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a dream 연설문 해석 - I have a dream yeonseolmun haeseog

마틴 루터 킹 목사 “I Have a Dream” 번역
번역: 손승우
핵심단어: score (뜻: 20년, 상처)
corner (뜻: 모서리, 궁지)
vault (뜻: 둥근 천장, 저장소, 해부 두개)
NOW (뜻: 지금)
pass (뜻: 지나가다. 예 – 불만의 시간이 지나가다.)
ghetto (발음:게토, 뜻:빈민가)
hew (뜻: 도끼나 칼 따위로 자르다.)
lookout (뜻: 감시, 망보기)
molehill (뜻: 두더지 구멍)
hamlet (뜻: 촌락)
happen (뜻: 사건 따위가 일어나다, 생기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자유를 위한 시위 운동으로 역사를 타고 이어져 내려갈 오늘 집회에서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100년 전(five score years ago), 우리가 은혜 받고 있는 한 분의 훌륭하신 미국인이 노예해방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중대한 선언은 꺼져가는 불공평의 불씨에 타 들어가고 있던 수백만의 흑인 노예들에게 밝은 횃불이 되어 밝혀주셨습니다. 이는 감금의 긴 밤을 끝낸 환한 새벽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분리제도(segregation)의 쇠고랑과 인종차별의 쇠사슬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물질적 풍요의 광대한 바다의 안개 속에 가난의 무인도에서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미국 사회의 구석(corners)에서 시들어가고 있으며 자신들을 조국 미국의 유랑자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부끄러운 현실을 극화(dramatize)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조국 미국 국회에 수표를 현금화하기 위해 왔습니다. 미국의 건설자들이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근사한 언어로 장식하는 동안,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상속인으로 규정되는 상업지불의 음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음정은 모든 사람들이, 백인만큼 흑인들도, 삶의 권리와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보장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미국이 미국국민이 연관된 한, 이 상업지불의 음정에 대해 빚을 갚지 않아 왔다는 것은 오늘날 분명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에 영광을 주는 대신에, 미국의 흑인들에게 쓸모 없는, “자금 부족”이라는 표시와 함께 돌아오는, 수표로 지불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이라고 믿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미국)의 거대한 기회의 저장소(vault)에 자금이 불충분하다고 믿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이 수표를 현금화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 수표는 요구를 한다면 안전의 보장과 자유의 풍요로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미국에게 지금(Now)의 긴급함에 대해여 상기시켜주기 위하여 이 성스러운 시점(hallowed spot)까지 왔습니다. 지금(Now)은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사치와 점진주의(gradualism)의 진정제를 복용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Now)은 민주주의의 약속을 현실화할 때입니다. 지금(Now)은 어둡고 황페한 분리제도의 계곡으로부터 인종간 정의의 밝은 길로 향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Now)은 인종간 부정의의 위험한 상태로부터 견고한 형제애의 바위로 조국 미국을 들어올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Now)은 모든 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정의를 실현시켜야 할 때입니다.
순간(the moment)의 긴급성을 경과시하는 것은 이 국가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흑인들의 합법적인 불만의, 더위에 지치는(sweltering = hot)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활기찬 가을이 있기 전까지는 지나가지(pass) 않을 것입니다. (This sweltering summer of the Negro’s legitimate discontent will no pass until there is an invigorating autumn of freedom and equality.)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흑인들이 그 더위의 습기를 소문에 날리기만 하고 만족할 거라고 희망하는 자들은 이 국가가 여지껏 그랬듯이 일상대로 움직인다면 식은땀에 잠을 깰 것입니다. (Those who hope that the Negro needed to blow off steam and will now be content will have a rude awakening if the nation returns to business as usual.) 흑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미국에 휴식도 고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밝은 날이 올 때까지 반란의 회오리가 계속해서 이 나라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정의로 인도하는 길의 문간에 서있는, 나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얻는 과정에서 우리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In the process of gaining our rightful place, we must not be guilty of wrongful deeds.) 우리의 자유를 위한 갈증을 쓰라림과 증오의 물잔으로 만족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존엄과 자제의 높은 수준에서 영원히 투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저항이 물질적인 폭력으로 퇴화하는 것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금 우리는 물질적 힘과 정신적 힘에 대응할 수 있는 당당한 수준에 올라야 합니다.
흑인 공동사회를 빨아들이는 이 기괴한 교전상태가 우리를 모든 백인의 불신으로 인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수한 우리의 백인 형제들이, 오늘 그들의 이 연설에 대한 참여가 증명하듯이, 그들이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묶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가 풀 수 없게 우리의 자유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혼자서 걸을 수 없습니다.
걸어가면서, 우리는 항상 앞으로 행진해 갈 것이라고 서약해야 합니다. 우리는 뒤로 돌아설 수 없습니다. 열광적 신자에게 시민권을 요구하는 자가 있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쯤 만족하게 돼지?”입니다. 흑인이 경찰의 잔인함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공포의 희생자인 한, 우리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로에 지쳐서 허덕일 때 고속도로나 도시의 숙소에서 방 한칸 얻을 수 없는 한, 우리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의 이동이 작은 빈민 지역(ghetto)에서 좀 더 큰 지역으로 제한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백인들만”이라는 표어에 의하여 우리의 아이들이 자아를 박탈당하고 존엄성이 강탈당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권이 없고 뉴욕의 흑인들이 투표할 대상이 없다고 믿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공정함이 거센 흐름으로 흐를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상당수가 큰 고난과 시도 속에 이 연설을 들으러 왔다는 사실에 저는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꽤 많은 분들은 좁은 감옥살이에서 금방 오셨습니다.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심한 박해와 경찰의 잔인함을 견디어 내면서 오셨습니다. 당신들은 고통에 대해 노련한 분들이십니다. 부당한 고통을 되돌아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가십시오.
미시시피로 가십시오, 알라바마로 가십시오,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가십시오, 조지아로 가십시오, 루이지애나로 가십시오, 북쪽 도시의 빈민가와 감금 지역으로 가십시오. 이 상황이 어떻게든 변해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채로 말입니다. 우리는 절망의 계곡에서 허덕여서는 안 됩니다.
친구들이여, 저는 말합니다. 오늘과 내일의 고난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꿈의 미국의 꿈(American dream)에 깊게 뿌리내린 꿈입니다.
나는 언젠가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실을 간직한다.”는 신조의 진정한 의미 속에 미국이 설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예전 노예의 자녀들과 예전 노예주인의 자녀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심지어 압제와 부정의가 최고조로 열을 발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원천으로 변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나의 네 명의 자녀들이 피부의 살빛으로 평가 받지 않고 그들의 내적 자질로 평가 받는 나라에서 살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알라바마, 악랄한 인종차별주의자와 방해(개입)과 무효화의 단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주지사가 있는 바로 그 알라바마에서 흑인 소년들과 소녀들이 형제와 자매로써 백인 소년들과 소녀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모든 계곡이 오르게 되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게 되고, 거친 곳은 평평하게 되고, 굽은 곳은 펴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밝혀지게 되고, 모든 생명이 그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은 내가 남부로 갈 때 간직할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는 절망의 산 속에서 희망을 바위를 잘라낼(hew)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는 미국의 사방에 울리는 불화의 소리를 형제애의 조화로운 교향곡으로 변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투옥하고, 자유를 위하여 함께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은 채 말입니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모든 신의 아이들이 새로운 의미로 “나와 당신의 나라, 자유의 땅, 당신을 위해 노래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 순례자의 땅, 모든 산허리로부터 자유가 울리길” 이라고 노래할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숭고한 나라가 될 것이라면, 이것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뉴 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의 정상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뉴욕의 큰 산들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펜실베니아의 치솟은 앨리게니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콜로라도의 눈 모자 쓴 록키 산맥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캘리포니아의 굽은 비탈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바위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테네시의 감시(lookout)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과 두더지 구멍(molehill)으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모든 산허리로부터 자유가 울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이 실현될 때(happens), 우리가 자유가 울리도록 허락할 때, 우리가 자유가 모든 마을과, 모든 촌락(hamlet)과, 모든 주(states)와, 모든 도시로부터 울리도록 할 때, 모든 신의 아이들,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비유대인(gentile), 신교도와 가톨릭교도들이 손 잡고 “드디어 자유다! 드디어 자유다! 전능하신 신이여, 감사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자유다!” 라는 예전의 흑인 영가를 부를 그 날이 더 빨리 실현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