
저 앞으로 쑥 나섰으니… 그때 무슨 정신에 그렇게 했던지, 객기를 
부려보고실었는지 아니면 그 어떤 자존심때문이였던지… 잘 모르겠 
어요. 어쨌든 대오앞에 불쑥 나서고보니 그만에야 깜짝 놀라지 않 
을수 없었어요. 겁이 더럭 나면서 눈앞이 아뜩해지구… 하지만 어 
쩌겠어요. 일단 내짚은 걸음인데 뒤걸음을 칠수야 없지 않나요. 그 
럴 때 뒤 걸음을 친다면… 그건 도피 분자들이 나 할짓이지요.》 

…찬바람이 불어치는 마가을의 깊은 한밤중 그들은 앞서가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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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병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따라짚으며 산을 내리고 깊은 골짜기를 
기여넘어갔다. 도중 적들의 눈먼사격에 라정아의 위생가방이 찢겨 
진것도 몰랐다. 다행히도 정찰중대장이 누워있는 어떤 늪가의 갈숲 
예까지 무사히 가닿았지만 라정아의 위생가방엔 붕대밖에 없었다. 
중상당한 정찰중대장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정찰병이 그를 잠아 
흔들며 억눌린 목소리로 〈〈중대장동지, 정신차리십시오!〉〉하고 
목메여 불렀다. 마침내 피와 땀파 흙먼지와 감탕까지 게발려 험상 
궂게 된 정 찰중대 장의 얼 굴이 반쯤 돌려졌다. 

《와- 왔구만. …》 

가릉가릉 피를 물고 힘들게 속삭인 소리였다. 무서운 통증에 찢 
겨질대 로 찢겨 져 버 린 목소리 였다. 

정찰병이 울먹거리며 보고했다. 

《예 , 중대 장동지 , 제 가 왔습니 다. 여 기 우리 사람들을 데리 
고 왔습니다. 간호원동무도… 같이.》 

《간一호一원까지?…》 

그 순간 라정아는 흠칠했다. 뼈를 깎는듯 한 모진 아픔때문에 신 
음하는 그의 무서운 억양이 가슴을 쳤다. 그다음… 무엇인가 그 녀 
자의 기억을 송두리채 뒤흔들고 파헤치는것이 또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다 알수 없었다. 

〈〈간호원동무.〉〉 

그가 라정아를 불렀다. 순간 라정아는 그 목소리를 더위잡았다. 
아니, 쇠붙이가 자석에 끌려가듯이 그 목소리에 붙들려갔다. 그리 
고는 그대로 그의 머리맡에 무너져버렸다. 

《예, 제가 간호원… 라정아예요!》 

오열에 떠는 부르짖음이였다. 그러자 정찰중대장은 별안간 비트 
는듯 한 아픔에 전률하는듯 했다. 어둠속에서 일망정 그의 온몸이 경 
련으로 떨리는것이 알렸다. 

《그러니… 정아가?!》 

《예 , 선생 님 , 저 예 요.〉〉 하고 라정 아는 그만에 야 그의 가슴 
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가 왔어요. 선생님, 라정아가 왔어요!》 

〈〈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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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리별과 상봉은 우리의 인생극, 애정극에 필수적인 련립방정 
식이다. 하지만 수학으로가 아니라 정파 사랑으로써만 풀이되고 해 
석되는 눈물의 방정식이다. 

정찰중대장의 이름은 림근우, 한때 라정 아에게 미술을 가르친 스 
승이였고 해방후 미군정하의 서울에서는 좌익적인 문예인협회의 조 
직자중 한사람으로서 10월인민항쟁때 대구에 내려가 로동자들의 투 
쟁을 적극 성원하고 고무추동한것으로 하여 체포, 투옥되였으나 서 
울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던중 동지들의 방조로 달리는 렬차에서 강 
물에 뛰여내려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다. 

참나무처럼 굳고 단단한 체구와 새까만 고수머리, 앞으로 툭 삐 
여져나온 의지력이 있어보이는 턱파 강경하게, 자신만만하게 울리 
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번에 휘여잠는 사람, 그러한 그를 련모하 
고 따르지 않을 처녀가 어데 있으랴. 하여 라정아는 수배대상이 되 
여 북으로, 평 양으로 가게 된 림근우가 출발에 앞서 자기를 찾아주 
었을 때, 목숨걸고 북행길에 오르는 그를 나루터에서 손저어 바래 
주던 그때 어둠속으로 멀 어져가는 그를 향해 마음속으로, 눈물에 젖 
어든 목소리로 이렇게 목메여 부르짖었었다. 

《가지 마세요, 선생님! 이렇게 가면 난… 이 라정아는 어찌하나 
요, 예? 가지 마세요!一》 

과연 그런것이 사랑이였던가?… 사실 라정아는 그때 그 눈물의 의 
미 도 다 알지 못하는, 아직 시큼하고 ■은 맛도 채 가시지 못한 첫 
물앵두같이 발그레한 물만이 겨우 올라있는 어린 처 녀 였었다. 어머 
니의 병구완때문에 차마 그를 따라나서지 못하고 가슴만 쥐여뜯던 
처녀, 다시는 그를, 다정다감한 스승이며 마음속 련모의 불꽃이기 
도 했던 그를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장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정아였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사선을 뚫고온 적구에서 그것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시시각각 숨져가고있는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될줄이 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정찰중대장 림근우는 조금만 움직여도 옆구리의 상처에 박힌 파 
편이 뼈를 에이는듯 으득一으드득 이를 갈며 신음했다. 그런 상태 
로는 담가로 나를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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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간호원 라정아의 찢겨진 위생가 
방엔 변변한 수술도구는 물론 마취약이나 핀센트조차 없었다. 사람 
들이 기가 막혀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으나 라정아는 대답할 말이 없 
었다. 찢겨진 위생가방을, 가장 단순한 의료기구나 소독약조차 없 
는 가방안만 정신없이 뒤적거릴뿐이였다. 

그때 중상당한 림근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아, 이 칼로 상처를 째구 그놈을… 끄집어내오. 그 빌어먹을 
파_파편을 ! …》 

그가 내민것은 정찰병들이 애용하는 단도였다. 서슬푸른 단도, 
흔히 비수라고도 하는!… 허나 그것은 목숨을 끊는 무기이지 생명 
을 살리는 도구는 아닌것이다. 

〈〈정 아, 왜 그러구있소?〉〉 림 근우가 몰풍스럽 게 어 성 을 높이 
며 독촉했다. 〈〈이럴 때 주一주저하문… 아무것두 못해. 용기를 내 
오. 자기 를 믿 어 야지 , 옹? ! …》 

정 아는 그냥 속이 께름하고 입술이 타들다못해 온몸이 떨려나 견 
딜수 없었 다. 

《정아,그럼 저 一전선엔 왜 나왔소? 그래두 간호원인가?…》 

정아는 그냥 낯색이 질린채 바재이기만 할뿐이였다. 그새 날이 밝 
기 시작했다. 침침하고 써늘한 랭기가 풍기는 새날… 서쪽으로부터 
시 꺼먼 구름장들이 덮치 듯 몰려오고있 었다. 

림근우가 무섭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정찰병의 부축을 받으 
며 거칠게, 피톱게 숨길을 릎고있는데 시꺼먼 그의 얼굴은 더더욱 
험 악해 졌다. 

《말해보오, 라정아.〉〉하고 그는 뜻밖에도 아주 낮게 씨 근거리 
였다. 〈〈동무도 군인인가? 자기를 이기지도 못하구 자기 힘도 믿 
지 못하는… 도무지 그럴 용기도 없는게 무슨 군인인가, 눈물이나 
짜는 그런 울보가 전쟁판엔 왜 나왔나 말이 요, 영 ?…》 

〈〈선생님!〉〉 

다음순간 라정 아는 눈앞에 서 불찌 가 핑 겨 나고 광대 뼈어 름이 부서 
지 는줄 알았다. 림 근우가 무섭게 한대 후려같긴것이 였다. 

《똑똑히 듣소 !〉〉 그가 고통스럽 게 부르짖 었 다. 랭혹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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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질책이였다. 《여기서 난… 그저 서一선생님이 아니구 지 
휘관이란 말이요, 아—알겠소?》 

순간 라정아는 자기의 입안으로 흘러드는 찝찌레한 피맛을 느꼈 
다.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씹어삼키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뒤늦 
게나마 알겠노라고, 명령대로 하겠다는 의미였다. 

림근우가 헐금씨금 가쁘게 숨쉬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오.》 

라정아는 여전히 한마디 말도 못하고 벅찬 공포속에서 무시무시 
하게 변모되여있는 자기의 옛 스승을 바라보면서 얼결에 그가 내미 
는 단도를 받아들었다. … 

《…그때부터 난 그가 명령하는대로 했어요. 무슨 정신에 그걸 해 
낼수가 있었던지 … 험 한 상처를 째고보니 갓난애기 새끼 손가락만 한 
파편이 옆구리의 갈비들 사이에 박혀 끄트머리를 내밀고있는게 보 
이더군요. 헌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그걸 끄집어낼 핀센트나 겸 
자 같은것조차 하나 없는 형편이였으니 그럴 때엔 어떻게 해야겠어 
요? 난 너무 난감하여 후들후들 떨고만 있었군요!… 그러자 그 
가 모질게 신음했어요. 아니, 무섭게 속삭였어요. 〈난 견딜수 있 
소. 정아, 견딜수 있으니 한번만 더 해보오. 그러되 잊지 마오. 제 
일 힘든게 자기를 이기는거라는걸 말이요.〉라구요. 그때 무엇 
인가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난… 모질게 마음먹 
구 상처 에 입 을 가져 다대 였 어 요. 그 험 한 상처 에 입 파 코를 통채 로 
들이밀구 바로 그걸… 그걸 이발로 꼭 물었어요. 톱날같이 날카로 
운 그 파편을요!… 그러자 파편을 문 이발이 재끈! 하더니 머리칼 
이 막 짜릿 一짜릿 ! 해 나는데 … 그래 도 난 눈을 꼬옥 감은채 … 피범 
벅 이 된 입 을 옥물고 죽어 라하구 그걸 물어당겼어 요. 했더 니 그만 
에 야 그 파편 이 살을 찢 으며 뽑히 더 군요.》 

리웅산은 그만 입안이 바싹 마르는것을 느꼈다. 호흡도 삐근해났 
다. 피묻은 그 파편이 자기의 가슴을 찢으며 나오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다음은?…〉〉 

리웅산이 숨찬 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라정아는 이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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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실룩거리며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는듯 했다. 마침내 입을 벌리고 뜨거 
운 숨을 내뿜고나서야 리웅산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그의 입가엔 한가닥 애처로운 미소가 번져가고있었다. 

《그만 그는…》 

〈〈영?!》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어요. 사실 그때까지 견디여낸것만 해 
도… 정말 무서운 일이지요, 무서운!…》 

라정 아는 목이 적 메인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작고도 하얀 
손으로 침대에 드리운 백포자락을 하염없이 구겨놓고있을뿐… 그러 
니 그 림근우란 정찰중대장이 살아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죽었다는 
소리인가?… 리웅산은 라정아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또 얼마간 괴 
로운 침 묵을 견디 여내지 않으면 안되 였다. 

다시 라정아가 입을 열었다. 

《제 가 괜한 얘 길 꺼냈지 요? 총설계 가동지 , 오늘같은 날에 괜히 
아픈 소리를…》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리웅산은 성급히 갈린 목소리를 
짜내였다. 《난 정말이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들었소.〉〉 

《그一래 一요?》 

라정아의 입가에 또다시 애처로와보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 를 이 겨 낸다는것 그리구 자기 를 믿 는다는것 이 그저 말처 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난 그때 처음 깨닫게 되였어요. 물론 총설계 
가동지야 전쟁때 … 술한 전투와 죽음의 고비 를 남보다 많이 겪 었을 
테니 더 잘 아시겠지만…》 

리웅산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급기 야 입 안이 바짝 말라들고 뒤 
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것처 럼 귀속에서 말벌떼가 맹렬히 돌아치며 붕 
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가까스로 혀로 입술을 추기며 말했다. 

《난… 전쟁전부터 외국에 나가있었소, 류학을. … 그러다보니 전 
쟁 엔 한번두 참가 못하구…》 

그의 어조가 얼마나 무겁게 그리고 비통하게 울렸던지 라정아는 
제가 오히려 죄스러워하며 지싯지싯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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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一해요.》 

〈〈아니, 오히려 내가…》 

《난 그런줄도 모르구…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만…》 
《괜찮소.》 

《사실 난…》라정아는 젠 말씨로 고집스럽게 계속했다. 《존엄 
에 대한 얘길 하고싶었을뿐이예요. 자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때 
로 죽음도 맞받아나가야 한다는걸 말이 예요. 그리구 자기의 마음속 
에 들어차있는 공포나 불안 같은것들을 용감히 극복할줄 알아야 자 
기 힘을 믿을수 있다는 그런 얘길 하고싶었어요.〉〉 

《좋은 이야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이 요.》 

《그렇다면… 제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될가요?》 

《하오, 무엇이든.》 

라정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드디여 결심한듯 말했다. 

《실장동지,이번의 일 말이 예요. 지도검열파 관련된… 절대 
물러서지 마세요. 이걸 말하고싶어 남아달라구 했어요. 부탁해 
요. 그들이야 뭐라구 하던간에 한걸음도 물러서지 마세요. 그렇게 
끝까지 자기를 아니, 자기의 량심을 지켜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라정아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리웅산이 시쁘둥한 표정으로 손 
을 획 내저었기때문이였다. 

《고맙소. 오늘 몹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마침 동무한테서 좋 
은 얘길 많이 들었소.》 

리 웅산은 자리 에 서 일 어 났다. 자기 의 량심 을 지 키 라고 한 라정 아 
의 말이 웬일인지 그의 가슴을 가시처럼 아프게 찔렀다. 무분별한 
사나이의 자존심이 속에서 불끈 주먹을 내미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정 아동무.〉〉하고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자제하며 말했 
다. 〈〈나도 한가지만은 꼭 말하고싶은것이 있는데… 그건 이 리웅 
산이도 자기의 량심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떠나간다는 그것이요. 그 
렇게 알아주면 고맙겠소.》 

«•••)) 


244 



라정아는 입을 다물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구슬픈, 련민의 
정이 어린 눈빛이였다. 

〈〈난 가봐야겠소.〉〉 

리웅산은 그의 눈빛을 견딜수 없어 우정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 
다. 여전히 라정아를 외면하며 뜨직뜨직 말했다. 

《어느새 이렇게 차시간이 다 됐구만. … 정말 미안하오. 정아동 
무, 그럼 치료를 잘 받으시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문가예까지 걸어갔다. 

〈〈가지 마세요!〉〉 

이 것은 그가 바라는 말이 였다. 자기 가 너 무 무정한것만 같아 라 
정 아가 자기 를 만류하기 를 바라마지않았다. 

《가지 마세요!》 

허나 그런 말은 없었다. 놀랍게도 뒤쪽의 라정아는 기척도 없었 
다. 가릉거리는 숨소리마저 죽이고있다. 아마도 불신과 혐오의 마 
음으로 그를 바라보고있는지도 모른다. 문고리를 잡고 그는 잠시 망 
설이였다. 마지막으로 따뚯한 말 한마디라도 남기고싶었건만… 마 
침내 그는 문을 열 고 나갔다. 

밖에서는 극성스럽게 퍼붓던 비가 멎은지 오랬다. 어데선가 새벽 
수닭이 야단스레 쾌를 치며 울어대자 잠시후 선잠에서 깨여난 암닭 
들이 마치도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듯 저저마끔 정찬 울음소리로 구 
구거 렸 다. 


5 


새벽… 줄기찬 비줄기와 더불어 캄캄한 어둠속으로 소리없이 스 
며 들어온 새날의 정적과 려명 … 그러 나 라정 아는 아무것도 알지 못 
했다. 오직 마음속에서 울리는 노래소리만 듣고있었다. 그것은 라 
정 아가 쓴 가사에 림근우가 곡을 불인 노래였다. 해방직후 서울에 
서 김일성장군님 계시는 평양의 하늘을 그리며 부르던 노래,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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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이 알고 둘이서만 가만히 불러온 꿈의 노래, 애모쁜 련정의 
노래였다. 

마음속으로 그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하지만 웬일인지 오늘따라 
한없이 마음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하여 그는 리웅산이 나간 
후에도 오래도록 까딱하지 않고 푸릿한 창너머 멀리로 망연히 눈길 
을 주고있었다. 

《저를 욕해주세요. 선생님, 잊지 못할 나의 사랑, 나의 림근우 
동지.》하고 라정아는 언제나 군복차림으로만 안겨오는 그의 모습 
을 그리며 마음속으로 절절히 부르짖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진 
나를… 콱 욕해주세요. 그리구 제가 다시 일어 날수 있도록 좀… 부 
죽해 주세 요. )) 

그이는 지금 어데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이 역시 어데선가 나 
를 생각하고있지 않을가? 이 라정 아를 그리워하고있지 않을가?… 

《선생님 ! 오늘도 난… 의사선생님들께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 
어 요. 〈내 게 이 제 몇달만 더 주세 요. 몇달만 더 살게 해 주세 요 !〉 
하고 말이 예 요. )) 

여전히 군복차림을 하고있는 림근우가 거칠게 내쓴다. 

《도대체 지금 무슨 허튼소릴 하는거요, 응?! 정아, 제발 정 
신 차 리 오 !〉〉 

정아는 머리를 것는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매달리며 애절하게 부 
르짖 는다. 

《아니예 요, 선생 님 ! 내 가 이제 얼마를 더 못산다는걸 선생 님 도 
잘 아시 지 않나요. 그래 서 하는 말이예 요. 난 한시 도 죽음과 헤 여 
질수가 없는 몸이 예요.》 

《정 아! 죽음이 란 각오하는것이지 맹목적으로 기다리는게 아니 
요. 이걸 알아야 해.》 

《하지만 선생님, 난… 선생님도 잘 아시는 전쟁때의 일때문에… 
몇날 못산다는걸 잘 알아요. 그 일때 문에 ! … 그래서 매 일 같이 의 
사선생님들께 빌지 않을수 없어요. 정말이지 좀더 살고싶어요. 선 
생 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살고싶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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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믿소, 그날을!… 그러니 기다려주오. 내 이제 꼭 정아한테 
로 가겠소.》 

《그래 서 … 의 사선 생 님들께 빌 고있는거 예 요. 〈선생 님 들, 몇 
달만 더 살게 해주세요. 나의 사랑, 나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의 한생의 전부이기도 한 저 조각품들이 완성되고 선생님도 보게 
될 그때까지, 그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주세요!…〉 하고 빌고 또 
빌군 하는거예요.》 

불현듯 림근우의 얼굴에서 피기가 사라져간다. 노한 눈빛으로 그 
를 쏘아보더 니 적 구에서 단도를 내 밀며 상처 를 째 라고 명 령하던 그 
때처럼 우악스러운, 찢어지는듯 한 목소리로 무섭게 질책한다. 

《듣기 싫소, 정 아! 내가 벌써 몇번이 나 말했소, 영?… 자기 
를 이겨내야 한다구, 무엇보다먼저 자기를 믿어야 한다구 말이요. 
그런데 오늘 또 정아답지 않게 그게 무슨 소리요? 정말이지 난 정 
아가 그렇게 우는소릴 하는걸 차마 듣고만 있을수 없소. 참을수 없 
단 말이 요. )) 

《그럼 그때처럼 주먹으로 귀통을 때려주세요.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그러나 그는, 상상속의 림근우는 아무말없이 사납게 씨근덕거리 
기만 한다. 두주먹을 부르쥐고 무섭게 쏘아보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려 가버린다. 

《왜요? 뭣때문에요?…〉〉라정아는 자기의 등골로 줄달음쳐가 
는 차디찬 전를에 부르르 몸을 떤다. 〈〈가지 마세요, 선생님 ! 제 
발 날 좀 도와주세요! 난,난 정말이지…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요. 
정 말이 예 요, 도와주세 요.》 

그가 멈춰선다. 불이 황황 이는 눈빛으로 라정아를 돌아보며 준 
절하게 타이론다. 

《제발 용기를 잃지 마오, 정아!… 동무야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 
운 인민군녀전사가 아니 요!》 

《아니, 그보다 먼저 난 녀자예요.》 

《그런 녀잘 난 알지 못하오. 알고싶지도 않구…》 

그는 다시 걸음을 옳긴다. 결연히,발걸음소리도 없이 저 멀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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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히 사라져버린다. 

〈〈선생 님 , 가지 마세요. 부탁이예 요! 一〉〉 

라정아는 한손을 내뻗치며 애절하게 부르짖는다. 인제는 자기 귀 
에 도 들리 지 않는 그 부르짖 음… 라정 아는 헉 _ 헉 토막숨을 내 불기 
시작한다. 목구멍 이 칵 메 였지만 힘겹게 그리고 거의나 애처롭게 
거품이 끓는 소리로 그를 부르고 또 부론다. 

《선생님! 이 라정아가 이렇게 제일 힘들구 아플 때, 이렇게 홀 
로 외롭구 피로울 때 당신은 어데서 무얼 하고계시나요, 예?!》 
푸릿 해진 저 하늘가에 로 끝없이 메 아리 쳐가는 가느다란 흐느낌 소 
리 … 그러나 그의 애절한 부름에 화답해주는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 
도 울려오지 않는다. 


박유진이 타고있는 뜨랄선56호는 쉬꼬딴섬쪽으로, 깜챠뜨까반도 
의 남부예까지 북상하였다. 

박유진은 저 멀리에서 아물거리는 산발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눈 
두덩을 아프게 비벼대고있었다. 그동안 일본의 쯔가루해협을 빠져 
태평양으로 나왔고 인제는 쏘련의 깜챠뜨까반도남부에 이르렀다 
는것 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것 이 꿈속에서 벌 어 진 일처 럼 
몽롱할뿐이였다. 

오전 11시쯤 되였을 때였다. 어데선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갈 
매기들이 날아와 나팔소리처럼 웨치며 머리우를 날고있었다. 박유 
진은 머리를 들고 그것들을 넋잃은듯 바라보았다. 정다운 바다새, 
파도우에 펼치는 갈매기들의 일대 륜무!… 유진은 생각했다. 배사 
람들은 배우에서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면 배밑에선 물고기떼가 욱 
실거린다고 했었지. … 아닐세라 누군가 숨구멍 이 막힌듯 목을 비틀 
어짜며 거칠게 부르짖었다. 

〈〈고래다!一 돌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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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장수고래요.〉〉 

〈〈맞아, 장수고래다!一〉〉 

사람들이 그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무엇때문에 어데로 가는 
지 알수 없었으나 유진이도 그들을 따라 선수쪽으로 헤덤비며 뛰여 
갔다. 다른 뜨랄선들도 재빨리 기동하는것이 보였다. 서로 협동하 
여 고래 의 무리 를 포위하려 는것이 였 다. 

태 규선장이 힘찬 배 고동소리 를 울렸다. 

《뚜!-》 

뜨랄선56호의 돌격나팔소리 이 다. 

〈〈포수, 사격준비 되였는가?一〉〉 

《예. 사격준비 되였습니다, 선장동지 !〉〉 

이렇게 대답한것은 강창길이였다. 진짜 주인공인 권영길포수는 
72미리포로 고래를 겨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유진은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쥐 였다. 저앞에서 거세찬 분수처 
럼 창공높이 물줄기를 뿜어올리고있는 고래들이 보였다. 그것들중 
의 한놈은 지금 유진이가 타고있는 56호뜨랄선보다 몇갑절은 더 커 
보였다. 아빠트와 비길만 한 큰 몸뚱이를 솟구칠 때마다 4〜5메터 
는 실히 뛰여오르는듯 했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떨어지며 찡!一 하 
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핑장한 물기둥을 말아올리면 뒤이어 처절썩 
이는 물결이 사나운 해일처럼 밀려오군 했다. 실로 장관이였다. 바 
다의 대교향시!… 가슴은 벅차오르고 눈뿌리가 아득해졌다. 

박유진은 넋 이 나간듯 했다. 지 금 자기 가 고래 포의 투선( 포를 쏠 
때 투창에 매달려 날아가는 바줄. 고래포의 뒤쪽 배전우에 통구리 
로 사리 여 있다. )우에 올라서 있다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다 
른 사람들도 모두 분수를 뿜어올리는가 하면 물우에로 곧추 솟구쳐 
올랐다가 자기의 거대한 몸뚱이로 찡!一 하고 바다의 수면을 드세 
게 때리는 고래들의 신바람나는 발레에만 눈을 팔고있었으므로 지 
금 박유진이 얼마나 아찔한 낭떠 러지 에 올라서있는가를 알지 못하 
고있었다. 상상하기 도 끔찍한 일은 이 렇게 하여 벌 어졌다. 

《왓!-》 

누가 구령을 쳤던가? 권영길포수자신이 구령을 치며 포를 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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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 박유진이 들은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별안간 그는 자기가 어마어마한 힘 에 휘감겨 허궁 들리는것을 느 
꼈다. 퉁구리 로 사리 여있던 고래포의 투선이 휘一익 ! 하고 돌개 바 
람처 럼 냄다 회오리치더 니 그우에 올라서있던 박유진을 통채로 번 
쩍 휘감아 공중으로, 바다에 로 태 질하듯 뿌려던졌던것 이 다. 온 
몸이 번쩍 들리고 솟구치더니 돌개바람속에 휘말려 어데론가 날아 
가던 감각… 그 다음순간엔 죽었구나! 하는 몸서 리 치 던 느낌 뿐이였 
다. 허 나 그것 도 찰나의 일이 였다. 어 느새 그는 차디 찬 바다물 
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거센 파도가 그를 덮쳐 시꺼먼 물속에 구겨 
넣던것만이 기억속에 피끗하고는 그만 미처 발버둥칠새도 없이 의 
식을 잃고말았다. 

그때 갑판우에서는 너무도 예상외의 끔찍한 광경 에 그만 다들 경 
악하였다. 다음순간엔 미친듯 고함을 지르고 팔을 내뻗치며 울부짖 
기 시작했다. 집채같이 큰 고래가 포창에 맞아 몸부림치며 배를 끌 
고가는 바람에 더더욱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이 빠졌다!—》 

《투승에 날려갔소 !一〉〉 

〈〈박유진 그 사람이요!〉〉 

《가만, 가만! 왜 떠들며 야단이야?…》 

《빨리 구명대를 던져라!〉〉 

그러나 벌써 구명대를 던지며 바다물속에 뛰여드는 사람이 있었 
다. 김태규선장이였다. 바로 유진이가 날아가 처박힌 그물우에 배 
가 이 르는것 과 동시 에 몸을 허궁 날리 며 물속에 끈두박힌 것 이 다. 
철썩 !一 하는 소리 와 더 불어 어 느새 세 찬 파도가 그마저 삼켜 버 리 
고말았다. 

고요… 아니, 고요가 아니 라 소름끼치는 정적이 였다. 파도의 소 
음도, 선대의 다른 배들에서 울리는 거쉰 배고동소리도 순식간에 멀 
리 세상밖으로 사라져 버 린듯 했다. 소리없이 뒤 번져지 는 큰 멀기 
뿐 그리고 파도에 떠실려 사방으로 퍼져가는 시뻘건 고래피의 흐름… 
그것이 또 사람들의 눈뿌리를 아프게 허비였다. 장수고래를 명중했 
다는 기 쁨은커 녕 오히 려 머 리 칼이 끈두서 고 심 장만 졸아들뿐이였 
250 



다. 순간순간이 사람들의 피를 말리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박유진의 머리를 한손에 거머쥔 태규선장이 물우 
에 불쑥 솟구쳐오르는것이 보였다. 

〈〈선장동지 다 ! 一〉〉 

〈〈살았다 ! 一》 

〈〈선장동지!一》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경험많은 기술부선장 장 
태렬은 마침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선장의 머리우에 바줄을 내던지 
며 목터 지게 소리쳤다. 

《선장동무, 이 걸 잡소오 !一》 

배는 여전히 무섭게 요동치는 고래한테 끌려가며 비틀거리고있었 
다. 마침 선대의 다른 배(로력영웅 김 학순선장의 51호뜨랄선이 
였다. )가 56호의 뒤를 바투 따라서며 김태규선장에게 구명대와 바 
줄을 던지는것이 보였다. 

김 태규는 몇번이고 파도의 물갈기 에 잠겨 들군 했지만 한사코 의 
식 잃은 박유진을 놓지 않고 한팔로 꽉 껴안고있 었다. 

《선장동무!一 조금만 참소! 一》 

〈〈선장동무 ! 견더내 야 하오 !》 

바줄로 비끄러맨 구명대들이 연방 바다에 던져졌다. 그중의 하나 
를 태규선장이 붙들었다. 그우에 박유진을 태우고 또 다른 구명대 
를 끌더니 힘들게 손짓했다. 끌어달라는 신호였다. 그는 말도 못 
했다. 차디찬 바다물속에서 온몸이 꽁꽁 얼었던것이다. 

때마침 배도 요동치지 않고 넘실거리는 파도우에서 흔들리고있 
었 다. 포창에 맞은 고래 가 그만에야 맥 이 진 했는지 더 이 상 배 를 끌 
고 달아나지 못했던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 눈을 떴을 때 박유진이 처음으로 본것 
은 구레 나룻이 시꺼먼 태규선장과 여 러 배사람들의 눈물이 글썽해 
있는 모습이였다. 

《살아났소!一 이보오. 눈을 떴소!》 

누군가 거쉰 소리 로 부르짖 었 다. 

251 



《정말?! 눈을 뜨는구만, 에? 이보소.》 

〈〈그러니 인젠 살아났소?!〉〉 

〈〈유진동무! 어떻소? 정신이 드오?〉〉 

《형님!一 나 창길이요. 내가 보이오, 에?》 

박유진 은 다시 눈을 감고말았다. 모든것 이 흐리멍 링 했다. 부 
끄러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떠들지 마오!》 김태규선장이 낮고도 엄하게 말하였다. 《떠 
들긴 왜 떠들면서 야단인가,뭐 죽는가 했소?… 이 사람은 좀 자게 
놔두구 동무들은 빨리 나가서 고래를 썰어 야지,응?〉〉 

사람들이 허 리를 펴더 니 우루루 밖으로 밀려나갔다. 

고래 를 썬다는것은 또 무슨 소리 인가?… 유진은 자기 를 등지 고 돌 
아서 는 두사람 태 규선장과 장래렬 부선 장을 가늘게 치 뜬 눈으로 겨 
우 분간해보고있 었 다. 그들이 한쪽에 서 수군거 리 고있 었 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요. 그저 단련시켜 야 한다 
는 생각만 하면서 …》 

《그건 세포위원장인 나두 같구같습니다.》 

《그러니 세포위원장동무, 인젠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아무래두 치 료는 해 야겠지 요?》 

《그럼 모선에 보내서 안정시킬가? 아니면 쎄베로꾸릴스크에 보 
내는게 어떻겠소? 당에서 술한 품을 들여 키운 사람인데 아무래두 
거기 쏘련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는게 낫지 않겠소?…》 
《그렇긴 하지만… 로동단련을 왔다는 사람이 배에 타자마자 입 
원한다는게 좀…》 

《그럼 어떻게 하자오?》 

〈〈선 장동지 가 결 심하십 시 오.〉〉 

〈〈선장이 그런것 까지 다 혼자 결심해 야 하오?》 

〈〈그럼 본 인 한테 직 접 물 어봅시 다.〉〉 

《흠… 좋소.》 

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박유진은 자리 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선장동지,난… 이_ 일없습니다. 인젠 정신이 … 드_들었 
252 



습니다. 상한데두 하나 없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면 남들이 뭐라구 
하겠습니까.》 

태규선장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써레기담배만 힘주어 빨았다. 그 
의 입과 코에서는 시누런 연기가 연통에서와 같이 둥게치듯 흘러나 
오고있었다. 

《정말 견딜만 하오?》 

《예.》 

태규선장과 장태렬부선장이 다시금 서로 묻는듯 한 눈길을 주고 
받았다. 

《그럼 하나 묻기요.》태규선장이 또 코구멍으로 연기를 물씬 내 
불었다. 〈〈동문 쏘련에서 하리꼬브공업대학을 나왔다던데 전공 
이 뭐요? 기계요, 금속이요?》 

〈〈기계공학입니다.》 

《음一 좋구만. 아주 좋소. 그럼 우리 갑판에 나가서 마저 얘기 
하기요, 토론할것두 있구. … 그래 나갈수 있겠소?》 

《예.》 

〈〈부선장동무가 좀 부축해주오.〉〉 

박유진이 황황히 팔을 내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선장동지, 저 혼자서두…〉〉 

《옳소. 잘 생각했소.》그의 눈빛이 따뚯해졌다. 《우린 늘 제 
발로 걸을줄 알아야 해.》 

선장이 먼저 문을 열고 나섰다. 유진은 휘一 하고 눈앞이 돌아가 
는것을 느꼈다. 문짝을 잡고 한동안 바닥을 견주어보고나서야 다시 
몸을 가눌수 있었다. 

갑판우에서 왁자하니 떠들어대던 어부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그 
들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몸을 떨며 비틀걸음을 옮기는 박유진에 
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한순간 가벼운 놀람의 속삭임이 바람 
결같이 갑판우를 스쳐갔다. 누군가는 가느다란 휘파람소리까지 내 
질렀다. 태규선장이 그쪽으로 몸을 획 돌렸다. 

〈〈누가 휘파람을 불었어?》 

성난 목소리였다. 배사람들은 휘파람 부는것을 질색한다고 하던 
253 



데 그때문에 골을 내는것인지?… 그가 또 소리쳤다. 

《어디 말해봐. 뭐 사람을 비웃는거야?》 

〈〈아닙니다.》하고 대답한것은 포수 권영길이였다. 《박유진 
동지가 제발루 걸어나오는걸 보니 너무 반가와서 그랬습니다.》 

포병제대 군인답게 시 원스러 운 대 답이 였다. 

선장은 한팔을 획 내저었다. 

《그렇다문 좋구. … 헌데 님자 저 장수고래를 어떻게 토막내겠는 
지 생각한게 없어?》 

〈〈지 금 생 각하는중입 니 다, 선장동지 . 〉〉 

《원, 그렇게 생각이 금떠가지구 어떻게 고래를 좌?》 

선장의 그 말에 사람들이 유쾌하게 옷어대였다. 핀잔을 받은 당 
사자인 권영길이도 남보다 더 크게, 목을 뒤로 잔뜩 젖히고 옷어대 
는것이 였 다. 

이번엔 태규선장이 유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인젠 박유진박사가 좀 말해보겠소?》 

〈〈저… 뭡니까?〉〉 

《저쯤 되는 고래면 한 120톤쯤 나가는데… 저렇게 덩지가 큰 놈 
을 토막치자면 얼마만큼 큰 칼이 있어야 될것 같소?》 

《?! …》 

어 려운 물음이 였다. 유진은 그것 이 자기 에 대한 일종의 문답시 험 
이기도 하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금 바다에 눈길을 돌려 물 
우에 떠올라있는 고래를, 지금은 마지막숨을 내뿜고있는 장수고래 
를 바라보았다. 무엇때 문인지 숨이 막히 고 몸이 떨 려나기 시 작했다. 
선장이 말하는 그렇게 큰 칼은 이 세상에 있을수 없다. 그런즉 그 
칼을 대신할수 있는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보 
라는것인가?… 아니다. 결코 그 어떤 련립방정식을 도입하는 식으 
로 복잡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생활이란 단순하다. 따라서 생활의 
공식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 모여져있었다. 커다란 기대와 호 
기심 그리고 아직도 그를 가엾이 여기는 련민의 정이 그대로 드러 
나보이는 얼굴들이였다. 


254 



바람이 차지고있었다. 북극에서부터 싸늘한 기운과 함께 미구에 
들이 닥칠 밤(잠간 왔다가는)의 어둠이 소리 없이 흘러오고있었다. 

한순간 유진은 싱긋 웃었다. 불현듯 하리꼬브대학시절 5. 1절군 
중시위 에 나갈 자동차우에 세 워놓기 위해 대 형 구호를 만들던 일 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쇠줄톱으로 널판자를 썰어 〈〈전세계로동자 
들은 단결하라!〉〉는 로어글자들을 따내지 않았던가!… 

선장이 웅근 소리로 물었다. 

《왜 웃소?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예, 선장동지, 이만큼 길고 굵은 쇠줄을 저쪽파 이쪽에 서로 련 
결시켜 힘껏 잠아당겼다놓았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썰면 되지 않 
을가 하는…》 

속을 조이며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가 미처 말끝도 맺기 전에 탄 
성을 내질렀다. 

〈〈히야, 멋있구나!一〉〉 

《먹은 소가 힘쓴다더니, 역시 배운 사람이 달라.》 

〈〈외국류학두 갔댔잖아.》 

〈〈외국뿐인가?〉〉장태렬부선장도 청높이 끼여들었다. 〈〈오늘 
은 룡궁에두 갔다왔는걸.》 

다시 터 진 떠 들썩 한 웃음소리 … 

김 태규선장이 버 릇처 럼 한팔을 홱 내저 으며 소리쳤다. 

《좋소, 만점이요! 자 동무들, 인젠 내가 왜 박유진동물 우리 배 
에 받아들였는지 알만하겠지, 응?…》 

《뭐 받아들이기만 했소?〉〉 이번에도 먼저 부선장이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하두 선장동무 맘에 드니까 오늘은 저 통궁예까지 들 
어 가 업 어 내오지 않았소.》 

다시 터지는 폭소… 

《핫하! … 그 말 참 멋있소!》 

《옳수다. 하마트면 저 량반 통왕님 병치료때문에 통궁에 가서 간 
을 통채루 떼울번 했지.》 

《우리 태규선장이 아니였다문 어쩔번 했소?》 

《글쎄 난 저 유진형님 인젠 다 죽었구나! 하구 생각했더랬소, 허 
255 



허 허 …》 

《말도 말라요, 흐흐흐!… 난 정말 얼마나 혼줄이 났는지 그만 바 
지 에 다가…》 

웃음소리도 각이하다. 그러 나 마음도 얼굴도 모두 꼭같은 한모습 
이다. 시꺼멓게 탄 그들의 얼굴마다에 얼기설기 버물려지고있는 진 
실하고 따뚯한 웃음… 태규선장이 그들을 쫓아버 렸다. 

《됐어, 그만들 하오. 여기가 무슨 참새방아간인가? 빨리 가 
서 제 할일 들이나 하오.》 

사람들은 뿔뿔이 홑어지면서도 계속 옷고 떠들고있었다. 얼마전 
에 있었던 그 몸서 리 치 던 일을 즐겁 게 추억하는것 인지?… 

유진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엇인가 속 
에서 부그그 거품처럼 끓어오르는것이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을 면 
바로 마주볼수 없는 마음, 한없이 죄 스럽 고 부끄러워지 는 마음, 결 
국 그는 여 기서 버 림받고있는 존재가 아니 였다. 박유진 그자신이 그 
들파 마음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을뿐이다. 그렇다, 소박하고 진실 
한 저 배사람들은 한시바삐 그가 뜨랄선 제56호의 선원명부에 자 
기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고있다. 명부만이 아닌 자기들의 마음속 가 
족란예 까지 이 름을 올리 기 를 그토록 바라마지않고있다. 단지 박유 
진 자기만이 그것을 여직껏 알지 못하고있었을뿐… 

선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룩 쳐주는데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박 
유진을 한가정 , 한식 솔로 정 식 받아들인다고 도장을 찍 어주는듯 했 
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부선장 장태렬에게 
배 고동소리 처 럼 웨치 고있 다. 

《부선장동무, 빨리 51 호에 련락해서 우리 배와 쇠바줄을 단단 
히 비 끄러 매 게 하오.》 

《예.》 

얼마후 쇠바줄을 팽팽히 당겨맨 두 배는 서 로 앞으로, 뒤 로 움직 
이 며 쇠바줄톱을 바싹 당겼다놓았다 하는 식으로 산악같은 장수고 
태를 썰기 시작했다. 태규선장자신이 수기를 들고 작업을 지휘하 
였다. 그가 이 모든것에 매우 익숙되여있음을 잘 알수 있었다. 

유진은 작업지휘에 바쁜 태규선장의 널직한 어깨와 적동색으로 변 
256 



한 목덜미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슴벅거리고있었다. 

강창길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형님, 오늘은 형님이 두번째로 태여난 날이요. 두번째 생일! 
안 그렇소?》 

((-)) 

그는 그저 머리만 끄덕이 였다. 할말이 없었다. 웬일 인지 마음속 
감사의 념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고래를 토막쳐서 모선인 〈〈칠보산》호예까지 날라갔을 때는 어둠 
이 깃들무렵이였다. 밤이 시작되는것이다. 그러나 몇시간후이면 또 
훤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때에는 밤이 없다. 어스름이 깃드는가 하 
면 한쪽에선 또 훤히 밝기 시작한다. 반대로 12월 동지때에는 낮 
을 모르는 바다이 다. 어 둠만이 계 속되 는 속에 극광( 오로라 )이 
저 하늘가에 풀색파 붉은색, 푸른색파 붉은 보라색의 거대하고 신 
비로운 빛의 고리를 수놓군 한다. 

광대하고 장엄한 바다, 아득한 저 수평 선 에서 붉은 쇠물의 파도 
가 이글거린다. 금늬는 물결우에 나래를 편 갈매기들, 벅차게 숨 
쉬 는 파도의 음향 ! … 바다는 잠을 모른다. 낮이건 밤이건 가림 
이 없다. 영원히 거세게 호흡하며 쉬지 않는다. … 


1966년 5월 3일. 

김 일성동지 께서는 황해제 철소를 현지 지 도하고계시 였다. 

오전 8시 30분부터 황철의 로동자합숙과 주택지구의 살림집들 그 
리고 상점까지 돌아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중형용광로직장앞에 
서 차를 멈추시였다. 수수한 연회색코트를 입으신 그이께서 차에서 
257 



내 리 시자 용광로종합직 장장파 중형 용광로직 장장이 달려 와 인사 
를 드리였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고 새 
로 건설한 중형용광로들을 기쁨에 넘쳐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뒤에 
서는 동행해온 내각 제1사무국장인 최재우와 공장지배인, 기사 
장 등이 서 있었다. 

《로들이 잘 돌아가오?》 

그이의 물으심 에 기사장이 한발 나서며 로상태가 아주 좋다고 말 
씀드렸 다. 

《크기는 어느 정도요?》 

《예 , 150립 방짜리 와 100립 방, 60립 방짜리 입 니 다.》 

이번엔 그이께서 기사장의 뒤쪽에 서있는 용광로직장장을 돌아보 
시 였 다. 

《저 150립방짜리 로에선 선철이 얼마나 나읍니까?》 

두손을 앞에 모두어쥐 고 엉 거 주춤 서 있던 직 장장은 수령 님 께서 바 
로 자기를 향해 물으신다는것을 깨닫자 너무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 
라하더니 별안간 머리를 번쩍 들며 청높이 말씀드렸다. 

《예, 수령님! 150립방짜리 로에선 선철이 하루 250톤정도 
나읍니다.〉〉 

마치 구령을 치는듯 한 소리. 수령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럼 세개 로를 다 합치 면 얼마나 되 오?》 

《예, 수령님 ! 하루 500론이상 생산됩니다.》 

《그러 니 한달이면 만오천톤이 겠소?》 

〈〈그렇습니다.〉〉 

〈〈음… 대단해.》 

그이께서는 안경을 바로잠으며 멀지 않은 곳에 웅자를 솟구치고 
있는 대형용광로와 중형용광로들을 대비적으로 살펴보시였다. 
한달동안에 만오천톤이라. … 모든 제철소, 제강소들에서는 쇠물 
을 키로그람으로 계산하는 법이 없다. 오직 톤수로만 계산한다. 쇠 
물을 다는 평량기 에 도 톤수아래 의 수자는 없다. 

《아주 좋소, 대단해 !》하고 그이께서는 만족하여 말씀하시였다. 

258 



〈〈우리의 힘과 기술로 만든 용광로가 얼마나 멋이 있소, 응?! 정 
말 미남자요!》 

이윽토록 용광로들을 살펴 보시 던 그이 께서는 수행 원들의 안내 
를 받으며 로상에 오르는 계단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기사장이 
바싹 따르며 중형용광로는 구조가 대형용광로와 좀 다르게 설계했 
다고, 용광로의 키가 좀 낮은 대신 로의 배가 크다고, 키가 낮기때 
문에 어지간히 분말이 섞여있는 철광석이나 강도가 낮은 록스도 다 
먹을수 있으며 특히 질좋은 선철을 생산할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있 
다고 말씀드렸다. 

〈〈그렇단 말이지. 좋소.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다 먹을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대견하오, 응? 우리의 힘파 기술로 만든 우리의 용광 
로이 니 까 우리것을 다 먹 는단 말이 요!》 

〈〈그렇습니다, 수령님!》 

몸둘바를 몰라하던 직장장도 입을 크게 벌리고 옷고있었다. 그때 
로앞에 서 있던 용해공들이 일제히 머 리숙여 인사를 올리 였다. 

수령님께서 그들의 이름과 직종을 물으시자 배관공 아무개, 로체 
공 아무개 하면서 힘차게 보고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그들모두의 손을 하나하나 잠아주시였다. 

《수골 하오, 수고해. 그래 지금 무슨 작업을 하고있소?》 

《예, 출선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음… 그러니 내가 때마침 왔구만.》 

수령 님의 안면에서는 시 종 밝은 웃음이 피 여나고있었다. 

《이건 점토포지?》 

《예, 그렇습니다. 점토포입니다.》 

점토포란 로의 출선구를 막을 때 진흙을 쏘아넣는 기계이다. 거 
기에 누군가 〈〈포》라는 이름을 달아준것이 참 제격이라고 
그이께서는 생 각하시 였다. 

〈〈토는 작아도 있을것은 다 가지고있구만.》 

모든것이 대견하시였다. 

드디 여 출선의 시 각이 왔다. 로체 공이 쇠장대 로 출선구를 뚫자 주 
홍빛쇠물이 쏟아져내렸다.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뜨거운 쇠물의 폭 
259 



포… 로체공은 쇠장대를 손에서 놓지 않고 혹시나 록스덩이가 구 
멍 을 막을가봐 계속 출선구를 쑤시 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기사장이 보호안경을 드렸지만 그것을 밀어놓으시 
였다. 손채양을 하고 기쁨의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쇠물의 폭포를 
바라보고계시였다. 지금 쏟아지는 쇠물폭포엔 홀날리는 불꽃도 매 
우 적다. 기록영화촬영가들이라면 좀 유감스러워하겠지만 불꽃 
이 적다는것은 그만큼 쇠물이 잘 익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멋있소. 저걸 보시오. 우리가 만든 용광로에서 끓인 쇠물이 아 
주 잘 익었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제일 쇠 물을 사랑하시는 그이 이시다. 저 하 
늘의 태 양처 럼 강렬하고 눈부시 고 아름다운 저 쇠물을 어찌 사랑하 
지 않으랴. 

그이께서는 점도록 쇠물을 바라보시다가 문득 생각나신듯 직장장 
에게 물으시였다. 

《참, 동무들도 당중앙위 원회 제4기 제 5차전원회 의결정 을 잘 알 
겠지. 경제국방병진로선을 말이요.》 

〈〈예, 잘 알고있습니다!〉〉 

〈〈그럼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수령 님 !〉〉직 장장이 흥분어린 목소리 로 힘주어 말씀드렸다. 

《우리 황철의 로동계급은 당의 경제국방병진로선을 전적 으로 지 
지, 찬동합니다.》 

《그렇다?!…》그이께서 정색하여 물으시였다.《그렇게 되면 우 
리 가 또 허 리띠 를 졸라매 야 하겠는데 그래 도 일없겠소?》 

《일없습니다.〉〉직장장이 또 큰소리로 대답올렸다.《우리 용 
해공들은 더 많은 쇠물을 뽑아 당의 경제국방병진로선을 받들겠다 
고 맹세다졌습니다.》 

별안간 그가 몸을 돌리더니 우쪽의 용해공들을 향해 소리쳐물었다. 

〈〈동무들, 그렇지 않소?〉〉 

《그렇 습니 다 !〉〉일시 에 터 진 용해공들의 대 답소리 … 

〈〈고맙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그 지지면 
우린 더 바랄게 없소.》 


260 



그이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신다. 이것이 중요하다. 당은 바로 우 
리 로동계 급의 그 마음을 믿고 그런 결심 을 내린것 이 다! …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금 중형용광로들이 서있는 직장전 
경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이제부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면 저 중형용광로부터 보여주시 
오. 대형용광로를 보면 감탄이 나 했지 그런걸 세울 엄두도 못내지만 
저런 중형용광로를 보면 몹시 부러워하면서 자기네한테도 해달라고 
제기할수 있소. 그러면 우리가 그 나라들에도 해줄수 있지.》 
그이께서는 지금 년간선철수출량이 얼마인가고 물으시였다. 25만 
톤정 도 수출한다는 대답에 그이 께서 는 거 기 에서 얻어지는 값을 대 
충 계산해보시 였다. 그것 이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얼마나 보탬 이 되 
겠 는가를 따져보시 는것이 였 다. 

《그럼》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중형용광로를 정상가동하는 
데서 걸린 문제는 없소?》 

《예, 다른건 별로 없는데 다만 록스를 제때에 보장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록스?! …》 

그이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용광로만 
을 바라보시 였 다. 이 윽고 무겁 게 한숨을 내 그으시 였 다. 우리한 
테 없는 록스때문에 나라의 존엄과 자존심이 상하는것으로 하여 
그이 께 서 얼마나 많은 마음속 고충을 겪으시 였 던가.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우린 어떻게 하나 꼭 우리 무연탄으 
로 쇠물을 뽑는 방법 을 찾아내 야 하오. 록스를 쓰지 않는 우리 식 
제 철제강법 을 말이 요.》한순간 그이 께서 는 주먹 을 그러 쥐시 였다. 

《동무들은 내 이 머리가 왜 이렇게 일찍 회였는지 다는 모를 
거요. 내 머리의 흰오리 하나하나는 거의나 록스때문이요, 록 
스때문!…》 

뒤따르던 사람들모두가 일시에 머리를 떨구었다. 록스때문 
에 너무도 마음고생이 많으신 수령님께 그만 아무 생각없이 다 
시금 그 문제를 상기시켜드렸으니 가슴이 저리도록 죄스러웠던 
것 이 다. 


261 



〈〈우리는 기어이 우리 식 야금공법을 완성해야 하오.〉〉 
수령님께서 또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린 할수 있소. 하자고 결 
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이 바로 우리의 신념이 아니요?… 
지금 김철과 성강은 물론 청진제강소에서 도 주체철연구에서 많은 성 
파를 보고있다고 하는데 황철도 그들에게 뒤져서야 안되지, 옹? 크 
게 마음먹고 한번 해보오.》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그이 께서는 다시 걸음을 옮기시 였다. 

〈〈그것만 완성되면 내 동무들을 업고다니며 만세를 부르겠소. 내 
한생의 소원이 풀렸다고 말이요.》 

그이의 말씀에 사람들모두가 가슴을 세차게 풀떡이 였다. 




김일성 동지께서 는 황해제철소를 3일째 현지지도하고계시 였다. 
그이께서 우리 나라 경제건설의 1211고지라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말씀하시 던 황철이였으므로 하루밤 더 묵으실 예정이 였었다. 
그런데 박성철외무상의 전화보고를 받으시자 즉시 부관을 시켜 승 
용차의 발동을 걸도록 하시였다. 

부수상 겸 외 무상인 박성 철 이 월 남에 서 외 교신서물로 호지 명 주석 
이 수령님께 보내는 친서를 보내왔다고 보고드린것이다. 

밤 이 길 었 으므로 박성 철 은 한동안 망설 이다가 김 일 제1부수상과 
도 의논해보았다고 한다. 김일은 한동안 끙끙 갑자르며 생각을 굴 
리 였다. 마침 내 늦은 밤시 간이긴 하지 만 전쟁 을 하는 나라의 국가 
수반이 보내 온 친서이 니 만큼 지 체 함이 없 이 빨리 알려드리 는게 좋 
겠다고 말했다는것이다.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는 인적이 드문 도로를 바람같이 내달리였 
다. 길바닥에 널린 나무잎들이 차바퀴밑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홀 
날리였다. 


262 



수령님의 사색 (2) 


호지명은 산양같은 흰 수염을 기르고 후줄근한 옷에 고무싼다루 
를 받쳐신고 언제 보나 늙은 농부와 같은 차림으로 생활하며 국가 
정 사도 보는 좀 특이한 인물이 다. 그는 한평 생 소박하고 근면 한 생 
활을 해왔으며 도를 닦는 중파도 같이 장가도 들지 않고 일생 독신 
으로 사는것으로 또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월남사람들은 흔히 그를 《박호》라고 부론다. 이 말 
은 유교사회 에서 인생경 험 이 많고 마을의 년장자로서 제 일 존경받 
는 사람, 마을의 모든 대소사를 주관하고 결론을 내리는 지위에 있 
는 큰아버 지같은 사람을 이 르는 말이 라고 한다. 

호지명과 나와의 정깊은 인연은 아마도 뱀고기료리로부터 시작되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아마 1958년 11월이 였 던 것 같다. 중국방문을 마치 고 월 남으 
로 떠났는데 중국에서는 저우언라이총리와 천이(당시 그는 외교부 
장이였다.)가 나를 월남국경까지 배웅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로 
는 월남으로 가는 비 행기 안에서 저우언라이 와 천이 가 무어라고 수 
군거리더니 뱀고기와 청서고기를 가지고 만든 료리를 내놓고 주류 
로는 뱀알을 담근 술을 꺼 내 는것이 였다. 술병 에 들어있는 파르스름 
한 색의 뱀알들을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저우언라이가 제때에 설명을 달아주었다, 옛날 건륭황제가 제일 
좋아하던 특별히 귀하고 값진 술이라고. 

《그러 니 한번 꼭 마셔보십 시 오. 맛도 좋고 건강과 장수에 도 아 
주 좋은 술입니다.》 

그들의 진정 을 마다할수 없 어 억지 로 한 두어잔 마셔보았는데 술 
맛은 괜찮았다. 외무상 남일은 술맛이 기막히다고 하면서 무려 열 
잔나마 마셨던것 같다. 

그렇게 월남에 가니 호지명주석은 뜨거운 해볕으로 달아오른 군 
중대회 장으로 나를 이 끌며 이 런 말을 하였 다. 

《형 제 적친선의 정 으로 달아오른 이 뜨거 운 열 을 우리 월 남에 오 
263 



신 존경 하는 김일성 동지 께 선물로 드립 니 다.》 

그날 환영군중대회에서는 나와 호지명주석이 공식적인 연설을 마 
친 뒤 뜨겁 게 포옹하고 7만여명 의 군중을 향해 맞잡은 손을 높 
이 들고 흔들었다. 그런 데 놀라운 일 이 벌 어졌다. 호지 명 주석 이 또 
마이크앞에 나선것이 였다. 

《여러분!》하고 그는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나서 두번째 연 
설을, 충동적인 즉흥연설을 시작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는 
조선의 민족적영웅이시며 위대한 수령이십니다. 오늘 조선인민 
은 존경하는 김일성 동지의 현명한 령 도밑 에 미제를 타승한 기세로 
천리마를 타고 내달리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자전거를 타 
고있습니다. 생각해보시오. 우리도 조선형제들파 같이 천리마를 타 
고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 까. 그래서 나는 우리 가 사회 주의 건설 에서 
조선형제 들파 경 쟁을 하자는것을 제의하는바입 니 다. 그래 어떻 
습니까, 경쟁을 하자는 나의 제의 에 찬성합니까?》 

그러자 격 앙된 군중이 와!_ 하고 한목소리 로 웨쳤다. 

〈〈찬성 합니 다 !〉〉 

호지 명 이 또 소리쳐물었다. 

〈〈우리도 천리마를 탈수 있습니까?》 

광장이 떠나갈듯 한 대군중의 대답… 

〈〈탈수 있습니다!一》 

그러자 호지명은 자기 가 직접 노래선창을 떼 였다. 〈〈단결은 힘 이 
다》라는 노래라고 한다. 자신이 선창을 떼고 7만여군중의 대합창 
을 직접 지휘하는것을 보면서 그렇듯 소박하고 진실하고 열정적인 
호지명의 인간상을 새톱게 발견하는 심정이였다. 

잊을수 없는 뱀사연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김일성동지, 아까는 우리가 열대의 뜨거운 열을 선물했는데 이 
번엔 제가 특별료리 를 만들어올리 겠습니 다.〉〉 

그리하여 내놓은것이 뱀고기로 만든 료리 이다. 월남으로 가는 비 
행기안에서는 저우언라이와 천이가 뱀파 청서로 만든 료리를 중국 
말로 〈〈통후떠우》(통과 범이 싸운다는 뜻)라는 요란한 말로 소개 
하고 권했었는데 이번엔 호지명이 동남아시아일대에서 유명한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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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뱀을 가지고 료리를 했다고 한다. 

〈〈이건 내가 김일성동지를 대접하자고 준비한것입니다. 이래 
뵈도 난 젊었을 때 프랑스기선에서 료리사로 일한적도 있답니다. 
(실은 료리사견습공이였다고 한다. ) 그러니 한번 내 솜씨가 어 
떤지 맛을 좀 보아주십시오.》 

뱀고기료리라고 하니 … 선뜻 수저를 들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 
여 그리도 진심인 호지명의 성의를 마다할수도 없었다. 남일은 슬 
그머니 외면했지만 나까지 그럴수는 없었다. 

먼저 독한 술을 한잔 가져다달라고 했다. 술이름도 알아볼새 없 
이 그것을 쭉 마시고나서야 유명하다는 그 료리를 다 먹을수 있었 
다. 그러자 호지명은 대단히 만족해했다. 자기가 료리사들을 지휘 
하여 만든 료리를 내가 다 들었다면서 너무 기삐 두손을 맞잡고 썩 
썩 비벼대던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호지명은 그 차림새처럼 가식을 모르는 사람이다. 고정하고 솔직 
하다. 언제 보나 미소를 담은 상냥한 눈빛이다. 그리고 간혹 아이 
들처럼 장난을 치고싶어하는 때도 있다. 언젠가 중국지도부의 누군 
가가 알바니 아의 엔베르 호자에게 은근히 지미뜨로브처럼 유명한 인 
물이 되여보라고 하는 말을 귀동냥해 듣고 한문으로 글을 씨서 나 
에게 보인 일이 있다. (나는 그와 필요할 때엔 통역이 있어도 필담 
으로 대화를 나누군 했었다. ) 그때 호지명이 나에게 써보인 글 
은 〈〈유리무정》이라는 네글자였다. 그 뜻을 풀이해보면 리치는 있 
지만 인정은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동감의 표시로 머리를 끄덕이 
며 옷어보이자 호지명도 늙은이답게 눈물이 핑一 어리는 두눈에 눅 
눅한 눈웃음을 한가득 지어보이는것이 였다. 

언젠가는 국제공산주의운동 내에서의 의견상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한자로 열여섯냥이라고 쓰고 그옆에 같기 
표식을 해놓았다. 무엇이 같은가고 내가 물으니 그는 다시금 소리 
없이 빙그레 옷으며 열여섯냥파 한근은 같다고 하는것이였다. 미묘 
한 유모아였다. 열여섯냥 같기 한근… 엽전의 앞면파 뒤면을 아무 
리 뒤집어보아도 결국은 같고같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능청스러운 
로인인가. 그럴 때의 그를 보면 머리에 백발을 얹고있는 장난꾸러 
265 



기소년같은 생각이 들군 한다. 

그는 나보다 근 20년 이 나 년장자이다. 하지 만 단 한번도 나에 게 
웃사람리를 내지 않았다. 어느해인가 모스크바에서 있은 연회때 있 
은 일이 바로 그의 좋은 실례이다. 

그때 쏘련공산당 제22차대회가 한창이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 
마 회의 3일째 되 던 마감날이 였던것 같다. 그날 크레믈리궁전 에서 
각국의 당대표단들을 위한 성대한 환영연회가 있었는데 그 연회엔 
중국대 표단 단장이던 저우언라이 도 자리 를 비우고 없었다. 그는 알 
바니아를 때 리 는(그의 배 후에 있는 중국을 념두에 두고) 흐루쏘브 
의 심보사나운 연설파 그에 추종하는 여러 나라 당대표들의 연설내 
용에 항의하는 표시 로 평 전만을 남겨 놓고 그날 오후에 귀 국해 버 렸 
던것이다. 그런 형편이여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좀 랭랭하고 어 
수선 했었 다. 

연회가 시작되였으나 축배사도 없었다. 인도네시 아공산당 총비서 
인 아이디트가 분위기를 깨보려는 의도에서 호지명을 향하여 이렇 
게 말하였다. 

《축배사도 없이 무슨 연회라고 하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제일 년 
세 가 많으신 호지 명 주석 께 서 축배 사를 해 주셨으면 합니 다. 여 러 분,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 나 호지 명 은 황급히 손을 내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 니다. 그래선 안됩 니 다. 여기 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 
는데 아시 아의 공산주의 자들을 대 표하여 김 일성동지 께 서 축배 사를 
하셔야 한다고 볼니다. 나는 여러분들모두가 저의 제의에 찬동하리 
라고 볼니다.〉〉 

그의 제기는 만장의 박수소리에 묻히였다. 

그때 몹시 거북스럽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 무 
슨 공식적인 축배사를 하는것을 굳이 사양하였다. 그런 좌석에서 무 
슨 긴 말을 할게 있겠는가, 그리고 누구를 무엇때문에 축하하여 잔 
을 들고 누구를 춰올리며 누구는 또 깎아내리겠는가? 그렇다고 모 
든 나라, 모든 당들에 입 에 침바론 찬사의 말을 골고루 나누어주는 
266 



골고루정치, 나누기 인사말을 해야 하겠는가?… 그러 한 골고루정 
치 一평균주의는 사실 가면을 쓴 아첨쟁이들이 하는짓이다. 하여 나 
는 사회주의진영파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위하여 잔을 들 
자는 말로 축배사를 대신하였다. 

요란한 박수갈채가 만장을 휩쓸었다. 호지명은 나에게 우정 다가 
와 이렇게 말하였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바로 김일성동지께서만이 하실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그는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이다. 

청년시절에 그는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고 프랑스침략자들을 반 
대하여 싸우는 사람, 나라를 위해 싸우는 원이 되겠다는 뜻에서 이 
틈을 원애국이라고(본명은 원 떳 타잉이였었다. ) 고쳤다고 한다. 
5년간 모스크바류학도 하였고 국제공산당파견원의 자격으로 중 
국 광둥(광동)에 가서 혁명에 참가했으며 영국경찰에 체포되여 홍 
콩감옥에 갇혔다가 영국인 변호사부부의 도움으로 형무소병원에 
서 탈출하기 도 했다. 그후엔 장지 에스(장개석 )에 의해 체포되 여 심 
한 고문을 받고 거의 폐인이 될번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마침 내 중국에서 일제 를 반대하는 투쟁 을 령도하면서 부터 그는 
동지 들로부터 호지명 이 라고 불리 우기 시 작했다. ( 호지 명 이 란 빛 
을 뿌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일제의 폐망후엔 다시 프랑스침 
략자들파의 투쟁을 벌려 놈들을 몰아내였고 그후엔 프랑스를 대 
신하여 나라의 남부에 기여든 미제와의 피어린 싸움을 계속하 
고 있 다. 

그러므로 호지명과 나는 인민들속에서 나온 혁명가의 한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 고있는셈 이 다. 

그래 서 인지 아프리 카의 여 러 나라들과 프랑스, 이딸리 아, 영 
국, 미국, 쏘련, 중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면서 많은 명사들과 혁명 
가들, 지도자들파 인연을 맺 어온 호지명이 였지만 나와는 처음부터 
아무 간격 도 없 이 매 우 자별한 친구처 럼 대 해주었다. 

그러한 호지 명 이 오늘 사전 예 고도 없 이 비 공개 전문을 보내 왔다고 
한다. 무슨 일 이 생 겼는가? 아니 면 시 급히 방조를 요청할 일 이 
267 



라도 생긴것인가?… 물론 두말할것도 없이 미제가 날을 따라 월남 
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하는데 대한 문제 혹은 남조선괴뢰〈〈정부》 
가 지난 3월부터 미제의 지시 에 따라 남부월남에 1개 사단의 전투 
병력파 1개 련대의 보충병력을 증파하는것과 관련된 문제일수도 있 
다. 박정 희 는 지 난해 부터 2만여명 의 남조선괴 뢰 군을 남부월 남 
에 파견했는데 이제 증파되는 병력까지 합하면 근 5만명에 달하게 
된다. 이렇듯 계단식으로 확대되는 전쟁의 추이에 비해 우리가 주 
는 지원물자의 량과 품목이 부족되는것은 아닌지?… 

사실은 우리도 지금 몹시 어려운 처지에 있다. 경제국방병진로선 
을 결심한 우리 로서 는 앞으로 더 많은 시 련과 어 려 움도 각오하지 않 
으면 안된다. 그런데 지금 월남과 꾸바는 물론 발전도상에 있는 여 
러 나라들에 주는 지원물자나 원조량은 우리 힘 에 부치는 엄청난 량 
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우린 약속을 지켜 야 한다. 

제일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 
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제일 어려운 처지 
에 빠져든 사람을 아무런 사심도 없이 진심으로 도와줄수 있는 사 
람이 있다면 그 역 시 행 복한 사람이 다. 왜 냐하면 사심없이 진정으 
로믿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렇 다. 우리 는 반제 반미전선의 한전호속에 서 피 홀려 싸우는 월 
남인민을 사랑한다. 사랑하는것만큼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 하 
여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공화국정부성명을 통해 우리 인민 
은 월남에 대한 미제의 침략을 자신에 대한 침략으로 여기며 월남 
인민에게 지원병의 파견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형태의 지원을 아낌 
없이 줄것이라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진영의 반제반미서렬은 나날이 분 
산되여가고있다. 월남전쟁의 규모가 커감에 따라 중쏘간의 의견상 
이가 더욱 악화일로를 검기 시작한것이다. 쏘련은 중국이 월남에 보 
내는 자기네 군수품들의 수송비로 딸라를 요구한다느니, 쏘련이 월 
남에 보내는 미싸일수송차를 중국이 막아나서서 〈〈저들의 핵계획실 
시에 쓰려 했다.〉〉느니, 뭐니 하고 떠들고있다. 이러한 내용들 
이 미국파 영 국, 인디 아 등 나라들의 신문에 실리군 했다. 이 에 격 
268 



분한 중국정부는 외교부대변인을 통해 날카톱게 반박하는 한편 
《인민일보》에 론평원의 글까지 발표하였다. 

《…이처럼 중국정부는 쏘련측에서 월남에 지원하는 군수물자를 
수송하는데 적극 협조하였으며 가로막은적이 없다. 우리는 딸라 
나 황금은커녕 루블조차 요구한적이 없다.》 

왜 사회주의대가정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있는 
것인가? 아량파 도량이 그렇듯 힘든것인가?… 

인제는 우리가 전면에 나설 때가 되였다. 우리는 전쟁을 할줄 아 
는 인민이다. 미제를 무릎꿇게 한 인민으로서 그 무엇도 두려워하 
지 않는다. 대국이라 하여 허리가 부러지도록 굽신거리지도 않고 수 
전노처럼 모든것을 돈으로 계산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우리 식 
계산법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셈세기도 아니며 미분, 적분과 같 
은 고등수학도 아니다.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조선사람들의 구미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직접 입 에 넣 어 씹 어보고 구미 에 맞으면 먹고 
구미에 맞지 않으면 뱉아버리면 그만이다. 


존경 하는 김일성동지께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나는 먼저 당신께서와 친근한 조선인민이 헤아릴수없이 많은 정 
신물질적지원을 주신데 대하여 가장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지원이 어떻게 마련되고 어떻게 보내여졌는지 잘 
알고있습니다.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북파 남으로 분렬된 나라의 고 
통과 슬픔을 안고사는 사람들로서 미제의 항시적인 침략위협때문에 
한시도 마음의 끈을 풀지 못하며 최후결전을 준비하고있는 어려운 
실정이 아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시 
는 정치적 및 물질적지원을 어찌 수천문의 포와 수십만정의 저격무 
기와 탄약, 수백만벌의 군복이라는 수량이 나 무게로 달아볼수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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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까. 

진정 우리 두 나라 인민은 하나의 위업을 위해 싸우는 전우들입 
니다. 일찌기 레닌이 말씀하신바와 같이 만일 제국주의자들파 맞서 
싸우지 않고 피압박인민대중을 옹호하여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이 하는 혁명이란 과연 어떤것이겠습니까. 

당신들은 바로 그러한 신념파 의리, 우애심으로 우리를 돕고있습 
니다. 하기 에 그것은 수량이나 무게이기 전에 그리고 국제주의적인 
의무이기 전에 가장 뜨거운 혈육간의 사랑이고 기대이며 믿음이였 
습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능한 모든것을 총동 
원하고 죄다 바치며 힘껏 싸우고있습니다. 그러나 날강도 미제는 매 
일같이 우리의 공장, 기업소들, 철도와 농토를 무차별적으로 폭격 
하고있으며 수천, 수만에 달하는 무고한 인민들을 살해하고있습니 
다. 그런데 갓 조직된 우리의 공군은 아직 강대한 미공군과 싸우기 
엔 너무도 미 약합니다. 

존경하는 김일성 동지. 

우리는 당신께서와 귀국정부에서 우리 월남에 지원병을 포함한 온 
갖 형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내외에 선포한것을 뜨거운 감동 
속에 받아안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것은 우리 월남인민만이 
아닌 반제반미투쟁의 모든 전선, 모든 전구의 투사들에게 하신 
당신과 당신을 통한 조선로동당의 약속입니다. 하기에 저는 기탄없 
이 당신께 공군지원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몇가지 병종 
에서의 즉시적인 방조를 요청하는바입니다. 

존경하는 김일성 동지. 

우리는 형제적조선인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진실한 물심량면의 
고귀한 정치군사적지원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 

존경하는 당신께서 부디 건강하시여 고귀한 사업에서 커다란 성 
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호지 명 


270 



9 


김 일성동지께서는 늘 다니시 는 내각청사의 정 원길을 따라 천 
천히 걸음을 옮기고계시였다. 그뒤로는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성철 
파 외 무성 부상 허담, 부수상 겸 국가계 획 위 원회 위 원장인 정 준택, 
내각 제1사무국장 최재우 그리고 군대에서는 최광파 오진우가 따 
르고있었다. 

흐릿 한 아침이 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란 잎새들이 돋기 시 작 
한 나무우듬지들이 좌一 설레 이군 했다. 이 해의 여 름은 너 무도 늦 
게 찾아오는듯싶다. 깊은 사색 에 잠겨계시 던 그이 께서 돌연 걸음을 
멈추시고 최재우 제1사무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김 일동문 또 강원도에 나가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신 수산부문사업을 
추켜 세 우려 구…》 

〈〈김일동무한테선 련락이 왔소?〉〉 

《예, 수령 님. 방금 떠난다고 했습니다.〉〉 

《김 일동무가 놀라지 않게 말해줄걸 그랬소. 무슨 비상사태가 생 
겼나 해서 너무 덤벼칠가봐 걱정이요. 요즘 건강도 몹시 좋지 않던 
데 …》 

최재우는 그만 눈길을 떨구었다. 그런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 
했던것이다. 지금 김일은 함남도와 강원도의 수산부문사업을 료해 
하고 대책하기 위해 현지 에 나가있다. 수령 님 께서 급히 부르신다고 
만 련 락했으므로 지 내 무리할수도 있는것 이 다. 

〈〈그럼 우리 끼 리 먼저 토론합시 다.》그이 께서 하시 는 말씀이였 
다. 〈〈바크보만사건이 터진 후 우리가 말이요. 호지명주석과 한 약 
속을 다 지켰다고 볼수 있겠는지 … 한번 따져봅시다.》 

그이께서는 먼저 오진우에게 눈길을 옮기시였다. 

《참, 오진우부상, 지금 보위상동문 어디에 가있소?》 


271 



《예, 철원부근의 부대들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온다구?〉〉 

〈〈오늘 저녁엔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그렇다?!…》 

수령 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 였다. 민족보위 상 김창봉의 군벌관료 
주의가 도를 넘고있다는 보고를 이미 받으시였던것이다. 그에 대하 
여 엄하게 비판하시 였지만 지금도 그는 부대들의 전투준비완성보다 
는 무슨 집짓기놀음에 더 열중하며 매일같이 군부대장병들을 들볶 
아댄다고 한다. 

《그럼 총참모장동무가 좀 말해보오.》하고 그이께서 이번엔 최 
광에게 물으시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월남에 준 무기와 군사장비 
들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옛, 최고사령관동지, 보고드리겠습니다.》 

최광은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습관된 동작으로 두두룩한 가슴 
을 앞으로 쑥 내밀며 그 수량을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음…》 

사실 그것은 그이께서 도 잘 아시 는 수자들이 였다. 그때 최광의 옆 
에 서 있던 정 준택 이 나직 이 귀팀하였다. 

〈〈군복도 있지 않습니까.》 

최광이 제 쩍 그 말을 받았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구 의 료기 구, 의 약품들도 보냈지.〉〉 

《예, 그렇습니다.》하고 마침내 정준택이 지금까지 그 말씀만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은것처럼 손에 들고있던 수첩을 재빨리 펼쳐들 
었다. 《수령님, 그 모든 무기와 탄약, 군수물자들을 합쳐 돈으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는 대략 1억 7천 500만원에 달하며 외화 
로는 약 1억 …》 

수령님께서 웃으시였다. 

《가만, 정준택동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되여서 그러는가? 
또 돈계산부터 시작하는구만.》 

〈〈수령님, 사실 전…》 


272 



〈〈알고있소. 동무의 심정을…〉〉 

이어 그이께서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러나 얼마후엔 또 멎어서시였다. 잠시 아무말씀없이 머리우에 드리 
운 나무가지에서 파랗게 물이 오른 잎사귀 하나를 뜯으시였다. 

《벌써 이태가 지났지?…》 

그이께서 혼자말씀처럼 뇌이시고는 또 한동안 침묵하시였다. 뒤 
따르던 사람들이 무슨 의미일가? 하는 의미로 서로 마주보았다. 

《바크보만사건이 터진지 이태가 지나갔거던. … 그래서 나는 말 
이요. 올해 우리가 호지명주석과 약속한만큼 성실하게, 량심껏 지 
원했는가를 따져보고싶었던거요. 우린 결코 지원물자를 가지고 그 
무슨 재세를 하려들거나 온 세상에 대고 법석 고아대며 자랑이나 하 
자는게 아니요. 우린 진정 한 조선의 혁명가들로서 자기의 약속을 제 
대 로 지 켰는가, 프로레 타리 아국제 주의 적 의 무에 충실 했는가? 하 
고 량심적으로 따져봐야 하오, 어떻소?》 

《옳습니다, 수령님!〉〉 

〈〈수령님, 그렇습니다. 잘 따져봐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대답올리는중에서도 정준택의 목소리가 제일 크고 
높았다. 수령님께서 그를 돌아보며 웃으시였다. 

〈〈따져본단 말이 지.〉〉 

《예, 그렇습니다.》 

사실 정 준택 으로 말하면 직 무상에 서 도 계 산하고 따져 보는것 이 본 
업 인 사람이 였다. 그러 한 생 각이 사람들로 하여 금 소리내 여 옷게 만 
들었다. 

사실 그들이라고 해서, 당과 국가, 군대의 높은 간부들이라고 
해서 늘 엄숙한 표정으로 끗끗하게만 살라는 법은 없는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공식적인 회의석상이 아닌 야외에서, 그것도 
수령님을 모시고있을 때엔 더더욱 자연을 즐기고 생활을 즐기며 
마음껏 옷고떠들고싶은 심정이 였다. 그러나… 곧 다들 웃음을 거 
두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지고있기때문이 
였 다. 

《그런데 지 금 월 남은》 하고 그이 께서는 무거 운 어 조로 다시 
273 



말씀을 이으시였다. 〈〈매일같이 미국놈들의 집중폭격을 받으며 몹 
시 힘겨워하고있소. 어제 밤 호지명주석이 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 
니 제공권을 장악하고 제세상처럼 날치는 미국비행기들때문에 고생 
이 여간 아니라고 하오. 특히 수도 하노이보위가 제일 어려운것 같 
소. 하지만 지금상태로써는 그들이 하늘의 날강도들을 도저히 막아 
낼 방도가 없다는거요. 오죽 힘들었으면 호지명주석이 지금 미제와 
코를 맞대고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우리 나라의 정치군사 
정세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우리에게 공군지원까지 요청해왔겠소, 
공군지원까지 말이 요 !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서로 눈길이 마 
주치 는것 도 저 어 하고있 었 다.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우린 월남전쟁을 우리의 전쟁으로 보아야 하오.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의무와 약속을 지켜야 하오. 더우기 … 지금 월남의 전쟁을 
남의 집에 난 불을 보듯 하는 사람들이 있는 조건에서 먼저 우리가 
길을 내야 하지 않겠소? 국제주의적지원의 길을!…》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한숨을 
내그으시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 비행사들을 싸움터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 
하니 속이 좋지 않더구만. 그래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소. 어쨌든 전쟁이 란 피를 흘러는 싸움이 아니겠소? 그것도 현 
대전쟁인데… 이제 또 많은 가슴아픈 희생을 낼걸 생각하니 정말 견 
디기 힘들더란 말이요.》 

아픔이 가득 실 린 음성이 였다. 차츰 높아지 기 시 작한 그이 의 숨 
결조차 아픔에 떨리고있는듯싶었다. 무거운 침묵… 마침내 최광이 
참다못해 먼저 컴컴 피로운 기침소리를 냈다. 오진우는 왼쪽으로 머 
리를 돌리고있었고 박성철과 정준택, 허담은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그이 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 였다. 이옥토록 아무 말씀도 없이 가 
랑잎들을 밟으며 한걸음 또 한걸음 무겁게 내짚으시였다. 오래 계 
속된 침묵… 드디여 다시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최광과 오진우 
를 돌아보며 힘주어 말씀하시 였다. 

274 



《동무들은 보위상동무가 돌아오는 즉시 우리가 어떤 규모로 공 
군지 원을 할수 있겠는지 토론해보시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리고 공병부대와 운수부대의 지원도 예견해야겠소. 그러되 
중요한것은 우리 공군의 전투준비 에 빈 공간을 내지 않으면서도 미 
국놈들이 월남에서 날치지 못하게 하자면 얼마만 한 규모로 항공대 
를 무어보내야 하겠는지 잘 타산하는것이요.》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오진우와 최광은 다시금 유격대시절처럼 허리를 곳곳이 펴며 대 
답올렸 다. 

이어 그이께서는 내각 제 i 사무국장 최재우에게 말씀하시였다. 
《김 일동무가 도착하면 곧장 내 방으로 오게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최재우도 군복입은 오진우와 최광이 그러했던것처럼 목에 힘을 주 
며 대답올렸다. 


10 


김일이 탄 승용차는 강원도 통천에서부터 최고속으로 수도를 향 
해 달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 부르시는것이다. 그것도 될수록 빨 
리 돌아오라는 지시였었다. 사실 국가적인 중대사가 아니고서는 그 
렇듯 급히 부르시지 않을것 이다. 

일매지게 늘어선 가로수들이 마치 달리기주로에라도 나선듯 량옆 
에서 쓴살같이 마주달려와서는 뒤로 획획 날아지나가군 했다. 바 
퀴밑에서는 쉴새없이 뽀얀 먼지타래가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소리 
없이 급격히 회오리치며 솟아오르는 먼지의 통트림 … 

차안에서는 김일이 눈을 꾹 감고 피톱게 신음하고있었다. 쉴새없 
이 이마우에 돋아나는 땀방울들을 곁에 앉은 담당간호원 홍이순이 
수건으로 찍어내군 했다. 도담하고 야무진 간호원이였지만 손이 떨 
275 



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속이 타들다못해 재가 앉는듯 했다. 
수령님께서 내각 제1부수상을 급히 부르시는데 이렇듯 로상에서 갑 
자기 병세가 악화되여 인사불성이 되고있으니… 이럴 때 신성우박 
사가 없는것이 한스럽기 그지없었다. 김일이 한사코 그를 떼여놓고 
왔던 것이다. 

홍이순은 피가 나도록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그로서 할수 있는것 
은 이미 다 했었다. 신성우박사가 써준 처방대로 필요한 구급약도 
쓰고 주사도 놓았다. 이제는 시간과 다투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가는 차바퀴의 회전에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수밖에 없었다. 

그때 별안간 바퀴밑에서 아츠럽게 땅바닥을 허비는 소리가 나더 
니 차가 멎었다. 어느 산언덕의 외통길이였다. 

〈〈이건또 뭐야?》운전사가증을내였다. 《길을 막구옆으로 돌 
아가라구?》 

비로소 홍이순은 차앞에 위 엄있게 완장을 팔에 끼고 호각을 물고 
있는 석줄배기사관과 빨간 령장을 단 전사들 둘이 서있는것을 보았 
다. 맨앞의 빨간 령장을 단 전사가 수기를 왼쪽옆구리로 쳐들고 오 
래전부터 쓰지 않던것이 분명한 낡은 길(마론 풀이 무성한)을 가 
리 키고있었 는데 그쪽엔 《돌아가시오.〉〉 라고 먹으로 약간 비 뜰게 
써놓은 표말뚝도 꽂혀 있었다. 

운전사가 빵一빵!一 위혁적으로 경적을 울렸으나 그들은 끄떡없 
었다. 홍이순이 차창을 열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왜 그래요? 왜 길을 차단하는거예요?》 

석 줄배 기군인 이 입 에 물고있 던 호각을 뽑았다. 

〈〈군사비 밀 입 니 다. )) 

《이 차엔 위 급한 환자가 타고있어 요. 빨리 비 키세 요.》 

〈〈 안 됩 니 다.》 

《여기에 누가 타고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모릅니 다.》 

완장을 낀 사관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오직 명령에만 절 
대복종하는데 습관되여서인지 마치 쇠돈이라도 찍어내듯 딱딱한 토 
막말만을 내뱉군 했다. 


276 



홍이순이 또 맵짜게 소리쳤다. 

〈〈동무네 상관이 누굽니까. 상관을 불러주세요.》 

〈〈안됩 니 다.» 

《왜 안된다는거예요?》 

처녀의 목소리가 더 날카로와졌다. 상대방도 어성을 높였다. 
《우린 상동지의 명령을 집행하는중입니다.》 

《상동지요? 무슨 상?…》 

〈〈보위 상동집니다.〉〉 

홍이순은 승용차의 문짝을 활 열어제꼈다. 

〈〈여기엔 내각 제1부수상 김일동지가 타고계셔요. 그런데 지 
금 매우 병세가 위급합니다, 알겠어요?》 

((•••)) 

돌연 사관의 두눈이 배로 커졌다. 빨간 령장을 단 전사의 손에서 
도 시계바늘처럼 옆으로 난 길을 곧추 가리키던 수기가 저절로 떨 
어져내렸다. 비로소 그들은 당황하여 입을 벌리고 차안을 흘끔흘끔 
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운전사는 차를 앞으로 내몰고있 
었다. 홍이순은 차의 문짝을 열어젖힌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 키 세 요!》 

후닥닥 옆으로 물러서는 군인들… 홍이순은 그들가운데서도 먼저 
사관이 날래게 차안을 향하여 아주 멋지게 거수경례를 붙이는것을 
보았다. 그도 실은 날파람있는 멋쟁이사관임에 틀림없었다. 

홍이순은 문짝을 닫고 김 일의 곁으로 바싹 불어앉으며 거쉰 숨소 
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김일은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피롭게 헐떡 
이는 숨소리를 듣고있느라니 처녀는 그만 눈물이 나는것을 견딜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렸다. 한방, 두방 또 한방… 홍이순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옆창으로 머리를 획 돌렸다. 그러나 
길 량옆은 울창한 수림뿐이 였다. 

《웬… 총一소리야?》 

이렇게 물은것은 김일이였다.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가 총소리 
를 듣자 의식을 차렸던것이다. 


277 



〈〈아이, 1부수상동지! 인젠 의식을 차…》 

〈〈무슨 총소리인 가 묻지 않아?》 

이 번엔 좀 더 또렷해진 목소리 였다. 

《아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음… 분명 도이췰란드제 쌍대배기렵총소리였는데…》 

놀라운 일이였다. 일찍부터 총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항일의 로 
장이 달랐다. 총소리에도 각기 자기의 고유한 음색이 있다는것 그 
리고 총과 함께 한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갖가지 
크고작은 총소리마저 친자식들의 목소리처럼 일일이 분명히 가려듣 
는다는것 을 홍이순은 처 음 깨 닫게 되 였 다. 

그 순간 차가 다시 멎어섰다. 저 앞쪽에 많은 차들이 길을 막고 
있는것 이 내다보였다. 숲속으로 갈라져 들어 가는 길목에서 땅!一 하 
고 다시금 총소리가 울렸다. 

김 일이 두눈을 부릅떴다. 심한 경 련으로 실룩거리는 얼굴을 가까 
스로 차창쪽에 가져갔다. 잠시후 김창봉이 차의 차창을 열고 숲속 
으로 렵총을 겨누고있는것이 보였다. 다시 울리는 총소리. 술한 사 
탐들이 왁왁 고함을 치 며 뛰 여다니 고있 었다. 

그때 누군가 김창봉에 게 달려가 뭐 라고 보고하는것 이 내 다보였 
다. 김창봉은 꿈쩍 놀란듯 렵총을 내리고 이쪽으로 피끗 머리를 돌 
렸다. 그에게 보고한 사람이 아마 내각 제1부수상의 차를 알아 
보고 대준 모양이였다. 김창봉이 얼른 차에서 내리더니 이쪽을 향 
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 니 까, 김 일동지.〉〉 

«-)) 

김일은 입을 열수가 없었다.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고 
통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을뿐… 그러자 모진 고통이 력력히 
내배인 그의 얼굴을 살펴보던 김창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데 편치 않으심니까, 제1부수상동지?》 

((-)) 

김 일의 낯색은 거 뭇하니 죽어있었다. 조각상처 럼 까딱 움직 이지 
도 못했다. 그를 대신하여 여돌진 홍이순이 담당간호원의 책 임을 자 
278 



각하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상동지, 지금 제1부수상동진 대단히 위급합니다. 그러니 빨리 
길을…〉〉 

〈〈아,그렇소?〉〉 

김창봉이 소리쳤다. 금시 발밑에서 지진이라도 인것처럼 뒤로 후 
닥닥 물러서며 부르짖는 소리였다. 다음순간 그는 몸을 홱 돌리더 
니 저쪽을 향해 손짓했다. 빨리 길을 열라는 신호같았다. 그러 
자 그쪽의 승용차들이 부릉부릉 발동을 걸더니 앞으로 뒤로 움씰움 
씰하기 시작했다. 다급히 길을 내려고 산자드락에 코를 들이박는것 
이였다. 김일의 승용차는 그 차들의 뒤쪽으로 천천히 움직여갔다. 

〈〈안녕히 가십시오, 제1부수상동지.》하고 김창봉이 차창안을 기 
옷이 들여다보며 손을 올려 거수경례를 했다. 〈〈부디 치료를 잘 받 
으십시 오. )) 

<(•••)) 

김일은 대답을 못했다. 말을 할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 
쥐고 모지름쓰고있었다. 급격히 달아오른 심장이 벼락치듯 무섭게 
고동치고있었 다. 

《네 이놈! 지금이 어느땐데 민족보위상이라는 사람이 사냥놀이 
를 벌리구있어?… 지금 미국놈들이 전쟁을 일으키려구 호시탐탐 기 
회만 노리구있는데 사냥질이 다 원가, 엉? 지금은 사냥철도 아 
닌데 무슨 할짓이 없어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구있나 말이야?… 그 
래 민족보위상이 뭐 타고난 벼슬자리인줄 알아? 수령 님께서 그만큼 
키 워 주시 구 내세 워 주셨으면 천만분의 일 이 라두 보답할줄 알아야지 . 
그래 네놈이 수령님의 믿음을 내놓으면 한푼의 존재가치라도 있는 
줄 아느냐, 이놈?…》 

허나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터쳐나온 고함소리 였을뿐… 어느새 
차는 김창봉의 일행을 멀리 뒤에 남기고 속도를 높이였다. 김일은 
혀를 깨물었다. 곱절로 더해지는 아픔을 참기가 어려웠다. 병세때 
문만도 아니였다. 지금 박금철파 김창봉이 제멋대로 놀아대며 물을 
흐려놓고있는데 수령님을 제일 가까이 에서 모시고있는 자기가 늘 질 
병 에 묶이 여 제구실을 못하고있다는 생각에 더더 욱 가슴이 저려났 
279 



다. (이후 김일은 수령님과 당을 배반한 박금철과 김창봉일파를 제 
거해버리는 력사적인 회의들에서 맨 선참으로 그자들을 준렬히 단 
죄하게 된다. ) 

김일은 승용차가 수도에 이를 때까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차의 뒤좌석에 바위처럼 꾹 박혀 거의나 까딱하 
지도 않고있었다. 

수도에 도착하는 즉시 김일은 최재우 내각 제1사무국장이 일 
러주는대로 수령님집무실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오늘 갑자기 병세 
가 도져 로상에서 무섭게 고생하던 일도 인제는 하나의 악몽으로만 
남았다. 

수령님을 만나뵈오러 가는 그의 걸음에 그 어떤 힘파 무게가 실 
려있는것을 지켜보면서 최재우는 별다른 생각없이 자기 방으로 들 
어갔다. 담당간호원인 홍이순이조차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정말 꿈에 
서 벌어진 일이 아니였던가싶어 머리를 기웃거릴 정도였다. 


이날 밤 김일성동지께서는 월남에 공군비행사들을 비롯한 여 
러 병종의 지원병을 파견하는 문제를 두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비 
상회의를 여시였다. 회의는 오래 계속되였다. 

밤 10시, 회의가 끝난 다음에야 김일은 마음놓고 자리에 몸져누 
울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는 담당간호원 홍이순을 보고서 
는 누구에게도 절대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특히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 보고드리는 날엔 자기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겠노라고 을러메였다. 

그는 자기의 병세때문에 수령님께 근심만 드리는것때문에 늘 죄 
스러웠는데 이제 김정일동지께까지 아픔을 안기고싶지 않았다. 그 
것이 불치의 병이라 해도 그것만은 기어이 숨기고싶었다. 만약 그 
것이 죄다 알려지는 날이면 그는 병원침대에 묶이고말것이다. 매일 
수술칼같이 차고 예리한 의사선생들이 그의 몸파 내장, 지어는 정 
280 



신까지도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상태를 기록하고 그에 대하여 어김 
없이 보고드릴것이다. 결국 그는 한없이 자애로운 의학적관심속에 
서 고통스러운 생을, 치료이면서도 치료가 아닌, 삶이면서도 죽음 
인 여생을 동정과 련민의 의료감옥에 감히워 서서히 말라죽게 될것 
이다!… 이렇게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거의나 절망적인 생각이 
였 다. 

《그런데 간호원.》김일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다시 처 
녀의 귀가에 입을 가져가며 힘들게 말했다. 〈〈우리가 박사선생한테 
까지 숨길수야 없지 않나,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문야 별수 없지. 사실대로 알려줄수밖에, 응?… 박사선생 
한테만… 그것만 딱 허 락해, 알겠지?》 

마치 이 세상에서 홍이순이만 혼자 조용히 살아갈것을 허락하는 
듯 엄숙한 어조였다. 

〈〈알겠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홍이순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대 답했다. 

김일은 도담하고 야무진 담당간호원까지 마침내 자기의 공모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러나 처녀의 속생각은 달랐다. 김일이 아무리 내각 제1부수상 
이라고 해도 처녀의 가슴속 심금의 운전대까지 제 마음대로 잡아돌 
릴수는 없는것이다. 


1 1 


깊은 밤 오진우는 김정일동지를 찾아 당중앙위원회로 차를 달려 
왔다. 그때 김정 일동지 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 였다. 오진우가 
들어 서 자 반갑게 자리 에 서 일 어 서 시 였 다. 

〈〈아니, 오대장동지가 어떻게 이 밤중에?…》 

〈〈예 , 좀 만나본지 도 오래구 해 서 …》 


281 



《아, 그렇습니까?》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든채 오진우에게 손 
짓으로 자리를 권하시 였다. 〈〈거기 좀 앉으십시오. 제 잠간만… 미 
안합니다.〉〉 

〈〈아,일없습니다. 난 상관하지 마시구…》 

오진우는 말코지에 모자를 벗어걸고 수수한 그이의 집무실파 방 
안의 가구들, 즉 옷걸이며 보통책상과 의자들, 책장과 창턱의 꽃 
병 그리고 탁우에 더미로 쌓인 맑스, 엠겔스, 레닌의 저작들을 하 
나하나 살펴보았다. 너무도 소박한 방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수 
수하고 작은 방에서 전당을 새톱게 변모시킬 웅대한 구상이 펼쳐지 
고있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이께서 지금 로동계급 
의 백년사상사총화를 위해 이 방에서 밤을 지새시는 일이 드문하다 
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갑자기 그는 전화로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무엇때문인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우 심각하신 안색으 
로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그래서요?… 예一 그렇습니까? 어쨌든 다행입니다. 그럼 박사 
선생, 제 인차 그리로 가겠습니다. 수령님께 보고드리는 문젠 차 
후 경과를 봐가면서 … 예, 그렇게 하는게 좋겠습니다.》 

오진우는 자기가 때와 장소를 잘못 택했다는것을 깨닫고 자리에 
서 일어났다. 모자를 눌러쓰는데 그이께서 급히 손을 들며 만류하 
시 였 다. 

《아니, 왜 그냥 가시렵니까? 안됩니다. 그래도 무슨 일때문 
에 오셨는지 말씀을 해야…》 

〈〈아, 그저 보구싶어서 왔다는데두요.〉〉 

〈〈그러지 마십시오.》그이께서 밝은 미소를 그리시 였다. 〈〈내 
가 어디 알아맞춰보랍니까?… 좋습니다. 오진우동진 지금 월남 
에 파견하게 될 공군비행사들문제때문에 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 
로 말하면 월남에 가서 싸우게 될 비행사들에 대한 정치사업문제때 
문에!… 어떻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오대장동지 얼굴에 그것 이 씌여져 있는데 그걸 내가 왜 보지 못 
282 



하겠습니까.》 

《? …》 

오진우는 두눈을 가느스름히 뜨면서 재빨리 생각을 굴리고있었 
다. 도무지 믿을수 없는 말씀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오진우는 자 
기가 여기로 오기 전에 수령님께서 벌써 월남에 파견할 공군비행사 
들파 관련한 문제를 김정일동지와 전화로 상론하셨다는것을 알 
지 못했던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부탁합시다.》하고 그는 여전히 신중하게 말 
씀드렸다. 《월남에 파견하는 비행사들에 대한 정치사업문제인 
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방법론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김정 일동지 께 서 가볍 게 나무람하시 였다. 

〈〈아니, 오대장동지야 오랜 세월 군사정치사업을 해오신분이 아 
님니까. 그런데 젊은 사람한테 자꾸 그러면 되겠습니까.》 

오진우는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난 젊은 사람한테 온게 아니라 당을 찾아왔습니다.》 

상?!…》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거두시였다. 이윽토록 깊은 존경이 어 
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알겠습니다. 오진우동지, 고맙습니다.〉〉 

〈〈원, 무슨 말씀을…〉〉 

《고맙습니다.〉〉그이께서 반복하시였다. 《그럼 저와 같이 차를 
타고가면 서 이 야기 를 계 속합시 다. 지 금 김 일 동지 의 병 세 가 …》 

〈〈뭐, 김일동지가 말입니까?〉〉 

그이께서는 불현듯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느끼며 한동안 더 말씀 
을 잇지 못하시였다. 

…이윽고 승용차는 하나둘 불이 꺼지기 시작한 수도의 밤거리를 
조용히 미끄러져가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 몸소 차의 조향륜 
을 잡고계시였다. 그 옆자리에는 오진우가 입을 꼭 다물고앉아 
그이 께 서 하시 는 말씀에 귀 를 기 울이고있 었다. 

《난 김일동지의 병세에 대해 보고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283 



불시로 동통이 오는것이 문제입니다. 신성우박사의 말에 의하면 일 
제와 싸울 때 산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내장이 엉망진창이라고 하 
는데… 아무래도 무슨 비상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습니다.》 
오진우가 그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럼 외국에 보내여 치료받게 하는것이…》 

《아님니다. 김일동지가 뭐 제 나라 의사들파 병원을 옆에 두고 
외국에 가겠다고 할게 뭡니까. 우리 병원에 입원하라구 할 때에도 
펄펄 뛰는분인걸요.》 

《그래도 병치료부터 해야지 그 아바이 정말?…》 

오진우가 투덜거리듯 하는 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 
으시였다. 

〈〈아닙니다. 김일동지를 사업에서 떼여내면 그는 얼마 견디지 못 
합니다. 아마 사무실문을 닫으라면 인생의 문을 닫으라고 하는것처 
럼 펄쩍 펼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자기가 병때문에 수령님을 잘 
받들지 못한다고 얼마나 피로워하고있습니까. 절대로 그를 병원침 
대에 붙들어두어선 안됩니다. 그랬다가는 고통만 더 주고 병을 악 
화시 킬 수 있습니 다. 오아바이 생 각은 어 떻 습니 까?》 

《그렇긴 해두…》오진우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뭘 그럽니까. 사실 오아바이도 무슨 주사요, 병원침대요 하는 
소리만 나오면 펄펄 뛰지 않습니까.》 

〈〈허 •■•多 

오진우는 그만 허거프게 옷고말았다. 

승용차는 대타령쪽의 네거리를 돌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보슬비가 
내리고있었다. 번들거리는 길 량옆에서는 사이사이 드물게 서있는 
가로등들이 가는 보슬비속에서 희끄무레한 빛으로 졸고있었다. 

〈〈오대장동지도》하고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오진우를 향해 눈웃음 
을 지으시였다. 〈〈빨찌산 신대원때엔 고생을 많이 했다지요?》 
오진우는 조금 게면쩍어하였다. 웃는다는것이 미간을 잔뜩 찌프 
리고있었 다. 

《지금도 보다싶이 이렇게 바짝 마르지 않았습니까. 난 원래 타 
고난 약골이우다.》 


284 



《약골이라니요? 아니, 오아바인 언제 보나 땅땅 쇠소리가 나군 
하는데요. 정말입니다.》 

《쇠소리까지야 월… 사실 난 빨찌산때 강위통이나 한창봉이 같 
은 장사들이 얼마나 부러웠댔는지 모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나같 
은 약골들때문에 갑절 고생하신다구 한탄두 많이 했구요. …》 

《그랬 습니까?》 

《그런데도 수령님께선 단 한명도 떼놓지 않고 우릴 다 데리고다 
니셨지요. 그때 수령님께서 업고다니신 전사들이 지금은 다 장령별 
을 달고있 구요.》 

말수더구가 적기로 유명한 오진우였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은 
근히 감동적으로 이어가군 했다. 지금도 그의 두눈은 깊은 감회로 
하여 축축히 젖 어드는듯 했다. 

김 정 일 동지 께 서 말씀하시 였다. 

《수령님께선 아마 나어린 전사들의 가슴속에서 끓고있는 충성심 
을 제일 귀하게 보셨겠지요.》 

《뭐 충성심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땐 그저 빙천설지 
에 오직 사령관동지가 친아버지같은분이시 였으니 이분을 떠나면 우 
린 다 죽는다 하는 생각에 그저 다들 수령님에게 매달렸지요.》 

〈〈이 분을 떠나면 우린 다 죽는다! …〉〉그이 께서는 오진우의 그 말 
을 천천히 되 받아 뇌 이 시 였다. 《정 말 좋은 말씀입 니 다. 그것 이 바 
로 우리모두의 삶의 신조로 되여야 합니다.》 

김정 일 동지께서는 흥분하고계 시 였다. 

《이분을 떠나면 우린 다 죽는다!… 이것은 우리 인민만이 안고 
사는 생활의 진리입니다. 지지리 못살던 우리 인민을 세상에 남부 
럽지 않게 살게 하시구 존엄높은 인민으로 온 세상에 보란듯이 내 
세워주신 우리 수령님 이 아니십니까.》 

《예, 옳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당이 영원히 나아갈 길도 오직 하나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만을 따르는 유일의 항로라고 보고있습니 다.》 

《유일의 항로?!〉〉오진우가 흥분어린 목소리 로 그이 의 말씀 
을 거 듭 되 뇌 이 였다. 《정 말 좋은 말씀입 니 다. 마음에 꼭 듭니 다. )) 

285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러면 월남에 가는 비행사들에게도 우리 군대가 수령님의 군 
대라는것, 따라서 수령님의 사상과 전법으로만 싸워 승리 해야 한다 
는것을 깊이 심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월남의 하늘에 수령결사옹위 
의 비행운만 그리자는 구호를 말입 니다.》 

오진우는 그만 벅찬 기쁨을 누를수 없는듯 경련으로 이지러진 입 
술을 마냥 실룩이 였다. 

《좋습니다. 인젠 됐습니다. 월남에 가는 우리 비행사들에게 어 
떻게 정치사업을 해야 하겠는지 … 잘 알겠습니다.》 

드디여 승용차는 병원에 이르렀다. 정문앞에서는 신성우박사가 
마치 조각상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 


12 


1966년 6월 10일.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침부터 바쁜 시간을 보내시였다. 먼저 
통성기 계 공장과 황해 제 철 소의 생 산문제 를 토의하시 였다. 역 시 
쎄브때문에 빚어진 문제들이 였다. 시간이 오래 걸렀으므로 
그이께서는 토론도중에 두번씩이나 시계를 보시였다. 여러가지 중 
대일정이 오늘 겹쳐져있었던것이다. 

마침 10시 정각이 되기 바쁘게 시계처럼 정확하기로 소문난 서 
기 가 들어섰다. 

〈〈수령님!…〉〉 

〈〈아,시간이 됐소?》 

《예. )) 

그이께서는 오늘 아침 첫 일정으로 체육선수들을 만나신 다음 강 
선제강소를 현지지 도하실 계획이 였 었다. 강선에서 인발강관과 
립철생산을 늘이기 위한 문제가 시급히 제기되였기때문이였다. 
〈〈저… 수령님.〉〉 


286 



《뭐 요?》 

《오늘 아침 마자르인민공화국 신임특명전권대사가 접견을 요 
청 해왔습니다.》 

《마자르신 임 특명 전권대사라…신 임 장을 봉정 하자는게 아니 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선수들은?》 

〈〈예, 지금 응접실에서 대기하고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옷으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마쟈르신 
임특명전권대사는 먼길을 오느라 피곤하겠는데 푹 쉬라고 하시오. 
먼저 우리 선수들부터 만나봐야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이께서는 활달하신 걸음으로 복도를 거쳐 내각소회의실로 향하 
시였다. 김일제1부수상이 뒤따랐다. 

서기가 소회의실문을 열어드렸다. 

눈부신 해살이 벽면의 절반이상을 채운 창유리로 폭포처럼 쓸어 
들고있었다. 갑자기 터진 요란한 환호와 박수… 이미전부터 낯을 익 
히신 선수들이, 벌써부터 눈굽을 훔치며 목메여 만세를 웨치는 선 
수들의 고동색얼굴이 하나하나 정답게 확대되여 안겨왔다. 

그이께서는 환히 옷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보내시였다. 

〈〈동무들,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앞탁으로 가시여 먼저 자리에 앉으시였다. 옆에는 
김일제1부수상이 자리잠았다. 

《자, 인젠 그만… 앉으시오. 앉아서 얘기 합시다.》 

그이께서 몇번이나 손을 들어 만류하셔서야 선수들파 체육부문 지 
도일군들모두가 손을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수령님께서는 먼저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자신의 가까이로 부 
르시였다. 

《위원장이야 여기 나와 앉아야지. 자, 어서 이리 가까이 오시오. 
아, 오라니까.…》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은 너무도 황송하여 수령님의 옆좌석에 
서 한의자 더 사이를 두고 조심스럽게 몸을 옹송그리였다. 마치도 
287 



물속에 몸을 잠그고있는듯 했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밝게 웃으시며 앞자리에 앉아있는 선수들모 
두를 한사람한사람 둘러보시였다. 

《낯익은 동무들이 모두 다 왔구만, 응?… 박두익이,박승진, 한 
봉진이, 하정원, 그다음은 임성휘이구… 림중선 다음자리에 앉 
은 동문 리찬명이지, 우리 조선의 문지기!… 그리구 저 동문 리동 
원이던가? 아 아니, 양성국이지. 그래, 리동원인 저쪽동무이지. 김 
성일동무의 곁에 앉은 저 동무 말이요. 맞지?… 그래 어떻소, 책 
임지도원 연승철동무가 좀 말해보오. 내가 우리의 미더운 선수들을 
다 제대로 알아보았소?》 

책 임지도원 연승철이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다 맞습니다!》연승철은 그만 너무도 벅찬 격정을 이기지 
못해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수령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있은듯 이름이 불리운 다른 선수들까 
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합쳤다. 

〈〈수령 님 , 고맙습니 다!一》 

격정에 넘친 부르짖음… 수령님께서 다시 손을 들어 그들모두를 
자리 에 앉도록 하시 였다. 

《월 그러오. 나만이 아니라 지금 온 나라 인민들이 동무네 이름 
을 다 알고있는데 … 자, 어서 앉소, 앉으라니까. 사실 고맙다는 인 
사는 내가 동무들에게 해야겠소. 정말 큰일을 해냈지. 그게 어 
떤 경 기 요? 아시 아와 아프리 카, 오세안주를 통털 어 서 한개 림 만 본 
선경기 에 나가게 되 여있으니 말이 요. 우리 조선림 이 제8차 세 
계 축구선 수권 대 회 본선 경 기 에 나가게 되 였 다는 소식 을 듣고 지 금 온 
나라 전체 인민 이 얼마나 기 매 하는지 모르오.》 

그이 께서는 지 난해 1965년 11월 캄보자의 수도 프놈뺀에서 
진행된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예선경기때의 일 
을 상기하시 였 다. 

《그때 동무들이 아시 아에 서 제 일 강림 이라고 으시 대 는 오스트랄 
리아림파 경기를 할 때 우린 시작전부터 가슴을 조이며 경기소식을 
기다리군 했소. 사실 오스트랄리 아는 지구의 동반구에 있을뿐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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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앵글로색손족의 후손들이 아니요. 그런즉 영국림파 경기를 한 
다구 해도 과언이 아니지.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내 말이 틀 
리지 않지?〉〉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반쯤 허리를 펴며 말씀드렸다. 

《예, 수령님.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경기를 앞두고 캄 
보자와 기온이 비슷하다는 영국의 어느 한곳에 가서 두달동안이나 
맹훈련을 하고왔다고 합니다.》 

《음… 그런데도 우린 첫 경기에서 6대 1로 오스트랄리아림을 타 
승했거던. 그때 캄보자사람들이 그렇게도 열광적으로 환호를 올렸 
다구 했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말씀 
드렸다. 〈〈사실 그때 캄보자의 노로돔 시 하누크친왕은 지난 조선전 
쟁 때 오스트랄리 아가 15개추종국가들속에 끼 워 전쟁 에 참가한 
것을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나라가 적대관계에 있 
는것 을 고려 하여 공정 성 을 보장한다면서 캄보쟈의 관람자들을 두 편 
으로 갈라 응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응원자들이 우리 림이 
승리하자 몽땅 일어나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이께서는 소리내 여 웃으시 였다. 

《얼마나 통쾌한 일이요. 지난 전쟁때엔 총포로 싸워 이기구 오 
늘은 축구공으로 영 예 떨 치 니 말이 요.》 

〈〈예 , 정 말 대단합니 다.〉〉 

《그다음 두번째 경기가 진행될 때엔 어쨌는지 아오? 난 그날 강 
서군 청산협동농장에서 협의회를 지도하고있었는데… 하, 글쎄 여 
기 앉아있는 내각제1부수상동무가 급히 전화로 나를 찾는다는게 아 
니겠소. 김일동무, 그때 일이 생각나시오?》 

김 일이 두름한 입 술을 벙글서하며 웃음을 지 었다. 

《그때 일을 제가 왜 잊겠습니까. 수령님, 난 그날 너무 흥분하 
다보니 그만… 수령님께서 청산협동농장 관리일군회의를 지도하 
고계신다는것두 다 잊구…》 

수령님께서도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날 김일이 너무도 흥분하 
여 떠 듬거 리 던 일 이 생 생히 기 억되시 였던것 이 다. 


289 



〈〈수령 님 ! 겨 一경사가 났습니 다.〉〉 김 일의 묵직 한 목소리 가 
진동판을 지릉지릉 울리였다. 〈〈그런데 수령님! 이럴 땐 어떻게 하 
면 좋습니까? 예?! 겨一경사가 났는데 …》 

수령님께서 조용히 물으시였다. 

《경사라니 … 김 일동무, 무슨 경사가 났는지 그것부터 말해 야 하 
지 않겠소.》 

김일은 그만 어리둥절해진듯 했다. 

《아니, 수령님! 제가 아직 그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귀통을 때려도 꿈쩍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있는 대틀의 김일, 그 
어떤 고통도 번뇌도 흥분도 좀해서는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것으로 
유명짜한 그였었다. 

마침내 그가 말씀드리는 축구경기소식을 들으며 그이께서는 기쁨 
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렇다?!… 이번에도 3대 1로 이겼단 말이지. 그래서 본선 
경기에 나가게 됐고… 과연 경사요. 그런데 내각제1부수상이 어떻 
게 할지 몰라서야 되겠소? 나라와 민족의 존엄파 영예를 떨친 우리 
선수들인데… 내각에서 잔치를 차려줘야지, 큰 잔치를 말이요.〉〉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큰 잔치를 차리겠습니다.〉〉 
수령님께서 그날 김일과 나누시던 전화대화를 방불하게 펼쳐보이 
시자 장내 에 웃음의 파도가 일렁이 였다. 

《그날 농장관리일군들은 말이요.》하고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 
시 였다. 〈〈내가 우리 림이 오스트랄리아림을 두번씩이나 누르고 세 
계 축구선수권대 회 본선경 기 에 나가게 되 였다고 하자 누가 시 키 지 도 
않았는데 글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르지 않겠소. 너무 
기삐서, 너무 감격하여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우리가 이겼다. 조 
선이 이겼다!一〉하면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더 란 말이요.》 
수령님의 음성은 깊은 감회에 젖어들고있었다. 

〈〈그날부터 온 나라가 동무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지. 공격수 
7번 박두익이는 어떻고 임성휘는 어떻다느니 박승진인 빼몰기능수 
이구 5번 림중선이는 철벽의 방어수라느니 리찬명이는 돌멩이를 던 
져도 고양이처럼 날째게 몸을 뻗으며 잠는다느니 …》 


290 



여러 선수들이 저도 모르게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크게 소리쳐 
옷어대였다. 리찬명이자신도 쑥스러운 표정으로 뒤더수기를 긁 
으며 옷고있었다.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어디 그뿐인가? 외국의 어떤 기자는 쓰기를 조선의 축구를 군 
사술어로 표현하면 날카로운 첨입과 같다고 했소. 즉 쇄기를 박듯 
이 돌입한다는 말인데 또 어떤 축구전문가는 조선의 축구는 아무개 
의 발잔등에서부터 시작되여 아무개의 슛으로 끝난다느니 하면서 찬 
사를 아끼지 않았소. 이 런 경기소식을 들으며 온 나라에서 생산이 
부쩍 올라가구… 참, 그때 김일제1부수상이 통계를 따져보니 인민 
경 제 모든 부문에서 생산장성률이 117프로인가 높아졌다구 하지 않 
았소?…》 

《예.》김일이 대답올렸다. 《그에 대한 통계가 지금도 저한테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수첩을 펴드는 그를 만류하시였다. 

《축구뿐만 아니 지. 근래 에 와서 우리 나라 체 육이 와짝 성파를 
올리고있는데 최근에만도 축구는 물론 녀자배구, 탁구, 륙상, 
사격 등 많은 부문에서 그야말로 놀라운 성파를 이 룩하였지. 그렇 
지 않소,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그이께서 물으시자 위원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도 그 
렇 게 물으시 기 를 가슴조이 며 기 다렸던듯싶 었다. 

《예, 지 난해 쏘련에서 진행 된 국제녀자배구경 기 에서만도 우리 
나라 녀 자배구림 이 일 본종합림 파 쁠스까림 을 각각 3 대 1로 이 
기고 쏘련청년종합림을 3 대 0으로 이겼습니다. 또 아시아가네 
포경기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축구와 배구, 권투를 비롯한 많은 종 
목들에서 1등을 하여 금메달 30개, 은메달 40개를 비롯하여 모두 
103개의 메달을 쟁취하였고 지난해에 핀란드에서 진행된 세계녀자 
속도빙상선수권대회에선 종합 제2위를 하였습니다. 그 경기의 
개인별성적을 보면…》 

《아, 됐소, 됐소.〉〉 수령님께서 웃으시며 그를 자리에 앉도 
록 손짓하시 였다. 〈〈무슨 총화보고서를 읽는것 같구만.》 


291 



장내에 다시금 웃음의 파도가 물결쳤다. 

수령님께서는 탁자우에 놓여있는 성냥갑을 당겨가시더니 그것 
을 뱅뱅 돌리시 였다. 

〈〈내가 체육부문의 성과를 상기하는건 다름이 아니라… 우리 체 
육인들이 세계에 나가 공화국기발을 날릴 때마다 우리 조국의 존엄 
과 긍지가 하늘처럼 높아진다는것을 말하고싶어서였소. 그러니 동 
무들도 이제 영국에 가면 영웅조선의 명예를 걸고 잘 싸우기 바라 
오. 온 나라 인민들이 동무들을 지켜 보고있다는것을 한시 도 잊지 마 
시오. )) 

그이께서는 책임지도원 연승철과 나란히 앉아있는 명례현지도 
원을 여겨보며 물으시였다. 

〈〈어떻소. 명례현동무, 자신있겠지?》 

〈〈옛. 수령님, 자신있습니다.》 

〈〈박두익 동문?〉〉 

《예. 수령님, 우리 기어이 당파 수령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겠 
습니다.》 

〈〈승리의 보고라…》하고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따뚯한 웃음을 담 
으며 말씀하시 였다. 〈〈사실 세계선수권대 회 본선경기라는것 이 
얼마나 높은 문턱이요. 지금까지 아시 아, 아프리카나라들은 감 
히 넘볼념도 못내던 그런 높은 문턱이라구 할가. … 아무튼 체육계 
의 렬강들만이 승부를 다투는 세계대전의 마당이라고도 할수 있지, 
응? 바로 거기에 우리가 아시아를 대표하여 처음 참가하는것만도 큰 
사변인데 반드시 몇등을 해야 한다고 요구할수가 있겠소? 그거야말 
로 어불성설이지. 중요한건 우리가 매 경기때마다 영웅조선의 기상 
을 떨치는것이요. 문지기 리찬명동무, 무슨 말인지 알만 하오?》 

리 찬명 이 문지기 답게 용수철마냥 뛰쳐 일 어 났다. 

《옛. 수령님, 저는… 경기때마다 있는 힘껏 조국의 문대를 지키 
겠습니다.〉〉 

《조국의 문대라… 참 좋은 말이요. 그래야 해.〉〉수령님께서는 
이번에도 손짓으로 그를 앉도록 하시였다. 〈〈우리 리찬명문지기는 
키 가 1메터 74라구 했지 ?》 


292 



《예.》 

눈알이 휘둥그래지는 리찬명이였다. 

《이제 우리보다 훨씬 키가 크고 몸이 실한 사람들과 싸우려면 조 
련치 않을거요. 하지만 동무들의 운동복에 조선이라는 글자가 찍혀 
져있지?〉〉 

《예, 있습니다!》 

《내 동무들한테 강조하고싶은건 그걸 단순히 조선선수단이라 
는 표식이 라고만 생 각해 선 안된 다는거 요. 동무들은 바로 조선 을 가 
슴에 떠 안고 세계무대 에 나간다고 생각해 야 하오. 조선을 가슴에 안 
고말이 요. )) 

〈〈알겠습니다, 수령님!》 

장내를 흔드는 힘찬 대답소리 … 그이께서는 줄곧 밝게, 환하게 웃 
으며 계속하시였다. 

《지금 영국외무성에선 우리 림이 본선경기에 진출하는것때문 
에 아주 난감해한다고 하오. 왜냐하면 영국은 아직 우리 나라를 인 
정 하지 않고있는데 조선림 을 받아들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 
국이라는 국호도 내불여야 하고 국기도 게양하구 국가도 주악해야 
겠는데 그러면 미국놈들이 반발해나설게 분명하니까… 하, 이걸 도 
대체 어떻 게 처 리 한다? 하고 골머 리 를 앓는다는거요.》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거두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얼굴에 떠 
오른 긴장한 빛을 둘러보시며 조용히 웃으시 였다. 

《그건 우리 외무성에서 알아 할 일이고… 동무들은 세계〈최강〉 
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한 영웅조선이라는 배심을 안고 싸워 경기 
마다에서 조선의 본때를 보여주시오.》 

〈〈알았습니다!〉〉 

격앙된 선수들이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올리는데 명례현지도원이 
자리 에 서 일 어났다. 

〈〈수령님, 우린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에 새기고 힘껏 싸 
우겠습니 다. 그 한마음을 안고 우리 축구단의 노래 를 불러드리 고싶 
습니다.》 

《노래?… 좋소. 한번 들어봅시다.》 


293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먼저 선창을 떼 
였는지 … 랑만적 이면서도 기백에 넘친 노래가 시 작되 였다. 

조국의 명예를 무겁게 걸머진 
우리는 영광스런 천리마축구단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꺾 어 
조선사람 본때를 보여주리라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담고 그들을 눈여겨보시였다. 
아 람홍색공화국기 하늘높이 휘날리자 

노래가 끝나자 그이께서 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동무들, 좋은 노래를 들려주어 고맙소. 조국의 명예를 무겁게 
걸머진 천리마축구단이라… 정말 천리마조선의 정신파 기백이 차넘 
치는 흘륭한 노래요. ))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그들모두를 앉도록 하시였으나 선수들은 그 
냥 눈굽을 실룩거리며 한자리에 서 있었다. 

수령님께서 김일을 돌아보시였다. 

〈〈내각제 i 부수상도 한마디 하시오. 세계대전에 나가는 우리의 미 
더운 동무들에게 고무가 되게 말이요.》 

김일은 두름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몸을 움쭉거렸다. 

《아니, 저야 월… 수령님께서 다 말씀하셨는데…》 

《아 그래도…〉〉다음순간 그이께서는 문득 생각나신듯 시계를 보 
시였다. 〈〈참, 김일제1부수상은 비행장에서 이 동무들을 바래주게 
돼있지 않소?》 

《예, 제가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럼 됐구만. 이 동무들이 떠나기 전에 우리 나라의 김치랑 고 
추장이랑 사과랑 다 준비됐는지 미리 알아봐주시오.》 

《예. 수령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디여 그이께서도 자리에서 일어서시 였다. 


294 



《우린 동무들을 믿소. 내가 믿고 당이 믿고 우리 인민이 동무 
들을 믿고있다는걸 잊지 마시오. 그럼 동무들, 좋은 소식을 기 
다리 겠소.〉〉 

이어 수령님께서는 축구선수들 한사람한사람을 차례로 뜨겁게 손 
잠아주시였다. 

《잘 싸우시오, 동무들.》 

믿음파 보답의 마음이 밀물처 럼 굽이치는 장내였다. 믿음이 클수 
록 보답의 마음 또한 크기마련이다. 믿음이 란 곧 불이다. 가장 뜨 
거운 심장의 불, 정신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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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산_평양행 급행렬차는 정시로 평양역구내에 들어섰다. 어슬무 
렵이 였다. 어 느새 역 홈은 기차에서 내린 손님 들로 붐비 고있었다. 
하지만 리웅산은 서둘지 않았다. 크지 않은 밤색트렁크를 옆구리 에 
꼭 낀채 손님들의 맨 뒤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역구내 
를 나서니 벌써 가로등들이 켜지고있었다. 수많은 차들이 오고가며 
전조등빛을 휘딱거렸다. 잠시 우두커니 서있던 리웅산은 삐스정류 
소쪽으로 향했다. 

웬일인지 마음이 어수선하고 번거토왔다. 얼마전까지는 헤산一평 
양행 기차에서 내릴 때마다 그를 기다리는 차와 운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각에 들려 사업보고를 하고는 한시바삐 집 에 가려고 서둘 
군 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에는 늙으신 어머 
니 홀로 집을 지키고있다. 혼자서 한생에 품고있던 그토록 많은 간 
절한 희망과 기대, 마음속 시름을 한뜸한뜸 끝없이, 하염없이 상 
념 의 뜨개 바늘로 뜨고있을것 이 다. … 

걸음이 점점 더 떠지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불치의 병 
을 앓다가 간 안해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리였다. 

그는 진정 안해를 사랑했으나 그저 마음뿐이였다. 언제한번 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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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안해를 극진히 위해준적이 없었다. 노상 일이 바쁘다는, 몸 
을 텔새가 없다는 온당치 않은 구실때문이였다. 안해의 병이 급작 
스레 위독해졌을 때에야 정신없이 병원에 달려갔었다. 그러나 그때 
엔 벌써 너무 늦었었다. 안해는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피기까 
지 가셔진 안해의 창백한 얼굴에 내배고있는 퍼릿한 빛, 죽음의 그 
림자를 알아보고 그만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는 자기의 남편조차 잘 알아보지 못하는듯실었다. 아무 표정 
없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얼마후에야 별안간 입술의 귀재기 
를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오一셨一군一요. …》 

그때 그는 안해의 그 말을 귀로 들었다기보다 가날픈 그 입술의 
놀림을 통해 겨우 알아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시울이 사뭇 실룩거 
렸다.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목구멍으로 욱_ 치밀어오르는것을 느 
꼈던것이다. 

〈〈여보, 내가 그만…〉〉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숨소리도 거칠게 무너지듯 주저앉고말 
았다. 그러자 안해는 그의 손을 잡아 자기의 가슴우에 얹고 가만히 
쓸어주었다. 

《미 一안一해요. …》 

무엇이 미안하다는것인가?… 목이 적 메였다. 말로는 다 표현할 
길 없는 사나이의 거쉰 통곡이 목구멍으로 끓어오르고있었다. 

〈〈여보!…》 

곁에서 지켜보던 딸 혜영이가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 왜 이제야 오셨어요. 엄마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기나 하세요?》 

어머니가 나무라는듯 한 눈빛으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어 
느새 혜영은 어머니의 침대머리쪽으로 손을 쑥 들이밀더니 하얀 종 
이장을 꺼내였다. 

《보세요, 아버지!…》 하고 혜영은 여전히 흐느낌소리처럼 
부르짖고있었다. 《이건 엄마가 아버질 기다리면서… 매일 들여다 
보던 사진 이예 요, 아버 지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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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는 얼결에 사진을 받아들었으나 그것은 들여다볼념도 하지 않 
았다. 보지 않고도 그것 이 코가 뭉툭하고 이마가 벗어진 그 인정머 
리없는 못난이 리 웅산 자기 가 찍 힌 보통의 흑백사진 이 라는것 을 너 
무도 잘 알고있었던것 이다. 

그때 안해가 또 그의 손을 잠으며 바람새는 소리처럼 힘들게 속 
삭이였다. 

《미一안一해요. 잘… 도와드리지 모一못一하구…》 

그만에야 그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것 같은 모진 아픔을 견디여 
낼수 없었다. 피 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무섭게 신음하였다. 

〈〈여보!…》 

그는 마지 막으로 안해 에 게 가슴저 미 는 회 오와 뼈 저 린 자책 파 한 
가닥 마음속의 진정을 담은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이 담긴 말 한마 
디라도 해주고싶었으나 웬일인지 그 말 한마디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지 금도 그때처 럼 그는 허 덕이 였다. 눈앞이 흐려 졌다. 눈망울 
을 때리는 자동차의 전조등빛마저 아프게, 따갑게 느껴졌다. 언제, 
어 떻게 집앞에까지 이르렀는지 알수 없었다. 열쇠를 돌리 다가 이상 
한 느낌이 들어 문을 안으로 밀어보니 방마다 불이 환히 켜져있었 
다. 반가운 예감… 아닐세라 딸 혜영이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깜짝 
놀라는것 이 였 다. 

《아이, 아버지가?!…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넌 어떻게 여기 와있니?〉〉 

본의아니 게 조금 통명 스럽 게 내 던진 반문이 였다. 그리 고는 대 답 
도 기다리지 않고 말코지로 다가갔다. 

《?! …》 

조용했다. 옷을 벗다말고 돌아보니 혜영이는 아버지의 트렁크를 
든채 까딱하지 않고 서서 입술을 옥물고있었다. 그 애가 눈물을 씹 
고있는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얼마전 딸이 써 
보낸 편지의 사연이… 그래, 박유진 그 사위녀석이 당정책과 어긋 
나는 엄중한 발언을 해서 되게 문제가 섰다고 했더랬지.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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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비라는건 딸의 신상에 닥친 불행도 돌아보지 않고있었으니… 
원망을 사게도 됐지. 애비구실도 못하는 바지저고리 ! 당장 급살을 
맞아도 싸지, 싸!… 

그는 속으로 모질게도 자기를 헐뜯고 비웃는것으로써 자기의 뒤 
틀어진 마음을 눅잦히려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그때 안방에서 묻 
는듯 한 시선으로 내다보는 늙으신 어머니가 눈에 띄자 그는 다시 
금 속이 께름해지는것을 느꼈다. 어언 80고개에 이르렀지만 귀 
도 밝고 눈도 밝아 언제든 자식들의 속마음까지 다 들여다보군 했 
던 것이 다. 

《그새 몸성히 계셨어요, 어머니?…》 

그러자 로모는 오무린 입술새로 한숨부터 내그었다. 

《이 늙은건 한뉘 앓지도 않구 이렇게 거접하구있으니…》 

그 다음말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늙으신 어머니가 젊은 며느 
리 를 앞세워 보낸 다음부터 버 릇처 럼 늘 탄식 조로 외 우는 말이 였다. 
리 웅산은 서둘러 웃방으로 올라갔다. 얼마후 딸 헤영 이가 개다리소 
반에 늦어진 저녁식사를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외손녀인 
경애를 끼고 벌써 자리에 누웠다고 한다. 딸 혜영이가 술을 부었다. 
리웅산이 놀라며 물었다. 

〈〈오늘따라 웬일이냐?〉〉 

〈〈아버지.〉〉 혜영이가 눈을 내리깔며 나직이 말했다. 《오늘 
이 바로 어머니제사날 아니나요. 그걸 잊으셨나요?… 난 아버지가 
그래서 우정 오셨다구요?…》 

상?!…》 

갑자기 명치끝이 쿡 쑤시였다. 어머니제사날이라구? 그래서 
오늘따라 안해 생각이 그리도 간절했던것인가?… 

〈〈아버지, 어서 드세요.》 

《응. )) 

술잔을 받아들자 속으로 안해의 명복을 빌며 단숨에 입안에 쏟아 
넣었다. 다음순간 뜨끈하고 예리한것이 가슴노리를 허비며 속으로 
흘러내리는것을 느꼈다. 다음잔부터는 제손으로 직접 붓고 끌끽꿀 
적 마시기 시작했다. 딸은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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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또 한잔… 이옥토록 아무말없이 모가지가 긴 병을 절반이나 축 
내였다. 차츰 그의 목덜미까지 벌거우리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넌 지금두〉〉하고 그는 마침내 혜영이를 향해 거쉰 소리로 말 
하였다. 《이 아버질 원망하구있겠지?〉〉 

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아버지. 아버진 다 몰라요. 지금 아버진 몹시 약해 
지셨어요. 그리구 그전파 또 많이 달라지셨구요. 무엇때문인지 
는 몰라두… 몹시 힘들어하구 피로워하시는게 알려요.》 

《그一 래 ?)) 

그는 상우에 술잔을 내려놓고 딸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이전 
과는 판다른 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전까지 시집 
갈 나이가 되도록 어리광만 부리던 그 철없던 혜영이가 아니라 낯 
익은 한 젊은 녀인이 시름에 잠긴 눈빛으로 자기와 마주앉아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오늘 보니》헤영이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계속하는 말이였 
다. 〈〈별스레 축가구 몹시 늙으셨어요. 어머니가 아마 지금처럼 아 
버지 축가시구 약해지신것을 보면… 막 울거예요, 너무 가슴이 아 
파서 …》 

《응?…》 

웬일인지 속이 덜덜 떨려나기 시작했다. 그새 축가구 늙은거 야 사 
실이 아닌가?! … 그는 추운듯 몸을 옹송그리며 한손으로는 아무 의 
미도 없이 장판바닥을 허비기 시작했다. 

딸이 상우의 술병을 치웠다. 

《아버지, 인젠 새 어머닐 모셔와야지요?》 

〈〈뭐?!》 

〈〈아버 지 , 나도 생 각이 있 어 하는 말이예 요.》 

딸을 쳐다보는 리웅산의 두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뜨아한 생각과 
함께 어 떤 께름한 의 혹이 비낀 눈빛이 였다. 

《인젠 아버지곁에 새 엄마가 있어야 해요. 사실 이건 내가 할소 
린 아니지만 그래야…》 

순간 리웅산은 손을 들어 딸의 말을 막는다는것 이 그만 술잔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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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 엎지르고말았다. 

《얘,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니, 하필 오늘같은 날에?…》 

〈〈아니예요, 아버지 !〉〉 혜영 이가 걸레로 상을 닦으며 아버지 
의 두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지금같이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아버지한텐 새 어머 니 가 있어 야 해요, 새 엄마가! …》 

리웅산은 버 럭 소리질렀다. 

《네 가 정 말? ! … 도대 체 네 가 월 안다구 훈시질 이 야?》 

《아버지!》딸 혜영이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건 사실 어머 
니가 한 말이예요.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마음이 … 바로 그랬단 말 
이예요.》 

《뭐, 어머니가?…》 

그는 별안간 눈보라를 들쓴듯 몸을 웅크리였다. 

혜영이가 계속했다. 

《엄만 그때 벌써 말했어요. 아버질 잘 돌봐드려야 한다구요. 그렇 
게 할수 있는건 이 딸도 아니구 할머니도 아니라면서… 아버진 드세 
긴 하지만 너무도 심한 자존심때문에 상처를 입기 쉽다구,그 자존심 
을 누가 살펴주구 막아주구 지켜주지 않으면 뚝 부러져나가던가 아니 
면 약해져서 골병이 든다구요. 그래서 아버지한텐 진실하구 정찬 사 
탕이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구…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마음이 그런줄 그때 아버진 알기나 했어요? 예, 아버지?!…》 

리웅산은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난 엄마가 한 그 말을 그땐 다 몰랐어요.》딸이 한손으로 입 
을 가리고 금시 터지려는 오열을 삼키며 계속하는 말이였다. 

《솔직히 그땐 그런걸 알려구도 하지 않았는데 … 이 제 와서 야 그 
것이 무슨 말인지 다 알게 되는것 같아요.〉〉 

(("•)) 

그는 입을 열수가 없었다. 할말도 없었다. 몸보다도 먼저 마음이 
비칠거 렸다. 그는 버 릇처 럼 이 마의 주름살을 아프게 문지 르기 시 작 
했다. 한손으로는 술잔을 찾느라고 방바닥을 더돔었다. 

딸이 그의 손에 술잔을 쥐 여주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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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놀라는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혜영은 아무말없이 그 잔에 가 
득 술을 따랐다. 출렁이 는 잔, 넘 쳐나는 술… 이 게 웬일 인가? 어 
째서 이리도 마음이 저려나는것인가?… 그의 두볼로 흘러내린 뜨거 
운 눈물이 한방울 또 한방울 술잔에 떨어져내렸다. 

〈〈아버지!》 

헤영이 가늘게 부르짖었다. 

리웅산은 눈물의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거쉰 소리로 흐느끼듯 부 
르짖었 다. 

《됐다. 그만해라, 제발!…》 

그러자 혜영이도 더는 견딜수 없어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참고 
참아오던 오열을 터뜨렸다. 

《엄마!… 엄만 왜 우릴 버리구 그리두 일찍 가셨어요?!…》 

그만에 야 두사람, 아버 지 와 딸은 서 로 이 마를 맞찜 으며 소리내 여 
울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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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웅산은 깊은 생각에 잠겨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있었다. 

맑은 아침이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기념 
비의 총설계가인 자기가 무엇때문에 지금 여기 아빠트에서 화분이 
나 돌보고있는것인지 생각할수록 놀랍고 기가 막혔다. 그는 주전자 
의 물이 화분너머로 줄줄 흘러내리는것도, 집안에서 초인종소리가 
거듭거듭 울리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아버지!〉〉딸 혜영이가 창문을 열고 그를 찾았다.《손님들 
이 오셨 어 요.》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우정 천천히 손을 닦고 방안으로 들 
어갔다. 출입문은 반쯤 열려진 그대로였다. 이렇듯 이론아침에 누 
가 나를 찾아온단 말인가?… 

낯모를 손님 두사람이 복도에 서있었다. 한사람은 밤색모자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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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에 비딱하니 눌러썼고 몸집이 앙바름한 다른 사람은 도수높은 
안경을 끼 고있었다. 

《저… 뉘신지?》 

리웅산의 물음에 밤색모자가 공손히 물었다. 

《저 … 리 웅산선 생 입 니 까?》 

〈〈예, 제가…》 

《그렇습니까. 우린 시검찰소에서 왔습니다.》 

그가 웃주머니에서 증명서를 꺼내였다. 허나 리웅산은 그것을 받 
아보지 않았다. 

《헌데 무슨 일로?…》 

그러자 그 사람은 증명서를 도로 주머니 에 쓸어 넣으며 얄궂은 웃 
음을 지었 다. 

《선생은 늘 손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말합니까?》 

그의 심상치 않은 어조에 리웅산은 허둥거리며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앞치마를 두른 혜영이가 부엌에서 내다보았다. 안방에서는 어머 
니가 경애를 안고 나왔다. 손님들이 늙으신 어머니가 눈에 띄자 갑 
자기 거북스러워하며 머리숙여 인사했다. 

《저 … 어머니, 아침부터 찾아와 미안합니다. 일이 좀 있어서 …》 

그리고는 리웅산에게 아주 낮은 소리로 수군거 렸다. 

〈〈증명서를 좀 보여주겠습니까?》 

《예,예. …》 

말코지 에 걸 린 옷주머 니 에서 증명서 를 꺼 내는 리 웅산의 두손은 눈 
에 띄게 후들거리고있었다. 공포에 질려있는 어머니와 혜영이는 물 
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경애까지도 이상한 사람들의 출현과 차 
디찬 분위기에 두눈이 올통해져있었다. 

증명서를 받아든 검찰일군이 리웅산의 얼굴파 사진을 깐깐히 대 
조해보더니 여전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린 선생이 암해행위를 하고 도주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와 같이 좀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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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도주? 암해행위?…〉〉 하고 리웅산은 너무 흥분하 
여 떠듬거렸다. 

《도대체 누가 그一 그따위 허一허튼 신고를 했다는겁니까, 예?!》 

그가 어성을 높이자 검찰일군들은 바빠했다. 

〈〈가서 해명해봅시 다.》 

밤색모자를 쓴 검찰일군이 또 어머니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량해 
를 구했다. 

《미 안합니 다, 할머 니 . 공화국법 은 공정하니 너 무 걱 정하지 
마십 시 오.》 

늙으신 어머니는 망두석처럼 굳어진채 여전히 한마디 말도 없었 
다. 잔주름이 그물처 럼 덮여 있는 입가에 경 련이 파문지어 가는듯 오 
무린 입술을 바르르 떨고있을뿐… 그러나 혜영이는 달랐다. 미끄러 
지듯 아버지에게로 다가오더니 와락 매달리였다. 

《아버지, 법은 왜요? 무슨 위법이라도 있었나요?》 

리웅산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그런 일은 없다!〉〉 

〈〈그런데 왜?… 왜 요새 우리 집엔 이런 일만 계속 생기는거예요. 
예, 아버지?!一 )) 

혜영은 자기 남편 박유진이 일까지 한데 거들며 애처롭게 부르짖 
었다. 《아버지, 난 믿지 않아요. 아니,그럴수 없어요. 우리 아 
버 진 절대 로 그럴수가 없단 말이 예 요. …》 

어느새 혜 영은 온통 눈물에 젖 어있었다. 리웅산은 검찰일군들이 
보는 앞이여서 면구스러워 헤영이를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울지 말아. 눈물이나 짠다구 될 일이 아니다. 어느 책에도 써 
있지 않던?… 법은 눈물에 녹지 않는다구.》 

《옳은 말입 니 다.》밤색모자가 말했다. 《자, 그럼 어 서 갑 
시다. 우리 부소장동지가 직접 만나겠다면서 기다리고있습니다.》 

〈〈음一 갑시다.〉〉 

리웅산은 말코지에서 모자를 벗기다가 저도 모르게 어머니쪽으로 
힐끔 눈길을 돌렸다. 다음순간 그는 흠칫하며 모자를 떨어뜨렸다. 
80고령의 어머니가 무서운 의혹파 쓰라린 아픔에 겨워 신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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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버캐가 허옇게 내려앉은 머리를 흔들고있는것이였다. 심하 
게 채머리를떠는어머니의 그 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고 준엄하였다. 
〈〈어머니, 그럼…》 

그 다음말은 더 이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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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웅산은 시검찰소의 어느 한 방에서 밤색모자를 쓰고 집에 왔던 
그 검찰일군과 마주앉았다. 그앞의 량수책상에는 시검찰소의 부소 
장이라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직접 만나겠다고 한 말 
과는 달리 무슨 문서에만 골몰하면서 그들의 대화에는 전혀 무관심 
한듯 했다. 

리웅산은 줄곧 손바닥으로 뭉툭한 코를 문지르고있었다. 밤색모 
자를 쓴 검찰일군의 묻는 말에 별로 깊이 생각지도 않고 즉각 짤막 
하게 그리고 조금 틀진 어조로 대답하군 했다. 누가 무엇때문에 자 
기를 신고했는지 분명해졌던것이다. 

몇가지 간단한 물음과 대답으로 끝난 그들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였다. 

문:〈〈선생은 인민영웅탑의 총설계가인데 그토록 중요한 기념비건 
설장에서 왜 도주했습니까?》 

답:《난 도주한게 아니 라 쫓겨 났소.》 

문:《신고된 내용은 그렇지 않던데요?》 

답:〈〈누가 신고했소?》 

문:《이건 뭡니까? 오히려 제편에서 따지면서… 선생은 그저 제 
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됩 니 다.》 

답:〈〈허… 나를 무슨 죄인처럼 취급하는것 같은데… 그럼 난 대 
답을 안할수도 있소.》 

문:《아니, 대답하게 될겁니다. 그럼… 질문을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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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一 건축가선생이 인민영웅탑의 형성안을 잡아뜯어 어딘가 줴버렸 
다는데 … 그건 무슨 목적으로, 어떤 심보에서 그렇게 했습니까?》 

답:《난 줴버리지 않았소.〉〉 

문:《그럼 형성안이 어데 있습니까?》 

답:《내 트렁크안에 있소.》 

문:《대기념비형성안을 왜 트렁크속에 숨겨둘니까? 그래, 그 
런건 여기 신고된것처럼 암해행위가 아닌가요?》 

답:〈〈암해? 허 … 동문 그저 뾰족한게 송곳 한가지로구만. 문 
건철에 구멍을 뚫는데나 제격이겠소.》 

문:《좋습니다. 선생이 정 그렇게 나오는 이상 나도 한마디 할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나한테 
전적인 권한을 준다면 난 선생을 도피분자로서 감옥에 처넣겠습니 
다, 군사법정에서처럼…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까?》 

답:《뭐, 도피분자? 감옥?… 동무같이 생사람을 마구 잠아들 
이는 사람이 어떻게 법기관에 들어오게 됐소? 동무같은 사람때문에 
위법이 생긴다는거 알기나 하오?》 

문:〈〈내가 왜 법기관에 들어왔는가?… 그건 바로 당신과 같이 자 
기의 혁명초소를 버리구 도망치는 도주자들을 엄벌에 처하기 위해 
서입니다. 인젠 알만 합니까?〉〉 

답:《에익 !… 그만하기요. 난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기록된 문답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때 리웅산은 자기를 감옥 
에 처넣 겠다고 한 밤색 모자의 말에 너 무 분격 하여 벌 떡 자리 에서 일 
어나기까지 했었다. 그러자 지금껏 문서만 뒤적거리고있던 부소장 
이 비로소 머리를 들며 말했다. 

《리선생, 진정하십시오. 신고된 내용은 다 확인된것 같은데… 
인젠 그만합시다.〉〉 

터무니없이 맹랑한 일이였다. 리웅산은 한순간 자기의 이마에서 
피대가 부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바로 그들, 아침 일찌기 자기를 
불러내면서 한 건축가의 자존심을 심히 짓밟은 그들에게 가시돋친 
말로 앙갚음을 하고싶은 께름한 욕망이 뾰족하게 치솟는것을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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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었다. 그러나 부소장은 그의 뒤틀린 심리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터무니없이 크게 소리쳤다. 

《아,시간!… 런던축구시간이요!》 

다음 순간 밤색모자가 벌떡 뛰쳐 일어 나더 니 구석쪽의 라지오를 틀 
어 놓았다. 부소장이 또 소리쳤다. 

《넨장, 좀더 소릴 높이오. 좀더 ! …》 

밤색모자가 음량을 높이자 휘파람같은 소리가 나더니 돌연 비좁 
던 방안이 세계를 향해 어방없이 넓어지 는듯 했다. 떠 들썩한 응원 
의 함성과 갖가지 소음이 파도치듯 방안을 휩쓸었다. 그속에서 가 
까스로 울려오는 리상벽방송원의 목갈린 소리가 점 점 더 커지고 또 
렷해졌다. 

《…이 번엔 7번 박두익선수의 공격입 니 다. 칠레의 3번을 빼몰고 
우측으로 길게 련락, 8번 박승진! 공을 몰고 곧추 문전으로 돌 
입하는가… 아, 그만 뺏기고말았습니다. …》 

처 음부터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런 던 제8차 세 계 축구 
선수권대회 실황이 였다. (후에 야 그것 이 미 들즈브러라는 도시 에 
서 벌어지는 경기라는것을 알았지만 사람들은 그때에도 여전히 런 
던축구라고만 불렀다. )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꽉 부르쥔 주먹이 돌덩이처럼 굳어지는것 
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자기가 방금전까지 심문을 받고있었다는것 
마저 까맣게 잊고있 었 다. 

《…이번엔 6번 임성휘선수가 던져넣기한 공을 15번 양성국이 받 
고 양성국은 또 11번 한봉진에게… 11번 한봉진 좌측으로 돌진합 
니다. 칠레의 3번이 바싹 따릅니다. 한봉진 오른쪽으로 길게 차주 
는 쁠… 아, 칠레의 방어수 2번 가슴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떨 
어 지는 공을 어느새 돌입해들어 가던 박두익 날래게 앗고 곧장 문대 
를 향해 … 슛!一》 

《슛! —)) 

이렇게 소리친것은 부소장만이 아니였다. 밤색모자와 리웅산까지 
도 《슛 ! 一》하고 목터 지게 부르짖 었다. 

《아, 그만 꼴문대를 스치며 넘어갔습니다. 정말 아쉽게 되였습 
306 



니다. 하지 만 공격 은 계 속됩 니 다. 비 록 전 반전 26분경 에 11메 
터벌차기 로 먼저 한꼴을 실점 당했지 만 우리 선수들은 여 전히 기 세 
충천하여…》 

부소장이 밤색 모자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구? 전반전에 뭐가 어떻게 됐다구?》 

《지 금 말하지 않습니까.〉〉하고 밤색모자가 볼부은것 같은 소리 
를 했다. 《11메 터벌차기루 먼저 한꼴을 먹 었다구…》 

《넨장, 경기시간이 얼마나 남았소?》 

누가 그것을 알수 있으랴. 마침 다행히도 방송원 리상벽이 그것 
을 말해주고있었다. 

《…이 제 남은 시 간은 5분밖에 없습니 다. 이 마지 막 5분을 남기 
고 우리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들이대고있지만 칠레림은 완 
강한 방어로 이행하는 한편 가끔 역습도 들이대고있습니다. 실로 막 
강한 실력을 가진 칠레림, 제7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3등을 한 
전적 을 가진 강림 입 니 다.》 

리웅산은 너무 가슴이 짓눌러여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흘러 
가는 분과 초들이 비 수같이 가슴을 찌 르고 이 마전 의 피줄들이 금시 
터져나갈 정도로 무섭게 압박했다. 

《…다시 칠레림의 공격… 칠레의 9번선수가 10번에게 넘겨주고 
10번은 다시 가운데로… 가운데서 8번선수가 우리 꼴문대로 몰 
고들어읍니 다. 좌측으로 넘 겨줄듯… 아, 이 번 에도 최 종방어수가 잘 
막아냈습니다. 중간선을 넘어 날아가는 공을…》 별안간 리상벽이 
고함치듯 했다. 《아, 좋은 기회입니다! 7번 박두익선수, 8번 박 
승진에게 련락해주는 공… 박승진선수 자기에게 달려드는 칠레의 
2번선수를 살짝 빼돌리고 번개같이 돌입하면서… 아! 꼴문대를 향 
해 힘껏 슈_옷!一 꼴인입니다! 정말 멋있는 꼴, 꼴인입니다!一》 

다음 그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 못 
했다. 계속되는 리상벽의 열띤 목소리 … 

《•••지금 관람석 에 키가 굉장이 큰 한 거 인남성 이 경기장 한복판 
으로 나오고있습니다. 경찰이 막아나서지만 거인은 막아선 경찰을 
손으로 가볍 게 밀어 치 우면서 그대로 걸어나읍니다. 누굴 찾고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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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인가?… 아, 우리의 8번 박승진선수의 손을 잡아쉽니다. 그의 손 
을 높이 쳐들며 관중석을 향하여 흔들고있습니다. 박승진선수보다 
키도 몸집도 두배, 세배나 더 큰 영국의 거인입니다!…》 

부소장은 물론 리웅산이 아니꼽게 보던 밤색모자도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 역시 뾰족하기만 한 송곳은 아닌듯 했다. 송곳에도 눈 
물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가?… 

부소장이 또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급히 탁우의 전화기를 끌어갔 
다. 이어 송수화기를 들고 발전자돌리개를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누군가가 나왔다. 부소장이 목쉰 소리로 말했다. 

〈〈내각교환을 주오.》 

리웅산은 아직도 축구경기의 열광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었다. 그가 
무엇때문에 전화를 거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과는 다르 
게 좀 강마론듯 코날이 날카로운 부소장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후 송수화기 에서 교환수의 챙챙한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 나왔 
다. 부소장은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바꾸어쥐더 니 흥분으로 거쉬 여 
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검 찰소 부소장이요. 예, 내각 제1부수상동지 에게 련결해 주 
시오. 즉시 보고해야 할 문제가 있소. 음…》 

그 어떤 찌르는듯 한 예감에 리웅산은 손에 쥐고있던 모자를 꽉 
그러쥐 고 정 신없이 구겨놓기 시 작했다. 

《내 각 제호부수상동지 , 시 검 찰소 부소장 조한성입 니 다. 오늘 리 웅 
산동무에 대한… 예, 료해하였습니다. 지금 제 방에 와있습니다.》 


16 


《음一그렇단 말이지?》김일은 조금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내가 그새 출장을 갔다오다보니 오늘에야 서기한테서 그 동무 
에 대한 얘길 들었소. 그런데 량심적인 그 사람을 법에 걸어 송사 
하다니? 에익, 나쁜 놈들!… 음, 알겠소. 그렇게 하오.》 


308 



김일은 송수화기를 놓고 입술을 악물었다. 웬일인지 명치끝이 얼 
얼해나고 입으로는 거치른 욕지거리가 거침없이 쏟아져나올것만 같 
다. 하여 그는 한동안 갑자르다가 탁우의 다른 전화기를 불쑥 앞으 
로 끄당기 였 다. 

송수화기를 들자 교환수처녀의 탕랑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예, 교환입니다. 제1부수상동지, 말씀하십시오.〉〉 

《동무, 이 전화를 •••)) 하고 김일은 마론 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숨가 
쁘게 말하였다.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 련결해주시오, 당장!…》 
〈〈알았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그는 송수화기를 귀 언저리 에 끼운채 잠시 숨을 돌렸다. 했건만 그 
냥 속이 떨리고 입 안이 말라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되는것이 있었다. 그는 불에 덴것처럼 흠칠하며 송화구에 대고 
소리 쳤 다. 

《가만, 교환수, 지금 몇시가 됐소? 응?… 내가 그만 시간도 보 
지 않구…》 

아무 대답도 없다. 전류흐르는 소리뿐 어데선가 멀리 아득히 울 
려오는 소리 로 미투어 교환수는 벌써 당중앙위 원회 와 련결하고있는 
듯 했다. 김 일은 다급히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새벽 2시 
45분이 되 였는가?… 그 순간 김 정 일동지 의 귀 에 익 은 음성 이 귀전 
을 울리 였다. 

〈〈1부수상동지 , 안녕하십 니 까. 김정 일 이 전화받습니 다.〉〉 

《김 정 일 동지,제 가 그만 …〉〉하고 그는 한손을 내흔들며 다 
급히 말씀드렸다.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갑자기 긴요한 일이 생 
기는 바람에… 꼭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하다보니 그만 어뜩새 
벽 에 전 화를 걸 어 서 … 정 말 안됐 습니 다.》 

《? …》 

웬일인지 저쪽에서는 전류흐르는 소리만 계속될뿐 한동안 아무 기 
척도 없었다. 김일이 의아하여 송수화기를 후一 불어보았다. . 
《김정일동지! 내 말이 들립니까?》 

그제서 야 전류흐르는 소리가 멎었다. 

《김 일동지, 내 벌써 몇번이 나 말했습니까.》 


309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김일동지, 항일의 백전로장인 김일동지까지 젊은 사람한테 계 
속 그런 식으로 나오시면 전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예?!…》 

《아, 그것때문에요?…〉〉김일은 당황해하며 한손으로 이마를 세 
게 문질렀다. 

《김정일동지, 제가 그만… 인젠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린… 예, 내 반드시 동무라고 부 
르리다.〉〉 

《좋습니다. 김일동지, 그럼 우리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세 
번째 약속이라는걸 잊지 마십시오!…》 

〈〈참, 그렇군요.》 

〈〈그런데 김일동지, 지금 웬일입니까?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것 같은데 혹시 병세가 다시 도지는건 아님니까?》 

《아, 아니, 무슨 말씀!… 대낮에 쾌불을 켜들고 다녀도 나만큼 
건강한 사람은 아마 찾지 못할겁…》 

그는 다시금 말끝을 맺지 못하고 거친 숨소리만 송수화기 에 쏟아 
부었다. 마침 김정일 동지께서 옷으며 말씀하시였다. 

〈〈1부수상동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예, 좀 심각한 일이 …》 

김 일은 다시 숨소리 부터 거 칠게 내불었다. 이 어 그는 격해진 목 
소리로 벌어진 일에 대하여 두서 없이 말씀드리 기 시작했다, 

이 윽고 김정 일 동지 께서 근엄한 어 조로 말씀하시 였다. 

《알겠습니다. 이건 단순히 리웅산이라는 한 건축가에 한한 문제 
만이 아닌것 같습니다. 예, 매우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창밖의 먼 하늘가에서는 소리도 없는 번개가 뾰족한 불의 창끝처 
럼 연신 평끗거 렸다. 


비 상한 하루였다. 리 웅산은 시검 찰소의 풍차에 랐다. 운전사 
의 옆자리엔 부소장이 올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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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또 오려나?…》부소장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는 말이 
였다. 〈〈운전사동무, 어디로 가는지 알지?〉〉 

《예, 압니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리웅산은 창밖을 내다보며 머리를 기웃거 
렸다. 어쩐지 이상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인젠 모든것이 끝 
나지 않았는가, 다 해명되지 않았는가?… 오늘 처음 그는 마음 
이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리웅산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가만, 이 차가 지금 어데로 가는겁니까?》 

시검찰소 부소장이 옷으며 말했다. 

〈〈당중앙위원회로 갑니다.〉〉 

〈〈아니,거기엔 왜?!…》 

《내 각 제1부수상동지 가 그렇 게 지 시하였 습니 다. 거 기 가면 
기다리시는분이 있다고…》 

《예?!》 

차는 어느덧 당중앙위원회청사에 이르고있었다. 전조등빛에 키높 
이 자란 가로수들이 확 자태를 드러내군 했다. 

그 순간 차창유리가 확 밝아지고는 곧 어둠속에 묻혔다. 시퍼런 
번개불이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으며 저 멀리 지평선 한끝으로 날창 
처 럼 내 리 꽂힌것이 였다. 리 웅산은 순간 저 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허 나 무시 무시한 우뢰소리 는 없 었 다. 모든것 이 고요했 다. 

〈〈다 왔습니다.》 

부소장이 뒤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였다. 

《예-》 

리웅산은 차문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 머리우에서 땅! 一 하고 무 
시무시한 천둥이 터졌다. 하늘파 땅을 그리고 그의 온몸을 산산이 
으깨 여 놓는 굉 음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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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리 웅산선생 입 니 까?》 

어둠속에서 그를 향해 마주온 사람이 묻는 말이 였다. 

《예, 제가…》 

《제 당중앙위 원회 파장 김형 원입 니다.》 

《예 一 그렇습니까. 헌데 무슨 일로?…》 

〈〈저와 같이 갑시다. 가보면 압니다.》 

그는 몹시 흥분된 기색이였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것도 아랑 
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밤하늘을 덮은 시꺼먼 구름장에서 어느덧 비방울들이 엇비스듬히 
떨 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김형원은 그를 청사앞의 정원으로 데리고갔다. 청사의 창문들에 
서 흘러나온 불빛이 굵직굵직한 비방울들이 후둑후둑 때리는 떨기 
나무들과 작은 련못이며 그 주변을 따라 군데군데 놓인 돌의자들을 
희미하게 비쳐주고있었다. 

갑자기 앞서 가던 김형 원이 걸음을 멈 추었다. 

《지금 저기서》하고 그는 낮고도 거칠게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을 기다리시는분이 누구신지 … 알기나 합니까?》 

뜻밖의 물음이였다. 

《저 …》 

리웅산은 주밋거렸다. 

《똑똑히 들어두시오.》하고 김형원은 자기의 흥분된 목소리를 그 
누가 들을가봐 저 어하는듯 좀더 소리를 죽이며 속삭이는것 이 였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지금 선생의 일때문에 가슴이 아 
프시여 아까부터 계속 저 어둠속을 거닐고계시오. 오죽하면 비가 내 
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계속 자리를 뜨시지 못하겠소.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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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웅산은 별 안간 한손으로 가슴 한쪽을 꽉 움켜 쥐 였다. 심 장의 박 
동이 멎어버린듯 했다. 그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그러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저때문에?!…》 

호흡이 딸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순간 예리 하게 가 
슴에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총설계가인 자기가 지금 헤산의 대 
기 념비건설장을 떠나 집 에 와있다는것, 집 에 와서 화분에 물이나 주 
고있는 그것이 였다. 그야말로 시 검찰소의 밤색모자를 쓴 사람이 말 
했듯이 《도주자로서 감옥에 처넣》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자, 갑시다.》 

《예. …》 

그는 어떻 게 김 형원과장을 따라갔는지 알지 못했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한 넓은잎나무아래에서 비를 맞 
으며 서계시였다. 뿌잇한 외등이 그이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김형원이 다가가 뭐라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그이께서 급히 
머리를 돌려보시였다. 

〈〈그가 왔습니까?》 

리웅산은 몸짝도 하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다 얼어불어버렸다. 

〈〈리 웅산선생 !》 

그이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귀전에 메아리쳐서야 그는 본능적으로 
한발을 앞으로 내짚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 

그이께서도 몇걸음 마주오시였다. 인제는 외등빛이 비를 맞고계 
시 는 그이 의 모습을 더 잘 비 쳐주었 다. 

《리 웅산선 생 !》그이 께 서 낮고도 준절 한 음성 으로 말씀하시 였 
다. 《이름있는 건축가인 리웅산선생을 내 언제부터 만나보고싶었 
는데 오늘 이렇게 한지에서 비를 맞으며 만날줄은 정말 몰랐습니 
다.〉〉 

《친애 하는 지도자동지 ! …》 

그는 숨이 막혀 허 덕 이 였다. 바로 그것 이 야말로 그가 심 장으로 웨 
치고싶던 말이 아니였던가. 그 역시 지금껏 그이를 만나뵙고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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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심을 받는 행운을 얼마나 꿈꾸어왔었던가.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그이를 만나뵈우리라고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리웅산선생.》 그이께서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선생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와있는지 알고있습니까?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 
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선생을 대기념비건설의 주인으로 보내주셨 
는데 무엇때문에 지금 집에 와 숨어있는가 말입니다.》 

무어라고 말씀올릴수 있으랴. 그이의 어깨우에 내린 비방울들이 
뽀얗게 물보라로 흘어지는것만 얼없이 바라보았다. 이 모든게 다 나 
때문에 벌어졌단 말인가?… 그는 입으로 흘러드는 비물과 함께 헉一 
헉 一 터 져 나오는 흐느낌 소리 를 씹 어 삼키 고있 었다. 

순간이 천년인듯… 그이의 엄하신 음성이 다시금 귀전에 메아리 
쳤 다. 

《난 처음 리웅산선생이 도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저히 그 말 
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건축가 
선생이 도주자라는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헉 ! _ 하고 흐느끼 였다. 

《그래 선생은 형성안을 안고 오면서 자기의 량심은 지켰다고 믿 
고있 었는지 모르겠지 만…〉〉 그이 께서 계속하시 는 말씀이 였다. 

《아니, 량심은커녕 선생은 자기의 신념까지 버리고 도주하였습니 
다. 도주자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 일입니까. 선생을 심문한 시 
검찰소의 법일군들이 옳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선생을 도주자, 도 
피분자라고 지탄한것은 천만번 정당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시오. 목에 칼이 박힌다 해도 자기의 신념을 
지 켜 야 할 대 기 념 비 의 총설 계 가가 이 렇 게 도주자, 도피 분자가 되 여 
여기에 나타났으니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 

그이께서는 가슴이 저리신듯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잠시 격 
하신 마음을 억누르시는 가쁜 숨소리만 계속될뿐… 

리웅산은 한손으로 가슴을 꽉 움켜쥐 였다. 그렇게 뼈 아픈 고통까 
지 다 한손에 거머쥘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순간순간이 줄 
기찬 비 속에 서 흘러갔다. 

그이께서 준절하게 계속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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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시오, 리웅산선생. 도피란 언제나 배신에로 이어진 
다는것을! 내가 너무 엄중하게 분석한다고 생각될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도피와 배신은 하나로 통하는 오솔길입니다. 거기에 들 
어서면 다른 길이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의 진지도 줴버리 
고 도피 해가면 량심까지 버 리게 되 고 다음엔 더 큰것을 버리게 되 
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어데로 굴러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난 그 
처럼 쉽사리 자기의 신념을 버린 사람을 만나고싶은 생각이 없었습 
니다. 그렇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품들여 키우신 한 일군을 그냥 
줴버릴수가 없어서, 우리 수령님께서 한때 딴길을 검던 사람들까지 
도 모두 참다운 길, 혁명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그 숭고한 뜻을 생 
각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였습니다.》 

(("•)) 

리웅산은 헐떡이고있었다. 목이 꽉 메이고 눈이 바로 서지 않았 
다. 벌려진 입으로 쓸어든 비물은 피처럼 찝찌레했다. 그는 숨 
이 막혀 허덕이면서 그만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는 그곳, 비물 
이 즐벅 한 땅바닥에 어푸러 지고말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이 미 련한 리웅산이 그만 죽을 죄 
를 지었습니다!一〉〉 

목갈린 사나이 의 통곡… 머 리우의 시꺼먼 밤하늘에서 는 련이 어 시 
퍼런 번개불이 편뜩이고 뒤미처 터진 우뢰소리는 끊임없이 꽈르릉, 
꽈르릉! 하늘땅을 진감하고있었다. 




《…이 렇게 아버지문제는 다 해명됐어 요. 해명됐을뿐만아니라 오 
히려 더큰 당의 신임을 받아안게 되였어요. 우리의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아버지에게 들씌워진 부당한 오명을 씻어 
주시구 다시 내세워 주신거 예요. 

여보, 지난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온밤을 새우며 울고 또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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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버지에게 돌려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하늘같은 은덕에 
목메여 울구 지금 집을 떠나 힘들게 일하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또 
울구… 미안해요. 다신 울지 않겠다고 하구선… 

아버지랑 온밤을 새우면서 당신 이야기도 했어요. 인제는 당신도 
새로운 인생길에 들어설 때가 되지 않았을가 하구요. 수산사업소 당 
위원회에서도 당신이 완전히 달라졌다구 평가하던데 얼마나 좋은 일 
이예요. 그러니 곧 집에 돌아올수 있겠지요, 예?!… 밤이건 낮 
이건 손꼽아기다리는 이 마음… 파연 언제면 당신도…》 

혜영은 벌써 몇번째 눈물에 얼룩진 종이를 찢어버리군 하였다. 한 
숨파 눈물속에 밝아오는 새벽… 혜영은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남편의 가슴을 허비는 눈물의 편지가 아니라 따뜻이 고무하고 떠밀 
어주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박유진은 뜨랄선56호의 어로공들속에 끼워 깜챠뜨까 
의 서북쪽해역에서 물고기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원양어 로작업 이 다. 그의 얼 굴은 볕 파 세 찬 바다바람에 타서 검 
실검실해졌고 시꺼먼 손등도 터갈라졌다. 챙챙하던 목청도 어언 배 
사 람답게 거쉰 소리 로 변 했 다. 

여기는 청진으로부터 무려 1 350여마일이나 떨어진 싸할린섬 이 
북의 오호쯔크해의 맨 끝단이다. 조국에서 멀고먼 북극수역에 잇 
닿아있는 해역이여서 한여름철에도 그는 솜옷을 벗지 못하고있다. 
아침마다 질은 안개가 차디찬 대기를 몰아오는가 하면 별안간 하늘 
이 찌뿌둥해지면서 때이른 는개비를 쏟아붓기도 하는것이다. 

별 안간 포수 권영 길이 소리쳤다. 

《고래다!一》 

그물을 끌어올리 던 사람들의 눈이 
〈〈어데, 어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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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둥그래 졌다. 



〈〈아,저거 안 보이오?》 

과연 그가 가리키는 곳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문짝만큼 
큰 물고기가 재빛의 등가죽과 싯허연 배를 뒤채이며 푸들쩍거리는 
것 이였다. 

《저게 뭐 고래야?〉〉 누군가 코웃음치며 소리쳤다. 〈〈가재미 
야, 왕가재미!》 

사람들이 떠들썩 웃어댔다. 포수 권영길이 고래에 미치다보니 그 
만 대짜배 기 가재미 를 보고도 〈〈고래 다!一〉〉하고 소리 쳤다고 보기 
때문이였다. 고래포의 포수여서 잠을 자다가도 〈〈고래다!一〉〉하 
고 소리 칠 지경이 였 다. 

그러나 가재미를 갑판우에 끌어올렸을 때 제일 나이많은 류운환 
이 그것을 들여다보더 니 한마디로 이 렇게 단정했다. 

〈〈이건 가재미가 아니라 연어 야.》 

놀라운 일 이 아닐 수 없 었 다. 박유진 이 따져물었다. 

《정말 연어가 옳긴 옳소?》 

《아따 이 사람, 우리가 뭐 한두번만 이런걸 잡아봤다구 그런 소 
릴 하오?…》하고 그는 장화발로 연어를 룩룩 차며 말했다. 《이 
제 두구보지비 . 보나마나 오늘은 어 창이 터 질 정 도로 물고기 가 쟁 
힐거우다. 이렇게 큰 연어까지 나타났다는건 먹이생물이 우쩍 늘어 
났다는 소린데 … 그러 면 물고기 떼 가 밀 려드는 법 이 요. 이 건 진짜요. 
이 제 고래 들까지 무리 지 어 나타나지 않나 두구보시 오.》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을 긍정했다. 드물긴 하지만 이 렇듯 큰 연 
어 를 전에도 몇번 보았다고 한다. 

언제 나타났는지 강창길 (그는 륜번제의 취사당번이였다.)이 
〈〈야 이놈, 핑장하구나!〉〉하면서 연어의 배때기에 올라랐다가 
그만 그것이 푸들쩍 용을 쓰는 바람에 저만치 허궁 나가떨어졌다. 

〈〈아이구, 이놈의 연어!》창길이가 피멍이 든 팔굽을 어투쓸며 
멀리서부터 으름장을 놓았다. 〈〈내 오늘 네놈을 통채루 삶아먹을테 
다! 아니 아니, 각을 떠서 구워먹을테다! …》 

각이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맘껏 터치 는 너 털웃음… 

유진은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있었다. 진정 대자연이 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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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신비로운가?… 알낳이철이 오면 제가 태여난 강을 기어이 찾아 
가 거기서 알을 낳고 죽어버린다는 태평양연어… 그것이 저리도 크 
게, 문짝만큼 자랄 정도였으니 아직 한번도 자기가 태여난 고향으 
로 올라가 알을 낳아보지 않았던것일가?… 그것이 과연 대자연의 엄 
정한 법칙도 감히 어기고 여태 바다에 숨어살아온 특대형범죄자였 
단 말일가?… 아니면 그놈도 역시 제가 난 강으로 올라가 알을 낳 
긴 했지만 남들과는 달리 유유히 바다로 되돌아온것일가? 과연 그 
럴수도 있을가?… 흔히 해양생물학자들은 대서양의 연어들은 알을 
낳고도 바다로 되돌아가지만 태평양의 연어들만은 바다로 되돌아가 
지 못한다고 장담하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오래 생각할 새가 없었다. 류운환이 예언한것처럼 대규모 
의 청어떼가 밀려왔던것이다. 갑판우에서 사람들이 벅작 떠들며 뛰 
여다니 기 시 작했다. 째 는듯 한 호각소리 , 구령 소리 , 자망을 치 
는 어기영소리… 그처럼 놀랍게 바라보던 연어도 까맣게 잊고말았 
다. 강창길이 저혼자 끙공 끌고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뜨랄선 이 청 어잡이 를 할 때 엔 보통 15〜 20대 의 자망을 친다. 
자망 한대에 한톤씩 걸리는데 그것을 끌어내고 털어내는것 또한 무 
던히 도 고된 어 로작업 이 다. . 

드디 여 유명한 〈〈마가단춤》이 시 작되 였 다. 저 멀 리 아득하게 바 
라보이는 륙지가 바로 쏘련의 극동지역 마가단주였으므로 그 이름 
을 따서 불인 춤이름이다. 

《엿一 싸! 一 》 

지금은 박유진이 선소리를 먹인다. 그러면 열다섯명의 어로공들 
이 하나같이 틸개기구에 매달아놓은 그물을 힘껏 잡아다리며 털어 
댄다. 

《어 얏一싸아! _》 

바다의 도리깨질 이 라 할가. … 그러면 자망에 걸려 있던 청 어들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내리는데 그물코에 걸려있는 청 어들을 털 
어내는 이 어로작업 이 바로 〈〈마가단춤》이다. 자망의 길이가 보통 
30메터정도 되므로 열다섯명은 서서 털어야 하는데 그중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꾀를 쓰면 춤의 률동이 파괴된다. 고유한 리듬에서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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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난 그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사람들이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 
리 는것 이 다. 

박유진이 또 선소리를 먹 인다. 

《엿一 싸! 一 》 

나머지사람들이 큰숨을 내불고 힘껏 그물을 당기며 각이한 목청 
으로 화음을 맞춘다. 대구나 횟대어, 가재미나 명태와는 달리 류 
달리 기름기가 많은 물고기여서 여느때엔 청어라 하면 진저리를 치 
던 어로공들도 그것을 털어대는 〈〈마가단춤》만은 어쩔수없이 젖먹 
던 힘까지 다 짜내며 하나같이 률동을 맞추고있다. 

〈〈어 얏一싸아 ! 一》 

그물을 터는 그들의 얼굴은 누가 누구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그 
물코에서 벗겨져 떨어지는 물고기들이 얼굴을 후려치고 피를 뿌리 
므로 모두가 피 투성 이이 다. 끔찍 하게 불성 모양이 된 사람들이 지 만 
미친 사람들모양의 이 괴이한 춤률동만은 멈추지 않는다. 

머 리 우에서 는 무수한 갈매 기 와 꽉새 들이 무리 지어 날아엔다. 일 
제히 물속으로 내리꽂히고는 어느새 입에 물고기를 물고 날아오른 
다. 바다새 들이 물고있는 물고기 들이 세차게 푸들쩍거 린다. 넘 
치는 기쁨이 춤추고있다. 파도우에서 회오리치는 물새들의 일대 륜 
무!… 

갑판에서는 구리빛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잔뜩 피칠갑을 한 사 
나이 들이 터갈린 거쉰 목소리 로 그에 화답하고있다. 

《엿 一싸 ! 一》 

《어 얏一 싸 아!一》 

진정 이 특이한 정경이야말로 여기서만 볼수 있는 바다의 대원무, 
대발레라고도 할수 있지 않을가?… 한순간 유진이 머리속에 편뜩인 
생각이 였다. 비록 한방향으로만 그물을 잠아당기며 마구 흔들고 털 
어대는 극히 단순한 반복동작에 불파하지만 여기에도 리듬과 박자 
가 있고 신바람나는 로동의 률동과 가락이 있는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를 소리 쳐불렀 다. 

《유진형!-》 

무슨 일 인지 강창길 이 또 달려 오고있다. 갑판우에 고기비 늘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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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밸들이 너저분했으므로 조심스러우나 무척 재빠른 동작으로 미 
끄러져 온다. 

《형님一》어느새 창길은 박유진을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에 들 
어섰다. 춤의 리듬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선장동지가 찾 
소. 빨리 가보오.》 

《엿一 싸! 一 》 

이 번엔 강창길이 챙챙한 목소리 로 선소리 를 먹인다. 

《어 얏一 싸 아!一》 

조타실로 가니 김 태 규선장은 눈시 울과 귀언저 리 까지 벌거우리 
해 져있었다. 장태렬부선장과 무엇인가 의논하고있는데 한손에는 손 
바닥길 이 만 한 보라색 의 병 이 들려있 었다. 

유진은 무춤 멎어섰다. 그러니 선장동무가 술을?!… 웬일인지 한 
걸음도 더 내짚을수 없었다. 문득 포수 권영길이 옷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배놈들 술도적질 귀신같이 하오. 한배 가득 싣고와도 한달을 못 
채우거던. 그래서 지금두 저 도람통마다 탁배기를 담그고있지 않 
소.》 

다음순간 귀전을 울린것은 장태렬부선장이 하던 말이다. 

《물에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 배군들이 술에 취해서 밤낮 쌈질이 
나 하구 그러다 죽는 놈두 있다구 한다는데 … 그건 다 모르고 허는 
소리요. 술고래들이 긴 해도 쌈질을 하거 나 너 무 취해서 바다에 떨 
어져 죽은 놈은 아직 하나두 없소. 이제 두구 보오. 배사람들만큼 
정과 의리가 뜨겁구 군대처럼 하나의 구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사 
탐들은 아마 세상 그 어디에두 없을거요.》 

비로소 유진은 기관지염이 심해 기침을 련발하던 태규선장을 상 
기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유명한 바다의 영웅호걸인 태규선장이 
술을 한모금도 마시 지 못한다는것이 였 다. 누가 말했 던 가? 그래 , 그 
것도 강창길 그녀석이 귀팀하던 말이다, 사포솔만 먹어도 얼굴이 새 
빨개 진다고. … 

마침 태규선장이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눈길을 돌렸다. 

〈〈유진동무요? 아니, 얼굴에 묻은거나 좀 닦구서 올것이지 원!…〉〉 
320 



그는 유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고는 다시 머리를 뒤로 젖히 
고 보라색병을 기울이였다. 강창길이 말하던 사포솔이였다. 

유진은 후一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이어 고깔모자를 벗어서 대 
충 피칠갑이 된 자기의 얼굴을 문질렀다. 

〈〈이보우, 편지가 왔소.〉〉 

마침내 선장이 말했다. 성이 난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데다가 잔 
뜩 찌프린 얼굴이였다. 

〈〈여기서 읽어보우, 할말이 더 있으니까.》 

유진은 봉투를 쥐는 순간 그것이 사랑하는 안해 혜영이가 쓴 편 
지임을 알았다. 가슴이 후두둑했다. 몇달만에 맡는 안해의 체취, 
귀전에 울려오는 애절한 목소리에 눈굽이 저릿저릿해났다. 장인인 
건축가 리웅산에 대한 감동깊은 사연이 자세히 씌여있었다. 군데군 
데 눈물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는 편지 … 가슴이 얼얼했다. 

〈〈다 봤소?〉〉 

그가 편지를 다 읽기를 기다리던 태규선장이 묻는 말이였다. 

《예.》 

《그것 보우. 편지를 보더니 눈이 벌개지는걸. 마침 됐구만. 빨 
리 교대 하구 돌아가오.》 

〈〈아님니다. 난…》 

《정 그러겠소? 오늘도 사업소당위원회에선 동무를 교대시키지 
않았다구 이 선장한테 막 야단이요. 이보 유진동무, 그래두 그 
냥 고집을 부리면 난 어쩌라는거요, 옹?… 래일 련락선이 떠나 
는데 그편으루 돌아가오. 이 기회에 평양에 가서 집사람이랑 딸자 
식이랑 만나봐야 하지 않소.》 

귀밑에까지 수북하게 자란 그의 구레나룻이 경련적으로 실룩거리 
고있었 다. 

유진은 태연히 말했다. 

〈〈선장동무, 평양이야 몇달전에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일없습 
니다. 다들 생각해주는건 고맙지만…》 

《무슨 말이 그리 많소,에?!… 그래, 한번 더 고래포투승에 
다 태워 바다에 집 어던져 야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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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쓰겁게 옷으며 그만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가만. )) 김 태 규가 장래 렬 부선 장에게 소리 쳤다. 《아까 선 대 에 서 
온 무선에 뭐랬더라?… 무슨 유태인녀자소리도 있지 않았소?》 

장래렬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예, 무슨 아다 뭐라구 하는 유태인녀자가 월 보냈다던지 …》 

《아다? ! …》 

박유진은 불현듯 낯색이 질렸다. 그 녀자는 왜 또 여기까지 따라 
오며 말썽인가?… 

〈〈그것 보오.》태규선장이 사납게 눈을 흘겼다. 《내가 뭐 없는 
소릴 했소? 무슨 일 인지 사업 소당위 원회에 선 동물 당장 들여 보내지 
않으면 이 김 태 규의 가죽이 라도 벗 길것 처 럼 막 야단이 요.》 

《근…》 

박유진은 아무 말도 못했다, 잔등을 훑어내리는 심 한 오한에 으시 
시 몸을 떨고있을뿐. 부지중 매부 장정환의 엄한 눈매가 떠올랐다. 
태 규선장이 그를 미심쩍 은 눈길로 여겨보았다. 

《왜 그러오?》 

〈〈아,아닙 니다.》 

《가서 좀 쉬 오. 인젠 동무 몸에서 두 물고기 비 린내 가 물씬물씬 나 
는데 뭣때메 교대두 마다하오? 누가 뭐라구 할가봐? 아니, 딴생각 
마오. 인젠 동무 속내까지 다 알고있소.》 

장태렬부선장도 한마디 했다. 

《정말이요. 유진동무야 인젠 우리나 진배없는 배사람이지.》 
유진은 끝까지 우기고싶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난…》 

태규선장이 손을 획 내저었다. 

《됐소. 어서 가서 채빌 하오. 이제부터 대휴를 받은셈 치고 푹 
쉬오, 저녁엔 〈백두산〉호에 올라가 영화두 실것 보구. 듣자니 새 
로 나온 〈한 지 대장의 이 야기〉두 왔다더구만.》 


322 



20 


배에서는 혼자서 쉬는 법이 없다. 교대로 잠을 잘지언정 혼자 누 
워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철문을 사이에 둔 선실밖에서 벌어지는 물고기잡이야말로 모든 사 
탐들의 피를 끓게 하는 로동이기때문이 다. 세상에 그렇 듯 피로를 모 
르는, 그렇듯 열광적인 로동은 아마 다시 없을것이다. 더우기 고 
래나 상어를 잠을 때엔 모두가 미친것처럼 날편다. 

오늘 뜨랄선56호는 배가 물에 잠길 지경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 
았다. 선수어창에 100여톤, 선미어창에도 120톤, 오후에는 선 
미갑판과 선수갑판에 돌고래파에 속하는 솔피 를 무려 12마리 씩 
이나 잡아올렸다. 청어의 대군을 뒤쫓아 밀려든 솔피들이였다. 마 
지막 12번째 로 잠은 놈은 솔피 치 고 제 일 큰것 으로서 몸길 이 는 약 
10메터, 무게는 8톤쯤 나갈거라고 했다. 그보다 앞서 잠은것들은 
보통크기 의 솔피 들로서 5톤쯤 나가는것 들이 였다. 

유진은 제 일 큰 솔피 를 갑판에 끌어 올린 다음에도 나머 지솔피 들 
이 여 전히 바다에서 떠나지 않고 물기 둥을 말아올리 며 요동을 치 고 
있는것을 이루 형 언할길 없는 야릇한 감정 으로 살펴보고있었다. 머 
리우에 쓰고있 던 투구모양의 고깔모자까지 벗 어 들고 이옥토록 추연 
해진 눈빛을 그것들에게서 떼지 못하고있었다. 

이 상하게 도 솔피고래 들은 늘 무리 를 지 어 다닐뿐만 아니 라 한놈 
이 포창에 맞으면 나머 지동료들은 그놈이 죽을 때 까지 곁 을 떠나지 
않는다. 동료의 주위를 맹렬히 돌아치며 사납게, 통절하게 모지름 
쓴 다. 

《뭘 보구있소?》 

돌아보니 장태 렬부선장이 였다. 

《저 솔피들을 보니 속이 아릿해지는게…〉〉유진은 고무옷에 게 
발 린 피 자욱을 손으로 대 충 문지르고나서 기 여 들어 가는 소리 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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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글쎄 저것들이 죽어가는 제 동료곁을 떠나지 못하는걸 보 
자니까…》 

장래렬은 오랜 배사람답게 거쉰 소리로 껄껄 옷었다. 

〈〈아니, 우린 유진동무가 배사람이 다 됐는가 했더니 원… 저것 
들이 제 동료곁을 인차 떠나지 않는건 갸륵한 일이지만 어쩌겠소. 
우린 그 통에 나머지것들까지 더 많이 잡아들이지 않소. 아, 다들 
유진동무처럼 그렇게 불쌍히 생각한다면 저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잡 
겠 소?…》 

유진은 입술을 감빨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다, 단순히 솔피고 
래들이 불쌍해서만이 아니다. 그 솔피고래들의 남다른 정과 어떤 우 
애비슷한 본능적행위에 속이 아릿해졌던것이라 할가. … 

《됐소. 그런 감상적인 생각은 싹 걷어치우오.》장태렬이 세포 
위원장다운 결론을 내렸다. 〈〈우린 어떻게 하나 수산물 80만톤 
고지를 점령해야 하오. 오죽하면 포경선들도 많은데 이런 뜨랄선에 
까지 고래포를 다 올려놨겠소. 수산물 80만톤고지점령에서 고래가 
아주 중요하단 말이요.》 

《예, 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 속이 아릿하다?… 난 우리가 잠은 이 많은 물고기를 
모선에서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구 근심하구있는데…》 

그는 대 답도 기 다리 지 않고 조타실 쪽으로 터벌 터벌 걸 어 갔다. 그 
가 끌고가는 무거운 고무장화가 갑판우에 게 발려있는 무수한 고기 
비늘파 터진 밸들을 시꺼먼 기름바닥에 마구 짓이기며 그 무슨 괴 
이 한 그림 문자를 그려놓군 했다. 

《자, 인젠 모선으루 날라가야지!〉〉그가 걸어가며 사람들을 향 
하여 소리쳤다. 《인젠 그만!… 그러다 배가 가라앉구말겠소.》 

유진은 한자리 에 서서 까딱 움직 이지 않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시 
쁘둥했다. 웬일인지 아까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선장이 말한 아 
다 미헬쓴의 일때 문에 마치 벌 레 라도 씹 은듯 했다. 

얼마후 만선기를 단 뜨랄56호는 랭동가공모선들이 있는 쎄베 
로꾸릴스크로 갔다. 다행히 모선에 물고기가 차서 잠아온 물고기를 
몽땅 바다에 처넣는 일이 더는 없을것 같았다. 〈〈통악산〉〉호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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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항에 물고기를 부리우고 방금 돌아왔고 다행히 제일 큰 랭동가공 
모선인 《백두산》호도 아직 물고기를 가득 채우지 못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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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은 모선에 오르지 않았다. 김태규선장이 말하던 새 영화때 
문에 정든 사람들을 떠나 모선에 올라가 혼자 잘수는 없었다. 

대신 풍성한 연회가 선실에서 있었다. 도람통을 거꾸로 세우고 맨 
밑창에 조금 남아있던 대평술을 말짱 받아내였고 쌀뜨물에 사탕가 
투와 가루죽까지 쑤어 도람통에 풀어넣어서 발효시킨 흥탕(배사람 
들은 탁배기를 그렇게 불렀다. )을 사발채로 퍼마시였고 말린 게살 
은 물론 탄불에 노랗게 구워 낸 망챙이와 횟대어 그리고 배사람들이 
제일 귀하게 여기며 서로 엄격히 통제한다는 특수식료품 오이절임 
과 고추절임, 나중엔 국거리 무우시래기까지 죄다 아낌 없이 꺼내놓 
았 다. 

그칠새없이 계속된 축배와 웃음, 유진은 그새 친형제처럼 정이 든 
배사람들파 허물없이 어깨를 겸고 쉴새없이 노래도 불러대였다. 

다정한 동무여 노래를 부르자 
우리 서로 태여난 고향은 달라도 

세월은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이 없어라 

하모니카와 비록 서틀긴 해도 분위기를 돋구는 기타반주도 있었 
다. 여기에 박유진의 특기인 피아노와 손풍금이 없은들 무슨 대수 
이랴. 그야말로 떠들썩한 웃음과 거쉰 탁성으로 엮어진 노래속에 서 
로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고 남먼저 1만톤어로고지를 꼭 점령하 
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시큼틸틸한 탁배기에 몸과 마음까지 푹 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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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흥그럽게 휘둘러지는 바다의 일대 향연이였다. 

언제 날이 밝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 금은 7월 … 어 두운 밤 
을 모르던 하지 도 지난지 오됐으므로 밤 12시 경 에 잠간 어 둡기 시 
작하다가 한두시간만엔 다시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는 계절이다. 

유진이 타고 갈 련락선은 이미 56호의 배전에 바싹 붙여놓고 
있었다. 김태규의 56호배사람들이 거기에 말린 게살을 담은 포 
대를 무려 세개씩이나 실었다고 한다. 련락선의 선원들은 노상 입 
을 다물새없이 싱 글벙글하며 56호의 어로공들에게 허 리가 부러 
지도록 인사를 했다. 그들이야말로 그처럼 귀한 말린 게살이 어떻 
게 생겨난것 인 지 너 무도 잘 알고있 기 때 문이 다. 

사실 배사람들은 어로작업의 쉴참이면 심심풀이로 털게의 중간다 
리살을 뽑아 갑판에 널어 말리우군 했다. 털게의 제일 실한 중간다 
리 살이 맛으로 보나 영 양가로 보나 최 고급의 식 료품이라고 인정 하 
고있기때 문이 다. 또 배사람들은 아무리 고급어족이라 해 도 절대 집 
에 가져가거 나 시 장에 내 다 파는 법 을 모른다. 련 락선 이 올 때 마다 
말린 게살을 사업소에 보내는것을 응당한 일로 여겼다. 가끔 쏘련 
경비대나 순찰정의 해병들에게도 넘겨주군 한다. 

《형 님一》하고 강창길이 말했다. 《저 기 쏘련제마대 에다가 담 
은건 이 강창길이 평양의 형수님께 보내는 선물이요. 뭐? 어째 안 
가져간다구 그러오? 형님이야 영 배사람으로 있겠소?… 누구도 뭐 
라지 않으니 꼭 형 수님 께 가져가오, 에?! …》 

태규선장은 련락선의 선원들에게 가는 동안 먹으라고 지난밤의 연 
회에도 내놓지 않던 연어를 선물하였다. 바다물고기는 크면 클수록 
더 맛있다. 인젠 유진이도 경험을 통하여 이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데 그처럼 보기 드문, 세상에 다시 없을 문짝만 한 연어를 태규선 
장이 통채 로 내 준것이 였다. 

배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엔 물 
고기밖에 없어 다른 선물을 준비 못한다고 안타까와했다. 그새 진 
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정이 든 사람들이였다. 

《유진동무, 다시 돌아오겠지?… 어데 달아날 생각은 아예 하지 
두 마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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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교대때엔 꼭 돌아와야 하우. 기다리겠수다.〉〉 

다음교대는 한달후에나 있게 된다. 

〈〈다시 돌아오겠소. 동무들, 정말이요.》 

뜨거운 속삭임이였다. 유진은 부지불식간에 목이 꽉 메이는것을 
느끼며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잠아 흔들었다. 

《내가 가면 어데루 가겠소? 내 인차 돌아오겠소. 바로 여기루, 
내 집으루 말이요. )) 

어 언 유진이도 그들파 말씨도 같아졌다. 

그때 련락선이 우당탕탕!… 하고 재채기소리처럼 요란히 발동소 
리를 울렸다. 마지막으로 태규선장이 다가와 크고 두름한 손바닥으 
로 유진이의 잔등을 툭 쳤다. 

〈〈유진동무, 잘 가오.》 

《선장동무.〉〉 유진이 갈린 소리로 말했다. 《기관지염이 심 
해지지 않게 부디 건강을 돌보기 바라오. 그럼 동무들! 다들 몸성 
히 잘있으시오!一》 

〈〈잘 가오다, 유진동무!〉〉 

《앓지 마오.》 

〈〈또 만납시다! 一》 

드디 여 련락선이 물결을 헤가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잠에서 깬 갈 
매기들도 나팔소리같이 끼룩끼룩하며 머리우에서 분주살스럽게 
날아예고있다. 아득한 저 수평선에 훤히 밝아오는 새날, 새아침의 
하얀 빛 발, 파도를 타고 번져가는 목메인 배고동소리 ! … 

바로 그때 였다. 멀리 떠 있는 대 형랭동가공모선 《백두산》호의 
확성 기 에서 처 녀방송원이 웨치 는 소리 가 울러 왔다. 

《…알립니다. 선대의 모든 배들파 어로공들… 알립니다. 모 
두 주의깊게 들어주십 시 오. 이 제 라지오에 서 …》 

파도와 바람소리때문에 토막토막 끊기군 하여 어떤 말은 도무지 
가려들을수 없 었 다. 유진 은 두손을 귀 에 바싹 가져 갔다. 

公…소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두… 여기 랭동가공모선 
〈백두산〉호에로… 오십시오. …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바싹 긴장하여 눈까지 꼭 감고있던 유진은 급기야 조타실의 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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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드세게 두들기 였다. 

《돌아가야겠소. 모선에로 빨리 !》 

조타실안에서는 확성기에서 웨치는 소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 였다. 

《왜 그러 오? 무슨 일이 있소?》 

《무슨 중대소식이 있다오. 빨리 돌아갑시다.》 

《중대소식?!…》 

《빨리 배 를 돌리오. 빨리 ! … 가면 알게 되 오.》 

얼마후 유진은 자기 배인 56호에 다시 올랐다. 다행히도 선대의 
모든 뜨랄선들이 모선에 물고기를 넘기려고 모여들던 참이였다. 

《유진동무요?》선장이 갑판우에 모인 사람들속으로 그를 잡아 
끌며 말했다. 《빨리 오우. 하마트면 그냥 갈번 했구만, 영?!》 
〈〈예, 정말 다행입니다.〉〉 

모선의 확성기가 찌륵거리더니 징 !一 하는 새된 금속성이 날카롭 
게 대기속으로 사라져갔다. 모선의 방송원이 음량을 최고로 높이고 
있는것 이 다. 다음순간 《와!一》 하는 함성 이 확성기 에서 우뢰 
소리 마냥 폭풍쳐 나왔다. 그렇 게 소란스러 운 음향의 회리 바람이 한 
동안 계속되더니 돌연 너무도 귀에 익은 방송원의 목소리가 바다의 
물결너머 먼 수평선끝까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조선중앙방송 
의 얼굴파도 같은 리상벽의 격정에 목메인 음성이였다. 

《…이 방송을 듣고계시는 조국의 동포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 
다. 지금 여기는 영국의 미들즈브러시 개선경기장입니다. 우리 
의 미더운 천리마축구선수들이 지금 붉은색운동복을 입고 경기장 한 
복판으로 보무당당히 나아가고있습니다. 우리 선수들파 나란히 걸 
어 나가는것은 지 금까지 세계 축구선수권대회 에서 두번씩 이 나 1등을 
한 전적을 가지고있는 세계적인 강림 이딸리아선수들입니다. 이딸 
리 아선수들은 지 금 검 은색 운동복을 입 고있습니 다.》 

대 번에 심 장이 벅차게 뛰 기 시 작했다. 

선장이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쳐 물었다. 

〈〈지 금 몇시 요?〉〉 

《예, 3시 40분입니다.〉〉 


328 



유진의 대답에 이어 배에서 제일 나이 많은 류운환이 뒤견에서 혼 
자소리처럼 웅얼거렸다. 

〈〈조국에 선 아마 새 벽 3시 쯤 될 거우다.》 

배 에서 제일 나이 어린 강창길은 무엄하게도 감히 그의 의견을 반 
박했 다. 

《아니요. 형님, 조국에선 정확히 새벽 2시 45분이요.》 

〈〈네가 뭘 안다구 그래?》 

《아, 왜 모르겠소? 그만큼 배를 랐는데 …》 

〈〈야, 이자 겨우 한두해 타구서 뭐 그만큼?…〉〉 

《아 형님, 소래긴 왜 지르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그들을 돌아보며 주의를 주었다. 

〈〈좀 조용하지 못하겠소?〉〉 

〈〈류형, 갸 좀 그냥 놔두오.》 

〈〈창길이, 너무 까불지 말아!》 

유진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기의 얼굴을 시서늘하게 솔질해주는 
바다바람을 한껏 들이켰다. 문득 우크라이나의 하리꼬브시에서 쏘 
련의 1류급림들인 스빠르따크림과 지나모림간의 경기를 관람하 
며 아다와 서 로 경 쟁적 으로 응원하던 일 이 상기되 였다. 

유진은 그때 지 나모림 을 응원했으나 아다 미헬쓴은 스빠르따크림 
을 택했었다. 저쪽은 유태인, 이편은 조선사람… 어느 림을 응 
원하건 그들에 게 는 매 일 반이 였다. 하여 제멋 대 로, 마음내키 는대 
로 선택하고 응원했었다. 그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때문이였 
다. 그렇다. 지 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자기의 것 이 아닌 남의 꿈, 남 
의 희망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유진, 나자신의 꿈파 희망을 저 
지구의 한끝에서 벌어지고있는 축구경기에 얹고있는것이 아닌가. 
나의것 이며 우리 모두의것 인 꿈파 희망을! … 

방송에서 와!一와!一 끓어번지는 응원의 함성이 다시금 유진 
의 가슴에 폭풍쳐왔다. 

《…우리 림의 1 5 번 양성국, 쁠을 몰고 중간선을 넘어섬니다. 이 
딸리아 6번을 살짝 빼돌리고 좌측으로 돌입하는 11번 한봉진에 
게 련락, 한봉진선수 왼발로 슛!一 하는가… 아, 8번 박승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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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 게 련 락하고… 박승진, 자기 에 게 달려 든 이딸리 아의 3번선 
수와 몸싸움을 벌리면서… 공을 앞으로 련락, 이번에는 9번이 차 
지 하고 슛!一 아, 이딸리 아의 문지 기 그대로 잡아냈습니 다. 이 
번엔 이딸리아의 문지기가 멀리 우리쪽 중간선너머로 내차는 공입 
니다. 우리 림 의 6번 임 성 휘 달려나오며 머 리받기한 공… 우측 
중간에 있던 이딸리 아의 주장 12번 받아가지 고 공격 조직 …》 
가슴은 졸아들다못해 숨구멍까지 막혀버 린듯 했다. 옆자리의 선 
장은 줄창 유진의 한팔을 으스러지게 잡아비틀었고 뒤에서는 강창 
길 이 딴딴한 주먹 으로 그의 잔등을 도리 깨 질하듯이 두들겨됐다. 

《이딸리아의 9번과 10번 짧은 공련탁으로 주고받기… 우리 문 
전가까이 돌입합니다. 우리의 5번과 3번도 빼돌리고… 아, 위험합 
니다. 하지 만 우리 림 의 최 종방어 수 2번 ! … 예 , 좋습니 다. 끝내 막 
아내 고… 그러 나 쁠은 문선 바깥입 니 다. 역 시 강림인 이 딸리 아, 더 
우기 방금 협동공격을 한 이딸리아의 9번과 10번은 세계적으로 널 
리 알려 진 유명한 레 베 라와 마풀다선수들입 니 다. 공을 던져 넣 는 이 
딸리아의 6번, 이번에도 9번에게 련락한 공을 다시 10번에게 
넘 겨 주고 이 어 서 로 주고받는 짧은 공련 락… 오른쪽 깊 숙이 돌입해 
들어 오는 10번입 니 다. 10번 마콜다, 슛!一 아, 우리 의 리 찬명 문지 
기 몸을 날렸습니다만… 쁠은 문가름대를 넘기고말았습니다.〉〉 

어언 시간의 흐름도 다 잊었다. 실로 운명을 건 경기, 박유진과 
그들모두의 명예와 자존심, 존엄까지도 걸고 하는 경기였다. 

《형님.》창길이가 흐느끼듯이 말했다. 《난 막 숨이 막히구 속 
이 떨려서 죽을것만 같소. 형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오?》 
《입다물어!〉〉 하고 도끼눈을 하며 을러멘것은 태규선장이였다. 

《남들까지 얼게 하지 말구. 속이 떨리문 그냥 책책 소래기를 지르 
란 말야. )) 

옳은 말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경기 이건만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주먹을 내흔들고 무어라 목터 
지게 부르짖군 하였다. 박유진도 례외가 아니 였다. 소리도 치지 않 
고 가만히 앉아서는 견딜수 없었다. 

《…경기시간은 지금 34분을 가까이 하고있습니다. 아직까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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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다 득점이 없이 맹렬한 공방전을 벌리고있습니다. 우리 림은 여 
전히 속도경기… 우리 림의 11번 한봉진, 5번 림중선선수에게 넘 
겨주고 림중선 박두익에 게, 박두익 다시 박승진 에게 련 락하는 공… 
박승진 이 딸리 아림 의 방어 선을 뚫고 돌입합니 다. 맞받아 달려나오 
는 이딸리 아의 주장 … 아, 미끄러 져빼 앗기 … 아니 , 걷 어찼습니 
다. 그러 나 박승진 몸을 날려 그를 타고넘고… 헌데 호각소린?… 
반칙인가?! … 예一 이 딸리 아의 주장 블가텔리 가 우정 다리 를 걷 어 
찬것으로 해서 노란 딱지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 지 금 그는 바 
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미끄러져 빼앗기를 하는척 하 
면서 우리 선수의 다리를 걷 어찼으나 박승진선수가 날래게 그의 몸 
우를 날아넘는 통에 그만 어데를 채운 모양인가?… 경기는 중단되 
였습니다. 아, 드디여 이딸리아의 주장 블가텔리선수가 담가에 실 
려나갑니다.》 

박유진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내흔들며 소리쳤다. 

《잘한다 !一 박승진 !一》 

아직 이처럼 미친듯 격동되여 고래고래 소리쳐본적은 없었다. 그 
것은 단순한 축구가 아니라 투지와 인내, 정신력의 전쟁이였다. 바 
로 그때였다. 박유진이나 뜨랄선 56호의 어로공들을 포함하여 
온 나라 인민이, 동시대의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잊지 못할 
격동적 인 소식 이 마침 내 전파를 타고 날아왔다. 

《인제는 경기시간 41분이 거의 돼읍니다. 우리 림 다시 공격입 
니다. 오직 속도, 오직 공격… 아, 좋은 기회… 중간방어수로부 
터 공을 넘 겨 받는 7번 박두익 , 왼쪽측면으로 돌입 , 이딸리 아의 
3번선수를 빼돌리고… 허나 이딸리아의 3번 그의 팔을 잠아당기지 
만 벌써 문앞으로 번개같이 돌입하는 박두익, 오른발로 유一옷!一》 

숨이 쩍 막혔다. 《유 —옷!—》하는 방송원의 목갈린 웨침소리가 
전 류처 럼 가슴에 스쳐 가더 니 … 그다음 계 속된 리 상벽방송원의 격 동 
적 인 말들은 터질것 같은 심 장의 거 센 박동속에 휘 말려 들었다. 

《꼴一인 !一 꼴一인입 니 다. 우리 의 박두익선수 끝내 이딸리 아 문 
안에 승리의 꼴을 차넣었습니다! 세계적인 강림 이딸리아의 꼴문대 
에 조선의 통꼴을 차넣 었습니다! …》 


331 



모두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누가 먼저 목갈린 소리로 부르짖 
었 던지?… 

《꼴一이다!一 꼴一인!一》 

그들은 서 로 부둥켜안고 울부짖 고있 었다. 누가 누구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몸파 마 
음이, 넋이 하나로 합쳐졌다. 누구도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 
았다. 이 후부터 는 시 간이 더 빠르게 , 바람같이 흘러갔다. 이딸 
리 아림 은 초조감으로 하여 맹목적 으로, 거의나 무모한 개 인돌파전 
으로 나왔으나 그럴수록 그들의 전도는 더더욱 암울해지기만 했다. 

마침내 경 기 가 끝났다. 우리 림은 다음단계의 경기 에 , 즉 제 
5등부터 8등까지 의 순위권 경 기 에 나가게 되 였 다. 

사람들은 울고 옷으며 만세를 불렀다. 

《만세 ! 一 》 

사무치는 기쁨과 감격에 속이 떨리고 눈시울이 실룩거리고 온몸 
에 경련이 일었다. 유진은 거칠고 거무스레해진 손으로 가슴을 쥐 
여 뜯고 부둥켜안고있는 낯익 은 사람의 , 그러 나 도무지 이 름이 생 각 
나지 않는 어떤 사람의 어깨를 사정없이 잠아흔들고있었다. 

〈〈만세!-》 

방송원의 목소리도 더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인제는 그들자신이 
말할 때 였다. 터질것 같은 가슴을 활 열어젖히고 맘껏 부르짖어 야 
할 때 였다. 

격정의 순간순간이 흘렀다. 별안간 박유진을 얼싸안고 돌아가던 
사람이 눈을 흡뜨며 부르짖었다. 

《저 건 또 뭐 이요?… 저 一기 , 저 一길 보라는데.》 

유진은 그가 가리키는쪽으로 피끗 눈길을 돌렸다. 한순간 하얀 물 
갈기를 날리며 쓴살같이 날아오는 작은 배가 시야에 들어왔다. 자 
세히 살펴 보니 쏘련해상순찰정이 였다. 저 들은 또 웬일 인가?! … 
그 순간 파도를 쭉一 가르며 달려오는 쏘련해상순찰정에서 무어라 
고 웨치는 소리가 울러왔다. 귀를 강구고있으려 니 고속으로 달려오 
는 순찰정 의 확성 기 에서 새 된 웨 침소리 가 더 가까이 파도쳐 왔다. 

《까레 이 스까야 꼬만다!一 씰리네 이샤야! 뽀즈드라블랴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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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이 스끼 흐 푸뜨볼리 스또브 쓰 뽀베 도이 나드 이딸리 얀짜미 !》 

유진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쓰빠씨 보 ! 一》 

〈〈뭐라구 하오?》 

태 규선장이 소리쳐 묻는 말이 였다. 

《조선 이 아주 째 다고 합니 다.〉〉유진 이 도 맞받아 소리 쳤다. 

《이딸리 아림 을 타승한 조선의 축구선수들을 축하한답니 다!》 

선장이 유진을 바투 끄당겨갔다. 

《저 들한테 말해 주오, 그들을 우리 배 에 초청 한다구.》 

눈치빠른 강창길이 제끽 뛰여가 메가폰을 가지고왔다. 유진은 그 
것을 받아들자 순찰정을 향해 로어로 그들을 배에 초청한다고 목청 
껏 소리쳤다. 그러 자 그쪽에 서 환성 이 일 었다. 

《오 _ 하라쇼!… 쓰빠씨 보!一》 

해상순찰정은 검푸른 물결우에 흰 갈기를 날리며 커다란 원을 그 
리기 시작했다. 우리 원양선대의 다른 뜨랄선들에도 꼭같은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수평선끝까지 줄곧 메아리쳐가는 축하의 웨침소 
리, 원양어로선대의 뜨랄선들과 모선들에서 그에 화답하여 터져나 
오는 환호성 … 

얼마후 쏘련해상순찰정은 잊지 않고 자기들을 초청한 뜨랄선 
56호에로 되 돌아왔다. 그들은 배 에 오르자마자 무작정 럽석 부리 태 
규선장이하 모든 배사람들을 돌아가며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었다. 
몸집이 우람한 쏘련해상순찰정의 지휘관 해군대위는 로어에 능통한 
박유진을 우정 찾아와 와락 끌어안았는데 어찌 나 길게, 열심히 그 
리고 정성껏 입을 맞추는지 유진은 그만 숨이 막혀 죽을번 했다. 

드디 여 해군대위의 남달리 지독한, 거의나 살인적 인 입맞춤도 끝 
났다. 그가 배 사람들을 휘 둘러보며 웨 쳤다. 

〈〈동지들, 축하합니다!〉〉 

《그럼 축배를 들어야지.〉〉태규선장이 그가 하는 로어를 알아듣 
고 맞받아 소리쳤다. 《이런 경사에 주인인 우리가 가만 있어서야 
안되 지 , 응?! … 유진 동무, 빨리 통역 하오.》 

〈〈아, 우리 도 월 좀 가지구 왔소.》 


333 



유진이 통역을 들은 해군대위가 먼저 야전가방에서 워드까병을 꺼 
내들자 다른 해병들도 저저마끔 주머니에 찔러넣고온 병들을 꺼내 
여 머리우에 높이 쳐드는것이였다. 

《하라쇼!一〉〉태규선장도 뜯개말 로어 로 배고동소리처 럼 내질렀 
다. 《또스뜨(축배)!…》 

세계의 3대어장인데 무엇인들 없으랴. 로씨야사람들이 조선사람 
들의 말을 본따 〈〈맨따이〉〉라고 부르는 흔하디 흔한 명태로부터 왕 
새우며 말린 게살, 해삼, 횟대 어 와 대구, 유명한 상어회 를 곁들인 
외에 련락선에 넘겨주었던 문짝만 한 연어까지 다시 불에 굽고 기 
름에 튀기 기 시 작하니 제법 국제적 인 축하연답게 풍성해졌다. 
《축배!-〉〉 

축배는 많이 찡을수록 좋다. 정은 깊을수록 좋고 술은 독할수록 
좋다. 노래 도 많고 시 간도 넉넉하다. 

만약 전선 에서 다정한 우리 들 
옛친구 만난다면 
피 로써 맺어진 추억의 노래를 
유쾌히 부르리라 

박유진이 타고가던 련락선은 마침내 발동을 끄고말았다. 련락선 
의 선원들이라고 왜 이렇듯 화려하고 멋들어진 국제적축하연에 참 
가하는 행운을 마다하겠는가?… 

마시 자 자유론 내 조국 위하여 
마시고 또 부어라 

나중엔 일본어부들까지 찾아왔다. 그들은 우리 나라 원양어로선 
단의 모든 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열심히 그리고 목청껏 진정을 
담아 축하의 인사말을 웨치군 했다. 

〈〈조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영웅조선, 아시아의 자랑입니다!》 


334 



그다음은 모두 일제히 합창을 했다. 

〈〈조선축구 만세 !》 

이번엔 태규선장도 손을 흔들며 일본말로 맞받아 웨쳤다. 

《고맙소. 당신들에게도 복이 있기를 바라오. 물고기도 많이 잡 
으시오!》 

그러자 일본어부들은 일제히 허리를 꺾으며 인사말을 웨쳤다. 

〈〈고맙습니다!…》 

한순간 유진은 눈시울이 사뭇 떨리는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머 
리를 세게 흔들며 그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하였다. 맘껏 소리쳐 웃 
는다. 별 안간 가슴이 넓어지고 마음이 활 열리 는것을 느낀다. 불 
현듯 목메 이는 감격 에 겨워 그는 밝아오는 새 아침 을 향해 마음속으 
로 부르짖었다. 

《사랑합니다. 내 나라 조선을, 영웅조선을 사랑합니다!…》 

파도소리가 높아졌다. 갈매기들도 더 높이 날아엔다. 우주의 첫 
생명을 탄생시킨 이 행성의 바다!… 장엄한 바다의 아침이였다. … 


22 


오호쯔크해를 떠난지 닷새째 되는 날 유진은 배에서 내리는 길로 
사업소당위원회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당위원장은 도에 회의를 가 
고 나어린 처녀직관원이 원양어로선대의 지도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 
었다. 유진은 호기심 가득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맨 꼭대기에 《수산물 80만톤고지 점령에 어느 배가 제일 앞 
장섰는가?》라는 제 목을 쓰고 그밑 으로 쏘련 깜차뜨까반도와 
오호쯔크해, 싸할린섬파 일본북부 및 우리 나라 북부지방까지 섬세 
하게 그려놓았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청진으로부터 매 해구와 여 
러 섬들까지의 거리를 마일로 표시하고 매 뜨랄선들이 지금 작업하 
는 해구와 배들의 위치, 어획고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알아볼수 있 
게 써 넣 었는데 공로있는 선장, 어 로공들의 사진까지 오려불인 굉 장 
335 



한 지도였다. 

박유진이 감탄했다. 

〈〈동무 미 술대학을 나왔소?》 

〈〈아니요.〉〉 

《그래두 그림솜씨를 보면…》 

〈〈이것두 뭐 그림 인가?》 

처녀는 오목눈이였다. 속통도 그 눈처럼 잔뜩 오무라들었는지 모 
른다. 유진은 혀를 찼다. 

《아니, 그림이 아니문 뭐라는거요? 난 그래도 정말 멋있다구 봤 
는데 •••)) 

《이런것쯤 뭐…》처녀는 조금 너누룩해졌다. 〈〈중학교땐 미술 
소조에 들었댔어 요, 미 술대 학시 험 엔 미 끄러지 구…》 

《저런!…〉〉 

더 할말이 없었다. 나어 린 처녀 이지만 동정하는 말이라도 하는 날 
에 는 새 파래 질것 이 분명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 은 그다음에 있 었다. 
처녀가 그린 오호쯔크해의 여러 배들 그림우에 공로있는 여러 선장, 
어 로공들과 나란히 박유진 이 사진( 아주 작은것 이 긴 하지만)도 
붙어 있는것 이 였다. 

〈〈아니, 이건?!…〉〉 

《왜요?〉〉 

처녀가 실눈을 하며 그를 마똑지 않게 흘겨보았다. 다음순간 저도 
모르게 사진과 박유진을 번갈아보더니 어망결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이, 뜨랄 5 6호! 그렇지요? 이름은 박유진.》 

〈〈동무가 날 어떻게?…》 

《왜 모르겠어요. 온 사업소가 다 아는데 … 보시겠어요?》 

처녀는 그를 복도로 잠아끌었다. 문을 열어놓은채로 복도벽에 붙 
인 영 예 게시 판을 가리 키 는데 김 태 규선장과 여 러 사람가운데 박유진 
이 이름도 있었다. 

《보세요, 여기 이름이 나있는걸… 사실은 배우에서 고무옷을 입 
고 찍은 사진까지 크게 붙어있었는데 얼마전에 내각부수상동지가… 
뜯어 갔어 요.》 


336 



《뭐?》박유진은 입이 째지게 옷어대였다.《여 동무, 웃기지 말 
라구. 아니, 나같은게 다 뭐라구 내각부수상동지가 사진까지 뜯어 
간다구 그래?… 동무 얌전데기인줄 알았더니만…》 

처녀의 오목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웃지 마세요. 이건 정말이예요. 바로 남일부수상동지가 와 
서 박유진이 … 참, 그랬어요. 〈박유진이 그 사람 일을 쓰게 합데? 
그럭저럭 잘한다구? 그럼 그 사람 배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이 없소? 한장 있으문 내놓소. 당장 필요해서 그러오.〉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자 우리 당위원장동진 신이 나서 〈우리 박유 
진동문 배사람이 다됐습니다.〉 하면서 여기 영예게시판에 나불은 
사진이라도 쓸모가 있으면 가져가라구 했단 말이 예요.》 

유진은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별안간 뒤통수를 한대 호되게 얻 
어맞은것 같은 기분이 였다. 

직관원처녀가 또 무엇인가 생각난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참, 열흘전엔 외국에서 무슨 이상한 소포를 보내왔어요. 무슨 
책같기두 하구 원고같기두 하구…》 

《외국에서? 나한테?…》 

《예, 뚜껑엔 로어로 〈조선 평 양. 그리운 학창시절의 벗 박유진 
에게〉 이렇게 쓰구 그밑엔… 참, 뭐라구 했더라? 아, 그렇지. 무 
슨 아다 미헬一쓴?… 그래요, 그런 이름이였…》처녀는 두눈을 흡 
떴다. 《아이, 왜 그렇게 보세요? 내가 아무렴 그런 거짓말까지 다 
할가?… 정말이 예요.》 

€-» 

여전히 박유진은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태규선장이 말한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 였다. 그 녀자가 왜 한사코 지구의 이 한끝까지 따 
라오는지 알수 없었다. 

갑자기 입안이 바싹 마르고 등골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사진 
을 떼여간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아다 미헬쓴이 보냈다는 소포가 
더 께름하였다. 

…다음날 도에 회의갔던 당위원장이 돌아와서야 모든것이 석연해 
졌다. 남일부수상이 사진을 떼여간것도 사실이고 아다 미헬쓴이 소 
337 



포를 보내온것도 사실이였다. 그런데 아다가 보낸것은 사진묶음이 
였다. 자기의 결혼파 외국려행, 딸의 불의적인 죽음과 남편과의 리 
혼 등 행복파 불행이 하나의 쌍곡선을 이루며 흘러온 자신의 인생 
극에 대한 일종의 사진기록… 편지는 따로 없었다. 유진은 아다가 
보낸 그 사진묶음을 보면서 으시시 몸을 떨었다. 마치 자기의 인생 
길에 매설된 정신적지뢰같은것을 발견한듯… 하여 유진은 또 한동 
안 심리적알레르기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23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날도 현지지 도의 먼길을 이 어가고계시였 
다. 그 길 우에 서 제 8차 세 계 축구선 수권 대 회소식 도 들으시 였 다. 수 
행원들파 함께 새벽녘까지 라지오를 들으시고는 전화기를 드시였 
다. 시계를 보니 너무 늦은듯 하여 잠시 망설이시였다. 그러나 김 
일이라고 어찌 쉬이 잠들수 있겠는가?… 송수화기를 들고 김일을 찾 
으시니 그는 여러 부수상들과 같이 1부수상사무실에 있었다. 

〈〈김일동무, 아직 자지 않고있소?〉〉 

《예, 수령님. 어떻게 잠을 잘수 있겠습니까. 우리 축구가 세계 
를 들었다놓고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김일동문 텔레비존화면으로 우리 축구를 봤 
겠 구만?》 

《예, 수령님.》 죄스러워하는 억양이였다. 《수령님께서 현 
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는데 여기서 남일동무랑 리종옥동무, 정준택 
동무랑 같이 모여앉아 우리끼리만 텔레비를 보자니 어쩐지…》 

《그거야 참 좋은 일인데 뭘 그러오. 그건 그렇구… 내가 야밤삼 
경 에 전화를 건건 … 방금 축구소식을 들으면서 한편으론 몹시 기쁘 
기도 하거니와 다른 한편으론 웬일인지 서운해나는게 아니겠소. 그 
래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인차 잠을 이룰것 같지 않아 전활 걸었소.》 

〈〈예?…》 


338 



김일의 숨소리가 차츰 높아지고있었다. 곁에서 정준택파 남일이 
무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이께서 는 송수화기 를 바꿔 쥐시 였다. 

《김일동무, 오늘파 같이 평양시와 그 주변사람들만 아니라 온 나 
라 전체 인민이 이번 축구경기실황을 텔레비튼으로 볼수도 있었는 
데 … 참, 아쉽게 되 였소. 우리가 좀더 빨리 중계탑을 세웠더라 
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더란 
말이요. 마음에 걸려서…》 

그이 께 서 는 말끝을 맺 지 못하시 였 다. 

김일이 청높이 말씀드렸다. 

《수령님, 제 이제 텔레비튼중계탑건설을 힘껏 내밀도록 하겠습 
니다. 제가 직접 현지에 나가서 건설전투를 지휘하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어떻게 하나 중계탑을 빨리 일떠세워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더 높이도록 합시다. 그리고… 텔레비튼방영과 관 
련된 기술문제에서 더 걸린것이 없는지 미리 알아보도록 합시다.》 
《예, 그 문젠… 당중앙위원회 김정일 동지께서 직접 여러 지 
방에까지 몸소 나가 전파수신시험도 하시였습니다. 그리고 방송국 
에 절실히 필요한 기술설비들도 다 해결해주고있습니다.》 
《김정일 동무가?…》 

《예, 오늘도 현지지도의 먼길에 계시는 수령님께 런던축구실황 
을 텔레비튼화면으로 보여드리지 못하는것때문에 몹시 가슴아파 
하였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부지중 마음속으로 뜨거운것이 흘러드는것을 느끼 
시였다. 하여 송수화기를 꼭 쥐고 이윽토록 아무 말씀도 없이 서계 
시였다. 

1966년 8월 14일. 

수령님께서는 이날 평안북도 삭주군의 여러 부문을 현지지도하시 
였다. 수도를 떠나신지 오했으므로 매일 저녁마다 내각제1부수 
상 김일을 통하여 제기된 문제를 보고받으시였다. 


339 



그날 김일이 보고드린데 의하면 월남에 파견할 비행부대의 준비 
가 완료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공군제203군부대가 출발준비를 
갖추고 대 기중에 있다고 한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먼저 선발대를 보냄시다. 보위상동무한테 말해서 선발대로는 
이제 월남에 가서 직접 전투를 지휘할 비 행부대장을 보내는게 좋겠 
습니다.〉〉 

《알았습니다.》 

〈〈참, 그 부대장동무 이름이 뭐랬더라?…》 

〈〈수령님, 제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그의 이름이 무슨 남뭐이라고 하 
던것 같은데… 아, 그렇지. 생각나오. 박남훈이요. 전쟁때부터 비 
행기를 탄 경험많은 동무라고 했지. 그럼 그 동무가 먼저 가서 월 
남의 당과 국가, 군대의 간부들파 낯을 익히고 자신이 직접 전쟁상 
황을 료해하면 서 필 요한 전 투준비 를 갖추도록 합시 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손에 들고계신 송수화기를 꼭꼭 누르시다가 결 
연히 말씀하시였다. 

《김 일 동무, 제203군부대 는 좀더 준비 를 해 가면 서 이 제 당대 
표자회가 끝난 다음에 보내기로 합시다, 어떻소?》 

《예, 그게 좋겠습니다. 수령님!》 

전화가 끝난 후에도 그이께서는 이옥토록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제203군부대에는 그이께서 잘 아시고 특별히 관심하시는 비행사 최 
봉호도 있다. 하늘의 복수자가 되겠노라고 벌써 소년시절에 그이께 
맹 세 드린 비 행 사, 그런데 그의 안해 가 집 을 뛰 쳐나갔다고 한다. 지 
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치안대》를 하다가 월남한 아버지때문에, 
그런 불미스러운 경력이 비행사인 남편에게 투를 미칠가봐 리혼을 
결심했다는것이다. 얼마전 인민군 총정치국에서 제203군부대의 비 
행 사들을 료해하던 중 그런 사실 이 밝혀 졌 었다. 

수령님께서는 즉시 전화로 민족보위성 부상인 오진우대장을 찾으 
시 였다. 한동안 보위성 의 처 녀교환수들이 몹시 급해하였다. 오 
340 



진우가 자리를 비우고 없기때문이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야 오 
진우와의 전화련계가 이루어졌다. 오진우대장은 어느 한 비행부대 
에 나가있었다. 

《오대장, 지금 어느 부대에 가있다구?》 

그이의 물으심에 오진우는 공군제203군부대라고 했다. 

《뭐, 203군부대?…》그이께서 무척 반가와하시였다. 〈〈마침이 
로구만. 오대 장, 그 부대 에 내가 잘 아는 최 봉호라는 전투기비 
행사가 있는데… )) 

《예, 그런 동무가 있습니다. 수령님 !〉〉하고 오진우는 청높 
이 말씀올리였다. 《방금 제가 그를 만나 담화하였습니다.〉〉 

《뭐, 최봉호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제 김정일동지와 같이 그 비행사 
를 만났습니다.》 

《아니, 그를 만날 생각은 어떻게?…》 

《예, 어제 밤 김정일동지가 저 한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지금 
수령님께서 최봉호라는 비행사때문에 마음쓰신다면서 저와 같이 가 
서 만나보자는것이 였습니 다. 그래서 오늘 이 부대 에 같이 나오게 됐 
습니다.》 

《그_렇_소?!…》 

《예, 수령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이제 그 녀석 정신이 
번쩍 들게 다불러대 겠습니 다.》 

《흠…》 

물론 최 봉호의 문제 는 그자신 의 불찰로 빚어 진 것 이 아니 다. 그러 
므로 그를 정신이 번쩍 들게 다불러대 야 할 리 유도 없다. 그러 나…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송수화기를 꼭 쥔채 아무말씀없이 그대로 서 
계시였다. 부지불식간에 그 어떤 봄의 훈향과도 같이 따스한 정이 
가슴가득 흘러드는것 을 느끼시 였 다. 그이 께 서 관심 하시 고 마음 
쓰시는 모든 문제들엔 어김없이 김정일동지가 가있는것이다. 

《음.》 그이 께서 는 한결 뜨거 워 진 음성 으로 말씀하시 였다. 

《오대장이 김정일동무랑 같이 그를 만나고있다면… 난 마음을 놓 
겠소.》 


341 



24 - 


8월 14일 밤 11시. 

밤에는 비가 내렸다. 그이께서 계시는 숙소의 창너머 어느 먼곳에 
서 무슨 비상한 사변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우뢰소리가 꾸르릉一 꾸 
르릉! 하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줄기같이 쏟아지 
는 비… 한순간 시퍼런 번개불이 하늘 한복판을 쭉 찢으며 어데론가 
날아갔다. 사나운 빛의 일격 … 뒤따르는 우뢰질도 더 격 렬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밖에서 편뜩이는 번개불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시지 못하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 격정이 그대로 불이 되여 편 
뜩인듯… 이윽해서야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쓰시 였다. 현지지도의 먼 
길에서 겹쌓인 피로로 하여 무시로 눈이 감겼지만 밤늦도록 쓰고 또 
쓰시는 글… 이제 곧 있게 될 당대표자회 보고문이다. 

채칵거리는 초침소리만이 이밤의 숙연한 사색을 변함없이 재 여가 
고있었 다. 

…월남에 대한 미제의 침략은 비단 월남인민을 반대하는것일뿐아 
니라 사회주의진영에 대한 침략이며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도전이며 
아시 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입 니다. 


…미제의 월남침 략파 그것을 반대하는 월남인민의 투쟁 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것은 제국주의를 견결히 반대하는가 안 
하는가, 인민들의 해방투쟁을 적극 지지하는가 안하는가를 보여주 
는 기준으로 됩니다. 월남문제에 대한 태도는 혁명적립장파 기회주 
의 적 립 장, 프로레타리 아국제 주의 와 민 족리 기주의 를 갈라놓는 시 
금석 으로 됩 니 다. … 


때로는 이미 쓰신것을 그어버리고 여백에 까맣게 써넣으시고 때 
342 



로는 새로운 문구들을 짱짱이 첨부하기를 그 몇번 … 밖에서는 창유 
리를 후려치는 비바람소리가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 번개와 우뢰소 
리도 그칠새 없다. 

그이께서는 이윽고 만년필을 놓으시였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신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시지 못한다. 밤은 
줄기찬 비속에서 새벽을 향하여 쉼없이 가고 그이의 마음은 무거 
운 사색의 심연속으로 파고들고있었다. 

수령님의 사색 (3) 

우리 는 전쟁을 방지 하기 위해 적 극 투쟁하면서 도 결코 전쟁을 두 
려워해선 안된다. 따라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수정주의자들과는 절 
대 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언제였던가?… 전후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 
건설에 떨쳐나섰던 그 어려운 첫시기 쏘련당에서 편지를 보내여왔 
던 일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실로 놀랍기 그지없던 그 편지 … 거 
기에는 지금 미국이 조선전쟁때 자기들은 세균무기를 쓴 일이 없다 
고 주장하고있는 조건에서 조선이 그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정세 
를 더 긴장시 킬 필요가 있는가, 다시 는 그런 일 이 없도록 하는게 좋 
겠다는 내용이였다. 

그때 우리 일군들이 얼마나 격분했던가. 김일, 최현, 리종옥, 남 
일, 박성철, 리주연 등은 분노로 치를 떨었었다. 미제의 세균전만 
행이야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바로 국제법률가조사단까지 우리 나라 
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과학적인 물증까지 들어 온 세상에 폭로 
했던것이 아닌가. 하기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세균탄사용을 명 
령하였던 릿지 웨이 라는 놈이 후날 나토군사령 관으로 임 명받고 빠리 
에 갔을 때 프랑스인민들이 그를 페스트장군이라고 맹렬히 규탄하 
며 빠리에 들어오는것을 반대하여 대규모적인 항의시위까지 벌리지 
않았는가?!… 

이러한 론거를 가지고 우리 일군들은 미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과 
학적인 자료를 만들어가지 고 나를 찾아와 흥분하여 말했 었 다. 


343 



〈〈수령님, 여기에 쏘련당에 보낼 론박할수 없는 파학적자료들을 다 묶 
어놓았습니다. 당장 이걸 쏘련당과 흐루쏘브에게 보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한것은 당시 외무상을 하던 남일이였던것 같다. 아마 김 
일이 시켰을것이다. 남일을 앞세우고 들어온 김일과 나머지 사람들 
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의 말을 되받아 웨치고있었다. 

《당장 이걸 쏘련당에 보냈으면 합니다, 수령님! 그들이 우리를 
모욕하고있는데 우리도 그들한테 본때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때를 보인다?‘‘-》 

나는 한동안 방안을 거닐며 생각했다. 마음은 그지없이 쓰리고 무 
거웠다. 우리가 본때를 보여서 얻을것이 무엇인가?… 

웬일인지 그때 눈앞에 자꾸 떠오른것은 항일무장투쟁을 벌리던 시 
기 우리가 세계의 첫 사회주의나라인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여 피 
홀려 싸우던 나날의 일들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을 치는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1949년 
2월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을 인솔하고 쏘련을 공식방문하였을 때에 
있은 일이다. 특히 쓰딸린과 담화를 나누던것이 기억에 생생히 떠 
올랐다. 그것은 진정 새삼스럽고도 정깊은 추억중의 하나였다. 

그때 쓰딸린은 우리를 환영하여 성대한 연회를 차리고 자신이 몸 
소 감동적인 축배사를 하였다. 그는 축배사에서 20성상에 걸치 
는 장구한 기간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에서 돌격대적인 역할을 한 조 
선인민혁명군을 친히 조직하고 령도하신 김일성동지는 동방에서 제 
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쏘련을 피로써, 무장으로써 옹호해준 참다운 
국제 주의 자이 라고, 공산주의 자의 귀 감이 라고 했다. 

이어 그는 쏘련이 오늘과 같이 평화적인 환경에서 사회주의건설 
을 할수 있은것 은 김 일성동지 와 같은 진정한 공산주의 자들의 투쟁 
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우리모두 열렬한 박수로 김일성동지께 감사 
를 드리자고 하였다. 

그때 쓰딸린의 나이 는 70살이였고 나는 37살이 였다. 그렇 듯 곱절 
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년세로 보나 세상사람들속에 흔히 엄격하고 무 
자비 한 사람으로 알려 진 그의 파격한 성 격으로 보나 어찐지 놀라울 정 
도로 그날 그는 나에게 시종 정중하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344 



의례행사가 끝나고 밤이 퍼그나 깊어 크레믈리의 시계가 열두점 
을 친지도 이숙하였을 때였다. 돌연 쓰딸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 
의 팔을 끼더니 귀속말처럼 은근히 속삭이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 시간이 많이 갔지만 식사를 다시 하고 이야기 
를 좀더 나누는게 어떻습니까?〉〉 

통역도 그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옷으며 말했다. 

《아니, 또 식사를 한단 말입니까?》 

쓰딸린도 히뭇이 옷었다. 

《그럼 또 식사를 한다고 하지 않고 뭐라구 해야 합니까? 남들이 
듣기에도 거북하게 술을 더 마시자고 할순 없지 않습니까.〉〉 

《예_ 그렇다면… 좋습니다.》 

하여 우리사이에는 일정에도 없던 별도의 회담이 새벽 3시가 넘 
도록 계속되 였다. 

많은 문제 가 론의되 였다. 우리 나라와 쏘련사이 의 완전 한 평 등, 
자주성, 호상존중과 내정불간섭, 동지적인 원칙에 기초한 경제 및 
문화적협 조에 대 한 문제 … 마지 막으로 쓰딸린은 나의 손을 힘 주어 
잠으며 말하였다. 

《김일성동지, 당신이 부럽습니 다. 당신의 젊음과 열정, 지 혜와 
투지 , 담력 , 통찰력 … 모든것 이 다 부럽습니 다.》 

〈〈쓰딸린동지, 당신도 역시 아직도 왕성한 정 력파 기 백 에 넘쳐 있 
지 않습니까. 당신의 그런 정정한 모습을 보는것 이 저로서는 정말 
기쁨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참 정이 가는 사람입니다. 온통 정이라는 
따뚯한 재료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때 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진 특수 
한 사람들이 다.》라고 한 그의 유명한 말이 떠 올라 소리없 이 웃었 
다. 쓰딸린이 〈〈재료》라는 말을 류달리 좋아하는것 같아서였다. 

《왜 옷습니까? 난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말했는데…〉〉하면서 쓰 
딸린 은 다시 금 세 상에 널 리 알려진 그 유명한 곰방대 에 불을 달더 
니 굴뚝같이 연기를 내뿜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김일성동지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때부터 웬일인지 단번에 정이 푹 드는것을 느 
345 



꼈습니다.》 

《거야 제가 쓰딸린동지를 진심으로 존대하기때문이겠지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남을 존중해줄줄 아는 사람만이 남들의 존중 
을 받는 법이지요. 이건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진리입니다.》 
새벽 3시가 지나 담화를 마무리하고나서 쓰딸린은 또 나의 팔을 
끼며 정문현관으로 향했다. 

《내가 당신의 쏘련방문을 기념하여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마련 
했는데… 어떻습니까, 나가볼가요?》 

《예,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다는 인사는 오늘 내가 먼저 했습니다. 헌데 내가 준 
비한 크지 않은 선물이 당신의 마음에 들겠는지 ?…》 

현관앞에는 검은색 대형〈〈짐》승용차가 서 있었다. 그것 을 가리 키 
며 쓰딸린 이 설 명했다. 

《이 건 우리 가 만든 신 형방탄승용차 〈짐〉입 니 다. 당신께 꼭 필 
요하리 라 생 각하고 준비했는데 … 어 떻 습니 까. 마음에 듭니 까?》 
이러한 지성에 무어라고 감사를 표할수 있으랴?… 고맙다는 말밖 
에 더 할말이 없는것이 유감스럽게 느껴졌다. (이후 쓰딸린은 전 
쟁때에도 새 방탄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는 〈〈남을 존중해줄줄 아는 사람만이 남들의 
존중을 받을수 있다.〉〉고 하던 쓰딸린의 그 말을 거 듭 되뇌 여 본다. 
그렇다. 대방의 진정을 밤으려면 먼저 정을 주어야 한다. 

정이란 선물이 아니다. 돈으로 팔고사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주 
는것이지 대가를 바라는것이 아니다. 왜냐면 정이란 마음의 온기이고 
미소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정을 주고 믿음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측이 계속 자기의 리속만 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정을 준 사람을 도리여 끈경에 빠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는 드디여 김일과 남일을 비롯한 여러 일군들을 둘러보면서 단 
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쏘련사람들에게 미제가 조선 
전쟁때 세 균무기 를 사용하였다는것 을 과학적자료로 납득시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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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사실 아무런 의의도 없습니다. 과연 그들이 그런 사실을 몰라 
서 그랬겠는가?… 아니, 그들은 지금 미제국주의에 겁을 먹고 아 
부굴종하고있습니 다. 미제 에게는 아부굴종하면서 도 존엄 있는 우 
리 당과 국가의 자주권을 마구 짓밟으려 한단 말입니다. 그래 이걸 
용서할수 있겠는가?! … 아니 , 그럴수 없습니 다. 그러 니 먼저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을 담은 편지를 쏘련당에, 흐루쏘브에게 보냄시다. 
그다음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두고봅시다.》 

물론 그들은 그후 우리의 회답편지에 대해 단 한마디의 항변도 하 
지 못했다. 그럴수밖에… 진리는 해빛파 같아서 손바닥으로는 절대 
가리지 못하는것이다. 

현시기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제 할소리를 내놓고 하는것 
이다. 우리는 이제 열리게 될 당대표자회를 통해 우리 당의 원칙적 
립장을 서 슴없이 내외 에 선포할것 이 다. 

…오늘 사회 주의진 영 나라들은 호상간의 의 견상이 로 하여 미 제 
의 침 략을 반대하고 월남인민을 지 원하는데서 일치한 보조를 취 하 
지 못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싸우는 월남인민을 괴롭히고있으며 공 
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는 월남민주공화국정부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나 지원병을 파 
견하여 월남형제들파 함께 싸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오늘 형제당들사이의 의 견상이가 사상리론적계선을 넘어서 풀 
기 어려울 정도로 된것은 전세계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가 
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형제당들사이의 의견상이가 아무리 심각 
하여 도 그것은 사회 주의진영파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내부문제입 
니다. 당들사이의 의견상이를 조직적결렬에로 끌고가지 말아야 하 
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결의 념원에서 출발하여 사상투쟁의 방법 
으로 해결하여 야 할것 입 니 다. … 

지난 7월 미 국대 통령 존슨은 〈〈우리 들이 요구하는 평 화》라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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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톱게 금박을 칠한 제목의 연설에서 이제 미국은 아시아의 혁명하 
는 나라들과 《끝까지 대결》하여 《아시아, 태평양국가》로서 
의 〈〈의 무〉〉를 다할것 이 라고 게 거 품을 물고 떠 벌이 였 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주의진영은 어떠 한가? 제국주의자들과는 달 
리 지금 사회주의 대가정내에서의 의견상이는 사상리론적계선을 넘 
어서 참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고있다. 특히 중쏘간의 의견상이 
는 사상리론적계선을 벗어 나 국경문제 에로까지 확대되고있다. 

쏘중국경지대에 배치된 쏘련 군은 흐루쏘브시기의 10개사단으 
로부터 최근에는 수십개사단으로 급증하고있다고 한다. 지금 두 나 
라관계 는 무장충돌예 까지 이 르고있 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미제가 일본반동들과 같이 우 
리 나라를 침 략하기 위한 작전계 획 들인 《세 개 화살작전》 (1963 
년), 《날아가는 통작전》 (1964 년), 〈〈달리는 황소작전》(올해 
인 1966년) 등을 조작하면서 아시아, 특히 조선반도에 침략의 예 
봉을 돌리 고있는 이 때 적 들의 아성 을 겨누던 총과 대 포들이 벗 들에 
게 로 돌려지 는것 을 허 용할수 있겠는가?… 

우리 당은 의 견상이 가 있 다고 하더 라도 형 제당과 형 제 나라들에 대 
하여 경솔하게 결론을 내 리지 말며 시 간을 두고 투쟁 을 통하여 검 
열하는것 이 필 요하다고 인 정합니 다. 

우리에게도 국경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장구한 력사의 흐름을 
거슬러오르면 우리의 국경은 멀리 북쪽에 그 시원을 두고있다. 이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우리는 력사를 외 
곡하거 나 부정하려 는자들에 대 해서 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 
기 에 얼마전 우리의 국경문제를 걸고든 브레쥬네브에게도 오금을 박 
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실 브레쥬네브는 흐루쏘브를 제거하고 쏘련공산당 중앙위원 
회 제1비서로 되자 먼저 나를 모스크바에 초청했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일이 바빠 시간을 낼수 없으므로 정 만나겠으면 그가 평 양 
에 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모스크바와 평양간의 중간지점인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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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보스또크에서 만나자는 절충안을 또 내놓았다. 기어이 나를 만 
나야 할 사정 이 있는듯실었다. 

바로 지난 5월 중순에 있은 일이다. 장대한 체구에 늘 위엄을 떨 
치려고 애쓰던 브레쥬네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그의 틀진 자 
세였다. 흐루쏘브가 합창대의 지휘자마냥 지휘봉을 내흔들며 고아 
대기 좋아하는 형이라면 브레쥬네브는 말없이 으름장을 놓는 형이 
라고 말할수 있다. 그런 브레 쥬네보였으므로 울라지보스또크에 
서 만났을 때 대국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한번 시위해볼 의도였는 
지( 우리 당 제3차대회때 축하단단장으로 와서 우리 에 게 흐루쏘 
브의 수정주의물을 염색하려다가 호된 반격을 받은 일이 있다. ) 불 
쑥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김 일성동지 , 최 근 조선력사학자들은 조선의 고대 국가 발해 
국이 원동지방에까지 존재 했다는 터 무니 없는 론거 를 들고나온다는 
데 이 에 대 해 어떻 게 리해해 야 합니까?》 

그것은 일종의 도발이였다. 그들이 무기로 삼는 수정주의 끈봉이였다. 

《터무니 없다구요?》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우리의 비 
위에 거슬러긴 하지만 론쟁은 하지 맙시다. 허나 기왕 력사문제를 
꺼낸 이상 그에 대해 좀 설명을 할가 합니다.〉〉 

나는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찌기 698년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발해 
국을 세웠으며 점차 나라가 번성하여 9세기에 이르러서는 《해동성 
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 였다, 《해동성국》이 란 말은 동 
방의 번영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발해가 번성할 때 동북쪽으로는 로 
씨 야의 연해주, 하바롭스크주, 오호쯔크해까지, 서쪽으로는 랴오 
둥(료 동)반도와 랴오하 (료 하)계선, 남쪽은 대동강 一 덕원계선, 동 
쪽은 조선동해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령토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때 
발해왕국은 신라와 함께 우리 나라 중세국가로서 당나라, 일본, 돌궐, 
거란을 비롯한 여러 나라 종족들과 관계를 맺고 발전된 기술과 문화를 
자랑하였다. 중국동북지 방파 로씨야의 하싼구역 에서 발해시기의 많 
은 유적유물들이 발굴된것은 바로 그에 대한 뚜렷한 례증으로 된다, 
력 사는 부정할수 없다, 발해 국이 존재 한것 도 엄연한 력 사적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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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므로 우리는 자기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슬기로운 문화에 대하여 
응당한 민족적자부심 을 가지고 주장하는것 이지 결코 다른 목적을 추 
구하는것은 아니다. 

〈〈어떻습니까. 브레쥬네브동지, 내 말이 리해가 됨니까?〉〉 

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허나 대답을 피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정말 지당합니다.》 
존엄이 있으면 사람은 강해지기마련이다. 그리고 강한 사람은 무 
슨 일에서건 왁작 떠들어대지 않고 조용히 미소하는 법이다. 이것 
은 당도 국가도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자면 모든 형제당들이 누구에게도 맹종맹동하지 말고 자주 
성 을 가지며 대국주의 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여 야 합니 다. 또한 모 
든 당들이 단결하여 그 누구도 사회주의진영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며 대국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 
여 야 합니다. 


현대 수정 주의 를 반대 하는것 과 함께 좌경 기 회 주의 를 반대 하여 투쟁 
하여야 합니다. 좌경기회주의는 변화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맑 
스_레닌주의의 개별적명제들을 교조주의적으로 되풀이하며 초혁 
명적 인 구호를 들고 사람들을 극단적 인 행동에로 이끌어갑니다. … 

1947년 8월 이 였던지 … 유명한 미 국 녀류문사 안나 루이 스 스트 
통녀사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사실 그는 쏘련에 오래동안 체 
재하다가 중국의 엔안혁명근거지에 가서 마오쩌둥과 주더, 저우언 
라이 등과 수차 면담을 하고 보도활동을 하였다. 우리 나라로 오기 
위해 엔안에서 상하이로, 상하이에서 쏘련의 울라지보스또크를 거 
쳐 평양에까지 찾아왔었다. 

그는 서두의 인사말을 이렇게 떼였다. 

《내가 동북아시아를 한바퀴 돌아 신생 인민조선을 방문하게 된 
것 은 다름이 아니 라 강대한 일 본제 국주의 와 싸워 조선의 독립 을 이 
룩하신 김일성장군을 만나뵙기 위해서 였습니다.〉〉 


350 



나는 그가 고령의 몸으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하여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는 소탈하게 옷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 오면서 이제 김장군을 만나뵈오면 꼭 문의하고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실례입니다만 장군이 몹시 거북해할 어려운 질 
문을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문필가들이란 참 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표현하기 
힘들거나 내놓고 말하기 딱한 문제들도 다채로운 언어의 숯불에 구 
워 맛좋은 훈제로 내놓군 하는것이다. 

나는 흔연히 말하였다. 

《예, 어서 말씀하십시오. 어려운 질문이라니 더 호기심이 동합 
니다. 하지만… 거북한 질문이라면 아예 대답을 안하겠습니다.》 
《역시 장군다운 말씀이십니다. 그럼 첫째 질문… 장군도 무서워 
하는것이 있습니까?》 

〈〈무서워하는것이라… 예, 있습니다.〉〉 

〈〈뭡니까?》 

〈〈옷는 친구들입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총칼을 쥐고 달려드는 적들은 별로 무서울게 없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웃음을 날리는 가짜친구들은 몇배나 더 위험합니다. 그런 실 
례야 인류력사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안나 루이스 스트통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재빨리 수첩에 무엇인 
가를 써 넣 었다. 

《그럼 두번째 질문입니다. 장군이 일상생활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것이라… 아마 그건 머리를 숙이는것이라 할가요 )) 
《그건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부와 굴종, 비굴한 순종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말하고싶습 
니다. 그래서 나는 혁명을 시작하던 첫날부터 자주성을 한생의 좌 
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이 란 그가 누구든 자주성 이 없으면 그때 
엔 죽은 목숨이나 같기때문입니다. 혁명파 건설도 같은 맥락에서 말 
351 



할수 있습니다.》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그는 진심으로 감동된듯 했다. 〈〈그 
런데… 지금 인민조선은 일제식민지통치 기반에서 해방되였으니만 
큼 아부와 굴종, 순종 같은것이야 더는 있을수 없지 않습니까?》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력대로 대국들 짱에 끼워있었으므로 사 
대주의가 우심했습니다. 큰 나라, 발전된 나라는 섬기며 머리를 조 
아리고 자기 민족은 멸시하는 사상이 오탠 세월을 두고 내려왔습니 
다. 그래서 나는 조국광복을 이룩한 그날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사람들에게 말해주군 합니다.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 
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며 당이 사대주의를 하 
면 혁명파 건설을 망쳐먹는다고 말입니다.〉〉 

스트통은 마치 어린 소녀들이 그러듯 손벽까지 치며 흥분하여 말하 
였 다. 

《고견입니다. 참으로 김일성장군만이 할수 있는 심오한 뜻이 담 
긴 명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에나 지금이나 우리의 주장은 변함없다. 우리는 절대로 원칙앞 
에서 양보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때나 우리는 존엄높은 당의 권위를 가 
지고 제할 소리를 다 한다. 그것도 세상에 대고 당당히, 위엄있게!…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말아야 하며 다른 당들 
에 자기의 사상을 강요하여서는 안됩니다. … 

우리 당도 대국주의자들의 간섭을 받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있 
습니다. 물론 대국주의자들은 응당한 반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우 
리는 참기 어려웠지만 혁명의 리익과 단결의 념원으로부터 출발하 
여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우리 당을 비롯한 맑스一레 닌주의당들에 대 
하여 〈〈중간주의〉〉, 〈〈절충주의》, 〈〈기회주의〉〉 등의 딱지를 
붙이고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무원칙한 타협의 길〉〉을 택하고 



있으며 《두 걸상사이에 앉아있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이것 
은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우리에게도 자기의 걸상이 있습니다. 우 
리가 무엇때문에 자기의 걸상을 버리고 남의 두 걸상사이에 불편하 
게 량다리를 걸고 앉아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자기의 똑바른 맑 
스_레닌주의걸상에 앉아있을것입니다. 자기의 옳바른 걸상에 
앉아있는 우리를 두 걸상사이에 앉아있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야말 
로 비뜰어진 왼쪽걸상이나 오른쪽걸상의 어느 하나에 앉아있는것이 
틀림없습니다. … 

어느덧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느껴지고있다. 무시무시하게 펀뜩 
이던 번개불도, 천지를 진감하던 우뢰소리도, 창유리를 후려치 
던 비소리도 멎은지 오렌것 같다. 바야흐로 비 개인 뒤의 맑고 푸 
른 새아침이 시작되는것이다. … 


조선로동당대표자회는 1966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에 
걸쳐 진행되 였다. 대표자회 에서는 김일성 동지께서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세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킨 보고였다. 미제와 세계반동들은 기가 꺾이였고 수 
정 주의,대 국주의 자들파 좌우경 기 회 주의 자들은 목을 움츠리 였다. 

대표자회는 《월남문제에 관한 조선로동당대표자회 성명》도 채 
택하였다. 지원병의 파견이 세계에 선포된것이다. 하여 많은 나라 
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군수품창고문을 더 크게 열고 월남을 지원하 
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대 표자회 가 끝난지 한주일후인 10월 19일, 김 일성동지 께서는 월 
남에 파견 되 여가는 조선 인민 군 제203군부대 의 비 행 사들을 만나 
시고 오랜 시간 담화를 하시였다. 

얼마후 우리 비행사들이 월남의 하늘에서 미제와 사생결단을 시 
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세계가 또다시 벌떼처럼 떠들어대기 
시 작하였다. … 


353 



그것은 리웅산이 가지고온 형성안이였다. 방안의 책상 네개를 모 
두 하나로 붙여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좀 모자랄 정도로 큰 형성 안이 
였다. 리웅산은 구깃구깃 볼품없이 구겨진 그것을 정성들여 펴면서 
네 귀통이엔 두름한 책들(건축설계와 관련된 외국원서들)을 눌 
러놓았다. 

밝은 해살이 그우에 뿌려졌다. 김정일 동지께서 내각제1부수상 김 
일파 같이 탁우에 펴놓은 그 형성안을 주의깊게 보고계시였다. 

리웅산은 거의나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김정일 동지께서 차츰 안색을 흐리시였다. 

〈〈김일제1부수상동진 이 형성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일은 두름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자기로서도 분명 
치 않은 소리 였다. 

《저야 뭘…〉〉 

다음순간 그는 리웅산에게로 엄한 눈빛을 던졌다. 

《어서 말씀드리오. 그것들이 이걸 놓구 뭐 어쩌구저쩌구 했다면 
서?〉〉 

김정일 동지께서 손을 내저으시였다. 

《됐습니다. 그보다 난 리웅산선생에게 먼저 묻고싶은것이 있습 
니 다. )) 

리웅산은 심장이 쿵쿵 울리는것을 느꼈다. 벅찬 경련때문인지 뒤 
잔등이 아프게 조여들었다. 

《리웅산선생, 건축도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주로는 미술사에서 



많이 취급되여왔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음악적으로도 표현하지 않 
습니까. 어떤 철학가는 건축을 두고 굳어진 음악이라고 했고 피테 
는 그것을 〈빙결한 음악〉 즉 얼어불은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그 
렇다면 이 기념탑에선 어떤 음악이 울려나와야 할것 같습니까?〉〉 

《?! …》 

리웅산은 웬일인지 입안이 바짝 말라들어 한마디 말씀도 올릴수 
없었다. 올릴 말씀도 없었다. 하여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만 꿀 
끽 삼키고있었다. 

〈〈응산선생.》김정일동지께서 준렬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 
다. 《왜 대 답을 못합니 까. 그러 니 까 나쁜 놈들이 이 형 성안을 막 
구겨버 릴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있은게 아님 니까. 이 구겨 진 형성안 
을 좀 보시오. 바로 이렇게 선생의 량심과 신념까지 다 구겨버렸는 
데 이제 이걸 어떻게 퍼겠습니까. 손바닥으로 문대여 퍼겠는가, 다 
리미로 다리겠는가?!…》 

아픔이 가득 실린 음성이 였다. 그이께서는 심 중의 안타까움파 피 
로움에 두손을 힘껏 맞잡고계시였다. 

리웅산은 그만 눈길을 떨구고말았다. 창유리로 흘러든 밝은 해살 
이 따갑게 눈을 지져대였던것이다. 그때 김일은 그의 옆에서 가슴 
만 풀떡거리고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주먹으로 리웅산의 귀통을 후 
려갈기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소란스러운 풀무질소리가 그의 두 
름한 입술새로 새여나오고있었다. 

김 정 일 동지 께 서 계 속하시 였 다.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당의 요직에 앉아있는 한 이색분자는 얼 
마전 탑건설장을 돌아치면서 이 탑이 인민영웅탑이므로 탑의 주인 
공을 유격대의 보통지휘관으로 형상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그래 수령님을 떠난 보천보전투가 어디 있고 
수령님을 떠난 조선혁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김일의 볼편이 푸들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에 찬 도끼눈이 리 
웅산에 게 로 또 견주어졌다. 

《그러니 동무도 그때… 그一 그자가 그런 잡소리를 줴칠 때 거 
기에 있었겠소?》 


355 



《예.》 

혀를 깨무는듯 한 소리 였다. 리웅산은 커 다란 죄책감에 눈길도 들 
지 못하고있었다. 

〈〈한심하오, 한심해 !》하고 김 일이 두주먹을 꽉 부르쥐며 말 
했다. 〈〈하긴 내 지금 실장동무나 추궁하고있을 형편이 못되지. 이 
김일이, 글쎄 내각제1부수상이라는게 한쪽에서 나쁜 놈들이 쥐 
새끼처럼 쏠라닥질을 하는것두 모르구있었으니… 에익!…》 

꽉 부르쥔 손아귀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더부룩한 그의 검은 
눈섬이 사뭇 괴롭게 꿈틀거렸다. 분노로 하여 목소리는 갈리고 두 
름한 입술조차 경련적으로 푸들거렸다. 

《사실 난 그자가 수령님 만세를 제 일 많이 부르기 에 충신인줄로 
만 알았지 그런 급살을 맞을 놈일줄은 정 말 생 각 못했소. 허참, 
수령님과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두산로병들이 곁에 있으면서 
미처 간신도 가려보지 못했으니… 먼저 끈장을 맞아야 할 놈은 내 
각제 1부수상인 이 김일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분노에 떠는 그에게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절대로 양보할수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대도 양보할수 없습 
니다. 우리는 누가 무엇이라 하든 동요하지 말고 수령님의 동상을 
더 크게 모시고 유격대원들의 조각군상도 더 잘 형상해야 합니다. 
그건 그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님니다. 우리 혁명의 운명의 탑입니 
다. )) 

《예? 우리 혁명의 운명의 탑!…》 

김일이 낮게 부르짖었다. 너무도 아름찬 격정에 호흡이 절박해진 
것 같았다. 

《왜냐하면 혁명의 운명이나 민족의 자주권은 위대한 수령의 사 
상과 령도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시종 
일관 수령론을 주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탑의 이름도 인민영웅탑 
이라 하지 말고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라고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 
다. 보천보전투야말로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적들의 철통같은 경계진을 뚫고 조국에 진군하여 벌린 전투였고 조 
선 인민 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 을 온 세상에 과시한 민족자주의 
356 



쾌불이 아니였습니까.》 

《옳습니 다. 민족자주의 쾌불! 보천보전투승리기 념 탑! …〉〉 
어느새 김일의 얼굴은 흥분으로 하여 뻘겋게 달아오르고 두볼은 
사뭇 실룩거리고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창가 
로 흘러든 해빛의 홍수를 힘껏 빨아들이 였다. 

《바로 그겁니다.〉〉하고 김일은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보 
천보전투승리기 념 탑! 정말 뜻이 명 백합니 다, 부르기 도 좋구… 
정말 좋은 이름입니다. 그럼 제 당장 헤산에 내려가겠습니다. 거 
기 가서 일을 바로잡아놓구 오겠습니다.〉〉 

김정 일동지 께서는 크나큰 믿음이 실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 
시였다. 

〈〈고맙습니다, 김일동지. 젊은 사람들이 갔다와야 할 걸음을 로 
투사들이 걷게 해서 정말 안됐습니다.》 

《원 무슨 말씀. 내 불찰로 버르집어진 일이 니 응당 내가 바로잡 
아 야지 요. )) 

이어 그는 리웅산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님자두 같이 가야지?》 

《예.》하고 리웅산은 덤볐다치며 대답하였다. 《가겠습니다. 
그보다 앞서 이 형성안부터 새로 만들겠습니 다. 보천보전투승리 기 
념탑을 더 크구 웅장하게 만들겠습니 다.〉〉 

김일이 주먹으로 그의 앞가슴을 툭 내질렀다. 

《좋소. 그 말 한마딘 정말 잘했소.》 

허 나 김정 일동지 께 서 는 가볍 게 머 리 를 저 으시 였다. 

《웅산선생, 크고 웅장한것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거기에 담 
겨져있는 내용입니다. 이자도 말했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보천보 
전투를 통해 우리 인민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자주의 봉화를 지 
펴주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탑을 조선혁명파 우리 인민의 운 
명의 탑, 자주의 탑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 사상과 리념이 살 
아나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은 아직까지 크고 웅장한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 

리웅산은 다시 머리를 떨구지 않을수 없었다. 벅찬 환희와 더불 
357 



어 가슴저미는 회오의 감정 … 마음속에서는 모순된 두 감정 이 격 렬 
하게 사품치고있었다. 

드디 여 김정일동지 께서 따뚯한 미 소를 그리시 였다. 

〈〈응산선생, 내가 요즘 영화부문을 지도하면서도 계속 하는 말인 
데 모든 작품에선 종자가 기본입니다. 종자가 무게있는 철학을 담 
고있을수록 그 작품은 명작으로 됩니다. 그러면 이 대기념비의 종 
자는 무엇이겠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건축을 〈응고된 음악〉이 
라고 할 때 여기선 어떤 음악이 울려나와야 하겠는가?… 생각되는 
것이 없습니까?〉〉 

리웅산은 여전히 대답을 올릴수 없었다. 

《웅산선생, 언제든 잊지 맙시다. 한때 베토벤은 운명파 투쟁하 
는 인간의지의 승리를 종이우에, 오선지우에 그렀지만 우리는 지금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신 수령님 에 대한 송가를 철과 화강 
석으로 대기 념 비 에 새기 고있는것 입 니 다.》 

리웅산의 두눈이 돌연 눈부신 광채로 빛나기 시작했다. 터질것 
같은 기쁨파 환희 에 겨워 그는 부르짖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인젠 잘 알겠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 
명을 구원해주신 수령에 대한 송가!… 정말 인젠 무엇을 어떻게 해 
야 하는지 환해집 니 다.》 

그이 께서도 밝게 웃으시 였다. 

《좋습니 다. 우리 도 선생 이 그러 리 라고 믿 었습니 다. ))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꼭 높은 산, 높은 정신적봉우리에 올라보 
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세계를 더 넓게 보게 되고 인생을 더 환히 
보게 되며 우리의 미래를 더 멀리 내다보게 되는것이다. 


2 


특별렬차는 여름밤의 훈훈한 대기를 헤가르며 힘차게 달리고있었 
다. 기적소리도 없다. 렬차집무실 천정에서 선풍기가 고르롭게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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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돌아가고있을뿐… 고요… 고르로운 차바퀴의 진동만이 숙연한 
정적을 흔들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탁우에 수첩파 갖가지 서 
류들을 펴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벽시계가 새벽 2시를 알 
렸 다. 

오늘까지 10여 일간에 걸쳐 함경 남도를 현지 지 도하시 였다. 당 
대 표자회결정 관철을 위한 경제국방건설에서 의 총진군운동을 
자신께서 직접 진두에서 지도하시는것이다. 

성과는 많다. 허 나 마음 한구석 엔 근심 도 많다. 월남과 꾸바는 물 
론 라오스와 캄보자,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뜨락또르와 각종 농 
기 계 들, 대 형전동기 와 양수기 , 디 젤기 관 등을 많이 요구하고있 
는데 그모두를 해결해주려면 지금 힘차게 숨쉬고있는 우리의 경제 
국방병 진 에 심한 호흡장애 를 가져 올수도 있는것 이 다. 

그이께서는 다시 수첩을 번져보신다. 거기에 씌여져있는 많은 공 
장, 기 업소들의 생 산계 획파 수자들에 서 점 도록 눈길 을 떼 시 지 못 
한다. 

갑자기 레 루이 음짱을 타고넘 는 차바퀴 소리 가 소란스러워 졌다. 기 
차가 차굴속에 들어선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처음으로 서류에서 눈 
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시 였다. 물이 질벅한 콩크리트굴벽 이 차창으 
로 내비친 불빛에 반사되여 언듯거리는것이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기차는 굴속을 돌진하고있다. 나라의 동서 
부를 차길로 련결하는 유명한 차굴에 들어선것 같다. 동시 에 집 무 
실의 불도 꺼졌다. 이상한 일이다.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싶으셨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기는것을 느끼시였다. 순시에 
모진 피 로가 연기 처 럼 머 리속을 휘一휘 잡아돌리 기 시 작했다. 야단 
스럽 게 굴간벽 을 쿵쿵 울리 던 차바퀴 소리 마저 급기 야 숨을 죽이고 
있 는듯 … 

얼마나 시 간이 흘렀는지 … 

맹_맹 _ 뱅 ! _ 벽시계가 석점 을 친다. 

그이께서는 눈을 뜨시였다. 렬차집무실은 여전히 불이 켜있지 않 
다. 차창밖에서 원방신호기의 파란 불이 피끗하더 니 어 둠속 멀리 로 
359 



사라져 간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새벽이 가까와온다. 

그이께서는 방안을 거니신다. 드디여 출입문가에 이르러 문손잡 
이를 잡으시는데 밖에서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울리는듯 하다. 웬 
처녀의 목소리, 분명 렬차원일것이다. 간혹 부관 김윤필의 목소리 
도 끼운다. 저녀석 들이?! … 아까 집 무실의 불을 끈것 이 바로 저 들 
이 분명하다. 부관이 란 녀석 이 렬차원을 시 켰을것 이 다. 

《수령님께서 왜 불을 꼈는가 하고 물으시면… 알지? 동무가 대 
답올리란 말이요. 〈사실 저는 수령님께서 쉬시는줄만 알구…〉 하 
고말이요, 응?!》 

이렇게 얼려넘겼을것이다. 엉큼한 녀석같으니!… 

아닐세라 그이께서 문을 여니 부관파 렬차원처녀가 와뜰 놀라며 
돌아보았다. 

《동무들은 왜 아직 자지 않고있소?》 

그이께서 짐짓 엄한 어조로 따져물으시니 김윤필은 그저 눈길을 
떨구었지만 처 녀렬차원은 급기 야 목을 잔뜩 옴츠리며 왕청같은 대 
답을 올렸다. 

〈〈저… 전 그만 아버지원수님께서 쉬시는줄만 알구… 정말 잘못 
했습니다.〉〉 

〈〈아, 그랬구만. 어쨌든 렬차원처녀 덕분에 한잠 잘 갔소.〉〉하 
고 그이께서는 크게 소리내 여 웃으시 였다. 〈〈하지만 렬차원, 다음 
부런 승인없이 불을 끄면 안돼. 다시 그랬다간 내각수상명의로 처 
벌을 주겠소, 응?!》 

《옛, 처벌을 받겠습니다. 아버지원수님!》 

목소리도 여무지다. 밝고 귀 염상스러운 얼굴에 기쁨의 물결이 일 
렁 인 다. 

그이께서는 다시 문고리를 잡았으나 문득 생각나신듯 다시 눈길 
을 돌리시 였다. 

《순천역에 도착하면 남일부수상이 기다리고있을거요. 곧장 나에 
게 오게 하오.》 

〈〈알았습니다,수령님!》 


360 



〈〈알겠습니다, 아버지원수님!〉〉 

두사람, 키도 나이도 목소리도 판다른 부관과 렬차원처녀는 거의 
동시에 군대식으로 허리를 쭉 펴며 대답올렸다. … 


남일 부수상은 그사이 쏘련과의 경 제 무역 문제 토의 차로 모스크바와 
우랄공업지구에 들렸다가 중국동북지방을 거쳐 귀국했었다. 마침 
수령 님 께서 함경 남도를 현지지 도하고계섰으므로 그동안 평 북도와 자 
강도의 여 러 기계공장들을 돌면서 수출문제를 토의 했다고 한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쏘련방문에 대한 보고를 끝까지 주의깊게 듣 
고계시였다. 특히 최근 쎄브에서 우리에 대해 어떻게 나오는가를 주 
목하시 였 다. 

《그들은 우리가〉〉하고 남일은 갖가지 기계설비들의 명세와 수 
자들이 가득 적힌 수첩을 펴들고 말씀드렸다. 〈〈고속디젤기관까지 
생산하는데 대해 매우 놀라는것 같습니다.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 
에서 도 모든 기계제품을 다 자체 로 생산하진 않는다, 수입해 쓰면 리 
윤폭이 더 클 때가 많다는걸 모르는가, 하물며 쎄브에서 만든것을 
다 사다쓸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공장을 새로 꾸리며 역사질인가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전 당신들이 국가간에 계약했던 설비까지 준다, 못 준다 
면서 우릴 심히 자극하고 모욕하는데 뭣때문에 우리가 구걸하겠는 
가, 언젠가 우리에게 디젤기관이 절실히 필요하였을 때 당신들은 어 
떻게 나왔는가? 쎄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하지 
않았는가?… 그때 우리 수령님께선 선언하시였었다, 앞으로는 
절대 구걸하지 않을것이라고!… 그때부터 우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력 갱 생하여 지 금은 자동차, 뜨락또르,불도젤, 굴착기 , 전기 
기관차 그리고 수천톤급의 배들파 땅크, 방사포도 다 자체로 만들 
고있다, 앞으론 비행기와 미싸일도 우리자체로 만들 결심이다, 이 
렇게 말해주었습니다.》 


361 



《잘했소.》그이께서는 만족하시여 두주먹을 힘껏 맞잡으시였 
다.〈〈꾸바의 까리브해의 위기가 바로 그런 피나는 교훈을 남기지 않 
았소? 남일동무가 이번에 우리 당의 립장에 대해 말을 잘했소. 그 
러니 그들이 뭐라고 했소?》 

《제발 그것만은, 미싸일만은 절대 만들지 말라고, 대신 우리에 
게 필요한건 다 대주겠다면서 … 좋기는 쎄브에 드는것이라고 또 시 
작하는것 이 였습니 다.》 

《쎄브에 들어야 좋다?!》 

《예, 그들은 이미전에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 경제가 대학생수준 
이 된 다음 보자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인젠 귀국도 대학생 
수준이 되지 않았는가 하면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참, 지독한 사람들이로군. 기어이 한가마밥을 지어놓고같이 나 
누어먹자구 하면서도 밥주걱만은 저들이 쥐고있겠다는건데?… 그래, 
어떻소? 흐루쏘브때보다 민족리기주의의 배집이 더 커진것 같지 않 
소?》 

《예, 그런것 같습니다. 수령님 !》 

남일도 맘껏 소리내여 옷었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웃음을 가무 
리며 문득 생각나신듯 물으시였다. 

《참, 남일동무. 이번에 박유진을 데리고 쎄브에 간다고 했던것 
같은데?… 그래, 그와 같이 다녀보니 어떻소. 그가 인제는 정신을 
바싹 차린것 같소?》 

《그렇습니다. 수령님,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습니다. 인제는 제 
힘을 믿고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사람의 인격은 물론 민족적존엄 
과 나라의 자주권도 지킬수 있다는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고 했습 
니 다.》 

〈〈그렇다?!…》 

《예, 그는 얼마전부터 저와 같이 여러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월 
남과 꾸바에 보낼 기계설비들을 료해하고있습니다. 지금 저쪽칸에 
서 대 기 하고있 습니 다. )) 

《그렇다면 제창 데리고 올걸 그랬소.》수령님께서는 무척 반가 
362 



와하시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동물 한번 만나봤으면 했더랬는데 
마침 잘됐구만.》 


3 


박유진은 물속을 헤염쳐가는듯 했다. 어떻게 문이 열리고 남일부 
수상이 먼저 무슨 말씀을 어떻게 올렸던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 
았다. 무엇보다도 렬차집무실의 밝은 전등이 강렬한 빛으로 눈을 때 
리던것과 그가 깊숙이 허리굽혀 인사올릴 때 수령님께서 밝게, 해 
빛처럼 환하게 웃으시던것만이 사진처럼 기억에 찍혀졌다. 

《반갑소, 유진동무. 어서 이리 오시오.》 

수령님의 음성은 묵직하면서도 한없이 따스하였다. 유진은 그렇 
듯 부드럽고 따스한 음성을 봄날의 빛처럼, 공기처럼 벅차게 호흡 
하였다. 

《배에서 찍은 우리 유진동무 사진을 본게 언제였더라?〉〉 
이번에도 유진은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남일부수상이 그 
를 대신하여 말씀드렸다. 

〈〈지 난해 7월이 였습니 다, 수령 님 . 제 가 청 진수산사업 소 영 예 
게시판에 붙어 있던것을 가져다드렸댔습니다.》 

《그랬지, 음… 그때 내 전화로 알아보니 모두들 우리 유진동무 
가 배사람이 다됐다고, 앞날의 영 웅감이 라고 핑장히 자랑한다는게 
아니겠소. 김태규랑 김학순이랑 내가 늘 내세우고 자랑하는 동해의 
영 웅선 장들이 바로 그렇 게 보증하더 라는거 요. 그래 서 남일부수 
상이 청진에 가는 기회에 그를 만나면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오라구 
했더니, 하!… 유진인 원양에 나가구 없구 해서 영예게시판에 불어 
있는걸 떼왔다는게 아니겠소, 핫하! …》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렬차칸을 쩡쩡 울리는 그 호 
탕한 웃음에도 진정 친어버이의 웅심깊은 사랑파 믿음이 가득차있 
었 다. 


363 



《그래 배에서 내리니 어떻소. 배사람들이 그립지 않소?》 

《예, 그립습니다. 수령님 ! 맨날 그들이 생각나구 꿈속에서도 보 
이군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다시 크게 웃으시였다. 

《인젠 말씨 까지 도 같아졌소, 영?! … 그래 좀 터 놓구 말해보 
오. 배를 타면서 무얼 제일 크게 느꼈는지, 응?…》 

《예, 수령님. 배를 타면서 전…》박유진은 어언 어려움도 다 잊 
고 말씀드리고있었다.〈〈조선사람이 되자면 어떤 심장을 안구있 
어야 하는가를 실지 생활을 통하여 절실히 느끼구 배웠습니다. 이 
땅에 태 여났다구 해서 다 조선사람이 되 는것 은 아니 였습니 다. 무엇 
보다 조선의 넋을 가슴에 안구 그걸 귀 중히 여길뿐아니 라 목숨으로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것을 새톱게 배우고…》 

《허허 … 이것보오, 남일동무. 우리가 유진동물 배 에 태우기 정 
말 잘한것 같구만, 응?!》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그새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배 사람답게 걸 걸하구 호방해 지구…》 

〈〈우리의 미래요.》 하고 수령님께서 뜨거움에 젖어드는 음성으 
로 말씀하시였다. 《고리타분한 봉건분내나 노린내 섞인 부르죠아 
향수에도 물젖지 않는 미래이지, 모든것을 자기식으로 생각하고 자 
기식으로 말하고 자기식으로 실천하는 미래!… 내가 바란것이 바로 
이것이 란 말이요. )) 

수령님께서는 박유진의 어깨에 한손을 다정히 얹으시였다. 자애와 
믿 음이 천만근의 무게 로 실려있는 손길이 였다. 

《난 동무가 앞으로 훌륭한 무역일군이 되 여 조국에 크게 기 여 하 
길 바라오.》 

박유진이 벌떡 일어서려 했으나 수령님께서는 그를 그냥 눌러앉 
히 시 였다. 

《무역을 단순한 장사일로만 생각해선 안돼. 옛적에도 장사일엔 
상도 즉 장사의 도리가 있어야 한다며 상도이자 인도라구 했소. 장 
사의 도리는 돈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살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면 우리 사회주의조선의 무역일군은 어 떤 좌우명 을 가져 야 하 
364 



는가? 그것은 바로 조국과 민족의 존엄, 자존심을 근본으로 삼 
는거요. 비굴하고 구차스럽지 말고 야박하거나 표리부동하지 말며 
의리를 중히 여기되 조국파 인민의 리익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몸바 
쳐 일해야 한다는 말이요.》 

《알겠습니다,수령님! 그 말씀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힘껏 
일 하겠습니다.〉〉 

《그러리라고 믿소,믿어. 그럼 유진동문 이제부터 꾸바와 월남 
을 비롯한 반제반미투쟁에 나선 나라들파의 무역 및 지원사업을 위 
주로 맡아봐야겠소.》 

《?! …》 

박유진은 숨을 죽이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지금 특별히 중대한 과 
업을 주신다는 생각에서였다.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특히 꾸바와 월남과의 사업을 잘해야 돼. 재삼 말하지만 무역 
일군이라고 해서 절대 무슨 돈벌이를 위한 거래로 생각할게 아니라 
지원이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와 한전호속에서 피흘리며 싸우 
는 전우들에게 주는 정 신적 및 물질적지원 ! … 무슨 말인지 알겠 
지?〉〉 

《예, 수령님 ! 잘 알겠습니다.》 

그 순간 꽤액!一 하고 기적소리가 울렸다. 길게 목청껏 웨치는 소 
리 였 다. 


4 - 


장정환은 아바나항공역으로 차를 달렸다. 모스크바에서 리륙하여 
아일랜드의 쉐논비행장을 거쳐 대서양을 횡단하기까지 무려 14시간 
동안이 나 날아오는 쏘련의 《일_19》형 국제 려객기 가 아침 8시 
35분에 도착하게 되 여있는것 이다. 그 비 행기 에는 지금 5명의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업기술대표단 성원들이 타고 있 다. 


365 



항공역에 도착한 장정환은 역사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 
다. 소박한 단층건물이였다. 대기실도 조금 비좁고 복잡했는데 랭 
풍장치만은 흘륭했다. 

마침 대기하고있던 항공역사의 갈색미인인 안내원이 장정환을 건 
물 서쪽에로 낸 복도를 따라 안내하였다. 

《대사선생, 저쪽귀빈실로 가셔야겠습니다.》 

장정환이 의 아해하며 통역도 겸하고있는 대사관 문화참사를 돌아 
보며 물었다. 

《왜, 비행기도착시간이 달라졌다오?〉〉 

《아닙니다. 저기 귀빈실에서 엔리께 로빼스공업상이 대사동지를 
기다리고있다고 합니다.》 

〈〈엔리께 공업상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 나라의 상이 직접 외국의 보통공업기 
술대표단을 마중한다는것 은 외 교관례 에서 매우 이 례적 인것 이 다. 특 
히 엔리께 로빼스는 꾸바혁명정부내에서 체 게바라이후 공업부문사 
업을 맡아보는 권위있는 인물이였다. 

엔리께는 장정환이 들어서자 급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반갑게 마 
주나왔다. 서로 너무도 잘 아는 사이여서 공식적인 인사말은 필요 
없었다. 

《대사선생.》하고 엔리께는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두드리며 말 
하였다. 《먼저 한가지 알려드릴것이 있습니다. 좀전에 피델 까스 
뜨로수상이 나더러 귀국의 기술대표단을 직접 맞이할데 대한 지시 
를 주었습니다.〉〉 

《예一그렇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피델은 저녁에 까삐똘리오에서 간단한 환영 
모임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피델수상자신도 꼭 시간을 내겠다 
면서 …》 

《까삐 똘리 오에 서 말 입 니 까? …》 

장정환은 그제서야 벌어진 사태를 짐작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별 
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피델 까스뜨로가 무시로 장정환을 찾군 하 
여 아바나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중 조선대사야말로 피 
366 



델수상과 같이 한피줄을 타고난 형제처럼 제일 절친한 사이로 소문 
났기때문이다. 뿐더러 피델수상은 조선에서 오는 대표단이라면 그 
급수에 관계없이 모두 자신이 직접 만나주군 했다. 

마침 활주로에 내린 비행기가 항공역사가까이 미끄러져오는것 
이 벽을 통채로 덮은 창유리로 내다보였다. 장정환은 엔리께일행파 
같이 급히 밖으로 나갔다. 

비행기사다리로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수수한 려객들이였 
다. 그중에서 꼭같은 옷차림을 한 동양인들 몇사람이 유표하게 눈 
에 띄였다. 

장정 환은 문화참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급히 달려가 그 
들과 인사를 나누더니 곧장 엔리께가 기다리고있는 특별출구쪽으로 
데 리 고왔다. 그는 엔리 께에게 5명 의 대표단성 원들을 차례 로 소 
개 하였 다. 

《상동지, 이분은 대표단단장인 박유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 
국 무역성 국장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뜨락또르공장 부기사장동지, 
또 이분은…》 

엔리께가 먼저 박유진과 기타 대표단성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 
누기 시 작했다. 그러 나 장정환은 마치 기 록영 화의 화면에서 걸어나 
오는 사람들을 쳐 다보듯 입 을 벌 린채 굳어져 있 었다. 

〈〈안녕하십 니 까, 매부 아니, 대사동지.〉〉 

박유진 이 반갑게 , 눈이 보이 지 않게 옷으며 인사를 했다. 장정환 
은 얼결에 손을 쑥 내밀긴 했으나 입을 열수가 없었다. 너무도 뜻 
밖이여서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는지도 알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 
과도 좀 뒤 늦게 야 통성 을 했다. 기 양뜨락또르공장의 부기사장과 
2월5일공장의 기술준비실 실장, 통성기계공장의 책임기사를 비 
롯한 우리 나라 기계제작공업의 여러 부문 기업소의 일군들이였다. 

엔리께가 빨리 차에 타라고 재촉해서 야 그는 유진에게 가만히 귀 
팀했다. 

《자넨 내 차에 타게.》 

장정환의 승용차는 엔리 께공업 상의 〈〈라바》형 은 물론 조선 공 
업 기 술대 표단을 위해 나온 정 부대 기 차들보다 훨씬 급이 높았다. 박 
367 



유진이 놀라와하는 눈길로 두리번거 리는데 장정환이 은근한 목소리 
로 말했다. 

《수도 아바나적으로 단 두대밖에 없는 차일세.》 

《예?! •••)) 

《이 차는 피델 까스뜨로수상이 직접 이전 홍동철대사에게 선물 
하였지. 그러니 다른 차 한대는 누가 타겠는지 어디 한번 짐작해보 
게.〉〉그는 차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박유진을 옆으로 바싹 잠아끌었 
다. 《빨리 문을 닫게.》 

차안은 고급승용차답게 랭 풍장치 가 잘되 여 서늘하였다. 장정 환은 
운전사에게 엔리께공업상의 차를 앞세우라고 지시하고나서 하던 말 
을 계속했다. 

《사실 이 승용차 하나만 놓고보아도 피델을 비롯한 꾸바인민들 
이 우리를 얼마나 높이 일러주고 존경하는지 잘 알수가 있지. 뭐, 
이전 홍동철대사나 이 장정환이가 남보다 잘나서 그랬겠나? 아니야. 
그건 바로 피델 까스뜨로와 꾸바인민들이 우리 수령님을 진심으로 
흠모하고 존경 하기때문이네. 이 걸 알아야 해.》 

《예.》 

항공역사에서 아바나시 중심부에까지 가려면 약 20분남짓이 차 
를 달려야 한다. 열대지 방의 특이한 풍치 를 돋구는 빨마라고 하는 
야자나무 비 슷한 가로수들이 길좌우에 키 높이 줄지어 늘어 서있는것 
이 이 채 로왔다. 그 나무들사이 로 드문드문 낡고 키낮은 독립 가옥들 
이 동서 남북 가림 없 이 되 는대 로 들어 앉아 문을 열 어 놓고있는것 이 보 
였다. 시꺼먼 입을 쩍 벌린것 같은 집들이 많았다. 혁명이전의 자 
취를 가시지 못한 가난과 빈궁의 때묻은 모습이 였다. 

장정환이 또 뭐 라고 한것 같았다. 유진이 머리를 돌리자 그는 쓰 
거 운듯 말했다.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군, 응?!》 

〈〈아,그런게 아니라…〉〉 

《그럴수 있지, 처 음 보는 열대풍경 이 니까.》하고 그는 주머 니 
에서 담배를 꺼내여 입에 물었다. 《그새 난 처남이 바다에 나가 배 
를 타면서 어떻게 살며 일했는지 다 알아보았네. 얼마전엔 우리 대 
368 



사들이 조국에 가서 당대표자회결정관철을 위한 강습까지 받았으니 
왜 모르겠나. 헌데 이번일만은 정말 깜짝이네. 도대체 무슨 구름 
을 랐기에 이렇게 높이 대표단단장까지 되여 날아왔나, 응?!…》 

〈〈저, 그건…〉〉 

유진은 말을 더돔었다. 그것을 어떻게 몇마디의 말로 다 이야기 
할수 있으랴. 그는 눈시울을 떨며 얼마전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던 
이 야기 를 시 작하였 다. 

장정환은 묵묵히 귀 를 강구고있 었다. 커 다란 감동이 그의 둥실 한 
얼굴에 파문짓고있었다. 

《음… 우리 수령님 아니고서야 누가 그렇게 죄진 자식을 품어 
주겠나. 일을 잘해야 돼. 수령님의 은덕을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 
지 잊지 말아야 해.》 

그는 흥분을 이길수 없어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를 힘껏 빨았다. 
알싸한, 목이 타드는듯 한 독한 연기 가 뿜어나왔다. 참지 못하 
고 박유진은 줄기침 을 터 뜨렸다. 

《원, 바다사람이 다됐다더 니만…》 

장정환은 담배 불을 껐 다. 

마침 승용차는 시 내중심을 달리고있었다. 

《앞에 보이는것이 호째 마르띠혁명광장이네.》장정환이 설명 
했다.〈〈저 높은 탑밑에 화강석상이 있지? 그게 바로 꾸바의 민 
족적 영 웅 호째 마르띠 일세 . 》 

호째 마르띠혁 명 광장에서 말레 꽁해 안거 리 에 있는 우리 대사관 
까지 는 멀 지 않았다. 장정환이 대 사관을 손으로 가리켜보였 다. 

〈〈우리 대사관일세.〉〉 

그때 앞에서 달리던 엔리께의 차가 갑자기 삐一익 ! 하고 아츠러 
운 소리를 내며 멎 었다. 

장정환이 통역을 겸한 문화참사를 돌아보며 빨리 가서 알아보라 
고 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달려가니 반쯤 문을 열고 나 
서던 엔리께가 무슨 말을 했다. 문화참사가 머리를 돌렸다. 

《호텔로 곧장 가겠는가 대사관에 들리겠는가고 묻습니다.》 

《대사관부터 먼저 들려야지.〉〉장정환이 큰소리로 말했다. 

369 



《제집에도 안 들리고 호텔부터 갈수야 없지, 응?!》 

《예, 옳습니다.〉〉 

문화참사가 앞차에 가서 말하자 엔리께는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 
어 흔들었다. 호텔로 먼저 가겠다는 의미같았다. 

장정환이 유진 이 에게 말했다. 

《대사관에 들어가서 우리 사람들파 인사도 하구… 그담 처남에 
게 아니, 단장에게 보여줄것이 또 있네. 자넬 잊지 못해하던 동창 
생이 남긴걸세.》 

〈〈예?!》 

《아다 미헬쓴 말일세.》 

별안간 유진은 숨이 쩍 막히는듯 했다. 아까부터 묻고싶었던 아 
다 미 헬쓴에 대 한 이 야기 가 불쑥 튀여 나온것 이 다. 비 록 매 부인 장 
정환은 지나가는 소리처럼 대수톱지 않게 말했을수도 있지만 박유 
진은 그 어 떤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칼날같이 스쳐가는것을 느 
끼 고있 었다. … 


피 델 까스뜨로가 간단한 환영 모임 장소로 정한 까삐 똘리오는 미 국 
백악관과 꼭같은 모양을 가진 건물이다. 1920년대에 10년이나 걸 
려 건설한 국회 청사로서 지금은 민족박물관으로 리용되 고있다고 
한다. 

엔리 께상을 따라 원형지붕으로 높이 솟구친 대 리석원주들사이 
를 걸 어가느라니 대 형구리초대 들파 녀 신상도 눈에 띄 였다. ( 녀 
신상은 꾸바의 자주독립 과 평 화를 상징 한다고 한다. ) 

피델 까스뜨로는 3층의 국회회의실(지금은 외국대표단들과의 면 
담실 및 회 의실 )에서 장정환대사와 박유진일행 을 만났다. 거 구 
의 체격에 지칠줄 모르는 열정파 활달한 손짓, 몸짓을 배합하여 수 
십 만청 중의 마음을 깡그리 , 송두리 채 틀어 잠는것 으로 유명한 피 델 
이 였다. 그래서 인지 그가 한 첫 인사말도 매 우 인상적이 였다. 

《우리의 친근한 장정환대사선생 그리고 혁명적인 조선에서 온 귀 
370 



중한 벗들, 여러분! 내가 오늘 여기 까삐똘리오에서 당신들을 만 
나기 로 한것 은 이 집 이 악명높은 미 국의 백 악관과 꼭같은 건물이 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당신들, 세계에서 처음 미제를 때려부시고 무 
릎꿇게 한 영웅적조선의 대표들이 미국의 백악관을 타고앉는것이 야 
응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여기 아바나에 호 
화호텔들도 없지 않지만 바로 많은 사람들이 미국식으로 〈호와이 
드 하우스〉라 부르는 이 건물에서 당신들파 마주앉기 로 했던것입 
니다. 어떻습니까, 혹시 건물이 구식이라 해서 불만스러워하는 
분들은 없는지?…》 

구리초대들에서 는 굵은 초들이 경쟁적 으로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천정에 무리등들도 많았지만 그것들은 켜지 않았다. 초불이 더 친 
근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마련해준다고 피델이 말했던것이다. 

담화는 세시간나마 계속되였다. 피델은 조선의 자립적민족경제건 
설파 그 성과들에 대하여 일일이 구체적으로 료해하면서 기계부문 
과 외국어에도 능통한 박유진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구성에 대해 
서 도 커 다란 만족을 표시했다. 이 어 그는 빈터 나 다름없는 자기 나 
라의 기계제작공업의 실태와 조선기술자들에 대한 커다란 기대감도 
솔직히 터놓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기엔 쏘련의 군사고문들과 기술자들이 절 
대 다수였습니 다.〉〉하고 피 델은 꾸바의 유명 한 려 송연 이 며 레 몬차, 
파이내 풀 등을 대 표들에 게 손수 권하며 흥분된 어 조로 말을 이 었다. 

《그러 나 까리브해의 위기때 흐루쏘브가 미싸일파 중폭격기들을 철 
수해 간 다음 쏘련사람들은 하나, 둘 다 빠져나가고 대신 조선동지 
들이 와있습니다. 귀국의 영명한 수령 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진심 으 
로 우릴 도와주시려고 보내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는 접대원이 바꾸어놓는 차와 커피를 거의 습관처럼 조금씩 입 
술에 대여 맛보고는 그대로 놓고말았다. 마치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류창한 열변의 물결이 여 울에 걸려 떠질가봐 저 어하는듯 한 표정 이 
였 다. 

《사실 김 일성동지 께 선 우리 꾸바혁 명 을 보위 하기 위해 10만 
정의 자동보총파 수많은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을 보내주시지 않았 
371 



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마련된 무기들입니까. 나는 언젠가 
체 게바라동지가 귀국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항일빨찌산참가자들 
의 회상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체는 그 책에 자기는 강 
물속에 빠져 죽으면서도 권총 한자루를 동지들에게 던져주는 렬사 
의 이야기도 있다면서 얼마나 감동적으로 말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도 일곱자루의 보총을 가지고 혁명을 시작했으므로 총 한자루, 
한자루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스며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습니 
다. 그런데 그처럼 귀한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꾸바에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귀국 
에선 우리 나라에 갖가지 기계설비들과 지어 축구와 권투, 녀자배 
구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체육고문들, 사탕수수수확을 돕는 청년지 
원대까지 보내주고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꾸바사람들은 우리 
의 가장 진실한 벗이며 스승이신 김일성동지를 무한히 존경하고 따 
르고있는것 입 니 다.》 

열정 적 인 피 델 ! … 박유진은 그의 장대한 체구와 그에 어 울리게 거 
뭇하니 자란 유명한 구레 나룻이 며 재빠른 손세 를 홀린듯이 바라보 
았다. 소탈하고 쟁쟁한 그의 목소리를 호흡하듯이 빨아들이며 어느 
한순간 저 도 모르게 바르르 눈시울을 떨기까지 했다. 

불현듯 아다 미헬쓴이 상기 되 였다. 아까 매 부인 장정 환대사가 슬 
그머니 꺼내준 그의 편지에 씌여져있던 비탄의 글줄들이 눈앞에 선 
히 떠올랐다. 고통파 비애에 찬 흐느낌을 털어놓던 아다 미헬쓴, 
그의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귀전을 허 비고 가슴을 저미 였다. 

…그랬 어 요. 남편 표도르 꿀리 꼬브는 군사기 술고문으로, 난 
기계기술자로서 여기 꾸바에서 행복한 살림을 폈건만… 이렇듯 무 
서 운 불행 이 겹칠줄이 야… 

난 비록 유태인이지만 나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위대한 쏘련을 
사랑했고 진정한 나의 조국이 라고 지 금껏 믿 어 의심 치 않았어 요. 하 
지만 그들, 흐루쏘브와 그의 비겁한 권력의 하수인들은 여기서 미 
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싸일파 비행기들을 철수해가면서 나의 꿈 
과 사랑, 위 대 한 쏘련공민의 존엄 까지 다 걷어 안고 가버 렸 어 요. 

372 



남편도 제일먼저 떠나가게 되였어요. 그런데 이게 도대체 웬일이 
겠어요. 그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미싸일을 안고있다가 제일선 
참 불고기가 될번 했는데 인젠 정든 로씨야로 돌아가 행복한 살림 
을 펴게 되였다고 기삐하는게 아니겠어요. 그는 꾸바사람들이 지금 
우릴 내놓고 경멸하며 속으로 침을 뱉고있지만 그들이 미싸일이 무 
언지, 핵탄두가 무언지, 그 후과가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알기나 하 
는가고, 그런 미개한 종족들을 위해 내가 목숨까지 바쳐야 할 리유 
가 무엇인가고 하면서 … 

아, 아! 나의 표도르! 그가 어떤 사람이였던가요. 늘 자기는 제 
2의 피델이라고(로어로는 표도르이지만 에스빠냐어로는 피델이 
라는것을 아시지요?) 으시대던 사람, 그렇듯 긍지높고 존엄높던 쏘 
련군사과학아까데미 야의 한 성원이였던 표도르가 미국의 군함파 비 
행기들이 날아들며 위협공갈을 들이대자 그렇듯 비겁하고 치사한 를 
장부가 될줄이야 어찌 상상인들 했겠나요. 나는 그만 환멸을 느끼 
고말았어요. 우리도 조선사람들처럼 꾸바를 돕자고 하는 말에 그는 
남겠으면 남아있으라, 막지 않겠다. 인젠 당신도 내겐 필요없다면 
서… 아, 아! 그렇듯 달라진 그를 보면서, 그렇듯 비렬해진 그 
를 보면서 내가 지금껏 사랑해온 모든것이 허울이라는걸 알게 됐어 
요. 결국 표도르가 나를 서슴없이 버렸듯이 내가 그처럼 믿어왔고 
사랑해온 조국도 이 가엾은 나 아다를 가차없이 차버렸다는것을 말 
예요. 그래서 목놓아울어요. 얼마전 귀여운 딸애를 잃었을 때처럼 
(내가 보내준 사진들을 보셨지요?) 너무도 기가 막혀 땅을 허비고 
가슴을 쥐 여뜯으며 울고 또 울었 어 요. … 

장정 환이 그의 무릎을 건드리 는통에 유진은 아다의 눈물어린 호 
소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피델의 부관이 들어와 무어라고 가만히 속 
삭이고있었다. 피델의 활기에 넘쳐있던 얼굴에 일순 어두운 그림자 
가 비꼈다. 

《아, 여러분,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피델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급한 일이 제기돼서 나는 먼저 자리를 떠야 할 
가봅니 다. 미 국의 저 검 질긴 양키제씨 들이 잠시 도 쉴새없이 우릴 들 
373 



볶아대니 어쩌는 수가 없군요. 부디 량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고 저의 긴 연설때문에 지금껏 배를 끓았을수도 있겠는데 이제는 맘 
놓고 드셔도 되겠습니다.〉〉 

그는 부관을 따라 출입문쪽으로 가다가 불쑥 장정환을 돌아보며 
《대사선생, 나 좀…〉〉하고 가만히 손짓하는것이였다. 장정환 
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옷으며 물었다. 

《대 사선 생, 헤니 일은 왜 데리고오지 않습니까.》 

〈〈아, 우리 현일이 말입니까?》 

〈〈나야 그 애와 친구지간이 아님니까. 일없습니다, 통역겸 데리 
고와도 됩 니 다.》 

《예, 하지만 우리 엔 원체 잠꾸러기가 돼놔서 …》 

《핫하하… 귀 여운 녀석 !》피 델은 소리내 여 웃더 니 뒤를 돌아보 
며 사람들모두에게 손을 들어 군대식으로, 손바닥이 앞으로 보이게 
거 수경 례 를 보냈다. 《여 러 분, 안녕 히 ! 래 일 광장에 서 다시 만 
납시 다. » 

부관이 아까부터 문을 열고 기다리고있었다. 피델은 또 한번 손 
을 들어 인사하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를 바라보면서 유진은 불시로 눈시울이 사뭇 떨리는것을 느꼈 
다. 피 델 까스뜨로 ! … 소탈하고 정 의롭고 락천 적 인 꾸바혁 명 의 
령 도자, 하기 에 아다 미헬 쓴도 저 피 델 수상에 게 자기 의 마음속 진 
정 을 털 어놓으러 하지 않았던가 ! … 

오래 생각던 끝에 나는 피델 까스뜨로수상에게 편지를 쓸가 하고 
도 생각했댔어요. 하지만… 내가 무슨 명분으로 그분께 편지를 쓰 
겠나요. 표도르를 대신해서 또 흐루쏘브를 대신해서 사죄를 하겠나 
요? 과연 나같은게 뭐라고?… 

결국 따와리쉬 박을 찾게 되였어요. 귀국의 친절하고도 엄엄한 장 
정환대사도 만났구요. 그의 권고로 난 여기 남기로 했어요. 조선사람 
들처럼 몸바쳐 꾸바를 도우며 여기서 나의 새 조국을, 새로운 련모의 
대상을 찾고싶었어요. 헌데 그만 이렇게 병상에 몸져누울줄이야… 

중병 에 걸리 고보니 이 아다 미헬쓴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얼마나 
374 



가련한 인생인가를 절감하게 되는군요. 그래요, 지금 나에겐 미래 
가 없어요. 왜 이리 비참하게 됐을가요? 한땐 박유진 당신과 같이 
수재로 인정받던 내가, 앞날이 창창하다고 만사람이 축복해주던 내 
가 왜 이렇게 됐을가요, 예?!… 

이 편지도 병상에서 쓰고있어요. 

사실 난 지 난날 쏘련 이 라는 존엄 높은 대 국을 나의 진정한 조국으 
로 삼고 마음속으로 끝없이 사랑했어요. 하지만 내게 차례진것은 과 
연 어 떤 운명이 였던가요? 지 금 나에 겐 사랑도 남편도 자식 도 없고 
조국도 없어요. 이 세상 어디에 과연 나를 건져주고 지켜줄 참된 사 
탕의 품이 있을가요?… 말 좀 해 보세 요, 따와리쉬 박. 이 게 도 
대 체 누구의탓인가요.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이 런 불행을 겪 
어 야만 하는가요?… 

까삐똘리오에서의 환영모임이 끝난 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장 
정환이 먼저 유진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아다의 편지를 보구 무슨 생각을 했는지 … 나도 좀 알면 안되 
겠 나?〉〉 

유진은 잠시 생각하고나서 이렇게 되물었다. 

《제 가 편지 를 읽 어드릴가요?》 

〈〈아니, 필요없네. 그 녀자가 편지내용을 다 말해줬으니까.》 
《그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박유진이 먼저 물었다. 

《그 녀자를, 아다 미헬쓴… 좀 만나볼수 없습니까?》 

«?-)) 

장정환은 웬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 눈시울만 흠칫거리고있었다. 
잠시후엔 머리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고말았다. 그 순간 유 
진은 첨부터 아다를 질색하던 매부였으므로 끝내 대답하지 않으리 
라고 생각했다. 아닐세라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승용차는 해안가에 난 도로를 달리고있었다. 습한 무더위로 하여 
진득진득한 느낌에 진저리나는 열대의 밤이였다. 도로의 우측에서 
는 세찬 파도가 희끗거리며 어둠을 휘것고 기슭의 방파제에 부딪쳐 
375 



산산이 부서지는것이 내다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승용차는 호쎄 마르띠호텔 
정문앞에 이르렀다. 박유진은 차에서 내리며 정중히 인사했다. 

〈〈대사동지,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장정환은 인츰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입귀를 잔뜩 찜기고있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래일 우리 나라 지원물자증정식이 끝난 다음… 만나보자구.》 

《아니, 무슨 말씀인지?…》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아다를 만나보고싶다구.》 

장정환은 손을 들어보이고 차문을 닫았다. 

…호쎄 마르띠혁명광장에서 수만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민 
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내온 지원물자증정식 이 끝난 후 박유진 
은 다시 장정환대사의 승용차에 올랐다. 이미 장정환의 지시를 받 
은 모양 운전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바나교외의 남쪽수림지대 
로 차를 몰아갔다. 

아름다운 열대풍경 이 차창너머로 끝없이 흘러가고있었다. 그곳은 
《엑스뽀 데 꾸바》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유원지로서 레닌공원, 
식물원, 동물원, 꾸바경제성과전시장들이 있고 여러 휴양소, 료양 
소건물들도 숲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있다고 한다. 

승용차는 어느 한 작은 공지를 앞에 두고 멎었다. 

차에서 내린 장정환이 먼저 앞에서 걷고 한손에 백합꽃송이를 든 
박유진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키낮은 떨기나무들이 암팡스레 둘러앉아있는 곳에 크지 않은 새 
까만 대리석비석이 눕혀져있었다. 그 대리석판우에는 그 누군가가 
쓴 글이 또렷이 새겨져있었다. 

아다 미 헬쓴 (1932. 斗. 9. -1966. 11. 13. ) 

그것이 전부였다. 고향도 자식도 밝혀 있지 않는 고독한 묘비 … 박 
유진은 거기에 백합꽃송이를 놓고 머리를 숙이였다. 조용히 묵도했 


376 



다. 정적… 바람소리조차 없다. 마음속에서는 아다의 편지구절 
들이 오열에 떨리는 목소리로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지 금 나에겐 사랑도 남편도 자식도 없고 조국도 없어요. … 
따와리쉬 박, 이 세상 어디에 과연 나를 건져주고 지켜줄 참된 사 
탕의 품이 있을가요?… 말 좀 해보세요, 따와리쉬 박. 이게 도 
대체 누구의탓인가요.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이런 불행을 겪 
어 야만 하는가요?… 

장정환이 다가오더니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녀자는 자기를 이스라엘에 보내주는것도 바라지 않았네. 세 
계에서, 특히 중동에서 침략자로 악명을 떨치고있는 이스라엘을 자 
기의 조국이라고 부를수 없다면서 … 차라리 기계공학자로서 자기의 
피땀도 스며있는 여기 꾸바에서 눈을 감겠다고 고집했다네. 그 사 
정을 내가 엔리께공업상에게 말했더니 그는 또 어느 기회에 피델 까 
스뜨로수상에게 보고했더구만. 피델도 무척 감동되였다네. 그렇 
지만 어쩌겠나. 너무 늦었으니…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 녀자의 장 
례를 잘 치르어주도록 했지. …》 

유진은 불이라도 삼킨것처 럼 헉_ 하고나서 힘들게 물었다. 

〈〈그가 나한테 무슨 부탁을… 더 남긴건 없습니까?〉〉 

장정환은 머리를 저었다. 

《없네, 편질 꼭 전해달라는것밖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진에게는 너무도 참기 어려운 침묵이였다. 
박유진 자기와 이상야릇한 운명의 쌍곡선을 그리며 살아온 아다 미 
헬쓴, 그의 마지막소원은 무엇이였을가?… 

장정환이 그를 눈여겨보고있었다. 그의 마음속 생각을 낱낱이 읽 
고있는듯… 드디여 그는 두손을 맞잡고 손가락마디를 딱딱 소리내 
여 꺾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 게 바라의 국제 유격대를 부러워 했네. )) 

《체 게 바라의 뭐 라구요? 무슨 국제유격 대?! …》 

《응, 그런 유격부대가 있네. 이제 곧 온 세상이 다 알게 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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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그렇구…》장정환은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들었으나 입에 물지 
는 않았다. 《그 녀잔 체 게바라의 국제유격대에 대해 왜 미리 말 
해주지 않았는가고 나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더군.》 

〈〈그럼 거기에 갈수도 있었습니까?…》 

《아니, 그저 해보는 소리지. 아마 그 녀자가 체 게바라를 따라 
갔더 라면 전 투장 에 서 제2의 조국을 부르며 마음편 히 눈을 감 았 
을수도 있있으련만… 참 불쌍한 녀 자일세.》 

그들은 천천히 숲속의 작은 공지를 떠났다. 두사람은 더이상 아 
무 말도 없었다. 


5 


새 해 1967년 에 들어 서 면서 체 게 바라가 조직한 국제 유격 대 는 드 
디여 활동을 개시하였다. 먼저 꾸바에서 온 싼체스대위의 제1지대 
와 볼리 비 아인들과 기 타 여 러 나라 사람들로 조직된 제2지 대(지 대 
장은 메히꼬출신인 꾸바혁명군 대위 후안 빠불로)가 나까우아쑤라 
는 지 방에 서 합쳐 졌다. 제3지 대 는 볼리 비 아의 여 러 광산로동자 
들(볼리비아는 주석, 연, 아연, 동, 수은광산들이 많다.)을 기 
본으로 농민들속에 서 도 자원자를 선 발하여 조직하는중이 였다. 

도시에서 활동하던 체는 1월 7일 근거지에 도착하였다. 따니 
아도 같이 오기를 간절히 청원했지만 체는《따니아, 그건 절대로 안 
돼.〉〉하고 딱 잘라버렸다. 

따니 아는 눈물이 글썽하여 애 원하다싶 이 했 었 다. 

〈〈사령관동지, 잠간만… 다문 하루동안만이라도 가서 사령관동지 
랑 같이 훈련도 하구 숙영 도 하고싶습니 다. 나도 결심품고 혁명 에 
나선 이상 근거지에서 동무들과 같이 훈련도 하구 총도 쏘구 시도 
읊구 노래 도 불러 보면서 -)) 

체 가 엄하게 그의 말허 리 를 잘랐다. 

《따니아, 내가 동물 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 잘 알면서도 그 
378 



러오? 다시 말하지만 동문 우리 부대의 샘줄기요. 그 샘줄기가 마 
르면 우린 죽고마오.》 

〈〈그렇지만 전…》 

《됐소, 더 말시키지 마오.》 

따니아야말로 아직 너무도 애어린 혁명의 싹이였다. 꾸바혁명이 
승리한 후에야 부모를 따라 아바나에 이주해왔었고 거기서 체를 만 
나 혁명적랑만으로 아름답게 채색된 흘륭한 인류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으니… 아직은 청춘시절의 한 나어린 녀주인공에 불파했다. 

이윽고 근거지에 도착한 체는 답사와 조사, 지형정찰부터 진행하 
였다. 한편 도처에 밀영들을 세우고 지하저장고며 땅굴을 파고 라 
지오송수신기도 설치하였다. 감시소도 만들고 전호를 파면서 요소 
요소에 통신원들을 배치하고 이 지역 주민들(인디안원주민들)이 사 
용하는 께츄아말도 배우는 등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휴식참마다 독보사업도 진행했다. 대원들이 제일 흥미있게 듣는 
것은 유격전에 대한 소책자들이였다. 그중에서도 조선에서 가져온 
에스빠냐어판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가 제일 인기있 
었다. 그것은 조선의 항일빨찌산들의 투쟁 이 야기가 그 투쟁의 간고 
성으로 보나 조국을 떠나 진행한 혁명이라는 그 특수한 투쟁내용과 
환경으로 보나 자기들이 시작한 유격투쟁파 너무도 류사한 점 이 많 
기 때문이 였다. 

2월 초에 체 와 그가 지 휘하는 부대 들 (싼체 스의 제1지 대 와 후안 빠 
불로의 제2지대로 이루어진)은 따따렌다지역에로 진출했다. 목 
적은 현지에서 농민부대들을 빨리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3월 에 들어 서 면서 뜻밖의 일 이 벌 어졌다. 후안 빠불로의 제 2지 대 
에서 두사람이 도주했던것이다. 한사람은 메히꼬인이였고 다른 
한사람은 볼리 비 아인이 였 다. ( 후에 판명 된바에 의하면 그중 한 
놈은 한때 비밀경찰과 륙군첩보부에서 일했다고 한다. ) 

도주자들은 까미르시 에 본부가 있는 정부군 제4사단을 찾아가 고 
발하였다. 이 리하여 볼리 비 아륙군과 정 보기 관들은 체 게 바라가 유 
격 대를 거 느리 고 라린아메 리 카의 오지 볼리 비 아에 나타났다는 첫 정 
보를 입수하게 되 였다. 


379 



도주자들은 공중으로 정부군을 밀영이 위치한 곳으로 안내해왔 
다. 적 들의 《씨 一47》, 《씨 _3》정 찰기 들이 공중에서 윙 _윙 
거리며 밀림을 살살이 훑기 시작했다. 

체 는 분했다. 아직 본격 적 인 유격 활동에 들어 갈 준비 가 되 여있지 
않았다. 필요한 준비를 완료할 시간은 아직 멀리 앞에 있었고 위험 
은 너무 가까이, 지척에 와있었다. 

3월 25일 체는 비상모임을 열고 자기의 유격대에 《볼리비아 
민족해방군》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로 결정하였다. 모임도중 망 
원초에서 정부군 한개 중대병력이 은밀히 기여든다는 련락이 왔다. 

《자 그럼 동무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왔는데 적당히 맞아줍 
시다. 모두 전두준비 !》 

돌격의 앞장엔 체가 서있었다. 아직 전투의 세례를 받은 대원들 
이 많지 않기때문이였다. 

《다들 나를 따르시오. 산개대형으로!…》 

체는 허리에 차고있던 베레따권총을 장탄해가지고 부관 로돌프가 
끌어다주는 공골말에 뛰여올랐다. 말이 갈개며 요란스레 투레질을 
했 으나 고삐 를 바싹 조이 며 숲가운데 로 난 오솔길 로 달려나갔다. 말 
을 타고 거드름을 부리려는것이 결코 아니 였다. 첫 전투였으므로 자 
기를 지켜보는 대원들에게 용기와 신심을 주는것이 무엇보다 필요 
했던것이다. 

《싼체스, 1지대는 우측릉선을 따라 전진할것.》 

〈〈알았습니다,사령관동지 !》 

《후안 빠불로, 제2지대는 좌측개울가로!》 

〈〈알았습니다.〉〉 

《내가 신호하면 일제히 교차사격으로 놈들을 소멸할것. 함화도 
잊지 마시오.》 

〈〈알았습니다.》 

체는 망원경으로 적정을 면밀히 살피며 전진해갔다. 적들은 소택 
지 로 기 여 들고있 었다. 볼리 비 아인 인 도주자가 놈들을 안내해오 
는것이 보였다. 체는 베레따권총을 들어 별로 겨누지도 않고 그자 
를 좌갈겼다. 


380 



야무진 총성!… 그것을 신호로 좌우의 릉선과 개울로 달려간 제 
1지대와 제2지대의 지휘관들인 싼체스와 후안 빠블로가 《일제 
사격 !》하고 우렁차게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급기 야 숲의 침침한 
고요를 깨뜨리며 요란한 몰사격 이 터졌다. 화약가스가 눈을 쓰리게 
하고 적 아간에 서로 되는대로, 마구잡이로 좌갈기는 총소리로 하여 
귀 가 먹 먹해 질 정 도였 다. 

소택지로 기여들던 적들이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어떤 놈 
들은 혼비백산하여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 
나 발악적으로 저항해나서는 놈들도 없지 않았다. 박격포탄이 날아 
왔다. 캥一캥 !一 하는 아츠러 운 소리 와 더 불어 삼발이 기 관총이 갑 
자기 밸통을 부리며 사납게 울부짖 었다. 적 들은 무장장비가 좋았다. 
스타스자동소총파 튼슨련발총이 성 급하게 뚜루룩거 리 는 소리 를 
새겨들으며 체는 입술을 악물었다. 

《싼체스! 협공하라!》 

그것은 꾸바의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에서 싸울 때 《몰로또브혼합 
사격》이 라는 멋 진 이 름으로 부르던 좌우교차사격 을 의 미하는것 
이였다. 누가 그때 무슨 연고로 몰로또브의 이름까지 꺼들며 교범 
에도 없는 그런 명칭을 달았던지?… 

싼체 스는 전투에 서 단련된 가장 흘륭한 돌격 대 장의 한사람이였 
다. 그가 대원들을 우측으로 기동시키며 집 중사격 을 가하자 적의 공 
격서렬은 완전히 홀어졌다. 악에 받친 적들은 화염방사기까지 쏘아 
대기 시작했다. 

체의 머리우에서 나무잎들이 휘파람소리같이 울부짖으며 불에 그 
슬려 배배 꼬이고있었다. 허나 체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 
것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모험이 며 실없는 객기 라는것 을 모르지 않 
았다. 그러나 싸움마당에서는 무모한 모험이나 객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고한 기상과 위풍이 대원들의 용 
기 에 불을 달아주는것이다. 

체는 능숙한 솜씨로 도주하는 적들을 쓸어눕혔다. 그러다가 불쑥 
말고삐 를 잠아당겼다. 바로 몇 걸음앞에서 굵은 나무기 둥을 끌어안 
고 정신없이 기도드리는 한 청년을 발견했던것이다. 그 젊은이는 적 
381 



아간에 벌어진 미친듯 한 총격전에 그만 정신이 쑥 나간듯 했다. 도 
시에서 온 부대내의 유일한 대학생이고 영어와 에스빠냐어, 프랑스 
어를 잘하는것으로 하여 라지오를 통한 적정청취와 통신임무를 맡 
고있는 볼리 비 아인청 년이 였다. 

체는 말에서 뛰여내렸다. 

《가만, 이게 쌀루스띠오 아닌가?》 

그러나 쌀루스띠오는 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전히 두눈을 흡뜬 
채 애처톱게 부르짖고있었다. 

《여러분들, 부탁합니다. 제발 조용해주시오, 예?! 이거 미칠 지 
경이요. 부탁합니다. 여러분, 조용해주시오!》 

하늘에 빌고있는것 인가? 적 들에게 간청 하고있는것 인가?… 체 
가 그의 덜미를 잡아일으켰다. 

《쌀루스띠오, 정 신차려 ! …》 

《아니, 여러분, 이러지 마시오. 이러지 마시오, 예?!… 내가 무 
슨 죄를 졌소오?…》 

이럴 때엔 귀쌈을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체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세광게 잠아흔들었다. 

《쌀루스띠오, 날 모르겠는가?… 정신차려 ! 눈을 똑바로 뜨구 앞 
을 보라. 놈들이 도망치구있지 않는가. 동무가 무서워 도망치는거 
야. 알겠는가?…》 

《예?!…〉〉비로소 그의 두눈이 바로서는듯 했다. 

〈〈아,사령관동지?!…〉〉 

《쌀루스띠오, 내 구령을 들을것. 총을 들구 날 따랏!一》 

체가 베레따권총을 쳐들며 앞으로 내달리자 쌀루스띠오도 손에 쥔 
가란드총을 쳐들며 뒤따라 허우적거렸다. 한동안 체의 뒤에서는 모 
지 름쓰듯 가르릉거 리는 숨소리만 계속되 였다. 

X 

전파는 상상밖의것이였다. 수십명의 적을 살상하였고 31명의 포 
로에 수많은 박격 포,반땅크총,미 국제바주카포와 포탄을 로획 


382 



하였다. 유격전에서 보물같은 튼슨련발총도 3정씩이나 있었다. 

체는 포로들을 모아놓고 해설선전사업을 한 다음 모두 제갈길을 
가라고 놓아주었다. 허나 적들은 이틀후 이에 대하여 완전히 외곡 
된 보도를 날리기 시작했다. 직승기가 하늘을 날며 주민지역과 밀 
림에 삐라를 뿌렸던것이다. 

쌀루스띠오가 체 게바라사령관에게 적들이 뿌린 삐라 한장을 가 
지 고왔다. 

《사령관동지, 이걸 좀 보십시오. 놈들이 완전한 헛소문을 퍼뜨 
리고있습니다.》 

체는 놀라지 않았다. 꾸바혁명때에도 이 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는 쌀루스띠오가 내미는 삐라를 받아들고 천천히 그리고 이상야 
릇한 미소를 그리며 읽기 시작했다. 

《까미리지역의 모든 주민들파 공무원들, 광산로동자들, 농민 
들 및 륙군장병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된 포고였는데 내용 
은 무장괴한들이 까미리숲속에 나타나 도로작업을 하던 정부군을 공 
격하여 13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부상당하여 포로된 40여명의 
병 사들을 무참히 총살했 다는것 , 이 에 격 분한 륙군제4사단의 장 
병들이 적기지를 공격하여 일부를 사살하였는바… 하는 극히 파장 
된 날조문이였다. 

체는 삐라를 내던지고 가죽탄띠를 어깨에 걸머지였다. 

《싼체 스, 대 오를 정 렬 시 키 시 오.》 

그는 즉시 숙영 지 를 옮기 기 로 하였다. 도처 에 비 밀 숙영지 를 꾸려 
놓고 대오를 늘이는 한편 전투정 치 훈련을 마친 다음 전투에 진입하 
려던 본래의 계획이 틀어졌으므로 빨리 행동해야 했다. 

이때 체는 모진 기침때문에 신고해야 했다. 지금껏 잊고있던 기 
관지천식이 또 발작하기 시작한것이다. 그것은 10년전 그가 《그 
란마》호를 타고 꾸바에 상륙하던 때 부터 아바나에 입 성하기 까지 오 
랜 세월 무서 운 고통을 주던 그 빌 어먹 을 천식이 였다. 게다가 여 기 
볼리비아는 안데스산줄기를 중심으로 해발 4천메터로부터 6천메터 
에 달하는 높은 산지대의 온대성기후와 동부 저지대의 열대성기후 
대로 기온차가 심한것으로 하여 체의 한생과 정녕 헤여지기 싫어하 


383 



는 천식이 또 발작했던것이다. 

기침이 터질 때마다 병든 숨결이 마치 심장을 밖으로 막 밀어내 
는듯 했다. 행군때에는 더더욱 숨이 차서 견딜수 없었다. 그는 걸 
어가면서 자주 후들거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비상용아드레날린 
을 찾군 하였다. 매일같이 치렬한 전투가 그칠새 없었다. 사태 
의 엄중성을 느낀 미국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던것이다. 

…이것은 체가 볼리비아의 깊은 밀림에서 시작한 라린아메리카민 
족해방혁명서사시의 제1장이였다. 


따니아는 례의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수도 라빠스의 임마누엘 
호텔로 들어갔다. 마침 기다리고있던 안내원이 그를 승강기로 5층 
의 어느 한 방으로 데리고갔다. 응접실파 침실을 따로 가지고있는 
그 방은 온통 가죽쏘파와 황금빛의 차잔들, 커피고뿌며 고급술병들 
이 가득찬 장식과 갖가지 전자설비 들, 록음기 며 텔레비 튼, 록화기 , 
전화기 와 무선기 까지 갖춘 좀 특이한 방이 였다. 

《오, 따마라 분께양 !〉〉보라색격 자직샤쯔를 입 은 키 가 훤 칠 
한 사나이가 곰방대를 문채 반갑게 소리쳤다. 《제때에 오셨군요.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왜 저 를 부르셨는지요? 전 몹시 바쁜 일 이 …》 

《우리한텐 더 중대한 일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라는 사람을 이 
제 당신께 소개할가 하는데 …》 

그는 볼리비아주재 미국대사관 무관 밀런대좌였다. 언제 보나 입 
에 독한 아바나려송연을 물고 연기와 함께 정차고 상냥한 미소도 아 
낌없이 내불면서 이 곳 수도 라빠스의 젊은 귀 부인들의 죄많은 마음 
을 사뭇 구겨 놓는것으로 유명한 호남아였다. 

따니아는 자리에 앉았다. 켄트표담배를 받아들고 그가 켜주는 라 
이타에 불까지 불인 다음 상긋 옷으며 물었다. 


384 



《체 게바라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같은데요?》 

《그럴겁니다. 피델 까스뜨로형제와 같이 공산주의꾸바를 이끄는 
삼두마차의 일원이 였으니 까요.》 

《어 머 ! 그렇 게 무서 운 공산주의두령 을 여 기 호텔 방으로, 저 
한테 끌어오실 작정이세요?》 

《예, 바라신다면》하고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커피와 코코아 
차, 샴팡술잔까지 한꺼번에 따니아앞으로 가져오며 조용히 계속했 
다. 〈〈분께양 아니, 미안합니다. 따마라부인… 난 시간이 많지 못 
합니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당장 워싱톤으로 날아 
가야 합니다. 그러 니 먼저 이것부터 보십시오.》 

그는 서둘러 타자를 친 여러 문건들을 내놓았다. 거기엔 까미리 
의 여러 마을들과 밀림에 뿌려진 삐라들, 그후 체의 유격대 
를 토벌하기 위한 전투들에 대해 기록한 전투상보들 그리고 도주자 
를 심문한 기록들도 있었다. 그것들전부를 일일이 보여주고나서 밀 
런대좌는 말했다. 

《우린 당신이 자기의 전문분야인 토착민들의 노래를 발굴하고 민 
속옷전시회를 여는것을 어느때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것을 체 
게 바라의 활동지 역 에서 벌리면 더 유익할수 있습니 다. 체 게바라유 
격대의 활동방식과 이동경로에 대한 아주 간단한 정보들을 수월히 
수집할수 있으니 까요. 어 떻 습니 까?》 

《천만에 !〉〉따니 아는 즉각 자리 를 차고 일 어났다. 〈〈나를 무 
슨 마타하리와 같은 녀자간첩으로 만들 생각이신것 같은데… 난 민 
속학연구사이지 그 누구의 끄나불이 아니란 말예요, 아시겠어요?》 
《예 , 알고있 습니 다.〉〉 밀 런대 좌도 자리 에 서 일 어 났다. 《그 
럼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지요. 부인, 이건 밀런이라는 미국대사관 
무관 일개 인의 부탁이 아닙 니다. 우리 미 국의 부탁 아니, 미 국 
의 요구라 할가…》 

《미국?… 이보세요, 대좌님. 난 그것이 미국대통령의 명령이라 
고 해 도 거 절 할거 예 요.》 

《아니, 그렇게는 안될 겁니다.〉〉이렇게 말한것은 따니아의 등 
뒤쪽에 나타난 키가 작달막하고 코수염을 기론 사나이였다. 

385 



〈〈지금 당신은 미국대통령의 부탁을 받고있다는것을 아셔야 합 
니 다. )) 

《예?! •••公 

그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저쪽침실에서 우리 말을 엿듣고있 
다가 조용히 미끄러 져온것 인가?… 

밀런대좌가 군사외교관답게 조용히 말했다. 

《부인, 이분은 미중앙정보국(씨 아이 에이) 볼리비아지부 책임 
자인 존 딜톤씨입니다. 어련하시겠지만… 이분과는 점잖게 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앉으시지요.》존이 쏘파를 가리켰다. 《난 따마라부인을 이 
미전부터 잘 알고있습니다. 남몰래 혼자 속으로 열렬히 사모 
하면서 말입니다.〉〉그는 로골적인 굶주린 눈빛으로 따니 아의 굴 
곡이 드러 나보이 는 몸매 를 재 빨리 훑어보며 말했다. 〈〈매 혹적 인 
따마라부인 , 이 자 방금 밀 런 대 좌도 말했지만 우린 시 간이 없 
습니 다. 그러 니 이 제 부터 제 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어 주시 기 바 
랍니 다.》 

그것은 웃음으로 교갑을 씌운 일종의 위협적인 마취제와도 같은 
것이 였다. 따니 아는 가슴이 조여 들고있 었지 만 무심 히 담배 를 빠는 
척 했다. 

《그럼 제 말을 잘 들어 주시 오.》 

튼 딜톤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는 앞에서 대사관 
무관인 밀런대좌가 하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그대로 반복하 
였다. 그러 나 그가 끝으로 힘주어 강조한것은 앞의것과 전혀 판 다 
른것 이 였 다. 

《부인, 우리 미국은 제2의 꾸바가 여기 라린아메리카의 고요한 
뒤동산에서 나오는것 을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 다. 당신도 잘 아시 다 
싶이 볼리비 아는 라린아메리카나라들가운데서도 제일 락후한 나 
라입니다. 거기 에다 무능한 바리 엔또스대통령파(당신도 그가 무 
능하기 그지 없다는것 을 잘 알것 입 니 다. ) 미 욱하고 권 력 욕에만 
눈이 어 두운 륙군사령 관 오반도장령 의 군대힘 만으로는 유능한 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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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전문가이며 꾸바혁명군의 제2부대사령관이였고 정치가인 체 
게바라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벌써 두달동안에 정부군은 열한번에 
걸친 전투에서 대참폐를 당했습니다. 우리 미국이 대준 현대적인 무 
기와 공군지원까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수천명의 사상자를 내 
였단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줄 압니까. 산간지대의 광부들파 농민 
들이 거기에 적극 합세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체 게바라가 곧 볼리 
비아를 단숨에 공산국가로, 제2의 꾸바로 만든다는것을 의미합 
니다. 그러 니 이 걸 용서할수가 있 겠습니 까? 아니 , 안됩 니 다. 절 대 
로!… 그래서 존슨대통령각하는 미국이 여기에 전면적으로 개입해 
나설것 을 명 령하였 습니 다.》 

따니아는 입을 오무리고 태연하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동그라미 
를 만들려 고 애쓰는 시 늉을 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가 나하고 무슨 상관…》 

《상관이 있습니다,부인. 그들이 꾸바의 산중에서 아바나시 
로 쳐들어갔던것처럼 마침내 여기 라빠스예까지 쳐들어오는 날엔 당 
신도 끝장이라는걸 아셔 야 합니다.》 

〈〈아니,나같은 녀자야 무슨…〉〉 

이 번에도 튼 딜톤은 그의 말을 매 정하게 잘라버 렸다. 

《아니, 그 무례한 놈들이 라빠스의 일등가는 미인을 그대로 둘 
리야 없지 않습니까. 제일선참으로 당신을 모욕하고 그다음 교수대 
에 매달수 있다는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어머!》 

따니아는 재빨리 그를 쏘아보고나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털이 
에 비벼꼈다. 

《당신은 그런 식 으로 날 위 협 하지 마세 요. 난 바리엔또스대 통령 
각하에게 당신에 대해 신소할수도 있어요.》 

《그건 좋을대 로. 바리엔또스대 통령 이 그 누구보다 먼저 우리 미 
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지금은 우리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이고있다 
는것쯤 지헤로운 당신이 모를리가 없을텐데?…》튼 딜톤은 여전히 
미중앙정보국의 지부책임자답게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매우 강경 
한 어조로 말을 이 었다. 〈〈따마라 분께 비떼 르부인, 거 듭 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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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우리의 제의에 동의해주시 
든가 아니면… 아니, 반대란 있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래일은 오 
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따니아는 눈길을 떨구었다. 여기서 결심해야만 했다. 

《좋아요. 당신의 제의에 내가 동의한것으로 여겨주세요.》 

〈〈잘 생각했습니다, 따마라부인.》 

그는 만족한듯 따니 아의 손을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치명적인 위험이 체의 유격대에 닥쳐오고있었다. 존 딜톤이 고 
백한데 의하면 바빠맞은 미국은 수십명의 군사교관들을 이미 볼리 
비 아정부군에 파견하였고 동시 에 미중앙정보국 요원들과 〈〈푸른 베 
레 모》 특수부대까지 비밀리에 까미리지역으로 출동시켰다고 한다. 
위험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유격대에 필요한 사람을 박아넣는다고 
했다. 이미 박아넣었는지도 모른다. 

따니 아는 가슴이 얼어드는것을 느꼈다. 아직 만단의 준비를 갖추 
지 못한채 전투에 진입한 체의 유격대가 미군특수부대와 직접 대결 
한다는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며 칠후 따니 아는 진록색 려 행 용포드승용차를 타고 까미 리 지 구로 
달려갔다. 존 딜톤이 호위원을 불여주겠다고 했지만 남들의 의심을 
살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그는 어느 한 마을에 승용차를 맡긴 다음 
말을 타고 체의 유격근거지 에 들어갔다. 


따니아의 보고를 받은 체는 즉시 지대장들인 싼체스와 후안 빠블 
로를 불러 조성된 정황을 말해주었다. 

〈〈조성된 정황은 매우 위험하오. 아직 준비도 채 갖추지 못했는 
데 미중앙정보국이 벌써 손을 쓰고있소. 물론 우린 미제를 가장 주 
되는 목표로 삼고 싸움을 시작했소.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우린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고 하신 김일성동지의 반제반 
미투쟁전략의 제1선에 서있는 투사들이요. 그러니 아무리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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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도 우린 기어이 조성된 난국을 뚫고나가야 하오.》 

체 는 제1지 대 와 2지 대 를 분산시켜 싸울것 을 결심했다. 광산지구 
에 서 로동자들로 제3지 대 를 조직하는 사업 은 당분간 미투지 않 
을수 없었다. 하여 싼체스의 1지대는 까미리의 밀림지대에서 활동 
하고 후안 빠불로의 제2지 대 는 그란데강을 건 너 동북부에 로 진 
출하기 로 했다. 체 자신 은 제2지 대 가 새 근거 지 에 발을 불일 때 
까지 그들파 같이 활동하기로 했다. 

따니아도 자기가 오던 길로 돌아가려면 한동안 체와 같이 행군해 
야만 했다. 출발에 앞서 따니 아는 자기 가방에 서 작은 지함을 하나 
꺼내여 체에게 내밀었다. 

〈〈사령 관동지 , 이 건 제 가 마련한 선물입 니 다.》 

체가 놀라와했다. 

그것은 소형야시경이였다. 따니아가 설명했다. 

《사령관동지의 이 크고 무거운 망원경은 낡은것입니다. 그건 적 
외선으로 야간에 대상물을 관찰할 때 물체를 밝게 보기는 하지만 치 
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합니다. 적외선이 모든 물체를 붉게 보이게 
하므로 적들이 같은 망원경을 가지면 이쪽에서 망원경을 보고있는 
사람의 위치를 제쩍 알아낼수 있기때문이랍니다.》 

〈〈그럼 이건?…〉〉 

《이건 최근 월남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에서 새로 제작했다는 
〈별빛〉이라는 야간망원경입 니다. 가볍고 또 자체로 빛을 내지 않 
기때문에 절대로 사용자가 로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맙소. )) 

행군은 낮 12시에 시작되였다. 체가 리용하던 찌프차는 땅굴 
속에 감추고 말은 싼체 스에 게 넘 겨주었다. 무성한 밀 림속을 헤쳐 가 
야 하기때 문 이 였 다. 린근의 목장 에 서 라마 ( 안데 스산줄기 에 서 사 
는 락타의 일종)를 기 르는 럽 석부리남자를 길잡이 로 내 세 웠다. 

〈〈밀림을 가로지론다구요?》하고 길잡이는 놀라와했다. 〈〈그 
건 쉽지 않수다. 짐 승도 거 기선 빠져 나가기 힘 들어하우다.〉〉 
《그래서 아바이한테 부탁하는겁니다. 사례도 하겠습니다.》 
《그런건 필요없수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밀림에서 영영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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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될수도 있지요.〉〉 

아닐세라 차츰 숲이 무성해지면서 행군대오는 그 농민이 큰칼을 
휘둘러 열어주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 였다. 그렇게 
아마조나스강상류인 그란데 강예 까지 강행 군으로 가야 했다. 

체의 지시로 남복을 한 따니아는 수건으로 얼굴을 둘둘 감아놓고 
커다란 그리고 머루알같이 새까만 두눈만 빠금히 내놓고있었다. 처 
음부터 말 한마디 없이 체의 옆에 바싹 불어서갔다. 시와 노래로만 
알고있던 랑만적 인 유격 대행군, 허 나 한나절도 채우지 못하고 따니 
아는 그만 녹초가 되 여 버리고말았다. 

한밤중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체는 나이론방수포를 펴더니 뿌 
죽하니 솟아오른 두 바위사이에 씌워놓고 큼직한 돌들로 네 귀를 고 
정시켰다. 비막이 천막을 만드는것 이 였다. 

《여기 들어가 자오.》 

《예?》따니아는 입을 딱 벌린채 다물념을 못했다 〈〈아니 사령 
관동지, 이런 밀림에서, 여기 맨 돌바닥우에서, 그것도 혼자… 자 
란 말씀입니까?》 

《이건 잠주머니요.》따니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는 무뚝뚝 
한 어조로 계속했다. 《우리 부대에 녀자란 한사람도 없으니 어쩌 
겠소. 혼자… 잘 자오.》 

체는 자기 배낭속에 들어있던 잠주머니를 던져주다싶이 하고 바 
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얼마후 잠주머 니속에 들어간 따니 아는 머 리속에 갈마드는 온갖 무 
서운 생각에 온밤 끝없이 뒤채기며 잠들지 못했다. 차츰 굵어진 비 
방울이 나이론방수포를 투닥투닥 때리더니 세찬 물줄기를 이루며 흘 
러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해뜰무렵엔 안개가 
자욱했다. 따니아는 잠주머니에서 깨여났다. 

신선한 아침, 지난밤 죽을것 같던 피로도 미칠듯 한 고독감도 말 
끔히 잊혀졌다. 그는 멀지 않은 개울가를 향해 탄력있는 걸음걸이 
로 춤추듯 내려갔다. 당장 겉옷을 벗어던지고 맑은 물에 머리를 잠 
그었다. 그때 묵직한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왔다. 이어 체의 숨결이 
느껴졌다. 따니아는 가르릉거리는 그 병든 숨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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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였다. 물에 적시고 비누칠까지 한 머리를 물우에 드리운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따니 아, 여기 물은 깨끗하오.〉〉체가 몸을 반쯤 돌리 고 하는 말 
이였다. 

《그래서요?〉〉따니아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산속에선 위생사업을 잘해야 하오. 온도차가 심해서 병에 걸리 
기 쉽소. 더우기 토질병에 걸리면 손쓰기 어렵소. 그러니 주저하지 
말구 제끽 목욕을 하오. 누구도 여기론 오지 않을거요.》 

그리고는 돌따서 가버리는것이 알렸다. 

저벅저벅하는 발자국소리… 어데선가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울 
려오더니 뚝 그쳤다. 체의 발자국소리에 숨을 죽인것이리라. 여전 
히 물우에 젖은 머리를 수그리고있던 따니아는 비로소 머리를 들고 
눈길을 돌렸다. 체가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한동 
안 잠잠해졌던 새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까의 음조를 그냥 그 
대로 반복하는 단조로운 울음소리 였다. 

따니아는 옷었다. 정다운 새들!… 그는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이 
상야릇한 충동에 겨 워 수영 복차림 으로 물에 뛰 여들었 다. 

목욕을 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데스산줄기의 험준한 고 
산지 대 에 서 흘러 내 린 물이 여 서 류달리 차고 시 원 했다. 머 리 도 그 물 
결처럼 맑아진다. 모래불에 나와서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젖은 머 
리 도 쥐 여 관다. 가슴도 맑게 , 넓게, 한껏 시 원하게 열린다. 

내 사랑 내 왜 그대를 알았던고 
내 왜 사랑을 약속했던고 
차라리 그대를 몰랐더라면 
내 심장 고동치 않았으리 
아 一 내 심장 고동치 않았으리 

그것은 어릴 때 어머 니 한테서 배운 로씨 야민요였다. 로씨 야태생 
인 어머니가 고향을 그릴 때마다 아련한 미소를 떠올리며 혹은 눈 
물을 머금고 부르던 노래… 하지만 지금 따니아가 부르는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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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미는 어머니의 눈물의 사연과 전혀 다른것인지도 모른다. 


무정한 세월은 흐르고흘러도 
내 심정 그리도 몰라주던 
그립던 그대 함께 거닐으니 
내 심장 기쁨의 노래 불러 

그는 멀지 않은 숲속에서 체의 련락병 루돌프가 수영복차림인 자 
기의 모습을 사진찍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 따니아로 
서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찍힌 그 사진이 이제 수 
십년세월이 흐른 뒤 온 세계의 신문과 잡지, 소책자들에 실리게 되 
리라는것을, 하여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저미 
는 아픔과 사랑의 정에 겨워 눈물짓게 되리라는것을!… 

따니아는 뒤로 젖힌 머리를 빗으로 빗으며 저 높은 산줄기너머에 
서 피같이 타는 아침 노을을 하염 없 이 바라보고있 었다. 

아一 내 심장 기쁨의 노래 불러 

돌연 노래소리가 끊어졌다. 따니아는 자기한테로 달려오며 손짓 
하고있는 루돌프를 얼없이 쳐 다보았다. 

《따니아, 적정이요. 빨리!…》 

적들은 체가 예상했던것보다 더 빨랐다. 미군수송기들까지 동원 
되였던것이다. 볼리비아정부군 제4사단과 제7사단, 미군특수전 
부대 〈〈푸른 베 레모》까지 동원되 여 오솔길을 봉쇄하고 중무기 들을 
배 치 하던중이 였다. 

군견들까지 날치였다. 따니아는 개들이 아츠럽게 울부짖는 소리 
에 저도 모르게 두손을 올려 귀를 틀어막았다. 

《따니 아, 겁 내지 마오.〉〉체가 소리 쳤다. 《놈들은 아직 우 
리 력량을 모르고있소. 이럴 때엔 놈들이 정신차릴새없이 두들겨폐 
야 하오. 자, 이걸 받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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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가 그에게 베레따권총을 던져주었다. 이어 그는 군용범포주머 
니에서 주먹만 한 수류탄을 꺼내여 뚜껑을 틀어서 뽑고 힘껏 내던 
졌다. 수류탄이 지직지직 소리를 내며 디굴디굴 굴러가자 군견들이 
어쩔바를 몰라 그 주위를 뱅뱅 돌아치는데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불 
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순시에 터진 개들의 비명소리도 불기둥속에 
잦아들고말았다.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밀림을 꿰지른 작은 
산간도로가 있었다. 화물차들과 대포들이 보였다. 사방에서 요 
란한 총성 이 울부짖는 가운데 수류탄들이 터졌다. 따니 아는 다른 자 
동총을 손에 쥐고 달려가는 체의 뒤만을 쫓았다. 어떻게 개울을 건 
너갔던지?… 갑자기 체가 따니아의 팔목을 틀어잠았다. 

〈〈이건 뭐요, 정신나가지 않았소? 권총을 거꾸로 쥐다니?…》 
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따니아가 쥔 권총을 빼앗더니 그것을 
바로 쥐고 쏘는 법을 배워주었다. 

《인젠 알겠지? 좌보오. 자, 총구를 우로 쳐들고… 왓!》 

《땅!》하는 총소리에 권총을 움켜쥐고있던 두손목이 대바람 공 
중으로 훌쩍 쳐들렸다. 그러나 벌써 두번째, 세번째만엔 그럭저럭 
어 방대고 쏠수 있었다. 무턱 대고 쏘아댔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 
았다. 체는 물론이고 그의 련락병인 루돌프도 치렬한 전투장에서 더 
이 상 그를 관심할새 가 없 었 다. 

《저 건 누구요?〉〉갑자기 체가 멎 어서더 니 전투장 한곳을 가리키 
며 소리쳤다. 《부상당하지 않았소?》 

앞쪽에서 루돌프가 머리를 돌리며 소리쳐 보고했다. 

《후안 빠블로지 대 장입 니 다. 적 의 45미 리 총탄에 맞았습니 다.》 
그제서야 따니아는 한쪽어깨죽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후안 빠 
블로를 알아보았다. 그는 코와 입으로 계속 피를 토하는데 그러면 
서도 스타스자동총을 내두르며〈〈이놈들아, 꾸바혁명군의 본때를 보 
아라 !》하고 부르짖고있 었 다. 

체 가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함께 딩굴었다. 

《후안, 어쩌 자구 이 러 는거 요? 동문 지 대장이요, 지 대장! …전 
투를 지휘해 야지 이게 뭐요?》 


393 



이 어 체는 루돌프와 따니 아더 러 그를 응급처 치 하라고 명 령하고 대 
원들을 향해 높이 웨쳤다. 

〈〈동무들, 날 따라 돌격앞으로 !》 

따니아는 창황중에도 돌격의 앞장에 나선 그를 불안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머 리 우에 서 나무가지 들이 중둥무이 로 부러 져 나가고 갈 
기갈기 찢기여진 잎새들이 재개비처럼 홀어져내렸다. 

따니아는 언제 전투가 끝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피범벅이 되여버 
린 제2지대장 후안 빠불로는 다행히 생명엔 위험이 없을듯 했다. 

체 가 달려와 그에 게 욕설 을 퍼 부었다. 

《그만 소리치오. 전투가 끝났는데 아직두 책책거리면서… 동무 
같은 지 대장이 어 데 있 소?》 

〈〈그럼 사령 관동진 왜 돌격할 때 맨 앞장에 나십 니 까?! …〉〉 

체는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대신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무서운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마침내 가까스로 숨을 돌리자 그는 거쉰 소 
리로 부르짖었다. 

《빠불로, 더는 날… 피롭히지 마오. 동무까지 그러문 난 어떻게 
하라는거요? 어쨌든 동무문젠 따로 봐야겠소, 알겠소?》 

〈〈예, 사령관동지.》 

이번엔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체는 획 몸을 돌려 가버렸다.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줄기침을 터 
치였다. 그 병든 소리가 따니아의 가슴을 갈가리 찢는듯 했다. 

부상병들도 있었다. 그들을 끌어내여 응급처치를 했다. 한쪽 
에선 전장을 수색하고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세차게 일기 
시작했 다. 

체 가 길 안내자를 소리 쳐 불렀다. 얼마후에 야 웅맹이 에 틀어박혀 있 
던 그를 루돌프가 발견하고 억지로 끌어왔다. 체가 그에게 다가갔 
다. 세찬 바람질에 농민이 들고있던 밀짚모자가 떨어져 땅바닥에 나 
딩굴었다. 체가 그것을 집 어 농민에 게 주면서 줄기 침때문에 한결 거 
쉬 여 진 소리 로 이 렇 게 말했다. 

《그새 수고가 많았습니다. 인젠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인젠 내 일이 다 끝났군요?…》 


394 



《예,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부탁할게 있습니다.》 

그는 말을 끊고 따니 아를 피끗 돌아보았다. 순간 따니아는 숨구 
멍이 막히는듯 했다. 언제 번개불이 번쩍했는지?… 머리우에서 따 
당!一 하는 천둥소리 가 터 진것은 그 순간이 였다. 사위 는 급격 히 어 
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분을 아이따마을까지 가게 도와주시오.》 

따니아는 체가 하는 말을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며칠전 길을 잃고 우리 숙영지에 들어왔는데 알고보니 민속학 
자이더 군요. 도와드려 야 할분인데 그냥 끌고다닐수도 없구…》 

〈〈아,도와야지요. 념려마시우.〉〉 

〈〈그럼 부탁합니다.〉〉 

체는 따니 아에게로 돌아섰다. 

《따마라 분께 비떼르선생, 괜히 우리를 만나 고생이 많았지요? 
인젠 도시로 돌아가십시오.》 

따니아는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안됐습니다.〉〉체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이제 빼투와 아르헨 
띠나예까지 가신다면서요?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은 없겠는지?…》 
그것 은 암호지 령 과 같은것이 였다. 빼 루와 아르헨띠 나에 조직 되 여 
있는 유격대의 지원망들을 찾아가서 약속된 자금과 물자들을 받아 
오라는… 체가 계속했다. 

《앞으로 다시 만날 때가 있을겁니다. 따마라 분께선생, 그럼 안 
녕히 가십시오.》 

〈〈저… 사령관동…〉〉 

어느새 체는 재빨리 손을 들어 군대식으로 인사하고 획 돌따서버 
렸다. 따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지불식간에 분한 마음이 눈물 
로 찔끔 솟았다. 그러나 체는 벌써 도로 한가운데로, 불타는 화물 
자동차쪽으로 걸 어가고있 었 다. 

《빨리 전장을 수색할것. 로드리 게 스! 동무가 지 휘하오 !》 

《알았습니다, 사령관동지 !》 

그 순간 돌파 모래도 쥐여뿌릴듯 한 강풍이 몰아쳐왔다. 변덕스 
395 



러운 고산지대날씨였다. 사위는 완전히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미처 숨돌릴새도 없이 급기야 핑장한 폭우가 쏟아져내려는 속에 무 
시로 섬광이 번쩍거렸다. 

따니아는 바지주머니속에 쓸어넣은 베레따권총을 한손으로 꽉 틀 
어쥔채 후들후들 몸을 떨고있었다. 어느덧 그의 얼굴은 온통 비물 
에 젖어들었다.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물파 가슴속에 쓸어드는 
짜릿한 눈물… 

《그럼 안녕히 …〉〉하고 따니아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인사말을 보 
냈다. 《사령관동지, 부디 앓지 마시고 몸성히 잘 싸워주세요.》 

그이상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을길 없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날 체는 자기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 근거지에 도착, 도중 정부군 한개 중대 병력파 미군〈푸른 
베레모〉부대의 소편대와 조우하여 전투진행. 적 30여명을 사살, 
47명 포로… 우리측에서는 전사자 3명, 후안 빠불로를 비롯하여 
7명이 부상, 로획한 무기 다량… 미국놈들과의 첫 전투이다. 라린 
아메리카에서의 반제반미투쟁의 첫 총성을 울렸다는 의미에서 그 의 
의 가 매우 크다고 본다. 

전투가 끝난 다음 따니아를 도시 로 돌려 보내 였다.》 


《오늘 우리는 여기 월남의 하노이상공에서 미국놈들과의 첫 공 
중전을 벌 렸다. 전과는 다음과 같다. …》 

월남에 파견된 공군제203군부대의 련대장 리주영은 이렇게 전투 
상보를 쓰고있었다. 그때 천막문을 들치고 제1대대장 양인길이 들 
어왔다. 

《련대장동지, 들어갈만 합니까.》 

396 



〈〈앉소.》 

양인길이 찾아온것은 최봉호의 문제때문이 였다. 그가 정찰임무를 
받고 출격하여 자의대로 공중전에 뛰여들었던것이다. 

리주영은 잠시 생각해보고나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잘한 일이였소. 내가 밑에서 보니 그는 대대장동무의 대 
렬기 김경우가 위급한 순간 그를 구원하러 뛰여 들었던거요.》 
〈〈알았습니다, 련대장동지.》 

《그럼 돌아가 전투총화를 짓소.》 




수희!… 이제야 비로소 당신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맞춤한 기 
회가 차례졌소. 지금까진 도무지 그럴 시간을 짜낼수가 없었소. 월 
남의 수도 하노이 에 도착하자마자 련달아 벌 어진 영 접행사들파 담 
화 그리고 요란스러운 연회… 정말 정신차릴새가 없었소. 

제일먼저 호지명주석이 당제1비서 려순동지와 정부수상 범문 
동동지를 대동하고 우리를 찾아왔소. 글쎄 우리가 도착했다는 보고 
를 받자 진행중이던 당정치국회의를 중단하고 즉시 우리 비행사들 
이 있는 곳으로 왔다는거요. 년세도 많은분이 글쎄 한번 자리에 앉 
을새도 없이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조선비행사들의 손 
부터 잡아보자고 하면서 우리들 매 사람파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게 
아니겠소. 그러면서 조선비행사들이 월남전쟁에서 한몫 단단히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너무도 소탈하고 진정어린 그 모습에 우린 
정말 감동되였소. 

곁 에 서 있던 부관이 뭐 라고 자꾸 귀팀 하는데 아마 중단된 당정 치 
국회 의에 대 해 상기 시 키 는것 같았소. 그래 도 그는 자리 를 뜨지 못 
하면서 여기 월남의 기후가 너무 더워서 조선비행사들이 고생이 많 
을거라고, 그게 걱정된다고 하는게 아니겠소. 

아닐세라 열대의 기후가 처음부터 우릴 지독하게도 괴롭히기 시 
397 



작했소. 아, 글쎄 오늘 아침만 해도 제일 서늘하다는 새벽기온 
이 29도였고 지금은 오전 10시반쯤 되는데 벌써 39도라오. 제 
일 무더운 오후 2시부터는 41도까지 오르는데 습도까지 높으니 조 
국에서야 이 런 무더 위 를 과연 상상이 나 할수 있겠소?… 

어 제 우린 풍친 군용차 여 러 대 에 나누어 타고 노이발이 라는 월 남 
의 국제비 행 장을 향해 달려갔소. 헌데 차를 타고가는 우리 동무들 
은 모두 파김 치처 럼 노그라졌댔소. 늘 정신육체적 으로 잘 준비되 여 
있다고 자랑하는 비행사들이 하루밤새 이 지경이 되였으니 이 끔찍 
한 무더위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래도 조건이 좋다는 하노이에서도 첫날밤엔 어쨌는지 아오? 부 
대 장인 박남훈대 좌가 시키 는대 로( 우리 대 좌동진 석달전 에 파견 
되 여왔소. 공병 부대 와 고사포선 발대동무들과 같이 말이 요. ) 모 
두가 침대머리맡에 물을 담은 세면기를 놓고 밤새껏 수건을 적셔 몸 
을 닦으며 자는둥마는둥 했는데 글쎄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만 세면 
기의 물이 뿌옇게 걸죽해진게 아니겠소. 

아차… 그만 이야기가 빗나갔구만. 호지명주석동지와 담화가 있 
은 다음 월남의 무원갑국방부장과 폰레따이공군사령관 그리고 월남 
인민군의 수많은 고위지휘관들이 참가한 환영행사와 연회가 련이어 
벌어졌소. 

참 인상깊은 연회였소. 연회장정면엔 어버이수령님파 호지명주석 
의 대형초상화가 모셔져있었는데 나는 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지. 
멀고먼 이역땅에서 우리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르니 왜서인지 불 
현듯 눈굽이 쩌릿쩌릿해나는게 아니겠소. 우릴 여기로 떠나보내실 
때 나를 따로 부르신 수령님께서 하시던 그 말씀… 그 말씀이 귀전 
에 쟁쟁히 울려오구… 

《최봉호, 그새 마음고생을 했다지?… 일없소, 다신 그런 일 
때문에 마음을 쓰지 말라구.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무한테서 다 들 
었소. 동무 안해의 문제도 다 해결됐다니 인젠 됐지?… 아니, 용 
감한 전투기 비 행사가 눈물은 왜?… 어린시 절 에 벌써 하늘의 복수자 
가 되겠다고 맹세를 한 최봉호가 아닌가. 가서 잘 싸우오. 그래서 
꼭 영웅이 되여 돌아오라구, 알겠지?!…》 


398 



수희, 어버이수령님의 그 말씀 눈에 흙이 들어간들 내 어찌 잊을 
수 있겠소. 

그때 누군가 나를 연회 탁으로 끌고들어가더군. 나는 그만 혼자 떨 
어져 서있는줄도 모르고있었거던. 

연회에서는 처음 무원갑국방부장이 공식적인 환영사를 하고는 끝 
으로 술잔을 들면서 이렇게 말하더구만. 

《동지들, 나는 호지명주석동지의 위임에 따라 조선인민의 
영명하신 수령 김일성원수동지께서 파견해주신 영웅적조선인민 
군 공군제203군부대의 비행사동무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의 수도 
하노이 를 잘 보위해 주십 시 오. 호지 명 동지 를 수반으로 하는 당과 정 
부지도부가 자리잡고있는 우리의 수도 하노이의 하늘에 미국놈비행 
기들이 다시는 날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대략 이런 내용의 연설이였소. 이어 우리 부대의 정치부장으로 온 
전규환동지가 답사를 했는데 … 그 내용이 또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 
켰 소. 

《국방부장동지 , 우리 는 월 남동지 들의 믿 음에 꼭 보답할것입 니 
다. 우리의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우리들을 떠나보내시면 
서 말씀하신것이 바로 하노이의 하늘을 우리 조국의 수도 평 양의 하 
늘로 여기고 월남의 당과 정부를 우리 혁명의 수뇌부처럼 여기며 목 
숨으로 보위하라는 당부이시였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받들고 육 
탄이 되여 싸우겠습니다. 언제 어느때나 여기 월남의 하늘,하 
노이의 하늘에 수령결사옹위의 비행운만 그리겠습니다!…》 

수희, 그가 수령결사옹위의 비행운만 그리겠다고 한것은 바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요. 한수 
회 , 당신을 당의 딸로 받아주시였을뿐아니 라 우리 의 사랑을 지 켜 주 
시고 수령님앞에 내세워주신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 
이 란 말이 요. 

전규환정치부장동지의 답사가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가 터져나 
왔소. 온 장내가 〈〈수령결사옹위의 비행운》이라는 말을 계속 되뇌 
이고있는데… 정말 가슴이 뿌듯해지더구만. 그래서 난 마음속으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우러르며 이렇게 부르짖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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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김정일동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사진을 찍으시며 영 
원한 하늘친구가 되라고 하신 전투기비행사 최봉호 지금 준엄한 반 
제반미투쟁의 최전연 월남에 와있습니다. 월남의 하늘, 하노이 
의 하늘에 수령결사옹위의 비행운만 그리라고 하신 말씀에 접하여 
지금 월남국방부장과 공군사령관을 위시한 고위장령들모두가 크 
나큰 감동에 겨워 눈굽이 젖어있는것을 보면서 그 말씀이야말로 저 
의 한생의 좌우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그 말씀을 지켜 한목숨 다 바쳐 싸 
우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하늘친구인 이 최봉 
호가 어떻 게 살며 싸우는가를 언제든 지켜보아주십시 오! …》 

수희, 당신도 잘 알지? 난 어릴 때 벌써 어 버 이수령 님께 하늘의 
복수자가 되 겠다고 맹세드렸던 사람이요. 그러 니 당신도 내가 그 
맹세를 지켜 어 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아주오. 

연회가 끝났을 때는 밤이 깊었소. 다음날 아침 우리는 비행장을 
향해 떠났고… 시간이 호를수록 찌는듯 한 볕에 죽을 지경이였소. 
온몸이 물주머 니 가 되 여 우리 의 전투기 지 로 될 노이발비 행 장까 
지 갔소. 

그 비행장은 일제가 폐망한 후 새로 건설하였는데 미국놈들이 전 
쟁 첫날에 벌써 여기 있던 비행기들과 철판을 깔아놓았던 활주로 등 
을 모두 박산냈다고 하오. 

여기서 우리가 탈 비행기들은 좀 락후한 《미크_15》기와 몇대 
되지 않는《미크_17》기뿐인데 미국놈들은 신형괜통기들이요. 놈 
들의 비행기는 우리 비행기보다 속도도 빠르고 무장장비로나 탐지 
기 술로 보나 훨 씬 우월하오. 

하지만… 우린 배심이 든든하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릴 떠나보 
내실 때 전술적방안까지 다 가르쳐 주셨거 던. 수령 님께선 미 국놈들 
의 비행기가 2만메터의 고공에서 로케트사격을 위주로 하는데 반 
하여 우리는 놈들을 낮추 끌어 내려야 한다고, 저공에선 우리가 회 
전반경도 놈들보다 작고 기동성이 높으므로 놈들을 얼마든지 제압 
할수 있다고 환히 가르쳐주셨소. 이 것은 세계의 그 어 느 나라에도 
없는 새로운 전법이요.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남보다 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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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더 빨리, 더 강력한 화력을 위주로 하지만 우린 더 낮게, 더 
잽싸게, 더 용감히 맞받아나가는 전술이거던. 

그럼 우리의 숙영지가 어떤 곳인지 좀 들어보오. 열대림속에 새 
로 꾸린 풀막이요. 선발대로 온 박남훈부대장이 월남사람들이 내준 
비 행장특별사동건물을 마다하고 8개의 풀막을 쳤다는거요. 

풀막이라는게 어떤것인지 당신은 아마 상상도 못할거요. 온통 참 
대로 엮은 기둥과 벽체 그리고 사람의 키와 맞먹는 높이로 매여놓 
은 다락, 그우에 펴놓은 군용모포… 왜 다락에서 자나하면 여기 열 
대림엔 수많은 뱀들이 욱실거리기때문이요. 특히 이채로운것은 지 
붕우에 덮어놓은 부채같이 넓은 나무잎사귀들이요. 신기하게도 그 
것들이 열대의 거센 폭우도 다 막아주고있소. 실로 아이들의 그림 
책 에서나 볼수 있는 동화적 인 풀막… 하지 만 이 제 부턴 우리 의 삶파 
투쟁의 보금자리요. 


9 


수희, 그새 우린 죽을 지경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소. 처음부터 적 
들이 우리를 노리고 달려들었거던. 글쎄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여 
기 노이발비 행 장이 다시 금 적 들의 맹 폭격 을 받았소. 우리 조선 인민 
군 공군부대가 도착했다는것을 놈들이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12시반 점심시간을 노리고 급습해왔거던. 박남훈대좌는 월남공 
군에 적 간첩 이 숨어있는게 분명 하다고 했소. 

부대장의 지시로 우리는 시간을 앞당겨 11시반에 식사를 하고 열 
대 림 속 풀막에 들어가 전술방안을 토론했기 때 문에 단 한사람도 상 
하지 않았소. 그대 신 가슴아프게 도 비 행 장을 관리하던 월 남보장련 
대의 군인들이 많이 희생되였소. 

폰레따이공군사령관이 즉시 승용차를 몰고 달려왔소. 알고보니 
그는 반프항전 시 기 호지명 의 군사부관이 였 다고 하오. 

그는 우리가 무사하다는것을 알고 후一 하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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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더구만. 이어 우리가 숙영을 한 풀막을 한참 돌아보았소. 

《폭격을 피한건 좋은 일이지만》하고 그는 말했소. 〈〈이런 풀 
막에서 숙영하게 했다는걸 우리 호할아버지나 당신네 총참모부에서 
알면 나를 두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 아닙니다.》하고 박남훈부대장이 말했소. 《우린 여기에 
휴양하러 온게 아니라 미국놈들과 싸우러 왔습니다. 그러 니 이 런 야 
영생활이 더 마땅합니다. 적들의 눈에도 띄우지 않구요. 그저 더 
위만 참아내면 됩니 다.》 

《그러 니 당신들은 단 한번도 적들의 폭격 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 
다는겁니까?》 

박남훈부대장이 옷으며 말하였소. 

〈〈사령관동지, 우린 미국놈들의 수법을 잘 압니다. 어제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바로 놈들의 정찰기가 날아왔댔습니다. 그걸 보 
면서 난 오늘 점심때쯤 폭격이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여기 비행장관 
리중대에도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 믿으려고 하지 않더 
군요. 지금까지 미국놈들자신이 반반히 쓸어버려 텅 비여있던 비행 
장이 아닌가고,조선비행사들이 온걸 그놈들이 어떻게 알수 있겠는 
가고 하면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좀 더 알아듣게 잘 말해줬어야 하는건데…》 

《음, 그렇댔군.… 그런데 대좌동무, 놈들이 점심시간에 폭격한 
다는것까지 어떻게 알수가 있었습니까? 더우기 금방 도착한 조선비 
행사들인데…》 

《우리 조선사람들이야 미국놈들파 한두해만 싸운것이 아니지 않 
습니까. 미국놈들이 언제 어떻게 정찰을 하고 어느 순간을 노리고 
폭격을 들이대는지 우린 잘 알고있습니 다. 그러 니 우리 가 놈들의 폭 
격때문에 죽는 일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겁니다.》 

이렇듯 자신있게 말하는 우리 박남훈부대장으로 말하면 지난 조 
국해방전쟁때 50년 여름부터 전투기비행사(전쟁 초기에는 《라_ 
9» 라는 비 행기 를 타다가 전쟁 말기 에야 《미크_15》기 를 탔다고 
하오. )로서 혼자 《비 一29》를 비롯한 적기 다섯대를 좌떨군 공 
화국영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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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폰레따이사령관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면 
서 감탄하였소. 

그런데 풀막에서도 우린 밤이 되면 정말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 
야만 하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열대림의 무더위… 모기들이 새까 
맣게 달려들지 않나 모기를 잡아먹으러 기여드는 도마뱀들(장지손 
가락만 한것으로부터 한뽐나마 되는것까지)이 다락에 펴놓은 군용 
모포우와 참대로 엮은 벽체로 막 기여다니지 않나… 진저리나는 잠 
자리요. 

그래도 역시 제일 견디기 힘든것은 무더위요. 우리 숙영지로부 
터 멀지 않은 곳에 개울이 하나 있긴 하지만 거긴 금지구역이요. 술 
한 벌레들과 해로운 미생물들때문에 거기선 손도 씻지 못하게 하오. 
그러니 이 더위를 어떻게 피해야 하겠소?… 한가지 방도는 우리가 여 
기 오기 전에 7개의 우물을 미리 파놓았더구만. 그 우물들가운데서 
먹는 우물 하나만 내놓고 나머지는 모두 목욕물처 럼 쓰는것이요. 

목욕물이라니 뭐 드레박으로 물을 퍼 서 몸에 끼얹는다는게 아니 
요. 교대로 드레박줄을 타고 우물밑바닥에까지 내려가 한동안 몸을 
적시고 식힌 다음 우로 올라온다는 말이요. 그것도 매 우물마다 조 
를 짜서 교대 로 내 려가고 올라오는 식으로… 그러 다가 새 벽 4시 반 
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격준비를 해야 하니 기껏해서 하루 
3시간쯤 자나마나… 그것도 참대로 엮어놓은 기둥과 벽체에 머 
리를 기대고 끄떡끄떡 조는것이 전부요. 그러니 련대장, 대대장들 
은 입만 벌리면 래일을 위 해 무조건 자야 한다는 소리 뿐이요. 자야 
한다, 자야 한다, 자야 한다!… 

참,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나 빼놓았구만. 우리 대대에 김경우라 
는 몸매도 곱구 얼굴모색도 녀자처럼 해사하게 생긴 비행사 한 동 
무가 있소. 그는 나와 같은 전후세대의 비행사요. 우리 부대 비행 
사들의 낱말로 전쟁참가자가 아닌 사람들을 전후세대라고 하는데 인 
제는 여기 월남전쟁에서도 전후세대의 비행사들이 거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있소. 

그 김경우동무가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였소. 은근히 나를 찾아 
와 느닷없이 이렇게 묻는게 아니겠소. 


403 



〈〈최동무, 안해가 그립지 않소?》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나는 우정 골살을 찌프렸으나 그는 또 녀자같이 새물거리는게 아 
니겠소. 

《월 그러오? 얼굴에 다 씌 여 있는데 … 안해와 늘 함께 있을수 있 
는 방법을 하나 대줄게 값을 물겠소?》 

〈〈값? 뭘루 물어야 하는데?…》 

《어 랍쇼 !》그가 반갑게 소리쳤소. 〈〈구미 가 동하면서두 아 
닌 보살이였 구만, 옹? !》 

그런데 그가 대준 방법이라는게 원지 아오?… 

〈〈안해와 계속 이야길 나누는거요. 밤이건 낮이건, 비행기를 타 
건 전투를 하건 늘 마음속으로 안해와 이야기를 나눠보라니까. 그 
러면 마음이 즐거워지거던. 고생스러워두 옷게 되구…》 

그건 내가 속에 품고있던 생각과 같은것 이였소. 그래서 옷으며 물 
었 소. 

《값을 얼마나 물면 되겠소?》 

《뭐 비싸진 않소. 그저 동무의 안해사진을 슬쩍 보여주면 돼.》 
그가 왜 당신의 사진 을 그리 도 보고싶 어했을것 같소?… 아니 , 그 
게 아니 요. 알고보니 그는 자기 안해 의 사진을 나에 게 보여줄 적 당 
한 구실이 필요했던거요. 그런데 그가 수첩갈피에 끼워넣고 다니던 
사진을 꺼내는데… 난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었소. 글쎄 녀자같이 
곱살하게 생긴 김경우 그 사람이 실팍진 몸에 눈이 억실억실하구 훤 
하게 잘 생기긴 했어두 좀 아름차보이는 그런 녀자의 사진을 내놓 
고 자랑하는게 아니겠소. 그것도 나더러 보라 하구선 계속 저 혼자 
들여다보면서 말이요. 

〈〈우리 집 사람이 요.》그가 정 차게 하는 말이 였소. 《맘씨 가 
얼마나 고운지 모르오. 어떤 땐 나를 친동생처럼 아니, 친자식 
처럼 사랑해주는데… 허어一 참! 쑥스럽구 거북할 때두 많소.》 
그는 계속 말하고 난 계속 당신 생각만 했소. 우리 수령님께서와 
친 애하는 김 정 일 동지 께 서 고이 지 켜 주시 고 품어 주신 우리 의 귀 
중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말이요! … 

404 



수희, 나의 첫 출격은 정찰비행 겸 시험비행이였소. 뒤좌석에 정 
찰수 2명을 태우고 적들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날아들어오며 어떤 
규모로 편대를 뭇고 어떤 수법으로 공격하는가를 정찰한단 말이요. 

그날 8대의 전투기로 첫 편대를 무었는데 대대장 양인길동지가 직 
접 편대를 지휘하였소. 그 편대에 당신도 잘 아는 비행사 리동수며 
장영문 그리고 녀자처럼 곱살한 김경우 등 날파람있는 비행사들 
이 망라되였소. 밑에서는 리주영련대장동지가 전투를 지휘하였고… 

참, 여 기서 한가지 설명할것은 박남훈부대장의 휘 하엔 참모장, 
기술부장, 지휘소장, 작전과장, 정찰참모, 통신참모 등 사단급 
의 지 휘일군들이 속해있소. 이 들이 주로 월 남공군파의 협 동작전문 
제나 정찰자료 등을 놓고 월남의 공군사령관, 국방부장과 토의하고 
는 그 결파를 련대에 알려주오. 그러면 련대장은 그 지령에 따라 땅 
우에서 직 접 전투를 지 휘하오. 

리주영련대장은 전쟁때 쏘련공군대학을 나오고 1952년 스물 
한살때에 《미크_15》기를 타고 첫 전투에 참가했던분이요. 깐지 
고 지혜톱고 결폐가 있고… 

그날 오후 우리 는 적 들이 40대 이상의 비 행기 로 하노이철교를 목 
표로 삼고 날아온다는 련락을 받았소. 하여 우린 즉시 대지를 박차 
고 날아올랐소. 

편대장인 양인길대대장은 수령님께서 주신 전술적방안대로 이 첫 
전투를 시작하였소. 먼저 놈들의 앞을 가로막고 40대이상의 적 
기들을 사방으로 홀어지게 한 다음 8대의 우리 비행기들이 모두 저 
공으로 높은 산을 빙 빙 감돌면서 숨어있다가 불의 에 돌입하는 전법 
이였소. 적비행기 석대가 단번에 불타버렸소. 나는 정찰임무를 받 
고있었으므로 그 모든것을 자세히 살펴볼수 있었소. 정말 통쾌하던 
그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나의 뒤좌석에 앉아있던 정찰수들은 그때 한시도 탐지기에서 눈 
을 떼지 않는 한편 송수화기를 통해 적들의 항공모함지휘소에서 보 



내오는 지시와 불타는 적기들에서 울부짖는 소리들을 모두 나에게 
말해주군 했소. 

〈〈〈솔로몬〉, 적기 여덟대가 우릴 기습공격해오고있다.〉〉 

〈〈격추하라. 〈아브라〉! 포위역습으로 전멸시키라.》 

《알았다, 〈솔로몬〉 !)) 

전투가 끝난 후 알게 된바이지만 놈들이 말하는 〈〈솔로몬〉〉이 란 
아득한 옛 날의 유명한 유태왕이 름으로서 항공모함지 휘 소를 의 미 
하는 암호이고 〈〈아브라〉〉는 솔로몬왕의 애첩의 이름으로서 출격한 
비 행 편대 를 의 미하는 암호라고 하오. 

수희, 생각해보오. 놈들이 여기서 얼마나 오만해졌으면 공중 
전에 고대 유태왕과 그의 애첩의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비위살을 떨 
어 대는거 겠소, 응?! … 하지만 단번에 석대씩 이 나 불타버리자 놈들 
은 아우성치기 시작했소. 

《〈솔로몬〉! 나 〈아브라〉 . 벌써 비행기 석대가 불타고있 
다. 놈들을 포위할수 없다. 적들의 전법이 천만뜻밖이다. 말도 난 
생 처음 듣는 소리들이다.》 

〈〈토씨야말인가?》 

《아니다. 로씨야말도 중국말도 아니다.》 

《알았다. 〈아브라〉, 그건 공산북조선 비행기들이다. 공산북 
조선 따벌 들이 나타났다. 조심하라 ! …》 

《적 들이 또 기 습해 온다. 〈솔로몬〉, 적 들은 전장에서 리탈 
하여 밑 에 숨어있다가 불의 에 돌격해온다!》 

《화력 을 집 중하라, 포위하라 ! …》 

그것은 그저 단순한 돌격 이 아니라 폭발적 인 돌입 이였소. 대대장 
양인길동지를 비롯하여 리동수, 리도익 등이 산을 감돌면서 놈들의 
시 야에서 벗 어 났다가는 별 안간 적 기 들을 맞받아 맹 렬히 돌입 한단 말 
이요. 그러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오, 한순간에!… 왜냐하면 
그 다음순간엔 충돌이거 던. 맞받아 날아가던 두 비 행기가 삽시 에 불 
덩이가 되여버리지. 그것을 아는 이상 제아무리 신경이 든든한 놈 
이 라 할지라도 그 마지막 한순간을 끝내 견디 여내지 못하오. 죽음 
에 서 벗 어나보려 고 기 수를 쳐 드는데 바로 그 순간을 놓치 지 않고 우 
406 



린 그놈의 배때기에 기관포집중사격을 퍼붓는단 말이요. 바로 이것 
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 전법이요. 적을 고공 
에서 저공으로 끌어내려 재빨리 기동하다가 급소를 치는 기묘한 전 
법 말이 요. 

나는 전장에서 좀 떨어진 뒤쪽공간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있었소. 
우린 정찰기 여서 적 함재기들이 증원되 여 날아오는가를 살피고 적들 
의 전술적특징도 연구해야 하거던.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더 
이상 구경군으로만 있을수 없더구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어디 
견딜수 있어야지. 아, 글쎄 적기들을 뻔히 보면서 기관포 한발 
도 좌갈기지 못하고 구경만 한다는것이 어디 말이 되는 소리요?… 

마침 그때 김경우동무(그는 양인길대대장의 대렬기였소.)의 
꽁무니에 바싹 달라불는 적기를 발견했소. 나는 무작정 그놈을 맞 
받아 곧추 돌입했소. 그러자 위험을 느낀 그놈이 날째게 방향을 바 
꾸는게 아니겠소. 

지상에서 리주영 련대장이 무선전화기로 명령 했소. 

《108번, 리 탈하라. 리 탈하라.》 

뒤좌석 의 정 찰수도 아부재 기 를 치더구만. 

〈〈상위동지, 어쩔려구 그럽니까? 우린 정찰임무만 받지 않았습니까.〉〉 

결국 나는 허탕을 치고말았지. 허나 우리 편대의 전과는 실로 대 
단한것 이 였소. 

두번째로 우리는 산을 감돌면서 놈들의 약을 올려 바싹 따라오도 
록 하고는 집중포화를 퍼부었소. 단번에 적기 4대가 박살나고 2대 
는 격상되였소. 적들은 반시간도 못되여 저들의 비행기 9대가 추 
락하자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소. 

그날 우린 비행기발통 하나 긁힌데없이 돌아왔소. 돌아와서는 어 
떻게 하는지 아오? 미국놈들의 있을수 있는 집중공습을 피하기 위 
해 비행기들을 모두 숲속에 숨겨놓소. 그 큰 비행기들을 어떻게 숲 
속에 숨기는지 의문스럽지?… 모든 일은 알고보면 아주 단순한 법 
이 요. 대형직승기로 우리 전투기 들을 하나하나 물어 다 숲속에 감춘 
단 말이요. 그러면 거기 열대림에서 월남인민군의 보장련대군인들 
이 비행기도 정비하고 탄약도 보충하오. 


407 



그새 우리는 전투총화를 짓고 정치학습과 오락회도 벌리지. 시도 
읊고 노래도 부르고… 

다행히 양인길대대장은 내가 자의적으로 전투장에 뛰여든것을 한 
번만 용서한다고 했소. 적기가 김경우동무의 꼬리를 물려다가 내가 
때마침 정면으로 돌입했기에 질겁하여 도망치는것을 직접 봤기때문 
이지. 헌데 김경우동문 되게 노해있는게 아니겠소. 

《난 주도기를 엄호하는 대렬기요. 그러니 적기를 떨굴 기회가 적 
다는걸 동무도 잘 알겠는데… 그게 뭐요? 오늘 마침 뒤따르는 적기 
를 좌떨구려고 잔뜩 기회를 노렸는데 그만 동무가… 동문 날 도와 
준다는게 오히려 훼방을 놀았단 말이요.》 

나는 그만 입이 얼어붙고말았소. 물론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뒤 
따르는 적기를 좌떨굴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있다는걸 모르진 않지 
만 정작 그가 골을 내니 얼마나 딱하던지… 

그때 마침 양인길대대장이 우리한테로 오더구만. 모든 비행사들 
이 그러하듯 그는 체육가형으로서 몸집 이 다부지고 통도 잘하는 락 
천가요. 특히 녀성들파 잘 섭쓸리고 녀자들 역시 그에게 반해 졸를 
따라다닌다 해서 활량이로 소문이 난 사람이지. 

〈〈아, 최봉호.》하고 그가 옷으며 다가와 나의 어깨를 툭툭 쳐 
주더구만. 《오늘 나의 애인을 구원해주어 정말 고맙소.》 
《예?…》 

나는 당황하여 뒤쪽의 김경우만 흘끔흘끔 돌아보았소. 그때 김경 
우의 얼굴은 피기까지 가셔진듯 해쪽해지더구만. 하지만 양인길대 
대장은 김경우의 심각한 표정같은건 아랑곳 않고 자기 애인의 팔을 
척 끼더니 이렇게 소리치는게 아니겠소. 

〈〈아, 내 사랑 대렬기, 둘도 없는 나의 비둘기여 ! 우리 가서 파 
이내플이나 쪼아먹읍시다. 저기서 술한 월남녀인들이 우릴 기다리 
고있는게 보이지 않소?…》 

〈〈아 아니, 대대장동지 !一〉〉 

김경우동문 줄곧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그에게 끌려가는데 아이들 
같 이 버 둥거 리더구만. 

수희, 이것이 나의 첫 출격에 대한 이야기요. 하지만 우리들의 출 
408 



격엔 빛나는 전과와 자랑만 있는게 아니요. 피눈물을 씹어삼키지 않 
으면 안되는 그런 모진 아픔도 있소. 

지금 또 출격명령이 내리고있소. 아마 오늘의 전투는 어제보다 더 
가렬할것이요. … 


10 


강렬한 투광등의 불빛이 밤의 어둠을 힘껏 밀어내며 패궁정의 보 
천보전투승리기 념 탑건설장을 환히 밝히 였다. 탑신에서 는 용접 의 불 
보라속에서 작은 불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곳곳에 타오른 모 
닥불들은 그와 경쟁하듯 기를 쓰고 불찌들을 흘날렸다. 

그 한복판을 내각제1부수상 김일이 걸어가고있었다. 그의 뒤 
로는 지도검열소조의 책임자인 방만길과 총설계가 리웅산, 건설사 
업소 지배인, 조각창작단 리한윤단장 등이 줄레줄레 그림자처 럼 묻 
어다니였다. 특히 지도검열책임자 방만길은 두름한 문건철을 끼고 
김일의 옆에 바싹 붙어서 따라갔다. 그것도 노상 머리를 조아리고 
갑신거리는것이 마치 황제행차에 따라나선 충실한 시종을 형상한 어 
느 력사물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한듯 했다. 

돌연 김일이 걸음을 멈추었다. 무뚝뚝해보이던 얼굴에 밝은 미소 
를 떠올리며 가슴후련하게 숨을 들이쉬였다. 마치 건설장의 휘황한 
불빛파 따스한 봄을 한껏 들여마시는듯실었다. 

《좋아, 이제야 37년도 보천보의 밤과 같아졌소. 온통 불천 
지 이구, 응?! …》 

《예, 그렇습니다.》 하고 방만길이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제 
쩍 발라맞추었다. 〈〈내각 제 1부수상동지께서 오시자마자 쾌불이 황 
황 타오르구 명절기분이 되였습니다.〉〉 

김일이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오니까 쾌불이 타올랐다구? 허… 이 동무 아직 정신이 똑 
똑치 못하군, 영?! … 동무, 똑똑히 알아두라구. 보천보의 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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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우리 수령님께서 오래전 1937년도에 벌써 어둡던 이 나라를 밝 
히 며 환히 지 펴 주신 거 야 ! 아직 그것두 모르는가?…》 

《예, 예.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제1부수상동지, 제가그만실언을…》 

방만길이 머 리를 떨구었다. 그러 나 그는 결코 그러한 몇 마디 질 
책 에 주눅이 들 사람이 아니 였다. 어느새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김일을 바투 따라섰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 없는 그였다. 그 
는 발을 재게 놀리며 숨찬 소리로 이렇게 계속하였다. 

《제가 오늘 정말 옳은 지적을 받았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그 
동안 제가 머저리구실을 해왔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자책되는바가 많습니다. 상부의 말이면 다 옳은것으로 여기면서 그 
대로 받아외우던 저였습니다. 그러던 나머지 그만에야… 꼭두각시 
나 같은 그런 놈이 되고말았습니다.》 

김일이 몸을 홱 돌렸다. 

《허 … 우화속의 박쥐와 같군.》 

《예?!…》 

김일은 더 말하지 않고 돌따섰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검기만 했다. 마침내 투광등의 불빛이 사람들 
모두의 자태를 환히 드러내는 둔덕에서 김일이 또 멎어섰다. 투광등 
의 불빛속에 서있는 그의 두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편뜩인듯 했다. 

〈〈아무래도 내 한마디 해야겠소.〉〉김일이 하는 말이였다. 〈〈이 
건 언제인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들려준 박쥐에 대한 우화인 
데 … 잘 새겨듣소, 옹? !》 

웬일인지 항일혁명투사이며 내각제1부수상인 김일에게서 뜻밖 
에도 우화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자못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는 표 
정이 였다. 슬그머 니 손으로 입 을 가리 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 
것을 눈치차린 김일이 조금어성을 높였다. 

〈〈박쥐에 대한 우화인데 말이요, 응?!…》하고 그는 웃음을 
전제로 한 유모아를 마치 그 누구를 추궁하듯 엄하게 말했다. 《글 
쎄 박쥐란 놈이 어느날 새들과 쥐들의 싸움판에 끼여들었다구 하오. 
그 싸움에서 먼저 새들이 우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그놈은 날개를 퍼 
덕거리면서 난 새다! 당신들의 편, 새편이다, 내 날개를 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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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떠들어대였소. 그다음 형세가 달라져 들쥐들이 우세를 보이자… 
이번엔 쥐들한테 날아가 다들 나를 보시오, 당신들과 꼭같은 내 몸 
둥아리를 좀 보시오, 난 쥐요, 박쥐란 말이요! 라고 했다는거요.》 
사람들은 옷지 않았다. 아니, 옷지 못했다. 그의 눈빛이 그리도 
랭혹하고 말투까지 몰풍스러웠기때문이였다. 허나 김일이 지금 무 
엇때문에 격해졌는지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돌연 김일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불같이 지지며 따져물었다. 

〈〈어떻소, 아주 우스운 얘기지?》 

이번에도 역시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금시 벼락불이라 
도 떨어질것 같아 어깨를 옴츠릴 지경이 였다. 오직 방만길만이 때 
를 놓치지 않고 아주 태연히, 스스럼없이 웃기 시작했다. 

〈〈정말 우스운 얘기입니다. 예, 아주 교훈적인…〉〉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김일이 그에게 무섭게 눈총을 쏘았던 
것 이다. 일순 방만길의 입 에서 새 여 나오던 가벼 운 웃음이 증기발처 
럼 사라져버렸다. 

《우리 혁명대오엔》하고 김일은 방만길을 면바로 쏘아보며 마디 
마디를 도끼로 찍듯이 말했다. 〈〈우화속의 박쥐와 같은 그런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어. 동무, 똑바루 새겨들으라. 사람은 언제 어느때 
든지 제정신을 가지 구 살아야 해. 정세 에 따라 간에 불었다 싶에 붙 
었다 하면서 통간질을 일삼는 그런자들은 례외없이 가장 어 려 울 때 
배신의 길로 굴러떨어지는 법 이 야. 이 건 바로 우리의 영명한 
지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야!…》 

김일은 손을 홱 내것고나서 씨엉씨엉 건설장 한가운데로 걸어갔 
다. 할말은 다 했고 들을 말은 없기때문이였다. 


1 1 


사방에서 착공기 들이 〈〈따라다다!一〉〉하고 귀가 멜듯 요란한 소 
리를 내지르며 화강석대돌에 구멍을 뚫고있었다. 기중기차가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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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다란 대돌을 물고 허공을 가르는가 하면 도처 에서 용접기가 웅 
웅거리며 분수처럼 불꽃을 홑날리고있다. 째는듯 한 호각소리, 화 
물자동차들의 경적소리, 북소리, 나팔소리… 

김일이 걸음을 멈추고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는 사람들, 리웅산과 
조각창작단의 리한윤단장과 오대형 그리고 허우대 큰 건설사업소지 
배인 등을 피끗 돌아보았다. 

《동문 건설사업소 지 배 인이라구 했지 ?)) 

《예, 그렇습니다.〉〉 

《헌데 무슨 황제행차라구 내 뒤꽁무니만 계속 묻어다니는거요? 
영?!… 어서 가서 제 할일이나 하오, 필요할 땐 부르지 않으리.》 

〈〈알았습니다, 1부수상동지!》 

건설사업소 지배인이 껑충 뛰듯이 물러갔다. 무던히도 기삐하는 
듯 했다. 그럴만도 했다. 그는 왝 웨 소리치 며 지 휘하는 일 군이 
지 말 잘하는 해설강사는 아닌것이다. 

김일은 옆에 보이는 천막을 가리키며 리웅산과 조각가들에게 물 
었 다. 

《여 긴 뭐 요? 제 법 울바자까지 치구… 무슨 보물창고요?》 

리웅산이 머밋거리는데 리한윤단장이 한걸음 쑥 나서며 말했다. 

〈〈1부수상동지, 우리 조각창작단의 녀성조각가 라정아동무가 여기 
서 일하고있습니다.》 

《녀 성조각가?…》 

〈〈예, 우리 나라의 유일 한 녀 성 조각가입 니 다. )) 

〈〈그래?!…〉〉 

김 일은 천막안으로 들어 갔다. 리 웅산과 리한윤단장도 그뒤 를 따 
랐다. 그런데 천막안엔 그들이 만나려 한 라정아가 없었다. 대 
신 제일 젊은 조각가 로경호가 통나무로 만든 단우에 무슨 종이장 
들을 가득 펴 놓고 앉아 울고있 었다. 김 일제1부수상이 들어 서는 
것 을 보자 벌떡 일 어 나는통에 종이장들이 바닥에 홑어져 내 렸다. 

《이건 뭐요?〉〉김일이 물었다. 《동무도 조각가요?》 

리한윤단장이 기 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설명했다. 

《우리 창작단에서 제일 재간있는 동무들중의 한사람입니다. 재 
412 



작년 에 미 술대 학을 나왔지 만 보천보전투승리기 념 탑의 중심 주인 
공형상을 말았습니다.〉〉 

김일이 리웅산을 돌아보았다. 《그게 정말이요?〉〉하는듯 한 눈 
빛 이였다. 

〈〈예, 뛰여난 재간을 가진 동무입니다.〉〉 

《그_래? 헌데 재간이 뛰여나다는 사람이 눈물은 왜 짜면서 그 
래, 영?!…》 

김 일은 방안에 세워있는 부녀 회원이며 소년을 형상한 조각들 그 
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장들까지 한눈에 스쳐보고나서 다시 엄하 
게 물었다.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받은게 아닌가?》 

〈〈아닙니다, 1부수상동지.》로경호가 제때에 허리를 쭉 펴며 젠 말 
씨로 대답했다. 《이건… 우리 라정아동지한테 온 편지들입니다.》 
《라정아?… 헌데 그는 어데 갔소?》 

《저… 여기서 울다가…》 

《울다니, 왜?!…》 

로경호는 인차 대답을 못하고 입술만 세게 깨물었다. 부지불식간 
에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씹어삼키고있는듯 했다. 잠시후 
그는 팔소매로 눈굽을 닦고 허리를 굽히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장 
들을 집 어 통나무탁우에 널려있는 편지 들속에 끼워넣 었다. 

《1부수상동지.〉〉마침내 로경호는 하얀 봉투 하나를 손에 들며 
말했다. 〈〈우리 라정아동진 지금까지 수백, 수천통의 편지를 써서 
전국 각지 에 띄워보내군 하였습니다. 저도 좀 봤는데 …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자기와 같이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한 옛 스승 
이 면서 또 전우인 한 인 민군군관을 찾기 위해 몹시 애 썼습니 다. 그 
러다가 오늘 이 편지를 받고 첨엔 몹시 기삐하더니 그만… 편지를 
읽 다말고 울면서 뛰쳐 나갔습니 다.〉〉 

일부인이 진하게 찍혀져있는 새 봉투였다. 《헤산시 보천보전투 
승리 기 념 탑건설전투장 라정 아동지앞》이 라고 굵게 쓴 글발이 먼 
저 사람들의 눈길을 잠아끌었다. 

김일이 그 봉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413 



〈〈강원도 원산시 영예군인공장 당위원회?…》그는 봉투를 읽다말고 
리웅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가 이 편지를 읽어봐도 될가?…》 

그것을 왜 리웅산에게 묻는것인가?… 리웅산은 기여들어가는 소 
리로 《예.》하고대답했다. 

김일은 편지의 글줄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듯 했다. 종이장 
을 눈앞에 바싹 가져다 대보고는 한숨을 내긋고 리웅산에게 그것을 
넘 겨 주었다. 

리웅산은 편지를 받아들자 손바닥으로 정히 펴고 천천히 읽기 시 
작하였다. 읽어내려갈수록 그는 점점 더 숨이 차했고 목소리마저 가 
늘어 지 고 죽어 갔다. 

〈〈…미안합니다. 라정아동지, 우린 사실 림근우대위동지와 제일 
가까이 지낸 사람들로서 라정아동지가 우릴 찾기를 정말 잘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자니… 마음이 피롭습니다. 

라동지, 우리가 림근우대위동지를 마지막으로 만난것은 1951년 
11월이 였습니 다. 그는 중요한 전투임 무를 받고 간다면서 우리 와 작 
별의 인사를 나누었는데 어데로 무슨 임무를 받고 가는가에 대해선 
단 한마디 도 말하지 않았습니 다. 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는 
최 고사령 부련락군관으로서 지 리 산빨찌산 리현상대 장과의 끊어 진 련 
계 를 회 복하기 위해 떠나갔다고 합니 다. 두번째 인가 세번째 로 파견 
되 여간 련락군관이였습니다. 그러나 적구종심 깊은 지리산빨찌산에 
파견되 여갔던 련 락군관들은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습니 다. 

우리가 아는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두루 수소문해봤지만 그이 
상 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라정 아동지 ! 동지 가 10여 년세 월 을 하루같이 소식 을 모르는 그를 
안타까이 찾고있었다는데 그토록 바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 
여 정말 미 안합니다. •_•〉》 

리웅산은 그이상 더 읽지 못했다. 별안간 모진 아픔에 숨이 막히 
고 눈시울이 흠칫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김일도 더 묻지 않았다. 다시 방안의 조각상 두개를 유심히 살펴 
414 



보고나서 천막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에서 또 무엇인가 생각난듯 멈 
춰섰다. 잠시후 그는 뒤따르는 리웅산과 리한윤단장, 조각가들 
인 오대형, 로경호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돌아보고나서 조용히 말 
했 다. 

《어서 가서 찾아보오. 어데 가서 울고있지나 않는지…》 


라정아는 대기념비의 대돌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머리우의 
탑신에서 용접의 불찌들이 휘뿌려지고있건만 그것도 알지 못했다. 
오고가는 자동차들이 전조등빛을 휘딱거리며 피롭게 헐떡이고있 
는 그를 언듯언듯 비쳐주군 했다. 얼핏 보기에도 그가 오늘따라 더 
심하게, 피톱게 기침을 릎고있는것이 알렸다. 

《정 아동무, 여기 있는걸 온데 돌아가며 찾았구만.》리웅산이 급 
히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병이 또 도전게 아니요?!…》 
《아, 아니예 요.》 

다시 터 져나오는 모진 기 침 소리 … 

리웅산이 그를 힘껏 다그어 안았다. 

《안되겠소. 이러다간… 빨리 병원으로 갑시다.》 

《아니, 제발… 절 좀 가만 놔두세요. 부탁해요.》 

그러나 리웅산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먼 어둠속에서 라정 아를 
찾는 웨 침소리 가 났다. 반대켠 에서 리한윤단장이 소리치 는것 이 
였 다. 

〈〈단장동…〉〉 

리웅산이 그를 부르러 했으나 어느새 라정아가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부탁해요. 제발… 떠들지 말아주세요. 그리구 내게 잠간만 기 
회를 주세요. 여기서… 나의 꼬마와 이야길 좀 하구 그다음…》 
《이 야기 틀?》 

라정아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고있었다. 자기의 조각품을 거 
쳐 저 시꺼먼 밤하늘에 솟아오른 탑신꼭대기를 바라보는 그의 두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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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용접의 불광에 따라 빨갛게도 파랗게도 
그리고 하얗게도 번득이는 맑은 눈물… 

《야 ! 높기 두 하네 . …》 

여전히 탑신꼭대기를 올려다보는 흐느낌소리. 

《정아동무!…》 

가까와오는 리 한윤의 웨 침 소리 … 그러 나 라정 아는 귀 가 먹 은지 오 
랬다. 커다란 두눈만이 물기를 머금고 번뜩이고있었다. 

라정아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안깐힘을 쓰며 대돌우에 올라서려 
고 했다. 리 웅산이 다시 금 그를 껴안다싶 이 하면서 단우에 올려 세 
웠 다. 

〈〈아, 이제야 올라섰구나.〉〉 여전히 라정아는 혼자소리처럼 
속삭이 며 소리없 이 옷었다. 〈〈아, 나의 꼬마 ! 넌 나보담두 훨씬 더 
크지? 그렇지?!》 

라정아는 손을 올려 대우에 조립해놓은(용접으로) 소년과 자 
기 의 키 를 대보았다. 갑자기 확 스치여 간 밝은 전조등빛 에 그 녀 
자의 피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이 흑백색사진처럼 확一 찍히 
였 다. 

〈〈나의 꼬마…》 

라정 아가 또 소끈거렸다. 리웅산에게는 어쩐지 그가 최후의 힘을 
가다듬고있는것처 럼 느껴 졌다. 숨이 차서 헐썩이면서 도 라정 아 
는 자기가 하려는 중요한 말을 마저 잇지 못해 모지름쓰는것이 알 
렸 다. 

《내 사랑하는 꼬마, 그 어린 나이 에 수령 님 을 따라 천리, 만리 
얼마나 먼길을 헤쳐온것일가?… 나도 너처럼 가고 또 가리라고 오 
래전에 맹세했었지. 내 한생의 꿈을 안고 기어이 가리라고!…》 

그리고는… 말이 없었다. 이어 숨소리도 끊어진듯 했다. 다음순 
간 라정아는 리웅산의 팔우에 머리를 무겁게 떨구었다. 

〈〈정아, 정아동무!…〉〉 

리 웅산이 목터 지 게 웨 쳤건만 라정 아는 이 미 혼수상태 에 빠져 버린 
뒤였다. 

얼마후 대기념비건설전투장으로 도인민병원의 구급차가 경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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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높이 들이닥쳤다. 온 건설장이 일손을 놓고 구급차에 실리우는 
라정아를 지켜보았다. 구급차는 곧 시인민병원으로 바람같이 달려 
갔 다. 


12 


1952년 2월,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리. 

방독복을 입고 머리엔 방독면을 쓴 외국인들이 전화가 휩쓸고있 
는 이 나라의 눈덮인 산과 들을 헤매고있었다. 벌써 근 한달째 평 
안남도와 강원도, 황해북도의 여러 지방을 편답하는중이였다. 
지금 여기서 그들을 안내하고있는것은 역시 방독복을 입고있는 인 
민군군의인 대위와 당시 간호장으로 싸우던 라정 아였다. 

외 국인들은 방독장갑을 진 손으로 열심 히 시 료를 채 취하거 나 그 
것을 촬영하고 그 결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선에서의 미제의 세 
균전 및 독가스전만행 을 폭로하기 위 하여 온 국제 법률가조사단 성 
원들로서 쁠스까, 스웨리예 등 여러 나라의 법률가들과 의학자, 기 
자들로 무어진 국제평 화운동의 저명한 활동가들이 였다. 

오후였다. 갑자기 적 기 수십대 가 하늘을 썰며 날아왔다. 멀지 않 
은 곳에 있는 철다리와 그에 이어진 도로를 집중폭격하기 위해서였 
다. 사방에서 새된 호각소리가 울리고 전선으로 달리던 차들이 대 
피하느라고 소동을 피웠다. 

그런데 적기들은 한톤짜리 폭탄만 퍼부은것이 아니였다. 마지막 
으로 세 균탄까지 투하하였다. 전쟁 의 국면을 역 전시 켜보려 는 단말 
마적인 발악이 였다. 

그때 대 피 호로 달려 가던 한 외 국인녀 성 이 잡관목에 발을 걸채였 
는지 앞으로 코밀이하듯 쓰러졌다. 스웨리예의 녀성법률가였다. 

마침 그의 뒤를 따라 숨차게 달리던 라정 아가 그를 부축하여 일 
으켰다. 그 순간 라정 아는 그 법률가녀성의 방독면이 찢겨져있는것 
을 발견하였다. 라정아의 놀라는 눈길을 살피던 그 녀성도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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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아보았다. 갑자기 그는 절망적으로 두손을 내뻗치며 울부 
짖기 시작했다. 

찰나였다. 길게 생각할새가 없었다. 라정아는 주저없이 자기 
의것을 벗어 그에게 씌워주었다.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세계의 이름난 법률가들파 의학 
자들, 기자들이 격동되여 무어라고 웨쳐대였다. 아니, 미친듯 
고함을 질렀다. 다음순간 그들모두가 구령이라도 받은것처럼 일시 
에 대피호에서 뛰쳐나왔다. 달려나와서는 라정 아를 백포로 싸고 정 
신없이 대피호에로 날라갔다. 


헤산시인민병원의 한 수술장에서는 눈부신 무영등아래에서 긴 
장한 수술조작에 여념이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직승기로 보 
내 주신 조선적 십 자중앙병 원의 명 망높은 의 료진 이 였다. 

저녁 8시에 수술이 시작되였었다. 그때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 
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섬겨주는 수술도구들을 거의나 기계 
적으로 받아들며 긴장한 수술전투를 벌리는 집도자와 보조의사들의 
이마엔 줄곧 무수한 땀방울들이 돋아나군 했다. 한 간호원이 전문 
그것 을 소독가제 로 찍 어주고있 었 다. 

변함없이 채칵거리는 벽시계의 초침소리… 시침과 분침은 정확히 
새 벽 2시 42분을 가리키 고있 었 다. 

그 시각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점도록 낡은 병력서를 들 
여 다보고계시 였다. 그이 의 앞에 는 김 일과 신성 우박사가 자리잡 
고있었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침묵만이 계속되였다. 김일은 저 
도 모르게 《음…》하고 마른기 침소리 를 내 였다. 

마침내 김정일동지께서 병력서를 탁우에 놓으시였다. 여전히 깊 
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신성우박사를 향해 조용히 물으시였다. 
《박사선생은 이 녀성조각가의 병명을 어떻게 진단하였습니까?》 
《예 , 저 와 우리 병 원의 의 료집 단은〉〉하고 신성 우박사가 조심스 


418 



럽게 말씀드렸다. 《전후에 이 녀성조각가를 치료한 삭주군병원의 
병력서와 최근 여러 병원들에서 치료한 내용들을 자세히 연구해보 
았습니다. 결파 세균성 심내막염으로 확진할수 있었습니다. 그 
것은 세균이 심내막 특히 판막에 침범하여 일으키는 병으로서 전신 
폐혈증의 국소증상이 기본입 니다. 자주 떨리고 숨이 차고 고열이 나 
는데 … 지금은 증후성정신장애까지 겹치 여 시간마다 본격적으로 생 
명 이 꺼져 가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괴로움을 이길수 없는듯 두손을 꽉 부르쥐 
시였다. 

《생명이 꺼져가고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뭐 시간마다? 본격 
적으로?!…》 

《그렇 습니 다. 친 애하는 지 도자동지 , 지 금까지 살아있은것 만 
도 기적입니다.〉〉 

수술칼같이 차고 예리한, 실로 무정 하기 짝이 없는 대 답… 허 나 
그들을 탓할순 없다. 생명을 다투는, 진정 참된 사랑을 지닌 의사 
들만이 그렇게 말할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그이께서는 무엇인가 더 묻고싶으신듯 신성우를 바라보시다가 아 
무말씀없이 눈길을 돌리시였다. 신성우박사도 입을 꾹 다물고있었 
다. 그옆에서 김일은 눈귀를 흠칫흠칫 떨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고 낡은 병력서를 다시 드시였다. 아니, 
그것이 아니였다. 그것을 도로 탁우에 밀어놓고 만년필을 드셨으나 
그것도 제자리에 내려놓으시였다. 이어 서류철을 가까이 끌어가시 
였다. 아니 , 그것 도 아니 였다. 마침 내 그이 께서는 탁우의 풀색 
전화기를 끄당기시 였다. 

〈〈나 김정일입니다. 혹시 헤산에서 무슨 소식이 … 아니, 무슨 좋 
은 소식이 오지 않았나 해서 전활 걸었습니다.〉〉 

저 쪽에 서 뭐 라고 나직 이 보고드렸다. 힘 들게 , 조심스럽 게 말 
씀드리는것이 알렸다. 

김일은 차츰 어두운 그늘이 덮이고있는 김정일동지의 안색을 불 
안에 찬 눈길로 지켜보고있었다. 차츰 숨을 쉬는것조차 헐치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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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이, 무서운것이 예감되였다. 

《뭐, 수술도중?!…》그이께서는 급히 송수화기를 다른쪽에 옮 
겨쥐며 물으시였다. 《뭐요?!… 그럼 인젠 아무 희망도 없단 말입 
니까. 예?… 너무 늦었다?!…》 

그이께서 마지막으로 〈〈너무 늦었다?!…〉〉고 하신 말씀은 거 
의 나 불같이 뿜어 져나온 웨 침파도 같았다. 

그이 께 서 들고계신 송수화기 에 서 다시 코맹 맹 이소리 가 울려나 
오기 시작했다. 느리고도 긴 설명이였다. 그이께서는 이옥토록 귀 
를 기 울이시 였다. 귀 를 기 울이 면서 도 아무것 도 듣지 못하시 였다. 

잠시후였다. 그이 께서 는 그만 맥 없이 송수화기 를 떨구시 였다. 덜 
컥 하는 소리 … 순간 고막이 징一 울렸다. 세계가 이 좁은 방안속에 
압축되여버렸다. 영원무궁한 우주의 시간을 끊임없이 재여가던 시 
계 의 초침소리 도 우주적 인 중압에 짓 눌러 숨을 죽여버 렸다. 

정적… 

신성우박사가 먼저 자신을 다잡고 조용히 말씀드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현대의학으로써도 어쩔수 없는 그런 병 
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마음쓰시지 말…》 

그는 말끝을 이을수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불쑥 자리에서 일 
어서시 였던것 이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말씀없이 방안을 거니시였다. 이윽고 창 
가로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멀리 밤하늘가에 눈길을 주시 였다. 무수 
한 별들이 속삭이는 밤하늘… 거기에서는 지금 우주적인 대원무가 
한창이였다.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크고작은 별들이 금빛의 눈을 반 
짝이며 무엇인가 속삭이고 노래부르고있었다. 영원한 자기의 자리 
길을 따라 고요히 흐르는 우주의 별무리… 허나 그이께서는 그 신 
비스러 운 천 궁의 원무만을 보고계 신 것 이 아니 였 다. 

《내가 제일 가슴아픈것은》하고 그이께서는 애써 흥분을 누르 
며 말씀하시였다. 〈〈〈너무 늦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너 
무 늦었다? 그럼 왜 늦었는가?!…》 

격 하신 음성이 였다. 호흡도 더 빨라지 고 두눈에 서 는 섬 광이 펀뜩 
이고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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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이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핵을 거세하려고 했을 
뿐만아니라 한 녀성의 아름다운 꿈마저 짓뭉개버리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병파 아픔마저 숨기고 수령님파 당을 위해 몸바쳐온 그 녀 
성에게 모진 고통과 모욕까지 주면서… 김일동지가 이번에 가서 알 
아보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 녀성조각가의 마음속에 간직되여 있는 그 
소중한 꿈도 알지 못할번 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이께서는 주먹을 꽉 부르쥐시였다. 참을길 없는 분노로 하여 
그이의 말씀은 마디마디가 그대로 불길같이 내뿜고있었다. 

〈〈그 녀성이 그처럼 최후의 숨을 몰아쉬고있을 때,그러면서도 
수령님을 따라 혁명에 나선 부녀회원파 소년들의 모습을 조각하고 
있을 때 나쁜 놈들은 그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은근히 모해하고 
모욕을 주고 쫓아내려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성은 끝까지 자 
기의 존엄을 지키고 량심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녀성입니까. 그런데도 박사선생, 그렇듯 훌륭한 녀성의 생명이 꺼 
져가고있을 때 우린 그냥 보고만 있 어 야 한단 말입 니까?! …》 
신성우는 머리를 떨구었다. 할말이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그 
의 대답을 기다리신것이 아니였다. 그를 책망하신것은 더더욱 아니 
였 다. 

한쪽에서는 김일이 후들후들 몸을 떨고있었다. 별안간 그는 치밀 
어오르는 충동을 더는 이길수 없어 김정일동지께 가까이 다가서며 
거쉰 목소리 로 말씀드렸 다. 

《이 일은 전적으로 제가 잘못한 탓입니다.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받고서야 거기에 가보니 그땐 이미…》 

그이께서 머리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1부수상동지,우린 여기서 보다 심각한 교훈을 찾 
아야 합니다. 제국주의반동들만이 인민의 존엄과 자주권을 유린말 
살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더 아품니다. 우리가 좀더 일 
찌 기 〈유일〉의 구호를 들고 전당과 온 사회를 수령 님의 사상과 령 
도의 한길로만 이끌었더라면 이처럼 나쁜 놈들이 제멋대로 순결한 
사람들의 량심을 짓밟고 고통을 주고 존엄까지 모욕하는 일은 없었 
421 



을게 아님니까.〉〉 

김일은 호흡이 절박한듯 헐썩이고있었다. 

〈〈그렇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쓰라린 마 
음때문에 무수히 반짝이며 눈웃음치는 별빛도 미처 가려보시지 못하 
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김일에게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김일동지,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습니까. 라정아라 
는 그 훌륭한 녀성조각가를 위해 이제 우리가 무엇을 더 해줄수 있 
겠는지?… 생각되시는것이 있으면 좀 말씀해보십시오.》 

김일은 아무말없이 질은 눈섭만 찌프리고있었다. 마음속 피로움 
이 물결처럼 그의 미간으로, 깊은 주름살로 퍼지고있었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신성우박사에게로 질책하는듯 한 
눈길을 던졌다. 

《이럴 땐 박사선생이 좀 말씀드려주시구려.》하는듯 한 눈빛이 
였다. … 

신성우는 찌르는듯 한 그의 눈빛에 견딜수 없는지 그만 머리를 돌 
리고말았다. 

《그 녀성은 의용군으로 입대한 전사였습니다.》그이께서 계속 
하신 말씀이였다. 〈〈수령님을 따라 한생을 꿋끗이 걸어왔고 조각가 
로서 수령님을 따르는 인민의 형상에 온넋을 쏟아부은 수령 님의 딸, 
당의 딸… 참으로 아름답고 순결한 녀성 이 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 
금 어떻게 하면 그를 더 위해주고 더 빛내여줄수 있을가 하는 그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다시 오래 계속된 침묵… 누가 그에 대한 답을 줄수 있으랴. 누 
가 그렇 듯 모진 심 중의 아픔을 가시 여줄수 있으랴?! … 

사람의 한생은 길지 않다. 너무 짧은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한생 
의 길고짧음은 대비속에서만 구별된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것을 대 
비할수 있을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 어떤 물질적, 정신적부 
를 가진 사람도 참사랑이 없으면 인생의 가난뱅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라정아는 끝까지 사랑을 안고산 녀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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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967 년 6월 4일. 

보천보전투승리 30돐을 기념하는 이날 량강도 헤산시에서는 보 
천보전투승리기 념 탑준공식 이 성대히 진행되 였다. 수만군중이 한 
사람같이 웨치는 만세의 환호성속에 풍선들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기념비에 씌워져있던 흰 천이 벗겨지자 천지를 진감하는 만세의 환 
호성이 다시 터졌다.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내각 제1부수상인 김일이 보고를 하 
고 수천수만에 달하는 군중의 열광적인 환호성과 꽃물결속에 대기 
념비를 돌아보았다. 그뒤로 총설계가 리웅산과 건설사업소 지 배 인, 
조각창작단의 리한윤단장과 재능있는 젊 은 조각가 로경 호 등이 따 
라섰고 그뒤 로는 군중의 물결 이 흘러갔다. 

보는것마다 새톱고 감회깊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진두 
에 모신 항일유격대원들과 혁명적인민들을 형상한 대조각군상… 리 
웅산과 조각가들, 건설자들은 매일같이 보아오던 대기념비였지 
만 눈시울을 떨며 돌고 또 돌았다. 

맨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김일 제1부수상도 그 조각군상에서 영 
원히 잊지 못할 희생된 전우들의 모습을 찾아보는듯 자주 걸음을 멈 
추군 했다. 마침내 김일은 유격대를 찾아가는 인민들을 형상한 조 
각군상앞에서 또 걸음을 멈 추었다. 부지 중 가슴이 뜨거 워난듯 리 웅 
산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게 바로 라정아동무가 조각한것이지?〉〉 

리웅산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1부수상동지.〉〉 

리웅산은 김일이 가리키는 소년의 조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앞에서 자기의 키를 대보던 라정아의 모습이 우렷이 떠 
올랐다. 그날 밤 라정아의 머리우에서 홑날리던 용접의 불보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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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라가 오늘은 수만군중의 머 리우에 홑날리 는 경축의 꽃보라로 휘 
뿌려 지고있 다. 

이 어 리웅산의 눈앞엔 라정 아의 다른 모습이 영화의 화면처 럼 당 
겨왔다. 자기의 팔에 안겨 머리를 뒤로 젖히고 높이 솟아오르는 탑 
신을 올려다보던 라정 아의 모습… 

〈〈야, 높기도 하네 !》 

가슴속에 잔향되 여울리 는 그날의 라정 아의 목소리 … 

한순간 그는 김일이 자기를 부르는것도 알지 못했다. 재차 불러 
서야 흠칠 놀라며 머리를 돌렸다. 

〈〈응산동무, 웬일이요?〉〉 

(("•)) 

대답할 말이 없었다. 김일이 계속했다. 

《웅산동무 그리 구 리한윤단장과 로경 호, 내 미 리 말해 준다는게 
그만… 저 어린 소년을 형 상한 라정 아의 조각 말이 요, 어 제 밤 
수령 님 께서 그걸 보시 고 대 단히 높이 평가하시 였소.》 

《예?!…》 

리 웅산은 물론 로경 호와 건설사업 소 지 배인까지 두눈을 번쩍 빛 
내였다. 호흡도 가쁘게 어느새 그들은 김일에게로 더 바싹 다가붙 
었 다. 

〈〈수령님께서 말입니까?!〉〉 

《그렇소. 수령님께선》하고 김일이 계속했다. 《이 단우에 세 
워진 매 조각사진들을 하나하나 다 보아주시면서 나어린 이 소년을 
형상한 조각도 아주 생동하다고, 마치 살아움직이는것만 같다고 하 
셨소.〉〉 

그는 불현듯 눈굽을 흠칫거리더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안경을 
벗어 수건으로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수령님께 라정 아라는 한 녀성조각가에 대해 죄다 말 
씀드렸지. 하였더니 수령님께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참 훌륭한 녀성이라고, 우리 당이 키운 흘륭한 예술가라고 하셨소. 
그가 녀성조각가이 니만치 보통 사람들의 생각대로 하면 복동이와 같 
은 귀 여운 애기들이나 조각할것 같은데 왜 굳이 항일의 혁명가들을 
424 



조각했겠는가, 그 마음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김정일동지가 그를 높이 평가하고 내세워주었다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지금은 너무 바빠서 가보지 못하는데 한번 
시간을 내여 꼭 가보시겠다고, 그때 가서 그 녀성조각가가 만든 조 
각품들도 직접 보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소.》 

탑을 돌아보던 군중들이 어느새 그들의 주위를 성곽처럼 에워싸 
고있었다. 김일은 그런줄도 알지 못하는듯 했다. 젊은 조각가 로 
경호의 어깨를 꽉 그러안으며 그는 갈린 소리로 이렇게 계속했다. 

《라정아동무가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어린애처럼 소리쳐울지 
도 몰라, 너무 기쁘구 행복해서 말이지. 인제는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도 잘 아시는 녀성조각가 라정아가 됐 
거던, 옹?!》 

《예.》 

누가 대답했던지… 김일은 여전히 깊은 감회에 젖어 계속했다. 
《그러니 … 울지 않을수 없지, 울거 야. 그렇게 우는 라정 아를 난 
지금 보는것만 같애. 그렇지? 로경호?!…》 

《예, 1부수상동지!…〉〉 

로경호는 그만 걷잡을수없이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이길수 없는듯 
주먹 으로 입 을 틀어 막고 흐느껴울기 시 작하였 다. 

김 일이 그의 어깨를 다그어안으며 계속하였다. 

《잊지 말자구, 로경호. 우린 수령님을 떠나선 못살아. 이건 우 
리 항일 빨찌산들이 한생 토록 가슴에 새 겨 온 인생 의 철 리 야. 우리 
수령님께서 계시여 나라와 민족의 존엄이 있구 행복도 있어. 라정 
아의 한생이 그걸 말해주구있지 않나. 바로 이 탑이 그걸 증명해주 
고있지 않나 말이 요.》 

그는 과묵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말하는 사 
람이였다. 그러나 이 시각 그는 오래오래 말하고싶은듯 했다. 가 
슴속에서 끓고있는 생각을 다 터놓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듯 했다. 

《로경호, 동무네들이 조각을 해서 여기에 세운 이 많은 투사들 
과 인민들이 지금 뭐라구 노래하고있는지 사람들한테 말해주라구. 
이건 단순한 기념탑이 아니야. 우리 혁명과 민족의 운명을 상징하 
425 



는 탑이구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빛내이는 탑이지. 이건 우리 당의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야. 이걸 사람들한테 다 말 
해주라구, 응?!…》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둘러싸고 바다처럼 설레이고있었다. 김일 
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저저마끔 열렬히 속삭이고있었다. 그 
것 은 방금 그가 준공식 에서 한 기 념 보고보다 더 뚯깊고 감동깊은 연 
설 이 였 다.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러나 사랑의 전설은 끝을 모른다. 전 
설은 계속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탠 세월이 흐른 뒤에도 평 
범한 녀 성 조각가 라정 아를 잊 지 않고계 시 였다. 

1972년 4월.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제막하는 그날 사 
탐들은 수령 님 을 옹위하는 일심 단결 의 대 조각군상속에 전선 에 서 피 
홀려 싸우던 한 간호원의 모습이 청동의 조각상으로 세워져있는것 
을 보게 된다. 하지 만 그 녀전사의 모습이 오래 전 에 우리곁 을 떠 
나간 아름다운 녀성조각가 라정아의 전쟁때의 모습 그대로임을 알 
고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 

다시 세월은 흘러 … 

2000년 9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몸소 마련해주신 민족사의 장거 
인 6. 15북남공동선언에 의하여 조국의 품에 안기는 60여명 비 
전향장기 수들속에 는 어제날 라정 아의 스승이며 지 휘 관이 였던 림 
근우도 있다. 그는 맨 뒤쪽에서 삼륜차에 실려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게 된다. 

조국의 품에 안기 여 만수대 언 덕 의 수령 님동상에 먼저 인사를 올 
리고 그 좌우의 대조각군상을 돌아보던 림근우는 뜻밖에도 한생 잊 
지 못하던 라정 아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때 비전향장기수 림 근우의 곁 에는 그나 다름없이 어 언 백발성 
426 



성한 건축가 리웅산이 서있게 된다. 비전향장기수들이 신문파 방송 
을 통하여 널리 소개되던 그날부터 림근우라는 이름을 찾고찾던 리 
웅산이였으므로 그와 인사를 나누자바람으로 라정아에 대하여 끝없 
이 이야기를 펼친것이다. 

《보십시오,림선생.〉〉 리웅산이 젖어든 목소리로 말한다. 《지 
금도 라정아는 돌격의 앞장에 선 지휘관과 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저 인민군지휘관은?…》 

《예, 림선생과 같은 영웅지휘관입니다. 라정아동무가 한생 
바란것이 바로 저것이였습니다. 바로 저렇게 림선생파 같이 투쟁의 
길에 함께 서있는것, 영원히 한길을 가는 그것이였습니다.〉〉 

《예 一 그렇습니까?》하고 그날 림근우는 대바람에 거품이 끓 
는듯 한 목소리를 힘들게 짜낸다. 〈〈정말 여기서 이렇게 그를 만날 
줄은… 꿈결에도 잊지 못해 바라고바라던 우리 라정아와의 상봉이 
여기서 이렇게 이루어질줄은…》 

림근우는 끓어오르는 추억의 물결에 몸파 마음을 맡기고 이윽토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라정아의 사랑과 꿈을 담은 애모쁜 노래… 
《가지 마세요. 선생님, 가지 마세요!〉〉하고 한때 안타깝게 손 
저어 부르짖던 라정아, 결국 그들은 한길을 걸어왔었다. 한생 변 
함없이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라정아가 어른 곳이 바로 여기 만수대 
언덕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신 대기념비, 영광의 단상이였다!… 
이러한 생각이 림근우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었다. 한없는 그리 
움… 한방울 눈물도 없다. 눈물은 속으로만 호른다. 그것은 경 
건한 아픔이였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한 녀성에 대한 유정한 추억 
의 흐느낌이 였 다. 


14 - 


1967년 8월. 

삼복철도 끝나고 더위 도 수그러들던 때 였다. 그러 나 이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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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평년과 같이 순순히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마치도 이 나라 인 
민의 의지를 시험하려는듯 강한 태풍을 몰아오며 전반적지방에 엄 
청난 량의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대동강상류의 맹산군, 양 
덕군일 대 에 는 8월 26일 하루종일 대줄기같은 폭우를 무섭 게 들 
부었다. 하여 대동강은 급기 야 통트림하듯 사납게 격 랑을 치 기 시 
작했는데 그 거 센 물결 이 평 양시 에 들이닥친것 은 다음날인 27일 밤 
11시 부터 였다. 

미친듯한 격류가 뿌리채 뽑힌 아름드리나무들이며 벼짚이영을 얹 
은 헛 간지붕들( 그런 지 붕들과 통나무들마다에 는 갖가지 짐 승들, 즉 
개와 염소, 닭파 돼지들까지 올라타고있었다. ), 무수한 풀더미와 나 
무등걸들을 떠 싣고 평 양시 를 향하여 사품쳐흘러내 렸다. 초당 3만 
4천 600톤의 물흐름으로 산출된 사상 류례없는 대 홍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즉시 수해복구를 위한 비 상대책을 세우시 고 몸 
소 현지 에 서 전투를 지 휘하시 였다. 

단 한시의 휴식도 없는 힘겨운 전투의 나날이 9월 중순까지 계 
속되였다. 이 나날 거의 매일같이 김정일동지께서 수령님을 모 
시고 때로는 수륙량용차를 타시고 때로는 장화를 신고 무릎까지 빠 
지 는 감탕길을 헤치며 수도의 곳곳을 돌아보시고 피 해복구를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비행기가 날면서 교통이 막힌 지역에 식량과 음료수를 날라주었 
을뿐아니라 각지에서 유능한 기술자, 전문가들을 선발하여 피해가 
제 일 심한 평 양방직 공장을 비 롯한 여 러 공장, 기 업소들에 실 어 오기 
도 했다. 

수해주둔지역의 인민군부대들이 떨쳐나서고 수많은 수륙량용차, 
배떼 다리 , 전투용화물자동차, 직승기 들이 동원되 였다. 건설기 업 
소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총동원되여 제방보수와 지대정리, 살림집 
건설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수령님께서 오래전부터 구상하시던 대 
동강의 갑문들에 대한 착공준비도 힘있게 다그쳤다. 

1967년 9월 3일.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일동지 와 함께 평 양방직 공장을 현지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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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지도하시였다. 그날도 역시 연회색의 여름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계신 수령님께서는 오전 8시부터 무려 3시간에 걸쳐 방 
직 공장을 돌아보시 였다. 때 로는 깊 은 물웅뎅이 를 에 돌고 때 로는 감 
탕밭을 헤 쳐가시 기 도 하였 다. 

점심시간도 가뭇 잊고계신듯 했다. 김윤필부관이 몇번 상기시켜 
드려서야 비로소 수륙량용차에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러나 한순 
간 또 멎어서시였다. 멀리 무진천동뚝우에 서있는 어찐지 남다른 
한사람을 띄여보신것이다. 아침 에 나오실 때부터 물에 잠긴 공장구 
내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락가락하던 이상한 사람, 그의 옆에 
는 하얀 《볼가〉〉승용차가 서 있었다. 

《저 게 누구요?》하고 그이께서 는 부관 김윤필을 돌아보며 물으 
시였다, 〈〈아까부터 계속 우리쪽을 보고있는것 같던데 왜 그러는지 
알아보았소?…》 

《예?…》 

김윤필은 그이께서 보시는쪽으로 급히 눈길을 던졌으나 그가 누 
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말씀드렸다. 

〈〈수령님, 그는 우리 나라 주재 월남대사입니다.〉〉 

《월남대사?》 

수령 님께서 놀라와하시 였다. 

《예 , 제 가 알아본데 의하면》하고 김 정 일동지 께 서 계 속 말씀 
드리시 였다. 《월남대사는 평양방직공장이 물에 잠긴것때문에 
여간 걱정이 크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 월남에 보내줄 군복천때문 
인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하고 수령님께서는 따뚯한 미소가 어려있는 
눈빛으로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였다. 〈〈어느새 그런것까지 다 알 
아봤구만.〉〉 

그이 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 시 였다. 지난 8월 11일 우리 는 월 
남에 군사원조를 무상으로 제공할데 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결 
과 군사원조의 항목들이 대 폭 늘어났다. 그중에서 군복 같은것 은 중 
요항목에도 속하지 못한다. 


429 



그이께서는 뒤쪽에 서있는 한 녀성일군을 돌아보시였다. 
《방직공업상, 물에 잠긴 기대와 천이 얼마라구 했던가?》 

《예, 수령님.》하고 몸이 부한 녀성일군(실은 방직 및 제지공 
업상이 다. )이 한발 나서 며 말씀드렸다. 《약 2만대 의 기 계설 비 
와 천만메 터 에 달하는 천 이 물에 잠겼 습니 다.》 

《아니요.〉〉 하고 수령님께서 정정해주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1만 7천대의 기계설비와 995만 6천메터의 천이 물에 잠겼 
다고 했소.》 

수령님께서 몰라서 물으신것이 아니였다. 녀성일군은 얼굴을 붉 
히였다. 

《뭐, 동물 시 험쳐보자구 한건 아니구…》수령 님께서 계속하시 
는 말씀이였다. 〈〈우리 일군들은 언제나 약 얼마… 어느 정도… 하 
는 말들을 될수록 입에 올리지 않도록 해야 하오. 그래야 더 깐지 
구 더 정 확히 일할수 있 거 던.》 

이 어 그이 께서는 리주연부수상을 찾으시 였다. 

《참 부수상동무, 오늘 여기서 토론한대로 하면 빠른 시일내에 천 
생산을 정상화할수 있지 않겠소?〉〉 

《예 , 한달이면 정 상화할수 있 을것 같습니 다.》 

《할수 있을것 같다?… 아니 , 꼭 해 야 하오. 리주연동무, 우 
리 나라엔 평 양방직공장만 있는것도 아니지 않소. 그러니 월남대사 
에 게 너 무 걱 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시 오, 약속한 전 량을 제 기 일 내 에 
보장해춘다구.》 

《예, 수령님. 그렇게 말해주겠습니다.》 

바람이 세 지고있 었다. 감탕에 게발린 나무가지 들이 등을 꼬부리 
며 수선거렸다. 하늘에서는 세찬 질풍이 시꺼먼 먹구름을 산산이 찢 
어발기며 서견으로 몰아가고있었다. 어딘가 먼곳에서 아직도 우릉 
우를하는 우뢰소리가 울려왔으나 그것은 이미 맥빠진 푸념과도 같 
은것이 였 다. 

그 하늘가를 재빨리 살펴보신 김정 일동지 께서 수령 님 께 다시 
말씀드리 시 였 다. 

《수령님, 방직공장의 생산을 정상화하는것과 동시에 온 평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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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인민반들에 호소하여 아빠트옥상에서 젖은 천과 쌀들을 말리도 
록 했으면 합니다.〉〉 

《옳소, 좋은 생각이요. 이제 날도 개이겠는데 온 평양시가 떨쳐 
나서게 합시다.》 

수령님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수해복구를 위한 시급일군들의 협의회가 끝났을 때는 깊은 밤중 
이였다. 허나 수령님의 정상적인 집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이께서는 먼저 월남에서 싸우는 우리 비행사들의 영웅적위훈에 
대한 보고자료와 호지명주석이 친히 보내온 감사전문을 보시였다. 
또다시 월남이다. 월남이 그이의 마음속에서 순간도 자리를 비우려 
하지 않는다. 어찌 그뿐이랴. 라오스, 캄보자, 수리아, 알제리 등 
다른 많은 나라들도 그이의 마음속에 각기 한방씩 차지하고있으면 
서 때없이 자기를 만나달라고 문을 두드리군 한다. 

그이께서는 보고서를 읽으시며 이따금 에이는듯 한 아픔에 숨을 
죽이군 하신다. 월남의 하늘에서 싸우는 우리 비행사들의 장렬한 희 
생에 대한 보고가 날을 따라 늘어가고있는것이다. 


15 


수희 ! … 우리 부대는 지금 〈〈집》이라고 부르는 비행장에 있소. 
이 비행장은 수도 하노이 에서 중국국경으로 가는 하노이 북쪽에 있 
소. 사실 우리가 여기 찝비행장으로 옮겨온것은 적들이 기를 쓰고 
노이발비 행장을 공습하는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보다는 적 함재 기 
들이 바다에서 뜨자마자 우리도 가까운 곳에서 즉시로 날아올라 공 
중전을 벌림으로써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자는데 더 큰 의미가 있소. 

이 비행장이 노이발과 다른것은 별로 없소. 다만 우물이 하나밖 
에 없다는것뿐인데 … 싯누런 색갈을 띤 물이지만 우린 그것으로 세 
면도 하고 목욕도 하오. (한밤중 우물속에 들어가 몸을 식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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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인젠 꿈같은 옛적의 일로 되였소. ) 하루에도 몇차례씩 출 
격하군 하는데 어떤 때엔 땀에 젖은 옷을 그냥 쥐여짜입고 그대로 
날아오르군 하오. 

그러나… 땀이나 뽑는것보다 대비조차 할수없이 더 힘든 일들이 
많소. 정말 참기 어려운것은 바로 귀중한 전우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 나가는 그것 이 요. 

오죽했으면 김경우동무가 나를 불러 이런 말까지 했겠소. 

《최동무, 우리 집사람은 말이요, 겉으로는 남성적인 성격에 아 
주 괄괄하구 시원시원하지만 속내는 아주 심한편이요. 쩍하면 까무 
라친다니까.》 

《그건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이요?》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털어놓더군. 

《그런줄 알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 알겠지? 무슨 일이 있 
으면 잘 말해달라는거요.》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인지 당신도 짐작할거요. 그런 말 
이 있은것은 우리 부대에서 하루에 두명의 비행사가 동시에 희생된 
그날이였소. 리도익동무와 리동수… 그들 두사람은 그날 한날한시 
같은 편대로 날아올랐다가 그만… 

리도익동무는 키가 나만 하구 몸은 뚱뚱한편인데 이악하기로 유 
명하지. 무엇이나 하겠다고 결심하면 끝까지 해내는 성미요. 

그날 우리는 리도익, 리동수동무들파 같이 출격 했는데 불의 에 적 
함재기 들과 맞다들었 소. 일반적 으로 적 함재기 비 행사들은 공군비 
행사들보다 기술도 높고 전투경험도 더 많소. 게다가 적기는 수적 
으로 대비할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우린 언제나 육탄으로 곧추 돌 
입해들어가는 전술로 나가는 수밖에. 

그날 우리는 두개 편대 8대였고(그후부런 하루가 달리 편대의 비 
행 기 수가 작아졌소. ) 적 들은 20대 가 넘 었소. 찌 뿌둥하니 흐린 
날씨여서 고공으로 떠오는 적기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지상 
에서 련대장동지가 적정을 알려주더군. 우린 련대장의 명령대로 저 
공으로부터 고공으로 날창처럼 적들의 무리를 곧추 올려찌르며 돌 
입하였소. 그다음 분산된 적 기 들을 돌아가며 답새 기 기 시 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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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도 인젠 만만치 않소. 얼마전까지 우리와는 될수록 접전을 피 
하면서 월남공군비행사들과만 해보던 적들이(월남공군은 갓 창 
설되였다는것을 잊지 마오. ) 인제는 우리의 력량이 한개 련대정도 
밖에 안된다는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수적우세와 자동통신수감체계 
의 우세를 리용하여 불의에 공격하는 전술로 나오기 시작했소. 

그날은 내가 두번째 적기를 격추한 뚯깊은 날이였소. 뒤이어 다 
른 편대의 리도익동무가 적기를 격추했지. 헌데 리도익동문 그만 뒤 
따른 적기 두대가 동시 에 내쓴 공대공미싸일에 의 해 치명상을 입 었 
소. 비행기가 불타면서 비틀거리는데 지상에서, 공중에서 연방 무 
선으로 소리쳤소. 

〈〈탈출하라, 리도익!》 

《뭣하는가, 빨리 탈출하라!一〉〉 

그가 불타는 비행기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모르겠소. 어쨌든 락하 
산이 펼쳐지는것을 보고 우린 안도의 숨을 내쉬였지. 그런데 그와 같 
은 편대 에서 싸우던 리동수동무가 또 직 탄을 맞고 추락될줄이 야. … 

리동수동무도 명령에 따라 락하산으로 탈출했소. 헌데 우리가 전 
투를 끝내고 지상에 내 려 왔을 때 앞서 내린 리 도익동무가 먼저 숨 
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사실 리도익은 불타는 비행기에서 탈 
출할 때 벌써 치명상을 입고있었다고 하오. 두발씩이나 미싸일을 맞 
았으니 어쩌겠소. 

그의 뒤 를 이 어 추락했 던 리동수동문 락하산을 타고 800고지 
에 내렸다고 하오. (월남은 대부분 해발고가 낮은 지대여서 800고 
지라면 우리 나라의 1211고지보다 더 높아보인다고 할수 있소. ) 

800고지정점에 떨어진 리동수동문 30메터나 실히 넘는 아름 
드리나무에 걸려 한동안 공중에 매달려있게 되였소. 그런데 일이 안 
될 라니 락하산줄에 목이 감겨 참을수 없을 지 경이 였던 모양이요. 그 
가 권총을 쏘며 신호했지만 높고 험한 고지 여서 사람들이 제때 에 올 
라가지 못했소. 

사실 월남의 농촌지역에선 제일 험하고 힘든 일을 대체로 녀자들 
이 맡아하는데 우리 비행사가 떨어져도 녀자들이 담가를 메고 달려 
가고 미국놈비행사가 떨어져도 녀자들이 먼저 달려가 사로잡는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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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 요. 

그래도 그 월남녀성들이 담가를 메고 기를 쓰며 올라가는데 리동 
수동문 목을 조이는 락하산줄때문에 더는 기다릴수가 없었던지 락 
하산의 예비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산줄을 끊고 땅에 떨어져내렸소. 
월남녀인들이 올라가보니 그가 떨어져있는 바닥이 온통 삐죽삐죽한 
돌천지였다질 않소. 

수희, 어디 좀 상상해보오. 30메터 이상 자란 나무에서 떨어져내 
렸는데 그밑이 돌밭이라구 하니… 제아무리 체력단련을 많이 하고 
운동신경이 발달한 비행사라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결 
국 리동수동문 심한 타박상을 입 고 쓰러져있 었소. 

리주영련대 장동지 가 차를 타고 현지 로 달려갔는데 도중 월 남녀 인 
들이 담가에 싣고오는 리도익(이미 숨을 거둔)을 보고 그냥 800고 
지쪽으로 차를 몰아갔다구 하오. 이 번에도 가는 도중 월남녀 인들이 
리동수동물 담가에 싣 고오는걸 만났다는거 요. 련 대 장동진 즉시 그 
를 자기 차에 옮겨 싣 고 가까운 곳에 있는 월 남로케 트부대 군의소로 
달려가 입 원시 켰소. 

얼마후 우리가 전투를 끝낸 다음이였소. 련대장동진 부련대장 림 
장안중좌와 양인길대대장 그리고 나와 김경우 등을 자기 차에 태워 
거기 군의소에 보내더구만. 가서 경파가 어떻게 되였나 알아보고 고 
무도 해주라면서… 그래서 가보니 그사이 리동수는… 그만 잘못되 
여있는게 아니겠소. 

월 남로케 트부대 군의소에서 하는 말이 중태 에 빠진 그를 살리 려 
면 피 수혈을 해 야겠기 에 즉시 수도 하노이 의 중앙병 원에 의 뢰했다 
는거요. 그런데 하노이의 중앙병원에서도 비상대책을 세웠지만 처 
음 련락을 받던 때로부터 수혈할 피를 실어오기까지 무려 3시간나 
마 걸 렸다고 하니 … 리동수동문 끝내 그 시 간까지 기다려내 지 못하 
고 숨지고말았소. 

그 말을 듣고 우린 모두 가슴을 치며 울었소. 울지 않을수가 없 
었소. 당신도 짐작이 가겠지만… 우린 그저 아까운 전우를 또 한사 
람 잃었구나 하는 커다란 아를과 슬픔때문에만 운것이 결코 아니요. 

김 경 우동무가 남보다 더 목놓아울더구만. 글쎄 녀자같이 늘 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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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던 그 동무가 너무 분통해서 저도 모르게 나의 목을 끌어안고 
막 소리쳐우는데 … 그가 울면서 뭐 라고 했는지 아오?… 

《최동무, 이게 과연 있을법이나 한 일이요? 글쎄 우리가 가까이 
있으면서, 멀지도 않은 저 하늘에 있었는데 시간때문에, 시간을 지 
체해서, 피 몇그람을 구하지 못해 귀중한 전우를 잃다니… 정말 분 
통이 터져 못 견디겠소.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소. 그러니 이 
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오?》 

수희, 얼마나 가슴이 쓰리구 아프던지 그 마음 더 표현할 길이 없 
구만. 당치 않은 생각인줄 알면서도 피를 나눈 전우들이 숨져가고있 
을 때 우리가 곁에 있지 못한것이 얼마나 후회되고 죄스럽던지 … 그 
러니 우리 사나이들이, 용감무쌍한 전투기비행사들이 가슴을 쥐여 
뜯으며 울지 않을수 있겠소?… 

그때부터 김경우는 말이 적 어졌소. 자기 안해에 대한 이 야기도 더 
는 꺼내지 않았소. 녀자처럼 해사하던 얼굴이 축가면서 헬쑥해지는 
데 … 마치 병자같이 변하는게 아니겠소. 양인길대대장이 물어도 입 
을 봉한채 말을 안하오. 다만 어느날 나한테만 가만히 속을 터놓는 
데 … 그 시작이 피짜였소. 

《중대장동무, 내 한가지 말할게 있는데 들어주겠소?》 

나는 먼저 흥흥 코김을 세게 불어댔소. 〈〈여 김경우, 오늘따라 왜 
이러는거요? 내 부탁하는데 너무 어짓바르게 굴지 말라구!〉〉하고 
막상 핀잔을 주려구 했지. 헌데 가만히 눈여겨보니 그의 얼굴은 피 
기 하나 없이 백지장이나 다름없는데 반대로 그의 두눈은 시뻘겋게 
충혈되 여있지 않겠소. 

그가 또 입을 열었소. 

《중대장동무, 우리야 이제 곧 새로 오는 비행사들과 교대하게 되 
여있지 않소?》 

〈〈그래서?》 

《그런데 난 아직 한대의 적기도… 격추하지 못했소. 그것때문에… 
잠을 못 자오. )) 

나는 잠시 그의 창백한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소. 그의 고 
민 이 리해 되 였고 그것 을 미 처 알아주지 못한 내 가 미 욱한 놈이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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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는 생각이 들었소. 게다가 우린 인차 조국에서 보내는 비행사 
들과 교대하기로 되 여있는데 … 마지막까지 주도기만 엄호하면서 한 
대의 적기도 격추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떻게 얼굴을 쳐들고 조국에 
돌아가겠소. 희생된 전우들의 복수는 어떻게 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내가 물었소. 

《중대장동무야 주도기가 아니요. 도와주시오.》 

《음, 알겠소, 무슨 말인지. 그럼 전투때에 보자구.》 

그러자 그 녀자같은 김경우가 어쨌는지 아오? 격동될 때마다 하 
던 버릇대로 내 목을 꽉 끌어안더니 정신없이 볼을 비벼대겠지. 그 
러면서 〈〈고맙소. 최봉호, 둘도 없는 나의 딱친구!》하며 울먹이 
는데 성미가 모질기로 소문난 나도 그만 눈굽이 저릿저릿해서 겨우 
참았소. 

마침내 김경우도 적기를 격추하게 되였소. 그날 지휘소에는 부련 
대장 림장안중좌가 있었소. (리주영련대장은 부대장 박남훈대좌 
와 같이 하노이의 월남국방성에 가있었고…) 그는 적기들이 너무 많 
이 쓸어 오기 때 문에 우리 가 포위 에 들수 있으므로 적 들파 일 정한 간 
격 을 두고 공격 자세 를 취 하라고 명 령하였소. 

나는 기회를 엿보다가 적들을 토막쳐놓은 다음 외따로 떨어진 놈 
들만 골라 답새기려고 했소. 한순간 마침내 그런 기회가 오자 나는 
김경우에게 명령했지. 

〈〈07번 , 돌 입하라.》 

《알았다. )) 

인제는 내가 대렬기의 역을 맡아나선셈이 되였소. 기다리고있던 
김경우가 제적 편대에서 떨어진 적기에게 달려들었소. 적들도 그것 
을 못 볼리 없지. 한순간 적기편대에서 여라문대가 김경우를 포위 
하려고 시도하더군. 하지만 나와 김태준동무가 제때에 맞받아나가 
자 적들은 그만 기겁하여 급상승하는게 아니겠소. 적들은 우리 조 
선비행사들의 육탄공격을 제일 무서워하거던. 마침 그때 김경우가 
뒤떨어진 적기의 꽁무니에 바싹 불어 기관포사격을 했소. 한순간 적 
기 는 급제동을 건 자동차처 럼 흠칠 몸체를 떨더 니 그만에야 시뻘건 
화염을 확 내뿜는게 아니겠소. 


436 



〈〈명 중이 다 ! 一》 

김경우의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 

그때 우리는 어느 한 농촌마을우에서 전투를 벌리고있었는데 숲 
속에서 우리의 공중전을 지켜보던 마을사람들이 팔을 휘저으며 환 
호성 을 올리 는것 이 환히 내 려 다보이더구만. 

《07번, 좌로 반전 하라.》 

반전 이 란 비 행기 를 세로축주위 로 180도 돌려 몸체를 뒤집 으며 급 
강하하여 반대쪽으로 전환하라는 의미요. 그러면 꼬리를 물던 적기 
가 그냥 머 리우를 지 나가버 리 군 하지 . 

허나 그 순간 김경우는 또 하나의 먹이를 발견했소. 전우들의 복 
수를 맹세하던 김경우가 그것을 놓칠리가 있겠소? 말도 안될 소리 
지. 그는 자기 앞으로 날아지 나는 적기의 꼬리를 또 물고늘어지기 시 
작했소. 

내 가 급히 소리쳤 소. 

《07번, 위 험 하다. 적 기 들이 뒤 따른다.》 

《알았다. )) 

지상에서도 림장안부련대장이 다급히 명령했소. 적기들이 김경우 
를 포위했기때 문이 요. 

〈〈07번, 위 험하다. 반전 하라 !》 

〈〈알았다. )) 

대답은 이렇게 하면서도 김경우는 적기를 겨냥하는데만 정신을 팔 
고있는게 분명했소. 좀전에 그랬던것처럼 적기의 꽁무니에 기관포 
사격을 가하며 그가 부르짖 었소. 

《죽어봐라!…〉〉 

이번에도 명중탄이였소. 적기가 꽁무니로 시꺼먼 연기를 내뿜자 
그가 또 소리쳤 소. 

〈〈명 중이 다 ! 一〉〉 

허나 다음순간 김경우도 그만 적탄에 맞았는지 와뜰 몸체를 떨더 
니 불길에 휩싸이는게 아니겠소. 

《탈출하라, 경우!一〉〉 

《07번, 랄출하라, 탈출하라!一》 

437 



〈〈탈출하라!-》 

지상에서, 공중에서 거듭 소리쳤건만 김경우는 자기 비행기가 낮 
추 뜨고있은데다가 마을 한복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었으므로 기수 
를 돌려 높은 산을 향해 몰아갔소. (그 높은 산이란게 바로 앞에서 
내 가 말한바있는 800고지 요. ) 

단 몇초사이에 마을에서 벗어난 김경우는 그만에야 날아가던 속 
도 그대 로 800고지중턱 을 들이받았는데 둔중한 폭음파 함께 다 
음은… 아! 나는 그만 정신없이 소리쳤소. 

〈〈경 우 ! 一》 

800고지의 중턱에서 솟구치는 시뻘건 불기둥을 보면서 나는 그 
만 눈을 감지 않을수 없었소. 

〈〈경 우야 ! 一》 

그때 공중전을 보고있던 마을사람들이 울고불고하면서 추락된 비 
행기 있는 곳으로 달려갔으나 거기선 김경우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고 했소. 

전투가 끝난 후 온 마을사람들이 (그 마을은 우리의 찝비행장에서 북 
서쪽으로 약 20키로나 떨어진 곳에 있소. ) 떨쳐나 갖가지 남방과 
일이며 선물들을 한짐씩 지고 우릴 찾아왔소. 찾아와서는 저저마끔 우 
리의 손을 어투쓸며 눈물을 머금고 감격의 인사를 하는게 아니겠소. 

《꼬레야 ! 김 일성 !》 

〈〈김 일성 ! 꼬레야 !〉〉 

《메르씨, 꼬레야! 메르씨, 김경우!…》(메르씨란 프랑스어로 고 
맙다는 말이 요. ) 

그날 마을사람들은 김경우가 격추한 비 행기 에서 락하산으로 내린 
미국놈비행사 두놈도 체포하여 우리한테 넘겨주더구만. 그 모든것 
을 나는 꿈속에 보는것 만 같았소. 속이 떨 리 다못해 오스스 추워나 
기까지 하는데 마을사람들은 계속 인사말을 퍼붓지. … 허 나 나는 한 
마디 말도 할수 없었소. 

뒤늦게야 통역이 달려오자 마을사람들은 다시 인사말을 시작하더 
구만. 조선비행사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김일성원수님께서 보내주 
신 조선비행사들이 확실히 다르다고, 오늘 그 비행사만 보아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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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를 버리면 살수 있을것을 자기들때문에 한몸 바쳤다고,대를 두 
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겠다면서 눈물을 뿌리더니… 그 비행 
사 이름이 원지 거듭 묻지 않겠소. 

왜 그런지 선뜻 그 이름을 입에 올리게 되지 않더구만, 너무 쉽 
게 부를가봐, 너무 소홀히, 가볍게, 례사롭게 부를가봐… 그때 
엔 박남훈부대장파 참모장, 리주영련대장 등 하노이에 가있던 지휘 
관들도 다 돌아와있었는데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하고 눈물만 씹 
고있었소. 마침내 림장안중좌가 나를 돌아보더니 은근히 귀됨하는 
게 아니겠소. 

《주도기 가 좀 말해주오.》 . 

그러니 내가 나서는 수밖에 … 나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그러 
나 크게, 자랑스럽게 그의 이름을 대주었소. 

《김 一경 一우! … 잘 기 억해두십시 오. 김 일성원수님 께서 보내 
주신 우리 조선비 행사의 이 름입 니 다. 김_경 _우! …》 

모두가 그 이름을 따라불렀소. 

〈〈김 _경 _우!〉〉 

〈〈김 _경 _우!〉〉 

소리높이 따라부르는 그들을 보면서 난 생각하였소. 바로 그 김 
경우가 얼마전 희생된 전우의 령구앞에서 어떻게 울부짖었는지 당 
신들은 아는가? 《…피 몇그람을 구하지 못해 귀중한 전우를 잃다 
니… 정말 분통이 터져 못 견디겠소.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 
소.〉〉하면서 피눈물을 쏟았다는것을… 

시체도 찾지 못한 우리의 김경우… 그의 수첩갈피 에 끼워있는 사 
진, 사랑하는 안해 와 어린 자식 을 량팔에 껴안고 찍 은 사진 을 놓고 
우린 그의 장례 를 치 르었소, 비 장하고 숭엄한 장례 를… 


그때로부터 40여년의 오탠 세월 이 흘러 간 2009년 10월 월남정 
부의 초청 에 의해 한때 그곳에 서 련대 장으로 싸운바있는 리 주영 과 
전투기비 행사 최 봉호를 비 롯하여 이 전 월남전쟁참가자 및 렬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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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단이 월남을 친선방문하게 된다. 그때 김경우가 구원해준 마을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조선의 로병대표단을 꼭 자기네 마을에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하여 어언 백발이 된 이전의 월남전쟁참가자비행 
사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현인민위원회 위원장, 리인민위원회 위 
원장을 비롯하여 마을전체가 떨쳐나 우리 비행사대표단을 열광적으 
로 환영한다. 마을사람들이 《김경우.》, 《김경우.〉〉하고 부르짖 

는 속에 촌장이 마을전경을 수놓은 수예품을 그들에게 선물한다. 

《이것은 존경하는 김일성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조선의 영웅비행 
사 김 경 우가 지 켜준 우리 마을의 전경 화입 니다.〉〉 

…력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어떤 물리적힘으로도 그것을 지워 
버릴수 없다. 그것은 영원하다. 


16 


월남전선에서 우리 비행사들의 전투성 파가 늘어갈수록 희생자들도 
많아졌다. 리도익, 리동수, 김원한, 김경우, 리기환, 김태준… 

김일성동지께서 그들의 뒤를 이어 부련대장 림장안의 희생에 대 
한 보고를 받으신것은 새벽 이 가까와올무렵이 였다. 

또다시 잠 못드시는 밤… 그이께서는 점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 
시 였 다. 

… 림 장안은 월남에 파견되 는 203군부대의 첫 대오에는 끼 워있지 
않았다. 1966년말 우리 비행사들이 월남의 하늘에서 미국놈들 
파 한창 결전을 벌리고있던 어느날 그이께서 조명록을 부르시여 이 
렇게 말씀하시였다. 

《공군사령부에서 오래 일했으니 비 행사들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리라고 보고 한가지 과업을 주려고 하오. 리론실천적으로 제일 우 
수한 비 행사 한사람을 골라보시 오. 항공전술에서 나 비 행술에서 
도 제일 우수한 사람을 말이요. 젊은 사람이면 더 좋소.》 


440 



하여 선발된것이 림장안이다. 

조명록은 그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지금은 공군사령부 비 행조종술지도원입 니다. 매 해 비 행사들 
의 비행술을 판정하고 급수조절을 하는데 어찌나 요구수준이 높은 
지 저도 겨우 사정사정해서야 합격되였습니다.》 

〈〈아니, 사령관까지 급수시험을 친단 말이요?〉〉 

《제가 사단장을 할 때였습니다. 제스스로 요구하여 판정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새 저의 비행술이 너무 뒤떨어진것 같아서…》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좋소,그렇다면 그 엄격한 훈장을 한번 만나봅시다.》 

그날 그이께서는 림장안과 3시간나마 담화하시였다. 보통키에 체육가 
형으로서 발달된 근육과 밝고 부드러운 얼굴표정이 특히 인상적이였다. 

《우선 동무가 살아온 경 력부터 들어보자구. 일 없소, 허 물없 
이 다 얘 기 하오. 난 바쁘지 않소. )) 

놀랍게 도 그는 평 양미 술대 학 제1기졸업 생이 였다. 

《미 술대 학을 나왔다?》하고 그이 께서 는 기 이하게 여 기며 물으시 
였다. 《미 술가와 비 행사라… 어떻 게 그리되 였소?》 

그가 미술대학을 졸업한것은 1950년 4월이였다. (그의 형도 미 
술가였다. ) 대 학을 졸업 한 후 인차 전쟁 이 일 어 나자 그는 온 나라 
청 년들이 그러 했듯 즉시 군대입 대를 탄원하였다. 군대 에 나가서 는 
또 비 행사가 될것을 결심했다. 자기의 모교가 적기 들에 의해 불타 
고 존경하는 스승이 희생되였다는 소식에 기어이 비행사가 되겠다 
고 떼를 썼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 비행학교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1953년 7월 그가 비행사가 되여 하늘에 떠오르자마자 전쟁이 
끝났다. 

그후 그는 대대장이 되였다. 인민군대에서 붉은기중대운동의 불길 
이 타오를 때 그는 첫 붉은기대대의 지휘관이 되였고 그후엔 공군대 
학을 최우등으로 졸업 하고 공군사령 부 비 행조종술지도원으로 되 였다. 
《그럼 이제부터 동무 안해 에 대해 좀 얘기 해보오.》 

림장안의 안해 신헤 란은 중국 동북에 서 살다가 해 방후 평 양에 종 
합대 학이 선다는 소식 을 듣고 몇달동안 가마니 를 짜서 판 돈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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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혼자서 조국에 나온 녀자였다. 평양에 왔을 때엔 이미 종합대 
학시험이 끝났으므로 평양방직공장에 들어가 로동을 했다. 로동의 
짱시간에도 이악하게 책을 펴들고 공부하는것을 보고 지배인이 그 
를 서기로 채용했고 후에는 사범대학 외국어강습반을 거쳐 김책공 
업대학까지 졸업하게 도왔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부부의 길지 않은 인생자서전의 첫폐지였다. 

《내가 오늘 동물 만나자고 한것은〉〉마침내 그이께서 본론에 들 
어가시 였 다. 

《지금 월남에 간 우리 비 행사들이 간고한 조건에서 싸움을 벌리 
고있는데 거기에 가서 그들을 기술적으로 잘 도와주라는것이 첫째 
요. … 다음 둘째는 기술적우세를 자랑하는 미군비행사들과의 싸움 
전법을 현지 에서 연구해보라는것 이요.》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이렇게 되여 그는 203군부대의 부련대장으로서 월남에 갔다. 월 
남에 간지 7개월만에 희생되였다. 

사실 련대장과 부련대장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지상에서 비행지 
휘 만 하게 되 여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러 나 어 느날 갑자기 주도기 인 한 
대대장이 급병을 앓아 그가 대신 날아오르게 되였다. 다른 주도기 
는 최봉호였다. 

림장안은 출격하자마자 최봉호와 협동하여 적들을 분산시킨 후 편 
대와 좀 떨어져있는 적정찰기 한대를 단방에 명중하고 련이어 달아 
나는 적기를 쫓아가 그것도 박살내였다. 그때 림장안은 최봉호에게 
나머지 적기들마저 기어이 쫓아가 격추하자고 했다. 최봉호의 편대 
가 적기들이 달아날 길을 막고 림장안은 그들의 뒤에 바싹 다가붙 
었다. 그때 구름속에 숨어있던 적기들 한개 편대가 내리꽂히며 그 
에게 집중사격을 가했다. 결국 그의 비행기는 불길에 휩싸였다. 

지상에서 련대장이 무선으로 탈출하라고 거듭 명령했다. 

불타는 비행기에서 탈출하는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순간 아 
태를 내려다본 림장안은 생각을 바꾸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도시 
상공에서 전투가 벌어졌던것이다. 이미 적기 4대가 추락했었는 
데 자기 비행기까지 떨어지면 온 도시가 불바다로 화할것이라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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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생각하였다. 

〈〈나 09번, 1분만 더 날겠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1분이란 길지 않다. 영원한 우주의 시간대에서는 눈금으로 새겨 
놓을수도 없는 극히 짧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그 1분마저도 림 
장안은 끝까지 날지 못했다. 도시를 벗어나 수림우에 이르렀을 때 
비행기가 폭발했던것이다. 

림 장안의 희 생을 목격한 최 봉호와 그의 대 렬기 들이 피 눈물을 삼 
키며 적기들을 쫓아가 또 한대를 격추했으나 이번엔 최봉호가 중상 
을 입고 가까스로, 거의나 기적적으로 깹비행장에 착륙했다는것이 
다. ( 최 봉호는 즉시 하노이 의 군대종합병 원 에 입 원시 켰 으나 아 
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 

월 남정 부에서 는 다음날 조선의 참된 국제 주의 전사들인 조선 인민군 
공군제203군부대의 부련대장이였던 림장안에게 월남전공제1급메 
달(영웅메달)을, 주도기비행사 최봉호에게는 세번째 2급메달을, 대 
렬기 비행사 김재홍에게는 2급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 하였다. 

수령 님 께서 는 그들에 대 한 자료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시 지 못 
하였다. 채칵거리는 탁상시계의 초침소리도 멀리 우주밖으로 사라 
져버린듯… 책임서기가 들어와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창가림을 걷어 
놓고 나가서야 비로소 창밖이 훤히 밝아왔음을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전화로 오진우를 찾으시 였다. 

《오대장.》하고는 잠시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오진우도 숨을 죽이고있었다. 자기 를 찾으시 던 수령 님 의 음성 이 
그렇듯 심 하게 갈리신것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오진우동무.〉〉 마침내 그이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월남에서 희생된 비행사들모두에게 그들의 위훈파 공적에 따라 해 
당한 영 웅칭 호와 훈장을 내 신 합시 다. 그리구 … 그들의 안해 와 자식 
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고 가능한껏 필요한 방조를 
주도록 대책을 세읍시다.》 

《예, 알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러면 다되는가?…》 


443 



그이께서는 조용히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그들을 위해 더 해줄것이 없을가?… 그래, 생활상방조뿐아 
니라 그들의 자식들 장래문제까지… 다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겠 
소. 그들이 우릴 믿고 남기고간 자식들인데 … 아버지들처 럼 흘륭하 
게 키워야 하지 않겠소. 그리구…》 

다시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시 였다. 그럼 최봉호는, 아직도 의 
식을 차리지 못하고있다는 최봉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봉호는… 알아보구 비행기로 조국에 실어오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그를 살려야겠소, 기어이!…》 

오진우가 힘주어 대 답올린다. 

《예, 수령님, 수령님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음…〉〉 

그만 송수화기를 놓으신다. 

오래 계속된 정적… 

부지중 그린듯 앉아계시던 그이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였 
다. 창가에로 다가가 시뻘건 빛이 창살같이 비끼기 시작한 저 하늘 
가에 눈길을 주신다. 차츰 피같이 진하고 뜨겁 게 물들여 지 는 저 하 
늘… 그 하늘가에 영용한 비행사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비쳐지고있 
다. 자신께서 몸소 만나 고무를 주시고 월남전선에 떠나보내신 우 
리의 영용한 비행사들… 그들모두가 한곁같이 웃고있다. 호지명주 
석이 감사전문에서 《월남의 자주독립파 세계인류의 자주화위업 
에 몸바친 영웅조선의 참된 전사들》이라고 격조높이 칭송한 우리 
비 행사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 


17 


월남에서만 반제반미투쟁의 제1선전사들이 피흘러며 쓰러지고 
있는것이 아니였다. 수령님께서는 단편적인 소식들을 통해 체 게바 
라의 유격투쟁과 눈부신 전과, 장렬한 희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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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시 였 다. 

그새 체 게바라가 지휘하는 유격부대는 주소재지인 싸마이바따까 
지 점령하고 온 세계에 공보를 날렸다. 그로 하여 세계가 떠들썩하 
고 더더욱 급해난 미국이 볼리비아륙군 제4, 제5, 제7사단병력을 
대폭 증강하는 한편 그들파 함께 미군의 특수전부대 〈〈푸른 베레 
모》를 밀림속 유격 근거지들에 공중투하하기 시작했다. 동시 에 볼 
리 비 아광산로동조합의 주요지 도자들파 체 를 지 원하던 볼리 비 아 
민족좌익혁명당 당수 레친까지 체포하였다. 

그러한 폭압조치 를 반대 하여 프랑스의 샤를 드골대 통령 이 항의편 
지를 보냈지만 그것이 오히려 미국의 반감을 사서 즉시 수도 라빠 
스종합대 학에서 체 의 유격 부대 에 보내 는 자금조달을 맡고있 던 녀교 
수와 그의 제자를 비 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체 포처 형되 였다. 그리 고 
체포된 사람들 수백, 수천명을 밀림속 오지 에 설치한 수용소들에 쓸 
어넣어 굶어죽게 하는 한편 체의 유격대를 지원하면서 폭동을 준비 
하고있던 여러 광산들과 농촌마을들에 대한 공개적인 대학살만행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따니아는 미국이 중앙사령부 사령관휘하의 정예부대들까지 투 
하한다는 긴 급정 보를 알려 주기 위 해 비 밀 라지 오방송국을 통해 체 게 
바라사령관에게 급히 만날것을 요구하였다. 체는 그때 도시에서 오 
게 되 여있는 지 원자들을 기 다리 면서 새로 꾸린 제3지 대를 강화 
하려고 호아낀부대에 가있었다. 

《싼체스한테 가서 행동방향을 받을것.》 

체 가 보낸 회 답이 였다. 

공교롭게도 따니 아는 싼체스의 부대로 가던 도중 미중앙정보국에 
서 파견한 밀정파 맞다들었다. 그자는 따니아를 체 에게 안내해주겠 
다고 하면서 찌프차를 몰아갔다. 따니아는 그것이 자기 인생의 마 
지막길임을 알지 못했다. 찌프차가 어느 한 구배길에 돌아섰을 때 
땅!一 총소리가 울렸다. 앞시창이 박살나고 운전사가 피투성 이가 되 
여 운전대 에 머 리를 틀어박았다. 

총쥔 병 사들이 길 좌우에 서 달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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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엇!》 

따니 아는 체 포되 였 다. 

미 중앙정 보국의 요원들은 너 무도 뜻밖의 일 에 정신이 휘 둘러질 지 
경이였다. 밀정의 증언대로 그 녀자가 체의 유격대 특수대원이였다 
는것 을 믿기 까지엔 적 지 않은 시 간이 필 요했다고 한다. 

따니 아가 체포되 였다는 소식을 들은 체는 즉시 싼체스와 같이 아 
이떼마을로 통하는 도로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허나 따니 아가 타고 
가던 찌 프차는 이 미 불타버린지 오랬 었다. 군데 군데 널 린 피 자욱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싼체스가 따니아의 옷자락을 길설의 개울가에서 
찾아내였다. 찢겨진 옷자락이였다. 피묻은 자욱까지 력연했다. 
싼체스가 울부짖었다. 

〈〈사령 관동지 !_ 이 일을 어쩌문 좋습니까, 예?! …》 

체는 따니아의 찢겨진 옷자락을 움켜쥐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앞에는 도로상에 흐트러진 유리쪼각들과 피자국들 그리고 
가까운 개울가에 찍혀진 그 녀자의 발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체는 말 한마디 없었다. 모질게 가슴을 찢으며 항시 그를 피롭히 
던 줄기 침마저 그 시 각엔 꺼져 버 렸다는것조차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보다 더 모질고 무서운 아픔이 지독하고 검질긴 기관지천식을 가슴 
밖으로 밀 어 던진것이 였다. 


준엄한 시 절 이 였다. 

8월부터 미제는 유격대에 대한 집중적인 대토벌을 감행하였다. 
체 게바라의 활동지 역 에 주둔한 볼리비 아정부군의 륙군 3개 사 
단이 미군특수부대 〈〈푸른 베레모》를 따라 토벌작전에 나섰다. 
1967년 10월 8일은 체 게바라의 마지막날이 였다. 

체는 유격대의 주력을 보존하기 위해 지대들을 분산시켜 활동하 
게 하면서 자기자신은 17명의 대원들만 데리고있었다. 

새벽일찍 출발했다고 한다. 그 지대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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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므로 새벽엔 몹시 추웠다. 게다가 추위에 습관되지 않은 여러명 
의 대원들이 앓고있었으므로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담가에 싣고 행 
군해가야 했다. 체자신이 자기 한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중환자였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대오를 이끌면서 두사람씩 3개의 정찰조를 무 
어 자기들이 가야 할 골짜기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모든 갈림길들 
과 오솔길 들이 차단되 여있 었다.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단 17명을 대상하여 2천여명의 대병력 
이 달려 들었다. 체 는 포위돌파전의 앞장에서 달려나가던중 미 군전 
투기 가 쏘아댄 기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부관 루돌프가 대 원들을 소 
리쳐불렀다. 그들은 체를 담가에 싣고 포위망을 뚫고나가기 시작했 
다. 허 리 조차 굽힐수 없었으므로 적 들의 좋은 사격목표로 되 였지 만 
한사람이 쓰러지면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담가를 메면서 필 
사적 으로 앞으로, 앞으로만 걸 어나갔다. … 

수령님의 사색 (4) 


1967년 10월 17일. 

체를 살해한것은 미 국놈들이 다. 부상당하여 체 포된 체 를 이게라 
라는 마을 소학교에 가두고 잔인하게 고문한것도 될리 츠라는 미중 
앙정 보국의 요원 이 다. 그자가 감히 체 를 고문하려들자 체 는 철 쇄 에 
묶이 운 두주먹 을 높이 들고 그자의 면상을 후려치 며 침 을 뱉 았다고 
한다. 곁에 있던 정부군의 한 사관도 보다못해 쩔리츠를 막아나서 
며 《이분은 체 게바라사령관입니다. 이분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러 나 아무리 악착한 미중앙정 보국의 요원 이라 할지 라도 감히 체 
를 사살할 엄 두는 내지 못했다. 그자는 즉시 미중앙정 보국에 무선 
으로 보고하고 결론을 기다렸다. 그사이 날이 밝았다. 체는 학 
교에 나온 애젊은 녀교원이 무서 워 떠 는것 을 보자 소리내 여 웃고나 
서 흑판에 씌 여 있는 글에서 틀린 글자를 고쳐주었다고 한다. 

《선생은 참 훌륭한 일을 하고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더 잘 키 
워 주시 오. )) 


447 



이것은 체가 우리모두에게, 이 행성의 모든 진보적인류에게 남긴 
마지 막 인 사말 이 다. 

그 시각 워싱톤에서는 미중앙정보국과 국무성, 대통령까지 모여 
앉아 하나의 명령서를 만들고있었다. 즉시 체를 사살해버리라는 비 
밀지령이였다. 놈들은 체를 그토록 무서워했던것이다. 

결국 체가 피로써 창작하던 반제자주의 교향시는 미완성으로 남 
게 된것인가?… 아니다. 인간해방의 노래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 
다. 노래는 계속된다. 

나는 오늘 (10 월 17일) 꾸바의 당과 정부지도자들에게 조전을 보 
내는 한편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모든 책임일군들이 꾸바대사관 
을 방문하여 꾸바인민과 전세 계혁명 가들의 슬픔에 우리 의 련대성 을 
표시하도록 하였다. 그리 고 체 게 바라의 영 웅적위 훈에 대 한 론문을 
쓰기 시 작하였 다. 《아시 아, 아프리 카, 라린아메 리 카인 민 들의 
위대한 반제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다》라는 제목으로 된 이 론문은 
이 제 얼 마후 아시 아, 아프리 카, 라린아메 리 카인 민단결 기 구 기 관 
리 론잡지 《뜨리곤띠 넨 딸》에 발표될것 이 다. 

… 체 게 바라는 투쟁 에 서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혁 명 가였 으며 편 
협 한 민족주의적감정 에서 완전히 벗어난 참다운 국제주의 전사였다. 
그는 자기의 일생을 통하여 견결한 혁명투사, 참다운 국제주의전사 
의 흘륭한 모범 을 보여주었 다. …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믿는다. 체 게바라는 꾸바혁명가인 동시 
에 참다운 국제주의전사였다. 피델의 가장 흘륭한 전우였고 동시에 
나의 전우이기 도 하다. 그는 우리 의 사상과 리 론의 신봉자였으며 견 
결한 관철자였다. 세계 의 자주화를 위해 반제 반미 투쟁 의 제1선 
에서 그가 창조한 혁명의 교향시는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계속 힘차 
게 울리 고있다. 얼마전까지 미 국의 고요한 뒤동산이 라고 일 러지던 
라린아메리카가 지금 체의 반제자주의 기치를 따라 과감히 떨쳐나 
서고있지 않는가!… 지금 체 게바라의 이름은 혁명의 쾌불로, 반 
제자주의 교향시 로 되 고있다. … 


448 



맺는 이야기 


1960년대말 세계의 수십억인류는 지구의 동북아시아에서 련 
속 벌어진 첨예한 정치군사적충돌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이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 
볼로》호를 나포하였다. 미국은 격노하였다. 세계적인 군사대국 
인 쏘련도 얼마전 까리브해에서 미국의 위협공갈에 굴복했는데 자 
그마한 나라 조선이 미국이라는 수사자의 코수염을 잡아뽑고 온 세 
상에 대고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나 
서 겠다고 선포하였 던것 이 다. 

그때로부터 만 11개월간에 걸친 격렬한 정치군사적대결이 벌어졌 
다. 온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조선반도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번에도 미국은 종시 무릎을 꿇고말았다. 12월 23일 드디여 미국은 
자기네 간첩선의 조선령해침범을 공식인정하고 사죄문까지 써서 바 
친 조건 에 서 포로되 였 던 부쳐선 장 등 82명 을 찾아갔다. 

세계는, 무서운 핵참화가 예견되여 공포에 질렸던 세계는 비로 
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미국도 례외가 아니였다. 튼슨에 이어 새 
로 미 국대통령으로 된 리차드 닉 슨은 바로〈〈푸에불로》호사건이 종 
결되였다는 소식을 받고서야 지금까지 미루어오던 자기의 둘째딸 결 
혼식 을 12월 22일 밤에 차려주었다. 뉴욕의 푸라자호텔 에서 베 
푼 성대한 피로연에서 그는 축배사를 하면서 이렇게 언명하였다. 

《나에게는 오늘 이밤이 참으로 의미깊은 날입 니 다. 그것은 첫째 
로 〈아폴로一8〉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인류력사상 처음으로 달 
주위 를 도는 궤 도에 들어 섰다는 희 한한 소식, 둘째 로는 강경한 북 
조선 이 〈푸에불로〉호의 승무원들을 석 방하기 로 하였다는 충격 
적인 소식이 날아온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이것이 미합중국시민으 
로서의 나의 마지막 행복한 밤이라는 그것입니다. 이 모든것들은 대 


449 



통령으로서의 나의 앞길이 환히, 밝게 열리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란한 박수와 열띤 환호성 … 허나 그것은 너무도 때이론, 너무 
도 성급히 내 뱉은 출발성명이 였다. 1969년 3월 2일 대통령자리 에 
오른지 한달도 못 지나 그는 쏘련과 중국사이에 국경충돌이 벌어졌 
다는 보고를 받았다. 

닉슨은 이 사건을 자신의 세계적지도력을 파시하는데 유리하게 
써먹을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인 
키신져와 국무성, 국방성의 장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것이 제 
3차 세계대전을 폭발시킬수 있는 엄중한 불씨로 된다고, 미국도 위 
험 에 빠질수 있으므로 현명 하게 대처해 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닉 슨 
으로서는 더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사변들이였다. 허나 그것이 전부 
가 아니였다. 

1969년 4월 15일 아침 6시 57분. 

닉슨의 침대머리맡에 놓인 전화기가 다급히 요란스럽게 종을 울 
렸다. 세계적인 급변사태가 아니고서는 이렇듯 이론아침 대통령의 
침 실에 직접 전화를 걸 용단을 가진 사람이 백 악관에조차 있을수 없 
다. 하여 닉슨은 급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송수화기를 들자바람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또 뭐 요? 쏘련 이요, 중국이요?》 

《아님 니 다, 대 통령 각하.》 전화를 걸 어 온것 은 대 통령 안보담 
당 특별보좌관인 키신겨였다. 《북조선입니다. 방금 31명의 승 
무원이 탄 정찰기 〈이씨一121〉기가 조선동해에서 북조선 분사식 
전투기 들에 의하여 격 추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 다.》 

〈〈격추? 우리 비행기를?》 

《예 , 대 통령각하.〉〉 

《이번에도 북조선이?…》 

〈〈예 , 대 통령각하.〉〉 

닉 슨은 그만 송수화기 를 꽉 거머쥔채 굳어 지 고말았다. 

《이씨一121》기는 미해군의 4발프로펠라정찰기로서 질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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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여톤, 항속거 리 7 000여키 로메터 , 24시 간 정 찰비 행 을 계 속 
할수 있는 최신형대 형정 찰기이다. 일본의 요꼬다기지에서 발진 
하군 하는데 그의 중요임 무는 북조선을 위 주로 중국 동북지 역파 쏘 
련 원동지역의 군사적움직임을 정찰하는것이다. 지난 기간에도 수 
십, 수백차례나 비행을 계속했지만 쏘련도 아직 그것을 격추할 용 
단은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닉슨은 입술을 악물었다. 그는 자기가 지난해 〈〈푸에불로》호사건 
때 문에 가장 무능한 대 통령 이 라는 평 판을 받고 물러난 이 전 존슨대 통 
령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좋다, 북조선이 우리를 
무시 하고있는것만큼 미 증유의 강력 한 타격 을 가하여 본때 를 보여 주자. 

그는 즉시 미태평양함대에 항공모함기동부대를 조선동해에 파 
견할것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지난해 〈〈푸에볼로》호사건때보 
다 한척이 더 많은 4척의 항공모함전단(원자력항공모함 〈〈엔터 
프라이즈》호, 항공모함 〈〈타이콘데로가》호 및 〈〈레인져》호, 
반잠항공모함 〈〈호네트〉〉호로 이루어진 )과 전함 〈〈뉴 져지》호 
까지 정 찰기호위 에 동원하면서 수백대 의 전 투기 와 전 투폭격 기 들 
을 광도와 남조선의 군산, 대구공군기지들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핵전쟁의 발동기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것이다. 하여 온 세 
계 가 또다시 미 국과의 전쟁 상태 에 들어 선 조선을 지 켜 보면서 숨을 
죽이고있었다. 

1969년 4월 16일 아침 10시. 

닉슨은 내각회의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다. 여기엔 대통 
령안전보장 특별보좌관인 키신져와 로져스국무장관, 레아드국방 
장관, 합동참모본부의장 등이 참가하였다. 회의를 시작하면서 
닉슨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장엄한 연설을 이렇게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는 공산북조선의 무모하고 엄중한 도발행위, 즉 우리 
미합중국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손상시켰으며 31명의 미국인들을 희 
생시킨 북조선에 대한 전대미문의 보복타격을 안길 대처방안을 토 
론하여 야 하오. )) 

이미 약속한 기자회견시간은 오후 3시였으므로 빨리 토의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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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해야 했다. 

먼저 국방성에서 내놓은 안이 토의되 였다. 

그것 은 첫 째 로, 핵 무기 로 북조선 의 12개 중요지점 을 타격하는 
안, 둘째로는 보다 파괴력이 큰 핵무기로 북조선의 모든 비행장들 
을 타격파피 하여 공군력 을 소멸 한다는 안이 였 다. 

열 띤 론쟁 이 벌 어졌 다. 

국무성 과 중앙정 보부는 대 규모적 인 보복을 반대했 다. 그것 은 월 
남전쟁 에 서 시 달리 고있는 미 국으로서 는 그러한 대 규모적 인 군사 
행동을 벌릴 힘이 없다는것, 국민의 지지도 받을수 없을뿐아니라 오 
히 려 북조선의 강경한 지 도부로 하여 금 이 기회 에 전면전쟁 을 벌려 
남조선까지 타고앉을 기회 를 준다는것이 였다. 

토론도중 조선동해의 어느 한 수역에서 기체의 일부와 2명의 시 
체 를 수용했다는 보고와 함께 서 울주재 윌 리암 포터대 사의 긴 급전 
보가 왔다. 포터대 사는 북조선 에 대 한 보복을 결사반대 하면서 북조 
선은 지난해 〈〈푸에불로》호사건때부터 전면전쟁준비를 완료하고 조 
국통일을 위한 절호의 시 각만 기 다리 고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지 
에 가있는 미국대사의 그 전보야말로 로져스국무장관을 비롯하여 대 
규모의 보복을 반대하는편 에 보내준 결정 적 인 지 원포사격이 였다. 

그러면 국무성의 안은?… 닉슨에게는 그것이 론의할 일고의 가치 
도 없는것으로 보였다. 전투기의 호위하에 《이씨一121》의 정 
찰비행을 계속함으로써 미국의 저락된 위신을 회복한다는 실로 취 
약하기 짝이 없는 안이였다. 

국무성의 그 안은 즉시 부결되 였다. 

대통령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인 키신져가 열을 올렸다. 

〈〈대통령각하, 언제든 이것을 잊지 마십시 오, 지금 쏘련과 북부 
월남, 중국이 우리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그 나라들뿐만이 아니지요. 전세계가 지금 우릴 지켜보고있습 
니다, 이 전 존슨정 권 파 대 비하면 서 …》 

국방장관이 곁들인 말이였다. 

닉 슨은 벌써 세번째 로 주먹 을 부르쥐 였다. 

《그럼 키 신져 , 당신의 주장을 말해 보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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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는 보복을 주장합니다, 그것도 강력한 보복을…〉〉키신져 
는 외국어숙제를 외워바치듯 거침없이 엮어대였다.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만이 미국의 자신심을 내외에 과시하고 동맹국들의 사기를 
돋구는 한편 과격한 북조선수뇌부의 용기를 꺾어놓을수 있습니다.》 
《음 …》 

닉슨도 키신져와 같은 생각이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도이췰란드에 
서 유태인박멸을 피해 간신히 미국으로 도주해온 유태인가정출신이 
며 학자이기도 한 키신져보다 그는 한가지 더 산수적으로, 실용적으 
로 타산하는것이 있었다. 보복타격을 가하는 경우 그것이 금방 대통 
령 자리 에 올라앉은 자기 에게 어 떤 후파를 가져 올가 하는것 이 였 다.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였다. 대통령자신이 약속한 기자회견시 
간도 계속 미루어졌다. 


새해 1969년에 들어와 3월도 다 저물어가던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한 작전일군에게 물으시였다. 

《요즘 적정은 어떻소?》 

《예, 수령 님. 동해 에서 미해군의 〈이씨 一121〉대 형간첩 비 행기 
가 우리 령공을 자꾸 침 범합니 다.〉〉 

《그렇 다? …》 

그이께서 는 사회주의 진영내의 가슴아픈 현실부터 돌이 켜보시 였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사회주의진영파 세계 진보적력량의 총력을 모 
아 반제반미투쟁을 더 거세차게 벌려야 할 관건적 인 시기가 아닌가? 
〈〈작전국장.》하고 그이 께서는 결연히 말씀하시 였다. 

《미국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것 같은데 그 정찰기가 또 우 
리 령공을 침 범하면 즉시 좌떨구시 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리하여 최신예대형간첩비행기 《이씨一121》이 격추되는 사건 
이 벌어졌다. 즉시 대지진파도 같은 큰 충격파가 이 행성을 휩쓸어 
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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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년 4월 15일. 

이날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인민이 축원을 드리는 자신의 탄생일 
임에도 불구하고 최전연일대의 인민군군부대를 현지지도하고계 
시였다. 현지지도를 끝내실무렵 미제 대형 간첩비행기를 격추했다 
는 작전일군의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물으시 였다. 

《단방에 좌떨궜겠지?》 

《예, 그렇 습니 다. 〈미 크_21〉기 두대 를 띄 웠는데 첫번째 로 최 
봉호비행사가 쓴것이 단방에 명중하고 뒤이어 대렬기가 쓴것도 명중 
하였습니다. 〈이씨 一 121〉기는 당장 공중폭발하였습니다.》 
《가만, 이 제 첫번째 로 쓴게 누구라구? 최 봉호?! …》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 두해전에 그를 월남에서 비행 
기 로 조국에 실어 다 죽어가던 생명 을 구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바 
로 그 비행사입니다.》 

《음… 아주 장해, 우리 비행사들이… )) 

그이께서는 잠시후 근엄한 어 조로 말씀하시 였다. 

〈〈그럼 우리 령공에 불법침범한 미제침략군 대형간첩비행기를 격 
추했다고 세상에 대고 먼저 선포하시오, 총참모부보도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현지지도는 계속되였다. 

밤늦게야 수도에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회의를 지 
도하시였다. 여기엔 김정일동지께서도 참석하시였다. 먼저 작전일 
군이 조선동해수역 에 기 여든 적항공모함집 단을 비롯한 방대한 무력 
과 그 배치정형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적정보고가 끝나자 수령님께서는 민족보위상인 최현, 총참모장 
겸 총정치국장인 오진우, 공군사령관파 해군사령관은 물론 민방위 
사령관에게서도 보고를 받으시였다. 우리 군대와 민방위무력의 전 
쟁준비 상태 에 대 하여 보다 면밀히 료해하시 기 위 해서 였다. 

보고에 의 하면 역 시 언제 어 느때 든 전쟁 에 준비되 여있는 우리 군 
대와 인민이였다. 미항공모함집단파 적의 공군기지를 일격에 타격 
할 만단의 준비도 되여있었고 전국의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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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총을 메고 전호에 나섰다. 

수령님께서는 드디여 김정일 동지께 물으시였다. 

《어떻소. 미국놈들이 이번엔 전쟁을 일으킬것 같소?》 
〈〈아님니다, 수령님.》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금도 서둘지 않 
고 침착하게, 쇠 소리 나는 어조로 말씀드리 였다. 

《지금 적들이 조선동해수역에 방대한 무력을 집결시키며 그 무슨 
〈보복〉을 떠드는것은 우리를 놀래워보려는 일종의 허세일뿐입니 
다. 놈들에겐 항복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여기 조선에서까지 전쟁을 벌릴 힘도 없거니와 일단 한방의 총 
소리라도 울리면 우리가 전면전쟁으로 대답하리라는것을 놈들도 잘 
알고있기때문입 니 다. )) 

《음…》 

수령님께서는 만족해하시였다. 지난해 〈〈푸에 불로》호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김정일동지는 시종 명쾌한 분석과 자신만만한 배심 
으로 《3 A 》 , 즉 Acknowledge — 인정하라, Apologize — 사죄 
하라, Assure - 담보하라라는 방침을 내놓고 끝내 놈들로 하여 
금 그 조건을 받아물지 않을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다음으로 놈들이 말로만 그 무슨 〈보복〉을 떠드는것은〉〉하 
고 김 정 일동지 께 서 다시 힘주어 말씀을 이 으시 였다. 

〈〈수령님과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신력을 
제일 무서워하고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 중앙방송위원 
회에 인민군협주단에서 새로 형상한 전투적인 노래를 계속 반복하 
여 내보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새로 형상한 노래를?》 

〈〈예, 제가 록음해온것이 있습니다.》 

《그렇 다? 그럼 다같이 들어 보는 것 이 어 떻 소?》 

《예, 좋습니다.〉〉 

〈〈그럼 다들 자리 에 앉으시오.》 

수령님께서 몸소 자리들을 정해주시였다. 

〈〈우리 군대 의 노래 를 들어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 록음기를 트시자 인민군협주단의 힘찬 남성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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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터져나왔다. 


결전에 부르는 당의 목소리 
우리들의 젊은 피 끓게 하누나 
병사들은 힘차게 보고하노니 
우리는 일당백 준비되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 
고계시 였다. 폭풍치 는 우리 군대의 노래는 계속되 였다. 

수령이시여 우리들에게 명령만 내리시라 
단숨에 달려가 원쑤미제 이 땅에서 소탕하리라 

간주가 울리기 시작하자 수령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 군대의 결심이지, 우리 군대의 결심!… 
그러니 우린 최고사령부의 작전회의를 노래로 맺게 되는구만. 아주 
좋은 일이요. 이렇게 우린 벌써 이긴 전쟁을 하고있소. 총포소 
리가 없이도 이기는 전쟁을 말이요, 옹?!…》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오진우가 입술을 감빨며 말씀드렸다. 입이 무겁고 감정표현이 거 
의나 없다는 그였지만 공군사령관이나 민방위사령관과 같이 두주먹 
을 앞가슴에 모두어쥐고 저도 모르게 그 노래의 선률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특히 최현은, 항일의 백전로장으로서 그 어떤 경우에도 감 
상에 물젖지 않는다고 소문이 난 최현은 김정일동지의 손을 꼭 잡 
고있는데 어 언 그의 주름깊은 눈가에 도 한점 물기 가 번득이고있 
었 다. 

1969년 4월 16일. 

수령 님 께서 는 강선제 강소 6000톤프레 스직 장건설장을 현지지 
도하시면서 하반년부터는 생산물이 나오도록 할데 대하여, 이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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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 만경 대 구역 금천협 동농장을 현지 지 도하시 면서 는 닭기 르기 
에서 전국의 모범 이 될데 대하여 그리고 수산성 부상에게는 전화로 
먼바다에서 작업하는 고기배들의 위치를 료해하시면서 적들의 도발 
에 경각성을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반항공사령부에 나가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밤중 수도를 향 
해 최고속으로 차를 몰아가시였다. 좀전에 수령님께서 전화로 《지 
금 어디에 있소?… 김일동무의 병세가 매우 위독하다고 하오.》라 
고 말씀하셨던것이다. 흐린 날씨여서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 
르녹는 4월의 봄이 라지 만 이밤따라 날씨 는 찼다. 

마침내 그이께서 수령님의 집무실에 들어서시였을 때 그곳에서는 
신성우, 박명빈을 비롯한 여러 명망있는 의사들이 수령님께 김일동 
지의 병이 너무 위독하므로 빨리 외국에 보내여 수술받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드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방안을 거니시였다. 크나 
큰 아픔이 그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로 얽혀지고있었다 
마침내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 박사선생들은 김일동무를 외국에 보내여 수술하게 하자고 하 
는데… 과연 어떻게 하는게 옳겠소?》 

김정 일동지께서는 크게 심 호흡을 하시 였다. 

《수령 님 , 전 방금 오래 전 에 있 었던 한가지 일을 상기해보았습니 
다. 수령님께서 수술을 받으시던 때를 말입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외 국의 국가수반들까지 자기 나라의 의 술이 세계적 으로도 권위있다 
면서 초청하였지 만 전적 으로 우리 의 사들을 믿 고 그들에 게 그 일을 
맡기시지 않았습니까.》 

《음…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 그때 난 한다하는 외국의 권위 
자들이 다 와서 권고했지만 그걸 모두 거절했었지. 아무래도 우리 
당이 키운 제 사람들한테 더 믿음이 가더라니까.》 

《그래서 전 김일동지의 수술도 우리 의사들에게 맡겼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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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입니 다. 김 일동지 본인도 아마 그걸 바랄것 입 니 다. )) 
〈〈그럴가?》 

《예, 김일동진 한시도 수령님을 떠나선 못삽니다. 외국의 박사 
들이 더 유능하다 해도 절대 수령님곁을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그래, 옳게 보았소. 나도 그를 떠나보내고싶지 않아. 곁에 두 
고 우리 사람들한테 맡기고싶단 말이요.》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는 수령님의 안광에 밝은 빛이 어리였다. 
《그럼 외국문제는 더이상 론하지 맙시다.〉〉하고 수령님께서는 
신성우며 박명빈에게로 몸을 돌리시였다. 

《헌데 수술을 하게 되면 몇시간이나 걸릴것 같소?》 

〈〈수령님.》 신성우박사가 말씀드렸다.〈〈다섯시간 아니면 여 
섯시간은 걸려야 할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수령님께서 다시 안색을 흐리시였다. 

《김일동무가 요새 몹시 쇠약해졌는데 그 힘든 수술을 다섯시간 
이상이나 견디여낼수 있을가?…》 

신성우는 잠시 망설이는듯 하더니 박명빈에게 눈길을 보냈다. 선 
생이 좀 말씀드리시오라고 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박명빈은 머리를 
숙이고 발끝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이번에도 김정일동지께서 한발 앞으로 나서시였다. 

〈〈수령님, 제가 수술립회를 하겠습니다. 수술이 열시간, 스무시 
간 걸린다 해도 제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그이를 바라보기만 하시 
였다. 깊은 감동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시다가 웅글게, 저으기 젖 
어 드는 음성으로 말씀하시 였다. 

《그렇게 해준다면… 난 마음을 놓겠소.》 


규정대로 모든 소독작업을 마친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없이 굴 
러가는 밀차를 따라 수술장으로 들어가시였다. 밀차에 누운 김일은 
잠시도 그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저때문에…〉〉김일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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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 그의 귀전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시였다. 

〈〈다 잘될것입니다, 김일동지. 정 힘이 들면 내 손을 꼭 잡으십 
시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아니, 제가 뭐라구… 이 바쁘신 때에 수술장예까지… 이 김일 
은 그저 … 일을 쓰게 하지 못해 늘 죄스럽기만 한데…》 

《그런 말씀 마십시 오. 김 일 제1부수상동지는 수령 님을 모시고 백 
두산에서부터 혁명해온 혁명의 원로가 아님니까, 오늘은 또 우리 
수령님과 당을 받드는데서 1번수의 역할을 하고있고… 그래서 저는 
늘 힘자라는껏 투사동지들을 잘 받들어 줄 그 하나의 생각뿐입 니 다.》 
〈〈김정일동지!…》 

뜨거운 속삭임에 목이 메인듯… 그는 금시 터져나오는 오열에 어 
깨를 떨뿐 더 이상 말씀드리지 못하였다. 

수술장은 눈이 부시게 밝았다. 모든것이 정결하고 엄숙했다. 김 
일 의 손이 백 포자락밑 에 서 옴지락거 리 기 시 작했다. 무엇 인가를 찾 
고있는듯… 김정일동지께서 그 손을 잡아주신다. 

〈〈제 여기 있습니다.〉〉 

김정일동지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가에서 물기가 번뜩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一맙…》 

차츰 혀 가 굳어 진다, 그의 두눈도 서서 히 감겨지 고… 강력한 마 
취제가 그의 온몸을 떠싣고 아득한 저 공간으로 날아가고있는것 같 
다. 그다음은 아늑한 고요와 망각의 하얀 빛살뿐… 

드디여 수술이 진행된다. 눈부신 무영등아래 초긴장상태로 수술 
을 진 행하는 집 도자와 제1보조의사, 제2보조의사, 두눈만 내 놓 
고있는 간호원들… 한쪽에서는 마취의사가 줄곧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마디 말도 없 다. 모든것 을 눈빛언 어 로만 주고받는다. 
숙연한 정적 … 벽시 계의 초침소리 와 기 구들이 딸깍거 리 는 소리만이 
유난히 도 크게 울리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이 이미 마취상태에 들어간지 오랬지만 여 
전히 그의 손을 꼭 잡고계시였다. 어느덧 그이의 얼굴에도 진한 땀 
방울들이 가득 내 돋기 시 작했다. 집 도자의 이 마를 가제 로 찍 어주던 
간호원처 녀 가 그이 를 우러 르며 눈물을 글썽인다. 하얀 가제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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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감빨고있다. 

다시 아침이 왔다. 

소생의 아침 ! … 퍼그나 안정된 김 일이 침대 에 누워있다. 

김정일동지께서 여전히 그의 옆에 앉아계신다. 김일은 아무말없 
이 떨리 는 손으로 그이의 손등을 어투쓸고만 있다. 김정일동지께서 손 
수건을 꺼내시여 김일의 눈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신다. 

《김일동지, 정말 용케 견디여내셨습니다. 그처럼 어려운 대 
수술을 무려 다섯시간동안이나…》 

김일이 갈린 음성으로 떠듬거린다. 

《제가 수술을 받았습니까. 지도자동지께서 대수술을 받으셨지 
요. 꼬박 다섯시간을 한자리에 서계셨다구 하니 …》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오열을 삼키며 누렇게 뜬 손 
을 바르르 떤다. 

김정일동지께서 밝게 웃으신다. 

《김일동지, 모든 일이 다 잘돼가는데 월 그러십니까. 웃으심시 
오. 김일동지가 걱정 하던 〈이씨_121〉대형 간첩비행기 격추사건도 
수령 님 께서 〈대 수술〉을 했으니 더 는 념 려하지 마십 시 오.》 

〈〈참, 〈이씨一121〉사건이 어떻게 됐습니까?》 

그이 께서는 상두대 에 로 손을 내 밀고 조선중앙통신사에 서 올린 통 
신 을 펴드신 다. 

《이건 미국대통령 닉슨이 이번 〈이씨一121〉대형간첩비행기 
격추사건을 놓고 당장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떠들다가 마침내 기자 
회견에서 발표했다는 성명입니다. 내가 읽어드릴테니 들어보십시 
오.》 

이 어 그이 께서는 통신의 한 대 목을 읽 으시 였다. 

《… 우리는 공산북조선의 거듭되는 도발행위에 대하여 가장 엄 
격한 경 고로 대처할것 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태 평 양함 
대 에 조선동해 에서의 〈이씨一121〉기의 정찰비 행을 계속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정찰기에는 신형전투기들의 호위가 불게 
된다. 이것은 그 누구를 위협하는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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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결심을 전세계에 알릴뿐이다.〉〉 

통신을 읽으신 그이께서 옷으며 물으신다. 

〈〈어떻습니까, 김일동지?〉〉 

김일은 허허… 옷으려 했으나 수술뒤끝의 동통때문인지 저도 모 
르게 미간을 찜 긴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더니… 이번에도 큰 산이 울린 끝에 
쥐새끼 한마리로군요.》 

《옳습니다.〉〉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신다.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안아오신 조미대결전의 대승리입니다.》 

〈〈우리 수령님과…》하고 김일이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속삭이 
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안아오신 대승리이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그리신다. 

《저야 뭐 한 일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난 그저 이번의 조미대결 
전을 통하여 다시금 가슴깊이 절감한것이 있습니다.》 

〈〈예?!…》 

김 일이 호기심 가득 어린 눈길을 든다. 그이께서 계속하신다. 

《그것은 바로 수령의 권위이자 나라와 민족의 존엄이고 자주성 
이 라는것 입 니 다.》 

김일의 입귀가 다시금 실룩거린다. 마침내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린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정말 가슴이 막 끓고 
부풀어 오릅니 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신다. 창가림을 활 
짝 제 끼 시 자 밝은 해 살이 파도쳐흘러 들기 시 작한다. 

해빛의 홍수… 김일은 그 빛발을 우러르며 마음속으로 뜨겁게 부 
르짖는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함께 모시고있는 우리 조 
국, 우리 민족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 휘황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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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운 명 

一저 자— 정기 종 ―편집 김성철— 
표지 김광석 편성 리 설 회 
교정 안 순영 

낸 곳 문학예술출판사 

인쇄소 평양종합인쇄공장 一2 

인 쇄 주체 101(2012) 년 5월 20일 

발 행 주체 101(2012) 년 5월 25일 

一 1-16663 값 230원 

© Korea Literature & Art Publishing House 2012 
DPR Korea 

ISBN 978-9946-22-430-5 



총서 복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名 병 

정기 종 


문학예술출판사 
주체 101 (2012)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