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 - sadohaengjeon 15jang yelusallem hoeui

제95회 성 총회가 다가오고 있다. 수많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총회에 임하는 총대들의 마음가짐이다. 성 총회를 위하여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다. 예루살렘 회의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종교 회의였다. 이 회의는 오늘 날 교회의 모든 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회의의 본을 되새기면서 다가올 총회를 거룩하게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첫째,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아가자.

예루살렘 회의 소집 동기는 교회 안에 혼선을 빚고 있는 복음과 율법의 문제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유대기독교인들의 율법(할례) 문제가 선교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복음에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1세기 교회공동체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공개질의를 했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 형식은 온 교회가 모이는 공개 형식이었다. 발언은 사도와 장로들이 주로 했다. 평신도들이 참여하여 방청을 했다(행 15:12,22절). 평신도들이 함께 한 이유는 문제의 핵심을 모든 교인들이 알아야 하고 또한 그 논의 과정의 정당성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회의는 오늘날 교단 총회의 기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논의하고 합의한 사안을 존중해 주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8~19).

총회는 서로의 이해관계와 교리적 충돌 등을 해소하고 선명하게 우리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없는 총회를 바라는 유아적인 자세를 버리고 그 문제를 인정하고 그 문제와 관련된 상대도 인정하고 그리스도인답게 문제를 해결하는 성 총회가 되게 하자. 아무리 첨예하게 보이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토의에 임하기를 바란다.

둘째, 총회의 과정과 질서를 존중하고 서로를 인정하자.

예루살렘 회의의 진행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는 의제를 확인하기 위한 질의응답식 토론이 있었다. 사도행전 15장 7절에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라고 했다. 여기서 “변론”이란 말은 ‘찾는다’(seek)는 의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묻고 대답했다. 물론 여기서 제기된 의제는 “예수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하는 내용이었다. 일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의제가 확정된 후에는 몇 명의 대표자 발언이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온 교회가 결의하고 승인했다. 결의된 내용은 즉시 모든 교회에 알리고 따르도록 했다.

대표 발언자는 세 사람이었다. 첫째는 베드로 사도였다(행 15:7~11). 베드로는 사도의 대표자요, 초대 교회의 대표자였다. 둘째는 바울과 바나바였다(행 15:12).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전도의 현장에서 사역했던 사람으로 문제를 제기한 장본인들 이었다. 셋째는 야고보 사도였다(행 15:13~21).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가 개최될 당시 상당히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이 회의의 의장 자격이었다. 베드로는 주제 발언을 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실증을 했다. 야고보는 의장 자격으로 결의문을 도출해냈다.

그들의 발언과 마음의 중심은 철저하게 하나님 영광과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행되었다. 결과 복음의 본질인 구원 문제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지켜냈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비본질적인 문제지만 유익한 것을 합의하고 허용했다. 그것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편지하는 것”(행15:20)이다.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도들의 집단이었으나 회의 과정은 차분히 경청하고 발언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질서 있는 회의였다. 회의는 과정과 질서가 중요하다. 이것이 불신되면 결과에 대한 정통성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하나님은 정당한 과정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고성을 지르고 심지어는 몸싸움을 하는 일은 이미 토론이라고 할 수 없다. 논의의 정당성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주장을 하는 태도에서까지 바른 절차와 질서를 지키게 되기를 바란다.

셋째, 영광스런 주님의 교회와 영혼을 살리는 주의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동참하자.

우리 서로 간절하게 주님의 도움을 기도하며 동참하자. 먼저는 우리의 삶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나의 영광을 구하지 말자. 다음은 나의 사상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각하며 참여하자. 그리고 계보나 자기 이해관계보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자.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 영광이고 영광스런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최선을 다 하되 우리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동참하자. 스스로 총회의 제갈량인양 설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자. 총대는 물론 산하 모든 성도들까지 정말로 성 총회가 되도록 기도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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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15:1-21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사도행전 15장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종교 회의인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된 이유와 그 때의 결정 사항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장 말미에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에 관한 기사가 시작되어 사도행전 18장 22절까지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에 관한 기사가 사도행전 13장과 14장입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와 2차 전도 사이에 예루살렘 공의회에 관한 기사가 들어간 이유는 이방인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 전도의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이방인 전도에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세울 때, 금식하며 기도하였었는데 이렇게 하도록 인도하신 분이 성령님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전도자로 세우고 파송하여 구브로, 비시디아 안디옥, 그리고 여러 지역에 주님의 도를 전하도록 하였는데, 이 역시 두 사람이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사도행전 13장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박해가 있었고, 내적으로는 여러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회 내 갈등으로 교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사도행전 15장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1-5절)]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간 어떤 사람들이 복음에 벗어난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할례자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실 때 할례를 설명하시기를, 하나님과 구원받은 백성과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구원받은 자의 표징이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진수를 알지 못하였고 여전히 민족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부가적인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할례나 율법의 준수나 어떤 행위가 구원받는 조건으로 요구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곡해하고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헛되게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내 복음의 본질에 벗어난 것을 마치 정통인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라고 말하거나 성경적이라고 말하거나 주님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면서 복음을 곡해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안디옥교회까지 먼 거리를 찾아간 사람들처럼 열정과 자기 신념이 강하지만 그들은 복음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리더 역할을 하였던 바울과 바나바와 격한 논쟁을 하였습니다. 유대 전통에 큰 자부심을 느꼈던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자, 안디옥 교회는 할례와 구원과의 관계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몇 사람을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 파송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교회나 노회에서 풀지 못하는 사안을 상회인 총회로 헌의한 것과 같습니다. 초대 교회에 아직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지역 교회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을 상회 기관인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갈 때 직행하지 않고 가면서 지중해 연안 지역인 베니게와 이방인으로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인의 지역을 거쳐서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이 지역에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온 일’(3절), 즉 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과 그 외 지역의 이방인들에 대한 1차 전도의 열매를 알리면서 경유지의 성도들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교회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 즉 1차 전도 결과를 상세히 보고하였습니다. 4절에 ‘말하다’의 원어는 ‘상세히 이야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를 듣던 바리새파 출신의 어떤 교인이 이방인의 할례 준수를 주장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다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준수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6-11절)]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안디옥교회에서 헌의한 할례 준수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도 제기하자, 이 사안을 의논하러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임으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개최되었습니다. 할례 준수 문제가 쉽게 일단락되지 않았습니다. 7절을 보면 많은 변론이 있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의견 발표와 긴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된 결론이 나지 않자 사도 베드로가 발언하게 되었습니다. 7~11절에 있는 사도 베드로의 발언은 이전에 발언했던 사람들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도들의 사역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듯이 사도 베드로의 발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말이었습니다. 교회는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가르침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베드로 발언의 핵심은 구원에 있어서 이방인과 유대인들과의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도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은혜를 주시고 또한 믿음으로 이방인을 정결케 하시니,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이방인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의 멍에를 메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푼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구원에는 차별 없음이 이미 일단락되었는데 왜 다시 거론하느냐는 질책 겸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로 값없이 주신 값진 구원에 불필요한 조건을 달아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복음과 무관한 불필요한 조건을 다는 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속박시키는 일입니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12-21절)]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보고를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교회에 했던 보고를 다시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보고를 마치자 이번에는 예루살렘 공의회 의장 격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말을 하였습니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는 사도 베드로의 발언처럼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시므온은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14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고넬료를 돌보신 일입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킨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기초가 된 새로운 나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돌보신다는 것’은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인자하심을 베푸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16~18절 말씀은 야고보가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로 주님을 찾게 하신다는 구약 선지자의 예언이 이방인 고넬료를 통해 성취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방인들이 지속적으로 주님을 찾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증인들인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신약 시대에 와서 발생한 쟁점 사항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헌의된 사안의 결론으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차별이 없음을 알리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4가지 사항을 제안하였습니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15절의 ‘내 의견에는’에 해당하는 원문의 뜻은 ‘판단하다’, ‘심판하다’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 의장으로서 최종 판결을 내렸음을 보여줍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릴 때 자신의 생각으로 판결하지 않고, 법 조문을 근거해서 내리듯 야고보는 성경을 근거해서 할례 준수에 관한 헌의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제시한 4가지 금기 사항 권고는 당시 이방인이 관습적으로 행하는 일들이었습니다. 4가지 중 앞의 2가지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일이고 뒤의 2가지는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 규정에 근거한 사항입니다. 목매어 죽은 가축이나 짐승의 고기는 피가 빠지지 않았기에 피 채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야고보가 요구한 최소의 의무사항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었으며, 단지 이러한 것을 혐오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살아온 환경과 문화 배경이 다르기에 주님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 야고보가 제시한 금기사항의 요지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멍에를 메우지 말아야 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말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집입니다. 교회 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언행이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수용할만한 믿음이 없어 시험에 빠지게 될 교우가 있다면 덕을 위하여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의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이 알도록 끊임없이 하나님께 지혜와 은혜를 간구하십시다. 할례 준수 제기가 교회 내 문제로 발전하였지만, 사도들과 장로들과 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주님의 뜻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듯이 오늘 하루 직면한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게 알아가는 기회로 삼으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희를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해 주셨사오니 저희가 주님의 보혈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옵소서.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 사람에게 멍에를 메게 하지 않게 하시옵고 또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언행을 삼갈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을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 이외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오늘날 교회가 할례를 행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례와 세례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발언한 사도 베드로의 말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4.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내린 결론은 무엇이며, 추가적인 4가지 항목을 제시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5. 교회 리더들은 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하며 교회 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작성: 김광욱)